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존엄에 대한 요구와 분노의 정치에 대하여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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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역사의 종언’ 내지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구절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랜시스 요시히로 후쿠야마는 일본계 미국인 3세로 과거 첨예한 냉전시기에 견고한 자유주의라는 프레임으로 자유진영의 사상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헨리 키신저와 후쿠야마를 자주 비교해서 보기도 하는데요. 특히 후쿠야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지대한 영향을 끼친 네오콘들이 자주 인용하고 학문적 영향까지 받은 산파로도 매우 유명합니다. 사실 후쿠야마가 네오콘들의 각광을 받는 것에 대한 어떤 개인적 소회를 피력한 바는 없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사소한 조언이라도 했던 것을 보면 그런 인정에 대한 그의 감정을 잠시나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는 코넬대와 하버드 그리고 스탠포드를 거치면서 국제 정치경제학과 국가 발전학과 관련된 연구를 지속해 왔고 관련된 많은 저작들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아주 간단히 그를 설명한다면 미국 자유주의 보수 우파 지식인들 가운데 꽤 중요한위상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지난 2018년 원제, ‘Identity’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최근인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출판한 곳 때문에 잠시 구입을 망설였는데요. 먼저 원서를 구입해서 읽어봐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번역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곳은 없어보였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그것은 번역된 책 제목과 관련된 부분인데요. 다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후쿠야마의 이 책은 현재 미국의 진보에서 집중하고 있는 정체성 정치 및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다 후쿠시마는 예상외로 신자유주의 여파로 인한 불평등 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지는 않습니다. 뭐 소위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 혁명’이라고 이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그만큼 비판적으로 읽어야 될 부분은 분명 있어보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그의 이 글 전반은 꽤 논리적 근거가 있고 전개 자체는 거의 미려하다고 봐도 될만큼 문장의 가독성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유주의 우파의 지식인인 것만은 분명하게도 11장에서 밝히는 ‘진보주의 세력의 한계 내지는 이론적 근거의 불명확성’은 꽤 교묘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의 공화당이 티파티 운동과 같이 극단적으로 변화되고 있음에도 반대편도 사실상 마찬가지였다는 양비론적 근거는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는데요. 전세계를 포함해서 진보좌파가 사실상의 지리멸렬한 상황인데 이 한줌 안되는 이들이 어느 정도로 극단화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근거가 희박하며, 더욱이 과거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혁명을 외치는 진보 좌파는 거의 없다고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미국의 진보주의에 이런 혁명 분자들이 있을지는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후쿠야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제 성장의 수혜를 받은 것은 주로 고학력 엘리트 층이었던 것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물론 앞서 언급해 드린대로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 혁명과는 다소 매치가 안되는 설명이지만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인지하고 (하지만 인식에 대한 약간 다른 관점을 보이지만) 경제적 수준의 극단적 상황을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어지는 논리적 전개로 9장 ‘보이지 않는 인간’에서 “존엄과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라는 존엄성의 문제로 이 경제적 불평등을 그는 해석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경제적 불평등의 그 현안의 문제보다도 그것을 통한 자신에 대한 비참함과 “가난한 것은 곧 다른 동료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과 같다”고 주석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또 여기에는 다음 10장, ‘존엄성의 대중화’에서 과연 존엄성이 일반적으로 대중화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영향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주저하고 있습니다. 물론 10장의 결론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하나의 ‘개인’으로서 갖는 존엄성을 평등하게 인정하는 전제로 한다”는 자유주의 보수주의자들이 보이는 꽤 광범위한 인식을 깔고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후 현재 미국의 정체성 정치를 논하는 11장과 12장을 거치며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를 서로 연계시키는 인상을 다소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전개 과정에는 초반 1장과 2장을 거치며 루소와 헤겔 그리고 투모스라는 개념을 통해 원래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이 “각자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의 규범 및 관습에 뿌리를 둔 특성이 아니다”라는 점으로 규정하고 그가 밝히는 바대로라면 현재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들의 경제적 요구와 그 인식적 판단에 따른 여러 정치 행위들이 그 자체로 경제적 자원 문제와는 무관하며, 바로 여기에는 이 존엄성 개념과 존엄성 정치가 기반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주장된 논의들을 조합해보면 현재의 이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인간성의 상실은 불평등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로인해 초래되는 인간 존엄성의 상실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존엄성 개념을 가지고 현재의 도널드 트럼프의 나르시즘과 그로 인한 포퓰리즘 정치를 해석하는 수단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이 부분은 먼저 11장과 12장에 논의되는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에 대해 먼저 언급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트럼프는 기존의 미국 정치 무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후쿠야마의 표현대로라면, “각 개인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사견으로 히틀러의 나치즘을 찬양하고, 흑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을 피력할 수도 있지만, 정치인이 그것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미국 헌법의 평등의 문제에 위반되는 것으로 그는 이해하고 있었는데요. 