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도 잘 모르는 미국 선거 이야기 한겨레지식문고 2
L. 샌디 메이젤 지음, 정의길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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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이스 샌디 매이젤 (혹은 마이셀) 은 1971년부터 미국 메인 주에 소재한 콜비 대학의 정치학 교수로서, 콜비 대학의 골드파브 공공 및 시민 참여 센터의 창립이사 (2003~2012)로 활동한 바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 정당과 선거를 포함한 17권의 논저를 쓴 연구자이기도 한데요. 이와 달리 그의 색다른 경력에는 1978년에 메인주 의회 예비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어 출마한 이력도 갖고 있습니다. 1989년에는 올해의 메인 주 교수를 수상받을 정도로 여러 다른 이력들을 포함해 꽤 인정을 받은 학자라도 볼 수 있겠는데요. 콜비 대학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현재는 교수를 은퇴하고 여러 언론사 기고와 집필활동에 매진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A Very Short Introduction : American Political Parties And Elections"로 2007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지난 2010년 5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 책은 절판되었습니다.

우선 샌디 메이젤의 이 책은 얇은 팜플렛과 같은 소책자로 현재의 미국 선거제도 및 양당 제도와 관련해, 일반인들을 위해 꽤 명료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역시 그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미국 연방 대통령 선거에서의 선거 인단 제도를 위해 이 글을 고르게 되었는데요. 매이젤의 이 책이 아주 전문적인 정치 논저라고는 볼 수 없지만 평소에 미국 선거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원하는 분들께는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조금 이른 결론이기도 하지만 메이젤이 이 책의 말미에 이르러 의미심장하게도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피력하면서 얼마간 선거인단 제도의 개혁을 포함한 제도 개혁이 있어야 믿고 있었습니다. 이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현재까지 왜, 미국 정치 제도하에서 아직도 그와 같은 선거인단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몇가지 원인들을 인식하게 된 것은 마찬가지로 일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글의 1장에서 저자는 지금의 선거인단 제도에 대해, "선거인단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자신들이 직면했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했다"는 개인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다수가 소수의 권리를 억압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깊게 본 것이 그들이었고, 영국 정치와 자신들에게 건전한 공화주의 맥락으로서 이러한 미국의 제도적 기틀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겁니다. 사실 그동안 여러 보수적인 미국 학자들에 의해, 전통적인 제도적 측면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라는 이유만으로 오래된 선거 제도에 대한 일말의 개선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헌법을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일도 있었지만, 연방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 제도 만큼은 그동안 여러 여론들이 있었음에도 개선의 의지를 갖기가 다소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미국 의회제 내에서의 특별한 제도인 상원제도와 맞물린 선거인단 제도가 소수 주(state)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이유이기도 한데요. 사실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상원보다 더 문제가 있는 것은 하원의 선출 상황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글 6장에서는 "하원의원 선거에는 거의 경쟁이 없다. 2006년 선거를 포함해 지난 30년간 선거 때마다 재출마한 현직 의원의 90퍼센트 이상이 재선해 성공했다"고 언급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기존의 권력이 고착화되어 있는것이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과연 이로울 것인가에 대해 짐작해 보건대 거의 회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많은 미국인들이 희화화해 마지 않는 현재 일본의 자민당이 주도하는 의회 민주주의가 실상 자신들의 하원과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측면은 아이러니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각의 보수주의적인 시각에서 기존의 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것도 충분히 공감을 살 만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효율적인 측면"에서 특히나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시의 실효적인 관심사를 수렴해, 정치인들과 정당인들은 마땅히 이를 수용해 제도의 누수된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요. 하지만 이 글 1장과 2장을 거치며 논증되는 소위 미국 정당 정치의 연원이 과거 정치에서 "엘리트들의 부업"이라는 것과 지역 내의 보스들이 해당 정치를 좌지우지 해왔다는 측면으로 지금도 상원을 저명한 정치 가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오랫동안 독점하고 있는 실정은 민주주의의 효율적이고 다원적인 범주 바깥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즉, 정치 제도에 대한 개선과 기존의 제도 유지라는 양자의 대결이 민의의 수렴이라는 대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정치의 이득 추구'라는 측면에 거의 메몰되어 있는 것이 현재 미국 정치의 심각한 문제일 것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저자는 현재의 정당 정치와 이익 단체가 거의 상명하복과 다름없는 매커니즘을 갖고 있는 것을 건조하게 진술하고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을 공생관계로 밀착하는 양자간의 관계가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것은 모두가 짐작할 만합니다. 이는 5장에서 미국 선거 내에, 연방 정부 보조금인 하드 머니 (Hard Money)와 일종의 사적 모금액이라고 볼 수 있는 소프트 머니(Soft money)의 격차가 정치 신인들이 등장하기 여려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연방 정부의 보조금이 증액되어 왔지만 아직도 후보자들에 따라 비대칭적인 막대한 소프트 머니의 존재 여부는 미국 선거판 뿐만 아니라 미국의 민주주의의 시적 이익화된 측면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정치를 본업이라고 봐도 무방한 정당인들과 그들의 밑에서 경력을 쌓으려는 여타 신진들이 기존의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강고한 제도하에서 자신들의 개혁 성향을 잃게 되는 것은 현 상황에서 미국 선거 제도의 최소한의 개선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미국 대선에 출마한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미국의 각 주에 이미 구성되어 있던 남편인 빌 클린턴의 선거 조직을 이어받고 이로 인해 다른 민주당 내의 정치 신인들보다 더 수월하게 선거를 치뤘던 것은 본선 무대에 등장할 수 있는 참신한 주자들의 의지를 꺾는 것으로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비 선거 도중에도 과거 빌 클린턴의 사례와 같이 당 지도부의 소위 과감한 선택을 수락하는 식의 밀실 정치가 미국 정당 정치내에서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미국 양당 제도의 어두운 측면이 바로 이 부분을 뜻한다고 생각되는데요. 결국 현재에 민주당 혹은 공화당 지지가 아닌 무당파가 거의 40%가 넘는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양당 제도의 꽃이라는 국가에서 무당파가 저런 수치로 나온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 불신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대선에서 선거 인단을 뽑는 주 투표에서, 자신들이 월등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주에는 당의 관심과 정치적 지원이 전무하고 치열한 경합주에 대해선 막대한 물량과 인력을 투입하는 양태는 미국 정치가 도저히 건전해 보일 수 없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미국 대선 자체가 승자 독식의 일종의 치킨 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기존의 정치 기득권들이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에 대한 부정적이라는 의견과 이를 통해 거의 새로운 얼굴들의 정치 입문을 막고 또한, 시민의 정치적 요구를 이익 단체들의 사적 이익보다 부차적인 문제가 된 것은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큰형이라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본질을 갖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 지형상 다수의 남부 백인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및 다수의 히스패닉 계열의 지지를 받고 있는 공화당과 소수의 유대인들과 근로 노동자들, 그리고 흑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의 이 양당 체제는 단순히 기득권 정치의 돌이킬 수 없는 강고함을 넘어 어떻게 민주주의의 실효적인 측면에서 최소한의 변화마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동안 정치학계 내에서 이런 미국의 양당 제도가 민주주의 하에서 비용을 그리 많이 지출하지 않는 효율적이고 더불어 국가 전체를 소모적인 정쟁에 빠트리지 않는 최소한의 장치를 갖고 있는 정치라고 여겨왔는데요. 사실 이 부분에서 중요하게 비판해야 할 부분은 소위 튼튼한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불신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선거 제도의 플레이어들이 이러한 정치 불신을 오히려 반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입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정치는 자신들만이 참여하고, 시민들은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라는 극단적인 모토라고 이해됩니다. 그래서 이들이 오히려 중도층의 주장과 요구에 귀를 귀울이면서 기존의 정치를 개선시켜 나가는 것도 제도 자체를 개선시킬 수 있는 의지를 미연에 막아왔던 것도 사실인데요. 또한, 선거인단 제도의 개혁과 관련해, "일반 투표의 득표수에 비례해 선거인단 투표를 나눠주는 방식"이 기존의 미국 대선에서의 직접 선거 보다는 크게 거부감이 적은 방안일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강하게 맞물려, 인구 수가 적은 주들의 권리를 어떻게 하면 다른 방식으로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도높은 고려와 현재의 상하원 제도를 민주주의의 진정한 효율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실용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자유 진영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고 이를 바탕으로 각 국에서 경제적 번영을 추동했던 것은 분명 미국의 직간접적인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미국인들 스스로 기존의 가치 체계가 과연 현재에도 유효한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개선시킬 의지를 갖는 것이 미국 정치 뿐만 아니라 전세계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본문 86페이지의 '사회화'는 앞뒤 맥락으로 봤을 때, 사익화가 맞는 표현 같은데요. 원서를 보지 못해 국문 번역으로 추측해 본 점은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존의 선거인단 제도를 지지하고 있는 계층들 가운데, 미국 내에 히스패닉과 같은 소수 인종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 유지를 위해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는 인구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들도 유사한 입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인식하고 있는 미국 정치의 나레이션이 꽤 객관적이고, 소위 미국 만세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아서 미국 정치 시스템에 대한 한계점이라든지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서 일반 독자들이 꽤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재간행 이야기 들려오지 않는 이 책을 광고나 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지만 다른 분들의 느낌과는 달리 기본적인 번역도 크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양당제는 일단 성립되기만 하면 자신들의 계속적인 지배를 보장하는 추가적인 대책들을 강구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소정당과 그 후보에게 현저한 불이익을 주는 선거운동 비용 제도이다

