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카르텔 - 갈등적 상호 의존의 역사
박홍서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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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박홍서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학사와 정치학 석사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 개입"이라는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습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설 국제지역연구센터에서 연구 교수로 일하고 있는데요. 온라인 상에서 저자의 간단한 약력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어느 포럼에서 겨우 정보를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글을 통해 박 교수의 얼굴을 확인하게 되니 저에게는 매우 낯이 익은 분이었습니다. 아마도 TV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뵈었던 것 같군요. 여러분의 짐작대로 저자는 한중 관계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특히나 요즘과 같은 미중 대결이 현실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로도 생각됩니다. 더불어 구글링으로 저자의 이 책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일반 독자들을 위한 여러 북 콘서트도 있었던 듯 싶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5~6년 기간의 한국 외교에서 미중간의 관계는 그만큼 중요한 지렛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은 지난 2020년 9월이었습니다.

책의 제목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카르텔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서로 적대시하고 있는 국가간의 서면 조약'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외에도 관용적인 의미가 많기도 한데요. 박 교수의 이 글을 일독하고 나서 드는 미국과 중국간의 카르텔에 대한 의미는 크게 2가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과거 냉전 시기에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중 간의 정치외교적 결합과 둘째로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다국적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중국을 자유시장 경제안에 정식으로 초대한 그 일련의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요근래 몇년간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전세계 공장으로서의 중국에 대한 인식 전반이 부정되어 사실상 자유진영의 또다른 대척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요. 중국이 과거와 같은 전근대적인 자본주의 체제와는 거리가 먼 전통 국가였다면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렇게 어정쩡한 느낌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이미 저자가 이 글의 10장에서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아주 밀접하게 '연동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미중간의 택일은 그만큼 단순한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죠. 또한, 중국이 한국과 일본처럼 미국의 동맹 이하 세력이 아니라, 지역 패권국에 준하는 국가로 탈바꿈 했기 때문에 이는 더 복잡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데요. 물론 이 지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이 어느날 갑자기 경제 대국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중국의 경제적 번영에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이를 뒷받침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아와 가난에 고통받고 있던 중국 인민들을 위해 저 자유진영의 수뇌들이 더할 나위 없는 배려를 한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다국적 기업의 막대한 이익을 위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소비를 뒷받침 하는 소비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통찰한 바대로, 국제 정치는 선과 악이나 흑백과 같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수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른바 '회색지대'와 같습니다. 이것은 2008년 뉴욕 발 금융위기에서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분에 맞지 않는 신용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 투입된 상당한 중국의 자금이 기반되었던 것과 유사한 맥락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도 거듭 인정되는 부분입니다만, 미국의 채권을 사들이고 있는 중국 정부의 경제 정책이 전세계에서 미국의 달러 패권을 떠받드는 한 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부분입니다. 즉,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반은 서로 '연동'되어있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선악의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선악론에 기반한 도덕적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거니와 이러한 맹목적인 사조가 주도하는 경제 체제 역시 오로지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뜬다면 미국의 방산산업체는 자신들의 이익과 수출 시장을 위해, 과거 구소련에 준하는 (자신들의 기준에서 비도덕적인) 대적자가 필요하고 일본과 같은 미국의 비대칭 동맹도 중국의 위협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외교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 위협론에 대해 어떠한 도덕적 명분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들 때문입니다. 물론 저 역시도 '민주주의가 없는 중국의 경제적 번영'을 별로 달가워 하지는 않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민주 평화론 Democratic Peace'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적 번영을 달성했을 떄, 그것의 파급이 좋지 않은 쪽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반면 교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은 성공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 편입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경제적 번영을 달성하자 기존의 자유 진영이 주도하여 마련된 국제 체제 전반이 과거 중국의 참여가 사실상 배제되었기에 수용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고 판단합니다. 중국의 최고위층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자신들의 전체적인 국력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제는 전세계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여기에는 덩샤오핑의 유훈을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숨죽여 때를 기다린다는 신중함은 이미 시진핑으로 인해 철회되었던 것과 관련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자유진영'과 이 자유진영의 속하지 않는 국가들의 진정한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중국이 이러한 번영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가 민주주의에 더욱 가까워졌다면 러시아와 친구가 될 필요도 없이 서구와 좀 더 긴밀해졌을수도 있을겁니다. 아마도 베이징 컨센서스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한 많은 서구의 전문가들이 중국의 번영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란 어려웠을 겁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신자유주의에 어떠한 도덕적 가치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중국을 세계 시장에 끌어들인다면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다소 불편한 관계를 감안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정치의 민주화가 추동될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데이빗 코츠에 의하면 이 책에 언급되는 군사적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매우 밀접한 관계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쉽게 수긍하는 것은 군사적 케인스주의에 대한 인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수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케인스주의에 대해 갖는 적대감을 감안한다면, 거의 반동적 경제 이론이라고 볼 수 있는 이 군사적 케인스주의를 신자유주의자들이 용인하고 있는 상황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적 케인스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중국이기도 한데요. 중국의 위협으로 인해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일본에 의한 무기 시장이 열리고 마찬가지로 대만과 한국에서도 비슷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저자는 이러한 결과론에 대해 따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이 중국을 손봐줘야 하겠다고 결심한 이면에는 이런 복합적인 요인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무기는 인도와 중국의 정치적 지렛대를 위해 용인했으면서도 한국의 핵개발은 기필코 용납하지 않은 점도 국제 문제가 주도국의 이익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는데요. 이 파키스탄의 핵무기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하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는 미국의 이익추구가 항상 자신들이 의도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죠.

