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은 응답하라 - 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린 당신
톰 하트만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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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지은이인 톰 하트만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진보적 언론인으로 유명하며, 손꼽히는 라디오 진행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는 ‘깨어 있는 시민의 저극적 정치 참여‘ 부단히 촉구하는 일종의 모티베이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이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다는 짧은 문장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서 더욱 유명했지요.

글 전체를 아우르는 맥락은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크게 왜곡 시켜온 정치와 자본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의 체제적인 생생한 현실 비판이긴 합니다만, 미국 시민이 아닌 우리가 보기에도 상당히 고찰해 볼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굳이 민주주의 사회의 환경에 관한 논쟁거리가 아니라 우리 외부의 사회를 구성하는 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고찰해보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를 해석하고 마찬가지로 개선시키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대가 미국 사회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라면 좀 더 의미있겠죠.

소위 보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모순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완전무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레이건과 대처 시대 이후로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자유주의로 가치 확대되면서 이러한 해석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경향도 없잖아 있습니다. 정부의 힘을 재체로 축소시키고 한정시켜 개인의 욕망과 자유, 그리고 자유 경쟁을 통해 기업가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환경을 만들고 확대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이 미국적 가치라는 측면으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미국의 보수 정치가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을 해왔고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내에 많은 중산층들이 붕괴되면서 저자의 판단대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일종의 위기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끼쳐 온 이론가인 토마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소수의 엘리트가 대다수의 국민을 지배하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가치는 민주주의를 원치 않는 세력들에게 전달되어 중산층이 민주주의의 밑걸음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견고해지고 뿌리가 깊어지는 민주주의는 과거 루즈벨트 대통령이 ˝경제는 민주주의에 기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주장을 퇴색시키고 정치적 근간을 흔들면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러한 미국의 현실적 상황을 저자는 많은 사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쟁 특수를 목적으로 하는 군산복합체, 사회적 기반 시설에 대한 민영화를 주장하는 세력, 의료보험 제도의 무분별한 영리화로 인한 보장적 의료 시스템의 붕괴, 그리고 많은 기업가들의 정치적 권력과의 결탁 등 현재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일전에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중국의 민주주의화는 얼마나 많은 중산층이 확대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저자인 하트만도 미국의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기록적인 중산층 붕괴가 원인으로 보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글말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진보 세력이 더이상 정치 밖에서 허송 세월을 하지 말고 개개인이 연대를 통해 정치 개혁에 나서는 등의 실질적인 정치 행동에 나설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 사회의 중산층이 심각한 수준으로 붕괴한 시점에서 이러한 정치적 행동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하겠죠. 작년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중에는 합리적인 중산층의 감소와 이에 따른 정치 불신과 혐오가 팽배해 미국의 민주주의에 다소 맞지 않는 인물이 현재의 백악관 주인으로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네오콘의 득세가 오래 가지 않았고, 오바마 행정부를 거쳐 무분별한 민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재고가 확대되고 있어서 다행히 오바마 케어가 후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세계에 민주주의 국가의 귀감이 되어 왔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더이상 위기를 맞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아직도 많은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국가들이 미국의 민주주의적 동향에 예민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지속적인 민주주의적 발전이 이처럼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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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경제학 - F16은 세계를 어떻게 빈곤에 빠뜨리는가
비제이 메타 지음, 한상연 옮김 / 개마고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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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onomics of Killing 이라는 원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인도와 캐나다 등지에서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반전 평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적인 인지도의 비제이 메타입니다. 먼저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인 메타에 대해 잠시 검색을 해봤습니다. 여러 TV 프로그램의 영상과 꽤 많은 기사들이 나오더군요. 더불어 인권 운동에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행동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더군요.

일전에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임 대통령은 퇴임을 하면서 소위 군산복합체에 대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의 연설은 후에 많은 학자들로부터 대단한 선견지명의 변이라고 평가되어 왔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책의 큰 주제도 바로 군산복합체와 그 시스템과 영향력에 대한 것입니다.