특정 선거에 자원을 집중한다는 당의 결정은 이익단체에도 그 선거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의원내각제의 정치인들과 달리 당 정강에 충실하지는 않지만, 당 정강은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당들을 규정짓는 좋은 방식이다

가톨릭 교도는 민주당의 정치연대에서도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공화당 정치 연대에서도 민주당원의 30퍼센트에 이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흑인은 전체 민주당원의 30퍼센트에 이르나, 공화당에서는 1퍼센트 남짓이다

특정 당이 지배하는 지역의 공직자는 여러 당이 경쟁하는 지역의 공직자보다 논쟁적인 이슈에서 더 당파적이고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선출 공직자(특히 그의 동료 공화당 주지사들) 등 각 당 지도자, 아버지의 선거 운동 지지자, 텍사스 부유층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부시는 첫 예비선거 투표가 있기도 전에 7,000만 달러를 모금했다

작은 주에는 두 명의 상원의원 수만큼 선거인단을 그대로 배분해 약간의 혜택을 주는 현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되, 일반 투표의 득표수에 비례해 선거인단 투표를 나눠 갖는 것이 최선의 제도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에 집중한다는 전략적 함의는 무언인가? 2000년과 2004년 격전지 주에 살고 있던 미국인은 대통령 후보와 러닝 메이트, 그들의 부인, 대리인들의 방문을 질리도록 받았다. 다른 35개 주에 살던 미국인은 그런 선거운동 방문을 거의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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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라이트 밀스 - 실천적 지식인과 사회학적 상상력
데니얼 기어리 지음, 정연복 옮김 / 삼천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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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대니얼 기어리는 미국 태생으로 현재 아일랜드 더블린에 소재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의 마크 피고트 부교수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일종의 사회 비평서이자 연구 평전이라 할 수 있는 이 글이 최초의 논저이기도 한데요. 그는 특히 '극단주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동시에 좌파 이념과 그에 따른 정치 이론 등을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책을 읽기 전에 그의 이력을 알지 못했을 때는 유럽인의 시각치고는 라이트 밀스를 치밀히 분석했구나 싶었는데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학자가 본 라이트 밀스에 대한 학문적 구도가 많이 신박하다고 느꼈는데요. 밀스의 주요 논저들을 분석하는 동시에 사회적 맥락과 밀스가 걸어온 길을 독자들이 되짚어 볼 수 있다는 부분과 사회학자의 진지한 삶과 그의 논저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어리의 이 책은 충분히 일독할만 하다 여겨졌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그동안 라이트 밀스를 너무나 왜곡해 왔기 때문에 얼마간 밀스를 읽어 보지 못한 일반 독자들은 그를 단순히 '좌파 지식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도 1949년 전후로 이러한 폭거(?)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Radical Ambition : C. Wright Mills, and American Social Thoughts"로 200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6년 8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만, 국역된 책 제목과 관련해, 원제를 충실히 번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책 판매고를 위해 출판사가 그런 결정을 한 것기도 한데요. 아무래도 '급진주의'에 대한 약간의 자기 검열 기제가 발동한 듯 싶은데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이 부분은 독자의 입장에서 아쉬울 따릅니다.

이 글에서 주요하게 분석될 수밖에 없는 찰스 라이트 밀스에 대해, 개인적으로 처음 그를 인식하게 된 계기는 꽤 괴랄한 번역으로 알려진 '사회학적 상상력' 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판이 바뀌었지만 저의 서가에는 기린판이 몇권이나 꽂혀 있기도 한데요. 왜냐하면 처음에는 번역을 믿을 수가 없어서 제가 구입한 판이 뭔가 잘못된 것인줄 알고 과거 헌책방에서 여러권을 구해 읽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기어리는 라이트 밀스가 1940년대 후반까지 의미있는 자생을 하고 있던 기존의 '미국 좌파'와 약간 상이한 지식인으로 이해되고 있는데요. 특히, 그가 노동주의 운동에 있어서 상당한 좌절을 맛보았음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신념화한 '사상적 급진주의'를 봤을 때, 적지않은 존경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밀스의 여러 사상적 통찰들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파워 엘리트에 논하고 있는 5장에서, 정치적 다원주의라는 자유주의 개념에 반해 밀스가 직접적인 참여 민주주의를 원했다는 것과 1940년대 이후로 미국의 정치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 경제라는 것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미국 사회가 기업 지배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갔다는 밀스의 예측에서 절로 오늘날 전세계 여러 사회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밀스는 후기 자본주의 이론가들의 자본주에 대한 예측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노동자 정치 및 노동 계급의 권력화가 세련된 보수주의에 의해 무력화 되고 난 후, 자본주의가 어떤 식으로든 시민을 '소외 상태'에 빠트릴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워 엘리트에서 기어리가 논평하고 있는대로 그것의 명칭이 지배 계급이든 파워 엘리트든 간에 "지배층이 일반 다수의 시민들을 현재의 시스템이 만족할만한 체제로서 이들을 순응시키기 위한 여러 잠재된 요인들"을 밀스가 간과하고 있었다 것이 분명하다는 저자에 논증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어리의 말대로 1949년 전후로 광풍으로 몰아친 '매카시즘'이 미국의 진보 좌파 운동을 사실상 궤멸시켜, 그 부분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은 밀스가 스스로 창의적으로 작명했던 '파워 엘리트들'의 노골적인 기업 지배 이데올로기를 세뇌시키기 위한 작업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것을 학문적 한계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이후 그의 사상이 약간 경직된 부분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게 되었습니다.