1972년에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명목으로 미국과 중국이 과거 한국전쟁에서의 군사적 대결로 인한 서로에 대한 백안시를 철회하기로 했을 떄, 당시 키신저는 중국의 저우언라이에게 일본은 물론 한국에 대한 일종의 '통제'를 약속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의 양 국가가 한반도의 한민족이 어느 정도 관리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서로 동의한 것인데요. 이를 저자는 한반도의 내재화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이를 다른 한편으로 해석해 보면 동맹이라는 정치적 관계가 매번 우리가 원하는대로 돌아가지 없고 심지어 한미 동맹처럼 비대칭 동맹은 미국으로부터의 방기의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합적인 정치적 상황과 경제적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의 필연적인 선택만을 강요하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만큼 나날이 강도가 세지고 있는 미중 갈등에 있어서 우리 정부의 기민한 대응이 요구되는 것은 저자의 다른 설득적인 제안들과 더불어 이 글 전반의 중요한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제가 신자유주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 역시 경제적으로 중국과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은 자유 시장 체제가 기반이 되어 나타난 기본적인 양상이기도 합니다. 세계화에 따른 그 결과가 작금의 자유시장 체제인 것이죠. 그만큼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대부분 무시하고 미국이 하자는대로 했을시 나타날 수 있는 우리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미국이 매번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사드 사태로 인한 중국의 경제 보복에서 그런 우리를 향해 미국이 어떠한 행동을 보였는지는 이미 충분히 증명된 바가 있는데요. 물론 지금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매우 비상한 시기이기에 국제적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어떠한 것이 진정한 국익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책과 그에 따른 행동은 특히나 한반도에 있는 우리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이 해당 전문가들의 많은 조언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대통령이 말한 반지성주의에 대한 언급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반지성주의를 적극적으로 극복해내는 길은 역사의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통해, 이 나라가 나아갈 길을 찾는 일일겁니다. 냉정한 시세판단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의 15장에서 저자는 경제 이익은 군사력의 존재 이유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는데요. 미국에 있어 국제 외교의 메커니즘이 이러한 맥락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대한 마오쩌둥의 호감은 아편전쟁 이후 중국 엘리트 게층이 가졌던 호감과 다르지 않다. 물론 일본이라는 ‘주요모순‘에 대항하기 위한 현실적 목적도 있었다.

미국의 거대 자본가들은 러시아혁명 직후부터 볼셰비즘에 대한 공공연한 혐오를 드러냈다. 심지어 히틀러의 나치즘을 볼셰비즘에 대한 ‘해독제‘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스탈린은 처음부터 김일성에게 전쟁 중 소련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핵무기로 위협받지 않는 한 아시아 국가들 스스로 국가를 방어해야 하며, 미국의 역할은 이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지도 dictate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 assist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2년 2월 23일 베이징에서 닉슨은 저우언라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핵심은 양국이 한반도 전쟁에 다시 연루돼서는 안 되며,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각각의 동맹국인 남북한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중국은 일본이나 한국처럼 미국의 하위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좀 더 강하게 낼 여지는 있다.

예컨대, 중국 위협론자들은 미중간 세력 격차가 좁혀진다며 중국 위협론을 정당화하는 반면, 비관론자들은 미중 간 세력 격차는 여전히 크다며 중국 위협론을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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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3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3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 / 눌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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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카터 헷은 미국의 역사학자로 주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와 히틀러 나치 시대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저명한 지식인입니다. 그는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명문 대학이라 불리는 앨버타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마치고, 토론토 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에서 독일 현대사와 관련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습니다. 헷은 미국 출신의 학자 치고는 드물게도 독일에서 여러 강연 활동을 벌이면서,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 정치와 관련된 자신의 여러 논저들을 독일 내에 출판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노력에 힘입어 2007년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도서관에서 현대사 부문 에른스트 프렌켈 상을 수여 받기도 했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영국 BBC의 히틀러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제작에도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지난 2018년에 원제, "The Death Of Democracy : Hitler's Rise to Power and the Dowmfall of the Weimar Republic"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근래인 2022년 4월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이 글의 원제는 엄밀히 "민주주의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책을 일독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원제가 의미하는 바가 매우 의미심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민주주의에서 시작해서, 자신을 잉태시킨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이러한 정치적 전개 과정에서 독일만이 파멸에 이른 것이 아니라, 전 유럽까지 참혹한 전화(戰火)의 소용돌이로 이끈 것은 역사의 진보가 매번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자가 밝히는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을 붕괴시키는 데 크게 일조한 여러 원인들 가운데, 3가지 정도를 언급하고 싶은데요. 우선은 독일 내의 극심한 반유대주의적 인종 혐오와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극도로 혐오했고, 민주적이든 반민주적이든 공화국 내의 모든 정치 진영이 하나같이 타협을 막는 강력한 문화적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쿠르트 슈마허가 "나치의 선동은 인간 내면의 저열한 부분에 끊임없이 호소한다"고 고백한 부분은 당시의 독일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는지 짐작하게 하는데요. 이 부분에서 토크빌로부터 시작해 존 듀이에 이르는 '시민의 정치적 변별력'은 이처럼 중요한 가치임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원인들 가운데, 힌덴부르크와 같은 당시 독일 군부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지원하지도 못한 채, 드러난 정치인들의 무능에 깊은 환멸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로는 독일의 영광은 커녕 현상 유지도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요. 이는 이들 군부가 민주주의에 대한 극심한 혐오 뿐만 아니라, 국민을 하나로 묶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자원을 쉽게 배분할 수 있는 권위주의적 체제를 일종의 그들의 이상으로 삼게 됩니다. 힌덴부르크의 노욕(老慾)은 또 그것대로, 황제를 네덜란드에 망명시킨 관련인이라는 정치적 약점과 더불어, 바이마르 정치의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는 인물이었는데요. 그래도 이런 혼란스런 시기에도 바이마르에는 구스타프 슈트레제만과 하인리히 브뤼닝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들도 가톨릭 중심의 보수주의자들로 국내 정치의 혼란한 상황에서 각 진영 간의 진솔한 대화와 그에 따른 타협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로 제한적인 역할만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힌덴부르크가 후에 히틀러를 가리켜. '일개 오스트리아 병졸'이라는 멸칭을 써가면서 히틀러의 나치와 어떠한 대화나 타협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시의 정치가 어떠한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히틀러가 자신에게 비판을 화살을 날리는 언론들을 '유대인들의 음모, 혹은 유대인들의 배후지시'라고 여겼던 부분이나, 나치 가운데 제법 이성적인 인물로 이 글에서 묘사되는 괴벨스 역시 독일 내에서 유대인들을 축출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은 점도 당시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상황에 놓였는지 충분히 그려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최종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을 사망선고에 이르게 한 인물인 쿠르트 폰 슐라이허가 폴란드와 면한 동쪽 국경에서 어떻게 폴란드의 군사적 위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어서 그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내의 경찰 조직이 다른 민주국가들의 비해 매우 미흡해서, 동쪽 국경에 대한 방비에 나치의 돌격대를 비롯한 각 정치 조직의 준군사조직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점은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앞서 열거한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여러 정치적 문제, 문화적 편견, 반유대주의를 비롯해, 비교적 민주적으로 운영되던 프로이센 주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혐오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도 역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이름을 날리는 정치인들과 그들의 지지층들이 반지성주의에 준하는 무지와 편견에 매몰되어 있었고, 상대 세력에 대한 인신 공격은 물론 정상적인 정치적 동반자로서도 전혀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이 좌파에 갖는 극심한 혐오와 불신은 차치하더라도 종교에 있어서도 가톨릭과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서로 간의 몰이해와 환멸, 심지어 농촌 계층과 도시 계층의 심각한 계급 갈등은 전통적인 농촌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나치의 대두에 상당 부분 영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중산층이 다른 여타 계층과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는 점도 심각하게 여겨졌는데요.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공화국 내의 어떠한 정치인이라도 나서서 정상적인 상식에 기반한 대화와 토론을 유치해야만 하지만 이러한 제 생각은 이 시대에는 거의 통용될 수 없는 가치임이 글 전반에서 증명됩니다. 여기에 나치가 전유럽의 계몽주의에 대해 혐오로 일관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게 개인들의 두터운 교양으로 유명한 독일인들이 '인세의 지옥'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점은 그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치부해야 될까요.

