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과 중국을 움직이는 브레인
샹장위 지음, 박영인 옮김, 지해범 감수 / 린(LINN)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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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미국과 유럽의 ‘중국위협론‘에 대한 글들을 접하면서 문득 시진핑 주석에 대한 좀 더 깊은 독해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마땅한 글을 물색하던 중에 중국의 제법 유명한 언론인인 샹장위가 쓴 이 책을 먼저 잡게 되었네요.

아시다시피 시진팡 주석에 대한 글은 많이 출판이 되었는데요. 저는 그의 개인사적 측면 뿐만 아니라 중국 내부의 정치 문제에 관한 다각적인 부분에서 따로 나뉘지 않은 시진핑의 개인사와 그의 정치 이력 및 그에 바탕을 둔 전체적인 중국 정치의 분석을 다룬 글을 찾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샹장위의 이 책은 제 마음에 들었는데요. 전체 분량은 480페이지가 넘지만 번역도 나름 잘 되어 있어서 정말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의 다음 주자로 확정되어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부의 정점에 오른 시진핑의 그러한 승계 과정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전략적 거래로 이뤄진 일종의 합의적 성격이 컸습니다. 후진타오는 리커창을 그 자리에 올리고 싶었지만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내포할 문제를 수면 아래로 정리하기 위해 이 노회한 두 과거 정치가들이 합의를 했다고 봐야겠죠. 물론 시진핑 개인이 아버지 시중쉰의 후광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의 시련과 시험을 잘 견뎌내어 현재의 외유내강의 정치적 자산을 바탕으로 중국 공산당과 고위층의 인사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 이러한 성공의 요인일 것입니다.

그러한 시진핑의 중국과 관련해 저자인 샹장위는 중국 내부의 빈부격차, 도농격차, 지도층의 부패 문제는 매우 심각해서 중국의 당국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경제발전에 올인해 왔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부 분위기의 독기를 빼내기 위해 민족주의적 발현을 당국이 조장하며 미국과 일본과의 산발적 분쟁을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내부 갈등이 중국의 정치 안정에 크나큰 장애로 대두될 것임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중국 사회는 이미 갈가리 찢어졌다.‘ 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시진핑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그가 앞으로 민족주의 노선을 걸을이 아니면 세계 모든 민족을 평등하게 대하는 보편주의적 가치관을 내새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논의한 시진핑과 중국 군부의 관계 뿐만 아니라 당과 군의 이해 관계들을 놓고 봤을 때 간혹 군부와 당의 강경파의 목소리에 중국의 노선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지난 2009년 시진핑은 멕시코에서 화교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혁명을 수출하지도 않고 기아와 가난을 수출하지도 않으며 국제 사회를 괴롭히지도 않는데 배부른 소수의 외국인들이 중국 내부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문제라고 발언하자 중국과 해외에서 큰 반응이 일어 났습니다. 이제 세계는 경제 성장과 인권이 반비례하는 소위 베이징 모델이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발전에 저해 요인이라고 평가하며 한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중국의 인권 문제에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더불어 세계2위의 경제를 바탕으로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과 군사력 투사를 거리낌없이 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이 어떤 식의 노선을 걸을지 주의깊게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중국과의 대외 관계에서는 대만이 포함된 양안관계에서 과연 미국이 중국의 강제적 무력 통일 기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문제와 센카쿠/댜오위다오에서의 중일간 충돌 가능성이 이 지역 뿐만 아니라 전세계 평화와 관련하여 주시해야 될 부분으로 남았습니다. 과거 재차 중국은 평화로운 부상을 원한다고 했던 시진핑의 호언장담이 중국 내부의 문제와 군내의 강경파들을 관리하는 과정에 달려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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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의 정치경제 (반양장) - 네트워크 사회를 움직이는 힘
조화순 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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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대중의 집단지성에 대해 약간의 의문과 궁금증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에 대해 뭔가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련의 학자들의 공동 연구인 이 글에 약간의 흥분된 기분으로 천천히 일독을 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며, 모든 사람이 어떤 한 가지는 알고 있다˝는 문구는 요즘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상에 서 크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위키 백과 류의 공개되고 비차별적이고 실시간 피드백이 이뤄지는 정보 바다에 대한 아주 적합한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과거의 지식의 생산과 공유가 대학을 비롯한 소위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이뤄졌다면 요즘의 지식 정보의 생산 및 소비 체계는 손쉽고 이해하기 쉬운 방법의 이러한 온라인 상의 가벼운 지식들이 어느새 무시못할 주류가 되었죠.