밀스의 생애 초반 행적들이 이후 그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고 강조하는 기어리는 존 듀이를 비롯한 미국 프래그머티즘과 당시 미국 학계의 주류였던 시카고 사회학파의 영향을 밀스가 적잖이 받았다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저자는 존 듀이와 비교해 더 왼쪽의 인물이라고 그를 평가하고 있었는데요. 밀스에게 한때 중요한 의미였던 노동과 관련해, 미국 내의 '지성과 권력의 합일'이라는 거대한 과업에 몰입했던 밀스가 노동계에 대해 좌절을 맛보기 전까지 그는 급진주의와 정치 발전에 희망을 노동 운동에서 엿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식인들이 노동 운동의 필요성과 그러한 정치적 맥락에 발을 담그게 되면 흔히 '좌파 지식인'이라는 낙인을 받게 마련입니다. 밀스는 스스로를 좌파 지식이라고 규정받는 것보다 스스로 급진주의를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던 지식인이자 학자였던 인물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연유에는 지식 사회학에 대한 그의 헌신을 비롯, 급진주의 정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사상적 연원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청년기에 시카고 학파에 사회학적인 영향을 받았음에도, 급진주의와 주류 사회학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선 사회학계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특히, 이뿐만 아니라 밀스는 당시 사회상에서 지식인들에 대한 선명한 요구라고 할 수 있는 "점점 더 뚜렷하게 도덕주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속에서 올바름을 강조하고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기존 질서를 지지하거나 당면한 긴급 사안들에서 뒤로 한발 물러서는 지식인을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5장인 파워 엘리트에서는 '진실을 폭로하는' 정치를 강조하면서, 지식인들이 이러한 진실 폭로에 나서서 그에 따른 토론에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의무를 망각하는 것으로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진실된 정치를 향한 그의 사명은 아마도 급진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밀스의 초기 관심사가 "좀 더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회를 위해 사회학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성을 사용하는 데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이해하고 있는 급진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정의와 진정한 합리주의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물론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서도 '시민들을 위한 정의'가 체제를 뒤흔들 수있는 급진적인 문제로 여겨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저자인 기어리는 일관된 맥락으로 기업의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주입되거나 사회 전반의 기업 지배 이데올로기의 강조가 어떻게 보면 평범한 자본주의로서의 이행이 아니라 일부에 의한 특권을 강조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후 벌어지는 1950년대가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시대였지만 저변의 인사들이 경제에 국한된 지점에는 이데올로기 따위는 없다는 주장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데요. 훗날 신자유주의의 태동이 이러한 맥락 가운데 있었으며, 밀스가 일찍이 경고했던 '이성을 빼앗긴 정치'가 경제의 지배를 받게된 오늘날의 변화된 상황에도 이를 충분히 대입할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당시 사회학에서의 처녀지였던 미국이 막스 베버의 번역된 저작들을 통해 새롭게 나아갈 수 있었다고 여겨지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루즈벨트와 스탈린의 전폭적인 협력을 차치하더라도 1949년전까지는 미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극명한 배격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유수의 자본가들은 그렇지가 않았죠. 특히, 4장에서는 "사회주의자라면 자신들의 목표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소외되지 않은 인간, 즉 일과 사랑으로 충만한 인간을 낳을 수 있는 사회구조를 창출하는 것임을 떠올릴 필요가 있었다"고 언급되는데요. 앞선 기업 지배 이데올로기가 많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자신들의 이익에 순응하게 하는 순응주의 conformity에 물들게 하고, 결과론적으로 '명랑한 로봇'과 같은 '명랑하고 온순한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그들의 재탄생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들이 자본주의적 발전이라는 미명하게 감행되었던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여기에는 조지 오웰식의 디스토피아를 경고했던 발언들이 상당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논증을 강조하기 위해 쓰여진 문장은 아니었지만 "자본가 계급 및 자본을 보유한 계층이 무엇보다 사회의 안전"을 바란다는 것은 이토록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만 견고한 자유주의적 기초하에 설립된 미국이라는 연방 국가가 언제든 혁명에 이르는 길로 귀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터무니 없는 시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미국이라는 국가의 자유주의적 토대는 너무나 거대하고 본질적으로 강건한 것임에도 반대편에서 건전한 비판을 수행할 수 있는 태생적 좌파들의 몰락을 급격하게 불러 일으킨 냉전의 대결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그토록 찬양한 자유주의적 승리가 아니라 모두의 고통을 초래하게 된 신자유주의적 확대로 이어졌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시 3장에서 논하고 있는 밀스의 사회학에 대한 진정한 의미에서도 개인적으로 대단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회학 본연의 가치가 현대 사회의 발전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는 그의 해석이나 앞으로 사회과학이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반성에서 더욱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밀스의 주장에 더욱 공감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현재의 사회과학이 과연 도덕적인 성찰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지표를 갖고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한가지 확살한 것은 시민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무기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여기에 전제되어야 할 기본 요소는 쥘리앙 방다 뿐만 아니라 밀스도 강조했던 지식인들의 그 귀중한 책무와 사회학이 단순하게 검증된 증거학으로만 소모되지 않고 다시금 강조하는 밀스의 의견대로 합리적 이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다른 인문학들과는 달리 사회학은 우리의 현실 사회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현재로선 경제 지배에 대한 함의가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는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는 담론을 제공할 유일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앞선 사회학이 노동자들과 노동 운동과 긍정적으로 합치되지 않고 극단적으로 분리됨으로써 벌어진 저자가 언급하는 '세련된 보수주의'의 출현과 굳이 당시의 아이젠하워식 특단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미국의 노동 운동 자체가 힘을 잃은지 오래되었다고 봐야할텐데요. "급격한 비대칭적인 권력으로서의 자본주의화에 대한 압력과 중간 계급의 분노를 복지와 좌파의 무능으로 몰아간" 것은 노동 운동 자체가 백안시 되고 또한 순응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특권화된 자본가들의 요구가 정치사회적으로 관철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이러한 가운데 앞선 노동자들에 비해 상이한, 전통적으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은 아예 새로운 계급의 출현이라고 볼 수 있는 "화이트칼라"에 대한 밀스의 인식은 일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이 화이트 칼라들은 꽤 체제에 녹아들었고, 자신들이 직업에 따라 계층화됨으로써 기존의 사회적 구성원들과는 다른 양상을 갖고 있다고 서술됩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논저 '화이트칼라'에 대한 밀스의 애정은 기어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기도 한데요. 전문 지식인들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보기에도 난해하지 않는 글을 목표로 밀스의 이 "하이트칼라"는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저자인 기어리에 의하면, 이 '화이트칼라'와 법학자로 훈련받은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이 유사한 맥락의 작품이면서, 당시 사회학 출판의 열풍을 이끈 논저로 소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다소 확대 해석을 해본다면, 이 화이트칼라의 출현은 자본주의화가 된 계급적 사회에서 뭔가 '부조리에 침묵하는 계층'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상사의 권위', '회사의 위세' 등을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데 몰입하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전부 보보여주고 있는 계층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1950~60년대를 아우르며 이러한 소위 특별한 계층의 출현은 이들이 밀스의 기대되로 직접 민주주의적인 지원군이 되거나 혹은 영악한 침묵의 근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노동 전반에 대한 깊은 환멸을 맛본 밀스가 화이트칼라 라는 이 논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고 밀스가 결국 노동 계급이 없는 급진주의를 표명하는데 아마도 이 화이트칼라의 존재가 한몫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이들도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 소외를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고,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일반 지식인들조차도 이 체제에 있어선 약간 다른 맥락이기도 하지만 실로 '무기력한 사람들'이라는 배경에는 "자신의 생각이 중용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중대한 질병"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을 향한 비판을 포함한 것입니다. 일개 개인들에서 뿐만 아니라 설사 지식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일지라도 자의식은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밀스는 누구나 자의식을 항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 지식인이기도 한데요. 앞선, '명랑한 로봇'이라는 역설적인 명칭에 대비해서도 특히, 인간 소외라는 문제에서도 누구나 이성으로서 자신의 삶의 중심에서 자의식을 찾게 되는 것이 체제의 소모품이 되지 않는 유일한 길임은 과장된 해석이 아닐겁니다.


전후, 미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을 분석한 '파워 엘리트'는 정치, 경제, 군사 엘리트들이 미국을 좌우하는 지배 계급으로 밀스는 보았는데요. 물론 밀스는 지배 계층, 지배 계급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파워 엘리트라는 표현은 미국 사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장에서도 강조되고 있기도 합니다만, 전쟁 경제, 전쟁 특수라는 이익을 군사 엘리트들은 계속 지속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우리식으로 해석해보면 이들은 방산업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미 아이젠하워가 퇴임시에 경고하기도 했습니다만, 아마도 미국 내부에서는 이러한 삼자의 결속이 이익을 매개로 강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막대한 군사비 지출과 미국의 전세계에 대한 영향력 유지라는 미명하에 정치 엘리트 뿐만 아니라 경제 엘리트들까지 군사 부문의 엘리트들에게 협력해왔던 것은 또 부정할 수가 없겠죠. 여기에 밀스가 지적했듯이, 장시 전체 인구의 0.2% 혹은 0.3%에 불과한 계층이 기업 주식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이처럼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의 자유 민주주의하에서 거의 과두제에 근접한 권력 집중이 냉전 시기에 이뤄졌고, 이는 현재 미국에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밀스가 강조하는 '참여적인 직접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 깨달을 수가 있는데요. 여기서 권력의 근원적 속성부터 전반적인 문제 전반을 다룰 수는 없지만, 자유주의적 가치라고 볼 수 있는 다원주의가 미국에서 대다수가 원치않는 결과를 초래했고 더욱이 이 다원주의가 미국 정치내에서 영향력을 잃은 건 둘째치고라도 어떠한 자정 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것도 확실해 보입니다. 피상적인 수사로서야 이 다원주의를 미국의 토대라고 찬양할 수 있지만 금권 정치의 확대와 이익 정치가 성공적으로 실현됨으로써 마찬가지로 자원과 수단의 배타적 차별에 놓여 있는 시민 정치가 이를 현재의 밀실 정치와 다름없는 미국의 정치 상황을 타파하기란 어렵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3장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저자는 당시 정치를 빗대어 "극우와 극좌 중간쯤에 자유주의가 있다"고 언급하는데요. 이를 오늘날의 언어로 재해석한다면, 자유주의가 극우(일정 부분에서)에 가까운 보수주의와 결합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사실상 밀스가 거의 서술적 측면에서 묘사했던 이 삼각 엘리트들은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더 이익으로 합일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높습니다. 당시에서도 견고한 자유주의 개념을 반대하는 것은 지식으로서도 꽤 무리가 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다원주의의 실패를 논하는 지식인들이 지금에는 많이 늘었지만 과거 극명한 이데올로기의 시기에 그와 같은 양심을 내보이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었죠. 그래서 평생 동안 주류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밀스의 삶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동류와 동류 의식이라는 부분에서도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상황을 저들이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견으로는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비판을 가하는 동종 업계의 인물이 있다는 것은 주류들에게는 상당히 불쾌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겁니다.

