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문화 - 내부자가 된 외부자 교유서가 어제의책
피터 게이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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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게이의 바이마르 문화(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2, 1968, 344쪽 분량)는 시민이 주권자인 공화국은 왜 몰락하게 되었는지 독일의 찬란한 시기를 소환하여 질문하는 책이다. 바이마르 헌법 제정은 독일 문학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괴테와 실러의 바이마르 고전문학 시기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도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헌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던 미래는 현실화하지 않는다. 문화적 융성과 정치, 경제적 몰락은 곧바로 연결되고 급하게 막을 내린 부흥기 이후 처참한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14년간 지속된 괴테의 독일, 즉 바이마르 공화국의 독일과 히틀러의 독일은 두 개의 전혀 다른 독일이고 그 파급력은 국가 차원을 넘어선다.

 

피터 게이는 당시 망명가들이 남긴 업적, “고국을 혐오하면서도 그리움에 뒤돌아보며 외국 땅에서의 강요된 생활 속에서 최대의 업적”(p.14)을 찬양한다. 예술가 자신이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이 내재되어있는 모더니즘과, 그 안에서 탄생한 새로운 미적 감수성에 주목한다. “외부로 밀려난 내부자”(p.17)중 한 명인 저자 또한 이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피터 게이는 역사학자이자 유럽 근대 사상사와 문화사 분야의 권위자로서 특히 계몽주의 연구, 부르주아 문화 연구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역사 연구에 접목한 저작들을 남겼다. 저자는 서문을 바이마르공화국은 짧고 열에 들뜬 것 같지만 매혹적인 삶을 살았다.”(p.23)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공화국은 1차 대전 이후 독일 제국이 붕괴한 1918년 탄생하여 1933년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되면서 살해된다. 책은 문화사를 중심으로 시대를 조명하면서 부족한 정치사를 말미에 부록으로 첨부한다.

 

1<탄생의 진통: 바이마르에서 바이마르로>은 패망 속에서 탄생해 혼란 속에서 존속했으며 재앙 속에서 사멸한 공화국(p.38)의 자취를 따라간다. 책은 바이마르 역사에서 공화국에 해가 되었던 베르사유 평화조약을 언급한다. 가혹하고 보복적인 조약, 치밀하게 계획된 모욕에 속수무책인 파견 대표단, 증오하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비겁자이자 반역자라는 낙인을 받게 된 이들에게 조약이 파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반유대주의자와 나치 선전의 핵심이 된다. 2<이성의 공동체: 절충자와 비판자>는 나치를 증오했지만 공화국을 사랑하지 않았던 수천의 교수, 기업가, 정치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들을 열정적 신념이 아닌 지적 선택에서 출발한 이성적 공화주의자’(p.73)라고 부른다. 탁월한 젊은 예술가 에카르트 케르에게서 내부자에서 외부자가 된 예를 살피고 공화국 연구소, 특히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추구와 업적을 다룬다. 사회 전반으로 영향을 끼치고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하는 엘리트 주의의 한계는 자명하다.

 

바르부르크 방식의 엄격한 경험주의와 학문적 상상력은 1920년대에 독일의 문화를 야만화시키려 위협했던 천박한 반지성주의와 통속적 신비주의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이마르의 전성기였다. 아테네는 알렉산드리아의 손에서 거듭 회복되어야만 한다는 바르부르크의 유명한 표현은 연금술이나 점성술과 고투를 벌이던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한 예술사가의 처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비이성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세계 속 삶을 위한 철학자의 처방이었다.”(p.88) 심오했지만 제한적이었던 바르부르크 연구소 외에 베를린의 정신분석 연구소와 프로이트,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조사 연구소 등의 업적과 한계를 차례로 살핀다.

 

3<비밀스러운 독일: 힘으로서의 시>에서는 현대판 소크라테스인 슈테판 게오르게로 문을 연다. 그에게 비밀스러운 독일의 왕이었으며 비영웅적 시대에 영웅을 찾고 있던 영웅이었다.”(p.113)는 설명을 덧붙이고, 영향력에 있어 그와 견줄 수 있었던 단 한 명의 살아있는 경쟁자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언급한다. 최고급 서정시인(토마스 만의 표현), 청년운동 신비주의(무쉬크의 표현), ”수천의 우둔한 존재들 속에서 어떻게 단지 한 존재만이 시인이 되는가를 세속적 인과관계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지만실지로 그러한 시인이 되었던(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 릴케에게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 장은 릴케 숭배자의 한 사람으로써 꽤 인상 깊었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시의 연관성은 주목할 만하다.