이런 인식의 차원에서 고찰해보면 현재 트럼프의 진면목은 정치인이 공적 무대에서 해서는 안되는 언행을 아주 여실히 해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을 그의 지치층들은 속시원하다 혹은 솔직하다 라고 여기고 있지만, 이것 자체는 미국 정치의 후퇴 정도가 아니라 매몰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혹자들처럼 트럼프의 언행과 정치 과정을 “불량배 정치”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정치인의 급과 도를 무슨 도덕주의적으로 언급하기 보다 과거 18세기 계몽주의가 발전시킨 정치 발전 과정에서 이러한 반문명의 (정치적) 잔재물들을 제거하기위해 노력했던 것에 대한 사실상의 반동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이러한 트럼프의 언행과 정치 발언에 대해 그의 지지층들이 자신들의 존엄을 간접적으로 회복하는 일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포퓰리즘 정치 전반이 후쿠야마 역시 (약간 애매하지만) 인정했던 민주주의적 다원주의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를 통해 포퓰리즘과 전체주의가 한 배를 갖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뜬금없게도 후쿠야마는 이런 트럼프에 대해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자기 진실성이라는 윤리를 완벽하게 실천하는 인물이다”라는 표현은 그가 14장의 대미를 장식하는 “정체성 정치가 오늘날의 포퓰리스트 정치를 치료하는 해법일 것이다”라는 것의 모순된 자기 부정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다시 11장에서 후쿠야마가 비판하는 진보 세력에 대한 비판은 다소 귀담아 들을만합니다. “일부 진보 세력에게 정체성 정치는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돼온 30년간의 추세를 반전시킬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대신하는 편리한 대용물이 되었다”는 평가는 딱히 부정할 만한 곳이 없었는데요. 후쿠시마는 미국 헌법의 자유주의 정신을 먼저 언급하면서 흑인에 대한 인종적 수사나 나치의 히틀러를 찬양할 개인적 권리들을 갖고 있다고 보았지만, 이 뿐만 아니라 동성애와 페미니즘 운동 등과 같은 부분에서도 수많은 보수 우파들과 전통주의자들이 이들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난을 해왔던 것을 우리가 양극단의 첨예한 정치 갈등을 눈을 감고 그냥 개인적 차원의 자유 발언 권리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들기도 합니다. 현재의 미국 정치가 정체성 정치 및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경직성에 매몰되어 정치인들을 비롯한 정치에 참여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발언의 주저를 그는 언급하는 듯 합니다만 앞선 동성애와 페미니즘에 대한 뿌리깊은 경멸과 혐오를 감안한다면 이에 대한 발언의 신중은 꼭 필요해 보입니다. 뭐든지 새로운 정치적 행동과 인식이 도입될 수록 그것에 대한 거부는 항상 있어왔으며, 대다수의 민주주의적 다원론자들은 열린 다원주의 사회를 위해 모두가 존중받는 구성원으로서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후쿠야마 역시 10장에서 “개인 해방이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대신에 강한자가 약한자를 억누르고 지배하는 탈 기독교시대의 도덕 체계로 향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일반적인 사회의 도덕 체계는 반드시 필요하며, 도덕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개별 사항에 대한 한쪽의 우선만은 이것이 사활적 문제가 아니라 공개된 수준에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후쿠야마가 진단한 오늘날 좌파들의 문제는 “그동안 특정한 형태의 정체성들에 초점을 맞춰오며 노동자 계층 또는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이들과 같은 커다란 집단을 중심으로 결속을 강화하는 대신, 특정한 방식으로 소외된 점점 더 작은 집단들에 집중해온 것이다”라고 그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후쿠야마가 그동안 이행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결과에 대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여기는 듯 했으며, 미국 정치 전반에 있어 포퓰리즘의 대두와 나르시즘 정치에 대한 우려를 분명 이 책을 통해 밝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통찰들도 분명 있었는데요. 우리의 계몽주의적 공화정치에 기여를 해 온 장 자크 루소와 관련하여, “외부 사회의 관점 및 공통된 규범 보다 개인의 주관적인 내면을 더 중시했던 장 자크 루소가 있다는 점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은 꽤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사실 루소가 개인 스스로 외부와 단절된 사색적인 삶에 대해 집중했던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사회 계약과 정부의 수립이라는 우리의 개별적 권리들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그의 주장들이 오히려 홉스가 바랬던 “도덕주의적 공동체 이익의 실현”과 토크빌의 “이기적인 개인들의 출현”에 대한 경계가 어떻게 보면 루소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다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서 제가 언급한대로 저자는 꽤 교묘한 근거와 그에따른 논리의 함정이 있어서 이에 대한 독자들의 정확한 일독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입니다.


“개인들은 종종 경제적 곤경을 물질적 결핍이 아니라 정체성 상실이라는 의미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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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0-04-30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후쿠아먀는 역사의 종말로만 알고 있었는데 주목할 만한 책이네요. 후쿠야마의 통찰에 대해서는 좀 의심스러웠는데, 베터라이프님의 리뷰 덕에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베터라이프 2020-04-30 19:20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확실히 후쿠야마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어느 정도 보이긴 합니다만 (물론 이념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논의에 대해서는 보수적 자유주의자의 논법이 분명이 있으며, 본글에서는 탈기독교주의에 대한 여파와 인식에 대해서도 약간 애매한데요. 탈기독교주의에 따른 도덕주의의 쇠퇴인지인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개인적으로는 보이더군요. 기존의 좌파에 대한 비판도 일정 부분 들을만한 부분도 있었지만 우파와 좌파의 양극단이라는 논법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저도 이 참에 후쿠야마에 대해 좀 더 글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 하여튼 오랜만에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최이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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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북부 지역인 세인트 존스 우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줄곧 성장한 데이비드 런시먼은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거쳐 현재 켐브리지 정치학과 교수로서 정치학과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은 ‘정치적 위신’, ‘정치’, ‘대표’ 등의 6개의 주요 저작과 더불어 여러 영국 언론에 글을 기고하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토킹 폴리틱스’에서 토마 피케티, 주디스 버틀러, 존 란체스터 등을 초대해 정치적 현안과 시대적 요구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구성한 바가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일전에 서평을 쓴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에 이어 두 번째 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원제 “How Democracy Ends”로 지난 201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근래인 2020년 4월 초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본격적인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런시먼의 이 글에 대한 한줄 평가를 다음과 같이 먼저 하고 싶은데요. 아주 간략히 말해, 이 책은 ‘정치적 수사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저의 개인적 평가입니다. 이를테면 이 글 3장에서 주요 논지로 비판하고 있는 반동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 “싫어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경멸감이 대안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보다 훨씬 크다”와 같은 수사적 비유는 꽤 시의적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달리 말하자면, 앞의 비유는 ‘포퓰리스트 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물론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정치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논저들이 인용되고 있는데요. 