끝으로, 밀스는 기존에 태동하기 시작한 미국 사회학에서 말끔하게 지냈던 인물은 단언코 아니었습니다. 62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한스 거스를 비롯해 그를 지지하는 학문적 동지들은 있었지만 지적으로 외로운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양심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 사람이 사르트르가 아닌가 싶은데요. 물론 저의 짐작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저 문장의 설득력은 실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입니다. 밀스의 저작들은 사회학에서의 이단아 취급을 받아 어떤 학자들은 극명하게 찬양하고 또 반대는 하품 나오는 수준 정도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뒤르켐식의 사회학에 익숙한 학자들은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논증을 크게 의미두지 않습니다. 물론 밀스가 위대한 사회학자였던 것은 제 기준에는 확실하고 그가 여느 사회학자들과는 달리 많은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을 손에 쥐어보고 다음에 파워 엘리트를 일독해보려고 합니다. 둘 다 상당한 분량이라 글을 쓰는 지금도 주저되는 마음이 한켠에서 솟기도 하는데요.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읽었던 이 책의 느낌과 해석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 같아 양심에 찔리기도 하는데요. 어찌됐든 할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렸던 이 위대한 사회학자의 일대기를 모두가 용기내어 접해 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식인들이 왜곡된 권력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이익을 찾아 추종한다는 것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에서조차 변명이 되지 못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들에게 거창한 소명 의식이나 책임 의식을 한 번 더 유념하라고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권력에 부역하는 지식인'이 만연된 사회가 만인의 이익이라는 공익에 봉사할 수 있을지는 불명확하다고 여겨집니다. 이처럼 건전한 비판과 자정 능력을 상실한 민주주의가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될지는 지난 역사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 여러 사회학자들에게 밀스는 사회학의 한계에 맞서는 ‘반역‘의 상징이었다

밀스는 어떤 자율적인 학문 분야를 정하려는 충동이 제도적 고려 때문이고, 그것은 사회 연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발전시키는 데 해롭다고 믿었다

밀스는 지식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결과들이 방법론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사상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고찰하는 것은 사회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방법과 목표를 반성할 수 있게 했다

인식론과 방법론의 다소 추상적인 철학적, 이론적 문제들을 추구하는 동안 흡수한 특정한 사회과학 전통들은 그를 급진주의자가 되도록 도았다

1942년 12월 <뉴리더>에 실린 밀스의 논문 <집산주의와 혼합경제>에서 미국 사회구조에서 전시의 경향에 관한 깊은 우려, 시대에 뒤처진 순진한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권력과 사회구조에 관한 질문, 그리고 민주적 사회주의 대앙ㄴ에 대한 모호하지만 열정적 지지가 바로 그의 정치적 관점에 대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만 했다

민간 기업을 위한 경제적 자유는 민주적 정치제도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체임벌린의 생각을 밀스는 날카롭게 비판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지식인들은 현대의 여러 경향에 저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적 부류라고 밀스는 주장했다. 그들의 저항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이해관계를 섬기는 일반적인 개념의 정체를 폭로할 ‘진실의 정치‘라는 형태를 띠어야 했다

사회의 주류에서 내몰린 지식인들은 새롭게 출현하게 될 경제, 정치, 군사 엘리트가 지배하는 전후 질서에 대한 유일한 반대 세력이라고 밀스는 전시의 저술들에서 주장한 바 있다