 

4<전체성의 갈망: 현대성의 시련>에서 저자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모든 습관과 마찬가지로 연습으로 강화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위축되는 하나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유력한 독일 지식인들이 비판은 물론 일반적인 정치 행위조차 자제”(p.152)하였는데 특히 토마스 만은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그 반대편에 에밀 졸라가 위치한다. 바이마르에서의 비정치적 경향은 인식의 왜곡을 발생시키고 15년이 못되는 바이마르 역사에서 내각이 17번 바뀌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경영에 있어서는 완강하리만큼 독립적이지만 정치 기사 처리에 있어서는 신뢰할 만큼 편파적”(p.157)이었던 신문이 등장하고, 단지 프랑크푸르트 신문만이 예외적 위치를 차지한다. 책은 편집장이었던 하인리히 지몬의 연설을 자신이 여전히 외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던 외부자, 다른 독일의 대변인, 최고의 바이마르 정신”(p.158)이라고 평한다. 그 밖에 청년 사이에서 두드러지던 전체성을 향한 갈망에 주목하고, 그들 사이에 만연한 반이성주의가 반사회적 행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이 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는 마르틴 하이데거다. 1933년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 취임 연설은 그에게 나치 부역자라는 라벨을 붙이고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

 

5<아들의 반역: 표현주의 시기>에서는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바우하우스 다음으로 꼽히는 표현주의 사조를 영화, 회화, 연극 등의 예술에서 확인한다. 새로운 인간성에 대한 부정적 전망과 희망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된다. 특히 연극에서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부권에 대한 반역”(p.221)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권위주의적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반항은 카프카에서도 두드러진다. 6장은 <아버지의 보복: 객관성의 성쇠>에서는 1924년의 문학적 사건인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해설한다. 부자갈등과 둘 사이 경쟁을 다루는 문학을 비롯해 정치화된 청년운동(p.262)등 바이마르공화국 내 가장 통절한 요소로 청년의 정치사를 꼽는다. 청년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나치에게 청년들은 거대한 잠재적 표(p.263)였고, 우편향은 심화된다. 책의 마지막 문단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막을 정리하는데 지금까지도 그 영향은 계속 회자된다.

 

바이마르 문화는 양차대전 사이에 만개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탄생과 몰락을 다룬다. 책의 부제인 내부자가 된 외부자바이마르공화국의 내부자들은 언제나 독일제국에 충실했던 보수주의자들이고, 공화국의 문화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외부자들이었는데 역사적 정황에 의해 내부로 들어오지만 결코 내부자가 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시인들을 불러내는 3장이었다. 말테에게 열광하던 때가 생생하다. 나는 바보인가 자괴감 들며 읽었던 릴케, 두이노의 비가 첫줄을 무한히 반복하며 릴케를 우러르던 시기가 있다. 그는 천사인가, 무엇인가. 그런데 모국어로 읽는 그들도 난해하다는 부분에 소심하게 후련하고 안도한다. 저자는 350쪽 내외(정치사 제외하면 270)의 간결한 분량 안에 방대한 문화사를 추리고 연결한다. 밀도가 확연히 높아져 느슨한 문장이라고는 없고 독자는 행간의 숨은 의미를 찾아서 스스로 주석을 매기며 읽어나가게 된다. 등장하는 인물이나 예술의 각 분야는 따로 한 권의 책과 맞먹는 무게로 독자를 압박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집필한 흥미로운 역사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로 밀려온다. 지금 이 순간과 곧 다가올 미래를 근심하게 만들고, 반복되는 역사의 패착을 두렵게 바라보도록 한다. 화려하게 피어난 문화 직후에 연결되는 정치적 내리막길은 예기치 못하는 가파름을 보여 날개를 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면 무시무시한 추락을 우리는 막아낼 수 있을까, 위험 신호나 전조에 민감할 수 있을까, 이쯤부터는 더욱 깨어있어야 한다고 서로를 믿고 돕고 변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작년 2월에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강제독서 겨울 학기에서 읽었다. 지금 다시 읽으며 그 사이에 일어난 변화의 폭에 놀란다. K문화의 정점을 누렸고, 노벨 문학상 수상에 한껏 고무되는 찰나에 문화 외적인 부분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우리는 잠식당한다. 고난 끝에 새로운 희망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요즘이다. 방대한 사례와 자료를 재조직하여 매력적인 비유와 직관으로 통찰하는 중요한 저작 바이마르 문화를 추천한다.