일개 개인의 지식이나 지성 수준을 뛰어넘어 이처럼 만인이 모여서 지식을 모아 데이터화 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평가나 어떤 예측을 하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인류의 지식의 역사에서 그것을 창출하고 생산하는 주체는 거의 공인된 학자들과 전문가들 계층 내지는 소수의 독점 지식 계층이었죠. 이제 인터넷이 만들어 놓은 숨가쁜 변화에 패러다임이 완전 바뀌어 차별적이고 비접근적인 지식들의 시대에서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접하는 가벼운 지식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봐야겠죠.

여기에 모인 저자들의 의견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보는 듯 했습니다. 기업 문화 마저도 과거의 폐쇄된 연구 개발 및 독점적 연구 지식의 추구였다면 이제는 오픈 소스와 같은 체계에서 바깥 범주에 있는 사람들에게세 아이디어를 제공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품과 컨텐츠를 생산하는 획기적 시기입니다. 획기적이라는 것은 이제 좀 더 나은 기업 발전과 생산력 개선을 위해 여기저기의 기발한 생각들을 차용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겠죠. 여기에 제기된 글들도 이러한 변화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창의적인 측면에서 편협하지 않은 환경에의 추구는 바람직할 만합니다. 많은 기업들에서 조차 궁극적인 가치 목표는 반대급부의 재화가 아니라 창의력을 확장할 수 있는 그러한 가치 확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요. 바로 이러한 것들의 근본에는 집단 지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는 이런 집단 지성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밝히고 싶은데요. 기존의 상아탑이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소수 계층에서 생산했던 지식들이 현재 도래하고 있는 집단 지성 시대에서도 충분히 그 전문성을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의 저자들도 주장했듯이 인문과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그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권위적인 측면에서 반대에 있는 집단 지성의 존재를 인정하기란 그들에게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교학이라든지 법학이라든지 전문적인 지식의 생산이 인간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에 이것들을 완전히 도태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집단 지성의 시대에는 우려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특히 세계 2차대전 당시에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비롯되는 전체주의의 파도의 바탕에는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대중들과 그 사고방식이 히틀러나 무솔리니 만큼 유럽에 해악을 끼친 점입니다. 오도된 대중은 다른 죄없는 사람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희생시키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이루는 개개인들이 진지하고 명확한 자기 성찰이 없이는 앞으로 집단 지성의 시대에 어두운 면을 막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일종의 선택적 노출과 비슷한 부분일텐데요. 우리가 원하는대로 믿어 의심치 않는 일데 반대하는 사람들을 눈에 거슬리고 불쾌하게 느끼기 마련인데, 이것을 더 확장시켜 누군가가 이러한 범주를 재설정하고 그 범주의 바깥에 있는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 집단내의 구성원을 집결시킨 경우, 집단 지성은 반지성으로 돌별한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자체적인 정화 수단이 전무하다면 이렇게 권력화한 집단 지성은 반지성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시민들이 바탕이 된 집단 지성은 한 국가의 민주주의 건실한 발전에 이바지 할 가능성은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떠한 국가 권력이라도 그것을 주제로 삼고 토론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시대에는 오도된 권력을 견제하고 책임을 묻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한국인들을 그러한 경험을 이미 해보지 않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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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의 희생양 - 테러와의 전쟁에서 증오범죄와 국가범죄 카이로스총서 22
마이클 웰치 지음, 박진우 옮김 / 갈무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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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마이클 웰치는 비판범죄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과거 런던대학 경제학부의 인권 연구소 연구 교수를 역임한 미국내에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형사법연구 교정법 연구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미 행정부와 테러리즘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받아들이고 해석한 테러리즘에 대한 연구로 보입니다. 이 책도 이 점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고, 그동안 미국의 건전한 토양이었던 시민권과 시민의식 등 발전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차별적인 테러리즘을 방비하겠다는 명목으로 제한되고 희생된 상태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세가 미국의 현재를 살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응당 해야되는 부분이겠죠.