이 점 역시도 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사실 이러한 미덕이 단순한 단편 소설을 쓰더라도 그것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몇번이나 강조를 해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글의 구성적인 측면에서 이 글은 총 4장의 주제로 (논증적 측면에서) 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민주주의를 위태로운 지경에 빠트릴 수 있는 요소와 그 가능성을 찾아보고, 뒤이어 대안과 해결방안이 포함된 결론”이 중요한 큰 틀이긴 합니다만 단순히 정치학적인 접근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적 분석과 이에 대한 문제점과 현실 정치에서의 다소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가 구분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정치와 정치철학 및 사회구조학적 측면의 논증과 서술이 그렇습니다. 먼저, 1장에서 런시먼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협에 빠트릴 수 있는 쿠데타의 가능성에 대해 먼저 그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런시먼은 이에 1967년의 그리스에서의 쿠데타와 비교적 최근인 2016년의 터키에서의 총리 에르도안의 친위 쿠데타를 살펴보고 있는데요. 최종적으로 민주주의를 사망 선고에 이르게 하는 소위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 역시 문제지만, 설사 “구경꾼 민주주의”가 아닌 실제 시민들이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종식시켰을 때, 그 파장으로 도래할 수 있는 보존된 기존의 권력에 의한“행정권 남용 내지는 행정권의 확대” 역시 민주주의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기만적인 요소를 갖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일부러 비틀려고 작정한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실상의) 전체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과연 이 시대에 쿠데타의 위협과 전체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점이겠죠. 사실 런시먼이 진단하는 쿠데타와 관련해 그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요소로 보는 것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쿠데타”입니다. 뭐 이 점은 보는 관점에 따라 허무맹랑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여기서 중요한 부분응 민주주의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고사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겠느냐에 대한 가능성은 부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과연 보다 성숙한 민주 사회에서 과연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본질적인 문제겠죠. 즉, 이집트와 터키와 같은 국가들 -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고 정치 체제상 권력 분산의 제도적 근거가 미약한 - 에게서는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저자도 동의하듯이, 미국과 같은 국가가 군부 쿠데타에 이르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점은 미국이 군산복합체에 영향력이 전무하다고 볼 수 없다는 측면에서 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안하고 제도적으로 200년간 지속되어 온 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견고함과 시민의 인식이 뿌리 내렸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우리에게 왜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시작된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았지만 권력 분산을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정치 체제가 발견되지 못했거나 그 적절한 대안이 없기 때문일겁니다. 이에 대해 런시먼은 이 글 4장에서 “실용주의적 독재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서 이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찾고 있습니다. “중국 국민은 인도 국민보다 절대적 빈곤과 그 결과 (영양실조, 문맹, 조기 사망) 때문에 고통받을 가능성은 적지만, 무책임한 국가 공무원의 손에 희생당할 확률은 더 높다.”고 비유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즉, 원칙적으로 꽤 실용적이고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 독재 정치라고 하더라도 소수의 손에 어떠한 합법적 장치 없이 이행되는 정치 권력이 공공선이라든지 도덕적 원칙을 제대로 지킬 수 있겠는가에 대한 회의가 먼저 수반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런시먼 역시 “개인적 평안함이라든지, 부의 안락함” 등을 무조건 경멸해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있듯이 여기에는 양자 사이에 균형감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현재의 ‘공격적이고 만연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시대’에서 도리어 개인의 경제적 이익 추구나 그에 따른 안락함의 인정 등이 공공선의 측면이라든지 전통적 도덕주의적 환원을 비교적 등한시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과 같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획일적 강조를 기계적으로 요청하기 보다는 존 듀이가 일전에 언급한대로. “시민들이 스스로 관심을 갖고 재교육에 이르는 그 과정”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것이 여기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대 정치 및 현대의 위협은 크게 기후 문제와 같은 민주주의가 해결하기 힘든 난제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미국의 트럼프의 정치 일선 등장은 참으로 복잡한 환경을 조성하게 되었는데요. 그가 파리 기후 협약을 탈퇴하고 소위 미국 우선주의로 스스로의 독트린을 만들어 낸 것은 사실 찰스 틸리가 말한 “예측할 수 없는 정치 지도자”의 전형이라고 할만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탄생이 현대 민주 정치의 종말이라는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트럼프의 스스로에 대한 나르시즘과 기존의 체제와 제도를 불신하는 태도는 그것 자체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신념 체계로 작동하여 핵무기 사용과 같은 극단적인 단계에 이르러 과거 케네디와 흐루스초프와 같은 한발 물러섬을 과연 단순히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합니다. 이러한 도널드 트럼프의 여정을 지켜봤을 때, 런시먼이 다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포퓰리즘’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정치의 사활적인 역설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단순히 기존의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한 불신과 경멸만 갖고는 포퓰리즘적 지도자의 카리스마에만 의존하는 것은 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동안 왜곡되어 인식된 민주적 제도 하에 숨겨진 엘리트들의 의사 결정 과정만을 놓고 이것을 타도의 대상으로만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지나치면 과두제에 이르게 만드는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한 비판을 그동안 꾸준히 해왔습니다만, 여기에도 다음과 같은 평가가 이어지는데요. “고학력자들을 포함해서 교육받은 사람들로 다른 사람들 만큼 자주 도덕적 정치적 사고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그가 무조건적으로 고학력에 대한 맹신과 더 나아가 엘리트 지배 체제를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 평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루즈벨트의 내각이 당시 정치경제적 위기를 극복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극도의 불안과 경멸만을 지닌채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본질을 우리가 결코 경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카데와 같은 입장으로 런시먼 역시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고 있습니다만 원칙적인 측면에서 이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일부 학자들과 인사들이 문제일 것입니다.