 

 



 책 속에서> 


몇 달 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수상이 되었고 바이마르 사람들은 흩어졌으며, 그들과 함께 바이마르 정신은 내적으로 변화하여 이솝 우화가 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으로 소멸했다. 다른 이들은 베를린에서 문 앞의 노크 소리 뒤에, 또는 스페인 국경에서, 파리의 임대아파트에서, 스웨덴의 어떤 마을에서, 브라질의 도시에서, 뉴욕의 호텔방에서 자살로 바이마르 정신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또다른 자들은 바이마르 정신을 실험실에서, 병원에서, 언론에서, 무대에서, 대학에서 소생시켜 위대한 발전과 지속적인 영향력을 얻게 하여 망명지에서 이 정신의 진정한 고향을 찾아주었다.(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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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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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로 대동단결하였던 추억이 엄마의 유년과 우리들의 유년의 공통점이다. 성탄절 연극과 예배, 새벽송도 축제 같았지만 산타 할아버지에게 쓰던 편지, 산타클로스의 방문은 늘 하이라이트였다. 이를 위해 숨은 노고와 애정과 헌신하는 약속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어른이 되고, 아니 부모가 되고 알게 된 결코 쉽지 않은 것들 중 하나다. 올해도 엄마의 화이트 철 대문은 크리스마스 전구로 반짝인다. 하지만 현실은 놀라운 괴리와 틈을 보인다. 뉴스는 무서운 소식들도 전했다.


크리스마스 소설 한 편이 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한별 옮김, 나무생각, 다산책방, 2023, 132쪽 분량)』은 침착하고 사려 깊게 구원의 첫발을 내딛는 과정을 따라간다. 크리스마스 대표격 고전인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보여주는 판타지와 극적 반전과는 결이 다른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작가가 세공한 보석같은 작품인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출간한 소설이다. 백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덜어낸 끝에 정수만을 남기는 작가의 작업방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빌 펄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조용히 기뻐한다. 그는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p.22) 안다. 뉴스에선 어려운 소식이 들리고 눈에 보이는 현실 역시 혹독하다. 그는 그럴수록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을 이곳에서 유일한 괜찮은 여학교에 보내 졸업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겠다고 결심한다, 아니 ‘결심을 굳’(p.24)힌다.


날씨가, 추위가, 형편이 혹독해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온다. 아내 아일린은 딸들의 도움을 받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몰래 뜯어 올해의 산타 선물을 확인하며 으레 해야 할 일, 당연한 과제를 수행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공이 들어가고, 중단되고 이탈할 가능성은 곳곳에 숨어 도사린다.


펄롱은 유년을 회고한다. 가사 일꾼이었던 엄마는 시미즈 윌슨의 집에서 일했고, 어느 날 자신을 낳았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른다. 아이가 없는 시미즈 윌슨은 펄롱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었으나 크리스마스 선물만큼은 지금까지 쓰라리다. 간곡히 원했던 두 가지 선물중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던 그날이 여전히 아쉽다. ‘빈주먹’으로 태어난 펄롱은 자신의 힘으로 석탄 목재상이 되었고, 이제는 소중한 다섯 딸을 잘 양육하리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하루를 잇댄다.

그래도 가끔은 답답하다. 늘,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p.29) 펄롱은 궁금하다. 생각은 과거보다는 하루 앞날을 산다. 계속해서 하루 앞날을 살아야만 나날들이 온전하고 안전할 가능성을 조금 더 확보한다. 몸과 마음은 각각 다른 좌표에 선다.


소설은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가 완전히 새로운 크리스마스가 되는 순간을 고요하면서도 뜨겁게 기록한다. 아내 아일린은 그를 염려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녀는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라고 말한 후 “그래야 계속 살지.”(p.56)라고 덧붙인다. 모른척하지 않을 경우 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현실 인식은 경고를 내포한다. ‘우리 딸들’과 ‘거기 있는 애들’을 일대일로 두었을 때의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경고는 그가 이미 받은 사소한 것들을 외면하도록 하는데 실패한다. 그는 맨발인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을 나선다. 아내와 다섯 명의 딸들이 있는 집을 향한다. 두려움과 설렘, 무엇보다 기대를 안고. 크리스마스다.


