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 이즈 오사카 This Is Osaka -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 2023~2024년 최신판 디스 이즈 여행 가이드북
호밀씨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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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끝나고 해외여행이 급증을 넘어 폭발 수준이라는 기사를 보며 덩달아 설렌다. 다시 자유롭게 국경을 넘게 되는구나 싶어 약간은 조심스러운 마음과 어쩔 수 없는 기대가 교차한다. 대학 새내기가 된 아이는 언니와 지난 1월 2주 동안 미국에 다녀왔는데 단 하루 도쿄를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그 하루를 사진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음악으로 끝없이 복기하더니 여름 방학 중 4박 5일 오사카 행 티켓을 예약했다. 그렇다면 일본 여행 공부 좀 해볼까. 호밀씨의 『디스 이즈 오사카(THIS IS OSAKA) 2023~2024년 최신판(2023, 584쪽 분량)』는 여행서가 전문인 테라출판사의 디스 이즈 시리즈로 개정 출간되었다. 책 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는 신뢰를 더한다. 일본어를 전공하고 취재 기자 및 번역활동을 하고 여행의 의미를 숙고하고 발로 뛰며 글쓰는 호밀씨를 믿고 따라나설 만하다.

책의 앞면지는 확대 지도를 뒷면지는 간사이 주요 대중교통 노선도를 담았다. 목차에 앞서 소개 코너에 특징을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읽는 방법을 나란히 배치했다. “<디스 이즈 시리즈>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압도적으로 친절한 교통 정보”라는 말에 안심이 된다. 지난번에 스치듯 일본을 통과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이동 시의 우왕좌왕이었다는 아이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도 앱보다 강력한 상세지도”에서 나아가 “2가지 버전의 지도”까지 장착했다. 그대로만 따라하면 되겠다. 뷰 포인트를 보면 이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사진으로 간사이를 조명한다. 빼놓을 수 없는 음식과 쇼핑 정보는 아기자기한 사진과 알찬 소개가 함께한다. 전문가가 추천하는 목록이니 꼼꼼히 살피고 놓치지 말아야겠다. 드럭스토어 대세템 체크 코너에 이미 말해둔 로이히 츠보코! 동전 파스가 보인다, 다양한 목적에 맞는 오사카여행 추천일정은 여행자의 수고와 불안을 덜어줄 듯하다. 초행길에는 분명 더할 것이다. 아이는 내일 숙소를 예약해야 하는데 이 또한 꼼꼼하게 설명해준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미술관, 동물원도 눈여겨본다. 국립 국제 미술관 맞은편에 2022년 오픈했다는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이 특히 궁금하다. 검은 육면체 모양의 외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오사카 시립 동양 도자기 미술관에서 우리 도자기를 보는 도예학과생은 어떤 마음이 들까, 꼭 만나고 오기 바란다. 『디스 이즈 오사카』는 하나의 지면도 낭비됨 없이, 그러나 빽빽함 속에서도 생각할 여유를 주는 일본 여행 안내서다. 여행 가이드북은 효용에 우선순위를 두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역할을 바꿔 아련한 추억 창고 기능을 한다. <미국 서부>, <미국 동부>가 그랬고 <샌프란시스코>, <워싱턴>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에는 최신 개정판이었으나 지금은 절판된 판형이 책꽂이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물성을 지닌 여행 가이드북이 일상에 기쁨을 더할, 나아가 오래도록 꺼내 보아도 닳지 않을 순간들을 함께 만들어줄 것이다.(뜬금없지만 이 서평에 한 줄을 추가한다면 ‘난바 본점’의 명물인 치즈케이크가 가장 먹고 싶다. 성인 얼굴 크기만큼 커다란 사이즈라나···)




