중국과 이란 - 무기 수출과 석유에 대한 진실
존 W. 가버 지음, 박민희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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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지아 공대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존 W, 가버는 중국-이란, 중국-파키스탄 관계에 대한 연구로 미국 내에서 명성을 갖고 있는데요. 또한 중국과 북한 관계에 대한 연구 실적도 대단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중점으로 논하고 있는 중국-이란 관계 뿐만 아니라 이란에 대한 미사일 기술 협력과 무기 지원을 암묵적으로 맡은 북한의 역할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복합적인 연구물은 읽는 내내 유익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선적으로 이란의 핵관련 기술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개안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 이란은 왕정으로서 특히나 미국과 깊은 우호국이었는데요. 이란 왕정 자체가 대체로 권위주의적이었고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이었지만 미국이 지원하는 여느 권위주의 정부들처럼 (미국의) 이익과 관련해 중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였습니다. 미국의 역외 균형 전략에 의하면 이란과 같은 지역 강대국은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중동 내 미국의 혈맹인 이스라엘의 존재와 이란의 석유 등에 의해 (이란은)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이슬람 혁명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란이 신정국가화가 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장하게 되자 중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규탄하게 되었고 이러한 배경에 석유 수출입의 중요한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봉쇄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미국이 적극적으로 이란을 굴복시키게 하는 강한 요인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중국은 과거의 미국과 함께 이란의 오랜 우방국이었고 이란의 혁명 이후에도 특히 군사 기술, 무기 수출 및 핵기술 지원 등을 통해 ‘봉쇄국 이란’의 유일한 숨통이 되면서 미국의 외교 수단에 반하는 결과를 수차례 낳게 됩니다.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중국에 타이완 카드를 지렛대로 삼기 전까지 중국의 암묵적인 이란에 대한 다채로운 지원에 대한 무력화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중국에게 있어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이슬람 국가가 핵 능력을 갖는 상황이 서구의 군사적 힘을 이 지역에 얽어매고, 서구가 동아시아에 집중할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인식이 전제된 것이다”로 가버는 이를 이런식으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어떤분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 이득이 바탕이 된 중국의 현실 외교로 여러가지 차원의 고려가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앞의 해석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중국과 이란의 숨겨진 비밀 외교는1997년 미 클린턴 행정부의 대만에 대한 F16 전투기 판매로 얼마간 변화가 이뤄지고 2004년에 중국이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이란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지원이 해소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 가버 역시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에게 있어서 이란과의 관계는 비슷한 상황의 파키스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파키스탄을 거의 준동맹국에 가까운 취급으로 미사일을 포함한 군사 기술 뿐만 아니라 핵심적인 핵기술까지 지원에 나서 오늘날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보유하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에게 이처럼 파키스탄과는 다른 이란에게 있어서 중국에 의한 인식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현 국제 체제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는데요. 즉 MTCR체제가 미국과 서구가 주도한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기술 습득 제한’이 이러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수많은 개도국들에 대한 미국과 같은 서구 선진국들의 공격 가능성을 포함한 매우 불평등한 조치라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제한 조치가 본질적으로 세계 평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중국인 미국의 대 타이완 카드와 수많은 압력에 의해 MTCR에 가입했지만 근본적인 인식은 미국과 서구 유럽에 의한 국제 체제에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고 자신들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이러한 레짐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으며, 자신들의 경제 발전으로 인한 근본적인 국제 사회에서 지위 향상을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과 맞물려 앞으로 중국이 어떠한 길을 가게 될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지 않나 싶습니다.

“중국 지도자들이 페르시아 만과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혐오한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저자는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동에서의 석유와 관련해 중국 또한 강력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말라카 해협과 같은 석유 수송로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전체적으로 미국이 고려하고 있는 자국의 이익과 비슷하게 그 궤가 유사합니다. 즉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의 일방적인 미국의 오판과 개입이 아니라 중국 또한 이란과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적 협력 및 지원 등이 미국과 거의 다를바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헤게모니에 대해 이를 윤리적 기준으로 해석해 상대방과 자신을 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주의 외교에서 매우 황당한 처사라고 볼 수 있겠죠. 결국에 MTCR과 NPT와 관련된 미국의 인식과 행동은 거의 국제 안보에 유익한 것이며 핵확산 금지와 관련하여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에 보인 모순된 행동에도 기본적으로는 핵무기 확산에 대한 제한이 법적이고 공식적인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국가의 안보를 위해 대량 살상 무기가 될 수 있는 기술들을 자위권의 차원에서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중국과 같이 이해하는 것은 세계 안보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케네스 월츠처럼 ‘핵무기의 확산이 국제 평화에 이바지한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핵무기 확산은 그 위험성을 거의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고 생각해봅니다.