발전된 기술과 지식인에 의한 통치 혹은 기술 관료 집단의 지배 체제라고 볼 수 있는 소위 테크노크라시가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이 되지 못하는 점을 밝힌 런시먼의 의도는 매우 명확합니다. 그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이긴 합니다만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식으로 귀결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결국 지식인들이나 정치인들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책임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각계 각층의 이익이 충돌하고 서로에 대한 불협화음과 경쟁, 갈등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혼란한 상태를 만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장점은 “특유의 정치적 포용력과 다원주의 정치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에 있습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영국의 어느 언론에서 내일 있을 우리 선거에 대해, “주요 민주주의 국가중 코로나 사태에 가장 먼저 치러지는 선거”라고 하는 점은 꽤 마음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30년이 조금 넘은 우리 민주주의 정치가 주요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은 우리가 이집트나 중국, 가나, 인도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죠. 쓰다보니 이번에도 꽤 장황한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만, 런시먼의 이 책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위협과 앞으로 미래의 민주주의와 더 나아가 우리가 겪게 될 정치 체제에 대한 여러 가능성 등을 꽤 합리적인 근거로 잘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그의 말대로 “다른 사람의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보호한다”는 논법이 옳다면 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의 민주제도라도 생각됩니다. 법과 제도로서의 국가와 다양성을 포용하고 권력의 분산을 효과적으로 이행하는 민주주의는 어찌됐든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는 분명합니다. 반대로 민주주의를 불신하는 ‘질서와 통제를 우선하는 이들’에게도 그 필요성은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 1. 본문에 핵 종말의 네기사 the four horsemen of the nuclear apocalypse 에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윌리엄 페리, 샘 넌 이 포함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키신저가 저기에 들어가 있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four horseme은 성경 요한게시록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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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정체
이옥연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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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주관해 출판한 이 유럽의 정체라는 논문 모음집은 두 명의 서양학자와 다섯 명의 국내학자가 모여 21세기 유럽의 정체적 기원이라는 주제로 종교, 문화, 경제, 정치, 국제 관계 및 역사적 접근에서 이를 규명해 보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갖고 있는 학문적 논의가 어떻게 보면 그렇게 심도있는 내용은 아니어서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런 적당한 수준의 논의는 일반 독자들에게 오늘날 유럽의 형성과 정체성의 기원을 조금이나마 접근해 볼 수 있는 일종의 개론서적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의 호기심을 갖고 일독하게 되었는데요. 먼저, 소위 ‘유럽 유일주의’라는 유럽인들의 꽤 배외적 기준은 어디서 비롯되었고, 유럽의 기독교적 근간이 여기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두번째로 국내에는 거의 유일한 클로드 르포르의 권위자인 홍태영 교수의 글이 있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서슴없이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로 소개해 드릴 이 글은 지난 앞선 설명과 마찬가지로 서울대출판문화원에서 주관해 최근인 2011년 논문 모음집으로 정식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1장부터 3장은 유럽의 기독교적 기원과 중세 그리고 유럽의 근대성을 살펴보고 4장부터 7장은 근래 모습을 갖춘 통합 유럽의 기원과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과 반대의 부침 그리고 유로화 출범과 관련한 정치경제적 해석과 더불어 미래의 진정한 유럽 통합이라는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글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인위적으로 나눠 설명한 이런 접근법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마시고 논문 하나하나를 따로 접근해보셔도 충분히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런 학술적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만 갖고 있으면 일독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은 이 글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장에서도 얼마간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제가 일전에 서평을 쓴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서 유럽의 기독교 문화가 어떤식으로 유대인들의 유대 문화 배제에 영향을 끼쳤는지 이번 장을 통해 그 단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기독교인과 유태인은 서로 관용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측면의 설명은 어떻게 양자 사이의 이런 토대의 가치가 어떻게 쉽게 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예측을 이 글을 통해 가능하게 해줍니다. 즉, “과거 오스만 제국의 서진으로 인해 유럽인들은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은 외부 세력의 급진적 진출을 앞둔 자신들의 문화 보존과 크게는 유럽권의 방어와 (사실상) 기독교 세력의 수호라는 정체성을 낳게 됩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이러한 정체성에 기름을 끼얹게 되는데요. 