ㅊ((출판사 도서 제공,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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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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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새 지나는 농원에 새로 세들어 살게 된 영국인 록우드 씨는 소유주인 히스클리프와 대면키 위해 폭풍의 언덕을 찾는다.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 씨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폭풍(wuthering)'이라는 말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 이런 높은 곳이 감당해야 하는 대기의 격동을 가리키는 이 고장의 표현이다.”(p.11) 그곳에서 하룻밤 묵게 된 록우드 씨는 악몽을 꾸다 캐서린 린턴의 유령을 만나고 주인의 미심쩍은 행동까지 목도한 후 간신히 돌아온다. 록우드 씨는 하녀장인 딘 부인으로부터 자신이 만나고 온 인물들의 과거에 대해 듣는다. 언쇼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헤어턴과 린턴 가문의 마지막 후손 캐시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는 힌들리와 캐시의 아버지 언쇼가 “악마에게 받은 것 같”은 까만 피부의 아이 히스클리프를 집으로 데리고 오던 날부터 시작된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김정아 옮김,문학동네,1847,2011,544쪽)』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힌다. 비평가 헤럴드 블룸은 『폭풍의 언덕』을 문학적 교양의 수준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모든 수준의 독자들을 만족시켜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칭했다. 에밀리 브론테는 영국 요크셔주에서 성공회 사제의 딸로 태어나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읜다. 샬럿 브론테, 앤 브론테와 함께 세 자매는 필명으로 공동 시집을 출간한다. 다음해인 1847년 각자의 작품이 나오는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 되며 1848년 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출간 당시에는 비도덕적이라고 비판이 많았으나 반세기 후 서머싯 몸, 버지니아 울프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고 지금까지 영화와 연극, 드라마, 오페라 등으로 조명받고 있다.

아버지 언쇼는 아이들에게 약속했던 선물 대신 히스클리프를 데려왔고 극진히 편애한다. 눈에 보이는 부당함에 아들인 힌들리는 원한을 새기지만 캐시는 히스클리프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된다. 힌들리의 원한은 성인이 되어서도 결코 줄지 않았고 특히 아내가 죽은 후에는 학대와 자학 사이에서 망가져 간다. 캐서린은 티티새 지나는 농원의 에드거 린턴으로부터 청혼을 받아들인다. “천국에서 살면 너무 불행할 것 같”(p.129)다는, 천국은 있을 곳이 못 된다는 캐서린은 이 결혼에 대해, 그리고 히스클리프에 대한 진심을 넬리에게 털어놓는다.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 이유가 “그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p.130)라는 이 유명한 문장을 당사자는 듣지 않고 자리를 떠난다. “린턴에 대한 내 사랑”과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p.133)이 어떤 격차를 지녔는지를 듣지 못한 채 나가버리고 3년이 지난 후에 둘의 재회는 이루어진다.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앞으로 더욱 많은 격변을 예고하면서. 그야말로 폭풍이다.

소설은 화자인 하녀장 넬리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상황 전개, 인물의 드러난, 또는 숨은 감정도 넬리의 해석을 거친다. 그녀는 아내 캐서린의 죽음을 슬퍼하는 린턴을 보고 캐서린의 축복받은 해방을 슬퍼하니 헌신적 사랑 안에 이기심이 들어있음을 단정한다. 캐서린의 죽음에 고통받는 히스클리프의 끈질김에 감동해 마지막 작별을 고할 기회를 만든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단연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이지만 넬리의 목소리는 상황에 개입하고 의도하고 이끌고 예측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짧은 삶도 그녀의 목소리로 전해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폭풍의 언덕』은 소설구성의 3요소 중에서도 단연 “인물”이 주도하는 작품이다. 캐서린이 개에게 물려 처음 티티새 지나는 농원에 머물게 되었을 때 히스클리프는 그 집의 남매가 캐서린을 보고 홀딱 반했다며 “캐서린은 그런 애들 따위와는, 이 세상 사람들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잖아.”(p.83)라고 자신의 우상을 확실시한다. 캐서린은 자기감정을 살피고 의지를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캐서린에서 딸 캐시로 이어지며 압박과 위협, 규범과 굴레에 굴하지 않는 캐릭터는 생생한 현존으로 다가오고 선명한 인장처럼 남는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죽음 이후 한 가지 욕구로만 치닫는다. 소설은 사랑과 사로잡힘, 집착의 경계를 줄타기하듯 그린다. 집착은 원망과 투사를 부르고 제어장치 없이 극대화된다. 감정의 해소는 파괴에 다름 아니다.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을 빼앗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망가뜨리겠다는 의지와 그로 인한 여파를 작가는 직설적인 단어와 빠른 전개, 황량한 풍광으로 묘사한다. 돌연히 멈추었을 때야 비로소 이를 멈출 수 있는 것은 호흡의 부재, 즉 죽음 뿐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세대를 이어 바통을 건네면서 다가오는 운명과 환경에 휩쓸리고 맞서는 인물들은 고립된 배경에서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인간의 내밀한 심리, 무의식의 발로를 언어로 아로새긴다.