저자인 헷은 바이마르 시기의 심각한 정치사회적 분열과 대결 구도, 그리고 히틀러가 대두하게 되는 공화국의 붕괴 시기에, 히틀러가 자신이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한 것을 신에게 감사할 정도였다고 밝힙니다. 나치는 유대인들과 공산주의를 대적으로 삼아, 일반적인 독일 국민의 증오에 호소하는 데 노력했는데요. 물론 1차대전 이후, 프랑스에 대한 막대한 전쟁 배상금이 자신들의 자존심으로는 허락되지 않는 부분임을 감안하더라도 평범한 독일인들이 이처럼 극단주의에 몸을 맡기게 되는 점도 상당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비교적 상식에 기반한 역사적 해석에 익숙한 저로서도 나치즘의 탄생은 실로 다른 우주의 요인이 기반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이질적인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헷의 이 글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던 것은 바이마르가 전체주의에 이르지 않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분명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힌덴부르크가 브뤼닝의 겸허한 정치적 요구를 수용해 주었다면 아마도 독일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었는데요. 그보다 그 이전에 슐라이허의 술수를 힌덴부르크가 조심하고 견제했다면 또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힌덴부르크 개인의 정치적 사명감이 무엇보다 전제 되어야만 하지요. 좀 더 나아간다면 보수주의 우파들이 사회민주당에 경멸을 중지하고 서로 간에 대화가 지속되었다면 히틀러의 부상도 역시 희박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브뤼닝이 힌덴부르크에 의해 축출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가톨릭 보수주의자들과 사회민주당의 간극은 아마도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했던 모양입니다. 저들은 물과 기름보다도 더 섞이지 않았으니, 이 시대의 정치적 폐쇄성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이 될 만합니다.


흔히, 일반적인 역사학자들에 의해 히틀러의 부상은 독일이 갖고 있는 미국과 영국 주도의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독일 국민을 상당히 고통에 들게 만들었던 막대한 전쟁 배상금 문제도 그렇습니다. 슈트레제만을 거쳐 브뤼닝이 정치적으로 노력했던 점도 승전국에 보내줘야만 하는 배상금의 유예가 사활적인 부분이었는데요. 물론 실제로 모라토리엄이 실행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독일 내부에서 강력한 민족주의의 부상과 함께 당시 정치적 무능과 각 세력의 폭력적 수단의 강고화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나갔습니다. 사실 그 당시 불고 있던 세계화와 더불어, 영국이 주도하던 '금본위제'에 대한 히틀러를 포함한 정치 전반의 거부감이 아마도 비타협적인 독일 민족주의와 결합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세계화에 대한 거부감이 이러한 사태와 아예 관련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터질 수밖에 없던 파급에 한 손을 거든 것에 불과하다 볼 수 있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임스 Q 위트먼과 자크 파월의 글에서도 입증되지만 독일 은행과 경제계에서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축출하기 시작한 것은 서유럽의 경제적 이해 관계에서 포드와 같은 이가 히틀러를 흥미롭게 봤던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소위 저명한 경제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했을 때, 민주주의가 과연 공산주의를 제대로 제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과 함께, 이 공산주의의 해결책이 히틀러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겼던 것인데요. 당시의 세계 자본주의가 많은 이들의 이익에 얼마나 부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들 소수의 경제인들이 자신들의 알량한 이익을 위해, 나치와 같은 자들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소름끼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는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중요하게 인식되는 최소한의 상식이 있어야만 하고, 어떤 계층이든 어떤 자본이든 간에 자신들의 급에 맞지 않는 권력을 보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진 자들을 미연에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도와 법적 장치가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헷의 이 책은 독자들이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정치적 혼란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그 가치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세계를 지옥으로 몰고 간 진정한 원인과 그러한 면면에 있는 자들을 하나하나 꼬집어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중요한 일독의 이유라고도 생각되는데요. 저자는 글 써 내려가는 도중에도 히틀러가 대두하게 되는 그 시기의 정치적 배경과 오늘날 프랑스와 헝가리 등지에서 본격적인 기성 정치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의 유사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현 시대의 극우주의자들이 이슬람 혐오와 이민자 경멸을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듯이,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유대인 척결에 정치적 이상을 건 히틀러의 존재는 지금에도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정치 혐오와 양비론에 몸을 맡긴 이들은 이러한 위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겠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처럼 말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아주 손쉬운 극우주의와 연계하고, 오히려 멀고 고통이 따를 수 있는 민주주의적 대화와 토론을 거부한다면 우리나라도 역시 극우 포퓰리즘이 뿌리를 내리기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분단까지 되어 있으니까요. 거기에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역 간의 혐오는 이미 그 도가 지나친 수준이기도 합니다. 사실 민주주의 종말에 대한 여러 사상가들의 불안한 예측은 매번 있어 왔습니다. 자크 랑시에르도 그러했고, 에티엔 발리바르와 좀 더 광범위하게 해석해 본다면 샹탈 무페도 그러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도 역시 죽는 날까지 민주주의의 미래에 걱정했던 지식인었습니다. 그래서 모쪼록 헷의 이 글이 우리에게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히틀러는 600만에 이르는 유대인들의 학살에 오스만이 자행한 최소 75만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의 집단 학살에 깊은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히틀러 이전 세 명의 총리가 그랬듯이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핵심 측근 몇몇이 히틀러의 선동가적인 재능과 추종자들을 이용하려고 했다. 간판 역할을 할 히틀러 같은 인물이 없으면 자신들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는 선거에서 극소수의 지지밖에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독일의 나치 시대에 관해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 중 많은 부분이 나치가 선전한 내용이거나, 2차 세계대전 직후 몇 년 동안 밝혀진 사실일 뿐이라는 게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났다