끝으로 이 책은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과 이란의 관계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이란 두 양국의 입장에서 거의 반세기가 넘는 시기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외교적 수단들과 이들의 역학 관계 및 중동의 정세와 중국과 이란의 입장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서 언급하긴 했습니다만 오늘날 이란의 핵기술 개발에 대한 거의 정확한 이해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지난 2011년 출간됐음에도 현재 절판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의미한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출판사 측에서 앞으로 재간행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를 포함해 500여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일독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연구물이 학자로서 온전한 평가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독자들의 역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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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회와 그 적들 - 그들이 말하지 않는 복지 국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가오롄쿠이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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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루이쿠 연구원 부원장이자, 중국 런민대 충양금융연구원의 연구원, 중국전문가학자협회 이사로 있는 경제학자인 가오롄쿠이의 이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경제학을 바탕으로 복지 연구에 평생을 건 학자로 유명한데요. 중국 체제가 덩샤오핑 집권기에 본격적으로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 안에 받아들인 이후 중국 국내의 경제학자들이 자유주의 경제학으로 기조를 전환했던 반면에 가오롄쿠이는 사회 경제학에 입각해 복지 사회 건설에 관한 입장을 일종의 사명으로 견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이 나온 연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선 이 글의 1장과 2장은 ‘복지’에 대한 설명과 오해에 대해 언급하고, 3장에선 세계 최초로 복지 개념을 창안한 영국이 어떻게 이 ‘복지’를 저버렸는지, 더불어 미국과 함께 어떻게 국민들의 최소한의 사회적 복지를 버렸는지애, 4장은 복지 사회를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열거하고, 5장은 세계 주요 국가들의 복지 현황, 6장은 큰틀에서 저자의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 ‘저생존원가형 사회’에 대한 개념과, 이후 전체적 글의 마무리로서 중국 사회에 어떻게 하면 복지를 이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 인식의 전환과 방안에 대해 설득과 이해를 시키고 있는데요. 모든 장들이 의미의 확장된 개념으로 짧은 시론의 형태로 저자의 주장을 보충 설명하면서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인데요. 번역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 글들이 수월하게 읽혀졌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일종의 생존권과 비슷하게 사회적 보장을 적극적으로 해야한다는 전제로서 이에 따른 여러가지 근거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소수의 부자들에게 부를 집중시켜 낙수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레이건과 대처 시기에 이미 허위로 판명났으며,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데 이러한 복지 확대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복지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경제적 후퇴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더 경제적 활동이 활발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오늘날 전셰계 국가들 중 북유럽 5개국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와 독일을 비교적 성공적인 복지 국가로 언급하고 있는데요. 특히 유수한 세계 기업들을 보유한 스웨텐의 사례를 상당히 할애해 설명하고 있고, 독일 또한 ‘사회 경제학’의 오랜 전통과 독일 정당들의 이러한 사회 복지 개념에 대한 인식 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를 통해 제시되는 자료들은 꽤나 현실적이고 “GDP 4만 달러에 이르는 본격적인 선진국 진입을 위해선 복지 제도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주장 또한 이러한 논거를 강화하시키고 있습니다. 즉 이 GDP 4만 달러의 기준은 앞서 소개한 북유럽 국가들의 기준으로 삼은 듯 했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저자는 여기고 있는데요. 다만, 이들 북유럽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것이 복지 사회를 구성하는데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시아의 4마리 용들중 싱가포르가 CPF를 포함한 성공적 복지 제도를 수립한 것은 인구가 적은 것이 한몫 했겠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북유럽 국가들의 설명들 중에 부패가 거의 없다는 것이 복지 제도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판단해봅니다.