고전을 읽지 않으면 고전하게 된다는 말에 동의했다. 한 가지 더, 고전은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이다. 유추의 대상도 아니다. 고전 읽기는 문장과 낱말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 나갈 때 멈칫거리게 되는 행간을 견디고 섬뜩할지라도 전진하는 일이다.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느리게 조절하면서 이완과 외면, 재촉과 대결을 오롯이 통과해야 한다. 굳이 “고전이란”으로 시작하는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정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느지막이 만나는 고전은 민망함마저 부른다. 문학기행의 꿈을 품었던 히스 언덕의 낭만은 ‘아직도 내가 낭만으로 보이니?’ 라고 물으며 비틀린 미소를 짓는다. 오해가 길어지다 보니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상상 속 이미지는 고착되고 말았다. 편역과 축역의 혼란한 선택지를 넘어서서 온전한 완역으로 본색을 드러내 보자. 비로소 얼어붙은 바다가 산산이 깨어지도록.

책 속에서>

넬리,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 린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것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고, 서리가 불꽃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인걸.(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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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 확대개정판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화옥 외 옮김 / IVP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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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를 앞둔 12월 말이면 매번 다짐한다. 최소한 성경 일독하는 한 해 되기를, 은혜가 충만한 한 해, 영적으로 성장하는 한 해,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한 해, 마르다가 아닌 마리아의 시간을 거듭 선택하기를 년 초에 바란다. 열심을 내다보면 어느 순간 그때 바라고 원하던 제목들과는 빗나간 각도에 서 있는 자신과 맞닥뜨린다. 연약하고 산만한 어린 양은 달라질 줄을 모르고 또박또박 나이 들었다. 다듬고 일구겠다 애썼건만 잡초는 우거지고 귓전은 소란스럽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홍화옥, 김명희 옮김, Ivp, 2018, 1984』은 외면하고픈 고민의 시간을 간과함 없이 전면적으로 다루며 탁월한 기독교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서문의 소제목은 “한계에 부딪힌 날”로 질서, 분주함, 눈물바다, 텅 빈 영혼과 같은 단어가 독자를 무장 해제시키고 영적 골방으로 이끈다. 저자인 고든 맥도날드는 전 세계 수많은 목회자들의 멘토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40년간의 목회, 선교회 총재 역임, 신학교 교수, 선임 연구원으로서 강연 및 저술활동을 지속해왔다. 은퇴 후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1990년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초판 출간 이래 확대개정판을 통해 노년의 지혜를 보탠다. 저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소박하고도 솔직하게 그려 보인다. 신앙의 멘토이자 영적 지도자로서 발끝에 차이는 쓴 뿌리와 잡초, 어김없이 발견되는 걸림돌을 어떻게 해치고 나갈지 몸소 보여준다.

저자는 서구 문화의 가치관이 바쁘면 바쁠수록 중요하고, 보이는 만큼 중요하다는 식의 성향에 눈멀게끔 이바지했다고 전한다. “더 많은 프로그램, 더 많은 모임, 더 높은 학력, 더 넓은 대인관계, 더 바쁜 일정 등, 삶의 표면을 이루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무거워져 도무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결국 삶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피로, 환멸, 실패, 패배가 무섭게 엄습할 수 있다.”(p.37)는 직시에서 삶의 표면과 대척점을 이루는 게 “내면 세계”다. 프레드 미첼이 붙여놓은 “너무 바빠서 삶이 황무지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하라.”(p.40)라는 표어는 빌 하이벨스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를 펼치게 한다. 평범한 일반인이 겪는 포화상태는 더욱 아이러니하게 여겨진다. 책은 일상과 성경 말씀을 교차하며 묻고 답하기를 반복한다. 3장, <황금 새장에 갇힌 인생>에는 쫓겨다니는 사람의 여덟 가지 증상이 나온다. 클리어, 넥스트! 의 연속, 투 두 리스트와 다양한 툴은 유용한 동시에 우리를 쳇바퀴에 가두는 장치다. 저자는 쫓겨다니는 사람의 특징을 분석하며 그 전형으로 사울을 꼽는다. 그토록 많은 달란트를 지녔던 이스라엘 초대 왕이 보여주는 파멸은 끝없는 경종을 울린다.