밀스는 1950년대 전반기 대부분을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 즉 사회속에서 지식인의 적절한 역할을 심사숙고하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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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교양 이론 (양장) - 지식사회의 오류들
콘라트 파울 리스만 지음, 라영균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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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빌라흐 출신의 콘라드 폴 리스만은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철학자이자 문화이론가로 그는 모교인 비엔나 대학에서 오랫동안 윤리철학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철학 심포지엄인 '필로소피쿰 레흐'의 학술 책임자를 맡았고 오스트리아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는 역사가인 프리드리히 히어의 연구 재단의 책임자라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비엔나 대학의 철학과 교육 과학의 연구 책임자로 재직하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동 대학의 교육 과학 학부의 부학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는데요.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방송의 토론 패널로도 참여해 대중에게도 얼굴을 알린 지식인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대중 매체들을 통해 자신의 모국과 유럽 전반의 인문학 쇠퇴에 대해 수차례 경고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전통을 갖고 있는 유럽 대학의 소위 '미국화'에 대해 그는 날선 비판을 해왔으며, 대학이 시민의 교육 문제에 등한시하고 연구비를 위한 기업들의 연구소화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우려깊게 바라보고 있는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전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문학 쇠퇴에 대해선 모두가 할말이 많겠지만 그는 이 글을 통해 가장 큰 주범으로 '신자유주의'를 꼽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된 문제는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Theorie Der Unbildung"으로 지난 2006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8년 1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앞서, 살짝 언급했듯이 리스만은 이 글을 통해, 근래들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지식 정보 사회'의 진면목과 그에 따른 허상과 각 국가들의 중요한 교육을 책임져야만 하는 대학들이 어떻게 자본과 신자유주의에 의해 변질되어 왔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소위 지식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문법인지에 대해 저자는 매우 단호하게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진정한 지식을 위한 학문적 토대를 찾아 볼 수 없는 작금의 유럽 현실에 대해, 역자의 해석이긴 하지만 '몰교양'이라는 단어로 빗대어, "정신의 실종 혹은 정신의 부정"으로 마찬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글의 3장에서는, 사실상 교양을 갖춘 시민 계급은 현재로선 사라졌다고 봐야 하며, 노골적인 자본의 재창출과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마치 적법한 공장의 노동자를 찍어내는 것과 오늘날의 허망한 지식 사회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진정한 지식의 실종을 인문학의 부활로 해결해야 한다는 예측할만한 주장을 저자는 펼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진정한 지식의 추구 혹은 학문의 연구라는 것이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끊임없는 성찰과 진지한 태도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고, 오늘날의 범람하고 있는 수많은 오락 거리들과 시민들이 습득된 지식으로 사회를 통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체제 지배적인 반대가 뒤를 따랐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자가 밝히고 있는 이와 같은 '지식의 쇠퇴'에 신자유주의가 배경이 되었던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여기서 굳이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부각시키고 싶진 않지만, 자본과 기업의 논리에 의해 사회와 시민들이 지배당해 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을 어떤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문장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한 본질은 거의 오십보백보 일텐데요. 유럽이 지난 역사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던 계몽주의를 꽃피우기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지독한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이 글 7장에서 논하는 바와 같이 "계몽 절대주의는 과학 지식의 혜택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었지만 국민을 이 지식의 중심과 그 과정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국민으로부터 지식을 소외시켰다는 음모론으로 국한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가 분명 각자의 시민들이 자본주의에에 성공적으로 부역하고 심지어 내면화하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서 '진정한 지식'을 이들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은 분명합니다. 체제에 지속적으로 순응하고 반항하지 않는 국민들을 길러내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적 체제 안정에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저자의 여러 나레이션 중에 지식의 진정한 쓰임새와 관련된 '세계에 대한 통찰 Durchdringung der Welt"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7장에서 이어지는 대학 내지는 사회가 마땅히 길러내야 하는 엘리트들에 대한 교육과 반대로 소외되어가고 있는 일반 시민들에 대한 리스만의 분석은 바로 언급한 이 세계에 대한 통찰이 어떻게 무력화 되고 있는 보여주는 현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사회를 움직이고 발전시키는 지식들을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엘리트들에 집중시키고 다수의 시민들에게는 그저 일자리를 위한 교육만을 시키는 차별적인 행태가 과연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진정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떠한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지 지금으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전반적인 이러한 결과물이 의도하지 않은 형태로서, 우연하게 도출된 우민화(愚民化)인지 아니면 "세상을 통찰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자각한 시민들에 대한 우려스러운 시선"인지는 여기선 불명확하다는 식으로 갈음하겠습니다. 결국 앞선 의심을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지식 사회라는 문법과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탄생한 인터넷 망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너저분한 지식들'이 진리인 마냥 넘쳐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다 생각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진지하게 구현되지 않은 지식 산업이라는 미명이 산업사회 개념을 잠정적으로 해체하거나 대체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이러한 지식 발전 매키니즘이나 디지털 혁명이 산업화 시대 생산양식의 근본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소모적인 지식 범람이 사회에서 어떠한 혁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오류라고 볼 수 있고 설사 진정한 지식 산업 내지는 지식 정보 사회가 완벽하게 구현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 규모로서의 생산 자체를 완전하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애초에 자본가들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회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계층들의 이 '지식' 함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는 매우 다른 단어이고, 그러한 구분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은폐되어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지식만을 '정당한 지식'이라고 규정하고 그 외의 다른 학문과 지식들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던 것이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저자는 이 부분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단순히 '인문학의 부활'로는 현실을 타파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교육 받는 시민을 길러내는 현재 대학의 위기, 특히 유럽 대학의 거대한 자본주의화로 판단할 수 있는 '볼로냐 프로그램'에 저자가 대학 관계자로서 이를 비판하고 있는 것도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연구 성과급 체계의 유럽 대학의 미국식 프로그램인 이 볼로냐 프로그램은 소위 인문학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여러 저명한 대학들을 위기에 몰아넣었고 미국 대학 시스템과는 다른 전통적이고 학문지향적인 유럽의 대학 토대를 뒤흔든 사건으로도 유명한데요. 자본과 기업이 대학에 일일이 스며들어 그들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적 봉사'를 돈을 통해 요구하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학문 연구라는 대학들의 고유한 영역을 연구비라는 명목으로 줄을 세우는 것은 사실상 건강한 사회 체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쯤에서 우리 시민들이 이러한 노골적인 자본주의화가 주입된 대학 교육을 원했느냐고 질문을 던져 본다면 차마 입으로는 말을 못할수도 있겠지만 속으로는 대부분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연구비에 따른 대학의 서열화가 그것에 완전히 소외된 인문학의 현실이 바로 저자가 답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지식 사회 그리고 대학의 서열화 및 비즈니스 계열을 제외한 다른 순수 학문들의 소외가 결국 현재 우리가 맞이한 학문의 위기로 점철되어 왔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시민들의 효율적인 소비와 공정한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사회체제에 이러한 논리를 주입시켜 왔습니다. 경제학과 사회학을 분리해야 하는 것이냐, 아니냐에 각자 논박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을테지만 여기서 분명한 점은 경제 전반이 자신들의 주장에 반론을 세우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고, 그들 스스로 고립된 전문주의로 말미암아 정작 필요한 사회와의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단순히 지식 사회 물음에서 뿐만 아니라 '지식은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는 저 자본주의자들과 그를 신봉하는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한데요.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일정한 수의 엘리트들을 배출해야 한다는 저자의 함의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다만, 소수의 지식을 처리하는 데 있어 엘리트가 유리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내각의 비엘리트 관료들이 순조롭게 대공황을 이겨낸 것으로 보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의 재조정과 시민 교육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망각하지 않고 말장난에 불과한 '지식 사회' 놀음을 냉정하게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이 글을 통해 이와 같은 '몰교양'이라는 시대적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책임이 없는 것에도 무조건 '너희들의 책임'이라는 익히 알만한 사람들의 주장을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저자들의 터무니 없는 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진정으로 '세계를 통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모두가 이에 동의하시겠죠.


-자리를 빌어 알라딘에 대해 쓴소리를 해야겠는데요. 저는 얼마전에 이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산을 하고 유유히 집에 와서 확인을 해보니, 또 앞장에 "증정 한울"이라는 사각형 형태의 도장이 찍혀 있네요. 아니 대체, 증정품을 왜 매입해서 저와 같은 애꿎은 독자에게 되파는 겁니까? 검수 좀 제대로 할 수 없는 건가요. 물론 구입시 확인을 제대로 안한 일차적 책임이 저에게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몰교양‘이란 단순히 지식이 없는 무식함이나 특정한 형태의 반문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철저하게 교양 이념과 분리해놓고 대하는 것을 말한다

아도르노는 한때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진정한 교양이 무엇인지 논증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그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니라 데카르트 학파의 철학과 그 철학의 체계적,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지식을 ‘소환‘할 수 있는지 알고 있더하도 그것은 늘 피상적으로만 아는 사전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지식사회가 모든 인식의 목표에, 진리 혹은 적어도 그와 연관된 분별에 도달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 그것이 바로 지식사회의 역설이다

지식이 쓸모가 있는지는 결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처한 상황의 문제이다

빌헬름 폰 훔볼트의 말처럼 인문학은 공부하는 사람의 ‘고독과 자유 Einsamkeit und Freiheit‘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혀 다른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식의 산업화를 이제는 사회의 마지막 피난처로 파악한 보편적인 과정을 따르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지식 엘리트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또 있는데 사람들을 노동과정에 적합하게 만들고 오락산업에나 어울리는 정서를 갖게 하는 부질없는 ‘단편 지식 Stickwerkwissen‘이 바로 그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의 관점에서 보면‘인식하는 인간의 사유는 항상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인간 정신의 노력‘이며 인간의 행동은 ‘자기 안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는‘의지의 노력이다