일단 간단하게 글을 읽고 난 소감은 얼마전에 리뷰한 론 서스킨드의 ‘전쟁중독‘ 과 그 궤가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세계대전을 통해 태생한 군산복합체는 소위 전쟁을 먹고 산다는 표현처럼 미국의 엘리트 정치 권력에 많은 부분 편승해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유지하는데 많은 돈을 소비하며, 현재에는 노엄 촘스키의 표현대로 ‘미국은 거대한 군산복합체 국가‘ 라고 해석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즉, 저자가 이런 자신의 주장을 뒷바침하기 위해 설명하는 것은 대략 이렇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본질적으로 석유를 좀 더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으며, 원유와 산업에 핵심적인 천연자원에 대한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를 비롯해 중동, 남아마메리카 등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한 정치권력을 지원하고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제어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선출된 정부를 작전으로 전복시키려는 행태가 수없이 있어왔는데, 이것은 궁극적으로 군산복합체의 내포된 힘의 지향의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몇 곳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여겨질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2009년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중국의 군산복합체가 직접적으로 겨룬 결과로 여기는 듯 했고, 미국이 무역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대만과 일본, 한국, 사우디에 무기를 팔듯이 중국이 미국과의 막대한 무역 흑자를 투자할만한 것을 제공받았다면 부동산 붕괴로 인한 당시의 금융 위기는 어쩌면 대응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더군요.

중국은 전방위적인 불법 해킹을 통해 미국의 첨단 기술과 군사 기술에 대한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꼭 미국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중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을 사냥한다던가 이를 통해 국방의 현대화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 중국은 자체로 거대한 군산 복합의 형태로 해석하는 듯 합니다. 화웨이의 예를 통해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메타는 전쟁과 자원 확보를 통한 이런 비도덕적인 침탈은 아프리카의 권위주의적 정부와 중동의 가혹한 인권 탄압 정권을 입맛에 맞게 지원하는 미국과 서구 유럽에 대해 매우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정치가들의 배만 불리는 이런 행태에 해당 국민들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패턴은 2등 국민 취급하는 각국의 소수 민족들의 인권을 도외시하게 되는 결과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원과 관련된 문제로 내전을 겪고 있는 상당수의 국가들이 이에 해당하는 거겠죠.

이렇듯 한쪽의 가난과 한쪽의 부유함은 동시대의 모습입니다만, 이러한 현실적 차원의 괴리는 더욱더 고착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심하게 표현한다면 국제적인 군사 산업 권력이 뒤에서 세계 무대를 조정하고 있는 듯한 현실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에 정보를 접하지 않는 분들은 꽤 흥미로운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의 이론적 국제 정치학을 한편의 첩보물 같이 글을 이끌어 나간 것은 나름 장점이라고 여겨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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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원전을 폐기해야 하는가 - 지구 곳곳이 후쿠시마다
게르트 로젠크란츠 지음, 박진희.정계화 옮김 / 시금치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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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2004년까지 전세계적으로 뮤명한 독일의 유력지 슈피겔에서 편집장을 지내고 현재는 베를린의 독일 환경단체에서 정치와 언론 부서를 이끌고 있는 게르트 로젠크란츠는 해외에도 유명한 반원전주의자 입니다. 자신의 개인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원전에 대한 가감이 없는 현실적 정보를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는데요. 세계의 여러 언론들로부터 인용과 인터뷰 제의를 받는 유명인사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크게 여덟 부분에서 전세계가 시급히 원전을 중지해야만 하는 지상 명제에 대한 대체로 현실적인 이유들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전에 이 곳을 통해 리뷰한 헬렌 칼디코트의 ‘원자력은 아니다‘와 다소 중복되는 부분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이러한 점을 비판하려고 두 책의 비슷한 부분을 언급한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여기에서도 일관되고 동일한 반대 이유가 있다고 설명 드리기 위해 첨언을 했습니다.

로젠크란츠의 책을 통해서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전세계 국가 내의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단체들이 미국의 방위산업체와 맞먹는 위상과 권력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의 원전 이익 단체가 정부에 생태에너지로 설명되는 친환경 발전 에너지에 대한 확대 의도에 로비와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확실히 이 원전과 관련된 이권이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더욱이 원전 가동과 관련해서는 여러 환경단체와 시민단체의 면밀한 감시와 여론 환기가 원전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실례를 독일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것에 대해 원전론자들과 원전과 관련된 이익 단체들은 이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 원전 건설 비용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발전소를 짓는 원전회사에 일임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원전을 짓는 회사가 제출하는 비용을 해당 정부나 당국이 전부 수용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항인 것 같습니다.