2001년 9월 11일 뉴욕에 자행된 테러로 인해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는 탈레반이 알 카에다와 면밀히 협력했다는 이유와 이라크에는 생화확 무기와 핵무기 개발 의혹을 잣대 삼아 전면적인 개입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에서야 이라크에 대한 주장은 대부분 허위로 드러났지만 부시 대통령과 그의 내각의 목표는 이라크의 석유와 중동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한 목적임이 드러났습니다. 부시 개인의 종교적이고 직관적인 태도에 이라크를 악으로 규정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성스럽고 의미심장한 미국의 성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속내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짐작할 만한 어두운 측면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저자인 웰치도 저와 같은 측면에서 이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몇 가지로 함축할 수 있는데요. 즉, 테러 직후 합법적인 미국 시민권자들이면서 중동 출신, 남아시아 출신의 (주로) 남성들에 대한 폭력행위와 이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 특히 법무부와 그 장관인 애쉬크로포트가 수행한 전반적이고 무제한적인 이들에 대한 구금 및 억류 작전이 있습니다. 8만 2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미국 법무부의 적법한 기준 없이 무차별적으로 인신 구속되어 벌어진 행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상 공포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거의 무제한에 가깝습니다. 특히나 정치권의 행위는 이러한 국가 비상 사태에 중동인들과 종교는 엄연히 다르지만 서남아시아인들까지 포함한 결과였습니다. 바로 인도인이 중동인으로 오인받아 다른 시민에게 공격당한 것은 정말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울리히 벡이 언급한대로 현대 사회가 그 구조로서 다층적으로 복잡해질수록 그만큼 사회는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개인들에게는 위험해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정치는 그것을 개선하고 조정하는데 노력해야하지만 당시 미국의 정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조장했지요.

그런 분위기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반인륜적인 포로 고문 사태에 대해서 많은 사례를 언급하며 웰치는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설로 알려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관타나모 수용소를 비롯한 해당 포로들에 대한 고문을 행정 명령으로서 용인했다는 점은 지금도 그 수많은 고문들과 관련된 보고서나 정보가 아직도 은폐되어 있다는 것에서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되더군요. 특히 제네바 협약내에 ‘고문행위금지에 대한 유엔 협약은 죄수들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것은 범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는데 웰치는 이에 대해 더 나아가 미국이 제네바 협정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이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한게 아닌지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세계 자유 민주주의의 큰형이라 불리우는 미국이 그런 상태의 파탄까지 이르렀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포로에 대한 고문이 어떤식으로든 정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해서 차기 행정부였던 오바마 행정부가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미국내 환경 변화로 애국자법으로 인한 미국 연방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자유, 특히 발언과 집회의 자유가 이러한 시기에도 위축될 수 없음에도 지금까지 미국 내 상황을 견지해봐도 시민권에 대한 헌법의 보장이 아직도 위축된 상황인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 정보당국이 미국 시민들에 관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자시들의 능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심지어 도서관 이용자들의 도서 대출 내역까지 손에 넣으려는 시도까지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엄혹한 미소 냉전을 치루면서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자유진영은 소련의 무차별적이고 폭압적인 개인에 대한 폭력을 목도하고 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른바 정치범 수용소라든지 KGB에 의한 은폐된 행위에 대해서 말입니다. 물론 지금은 이념이 아닌 종교적 폭력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희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가 안보에 몰빵해 자국의 시민들을 헌법과 자연권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를 제한해도 된다는 막장에 이르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악의 숨결이 얼굴앞에 이른다 하더라도 이성과 인간성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여기에 언급된 많은 가해자들의 실명과 피해자들의 실명을 몇 번이고 입으로 불러보면서 이런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해 가슴 깊이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대중은 너무나 연약하고 이렇게 세뇌되기 쉬운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위선의 탈을 쓴 정부를 견제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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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호랑이 - 중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가
피터 나바로 지음, 이은경 옮김 / 레디셋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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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저자인 피터 나바로는 무역정책 자문기구 국가무역위원회 NTC의 초대 위원장으로 미국의 무역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전공자답게 이러한 국제 정치적 주제를 관련 전공자나 연구자들과는 달리 알기 쉽게 주장하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미중전쟁은 일어날 것인가‘ 라는 탐구 주제를 놓고 자신과 독자들과의 현명한 해답찾기에 나서는 일종의 게임같은 설정으로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이러한 평가는 책의 앞머리에 미 코넬대 출신의 중국 전문가인 고든 창이 ‘지정학 추리 소설‘을 썼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연유라고 생각하고 싶군요.