기업 친화적인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확산되는 현상을 보면 한때 대학다움을 갖추고 있던 기관들이 이제는 모두 허울만 대학 이름을 걸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계몽 절대주의는 과학 지식의 혜택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었지만 국민을 이 지식의 중심과 그 과정에서 멀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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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낭만주의
칼 슈미트 지음, 조효원 옮김 / 에디투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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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도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법학자이자 철학자 및 사상가인 카를 슈미트는 그가 주장했던 정치와 법에 대한 이론 및 고유한 철학적 성과들로 꺼지지 않는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순진한 자유와 정치를 혐오했으나, 스스로는 후에 히틀러의 나치에 적극적으로 부역하며, 유대인들을 정리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에 동의했던 것만으로도 악명을 떨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크 릴라는 그런 슈미트를 '도덕적 최저점'에 있는 인물로 규정하기도 하였는데요. 1945년 독일의 패전 이후, 미군에 의해 주도된 전범 재판에서 혐의 없음으로 풀려나고 나서, 자연인으로 돌아온 그는 말년에 이르러 나치시절의 자신의 행적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시대의 인물인 알렉상드르 코제프가 "대화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독일인"이라고 언급했던 것을 보면, 이러한 그의 참담한 도덕성과는 달리 학문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는 철학자라는 당시 저명인의 범주에서 세인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샹탈 무페와 지그문트 바우만을 통해 카를 슈미트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진보에 있는 사상가들이 카를 슈미트를 전체주의의 반면 교사로 그를 여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순전히 학문적인 측면에서 법에 대한 슈미트의 흥미로운 이론들이 어느정도는 일독의 필요성으로 답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처럼 "비도덕적 인물의 천재적인 측면"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 일개 독서인으로서 가타부타 말을 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시대의 천재가 항상 만인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님을 고려해 볼 때, 각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원제, "Poltische Romantik" 으로 1919년 처음 출판되었으며, 1925년에 제2판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번역된 책의 서지 정보에 의하면 이 책은 1998년의 제6판을 기반으로 번역되었고, 2020년 8월에 초도 번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슈미트의 이 글이 원만한 번역에 비해 일독의 난해함을 갖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저자가 규정하는 '낭만'과 '낭만주의'에 대해 이론적인 측면에서 명확한 기준이 다소 모호한 것은 일견 아쉬움으로 다가왔는데요. 슈미트가 철학적으로 규명한 '실재'가 사회와 역사의 혼합물임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실재가 부재한채로 '내키는대로 주관화'하는 일련의 움직임들을 낭만주의로 보는 것이 기본적인 인식틀로 여겨졌습니다. 즉,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 반대이면서,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반대"라는 그의 인식은 일종의 '대립론'이라 치부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분명한 요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이 글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이후의 나폴레옹 전쟁으로 귀결되어 나타난 복고주의 체제인 빈체제를 앞선 것의 대립물로 놓고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당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500년이 넘은 카톨릭의 존재를 낭만주의자들이 부정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여긴 지점을 "역사는 결코 단절될 수 없다"는 이해하에 낭만주의자들이 갖는 "역사적 주관성" 비판하는 데, 메테르니히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드리희 폰 겐츠와 아담 뮐러의 정치적인 행적과 특히, 아담 뮐러의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들을 고찰하면서, "당시의 난폭한 프랑스 혁명의 시재적 결과물"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상세히 분석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정치사상적 서사로 글 전체가 점철화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독자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당시에 극명하게 도래한 자유주의적 낭만주의는 저자인 슈미트의 입을 통해, "개인과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의 고삐풀린 관념체계로 이해되면서 더 나아가, "역겨운 천민들의 정치"라고 일컫는 프랑스 혁명으로 연결되기도 하는데요. 그에 의하면, 이 낭만주의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일개 개인들이 국가와 다름없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여겼으며, 이들에 의해 자행된 무분별한 헌법의 자의적인 해석과 그에 따른 개헌 역시, 슈미트는 매우 비판적 어조로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슈미트가 프리드리히 슐레겔을 통해 살펴본는 국가 개념의 본질이 과거의 역사의 산물로서, 또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객관화된 주체로서 강조되고 있었는데요. 앞선 낭만주의자들의 이론적인 측면에서 도화선이 되었던 장 자크 루소를 유독 꼬집어 비판하는 것은 그에게는 마찬가지로 동일한 기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위대한 개인주의'와 '자유 의지'를 잉태했던 이들을 낭만주의라는 외피로 규정해 탈역사적 혹은 충동적이고 감정에 사로잡힌 무리들로 인식하는 것이 과연 명확한 대립된 개념으로서, 일차적인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인지는 약간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18세기 이후, 철학과 사회에서 전유럽의 계몽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전통을 어느 정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는 이 자유주의적 낭만주의에 대해 슈미트가 가졌을 반감은 충분히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시대가 변했다"는 문제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있어서 유럽의 저명한 인사들이 가졌던 감정은 각기 상이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글 초반에서 언급되는 낭만주의의 시초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인과 독일인들이 혁명에 대한 감정과 태도가 극명하게 달랐던 것도 슈미트의 언설로 통해 상당 부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만, 에드먼드 버크를 통해, 어찌됐든 장 자크 루소를 매섭게 깎아 내리는 것과 그것이 혁명의 외형적 모습이라 할지라도 '천민들의 정치'라고 규정되는 것은 현대인의 감성을 가진 저로서는 다소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는데요.요. 반대로 "빈체제 이후, 다시 혈통을 내세우는 자들이 도래했다"고 언급되는 부분에서 슈미트의 명확한 태도가 보이지 않는 점 또한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표현 정도로 일단락을 내리려고 합니다만, 그의 이후 행적들로 봤을 때, 특히 카톨릭에 대한 기존(개혁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의 "혈통있는 자들"의 인식을 어느 정도 동조하는 것으로 느껴지디고 했는데요.. 이러한 인식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렇게 나누기 좋아하는 단순한 정치적 관념으로서의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앞서 언급한대로 카톨릭은 전통주의적 입장에서 그 역사를 존중받을 만하다는 것이 슈미트의 해석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은 국가와 정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역사의 실재성과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폭력이나 힘으로 무너트려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하는 것에 이르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런 슈미트의 입장은 아담 뮐러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읽혀지기도 하는데요. 자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는 당시의 아담 뮐러는 대표적인 낭만주의자였고, 혁명을 견인한 자유주의적 낭만주의가 종래에는 여러 정치적 지형들을 통해 '보수주의'로 귀결되는 것으로 고려했을 때, 그도 역시 보수주의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아담 뮐러가 다소간 에드먼드 버크의 지지자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뮐러의 대표적인 논저인 "대립론"에 주목하고 있는 슈미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소회로서 밝히고 있는 뮐러의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떠들썩했던 18세기 말이 우리에게 남겨준 온갖 문서, 대화, 행동 들 가운데 지금까지 어느 하나 완결된 것이 없다"고 피력하는 것은 혁명에 대한 낭만주의자의 눈물나는 재조명에 대한 노력과 다시금 이 혁명의 주옥같은 언어들을 되새김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슈미트 스스로는 이 아담 뮐러의 사상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가 다소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뮐러가 보수적인 지주들로 구성된 반대파에도 줄을 대고, 동시에 보수주의에도 손을 내민 것으로 보아 아담 뮐러의 낭만주의는 스스로의 이익과 결정에 수반하는 것으로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개인의 고유한 결정 내지는 이익에 대해 슈미트도 어느 정도 애덤 스미스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만, 슈미트가 평생에 걸쳐 겉으로는 '일관된 주의'를 옹호했던 것으로 보아 낭만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혁명 이후, 슈미트는 빈체제에 의한 복고주의 시대에서 '정치적 낭만주의'는 추상적 합리주의에 대한 역사적 반동에 종속되었다고 평가하고 이를 헤르더와 보날에 이르러, 2장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논증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점철된 도덕주의자였던 로비에스피에르가 실로 무지했던 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개인적 욕망이었을 겁니다. 혁명의 주역들이 전부 자신과 같았으면 혁명이 그런식으로 귀결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처럼 그의 인간에 대한 진정한 무지가 역사의 아이러니로 남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독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혁명에 반대하는 이들이 강고하게 갖고 있던 생각은 "인간 사회는 이미 역사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가 그 자체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을 갖고 있는 것이죠. 또한, 이것은 혁명 열사들의 무질서를 바로 잡는데에 역사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축이 무너진 인류 공동체에 대해 민족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고 보는 점은 꽤 흥미롭기도 하였습니다. 민족 개념의 탄생이 어떻게 보면 혁명의 소산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혁명의 부정적인 파급을 치유하기 위해 도출된 것이 민족이라는 그의 해석은 루소가 이를 오용했다고 다시 한번 규정하면서, 이것은 오로지 역사적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단락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2장 전반은 역사와 국가의 연계라는 인식적 측면에서 슈미트가 공을 들인 부분이기도 한데요. 마찬가지로 이 역사와 국가간의 관계는 무엇보다 합리적인 관계이고 이를 다시금 재해석하거나 기존의 인식적 체계를 기피하는 것을 낭만주의의 숨길 수 없는 본질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낭만주의가 비합리적인 어떤 주체성에 대해 집중하고 뒤이어 3장에서 논의되는 '인간의 충동적인 감정적 소산'으로서의 수많은 개인주의들이 역사의 흐름을 배격하는 움직임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그려지고 있기도 한데요. 앞선 빈체제에 따른 복고주의를 전통과 역사에 기반한 기존의 공동체적 사회체계로 저자인 슈미트와 동일하게 같이 바라봐야 할지는 지금으로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슈미트가 '보수주의'라는 단어를 끄집어 내어 그가 줄곧 잘했던 낭만주의의 대립물로 체계를 확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라는 단순한 이원화된 논리들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꺼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18세기 말을 거쳐, 19세기를 침윤시킨 낭만주의적 서사들이 "주관화된 기연주의"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은 그의 일관된 가치 체계에서 일견 이해되기도 합니다만 낭만주의자들의 주관성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기연주의를 꺼내들 필요는 있었을지 약간 의문이 듭니다. 무신론을 비판했던 말브랑슈와 같은 철학자들과 그것에 기반한 기연주의적 입장들과 범신론 전반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러한 일부의 비판적 사조속에 혁명의 단어와도 같은 일반 의지에 군주를 종속시키려고 한 일련의 움직임 또한 그는 점진적으로 비판합니다. 프랑스 혁명에서의 수많은 천민들과 반대의 군주는 극명한 대립물로서, 이러한 인식의 토대가 아담 뮐러의 것이라 할지라도 슈미트 역시 성공적으로 이를 받아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간접적으로는 인용된 에드먼드 버크를 통해 슈미트 역시 혁명을 경멸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자신의 정치적 관념에서가 아니라 실재의 측면, 합리의 측면, 전통의 측면에서 거부했던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이 글에서 전반적으로 진술되고 있는 아담 뮐러와 같은 수사에 대해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낭만주의자들이 기존의 전통주의와 그것들을 따르는 여러 주제들을 관념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었던 것은 낭만주의 자체가 그 특별한 주관성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사상에서 다소나마 일관성을 결여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별반 상관없는 카톨릭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하고 싶어했던 것이나,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형이상학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논리적 명료성을 답보하지 못해 시대적 요청을 위한 중대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도 결점이자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부족한 이해로 왜 자유주의적 낭만주의가 왜 보수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일종의 단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앞서 소개했던 바와 같이 혁명의 실패와 그에 따른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보수주의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각국의 정치 무대에서 보수주의가 얼마나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부르짖는지 따져보면 얼마간 그러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역사의 개인적 해석"조차도 용인받는 시대이고,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시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하층 계급들이 일으킨 혁명의 그 결과물이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라는 함의에 이르기도 하였죠. 물론 과거 보수주의의 이력에서 개인의 자유란 오로지 힘있는 자들의 자유이기는 했습니다. 무덤에 있는 슈미트가 개인들의 자유가 중요시 되는 이 사회를 나약하고 부질없는 것으로 볼지는 모르겠으나, 반대로 국가와 공동체의 필요성 또한 자유주의의 왜곡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앞선 인식과 마찬가지로 힙있는 자들의 국가론과 일반 시민의 국가론은 명백하게 상이한 차이를 갖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글을 마무리 하기에 앞서,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아담 뮐러, 겐츠, 말브랑슈와 보날과 같은 당시의 사상가들에 대한 기초적인 인지없이, 슈미트의 서사에 기반해 서평을 썼기에 매우 부족한 글이 되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더불어 번역은 대체로 나무랄데가 없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 역자의 후기는 모두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번역서에 대한 판권 문제에 대한 한국 출판계의 아쉬운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구입은 출간된 8월 즈음이었는데요. 그동안 다른 글들을 읽느라 손을 대지 못하고 이제야 겨우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책은 얇은 비닐에 싸여져 있었는데요. 비닐이 없는 책은 아마도 중고라 여겨도 되실 것 같습니다. 구매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사실 카를 슈미트가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간략한 요점은, 아마도 순진한 자유주의와 입헌주의를 주장하는 낭만주의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자유를 경멸하고 헌법의 예외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그의 일관주의를 고려해 봤을 때, 이는 크게 어긋나지 않은 이해이기도 합니다.