물론 당시의 로마가 이끄는 기독교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의 강력한 지속성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후에 왜곡되어 버리는 신성 로마 제국의 세속 권력의 유럽 전역의 확대는 어느 정도는 기독교적 자구책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도 될만한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이후, 중세의 암흑기와 봉건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 되는 유럽의 전제 왕권들이 그 기독교를 기반으로 일전에 퇴치한 스페인에서의 이슬람과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목표로 이뤄진 십자군 운동 전개에도 마찬가지로 유럽은 견고한 기독교 세력권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광범위한 정치적 기반을 유럽인들은 획득하게 됩니다. 즉, 로마 교황에 의해 승인받은 국왕의 명령에 대해 어떤 중요한 체계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랄까요. 주류가 기독교 정치 문화이니 이는 아마 당연하게 인식되는 부분이기도 할겁니다. 따라서 이런 기독교 문화가 기반이 된 당시의 유럽의 정체성이 어떻게 유럽 유일주의로 이어졌느냐에 대해선 이를테면 소위 ‘문명화 과정’이라는 논법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유럽이 성공적인 산업 혁명 이후, 제국주의를 내면화 시켜 세계 각지에 식민지 건설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이어진 소위 내면과 외면이 합일되어 나타난 정치적 논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알렉시스 더든의 ‘계몽적 착취’와 일맥상통한다고 여겨집니다. 상대방이 문명적으로 미개하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가 지배할 수 밖에 없고 이 지배는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은 유럽 주류 기독교 문화의 차별적 근원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점은 약간 이해긴 하지만 오늘날 이슬람 세력이 다른 문명에 갖고 있는 인식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지대한 세계화 본류에 힘입어 세계 각국이 자유 시장 경제로 전환되었음에도 실질적으로 경제에만 국한되어 실질적인 국가와 문화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이것은 앞선 초기에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관용을 갖고 있었음에도 어떻게 이것이 심각한 유대 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낳게 되고 여기에 더 민족적 혐오를 초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말의 인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은 문명화되었고, 다른 이들은 미개하다는 측면의 인식론 말입니다. 이러한 차별의식이 계몽주의와 결합하에 어떤식으로 발현되었는지는 제국주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 4장부터 6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한 독일의 가치 재평가가 미소간의 냉전으로 변화되었고 이를 통한 유럽 전체의 프랑스와 독일의 주도하에 벌어진 여러 정치경제적 통합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더 쉽게 말하자면 ‘유럽에서 아빠의 역할을 프랑스가 엄마의 역할을 독일이 한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앞선 프랑스는 2차대전 당시의 연합국의 승전 기여가 크지 않았기에, 소위 중견국의 위치로서 종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에 드골은 자신의 자랑스런 프랑스가 그러한 대접을 받는데 격분하여 (물론 드골이 일차원적인 면모만 드러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핵을 갖으려고 하고 실질적으로 미국을 넘어 유럽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와중에는 1961년 이후에 정책을 전환에 EC에 가입하려는 영국에 거부권을 지속하고 대륙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한 통합 체제를 가속화하게 됩니다. 여기에 프랑스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별다른 효과가 없음에도 유로화 출범을 정치적 발언을 확대하기 위해 참여하고 일종의 같은 협력자 그룹 내에서 독일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도 이 유로화를 지지하게 되는데요. 이는 독일이 그리스에 대한 그 우유부단한 태도에도 일맥상통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서로 통합된 통화가 각 정부의 부채 해결 해소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보면 규모의 경제나 또한 유럽 전체의 헤게모니 획들을 위해 서로 연합하고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동유럽을 유럽 울타리 안에 넣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논란을 낳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이익을 위해 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예견되는 그 한계를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통찰력이라고 봐도 무방한 의견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오늘날 유럽의 기존의 전통적인 정체성과 대립될 수 밖에 없는 이슬람 이민과 최근의 난민들의 유입은 과연 기존의 유럽이라는 시민들의 연대성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에 암울한 전망을 드리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찍이 에티엔 발리바르는 이 난민 문제를 정치와 경제로 나누어 이해했다가는 유럽이 갈등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베스트팔렌 체제를 신봉하는 키신저의 논법대로 유럽에서 기존의 국가적 인식과 해법이 이 이슬람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지에 대해 앞으로 유럽의 통합과 정체성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으로 여겨집니다. 즉, 이슬람 문제의 다른 접근과 다른 해결 방법이 있어야만 산적한 동유럽의 문제와 함께 유럽 내부의 통합과 외부의 결속력을 더 다실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발리바르 뿐만 아니라 랑시에르 또한 바우만 까지도 중요하게 봤던 문제로서 앞으로 유럽의 건전한 통합이 여기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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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