사람들은 베르사유 조약의 조건이 지나치게 모질고 혹독해서 독일인이 분노했기 때문에 나치가 탄생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끈질기게 이야기해 왔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저 독일 국민을 경멸할 뿐이었다. 이 사실이 놀라울 수 있다. 대부분 히틀러를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로 알기 때문이다

1914년 8월, 독일이 선전포고를 하자 "이런 시대에 살게 해주신 데 대해 감격해 무릎을 꿇고 하늘에 감사드렸다"라고 히틀러는 회고했다

세 진영이 흔들림 없이 견고했다는 사실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 사회가 얼마나 뿌리 깊게 분열됐는지를 또다시 잘 보여준다

농촌 사람들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싫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회민주당의 득세는 도시 노동자 계층이 전쟁 전보다 더 많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었다

이 문제는 이념적인, 거의 철학적인 차원으로 볼 수도 있다. 민주적이든 반민주적이든 바이마르 공화국의 모든 진영은 하나같이 타협을 막는 강렬한 문화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2년 반 동안 펼쳐진 독일 정치에서 나치를 끌어들이려는 슐라이허의 노력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 슐라이허는 독일을 더 권위주의적으로 개조하고 싶었다

아마 중산층은 자신이 추구하던 바를 사회민주당에서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노동자층과 중산층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나치는 또한 오스만 정부가 최소 75만 명에서 최대 1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죽인 1915년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을 알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후 유럽 지도를 보면, 파시스트 정당이 집권까지는 못하더라도 대중적으로 상당히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거나 공산중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나라였다

계속해서 "나치의 선동은 인간 내면의 저열한 부분에 끊임없이 호소한다. 우리가 나치를 조금이라도 알아본다면, 나치가 독일 정치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완벽하게 이용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꺠달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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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지성의 근본주의 비투비21 1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문성원 옮김 / 이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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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동하는 근대 혹은 액체 근대의 개념을 창시한 것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바우만은 금세기의 수많은 사회학자들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진정한 지식인이자, 학문의 길에 있어 모두의 귀감이 되었던 학자였습니다. 그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이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운동에는 평생에 걸쳐, 반대하는 입장에 섰기에 이런 학문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주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와 사회를 좀 더 한 발 물러서 분석할 수 있었던 그의 주변 환경은 근대의 수많은 문제들과 자본주의적 종속성, 인간의 소외라는 현실적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엄청난 독서와 사유에 근거해, 고결한 논증과 실제적인 비판을 지속할 수 있었던 그의 학문적 일관성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에 수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바우만의 글과 발언을 놀랄 만큼 증오했던 점은 특히 유명하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이보다 그의 유작이었던 "레트로토피아"에서 드러난 남은 사람들, 특히 인류에 대해 그가 본질적으로 가졌던 깊은 애정에 큰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치 토니 주트의 그것과 다름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은 그가 왜 자본주의를 그리 신랄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원제, "Freedom"으로 지난 1988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2년에 초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현재 국내 번역본은 절판된 상황입니다.

바우만은 글의 서두 뿐만 아니라 각 장에서 틈만 나면 자유의 정의에 대해, "너무나 모호하고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요.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우만이 자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그저 모호하게 인지하고 있는 이 자유가 현실의 범주에서는 이른바 자원과 권력의 유무로 그 실효성이 구별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하에 극소수의 기득권들과 엘리트 지배층이 절대 다수의 보편적 자유에 대해 명확한 규명을 얼마간 회피해 왔다는 점을 바우만의 이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좀 이른 도입이겠지만 바우만은 3장에서, "자본주의에서 자유란 자기 자신의 자원에 의존해야 할 필연성"이 있다고 전제하는 것에서 막대한 자원을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자유는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동안 자본주의가 '근대에서의 자유 개념'를 도출시키고 이것이 개인주의와 맞물려, 인간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실현 가능성과 그 보장에 대해 발언해 왔는데요. 5장에서 인용된 한나 아렌트는 "공공의 자유를 향한 혁명적 추구가 실패한 것은 진정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탓"이라는 그녀의 비평이 역으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는 개인의 자유에 의지가 될 수 있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이해를 1장에서 전반적으로 논증되고 있는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과 연계해 분석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공공의 안정과 더불어 그것에 기반한 자유를 원하고 있을텐데요. 반대로 모든 개인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누리고자 한다면, 그 사회는 거의 폭력적인 종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펠라지우스 (펠라기우스)의 언급대로, "구원을 향해 사는가 아니면 멸망을 향해 사는가는 인간들에게 달려있다"는 헉슬리 식의 극단적인 논법과 맞닿아 있습니다.