가령 국가가, 민족 또는 개별 주체가 지고의 심급이자 결정적 요인으로 등장해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정식을 제안한다. 낭만주의는 주관화된 기연주의다

1848년 독일 부르주아 혁명 운동은 낭만주의를 자신들의 정치적 적수, 즉 반동적 절대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여기서 메테르니히는 낭만주의를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경향으로 보고 있다

17, 18세기의 고전주의에 대한 대립은 루소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가 감정적 왜곡의 대상으로 삼았던 당대 철학의 여러 개념들 가운데 일부는 칸트 철학에서, 그리고 다른 일부는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게 - 이것은 그 자체로 반동의 표현이었다 - 에서 차용했다는 사실이다

복고주의 시대의 이른바 ‘정치적 낭만주의‘는 추상적 합리주의에 대한 역사적 반동에 종속되어 있다

기연주의는 모든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속이려는 것일 수 있다

인간의 행위는 어디서 성립하는가? 기연주의 체계의 윤리에 따르면, 그것은 오직 기분의 움직임 속에서만 일어날 따름이다

바꿔 말해, 낭만주의자는 어떤 기분을 느끼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기분을 다른 어떤 ‘평볌한‘활동보다 높이 평가했다

혁명은 "사실"기독교적인 것으로서, 이교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절대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버크에게 혁명은 신의 법과 인간의 법에 대한 혐오스러운 모욕이었다

그러니까 정치적 낭만주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국가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역사적-정치적 현실 속의 국가는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낭만 적 주체의 창조적 활동을 위한 기연, 즉 시와 소설 혹은 순전히 낭만적인 기분을 위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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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꾸러미 2022-10-02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베터라이프 2022-10-04 00:00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 슈미트에 대한 상당히 인상적인 비평을 쓴 어느 블로그 글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제가 그 블로그 주소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ㅜㅜ
개인적으로 슈미트는 알면 알 수록 대단한 느낌과 함께 실망감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후자는 나치에 대한 부역과 관련된 일화들인데요. 아마 자신의 이력에 대한 것들을 슈미트가 변명으로 일관한 것을 아주 잘 아실 겁니다.

책꾸러미 2022-10-0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칼슈미트가 나치 부역자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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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의 시대 - 통제하다 평화롭다 불안하다
아르망 마틀라르 지음, 전용희 옮김 / 알마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벨기에 출신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진보주의 학자로 알려진 아르망 마틀라르는 미디어와 문화 및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특히, 역사와 세계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는 미국의 록펠러 재단과 연계된 피노체트 정권 이전의 칠레의 제도 개혁에 자문 위원으로 나섰으나, 1973년 미국 리처드 닉슨 정권에 의해 자행된 칠레 군부의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 이후, 칠레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그의 이력을 통해 살펴보면 자유주의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후 벨기에가 아닌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37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학업을 다시 이어가, 노력끝에 파리 8대학의 방문 학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파리8 대학의 정보통신학과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1983년과 1997년 사이에는 프랑스 렌2 대학의 정보통신학과에서 교수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97년부터 2004년까지 파리 8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다 2004년 9월부터 동 대학의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이 책은 원제, "La Globalisation De La Surveillance"로 지난 2007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2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만, 이 글은 현재 국내에서 절판된 상황입니다.

국역된 책의 제목으로 인해, 글을 읽기전에는 9.11 테러 이후에 불어닥친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안보 강화를 다룬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요. 사실 이 글의 정확한 요점은 "오늘날 점차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안보에 대한 인식과 과거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이어진 다수에 의한 권리 및 그에 따른 공화주의"가 미국과 같은 헤게모니 국가에 의해 어떻게 침탈당했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는데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업의 이익과 그것을 보장하고자 하는 국가의 안보 함의와 이것이 각국의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분석하는 광범위한 안보에 대한 본질을 추구하는 일종의 르포르타주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글에는 알제리 독립 시기에 자행되었던 알제리인들에 대한 프랑스 군부의 조직적인 납치와 고문,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던 각종 조직과 시설 등을 다루면서, 비슷한 맥락으로 미국이 국가 안보와 국익을 매개로 자행했던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의 조직적인 군사적 개입 및 CIA와 같은 안보 조직에 의한 작전 등을 거의 가감없이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에드먼드 버크의 초기 사상에서도 기인한 것이지만, 무질서한 대중들에 의한 사회 체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권력층의 요구는 통제와 질서의 붕괴 가능성에 따라 안보 개념이 탄생한 것으로 1장과 2장의 논증을 통해 저자는 규명하고 있는데요. 가브리엘 타르드와 귀스타브 르 봉에 의해 확산되었던 '조직된 대중' 혹은 '무질서한 군중'에 의해 사회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당시 지식인들과 지배 계급의 공포는 현재 우리가 짐작하게 되는 공포보다 지대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지금도 사회 질서와 체제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질서 자체를 수호하고자 하는 테크노크라트와 엘리트들이 이러한 관념을 견고하게 지지하는 것도 분명합니다. 이것에는 저들의 사활적 이익이 체제적 안전이라는 틀안에 교묘히 숨겨져 있습니다만 그것을 떠나 설사 체제 자체가 건전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저들의 우려를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자유 세계의 리더라는 미국과 현재의 이 체제를 같이 고민하고 만들었던 서구 유럽 국가들이 자유주의적인 이론적 토대하에 '현실적인 살'을 갖다 붙인 것이 지금까지 국제 체제가 만들어진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국내 정치적 환경에서 저들이 자신들의 침해받지 않는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공화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절충해 받아들인 것이지만, 헌법의 존재 의미를 되도록이면 언급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현재의 안보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사회 제도와 그 태도의 기본적 인식에 있어서 전자와 같은 유사한 궤를 같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헌법이 먼저냐, 체제가 먼저이냐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물론 이것을 후자가의 입장이 이데올로기화 되어 변질된 자유주의적 인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보이는 분석과 마찬가지로 위의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타국과 국제 체제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에 대해선 다소 주저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즈음에서 소위 현실적 맥락의 보수주의라고 부를 수 없는 보수주의자들이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죠. 이처럼 자신들의 국가 체제에 있어서 현재의 토대를 지키려고 하는 일차적인 요구가 처음에는 타국에 - 미국에 있어서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대해 명분 없이 개입하는 것을 꺼려했으나, 이 보수주의자가 아닌 자들에 의해 환경 자체가 백팔십도 변하게 됩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냉전시기의 이 보수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그 가운데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들도 있었지만, 당시의 소위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자들은 명확히 말하자면 거의 '반공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즉, 민주적 가치에서 흔히 이해하고 있듯이, 정치에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결코 균질화될 수 없는 것인데, 이것을 넘어 사회 전반의 건전한 비판에도 이'공포의 레드'를 노골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아르망 마틀라르는 이 글의 6장에서, "매카시즘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같이 강력한 보수주의"라는 표현으로 이를 수식하고 있었는데요. 저자의 이러한 인식에 충분히 동의를 하게 됩니다. 최소한의 부조리를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면서,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기존의 지배 엘리트들이 다수의 대중이 모인 그 '집합체'를 본질적으로 혐오하고, 잊지도 않은 혁명의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철지난 이상주의로 몰아왔는데요. 이 철저한 반공에 대한 노스텔지어는 지금도 강한 생존성을 갖고 있다 여겨집니다. 물론 시민의 자유를 포함한 민주주의에서도 충분한 함의를 갖고 있는 '자유주의'에 대해 저 역시 크게 긍정하고 있습니다만, 저 반공주의자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하는 자들)에 의해 규정된 자유(소수 기득권의 자유과 자유 시장 담론)와 다수 시민들의 자유가 그 맥락이 다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모두의 자유를 함의하는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안보 욕망이 오늘날 국가 체제 안정과 주변의 정치적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소수 힘있는 국가들에 의해 -특히 미국-  조직적인 군사적 개입 등을 나타난 것입니다.

