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입 코끼리
황경신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11월
평점 :
이 예쁘고 귀여운 책은 빨간모자, 사실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어린왕자의 그 보아뱀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짙은 초록색과 빨간색의 조화가 눈길을 끈다.
간단한 그림동화체의 소설집 정도로 짐작했었지만, 생각보다 분량도 되었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구성이 매력적이었다.
잠깐 읽기 시작할까...했는데,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책.
책을 덮고 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감탄의 미묘한 떨림,
그리고 다 읽어버렸다는 아쉬움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게 하는 책이었다.
삼백일흔세 살인 보아뱀, 해변에 죽어있는 코끼리로 식사를 하고
낡은 어린왕자 책 안에서 6개월간 소화를 시키던 보아뱀은
8살 꼬마의 집요한 시선에 눈을 뜬다.
꼬마는 외갓집의 창고안 이모들이 쓰던 물건들 속에서 발견한 그 책속에서 보아뱀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후 여덟 달 동안 그림동화를 함께 읽으며
꼬마는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보아뱀은 답을 해준다.
'첫번째 이야기, 라푼젤'에서부터 '열여뎗 번째 이야기, 무덤'까지
함께 나누는 질문과 답, 삶과 생각에 대한 기록이다.
질문도, 답도 탁월하다.
자리 바꾸기의 경험, 새로운 시각, 궁극적인 진리에 접근하는 생각, 본질...지혜, 사랑, 받아들임, 영원...
--한 번 비교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아
--하지만 그 읽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란 거야.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운명을 향해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가게 되는 거지
--그러나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고,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야기 전의 이야기 같은 건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하다. 그리고 진짜 인생이란 이야기보다 훨씬 가혹한 것이다.
--너는 항상 질문을 해야 해. 어른이 되어서도 말이야. 질문을 하는 건, 절대로 창피한 게 아니야. 제대로 된 질문은 대답보다 힘이 세니까.
--이야기를 만단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 조금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무엇을 태어나게 하는 것, 마음에 생기가 돌고 혈관에 새로운 피가 흐르는 것임을 나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
--삶에는 끝이 없어. 죽은 다음에도,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으로 인해 누군가의 삶은 지속되는 거야.
--행복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고맘다고 말하지 못했다. 보고 싶을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보아뱀은 내가 하지 않은 말을 다 들었을 것이다. 여덟살의 인생에서 만난, 두려울 정도로 소중했던 그 존재는.
책속에서 줄 친 부분중에 몇 구절을 적어보니 또다시 마음속이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직선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이 이야기들에 딱 알맞는 그림들이 곳곳에서 펼쳐지며
집중시키고, 확장시키고, 몰입시킨다.
내가 좋아하는 원색의
단순하고, 아름답다기 보다 그 아름다움이 결정체로 응축된 듯한 그림이다.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는 것이 슬프다. 황경신 작가의 책들을 읽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거꾸로 그의 책들을 읽어나가겠지 싶다. 그림형제의 동화집도 다시 읽어야 한다.
그토록 근사한 멘토, 보아뱀을 만났던 꼬마가 참 부럽다.
밀도있고도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 준 책 '한입 코끼리'가 정말 감사하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