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리오 영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박영근 옮김, 민음사, 1999, 1835, 420쪽 분량)』은 1819년 파리의 삶을 그리지만 시간과 공간을 어느 방향으로 이동시켜도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만나게 한다. 고급 하숙집과 사교계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사건과 일상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와 추구하는 가치를 드러낸다. 이에 필요한 수단을 노력보다 탈취와 희생에서 취하기 시작하면 도덕적 해이와 양심의 무감각은 이미 전제된다. 작가가 초판 서문에 썼다는 “모든 것이 사실이다.”(p.9)라는 말에 반대할 수 없다. 그가 확언했듯이 어느 누구의 집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도 한없이 되풀이되지만 제어할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 오래된 슬픔을 고리오와 그의 딸들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스무 살 때 문학의 길로 들어설 결심 후, 약 십 년간 독서와 습작, 경제적 독립에 전념했다. 그러나 시작하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소설을 써서 빚을 갚아 나가는 등 평생 곤란을 겪었다. 발자크는 서른 살 때 스콧과 쿠퍼의 영향을 받은 역사 소설 『올빼미당원』을 발표하고, 1848년에 이르기까지 약 이십 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는 갖가지 인간 삶을 그린 소설들을 서로 엮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구성되도록 한 작품집 『인간 희극』을 평생에 걸쳐 집필했다. 프랑스 문학사에 하나의 큰 덩어리로 남아있는 『인간 희극』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p.398)대로 <풍속 연구>, <철학적 연구>, <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91편의 소설로 구성된다.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에서 “인물 재등장 기법”을 처음 시도한 후 주인공들을 여러 소설에 등장시켜 경제적 효과를 얻는다. “인물 경제학의 대가”가 『인간 희극』에 선보이는 인물은 거의 2000여 명이다. 이는 559명이 등장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9)』를 상기시킨다. “완전한 단편의 형식을 갖추는 각각의 장은 완벽히 연결되어 거대한 장편소설을 완성했”(전쟁과 평화 4권 583p, 문학동네)던 톨스토이 이전에 근대적 소설의 탑을 정밀하게 구축하고 있다. 이런 발자크를 “인간 사회에 대한 진정하고 완벽한 모습을 제시하는 진짜 사회학자”(p.408)라고 알랭은 평한다.
작가는 고급 하숙집이라고 명시한 보케르 집을 촘촘하게 이동하는 카메라 렌즈와 같이 시각적으로 먼저 형상화한다. 이어 ‘냄새’를 보태 독자의 감각이 민감해지면 고급은 가난을 의미하는 또 다른 낱말이 된다. 하숙집에 묵고 있는 일곱 사람은 1820년대 파리에서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견디며 혹시 나아지지 않을까 꿈을 꾼다. 3장 ‘불사신’에 중점적으로 등장하며 보트랭으로 불린 자크 골랭은 라스티냐크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도모하고자 계획하나 실패한다. 보트랭은 자신을 비난하는 보케르 부인에게 “당신은 우리 같은 놈들보다 더 훌륭합니까? 타락한 사회에서 무기력한 부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치욕이 우리 어깨에는 덜 있어요.”(p.276)라고 외친다. 여전히 묻고 있다.
“젊고, 사교계를 부러워하며, 여성을 갈망하는 이 청년이 자기를 위해 두 집안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다니!”(p.48) 으젠 라스티냐크는 성공적인 사교계 입성을 위해 학업보다는 유력한 관계에 의지하고자 결심한다. 보트랭이 보여주는 라스티냐크의 암울한 미래를 부정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자네가 서둘러 출세하기를 원한다면 벌써 부자가 되어 있거나 겉으로라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말일세.”(p.149) 유혹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젊은 영혼을 흔드는데 거침이 없다. 그러던 중 라스티냐크는 제면업자였으며 아버지 중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리오 영감과 “자기 아버지를 모른다고 하다니!”(p.104)라고 한탄케 한 그의 두 딸의 사정도 알게 된다.
고리오 영감은 딸들에게 헌신했으나 그 대가로 버려졌다. 나의 엄마는 내게 늘 말씀하셨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라고. 너는 그러지 말라고. 그런데도 왜 그녀는 헌신했을까. 사랑의 역동은 수백 년 전 파리나 현재의 지구촌이나 놀라우리만치 닮아서 작가가 어느 골방에서 실시간 써내고 있는 글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든다. 어리석은 고리오 영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결심하지만 그 자리가 한 순간 독자의 발밑과 흡사해 고리오의 고통과 호소는 오늘의 독자를 울린다. 그의 실수를 번복하지 말자는 부모의 각오는 무르고 빛바래 돌이킬 여분의 시간을 남기지 않는다. 작가는 인간 비극을 활자로 새기고 행여 흐트러질세라 고정액을 뿌려둔다. 그럼에도,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복되겠지만 말이다. 야망도 자신도 넘쳤던 라스티냐크의 도전은 눈물에 젖어 스러져가는 노인 곁에서 잠시 멈춘다. 노인에게는 연민을 담은 타인의 손만이 허락될 뿐, 그가 간절히 원했던 딸들의 목소리, 시선은 다른 공간에서 다른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러시아 여류작가 류드밀라 페트루셉스카야가 『시간은 밤(문학동네)』에서 그린 모성의 지독한 아이러니가 고리오 영감이 보여주는 부성의 비극과 겹친다. “어머니, 아, 이 얼마나 성스러운 단어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은 아이에게, 아이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들이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을 것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버려질 것이다. 아아아.”(p.225, 시간은 밤) 미칠 노릇이다. 임종을 앞둔 고리오 영감이 내는 절규는 작가의 섬세한 문장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딸들과 나누는 대화 역시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이다. 또한 익숙해서 슬프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p.396) 소설의 마지막, 라스티냐크의 유명한 외침은 고리오가 걸었던 눈물과 비참의 골짜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동행했던 청년의 치열한 도전장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무저갱으로부터 이제는 비상만이 남았다. 라스티냐크는 어떤 길로 내달리게 될까.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라스콜리니코프(죄와 벌)의 구원이었던, 다른 이름을 가진 소냐일까? 무엇을 통해 어디에 이르게 될지 다음 장면이 필요하다. 작가는 결말을 절정으로 치환한다. 소설은 숨죽이며 꺼져가는 안타까운 부성과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통한 라스티냐크의 성장기를 고루 담는다. 질문하면 정보를 취합해 실시간으로 답을 알려주는 똑똑한 시대다.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힘닿는 만큼 발자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겠다. 핑크빛 전망은 없겠지만 예리한 펜은 충분히 깊게 통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