소설은 역사 속 구체적 사건을 부각하기보다는 언제라도 발생 가능하고,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부조리를 보여준다. 이미 고착되었고 막강한 힘에 의해 가속하고 있는 일에 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렵다. 펄롱의 아내 아일린과 케호 식당의 여주인 미시즈 케호의 조언은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쉽지 않은 시기를 조심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 없는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펄롱은 “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p.106)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상주의자인가?


펄롱의 선택은 그가 받아온 사소한 것들의 축적으로 가능했다. 그는 잊지 않고 있다.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다고 큰 사전을 건네던 미시즈 윌슨, 대회에서 상을 받자 자기 자식인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던 일, 그래서 자기가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버지는 오지 않았지만 일상의 은총처럼 곁에서 사소한 것들을 보태주었던 사람을 뒤늦게 알아본다. 사소한 친절은 사소하지 않다. 사소한 외면 또한 마찬가지다.


펄롱은 ‘평범한 마음’(p.71)을 누르고 자기만의 길을 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괴롭힌 실체가 외부 보다 내면에 있었음을 인식한 그는 마음이 이끄는 길을 걷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이 정확히 목표를 수행하도록 배치한다. 서사의 길목마다 전조와 암시로 연결시키고 마침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끈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첫 문단으로 돌아가 재독할 때,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단어와 문장을 발견케 된다. 다시 읽을 때마다 하나의 장면은 겹겹의 의미를 간직하고 풍성한 두께를 드러낸다. 고양이나 까마귀, 사소한 무엇 하나도 대상 자체만 의미하지 않는다. 키건 읽기의 특별함이 아닐까. 이제 새 신을 신게 될 소녀의 날들은 결코 위태롭지 않겠다. 언제 읽어도 좋겠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더욱 빛날 작품을 추천한다. 곧 개봉할 킬리언 머피 주연의 동명 영화도 놓칠 수 없겠다.




책 속에서>


“너희 지금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 쓰지 그러니?”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4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 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p.29)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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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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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3대 시성으로 꼽히는 괴테의 시 100편을 감상하고 필사할 수 있는 책 나를 울게 두오!(배명자 옮김, 나무생각, 2024, 280면 분량)가 출간되었다. 책을 펴기 전, 만듦새에 우선 멈춘다. 오렌지빛 직물 느낌의 하드커버 표지에서 활자는 푸른 별처럼 빛난다. 상단의 필기체가 지금 막 괴테가 써내고 있는 시일 것만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인 장석주는 추천의 글에서 괴테의 시가 본질을 직시하고 세상 이치의 핵심을 꿰뚫는다고 평한다. 또한 생을 아끼고 제 안의 슬픔과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기어코 사랑과 행복을 찾으려는 자에게 읽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시가 손닿을 수 없는 별이 아니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내가 서있는 현실에 스밀 수 있는 빛으로 온다. 걸음을 내딛도록 조명하는 길잡이로 서서히 인도해 간다.

 

첫 번째 시는 아름다운 노래로 기억하는 <들장미>. 제목을 보는 순간 귓가에는 멜로디가 흐른다. ‘거친 소년은 결국 장미를 꺽고 만다. 소년만일까, 성급하게 취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후회할 수도 언제까지나 모르는 채 무감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잃어버리는 아름다움을 헤아려본다. 극적인 음률로 깊은 가을부터 찾아 듣게 하는 <마왕> 전문은 읽는 자체로도 의미를 지닌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나,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무력한 상실을 시인은 속도감 있게 포착한다.

 

위트가 넘쳐 웃음 짓게 하는 시는 시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알려준다. 신랄하게 정곡을 찌르는 시가 통쾌함을 선사하는데 아마도 정점이 <한 사내가 손님으로 왔고> 이겠다. 다소 과격한 표현, 거침없는 언사가 눌려있던 감정을 들추는 것 아닌가. 한 편의 짧은 소동극을 연상케 하는 장시 <마법사의 제자>는 생생한 장면이 그려져 유쾌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시인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도 찬찬히 들여다본다. <희망>, <근심>, <용기>를 제목 삼아 연약한 이들을 격려하고 힘을 준다. 동일한 제목으로 한 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시인은 인간의 내밀한 성정을 찬찬히 살피고 명확하게 지침을 선사한다.