“문명 국가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복지 사회를 수립하고 공공재와 공공 서비스의 제공을 확대할 뿐, 결코 상업 보험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주장은 오늘날 미국과 일본, 영국의 무분별한 상업 보험에 대한 일침과 자본주의 시장이 주식 시장과 같은 투기성 제도에 기반해 제도 자체의 현실이 오로지 부유층의 배를 불러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보는데요. 미국이나 일본은 부유층에 의한 부의 집중이 날로 심각해졌으며, 중국은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를 보이는 국가로서 시민들의 생존에 대한 문제가 오로지 개인의 역할에 달려있어 우려할 만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개인주의가 일반적으로 큰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이론이 자유와 개인의 부를 박탈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특히 미국에 있어서 이런 복지 제도에 대한 저항이 유달리 거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미국인들의 인식에도 과거 양 루즈벨트 행정부가 정부 지출을 통한 사회 제도 정비와 국민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한 역사가 있는데, 이후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의 초대형 감세안 등에 힘입어 기본적으로 복지가 희생되어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국가의 정부들이 재정적 압박을 받을때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이 복지에 대한 비용들이며 또한 우선적으로 복지 비용에 대한 축소가 있어 왔습니다. 반대로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 만이 사회적 보장의 시민 사회와 정부의 공통된 인식에 의해 보호되어 왔고 그 국민적 합의라는 것은 소득에 있어서 적지 않은 직접세 부담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상이한 개념인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면, 자본주의가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많은 국가들에게 이행되었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일부 기득권과 엘리트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에 특별한 프로파간다로서 자유주의 시장과 자본주의적 확대에 자유주의가 이용되어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장 자유주의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많은 학자들과 일반인들에 의해 오독되어 왔다는 것은 조반니 아리기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가오롄쿠이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앤서니 기든스가 일찍이 사회학에서 ‘위험 사회 이론’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것처럼 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시민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소득 만으로는 생존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는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에 이르는 ‘고정적인 생활 유지비’가 물가와 같이 지속적으로 때로는 급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정부들이 외치는 실질적 소득 증대가 아닌 ‘생활 비용’에 입각한 소득 수준의 재정비를 저자는 옹호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종장에 언급되어 있는 ‘저생존원가형 사회’의 개념입니다. 저로서도 매우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이론입니다. 독창적이면서도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현재 세계적 경쟁이 총수요의 경쟁’을 띠고 있는 시점에 세계 경제가 지속적으로 확장과 경쟁의 상태에 놓여 왔습니다. 자유 시장의 가치에 논하기 앞서 다수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들의 헌법에서 밝히고 있는 시민 개개인의 기본권과 사회 보장권을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려하고 받아들여 건전한 민주 사회를 만드는데 복지를 등한시 하면 안될 것입니다. 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패와 빈부 격차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데 일차적인 원인이며, 이를 모두가 기본적으로 건강한 생존을 보장받는 사회 경제권 보장을 통해 해소할 수 있으며, 시민들이 자유 시장의 그늘에서 신음하지 않게 하는 긴밀한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복지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많은 부분을 저자가 할애하고 있는데요. 물론 이 뿐만 아니라 경제와 경제학의 아주 기본적이고 유용한 지식들을 같이 제공하고 있어서 저는 읽는 내내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한 복지 개념에 대한 원초적 거부를 갖고 있는 분들도 이 책을 일독하시면 일종의 인식 전환이 되실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많은 분들께 일독을 추천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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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찰스 리드비터 지음, 이순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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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 최고의 경영 석학이자, 프로앰(pro Am)의 등장을 알린 논문의 명성과 영국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인 데모스 Demos의 연구원으로 유명한 찰스 리드비터의 이 글은 오늘날 리눅스 사례와 위키백과 등으로 널리 알려진 집단 지성에 관해 풍부한 자료를 바탕과 가까운 미래의 예측까지 담고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저자는 유튜브에 이름을 널리 알린 한 한국인 기타리스트를 소개로 시작하고 있는데요. 