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지음, 이수영 옮김 / 시공사 / 2019년 12월
평점 :
이 글을 쓴 릴리 브룩스돌턴은 미국 버몬트 주 출신으로 메사추세츠 애머스트 대학을 거쳐 포틀랜드 주립대에서 예술 석사라고 할 수 있는 MFA를 수여 받았습니다. 몇몇의 습작을 제외한다면 2016년, 랜덤하우스에서 출판한 '굿모닝 미드나이트'가 첫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이후 조지 클루니가 감독해 동명의 영화화가 진행된 바가 있습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은 원제, "Good Morning, Midnight"로 지난 2016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10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조지 클루니가 연출을 맡은 동명의 영화를 접하게 되었는데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못한 채, 꼼짝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시청을 마치고 나서 불현듯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웹을 열어 영화를 검색해 보니 원작이 존재했다는 것을 발견했고, 다급한 나머지 알라딘에 책 주문을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소설의 서평을 쓰는 것도 제법 오랜만인 듯 싶습니다.
영화에서는 지구가 어떠한 전쟁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언급되지만 책을 일독하고 보니, 뭔가 '시간의 패러독스'와 같은 현상이 잠정적으로 동시간대의 인물이라 볼 수 없는 어거스틴과 아이리스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지구 위에 떠있는 인공위성들이 먹통이 된다든지, 에테르에서 전혀 지구에서 방출되는 전파가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여느 아포칼립스 소설들에서 보여지는 핵전쟁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소설의 축이 되는 이 시간 왜곡 현상에 대한 배경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주인공인 어거스틴은 스스로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인간 관계에 있어서 오만하고 자기 멋대로인 인물이었습니다.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이 살아온 그동안의 삶에 대해 회한을 느끼면서 점차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데요. "그는 사랑에 대해 북극곰 만큼 아는 게 없었다"는 다소 황당한 문장에 그의 사람에 대한 태도를 짐작할 만합니다. 교제를 하고 있던 여자친구에게 낙태를 권유하다 그녀가 들어주지 않자 어딘지도 모를 남반구로 도피한 것은 작가가 여성이어서 저런 극단적인 남성성을 마련했던 것이 아닌가 잠깐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가 아이리스라는 소녀와의 짧은 동거를 통해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점은 앞선 인물 설정이 나중에는 얼마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지식의 수준으로 평가하는' 어거스틴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 아무래도 타인과의 관계 특히, 가까운 이성과 지근의 사람과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는 여지를 배제할 수 없을 텐데요. 자신의 딸을 낳은 진이 후에 '아빠는 큰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라고 회고하는 것은 이렇게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 생각됩니다. 여자들을 오로지 섹스의 대상으로 여기고 자신의 기분과 의도대로 관계를 제멋대로 끌고 간 그가 진정한 사랑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가 평생 열망해 마지 않았던 대상이 바로 우주였다는 점이 얼마간 이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작가의 의도된 이름(나중에 중요한 이름이 밝혀지므로 이것은 성입니다)인, '설리'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녀는 일찍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훌륭히 성장했고, 끝내는 목성과 갈리레오 위성들의 탐사를 맡은 '에테르'호의 대원이기도 합니다. 전 남편인 잭에게서 어린 딸 '루시'를 키우고 있는 그녀는 이번 임무를 결정하는 데 있어 어린 딸의 존재가 큰 난관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주변을 세심히 살피는 설리는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던 중에 에테르에 수신되던 통신이 끊기고 나서, 심리적 혼란을 느끼는 대원들의 심리 변화에 민감해 하고, 데비와 같은 가까운 이의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등의 다감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가 전해준 천문학 책을 보면서 꿈을 키우기도 했는데요. 아버지에 대한 어떤 원망이나 분노라기 보다는 부성애를 느껴보지 못한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한 연민이 담겨있는 문장이 보이기도 했는데요. 물론 재혼한 어머니가 아이를 낳다가 산후통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그녀의 삶 자체가 대체로 무난했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 남편 잭과의 이혼이 그런 와중에 있던 불행한 결과물이라고 선뜻 판단할 여지는 없지만 그로인해 자신보다 주변을 더 챙기게 되는 인물로 읽혀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어거스틴과 아이리스, 설리와 하퍼와 같이 스토리상 주요한 축인, 이들의 뭔가 운명적인 관계로 인해, 발생되는 감정과 이들의 내면의 변화를 포함한 묘사들이 꽤 훌륭하다고 느껴졌는데요. 책 뒤에 나오는 역자의 후기로 이 글을 단순히 지구 종말에 대한 어떤 기록 정도로 여기는 것은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물론 아서 클라크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등장시켜 뭔가 SF의 외투를 입고 있지만, 사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인생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갑자기 다가온 사랑으로 깨닫는 내면의 변화, 그리고 여자 작가에 의해 그려지는 부성애에 대한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마크 트웨인이 인간은 때론 고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을지라도 우리가 관계를 맺는 사람이 없어서는 그 스스로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꽤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가족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혹은 주변 사람들간의 사랑이 없는 사람이 아무리 엄청난 사회적 명성과 직업적 성취를 쌓는다 할지라도 그가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온전히 해내는 고독한 성찰 만큼이나 타인과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가 마치 제게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이런 느낌을 더 상세하게 쓰기 위해 글의 구조와 스토리 라인에 있어서 좀 더 언급하고 싶습니다만 상당히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저의 알량한 글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일단 저는 영화를 먼저 접하고 이 소설을 일독하게 되었는데요. 책과 영화를 전부 소화하고 나서, 속으로는 꽤 애석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나서 영화를 보시는 것 추천드려 봅니다. 이렇게 순서를 정해 접하시고 나면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렸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143 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트럼프 카드의 ♠를 스페이드라 부르는 것은 검색만 해봐도 아는 것을 '스페이스'로 표기한 것은 뭔가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 어원을 따져봐도 스페이스라는 단어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소녀 아이리스에 대한 인물 묘사와 행동거지, 말투,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작가의 묘사력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랑에 대해 저 북극곰만큼도 아는 게 없었다
어거스틴은 그 무엇보다 지능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다
천문대 밖의 세상은 조용하고 텅 비어 있었다. 그 여자들도 죽었을 것이다. 논문들은 잿더미가 되고 강연장과 천문대들도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추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불안한 미래에 사로잡혀, 설리가 말을 걸어도 온전한 현재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동반자를 원한 적이 없었다. 다른 생명을 돌보겠다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특히나 지금, 그의 생명이 끝나가는 이때에 말이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여기에 있었고 어거스틴도 그랬다. 그들은 함께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거스틴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대부분을 투명 망토를 뒤집어 쓴 사람처럼 보냈다. 조용하고 똑똑하고 조심스러운 소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