쫓겨다니는 사람의 동력은 성장배경과 불안감에 기인하며 “부름받은 사람의 삶”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라운드 테이블 예는 특히 인상 깊다. 책의 2부는 시간 사용을 짚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원칙들은 실제로 적용하고 변화를 시도할 때 빛이 날 것이다. 지적 성장을 위해 경청할 것, 독서할 것, 자료정리 체계를 뜻하는 “공부”를 쉬지 않을 것을 권한다. 일종의 저장 공간으로써 일기쓰기도 통합적 기록의 의미를 새기게 한다. 저자는 예배와 중보기도를 가장 어려운 영적 싸움이라며 원인을 진단한다. 계획한 대로 결과를 얻는 데 익숙해진 우리는 “더 이상 기도를 유효한 방편으로 보지 않고 직접 나서서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p.272)되었다. 온전히 내어 맡기는 기도가 되도록 혼란으로부터 물러나 침묵하고 기다리며 귀 기울이는 데 시간을 들이는 일은 이미 너무 지체되었기에 빠를수록 좋겠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은 장마다 “더 깊이 생각해 보기”를 두어 변화의 경로로 안내한다. 형식적인 체크리스트가 아닌 사려 깊게 내면을 살피도록 돕는다. “나가는 글”에서 저자는 확실한 선물이자 무기를 남기는데 바로 성경 암송이다. 강건하면 80이라 명시된 우리 인생에 간직해야 할 것, 시력도 청력도 떨어지고 육신이 쇠하더라도 청년의 때에 새겼던 말씀은 견고한 지팡이로 곁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 감사의 영으로 찬송하며 늘 주님 곁에서 참 평안을 누리는 삶으로 속히 돌아오고, 재차 돌아올 수 있기를 간구한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는 책망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 온전히 설 수 있기를 깊이 소망한다.

책 속에서>

쫓겨다니는 자의 내면세계는 무질서하다. 그의 새장은 빛나는 황금으로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덫에 불과하다. 그 덫 안에서는 아무것도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p.76)

그날 아침 여섯 시에 약속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실은 여섯시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매일같이 내 달력에 기록되어 있는 첫 번째 약속 상대다. 그것은 타협해서는 안 될 약속이다. 시간을 붙잡아 통제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잘 정비된 하루, 잘 정비된 인생, 잘 정비된 내면세계의 출발점이다.(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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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리마스터판)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세랑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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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은 곧잘 무한히 맞물리며 작동하는 톱니바퀴에 비유한다. 시스템에 갇힌 채 익명이 익숙한 사람들은 어디나 있다. 때로 패턴화한 몰개성은 피로를 낮출 뿐 아니라 예의와 동류로 인식되기도 한다. 등장인물이 오십 명 쯤 된다면 한두 가지 주조색으로 수렴하거나 채도를 낮춰 완만한 풍경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프티 피플』의 인물들은 소외되는 법 없이 자기 자리에서 균형점을 향한다. 해피 엔딩 일색이 아니라 각자의 최선을 경주한다는 의미로 빛을 낸다. 그들은 표지 사진처럼 적당한 열을 받아 분자운동이 활발해진 3차원 공간 안의 컬러볼을 연상케 한다. 격차 없이 고르게 주목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창비, 2021, 488쪽)』이 2016년 세상에 나온 이후 개정판으로 찾아왔다. 정세랑은 2010년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았고 2017년 『피프티 피플』로 “강력한 가독성과 흡인력으로 이 사회의 연대 의지를 되살리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한국일보문학상 수상했다. 작가는 소설집과 산문집 외에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보건교사 안은영』, 3대에 걸친 여성서사로 주목받은 『시선으로부터』등 다양한 작품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피프티 피플』은 오십 여명의 이름이 목차를 구성한다. 첫 번째 이름 송수정부터 차곡차곡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책 전체가 충실한 등장인물 소개다. 읽는 일이 그들의 삶에 노크를 한 후 차례로 방문하고 떠나오는 일의 반복인 셈이다. 어떤 방문은 돌아서기가 망설여지고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다. 그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속내도 털어 놓을까 하고 불시에 살피기 때문이다. 작은 힌트를 주고 싶은 이름이 있고 현명함을 배우겠다고 잊을세라 메모하게 만드는 이도 있다. 영화에서나 가능할법한 사건 사고가 일반인에게 벌어져도 하소연할 수가 없다. 불가능하리라는 상식은 삶의 곳곳에서 파괴된다. 그저 싱크대 안쪽에 꽂혀있던 빵 칼이 사용될 줄 누가 알았겠나, 내 털실 인형같은 며느리가 구멍에 빠질 줄 누가 알았겠나, 폴 댄스 영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될지, 화물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오고 비가 강력한 트리거로 변하게 될지, 안하무인 광 상사를 군대에서 만날지를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다. 이러이러한 삶을 예측하고 기대했을지라도 실시간 수정하게 되니까 계획이고, 살아가야 하니까 인생이다.