전문 작곡가를 비롯한 연주자들과 전문적인 음반 회사의 쳬계적인 시스템상이 아니라 일종의 공개된 악보와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기타 연주가 어떻게 전세계인들에게 소개되어 이슈가 되었는지에 대한 관점을 집단지성의 흐름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개인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집단은 현명할 수 있다는 명제로 특히 지식 분야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위키백과를 예로 들며 모두가 참여하는 오픈 액세스적 환경에서 각자 저마다의 지식을 업로드하고 수정하고 완성하는 과정이 기존의 전문가들이 권위를 갖고 독접했던 지식 산업 체계에 일대 전환이 된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웹은 우리가 진실과 허구, 지식과 가설, 사실과 뜬소문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 프로페셔널, 각종 연구기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정보의 접근성이 뒤쳐지는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 오프라인 형태의 위키백과를 다운로드하여 교육 일선의 활용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일종의 우려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언급하며 앞으로의 집단지성의 발전이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임을 독자들에게 이와같이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리눅스 사례 역시 ‘공유된 지식’을 바탕으로 누구나 참여해 확장하고 개선시켜 완성시킴으로서 이러한 오픈 리눅스가 없었다면 리눅스를 기본 프로그램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글과 같은 기업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웹, 전자, 일반 경영, 과학, 교육 등에서 이러한 집단지성의 성공 여부는 다수의 유능한 기여자들을 협업 활동에 열중하게 만드는 것에 달려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고, 또한 현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집단지성의 확장은 민주주의 정치에 이론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지성에 참여하는 각각의 개인들이 끊임없는 사고와 성찰이 없이 특정한 그룹에 몰입하는 것은 군중심리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는데요

이미 앞서 간략히 소개해 드린대로 공유와 협업의 집단지성은 각 분야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어넣고 있고, 산업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자본주의 발전 시기의 포드로 설명되는 고도의 분업화와 자동화 수준의 결과는 아니며 집단지성의 참여와 확장으로 나타난 결과물들은 과학과 산업 전반의 혁신이 될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사례들을 저자는 언급하고 있는데요. 의료산업과 과학분야 개성있는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여러 게임회사들의 오픈 소스의 공유와 같은 오픈 액세스와 혐업과 유저들의 피드백과 같은 긍정적인 부분을 일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현실정치에 있어서 집단지성은 일부 안보전문가들은 “웹이 혼란과 위협, 무질서와 통제 이탈이 갈수록 심해지는 세계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데요. 물론 선진국들에 있어서 정당 정치가 갈수록 쇠퇴하고 있는 시점에서 웹에서 정치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개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반대에 있는 사람들과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공개적인 토론을 기피하는 것은 문제라 할 수 있을것입니다. 이러한 디지털이 무조건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거 운동과 중국의 웹 정치 토론,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봤을 때 정치 발전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 존재합니다. (찰스 리드비터는 본인의 의견으로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글에서 몇차례 언급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저자는 이러한 집단지성과 정치애 대한 파급효과에 대해 낙관론이나 회의론 중에 어느 한쪽의 의견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히고는 있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웹을 통해 좀 더 광범위한 이슈, 사상적인 측면에서 대화와 토론, 현실 정치의 참여 등과 같은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와 같은 변화들이 비교적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 듯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각 개인들의 의사가 면밀히 반영이 되지 않았던 환경의 폭력적인 시기의 군중심리 보다는 개인들의 사유와 성찰을 통한 민주주의적 발전의 본체인 정치적 토론들이 활발해 질 수 있는 기회는 분명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미 앞서 집단지성의 발전과 확장에서 공유와 협업의 정신이라는 큰 틀을 이해했기 때문에 정치 발전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군요.

일독하고 나서 문득 드는 생각은 정보와 지식의 접근이 과거와는 달리 일부 지식 전문가 그룹의 독점적 소유 형태에서 많은 개인들이 오픈된 형태의 참여와 공유로 이런 현상이 파격적으로 확장된다면 전통적인 지식 생산의 행위자들의 분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가공된 지식을 소비하는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고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집단지성이 체제에 올바른 결정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유권자로서 참여하여 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것보다 사유를 바탕으로 한 생산적인 토론과 개방적 참여, 의견 개진 등을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더 건전하게 만들 수 있는 큰 토대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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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탄생 - 21세기 군주론 : 권력과 그 사용법에 대한 도발적 주장
레슬리 겔브 지음, 원은주 옮김 / 지식갤러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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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소재의 중도 성향의 미국 외교 협회 회장(CFR) 인 레슬리 겔브의 이 책은 지난 2009년 Power Rules 를 번역해 국내에 출간한 것인데요. 국내 출판은 1년 뒤인 2010년에 이뤄졌습니다.

약간 이해하기 힘든 부제인 ‘21세기 군주론’ 이 드러나 있어 상당히 본래의 글의 의도를 왜곡하고 있는데요. 사회학에서 주로 다뤄지는 기본적 권력 이론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정치에서 미국이 발휘해 온 영향력 내지는 그 권력에 대한 분석이 주된 글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배경이 되는 시기는 약 1945년 경인 트루먼 행정부 시기부터 최근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까지이며, 미국의 대외 영향력과 여러 정치적 개입이 벌어진 결과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그에 따른 저자의 판단 등이 주를 이루며 논의를 뒷받침하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말하면 냉전시기의 미국 정치 외교사가 바탕이 된 당시 국제 정치에 대한 미국의 인식과 앞으로 미국이 나아가야 할 정치 외교적 방향이 되겠네요.