당시 사회지도층과 가까웠던 제러미 벤담은 그 소수의 계층이 원하면서, 그것대로 확실한 이익이 되는 통제 사회의 틀을 판옵티콘으로 그려보았는데요. 관리자들의 자율과 수용자들의 통제는 기본적으로 대립되는 조건이지만 이러한 양가적 틀 안에서 균형과 통제를 통해, 사회가 모든 사람들의 통제할 수 없는 자유에 대한 요구를 효과적으로 공공의 이익(엄밀히 따지자면 소수 기득권들의 이익과 안전)에 부합할 수 있느냐를 실험해 본 당시로서는 꽤 근사한 사회적 모델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을겁니다. 저는 이 글의 1장에서 바우만이 왜 판옵티콘을 끌어왔는지에 대한 실로 현실적이고 정확한 이유는 "모두의 자유는 사회의 계층화에 따라 차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들이 요구하는 '안정'이라는 가치가 이처럼 받아들이는 상대의 입장에 따라 양가적일 수밖에 없기도 한데요. 물론 공공의 이익 차원에서 사회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은 저 역시 이에 동의합니다. 즉, 벤담의 판옵티콘은 다수에게 어떻게 거의 자발적은 수준에 준하는 통제를 받아들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아주 노골적인 모델화라고 전제한다면 '자유선택'.'자유의지'와 같은 자유의 갈래들은 확실히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불행한 건지 좋은 건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동안 바우만은 사회학에 대한 관점에 대해 뒤르켐보다 더 일관되게, '인간을 위한 학문'으로서의 일종의 의무를 강조해왔습니다. 그의 이런 사회학으로서의 개념적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이 '자유'역시 인간의 진보와 인간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데요. 다만, 2장에서 약간 드러난 바와 같이 중세의 시기에 있어서도 '자유민'에 대한 봉건 영주들의 야료와 술수가 음이든 양으로든 존재했고, 다음 3장에서도 근대에 있어서 자유가 자본주의에 의해 거의 강제적으로 규정됨으로 인해, 우리가 미약하게 나마 인지하고 있었던 자유에 대한 본질이 어쩌면 자본을 위한 부차적인 수단으로 국한되었다 볼 수 있겠는데요. "만인을 위한 자유, 기본적 주권이 포함된 자유"가 자본과 자원 그리고 권력의 유무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졌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는 일관되게 바우만이 "유동하는 근대"와 맞물려, 다수 시민의 자유라는 함의의 소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수많은 정치인들에 의해 이 자유라는 단어는 재생산되었고, 누구나 손쉽게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자유와 자유주의에 대한 강조는 틈만 나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자유를 향한 욕망은 억압의 경험에서 온다"는 3장의 도입은 "자유에 대한 요구와 동일하게 사회적 작용에 대한 소위 긴장 관계"와 연관되어 있고, 앞선 자유의 근대적 형태는 "개인성과 자본주의와 맺는 밀접한 연관"에 있어서, 근대와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된 이래로 개인이 자기 확증적이고 독립적이며 주권을 지난 개인의 형태를 띠지 못하고 있는 점은 일종의 억압의 새로운 형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바우만은 자신의 여러 논저에서 '자본주의적 소비 사회'에서 개인이 주도권을 갖기란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며, 노동 자체가 인간의 삶 전반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에 안토니오 네그리의 "삶 자체가 노동에 처해졌다"는 다소 불편한 현실 인식은 이를 아주 잘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유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로 계층과 계급에 따라 격차가 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차이와 혹은 차별에 설사 사회에 '겸허한 도덕적 중재자'가 존재한다 손 치더라도 우리가 깊이 자본주의를 내면화한 상황에서 모두에게 '주권이 포함된 자기 확증적인 자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글의 전체적인 논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우만은 자신의 이 글을 통해, 시민들에게 현실의 실체를 면밀하게 폭로하고 싶었던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당시에는 뭔가 혁명적인 사건으로 미화되는 '근대적 개인의 탄생, 개인주의의 발명' 등은 이처럼 현실을 오도하기도 했는데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본주의 하에서 '진정한 자유'라는 의미는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막대한 자원의 보유와 그에 준하는 권력의 유무가 대체로 좌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비 자본주의가 모두의 자유에 부합되지 못하는 것도 실로 자명한데요. 한나 아렌트의 시민 모두의 자유에 대한 선결 조건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경제적 조건의 현실화가 실질적으로 필요하다고 전제했다면 오늘날 서구 사회가 그러한 조건을 표면적으로는 어느 정도 충족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 비용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많은 기득권들과 엘리트들에게 있어 평범한 시민들의 삶의 안정이 자신들이 바라는 체제 안정과 자유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 시민들의 자유와 삶의 안정이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국한시켜 버리는 것은 아주 손쉬운 태세지만 이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저들이 하이에나 무리와 같은 단순한 '약탈적 사회'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실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모두의 자유'에 고개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 글의 서두에서 "민주적 통제에 따라 잘 수행되고 있는 국가에서 시민들의 자유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보다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는 문제로, 앞선 신자유주의가 국가의 해악을 설파하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미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결국은 자유의 본질적 증대와 같은 문제를 포함한 것들이 사회의 자본의 종속화는 물론 시민들에게도 내면화가 됨으로써, 크나큰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후세에게 베버가 여실히 비판한 대로 "이성을 그 자신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해 적용하는 일은, 선택된 소수에게만 열려 있었고 또 열려 있게 될 선택지였다"는 일종의 경직된 미래가 되물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본의 민주적 통제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감시 사회가 그려나가고 싶어하는 그러한 일방적인 통제 사회에 대한 견제와 가까운 미래의 민주주의 붕괴에 따른 '과두제' 출현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르는 '시민의 야생성'을 잃어버린 우리의 현재 모습을 각자가 노력하여,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한 조언은 이미 존 듀이가 우리에게 명확히 보였던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벌을 받거나 감옥에 가거나 고문당하거나 박해받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이 될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해 두자.

그러므로 자유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원 resource이 있어야 한다.

계몽 시대의 다른 사상가들과 더불어 사회학자들도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사람들이 살기에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우월한 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행동의 순응성일 따름이므로, 지속적인 보상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기술은 배우기 쉽고 학습자에게 어떤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다.

통제의 영속성과 편재성은 수용자에게 자유만 빼앗는 것이 아니다. 효과적일 경우, 그런 통제는 수용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 자기 자시느이 행위를 선택하고 이끌 수 있는 능력, 자기 자신의 삶을 틀 잡고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가 버린다.