 

괴테의 연작시 중에서 <로마의 비가><베니스 경구>는 몇 편을 정선하여 실었다. 첫 연작시인 <로마의 비가>를 비롯해 연작시 전체를 일관된 맥락에서 감상하는 기회가 기다려진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영단어가 상당량이었듯 괴테 역시 익숙한 관용구의 원저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라인강과 마인강> 31행의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의 첫 행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익숙하다. 시인은 후자의 결말을 모든 죄는 이 지상에서 죗값을 치러야 하기에!’라는 통찰로 맺는데 엄마의 말씀이 겹친다. 죽어서 천국 지옥이 있는 게 아니라 살아서 다 갚게 된다는 늘 하시던 말씀이. ‘우리는 요람과 무덤 사이의 삶이라는 긴 수로를 흔들흔들 떠내려간다<베니스 경구 6>도 친근하지만 가볍지 않은 경고 문구다.

 

<베니스 경구 18>에서 시인은 그러니 친구여, 그저 살며 계속 시를 써라!’하고 조언한다.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도 체험 그대로 쓰지 않았다.”고 했던 괴테는 살며 시를 쓰는 행위를 문자 그대로 실천한 시성이었다. 어떤 형태를 취하건 그의 시는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직설화법과 은유가 교차하여 등장하고 마냥 무겁게 가라앉다가도 한 호흡 숨 쉴 틈을 마련한다. 능숙하게, 동시에 유연하게 독자를 이끄는 시는 때로 노래이고 때로는 잠언이 되어 푯대로 선다.

 

감정의 무수한 갈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시인의 큰마음을 연과 행, 마침표와 쉼표로 전달해 준 역자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마지막 시는 표제작인 <나를 울게 두오!>. “나를 울게 두오!/ 눈물은 먼지에 생명을 준다오/ 벌써 푸릇푸릇하구나로 맺는 시는 애달픈 눈물을 먼지에 생명을 부여하는 주체로 승격시킨다. 이십 대의 어느 1월에 <파우스트>를 읽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차가웠던 겨울과 두근거림은 그대로 기억한다. 내년 1월에 <파우스트>를 다시 읽는다. 기다리던 독서로 새로 구입한 책은 몇 해째 정렬한 채 꽂혀있다. 그 전에 시 필사집을 먼저 읽고 쓸 수 있어 기쁘다. 읽고 낭독하고 쓰면서 내 삶에 밀착해 오는 시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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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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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 영화 베스트로 이동진 평론가가 꼽은 1위 작품이 오멸 감독의 지슬이었다. 첨부된 20자평은 어떤 영화는 그 자체로 숙연한 제의가 된다였다. 엊그제처럼 생생하지만 어느덧 십 년이 지났다. 처음 보는 단어는 낯설었고, 진심을 눌러 실은 추천이 영화를 찾아보게 하였다. 떨어진 섬 제주에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다. ‘시대의 진실, 영화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단 지슬에서 청야까지2016년 출간된 윤중목 평론가의 영화평론집이다. 지슬이라는 낱말을 품고 있는 제목을 지나칠 수 없었다. 글로 다시 영화를, 섬과 사람들을 기억해야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332면 분량)는 노벨상 위원회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제 막 한강을 알게 된 독자가 가장 먼저 읽기를 바라는 작품으로 꼽은 최근작이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p.9)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생생한 꿈이 작품 전체를 견인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2014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소년이 온다)을 낸 이후 악몽은 시작되었다. 작품에서도 소설가로 등장하는 경하는 작가의 분신으로, 자전적인 경험을 기록하며 탈고 이후에도 계속되었던 고통을 쓴다. 직접 <작별>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마지막 인사일 수는 없다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고 구체화된다.