래너 미터 지음, 기세찬.권성욱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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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영국 역사학자인 래너 미터는 영국 켐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미국 하버드에서도 단기간의 체류를 통해 자신의 전공 연구를 지속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중국 역사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 연구로 명성이 높기도 한데요. 이를 통해 현재 옥스포드의 정치국제관계학과에서 중국의 정치와 역사 그리고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불어 중국과 관련된 이슈와 관련해 영국 정부에 조언을 하는 등 영국 내에서는 꽤 전도유망한 중국 관련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 책은 지난 2013년 원제 “Forgotten Ally: China’s War with Japan, 1937-45 for publication in the US”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최근인 2020년 3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래너 미터의 이 글은 엄밀히 따지자면 존 키건이나 제러드 L. 와인버그와 같이 각각의 전략과 전술을 담은 전쟁사로 보기에는 오해가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한 관점이라면 제목대로 중일 전쟁의 전쟁사적 측면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장제스와 국민 정부(혹은 국민당 정부)가 이끄는 당시 중국의 정치와 국제 관계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변 인물들의 행적과 해석이 매우 상세히 담겨 있는 복합적인 역사 서술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글 초입에는 독자가 상당히 오해가 들도록 장제스와 왕징웨이에 대한 대결 구도가 중점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온전히 장제스를 중심으로 이 글은 서술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서구의 인종주의적인 장제스의 분석에서 좀 더 탈피해 그에 관한 꽤 인간적인 면모와 정치적 갈등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물론 이러한 시도가 장제스의 정치적 과오를 덮는데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가 결정한 여러 정치군사적 행위 중에 후안무치하고 도덕적 기준까지 내다 버린 황허강 제방을 붕괴시킨 것과 후난성의 성도 창사가 지리적으로 취약해 일본군이 점령하기 전에 도시 자체를 초토화 시킨 이 두 가지 사건 만으로도 장제스가 얼마나 자기-권력적 인간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앞선 황허강 제방을 붕괴시켜 84만 4489명을 수장시키고, 480만명의 이재민을 만든 것은 그가 과연 인간 백정과 다를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청나라가 역사속으로 사라진 이후, 중국에서 등장한 많은 정치지도자 가운데 쑨원은 꽤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권모술수가 능한 인물들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을 꼬집어 그가 순진한 인물이 아니었는가에 대해 논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명백하게 당시 중국에 있어서 매우 필요한 정치지도자 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그가 너무 급작스럽게 병으로 쓰러지고 난 이후에 그의 정치적 후계자로 장제스가 등장한 것은 결국 중국 현대사에 있어 불행했던 일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라고 불리웠던 왕징웨이 역시 자신의 권력 욕구는 분명 있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우유부단하고 또한 이후 매우 잘못된 결정을 통해 한간(우리의 친일파와 같은 취급)으로 격하된 것은 국가에 통제되지 못한 채 각 지방의 군벌들의 존재처럼 일본과의 대전을 앞둔 그 시점에 지지하고 따를만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은 다수의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미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마오쩌둥의 한계 역시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데요. 옌안 시절의 마오쩌둥은 소위 정풍운동이라는 것을 통해 무고한 이들과 반대자들을 숙청하고 더욱이 일반 국민들에게 마오쩌둥의 사상을 암기하게 하는 등의 당시에 전혀 쓸데없는 일이나 벌인 점 역시 비판 받을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최종적으로 1949년에 중국의 일당 지배에 성공한 것으로 인해 승자의 역사로 미화해 그의 행적들을 다소 미담으로 만든 경우도 있으나 미터가 밝히는 역사의 진실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1937년 7월 7일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과 유사한 빌미가 된 루거오차오 사건 이후, 1931년 이래 만주의 실질 지배를 하고 있던 당시 일본 제국은 중국 본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게 됩니다. 당시 중국을 통제하고 있던 장제스의 국민 정부는 그의 카리스마와 통제력 밑으로 수많은 군벌들을 정치적으로 조율하고 있었으나 사실상 군벌 국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937년 이전까지 중국에 군사적으로 협력하고 있던 독일 무관들의 훈련 지원으로 장제스 휘하에 87사단과 같은 상당한 정예 사단이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각 지방의 군벌들을 제어할 만한 충분한 힘이 장제스에게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그나마 장제스에게는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으면서도 군벌들이 그의 명령에 듣는 척이라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북부와 산동 지방을 손쉽게 일본군에 빼앗겼던 연유에는 물론 일본군에 비해 장비와 훈련이 열악한 측면도 있었으나, 지방에 혼재해 있던 권력들이 스스로 딴주머니만 차려고 하는 무능과 통제력 상실이 주요한 연유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애초에 장제스는 베이핑과 우한 그리고 난징을 잇는 거대한 삼각 방어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으나, 최정예 부대를 투입하고서도 실패한 상하이 방어는 이러한 말뿐인 전략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그 끔찍한 난징에서의 비극을 뒤로 하고 장제스는 충칭으로 자신의 정부를 이전하기 까지 합니다. 특히, 이 난징에서의 학살 소위 ‘난징의 강간’을 서술한 이 책의 7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그에 못지않게 군대 양성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냅니다. 강력한 훈련과 최신의 장비 지급은 일본군이 최소한 과거 봉건 국가들에서 볼 수 있던 약탈과 폭력, 강간 등은 그래도 스스로는 다르다고 여겼으나, 난징에서의 그 참혹한 사건은 그 이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해 한가지 통찰을 보여주는데요. 분명 변명은 되지 않으나 이어지는 극심한 전투를 통해 분노가 극에 달한 일본군이 거의 조장된 분위기에 따라 민간인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무고한 젊은 청년들을 참수하고 난징을 인세의 지옥으로 만든 것은 “너희들이 아무리 서구에 지원이나 도움을 바란다 하더라도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판단입니다. 다음 쉬저우 공방전과 황허강 제방 붕괴 이후 속속들이 일본군에 투항하는 중국인들이 등장하고 여기에 왕징웨이의 난징 부역 정부가 들어선 것으로 장제스의 무능과 그의 곁에서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간의 부재는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습니다.