‘자유‘라는 제목이나 부제를 달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이상과 비슷한 ‘자유‘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책들은 대개 아 주제에 대해 쓴 영향력 있는 지적 저작들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며, 비판적으로 접근하려고 시도한다.

자유민은 주인에게 충실할지 또는 배신할지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그 선택에 따라 보상을 받거나 처벌을 받아야 했다

오직 타율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쓰기 위해 자유를 정식으로, 또 정면에서 악의 편에 가져다 놓은 이론이 등장한 것은 아마 이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하고 복종시킬 것이며, 물리 법칙을 지배하고 사물에 대한 권력을 가질 것이다. 이런 심성은 배운 대로 사람마저도 사물을 취급하는 방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취급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 속에서도 표현된다. 우리는 사람들 역시 사물인 듯이, 서로를 주조하고 조작하는 수단으로 본다‘

베버가 볼 때, 이성을 그 자신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해 적용하는 일은, 선택된 소수에게만 열려 있었고 또 열려 있게 될 선택지였다.

우리 사회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유가 무엇이든 그 자유는, 근대와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된 이래로 우리가 자유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이라고 간주했던 자기 확증적이고 독립적이며 주권을 지닌 개인의 형태를 띠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고 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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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미래 - 경제에 현혹된 믿음을 재고하다
장 피에르 뒤피 지음, 김진식 옮김 / 북캠퍼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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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뒤피는 프랑스의 엔지니어이자 최근에는 철학자로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파리 남부에 프랑스에서 권위있는 그랑제꼴 중 한 곳인 에꼴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하고 도미해, 스탠포드 대학의 언어 및 정보 연구센터 CSLI 의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작가이자 지식인으로 유명한 장-마리 도메나흐와 더불어 에꼴 폴리테크니크 내에 인지 과학 및 인식론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뒤피는 철학과 사회 문제에 대한 여러 저작 활동을 왕성하게 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지난 2012년에 원제, "L'Avenir de l'économie: sortir de l'économystification , Flammarion"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2년 4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일전에 질베르 리스트는 비경제학자들이 경제와 경제학에 대해 더 많은 비판적 의견 개진과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사실 경제학의 영역이 경제학자들 특유의 전문가주의론에 매몰되어 사회에서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인 지경에 이른 것은 매우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만약 소위 전문가의 영역, 전문가의 정치라는 것이 시민과 일반 정치에 괴리되어 있다면 그만큼 사회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에 저자인 뒤피는 이 글의 2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학 전반의 비타협적인 자기 초월적인 측면에 대해 비판하고 이를 베버의 인식론대로 인류가 탄생시킨 많은 학문이 실질적으로 아주 기초부터 형이상학적 토대에서 발전하여 이것이 입증된 것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철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자기 초월적 관념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뒤피는 이 점을 도식적으로 비판하기 전에 자본주의가 이와 같은 연료를 바탕으로 생명력을 발휘하기에 어쩌면 터무니 없는 자기 예언적 측면의 인식을 기반으로 경제가 추구하는 미래가 항상 장밋빛 전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비평은 그만큼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뒤피는 이러한 경제학에 대한 굳건한 믿음들에 대해 (거의 불가능한 예측까지 포함하여) 동일한 2장에서 학계와 사회 전반이 경제에 '현혹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일정 부분은 소위 전문가들에 의해 경제학이 신학의 범주 안에 스스로의 대관식을 치러낸 이래로 비판에 대한 전면적인 성역화가 강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지점에서도 뒤피는 이러한 맹목적인 분위기 자체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 의지'를 사실상 박탈당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라 일관된 논점으로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들은 경제가 스스로의 가치보다 더 많은 권위와 권력을 부여받으며 정치를 단순화 시키고 정치학 전반을 경제학을 뒷받침 시키는 소위 '시녀'로서의 역할로 한정했습니다. 미국과 같은 경우는 이미 경제 엘리트들과 정치인들, 정치 엘리트들 간의 서로의 이익에 따른 아주 긴밀한 협조가 증대되어 왔고 일반적인 자본이 이러한 사회개조가 이뤄졌을 때, 흔히 쉽게 내면화 된다는 점에서 어떤 이의 발언대로라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텐데요. 사실 여기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할 생각은 없지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가 경제적 자유와 배타적인 이익을 더 증대시킬 수 있는 소위 경제 권력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강화되어 왔다면 이쪽에 있는 이들이 보기에 평등과 경제적 분배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눈엣가시 같았는지 쉽게 짐작할 만합니다. 저는 애초에 경제학에 대한 어떤 권위 부여와 권력화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학문의 입장에서 공공의 이익과 보편적인 사회의 안정을 위해 과연 경제학이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 프리드먼과 같은 자들의 왜곡에 거짓으로 휘둘려 왔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인식에 있어서도 뒤피 역시 일관되게 동의하고 있었는데요. 저의 이러한 인식이 뭐 거창한 측면의 주장이 아니라, 이미 많은 학자들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합리적 이익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증명해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좀 더 솔직하게 경제학과 시장이 원하는 사회와 정치라는 점을 우리가 먼저 인식하고 이들에 대한 어떠한 신성한 측면 내지는 고유한 가치 체계에 시민들이 더 이상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의무와 채무와 전혀 존재 하지 않는 이익"이란 세상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 글에서 저자는 이런 경제학에 최근 윤리학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여러 학계의 의견을 터무니 없는 조언으로 치부하고 있었는데요, 3장에서 인용 된 피터 틸의 투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지만 하이에크를 비롯한 사이비 경제학자들이나 경제적 이익에 함몰되어 있는 이들이 주장하는 합리주의라는 문제는 그저 얼마나 자본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느냐는 의도가 강력하게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보이지 않는 손이 허구에 불과한 것임이 입증되었는데도 경제학이 윤리학의 당위를 받아들여 '인간 다운 경제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달걀에서 마땅히 꿩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제와 경제학에는 오로지 모두가 동의하는 법에 의한 규제와 책임과 책무에 대한 원칙이 물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더욱 강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뒤피의 4장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자본의 이익에 결코 반할 수 없는 것이 경제학의 관념이라면 지금은 무엇보다 자본이 갖는 역설들을 타파하고 수많은 경제학자들에게 터무니 없이 공격당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제 궤도에 올리는 길만이 시민들의 보편적 이익과 수요와 공급이라는 맹신의 굴레에서 조금이나마 우리들의 삶을 보전하는 방편이 될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에 대한 자본의 맹비난은 이처럼 다시 생각해 볼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모인 사회 역시 타도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이 얼토당토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인간 스스로가 비합리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장 자크 루소가 견지한 일반 의지는 이러한 대목에서 도출되었다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뒤피가 인식한 루소의 공화론, 즉, 어떠한 매개조차 없이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행위 자체가 진정한 정치 행위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어쩌면 자연 상태를 올바르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자기 운명적인 서사에 있어서 우리 인류의 미래는 단순한 인과론의 굴레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경제와 자본이 추구하는 이윤에 대한 문제도 그런 식으로 살펴 볼 수도 있고 뒤피의 말마따나 "냉전 시대에 전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었을 핵전쟁을 그야말로 '가까스로' 모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가 신성한 범주 안에 마땅히 들어가는 그리고 시민들이 결코 그것의 권위를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옥죄고 있는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글 서두에 뒤피의 언급대로 이러한 경제적 초월성이 실제로 인간의 자유 의지를 실질적으로 박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던 것이죠. 즉, "경제인들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타심도 관대함도 없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비도덕적'이어서일까?"라는 주장은 이처럼 자본과 경제의 메커니즘을 실질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물론 로드릭의 글이나 크라우치의 글들에서 시장과 경제에 좀 더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가치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는데요. 경제에 대한 아주 평범한 인식을 갖고 있는 많은 시민들에게 뒤피의 이 글은 매우 적나라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르네 지라르의 주장대로 어떠한 것의 권위를 제거하는 일이 그것으로 인한 문제를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더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전문가들의 무조건적인 소멸을 바라는 반지성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많은 시민들의 견제, 토론, 비판적 의견 개진 등은 전문가 혹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하더라도 현대 사회에서는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엘리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경제와 사법을 막론하고 사회 내의 '완벽한 균형자'를 엘리트 사이에서 찾기 힘든 연유는 이러한 무관심과 괴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계급주의적인 배타성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점은 그래서 더 명백하게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뒤피는 이 글의 4장에서 '논리적 선택이라는 가설'로서 경제학에서의 합리주의 및 자본의 이익추구가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문에서의 형이상학적 연구가 실질적으로 불가하다는 점을 뒤피가 피력한 것일까요. 물론 저의 억측 일수도 있겠습니다.