이 글의 4장에서는 앞선 국가들의 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비대해진 안보 조직'에 대한 성역화를 먼저 꼽아 볼 수 있겠는데요. 미국의 CIA와 같은 경우 무조건 의회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지만, 이 정보 조직들은 기어코 헌법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동안 CIA는 테러리스트로 오인해, 프랑스와 미국의 시민권자를 납치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의회와 사법 조직이 마땅히 경고하고 응징해야 했음에도, 이들에게는 아직도 치외법권적인 안전망이 존재합니다. 사실 이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장차 시민들을 억업하거나 형식상은 민주주의이나 거의 '과두제에 준하는' 체제에서 시민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이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갖을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정보 조직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견제가 이뤄지고 있다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직화 된 과정들이 과거 안보에 대한 프로파간다의 확립과 카를 슈미트와 같은 '예외 법칙'을 주장한 지식인들에 의해 마련되었는데요. 더욱이 이 슈미트의 논리들은 이후,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권 국가' 혹은 '종속 국가'에 별다른 도덕적 자책감이 없이 군사력을 투입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안보가 위협받는 비상한 시기이니 마찬가지로 비상한 작전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이죠.

다음, 8장에서도 논하고 있는 것처럼, 자유시장과 그에 따른 세계화에 따라 국가의 체제 안보는 더욱 중요한 관념이 되었습니다.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오늘날과 같은 긴밀히 연결된 시대에는 주변 국가 뿐만 아니라 견고하게 구축된 체체 전체의 안전이 중요하게 되었는데요. 신자유주의 시기에 정치가 경제의 시녀가 된 것을 차치하더라도, 주요 경제국들이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막대한 국방력을 투입하게 된 연유에는 이러한 자신들의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2001년 9월 이후 더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자유 시장과 무역을 위한 미국의 강조는 '중동 테러리즘의 축출'과 더불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대로 자유 민주주의는 좀 더 다원성을 지각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동등한 시민들의 권리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가 믿었던 체제입니다. 그런데 테러리즘의 시기라는 명목하에 안보 조직이 정치의 장이나 시민의 활동의 분야에 까지, 그 합법성을 운운하며 따지고 들려 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다수는 현재의 미국 정치가 민주주의하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으니 전자와 같은 터무니 없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특히 우리의 민주주의가 소위 '정치적 톨레랑스'를 잃은지 이미 오래된 상황이면서, 또한 정치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지 40여년이 넘었기에 이것을 마냥 안심하면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칠레에서 추방된 경험을 익히 겪었기 때문에, 안보에 대한 맥락이 어떤식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10장에서 논하고 있는 "시민 보호의 취약성"은 단순히 부풀려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요. 유럽 연합이 2001년 이후 개인정보 수집과 관리에 대한 공격적인 대책을 신속하게 통과시킨 것은 이를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러한 이행 가운데,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들을 구분하고 더 나아가 유럽의 이민자들을 테러리즘의 배후로 인식해, 이들에 대한 시민권과 관련된 가혹한 조치를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도 시시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유대인을 비롯한 비 게르만계 주변 이웃의 시민권을 침해하면서 이들을 격리시킨 나치 독일의 사례를 보면, 이와 같은 반이민주의와 그에 따른 강력한 안보 함의는 다소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민들의 안전이 국가의 일부 조직에 의해 인질로 잡힌 경우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더욱이 고도화 되어 가고 있는 네트워크 시대에 개인 정보와 기본 권리가 기업과 국가 조직에 들어가 있는 상황은 헌법의 유명무실화를 통해 달성되고 있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현실적인 시민들에 의한 국가와 국가가 주도하는 안보 정책의 현실적인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일종의 중립적인 민간 감시 기구를 만들어서 헌법이 이들에 대한 법적인 감찰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각국의 안보에 대한 매파가 득세하지 않도록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 정치 일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작금의 세태 자체가 다음 세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정치 환경의 개선과 무엇이 민주 국가에서 제일 필요하고 시급한 것인지를 공화주의와 헌법에 입각해, 다시금 고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철지난 이상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여겨지는데요. 또한, 이 지점에서 지배 엘리틀이 다수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자각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안전사회는 18세기 후반 이후 스코틀랜드 출신의 계몽주의자 애덤 스미스와 중농학파의 수장 프랑수아 케네가 초석을 쌓은 자유주의와 혼합된 형태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군중에 대한 토론은 언론 자유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통해 획득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표현법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징조였다

귀스타브 르 봉의 의견에 따르면, 군중은 프랑스대혁명과 함께 시작된 평등주의에 대한 망상이 승리하면서 불거져 나온 것에 불과했다

가브리엘 타르드는 ‘여론과 군중‘에서 군중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다시 강조한다

이 같은 조치는 1798년에 시작된 ‘외국인 단속법과 치안유지법 Alien and Sedition Acts‘과 동일 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 법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수천 명의 미국인을 구속하고 독일 출신 미국 시민권자들의 워싱턴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물로 근방 5킬로미터 내에 접근하는 것까지 차단했다

테크노크라시라는 용어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활동하던 윌리엄 헨리 스미스가 1919년 잡지 산업 경영 Industrial Management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들의 기대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영원한 전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발터 밴야민은 1930년,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에게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부차적 국가로 분류했다. 그 원인은 19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적 코드와 "정복 없는 미국의 원정문화"에서 나타난다

1954년 8월 4일. 르몽드 Le Monde에서 샤를 라쉬로이는 온건한 민주주의의 프로파간다가 그들의 타깃 중 10분의 9를 벗어난다고 말했다. 반면 엄격하고 강력한 수평 구조의 계급사회에 편입된 프로파간다는 최대의 효과를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쿠바혁명에서 영감을 얻은 크고 작은 혁명의 움직임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속출하면서 미국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남반구의 안전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 간 군사협조 시스템 계획을 재가동시켰다

2년 후, 미국 정보기관들과 닉슨 대통령에게 국가안전보장에 관해 고문 역할을 했던 헨리 키신저와 아르헨티나 독재 정권,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우루과이의 정보부장관들은 납치와 강제 실종 그리고 고문이 자행된 ‘콘도르 Condor 작전‘을 실행했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는가? 라는 물음은 점점 더 절박한 방식으로 서방 국가 지도자들과 기자, 연구원 그리고 대중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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