그외에도 원전 발전을 하고 있는 모든 국가들 중에 폐기물 처리장을 짓거나 설치하고 있는 국가는 오로지 핀란드 1개국 밖에 없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대다수의 민주주의 체제에 있는 국가들의 시스템 하에 여론이 비등하게 되면 사전 조사마저도 하기 힘든 상황을 꺼내며 그만큼 원자력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을 대변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부합하는 사실입니다만, 문제는 폐기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각국의 상황이 심각해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죠. 그리고 전세계에 가동되고 있는 원자로들 중 4분의 3이 체르노빌 사태의 그 원자로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들이라고 하니 이 부분도 경악할 만합니다. 사실 1960~70년대에 지어진 원전의 원자로가 지금의 시대에서 최신의 것이자 안전한 것으로 주장하기에는 미흡한 것이겠죠. 설사 원전 회사들과 원전론자들이 말하는대로 그동안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원자로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시스템들을 개선시키고 안전화에 박차를 가했다는 홍보성 발언들이 전부 믿겨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4세대 원자로도 그 안전성이 아직 입증되지도 않았고, 최신이라 일컫는 3세대도 확실한 안전을 답보할 수 없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세계의 4분의 3이나 되는 원자로들이 최신의 것과는 거리가 멀어 많은 사람들이 안전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입증하는 데 원전론자들과 원전 회사들이 노력을 해야겠죠. 그런 홍보성 이벤트를 제외하고 말이죠.

짤막하게 우리나라와 관련된 우려 사항은 지금 현재 중국 서해안에 건설되고 있는 20기의 원전들입니다. 중국 정부는 건설 기한을 6년으로 잡고 있다고 하는데요. 통상은 8년 정도라고 합니다. 과거에 2001년 9.11 테러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원전 시설에 대한 항공기 충돌을 감행하려고 했는데 타격하려는 원전 주위에 미국의 미사일 등 방어 시설에 자신들이 타고 있는 항공기들이 격추당할까봐 그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이처럼 전세계에 원전들은 언제나 테러 단체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데요. 우리 나라도 원전 주위에 대공 미사일 같은 방어망이 구축되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끝으로 원자로에 들어갈 원료용 우라늄의 고갈 문제도 큰 우려가 되고 있습니다. 농축 상태가 빈약한 우라늄 광석을 아주 대량으로 채굴해야 될 판인데 그것으로 인한 환경 오염과 비용 상승 등 시간이 가면 갈수록 원전의 주변 여건이 안 좋아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기장 하나 갖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전을 확대하고 원자로 구동을 연장하고 하는 것들이 과연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는 환경에 도움이 될런지는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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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갈등을 만들고 갈등은 사회를 만든다 - 한국사회의 갈등 지형과 연대적 공존의 모색
박길성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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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논쟁적인 제목이 인상적인 이 글의 저자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동 대학 인문대학 부총장으로 역임하고 있는 박길성 교수입니다. 박교수의 이름은 여러 책들의 인용이나 언급을 통해서 알고 있었는데요. 학계에서는 유명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 250페이지 분량의 글을 다 읽고 드는 느낌은 문제제기는 명확했으나 글을 풀어나가는 전개과정과 해결책의 방법 및 수단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론에서 보여지는 한국 사회의 갈등 요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탁월하다 느껴지지만, 좀 더 글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대학의 역할론을 꺼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이 ‘이념적 갈등‘에 대해 해결책 제시는 미흡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저자도 글에서 언급하듯이 1950년 전쟁과 그로인한 분단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 뿌리깊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권위주의적 정치권력과 융합해 87년 민주화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 오랫동안 ‘물리적인 권력‘으로 자리해 왔습니다. 더 문제는 이런 민주화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일부 보수라고 지칭하는 정치 세력들이 자신들의 주의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조그만 비판을 하려는 시도에 대해 이념적 비난을 전개하는 것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즉, 건전한 정치권의 기본적인 토론 문화를 봉쇄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등 그 폐해가 적지 않다고 봐야합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체험하는 갈등 중에 이념적 갈등은 큰 비중이 크지 않으며 실제적으로는 경제적 갈등이 더 큰 문제여서 그 부분에 대한 제기를 더 할애한 것으로 보여지긴 합니다.

그리고 97년 체제에 대한 분석은 소위 97년 체제로 해석되는 힌국사회에서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화의 시작, 좀 더 현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평생직장‘과 ‘고용안정‘ 붕괴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이 부분은 나무랄데 없는 저자의 해석적 분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민주화 이후 전통적인 한국의 권위가 무너졌고, 이것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권위가 한국 사회에 필요하며 이것의 결핍으로 인해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고소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의 권위 붕괴가 높은 고소율로 이르렀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러한 법으로 개인들간의 갈등 요소를 해결하려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강도높은 개인 불신 시대로 들어서서 법의 판단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 사회에서 점진적으로 인정받는 그 권위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서 설명한 법에 기대어 개인들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을 대체할 만큼 실효적이고 검증된 권위가 과연 자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저는 매우 회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글의 도입부에서 나온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계급‘을 배타의 대상이 아니라 매력적인 담론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문장에 이 책은 뭔가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사실상 공정과 평등이 무너진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언급은 무리한 전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매력적인 담론에 대한 의미있고 창의적인 논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학계나 이론을 통해 많이 언급된 내용들이 주축이었고 당연히 그리 해야만 하는 원론적인 내용들에 대한 내용은 마땅히 우리 사회가 다시금 생각해 볼만한 부분임은 부정할 수는 없겠죠.