작가는 적절한 비유로, 꼼꼼한 묘사로 뭉뚱그려져 있어 답답하고 괴로운 감정을 독자에게 설명한다. 작가의 언어가 회피하고 있던 내면의 덩어리를 조명할 때 부드러워지기도 작은 덩어리로 갈라지기도 한다, 제법 다루기 수월한 크기로 줄어들자 명명해 볼 기회가 된다. 등장인물의 상황을 빌어 현실에 대어 보는 게 소설 읽기의 미덕이기에 거듭 활용해 본다. “특수한 촬영기기가 나와서 윤나의 복잡한 안쪽을 찍어볼 수 있다면, 환의는 그 기계를 다룰 수 있도록 잘 배울 것이다.”(p.69) 나 역시 기계치라는 약점에 결연히 맞설 테고 이에 더해 마음 번역기나 무의식 해석기기 따위도 나오기를 바래본다. 미진함이라고는 남기지 않는 완벽 소통을 꿈꾸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피프티 피플』은 감정과 이성을 고루 긴장시킨다. 깔끔하게 정리된 인물관계도를 속으로 탐내며 정작 엄두는 못낸다.

표지 사진은 달콤함으로 무장한 불량사탕 같기도 반전 맛을 숨긴 소금사탕 같기도 하다. 친절하고 동시에 잔혹한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컬러 뒤에 숨은 진정한 맛은 무엇일지 가늠한다. 통통볼처럼 튀어 오르기도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기도 한 사람들이 ‘지금’을 통과하고 있다. 작가가 그려내는 우리 시대의 얼굴은 정성스럽다. 그들이 처한 고통을 다 아는 척 하지 않고 다만 이름 불러주고 성실하게 기록해내는 시선이 지지를, 때론 응원을 담는다. 읽다보면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이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아무도 한나가 사서인 걸 모르지만 한나는 사서로 살 것이다.”(p.265) 책만 있으면 잘 지내는, 비밀리에는 언제나 사서인 한나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양혜련처럼 동화같은 해피엔딩도 있다. 어떤 문장에서는 밑줄을 세게 긋는다. 별도 붙여 놓는다. 위트 넘치는 문장이 웃음을 주지만 철렁함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누구에게나 할당된 무대, 허락된 지면이 있다. 이를 구상하고 채우고 꾸미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등장인물이 오십 명인지 오십 일 명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끝에 등장시킬 독자 자신의 이름일 것이다. 촘촘하게 이름 불러주는 이 소설은 당신의 이름도 불러줄 것이다. 『피프티 피플』은 더 좋은 오늘을 위해 바라고 노력하도록, 다정하게 살피도록 힘을 싣는다.


책속에서>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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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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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함은 간절한 심정을 부추기고 막막함은 한 걸음을 내딛게 만든다. 잃어버릴 수 없는 마음은 그 자체가 눈이 되어 잃어버린 도시를 향한 움직임에 부지런하다. 비록 호흡을 잃은 채 도달할지라도 중단할 수 없는 여정이 있다. 백 년 전을 담아낸 책 속에서 여정은 분명하고 21세기 현재에서도 진행중이며 타협과 설득, 합리적이고 매끄러운 어떤 이론으로도 방향을 틀 수도, 그 길을 대체할 수도 없다. 위화의 『원청』(문현선 옮김, 푸른숲, 2022, 588쪽, 文城, 2021)은 부제인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행적을 중심으로 한 전기소설이다. 기이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사전적 의미의 전기소설은 작가 위화의 오랜 꿈이었고 8년 만에 발표한 『원청』에서 결실을 맺는다. 위화는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모옌, 옌레커와 함께 중국 3대 현대작가다. 그는 1983년 첫 단편 발표 이후 1993년 두 번째 장편 <인생>으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허삼관 매혈기>, <형제>, <제 7일> 등 5편의 장편과 산문집을 냈으며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장강명은 추천사에서 이토록 쉽고도 심오한, 웃기면서 동시에 슬픈 작품을 쓴 위화를 마법사에 비유한다. “위화적인 순간”에 함께 하자는 초청에, 8년 만에 펼쳐지는 차갑고도 먹먹한 행로에 오를 시간이다.