사회와 한 민족의 정치 형태가 아무리 민주적이라 하더라도 모든 시민은 항상 자기를 감시하는 몇 개의 지점을 느끼면서 끈질기게 그 시선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은 학문을 행하고 있으므로 모든 관념적 가설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순을 시장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개인들이 가격에 대한 인과율적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격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제에 이런 정책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제학이 철학적 노력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상호 의존성이 강한 경제에서 구매력의 회로는 매우 복잡하므로 기업가들이 과잉 생산한 상품이 결국 재고품 전문 가게로 가지 않는 것만 바랄 수 있을 뿐이다

경제 이론이 최대 이익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합리적 인간이 서로를 신뢰할 근거는 하나도 없다

루소가 규정하려 한 것은 중개자도 대표자도 없는 국민에 의한 국민의 직접 통치이다

하지만 경제는 정치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면서 절실히 필요한 외부 힘을 상실한 채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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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의 자유로 가는 길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틀란드 러셀은 아마도 그 시기의 진정한 백과전서를 추구한 지성인으로 충분히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라 여겨집니다. 물론 저 역시도 러셀에 대해 온갖 미사여구를 쓰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합니다. 혹자들은 그런 러셀을 허버트 스펜서에 빗대어 분석하기도 하는데요. 아마도 다방면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당시의 선도적 연구를 해왔다는 측면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체로 이에 반대하는 편입니다. 사회학에서의 스펜서의 악명을 고려한다면 러셀을 거기에 비교하는 행위는 다소 옳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러셀은 생애 말년에 이르러서 자신이 사회주의자인지 평화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모르겠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특히 인류와 정치에 관련된 그의 사상이 격동의 세기를 거치면서 다소 변화될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사회주의에 대한 불신을 몸소 겪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것은 시대의 첨예한 굴곡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The Proposed Roads to Freedom"으로 지난 1918년에 첫 출간되었고, 지금 국역본은 2006년의 영국 스포크스먼 출판사에서 새로 찍은 것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국내에는 2012년 10월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러셀의 이 책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이 피력하는 당시 시대의 여러 문제들과 그러한 것들을 과연 정부가 해결해 낼 수 있느냐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기반해, 대다수 시민들을 위한 자유 자체를 어떻게 하면 소수의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서 이를 보장하고 어떻게 하면 모든 시민들이 마땅히 누리게 되는 균형적인 자유 사회가 될 수 있는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의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5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가의 권력에 대한 장(章)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거듭 중요해지고 있는 경제, 즉, 경제 권력의 국가와 정치 침투에 대해 본격적인 논증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다음 6장에서 러셀은 앞으로 금융 자본주의가 더욱 세를 얻을 가능성을 예측하고, 반대로 종래의 아나키스트들이 주장했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분배가 오늘날 이 시대에 더욱 사활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아마도 예측하기가 어렵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여기에 러셀은 그 시대의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극도의 회의를 느낀다고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앞선 장들에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이 민주주의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에 대해 러셀 역시 이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평가하고, 민주주의가 어떤 시대의 정치 체제보다도 낫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나, 민주주의가 절대 만능이 아님은 모두가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제 생각으로는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한계들 가운데 무엇보다 민주 체제에서 자본 권력을 분리하지 못한 지난 1세기 간의 실패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이것은 슘페터가 비판한 민주주의의 부패의 문제가 어느 정도는 자본 권력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글에서 러셀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분석을 늘어놓으면서, 정작 본인은 생디칼리슴 (노동조합주의)에 대해 이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가능성에 대해 논하고 있기도 한데요. 우선, 그 시대의 아나키즘의 영향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정치적 불신'이 노동자들의 노동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정치 세력화가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이론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엿보였으나, 과거 아이젠하워 정부를 거쳐, 기존의 뉴딜 경제 정책이 전부 철회되고, 신자유주의에 의해 노동 조합이 전반적으로 분쇄되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멀지 않는 미래의 결과물을 러셀이 제대로 목도하지 못한 점은 꽤 유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제가 보기에 이 글에서 논의되고 있는 "자유의 불평등 문제'가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일반 시민들에게 자신의 경제적 조건이 자유의 문제를 가늠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하다면 충분한 생산력을 보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생활 수준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러셀의 원칙에 일정 부분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 3장에서 인용된 길드 사회주의는 확실한 대안일 수는 없겠으나, 꽤 고려해 볼만한 대안이라 여겨졌습니다. 이 길드 사회주의로 의회와 길드 평의회라는 양원화 된 권력 분업 체제가 소비자와 생산자라는 입장에서 균형적인 정치 권력으로 이원화 가능성이 점쳐졌는데요. 