지난날 압축 성장 경제로 인한 드러나지 않은 폐해들이 이제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은 엄연한 현실화입니다. 저자의 언급대로 정치는 균열을 먹고 산다면 이제 우리는 균열을 먹고 사는 정치에 대해 더이상 끝없는 먹이를 주지 말고 즉,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자세를 모두가 가벼이 여기지 말고 우리 정치에 해가 될 수 있는 요인들을 개선시키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각자 개개인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적 성찰과 사고관을 바탕으로 각종 갈등을 먹이 삼으며 연명하는 일부 언론과 정치 세력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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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전환점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필립 M. H. 벨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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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글은 세계적으로 많은 책으로 출판되어 왔습니다. 저도 이 주제에 관한 명저라 알려진 존 키건, 앤터니 비버, 테일러의 책 등을 읽어 봤는데요. 한동안 관심 밖에 두고 있다가 리버풀 대학의 명예 교수인 필립 M. H. 벨의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욱이 학부시절부터 좋아했던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글이라 반가운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세계 대전을 통해 깨닫게 된 교훈이 있는데요. 그것은 비대칭 동맹 관계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상대는 언제든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예는 폴란드가 되겠죠. 당시 폴란드는 프랑스와 영국의 동맹국이었는데, 히틀러가 말도 안되는 구실을 붙여 국경을 넘어 침공했을때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곧 참전할 것이다. 폴란드 국민은 안심하라는 기만의 성명을 발표하는데, 이에 관련한 장면은 영화 ‘피아니스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차 대전은 크게 보면 개전 초기 적극적인 독일 육운의 공세로 서유럽 대부분을 석권했던 시기 이후, 영국 본토를 향한 독일군의 공세, 이후 히틀러의 큰 패착, ‘바르바로사 작전‘ 이라 일컫는 대 소련 진공입니다. 이 소련 진공에 대해 영국의 몽고메리 원수는 ˝내 생각으로는 전쟁의 기본 규칙 가운데 하나는 ‘모스크바‘로 진격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표현에 히틀러의 이 무모한 시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카프카스 유전지대와 스탈린그라드 방면의 두 군데 공세에서 승리를 열망한 히틀러의 무책임한 욕망은 연합군에 의해 경제적 봉쇄하에 루마니아의 석유만으로는 확대된 전쟁 유지에 부족함을 깨닫고 소련의 자원을 획득하려는 이러한 거대한 계획이 결국 독일을 결정적으로 패착에 이르게 만듭니다. 물론 제가 나치 독일의 실패를 아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괴상한 일당 독재국가와 사회주의의 폭력적 일당 독재 국가가 맞붙어 싸운 이 의미가 세계사적으로는 참으로 복잡한 의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일본의 진주만 침공, 대서양에서의 독일 해군의 U-보트 작전이 초래하게 된 미국의 참전은 궁극적으로 전쟁의 양상을 뒤바꿔 놓았고, 독일과 일본의 산업력을 합친 것보다 월등했던 미국의 참전은 연합국의 승리를 견인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런 정치적 상황 설명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요. 루스벨트와 처칠의 유대와 이 둘을 향한 스탈린의 전략적 태도 등을 보다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결국 독일의 항복과 일본의 종전 항복에 이르게 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탄 투하는 정치 도덕적으로 여러 논란을 낳게 되지만, 전쟁 상태에서 도덕적 논의를 하는 것은 다소 비합리하다는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며, 일본 군부가 오키나와와 이소 방면에서 민간인들을 방패로 몰아 30만에서 80만에 인명을 사지로 몬 것은 이 악의 제국을 세계에서 패퇴시키기 위해서는 더한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미국의 선택의 문제였을 겁니다. 다만 일본의 일왕에 대한 관대한 처분과 다소 약한 전범들의 처벌 문제 등은 후에 문제로 남아 지금의 부적절한 일본을 낳게한 불행한 요인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2차대전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읽었던 A. J. P. 테일러의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만큼 정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서술이 있어서 다시금 확인해 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습니다. 테일러의 글은 굴욕적인 협정을 맺게 되는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있어서 전쟁 상황에서의 묘사 만큼이나 당시의 연합국과 주축국 내부의 정치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파악하게 해주는 서술은 읽는 독자들이 2차 대전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벨의 이 글도 좋은 작품이라 봐야 하겠죠. 300페이지가 약간 넘는 분량이지만 번역도 나쁘지 않고 문장이 수월하게 읽히는 점은 또 다른 장점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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