그나마 미국은 중국이 일본 육군 60만을 늘어지고 있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 티베트와 버마를 통한 물자 지원을 확대시키고 있었습니다만, 버마에 지배권을 갖고 있던 영국의 비협조와 중국 내부에 있던 미국의 정보 조직인 OSS와 장제스에 대한 극심한 불신은 장제스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정치적 난맥상이 분명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장제스를 대신할 대안이 없다는 점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그저 일본군의 진격을 받으면서도 군벌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소련 스탈린의 도움이나 바라고 충칭에 들어 앉아 영국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만을 바라기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물론 그가 여러 사건이 지난 이후 자신의 일기장을 통해 소회를 밝히는 것을 저자는 소개하면서 어쩌면 그의 무능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당시의 정치시대적 상황이 장제스에게 녹록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려 했던 것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부인인 쑹메이링을 비롯한 처가가 권력에 나서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고 그가 간혹 울음까지 터트린 것을 보면 실로 그를 편만 들 수 없는 상황임은 확실합니다. 여기에다 앞선 부분에서 설명한대로 그가 저지른 몇가지의 심각한 비도덕적이고 비인도적인 결정은 과연 권력 앞에는 어떠한 것도 우선되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의 언급이 실로 진실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장제스와는 반대로 전쟁 당시 심각한 기근에 휩싸인 민초들을 설명한 14장의 허난성 대기근도 주목할 만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농촌 마을의 장정들이 자신들의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길을 가던 부녀를 납치해 내장을 드러내고 어떻게 삶아 먹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당국의 혹독한 고문을 통해) 이를 자백했던 것으로 보입니디만 이러한 사람들의 식인 행위가 꽤 뚜렷하게 있었고 이를 증언하는 사례가 이 책에서도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런 총체적 난국이 당시 비평가인 시어도어 화이트를 통해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군이 과거 수십 년 동안 중국을 휩쓸었던 대다수 군벌들보다 더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이렇게 사리사욕만 채웠떤 군벌들이 중국의 상황을 가일층 악화시켰고 이러한 실정(식인과 같은 비참한 상황)이 비로소 미국에 알려졌을 때, 장제스와 중국에 대한 동정 여론이 돌기는 커녕, 다수의 미국 지식인들을 포함한 미국인들이 혐오에 마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1941년부터 전쟁 막바지에 이르는 시기에는 장제스가 치뤘던 몇가지 정치적 손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 군사 고문 조지프 스틸웰과의 관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틸웰은 미국 군부 가운데에서도 꽤 유명한 중국통으로 아마도 1942년 전까지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를 신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버마 작전을 포함한 전략적 실행 순간에 장제스와 스틸웰은 사사건건 대립했고, 장제스의 부인 쑹메리잉이 7개월간의 미국 방문 시기에 여러 실질적 검토를 통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말 안듣는’ 스틸웰을 소환시키려 하였으나, 참으로 어이없게도 장제스 대원수는 스틸웰과 잠정적 화해를 하게 됩니다. 이런 그의 착오의 결단은 가까운 미래에 윈난성에 쌓여 있던 비축 물자의 반출을 스틸웰이 거부함으로써 장제스에게는 또 한번의 패착으로 귀결됩니다. 특히, ‘버마의 실패’인 스틸웰을 소환시키지 않고 화해하게 된 연유에는 분명 어떤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 것이나, 스틸웰이 자기 정치와 자기 이미지에 몰두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해보면 장제스와 스틸웰의 재결합은 결국 파국을 예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끝으로, “충칭에서 동쪽 저 너머로 향할수록 국민 정부(장제스 정부)가 서류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휴지조각이 된 지폐 이상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졌다”는 14장에 나와 있는 저자의 평가는 이 불행한 시기에 또 얼마나 더 무능하고 불행한 정부가 다수의 백성들을 피폐한 삶의 고통과 죽음을 넘나드는 경험을 겪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잘 목도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저는 여기에 영국의 처칠이 주요한 거악을 독일에서 일본으로 향하게 만들지는 않겠다는 취지의 노력이 루즈벨트에게 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단순히 그저 장제스의 중국이 일본 육군의 바짓가랑이만 잡고 있으면 된다는 식의 정치적 계산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당시 일본 제국의 내각은 장제스로부터 만주국을 승인받고 (물론 이는 왕징웨이의 손에 이뤄졌지만) 노몬한 사태 이후 소련과의 불안한 중립과 중국 전선에서의 안정이 결국 진주만 사태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진주만 공습을 위해 중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는 확대 해석이 아니라 이러한 정치적 상황이 조성되자마자 미국을 손봐줘야겠다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어리석은 결정을 초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명목상은 미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금수 조치이기는 합니다만, 육군에 비해 실적이 미미했던 일본 해군이 주도하는 진주만의 공습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귀결되고 말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고도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이 글을 내내 읽으면서도 번역이 정말 탁월하여 막힘없이 술술 진도를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번역자들의 노력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근래 재출간 된 A. J. P. 테일러의 글과 함께 래너 미터의 이 글 역시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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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의 세기 - 독일 망명자들과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우디 그린버그 지음, 이재욱 옮김 / 회화나무 / 201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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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 우디 그린버그는 현재 미국 뉴햄프셔에 소재한 다트머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학자입니다. 특히 그는 유럽사와 지성사를 비롯 냉전사와 프랑스 혁명 시기의 자코뱅 당 연구로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위키백과에서 그의 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심지어 구글에 나와있는 그의 사진 조차 몇사람의 얼굴로 검색되고 (동명이인 일수도 있겠지만) 다른 정보 역시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검색 능력이 부족해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기에 이 점은 양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14년 원제 “The Weimar Century”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얼추 4년 뒤인 2018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디 그린버그는 자신의 이 책을 통해 밝혀내고자 하는 점은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의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독일인들과 그 지식인들의 영향이 과연 냉전시기까지에 이르러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학문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여기에 이 ‘바이마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것은 꽤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미국의 전임 대통령인 오바마조차도 1차대전 종전 후,독일에서 출범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실패와 그 한계를 연설로서 밝힌바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세계의 독재들자들에게 민주주의의 실패로 조롱받기도 하였는데요. 저들의 후안무치한 논리에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짧게 이 바이마르시대가 어떻게 독일의 정치 실패가 되었는지 곰곰히 따져 볼 이유는 되리라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맥락 어느 지점에는 바로 이 ‘바이마르 시기’에 대한 저자의 가감없는 분석을 느껴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독일 망명자 출신임에도 미국과 세계에 영향을 끼친 5명의 독일 지식인들의 면면이 놓여 있습니다. 엘리트를 길러내는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카를 J. 프리드리히와 법의 지배를 유달리 신봉했던 개혁가 에른스트 프렝켈, 보수적 가톨릭 신앙의 입안과 극렬한 반공주의자 발데마르 구리안, 나치에 의해 몰락한 독일 자유주의자의 면모이자 정치인인 카를 뤼벤슈타인, 조지 케넌과 더불어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을 고안한 한스 모겐소가 이들입니다. 우리에게는 특히 5장의 한스 모겐소가 유명할텐데요. 이와는 별개로 2장에 서술되는 ‘에른스트 프렝켈’은 우리와도 매우 밀접합니다. 그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카를 슈미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해방 전후, 미군정과 함께 남한에 들어와 우리의 제헌헌법을 기초하는 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자신이 경험한 독일에서의 실패를 거울삼아 우리 한반도에 정치적 실험을 시도했는데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에 기초한 반공국가 건설’이라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국가 건설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프렝켈과 뢰벤슈타인 그리고 한스 모겐소를 중점적으로 읽어봐야 하는 장(Chapter) 으로 여겨졌습니다.