이에 저자는 이처럼 도입에서 권력에 대한 해석을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원치 않는 무언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더불어 저명한 민주주의 이론가인 로버트 달의 권력에 대한 정의 ‘A가 B로 하여금 B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하도록 만들 수 있을 정도로 B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것’ 이라는 것을 덧붙이며, 이를 바탕으로 냉전시기부터 여러 미국 행정부의 당시 국제 정치에 대한 개입과 권력 유지 차원의 정치 외교적 활동에 대해 설명합니다. 미국 독립 혁명 이후 해밀턴의 현실주의적 입장, 제퍼슨의 이상주의적 입장에서 분화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입장의 이론가들 정책기획자들, 각료, 학자, 싱크탱크 등으로 분석하고 있고 일련의 미국 정부의 국제정치적 개입에 대한 긍정과 한계를 독자들에게 밝히고 있는데요. 또한 쿠바 피그만 침공과 이란-콘트라 사건, 걸프전, 9.11 테러 등과 같은 사건들의 정치적 배경 또한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특히 이와 관련해 “보수주의자들은 보편적인 원칙보다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고 (레이먼주의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은 원칙 또한 강조) 설득보다는 압력을 강조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방법이 항상 옳은 방법이며, 미국의 적들은 틀리거나 사악하고 이성적으로 협상해봐야 극악무도하고 믿을 수 없는 놈들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라고 믿는다”며, 이와 달리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일목요연한 관점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대응으로 일관해 주도 게임에서 항상 밀려왔으며, 조지 W. 부시 행정부시 시기에 신보수주의자들의 지리멸렬한 입장이 이들에게 막연한 정치적 부전승을 갖다줬을 정도로 무력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오가는 정권 교체가 전체적으로 미국의 패권과 세계 정치에 있어서 발휘되는 영향력의 변화무쌍으로 나타났고 각각의 행정부 임기 기간에 각 정부가 지향하는 국제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성공과 실패가 오갔다고 봐야겠죠. 이러한 세계 권력의 구조를 피라미드로 구성해 제일 위에 미국이 그 다음에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브라질을 놓고 미국을 비롯한 이 9개국이 서로 협력이 가능하다면 대 테러 문제와 인종 폭력 및 여러 심각한 갈등 등을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UN의 상임이사국의 거부권과 핵보유국의 기득권 등으로 인한 본질적 문제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국제 정치에서의 외형적 구조속에서 앞으로 미국의 패권과 이익에 위협이 되는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이며 전자의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석유 등 자원 패권으로 미국의 이익에 반하게 되고, 후자의 중국의 경제적인 배타성과 남중국해의 영유권 시도 등이 문제가 될 것이라 시도하며 이를 위한 미국의 군사권력과 경제권력에 대한 여러 수단 등으로 그 영향력 대체에 대한 방안을 보여줍니다. 사실 여기에 인용된 사례들중에 리비아와 이란, 시리아, 북한 등의 현실 문제는 최신의 것이 아니어서 해석상의 한계가 있고, 븍한을 인도와 파키스탄과 같은 핵보유국으로 보는 등과 같은 논란이 제법 있습니다. 더군다나 “뉴델리가 미국의 원자로를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대가로 인도의 군부가 운영하는 핵시설을 국제 사찰에서 제외하기로 동의한 부시의 결정이 좋은 거래인지 나쁜 거래인지 확실히 평가 내릴 수 없다”는 표현은 미국 등이 주도하는 핵의 비확산 체제에 대한 근본적 부정으로 여겨지는데요. 어쩌면 이러한 접근이 오늘날의 비확산 체제를 우습게 만든 인도의 핵보유 인정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파키스탄에 산재해 있는 탈레반 잔존 세력과 파키스탄의 핵무기에 대한 유출 가능성에 대해 미국의 크나큰 위협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은 반대로 정확한 인식이라 여겨졌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미국 주도의 패권이 과거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언급한 “우리는 필수불가결한 국가다” 라는 것은 클리셰와 유사하지만 그것보다도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필수불가결한 관계”이며 어쩌면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길은 동맹들간의 협조와 연계가 우선되는 것이 아닌가 짚어봅니다. 동맹은 연루의 위험성이 존재하지만 오늘날의 국제 사회에서 국제기구와 같은 거버넌스와 함께 국제 레짐을 비웃는 러시아와 중국 등의 행위를 정상 범위 내로 끌어안기 위해서는 미국 스스로의 영향력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국가들과 밀접한 공감대를 만들어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끝으로 이 책의 미덕은 과거 미국의 행정부와 그 시기의 대통령들의 굵직한 행적을 요약해 찾아볼 수 있고 이들에 대한 꽤 객관적인 접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미국 정치에서 여러 이익집단들에 의한 금권 정치에 대한 우려를 인식하는 등의 간간히 보이는 정치적 통찰력도 엿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유익했습니다. 