물론 나바로의 이 책은 허구나 상상이 섞인 소설은 아닙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전쟁으로 치달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이 어쩌면 불행한 가정에 있기 때문일겁니다.
일독을 하고 보니 근래 미중 관계에 관해 출간된 여느 글들보다 저와 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쉬운 논거와 주장을 바탕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소주제별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잠시 생각해볼 질문들을 던지는 것은 기발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번역 또한 딱히 나무랄데가 없더군요. 미국에서는 2015년에 출판된 것으로 나오는데요. 미국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와 있더군요. 그만큼 미중을 둘러싼 국제 정치적 요소들이 최신의 정보와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저자인 나바로의 노력이라 하겠습니다.

제일 처음을 장식한 의미심장한 주제는 ‘투디키데스의 딜레마‘ 입니다. 요약하면 부상하는 패권국과 기존의 패권국이 충돌을 일으킨다는 내용인데요. 이것과 관련해 민주주의 국가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과 더불어 중국은 독재 상태의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필연적이라는 주장을 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꽤 많은 글에서 이런 논점을 찾아보실 수 있을겁니다.

중국은 소위 말라카 해협에 거의 대부분의 해상 물동량이 집중되어 있어 이곳을 봉쇄당한다면 국내 경제는 물론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 명약관화해 그런 상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해군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 항공모함 대함 미사일 개발이나 랴오닝 함과 같은 항공모함 취역에 온 국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지난 1994년 필리핀으로부터 탈취한 남사군도 지역의 미스치프 암초 사건에도 기만과 역정보를 동원해 점유했고, 센카쿠/댜오위다오 지역의 영유권 주장과 그로인한 몇가지 사건, 이를테면 일본측에서 불법 조업중이라던 중국인 선장 억류와 관련된 일본측의 굴욕적인 외교 실패와 베트남과의 해양영토와 관련된 분쟁, 인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악 사이친과 아루나찰프라데시 지역의 갈등 등 근래 중국이 벌인 주변국과 관련된 심각한 영토 분쟁에 대해 언급하며 이러한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인 중국의 행태가 주변국들에게 매우 우려를 안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연구원인 보니 글레이저는 ‘중국이 다른 나라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국가가 중국과 중국의 행동을 어떻게 볼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중국의 국제 행위에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자국의 이익이라고 불리우는 것에 아주 강압적이고 비타협적인 노선을 보이는 것 말입니다.