이것은 클라우스 오페의 독일 정치에 대한 평가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아직도 노동자주의와 이들의 권익에 민감한 독일은 자신들의 주류 정치가 사회 민주주의라는 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많은 독일 제조업자들이 노동자들과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는 점은 길드 사회주의의 정치적 제안들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생산된 것들이 노동자들에게 좀 더 돌아가야 한다는 생디칼리슴의 주장을 정치적 맥락에서 받아들여 자본가들의 권력 비대화를 줄여나가는 쪽으로 견제할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이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만큼 정치에 있어 자본의 잠식이 그동안 아무런 사회적 동의 없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거의 반증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나키스트들에게 있어서 국가에 대한 혐오와 분쇄 노력은 지금에 와서는 다소 맞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보다 아예 직접적으로 언급하자면 이러한 국가 혐오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아주 반기는 내용이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데요. 물론 국가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반대의 의견을 찍어 누르기 위해, 그 권력을 폭력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인간의 진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죠. 저는 아직도 경제적 재분배에 있어서 국가가 소기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단순히 시민의 자유와 체제 전반을 자신의 의도대로 오용될 수 있다는 국가의 공포에만 집중한다면 자본의 횡포를 제한할 길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동안 많은 보수 우파들이 현재의 정치적 불신을 조장하는 쪽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왔는데요. 신자유주의와 보수 우파가 오래전에 결탁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국가로 인한 위협의 문제는 본질을 한참이나 벗어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지금으로선 국가 사회주의와 같은 강력한 국가 체제의 출현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이는 역사학자인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분석한 것과 같이. 1914년 이후의 유럽의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의 본질은 폭력적인 민족주의가 바탕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처럼 어느 주의나 주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그 본질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이냐를 밝혀내고 구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주주의에 대한 한계를 꼬집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의 연구는 오늘날의 사회 분위기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최근에 겪은 펜데믹 사태로 보았을 때, 국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 따위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 것이죠. 러셀이 작금의 펜데믹 사태를 예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공동체의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이동할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사회에 왜 형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가와 맞물린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개인의 자유는 필요에 따라 공동체를 위해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러셀의 말마따나 이 자유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공동체와 공공선 역시 중요한 화두이기도 합니다. 저는 민주주의가 자유 그리고 평등을 가장 잘 보장할 수 있는 정치 체제라고 여기지만 반대로 오로지 자유만을 위해 민주주의가 오남용 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글 5장에서 언급되는 위선의 탈을 쓴 민주주의의 정치인들의 모습이나 "가장 정직한 사람조차 소름끼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평가로 보건대, 선출된 자들의 특유의 자리보전이 민주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러한 저들의 정치적 이익이 한편으로는 시민의 자유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익히 모두가 알다시피, 아주 친자본적인 입장에서는 경제적 권력이 월등한 자가 그렇지 않은 모든 자들을 부릴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되고 있기도 합니다. 자신 스스로가 속으로는 민주주의를 극도로 경멸하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신봉자처럼 연기하는 자들이 있듯이, 자본이 은연중에 이룩해 민주주의에 반하게 되는 이 계급주의적 열망은 이처럼 명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측면에서 아나키즘이 시민들에 대한 경제적 분배의 필요성을 역설했는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이제는 아주 명확하다고 볼 수 있는 이 시점에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직접적인 투쟁에 나설 수 있는 지점이 있을지는 다소 회의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 정치에 있어 자본의 지배는 너무나 면밀하고 치밀하기 때문에 우리가 신봉하는 제도와 법률 역시 경제적 자유와 자본의 권력화를 사실상 용인되는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자본에 대한 건전한 비판 역시 점차 성역화 되는 실정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러셀이 이 책의 본질이 가까운 우리의 현재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요. 사회주의와 아나키슴은 물론 저자인 그가 그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생디칼리슴 역시 그 전망이 비관적이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에 실현 가능한 최선의 체제는 길드 사회주의이다. 길드 사회주의는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요구와 생디칼리스트들의 국가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국가 간의 연방주의를 지지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여러 직종들로 구성된 연방주의 체제를 채택함으로써 가능하다

반면 아나키스트와 생디칼리스트는 모든 대의제 기구에 반대하며 공동체의 정치적 사안을 다른 방식으로 규제할 것을 지향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특권과 인위적 불평등의 철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 민주주의자이며, 기존 사회의 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는 투사이기도 하다

생디칼리스트들은 현대 사회에 필요한 것은 여기저기 조금씩 해대는 땜질이나 기득권층이 기꺼이 동의할 만큼 사소한 조정이 아니라 근본적 재건, 즉 압제의 모든 근원을 일소하고, 인간의 건설적 활력을 해방하며, 생산 및 경제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고 규제하는 것임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프랑스는 권력을 거머쥔 수많은 정치가들을 보면 원래 사회주의자로 정치 이력을 시작했으면서도 결국에는 군대를 동원하여 파업 노동자들을 탄압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소득은 생산된 재와의 총량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공동체가 유용하다고 인정하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외부 권력에 일절 간섭을 받지 않고 생동한다면 우리는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한, 사회가 선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 따위는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는 주로 권력이 부와 결탁하여 낳는 해악을 근거로 들며 부의 불평등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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