 

화자인 는 프리랜서 사진가이자 다큐 영화를 찍고, 지금은 목공일을 하고 있는 이십년 지기 친구 인선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했었다. 반복되던 꿈처럼 검은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경하는 중지하겠다고 하였지만 인선은 어쨌든 난 계속하고 있을 거야.”(p.54)라고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인선의 부름이 도착한다.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있는 인선은 당장 제주 집에 가달라고 부탁한다. 지금 당장. “오늘 안에 가면 살릴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내일은 죽어 반드시.”(p.66) 혼자 남은 작은 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 그 길로 떠난다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리한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다. 대설주의보와 강풍경보가 동시에 발효된 섬으로, 중산간 마을이 고립되기 전에 반드시. 여정을 통과하고 집에 도착하고 아마를 보내며 울고 묶고 묻고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후, 경하는 인선이 살아온 날들로 비로소 들어가게 된다.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 그때 그곳에서 사라지던 사람들의 참혹한 시간으로. 인선의 공방에서 촬영했을 인터뷰들, 이 섬의 동굴 이야기를 듣고 전기가 끊긴 집에서 공방과 안채를 오가고, 찾아온 경하와 대화하며 프로젝트 이름도 전한다. “작별하지 않는다”(p.192)라고.

 

소설은 1<>, 2<>, 3<불꽃>으로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기록하고, 기록함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실행한다. 작고 가벼운 새, 아미의 죽음에도 눈물이 흐르는데 어쩌자고 그 많은 죽음을 의도하고 저질렀는지 절망한다. 그래서 소설은 고통을 낱낱이 기록한다. 독자는 활자로 기록된 통증과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독한 편두통과 위경련, 잘려나가고 찔리고 얼어붙은 형상, 덤불에 긁혀 흐르는 피와 작고 가냘픈 죽음을 받아든 손, 언 땅 파기, 밀물에 쫓겨 달리기, 옮기기 등 앉은 자리에서 책을 붙든 채 고되고 고되야 한다. 동시에 이 아픈 이야기를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쓸 수 있나 놀란다.

 

작가는 서두르는 일 없이 도처에 일어났던 폭압을 증언하고 엇갈려 배치한다. 꿈과 현실과 영상과 인터뷰와 은유와 직설화법으로 말한다. 폭설과 폭우, 동굴과 구덩이, 삶과 죽음을 연달아 묶는다. 그때 그 눈은 지금 내가 맞는 눈으로 순환하고 그러므로 아픔은 무뎌지는 일 없는 예리함으로 서슬 퍼런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야하고 기꺼이 고통을 끌어안을 때에야 짧게 끊어 쉬는 호흡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가능성을 지닌다. 절단 부위를 바늘로 찌르는 행위, 3분마다 거듭 피를 내는 행위가 있어야, 통증을 느껴야만 잘린 신경 위쪽이 죽지 않는다는 것처럼.

 

인생들 위 허공에 모든 과거가 지금 이 순간에 겹쳐서 내려다보는 듯하다. 과거라는 단어를, 역사라는 자못 젠체하는 얼개를 비웃듯이 응시한다. 지금은 어떤가, 나아졌는가, 나아가고 있는가 묻는다. 작가는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 연하고 연해서 결코 굳은 살 배기지 못하는 정신으로, 무뎌질 수 없는 감각으로 기억의 집을 견고히 하는구나. 차디찬 바다와 얼어붙는 눈을 통과해 일으키는 불꽃은 지극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계속 읽어 보겠다.

 

 

 

책 속에서> 

두 개의 스웨터와 두 개의 코트로도 막을 수 없는 추위가 느껴진다. 바깥이 아니라 가슴 안쪽에서 시작된 것 같은 한기다. 몸이 떨리고, 내 손과 함께 흔들린 불꽃의 음영에 방안의 모든 것이 술렁인 순간 나는 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인지 물었을 때 인선이 즉시 부인한 이유를.

피에 젖은 옷과 살이 함께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한계를 초과하는 폭력이 제거될 거다. 사 년 전 내가 썼던 책에서 누락되었던, 대로에 선 비무장 시민들에게 군인들이 쏘았던 화염방사기처럼. 수포들이 끓어오른 얼굴과 몸에 흰 페인트가 끼얹어진 채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처럼.(p.287)