저자의 입을 빌어 표현한다면, 베르사유 체제 이후에 출범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는 아마도 “많은 민중들이 선동하는 정치인에게 유독 약해보이고 정치적으로 휩쓸리게 되는 부분”이 그 원인으로서 한몫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저는 기존의 대중 대 엘리트의 정치 개념으로 일반적인 공화주의 체제에서 민중 내지는 시민을 계도의 대상으로 삼아 전자의 해석 부분을 기존의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한 근거적 이념으로 여겨 마땅히 옹호만 하는 것을 다소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자 역시 4장, 뢰벤슈타인에 대한 부분에서 ‘다원주의적 체제’에 대한 짧은 언급을 통해 이 권력의 분산에 있어서 얼마간 동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간 저는 로버트 달과 찰스 틸리를 통해 민주주의가 온전히 자리하기 위해서는 다원주의적인 가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함을 여러편의 서평을 통해 밝힌 바가 있습니다. 아주 면밀히 따지자면 이 뢰벤슈타인의 ‘전투적 민주주의’가 냉전 시기의 꽤 고약한 산물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곁가지가 타협없는 반공주의가 기반했으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어떤 결단이 필요했음은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뢰벤슈타인의 경우 “사회적 평등과 법의 지배,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있었음에도 그 당시 공산주의에 맞서 이처럼 타협없는 강력한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것은 일찍이 모겐소가 예견했던 것처럼, 정치 권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는 점을 아마도 간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더 앞으로 돌아가보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이 독일 바이마르 시대가 어떠한 조각을 갖다 붙이고 수식어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아돌프 히틀러의 탄생에 대한 일종의 ‘자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들었던 의문은 왜 그 시기의 독일 자유주의자들은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는가에 대한 일종의 안타까움을 동반한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이 책을 통해서도 약간의 모티브를 받았지만) 선동 정치인에 의해 다소 휩쓸리기 쉬운 대중들의 소위 ‘약점’을 단순히 열거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엘리트 지배체제가 필요하다고 논거를 확대해 - 1장의 카를 J. 프리드리히의 경우 - 공화적 민주주의에 대한 사실상의 이론적 반대를 강화하는 꼴이라는 점입니다. 1장에서 카를 J. 프리드리히는 공공선에 집중하는 엘리트들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과제라고 이해했습니다만 이것이 계몽주의적 선을 신봉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는 것은 오늘날의 환경에는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실 겁니다. 특히,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이런 사익추구에 대해 일종의 경외감까지 갖고 있는 기득권과 엘리트들이 부지기수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가 엘리트 지배체제의 또다른 면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 시민에 의한 권력과 법의 지배는 그것 자체로 수호되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민주주의 내에서 엘리트 지배와 시민 권력의 힘의 기울기는 어디쪽에 있는지 명확합니다. 굳이 테크노크라트를 논하지 않더라도 이런 이행은 상당히 많이 진행된 상황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또 들었던 생각은 이들 망명객들에게는 그 배후에 카를 슈미트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오늘날 배경으로 해석한다면 최근의 네오콘 뒤에 레오 스트라우스가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물론 스트라우스 역시 카를 슈미트의 영향을 받았는데요. 그래서 이들이 첨예한 냉전시기에 성조기를 등에 붙이고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추측해봤습니다. 최근에 샹탈 무페는 이 카를 슈미트가 우파쪽 뿐만 아니라 좌파에게도 현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을 특이하다 까지는 아니고 꽤 이채로운 것으로 이해했습니다만 이들이 세계의 공산주의 확대에 맞서 어떠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인지했던 점은 꽤 기시감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이행에서 5장의 한스 모겐소는 베트남 개입에 대한 반대와 미국의 ‘병영국가화’에 대한 명백한 반대를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과 관련해 다른 측면에서 “개인적 권리와 집단적 권리는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는 2장, 프랭켈의 이 인식을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해 봤습니다. 현재 독일 내에서도 이들은 꽤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식인이자 사상가들로 볼 수 있겠는데요. 이들의 매파 역할을 했던 미국의 역사학자가 이를 분석하고 있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랭켈과 뢰벤슈타인도 이런 미국의 역할에 대해 공감하고 상당한 부채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냉전 시기에 로널드 레이건과 같은 모순적 정치인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만 이 때의 미국이 바이마르와 비견되는 것은 분명 억울한 측면이 있을겁니다. 다만 우리가 이 지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당시의 극렬한 반공주의가 낳은 후폭풍 또한 가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엘리트들과 지식인들이 현명했다면, 혁명으로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극단의 공포감을 조절할 수 있어야 했지만 결국 종말에는 미소간의 권력 게임으로 비하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행한 시기의 역사를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무엇보다 이 시기에 수많은 개인들의 권리가 대결구도에서 희생당했고 사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이익이라는 경계가 개념상 융해 되어버렸다 해도 과장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연유로 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또 생각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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