이런 중국의 행동이 전략적인 것인지 아니면 국력의 배타적 투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시간이 계속 될수록 미국에게는 더이상 지금의 아시아 태평영 지역에 대한 영향력에 대한 중국의 침탈과 간섭을 불러올 것이고 이러한 측면에서 두 강대국은 어쩌면 원치 않은 충돌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대만과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내의 동맹국들에 의한 연루의 문제도 상당하고 두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경제적 상호보완이 무조건 전쟁을 예방해주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가능성과 미국이 택할 선택은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베이징이나 평양이 핵으로 서울과 도쿄를 위협했을 때 미국은 로스엔젤레스를 버리며 이 양 동맹국에 대한 핵우산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그러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특히 일본은 중국의 세력권에 편입하거나 독자적인 핵무장에 나서거나 할텐데 양자 모두 미국을 포함해 주변에 불행한 결과만을 안길 것입니다. 비대칭 동맹 관계인 이런 한국과 일본의 안보를 책임져야하는 연루의 딜레마에 미국이 자신들 내부의 고립주의적 주장에 굴복하여 동맹을 파기하는 결과로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앞서 소개한 고든 창이 말한대로 미국의 안보 최전선은 하와이나 알래스카가 아니라 서울과 도쿄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간혹 주변의 지인들에게 대화 도중에 가끔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요. 그것은 한국과 일본, 괌 등지에서 군사력을 철수 시키면 과연 중국은 어떻게 나올것인가. 중국은 어떤 식으로 이 지역에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가정은 그 결과가 매우 부정적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도 이 점을 언급하며 실제로 미군이 철수해봐야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알겠으나 그러한 결과를 직접 겪어봐야 알 정도로 중국이라는 국가의 행위는 계산할 수 없는 불예측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미중간의 이러한 전략적 불신관계‘는 해소하기 힘든 부분이며, 중국과 러시아가 소리높여 미군의 아시아에 대한 군사 주둔에 비난해왔지만 이들이 보기에 역설적이게도 한국과 싱가포르, 일본, 대만은 30년이 넘도록 번영을 누려왔습니다. 물론 역대 미국 행정부가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고 칠레의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고, 그라나다 침공 및 최근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도 느낀 바지만 아직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에 대한 영향력이 쇠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중 사이에 대결과 충돌은 더욱더 발생해선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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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 차이나 -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와 대담한 선언
쑹샤오쥔 외 지음, 김태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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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발 세계금융위기 이후 앞으로 중국이 가야 될 정치 경제학적 방향에 관해 쓴 글인 이 책은 2007년 이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에 관한 꽤 도발적인 글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다분히 중국 국내의 민족주의적 시선을 염두해 두고 쓴 글이라 판단될 정도로 주장도 그렇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거 또한 꽤 공격적입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참고로 읽어야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현재의 중국인들은 자신의 역사를 아편전쟁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판단하는 듯 합니다. 저의 적당한 의문을 섞어 추측하는 표현으로 조심히 썼지만 많은 중국 관련 학자나 전문가들이 아편전쟁 후의 서구 열강이 침탈한 중국 역사를 매우 굴욕적이라고 여긴다고 평가합니다. 사실 아편 전쟁 전의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내지는 중화는 비록 주변국들을 억압하지 않고 군림하는 형태로 조공국의 이데올로기적 시스템이었지만, 현재에도 이러한 과거 역사를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에게는 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통해 자신들의 국가 지위와 그것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 싶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현재의 국제적 시스템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 중국이 2차대전 이후 미국과 서구 유럽이 일방적으로 만든 체제라고 해석하며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죠.

바로 그러한 중국 지식인들의 볼멘소리가 여기에 실려 있습니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세계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되었다고 판단하며 이제 중국이 지도적인 위치에 서서 국제사회에 할말을 해야한다는 취지의 입장과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1959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나고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부가 UN에 가입하고 나서 그동안의 중국 정부의 국제 정책적 기조는 소련 정부와 의견을 같이해 미국과 서구 유럽의 대항하여 전략적 반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꺼낸 이유는 그 당시에도 제3세계에의 지도국의 위치를 자처하며 미소 냉전의 사이에서 그러한 국제 사회에 고유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음에도 소극적으로 나선 것은 당시 중국 정부의 선택이었습니다. 안보리 거부권을 잘 사용해 미국과 유럽의 정책을 무산 시킨것이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정치 행위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이죠.

현재까지도 중국 정부는 암암리에 내부의 민족주의적 주장을 묵인하고 있으며 그것의 실제 증거는 일본과의 관련된 사소한 갈등에서 아주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의 역사 해석 문제는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만 특히 중국 정치권의 이런 민족주의적 카드 선택은 주변국에게 우려할만한 시선을 주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외에 남중국해의 영유권 갈등, 댜오위다오/센카쿠 문제 등 다소간 민족적 속내를 건드리는 문제에 있어서 비정상적으로 대응하는 중국인들의 언동과 행위는 정말 우려될 정도입니다.

어차피 중국이라는 국가가 일당독재 하의 일사 분란한 국가 체제로 돌아가고 있기에 중국인들이 이러한 중국 정부의 묵인 없이 국제 갈등을 일으킬 만한 행동을 일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겠죠. 대충 그림은 그렇게 그려집니다. 이제 앞으로 중국의 경제 발전이 조금이라도 더디게 된다면 중국 정치권은 이러한 민족주의적 발현을 통해 빈부격차 및 도농격차 같은 잠재해 있는 내부 갈등을 돌리려고 할텐데요. 그것이 어쩌면 중국 정부에게 주변국가들과의 갈등에서 출구 전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원천봉쇄하는 결과를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접받고 싶어하는 중국인들로서는 앞으로 그것의 시험대가 될 여러 문제들이 도처에 깔려있는 상황입니다. 모쪼록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중국인들과 중국 정치권의 속내를 좀 더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참고할 만한 글이라고 해석하신 이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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