20241120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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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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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히 먼 과거가 아니다. 원시시대도 미개사회도 아니었고 소통불가 문맹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일어난 비극. 활자로 그날에 접근하는 일조차 조심스럽기에 독자 역시 탄식하고 숨죽인다. 추스르고 눈물 맺히며 다시 글을 쫓는다. 동시에 앞장서 걸으며 기록하고 있는 작가에게 순간마다 빚진다. 『소년이 온다(창비, 2014, 216면 분량)』는 한강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1980년 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배경이다. 배경이라는 낱말은 부적절해 보인다. 소설은 명백한 사건을, 역사의 뒤안길로 편입될 수 없는 고통을 지옥에서 죽음을 맞았거나, 살아서 지옥을 견디는 이들을 응시하기 위해 차례로 호명한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장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1장의 화자 동호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작은 형의 말을 뒤로하고 합동 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향한다. 겁에 질렸던 동호는 쓰러진 친구 정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찾아온 엄마도 돌려보낸다.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p.43)라는 엄마 말을 들으며 남았다. 2장은 정대의 혼이 죽은 자기 육신 곁에 머문채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p.52)라며 괴로워한다. 죽어서도 쉴 수 없는 그는 동호의 죽음을, 느닷없이 뛰쳐나오게 된 친구의 혼을 알아차린다.


3장 “일곱개의 뺨”은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당시 고등학생 은숙의 5년 후 시점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은숙은 번역자의 행방을 대라며 일곱 대의 뺨을 맞고 하루에 한 대씩 일주일만에 일곱 개의 뺨을 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허기를 느끼고 먹는다는 일 자체가 치욕스럽고, 출판할 수 없게 된 희곡집이 아프고, 물줄기를 뿜는 광장 앞 분수대를 견딜 수 없다. 그녀는 연극 무대에서 그날 데리고 나오지 못했던 동호를 본다. 환상처럼, 생생하게.


4장 “쇠와 피”는 생존한 대학생이자 시민군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상무관에서 지휘했던 대학생 진수와 수감생활과 석방 이후의 삶을 일정 부분 공유하나 둘은 다시 삶과 죽음으로 갈린다. 김진수의 죽음에 증언을 요청하는 ‘선생’에게 그가 혼자서 겪은 일들을 그 자신에게서 듣지 않는 한, 어떻게 그의 죽음이 부검될 수 있겠느냐고(p.108) 전한다.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 겪었던 일은 언어화의 한도를 넘어선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p.134)라는 물음만 그대로다.


5장 “밤의 눈동자”는 43세가 된 선주의 시점이다. 선주는 증언자가 되어달라는 ‘윤’의 요청에 연락처를 알려준 성희 언니를 오히려 용서할 수 없다. 성희 언니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들어선 선주, 동호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선주는 성희 언니에게 할 말이 있다. “죽지 마. 죽지 말아요.”(p.177) 이 말은 <작별하지 않는다>에 다시 소환된다. 6장 “꽃 핀 쪽으로”에서는 동호 엄마의 애끓는 서술이 이어진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열 살이었다.”(p.193)로 시작되는 7장 에필로그는 작가의 목소리다. 소년의 흔적을 찾아 그 도시로 돌아와 쓰기 시작하는 여정의 출발로 매듭짓는다.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p.89)고 은숙은 생각했다. 진수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아직 어린애 같은 동호를 보았을 때 부서졌다. 유월의 분수대가 물줄기를 뿜을 때 햇빛에 부딪힌 물방울의 파편이 눈동자를 찔렀듯이, 그날을 통과한 이들에게 상이한 각도로 흠집 내며 부서졌고 부서뜨렸다. 소설은 그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름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경호한다. 기억하도록 새긴다. 시공간을 달리해도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잔인함과 폭력의 역사는 계속되어 왔음을 상기시킨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p.207) 특정 명칭은 보편적 상징이 된다.


에필로그는 읽고 다시 읽었다. ‘너무 평범해 누구와도 혼동될 듯한 얼굴’을 가진 소년, 꽃 핀 쪽으로 가자고 엄마 손을 이끌던 소년은 어른들의 낮은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에게 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움직여 닿기 시작했고 저녁에 갇힌 이들을 생각하게 했다. 두려움에 떨며 깨어나게 하던 꿈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이어지고 고통은 가라앉는 일 없다. 소설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재차 묻는다. <Human Acts>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번역된 이 소설은 다음 문장으로 순순히 넘어가기 어렵다. 최소한의 말을 허락하는 압축과 부연을 덧대지 않는 여백으로 심정을 지키는 작품이기에 더 느리게 읽으며 행간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계속 읽어보겠다.




책 속에서>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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