물론 몇가지 논란이 될만한 것들도 있으므로 그와 관련된 부분 또한 독자들의 지적 판단을 요구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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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죄 - 국가의 죄와 과거 청산에 관한 8개의 이야기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권상희 옮김 / 시공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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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내에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작가로 유명한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본디 독일에서 저명한 법학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훔볼트 대학과 뉴욕 에시바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의 객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저는 떠로 ‘책 읽어주는 남자’를 접해본 적은 없지만 특히 과거사 문제의 해법과 화해와 용서에 대해 나름 의미를 갖고 글을 써왔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전자의 소설과 지금 소개하는 이 책 또한 그런 의미적 관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약간의 철학적 담론으로까지 느껴지는 이 글은 크게 ‘독일 제3제국에 의한 역사 문제와 과거 청산 및 마찬가지로 독일 헌법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소급효금지 문제의 개정에 대한 문제, 동독과 서독의 통일 이후 동독 국가안보국의 과거 범죄에 대한 판단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도 과거 이스라엘에 방문했을 때, 자신의 조국에 의한 범죄에 피해를 본 유대인들을 생각하노라면 수치감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오늘날 통일된 독일이 번영을 누리는 가운데, 과연 과거 히틀러의 제3제국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 문제와 그와 관련된 제반 사항에 대해 소급효금지에 대한 개정과 그런 3제국에 부역했던 부모와 가족을 둔 후손들이 느끼는 여러 상황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1945년 베를린이 항복함으로써 전범재판과 더불어 연합국에 의한 과거 청산 작업이 있긴 했습니다. “일상적 죄개념을 근거로 한다면,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범죄에 포함했던 사람들 이외에도 저항하고 반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도 죄를 지은 사람과 동일시된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죄개념은 기독교 원죄설이 관철된 것이 아니라 로마법의 수용과 계몽주의 시대의 성장과 번성을 통해 발달된 것이라 저자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기원인 게르만 민족들이 그들의 여러 관습법을 통해 사회를 유지와 안정에 기여했듯이 어쩌면 오늘날 독일 사회가 합리적 이성을 토대로 두길 원한다면 이러한 과거 청산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그러한 수단에는 개인의 인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 행한 죄에 대한 단절’을 포함한 헌법의 ‘소급효금지’를 어떤식으로 개정해 과거 역사 문제를 단죄하기 위해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과 ‘법에 의한 과거 청산’ 이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지금도 일부 신나치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부모와 조상들이 저지른 유대인들에 의한 전쟁 범죄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과거 청산을 위해 독일 내에서 이러한 헌법 개정 논의와 같은 의견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이웃나라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의 양상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뿐만 아니라, 통일이 저자가 언급한 대로 ‘동독 엘리트들이 차지한 권력을 서독 엘리트들의 평화로운 교체’ 라고 단적으로 설명한 바대로 동독 시절의 여러 관련 법 증거들과 자료들에 대해 소각하거나 봉인하지 않고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거 동독 정권에 부역한 동독 국가보안국 관련자들과 철의 장막을 뚫고 자유진영으로 탈탈하는 수많은 동독인들에 총격을 가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과거 독일 3제국에 의한 범죄와 과거 동독의 주요 권력층에 있던 인물들에 의한 감금과 고문, 인권 유린에 대한 단죄에 대해서 저자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청산이란 없다. 과거에서 자유로워지는 현재의 질문과 감정을 가지고 의식 있게 사는 삶은 있다.”고 단언하며 단순히 과거의 문제과 법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차원의 부분도 함께 있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그러한 과거의 어두운 편린들까지 후세의 세대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점과 더불어 그것을 통해 독일인들이 한발자국 나아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통해 합리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려는 진실된 태도라 볼 수 있겠죠.

독일 사법부가 두 과거사 청산을 위한 노력에서 때로 소극적인 면을, 때로 적극적인 면을 보이기는 했으나, 원칙적으로 과거 범죄에 대한 책임, 반성, 청산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의 피해자들만이 용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명백한 것입니다. 어쩌면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 또한 독일이 시행착오를 통해 겪은 과거의 경험과 유사한 것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국가에 의한 범죄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 지에 대한 독일의 전체적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이러한 글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입니다만, 과거를 제대로 직시하고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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