소설 『원청』은 <원청>과 <또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전자는 주인공 린샹푸의 관점에서, 후자인 <또 하나의 이야기>는 린샹푸를 끝없는 길로 이끈 샤오메이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던 린샹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열아홉에 어머니를 잃고 집사인 톈다와 그의 동생들과 지낸다. 아름다운 류펑메이와의 혼사도 놓쳤던 스물넷에 린샹푸는 젊은 오누이 샤오메이와 아창을 만난다. 양쯔강을 건넌 뒤에도 한참을 더 가야 나오는 강남 물의 고장 원청에서 왔다는 그들은 글자가 날아가듯 빠르게 말한다. 샤오메이는 아창이 데리러 올때까지 집에 머물던 중 린샹푸의 아내가 되지만 어느 날 사라져버린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딸을 낳고 아이가 한 달이 되자 또다시 종적을 감춘다. “당신이 또 말도 없이 떠나면 내가 찾으러 갈 거예요. 아이를 안고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당신을 찾을 거예요.”(p.81)라는 말대로 고향을 떠난다. 하지만 원청이 어디인지 누구도 알려주지 못해 아창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시진으로 향한다. 원청과 가장 가까운 시진에서 언제까지고 샤오메이를 기다리겠다고 마음먹는다.

린샹푸는 모든 게 인연이고 운명이라고 결론지으면서도(p.67) 자신이 맺은 관계에 정성을 다한다. 5년 동안 친구였던 당나귀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진에 거하며 함께하게 된 천융량과 그의 가족, 구이민까지 그는 받은 호의에 우정으로 답한다. 그러면서도 시진에서 보내는 10년간 샤오메이 찾기, 또는 샤오메이 기다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믿지 못할 자연의 광란과 토비들의 잔악한 행동은 개인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13년이 지나자 린샹푸는 원청도 샤오메이와 아창이라는 이름도 가짜일거라고 여기며 고향을 생각한다. 그는 토비에게 납치된 시진의 회장 구이민 구조에 자원한다. 소설 후반 3분의 1분량은 샤오메이의 변이 나온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샤오메이는 넓은 완무당에서 길러진 활발한 천성을 시진 선가에 들어온 뒤 푸른색 꽃무늬 새 옷에 응축해 가슴 깊이 묻었다.”(p.414) 그 후 샤오메이가 가슴 깊이 묻어야 할 것은 꽃무늬 옷 뿐이 아닌 린샹푸, 그리고 100여 집의 젖을 먹고 자란 딸 린바이자로 귀결된다. 린샹푸가 시진 천융량의 집에서 나오던 눈 내리던 밤, 원청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을까.

소설의 배경은 1900년대 초반 신해혁명기다. 군인세력이 난립했던 군벌시대에 지방에서 출몰하던 도적떼, 토착 비적인 토비가 민중을 참혹하게 옥죄던 시기다. 역사라는 거대 수레바퀴에 속수무책으로 치이고 쓸려가는 평범한 인간은 비참한 현실 앞에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자비한 바큇살 앞에서 굳어버리는 대신 두려움에 맞선다. 살아남아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고자 결단하고 기꺼이 적진으로 향하나 때론 믿을 수 없이 허망하고 느닷없는 종말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청』은 꺼져가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의례이기도 하다. 소설은 작가의 의도일지 아닐지 궁금해하며 등장인물들의 남은 삶을 추측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딸 린바이자의 행적은 끊긴 채 이어지지 못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미완의 느낌을 원했노라고 전한다.

『원청』을 향하는 린샹푸의 여정은 내내 『성』을 향하는 토지측량사 K의 시간을 상기시켰다. 도달해야만 하는 이상향이 거창하거나 원대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평생을 담보하는 일은 곧잘 발견된다. 그 상징은 눈 앞의 『성』이 그랬듯 모습을 바꾸거나 속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평생 매진한 가치가 알고 보니 내가 추구하던 대상에서 빗나가 있을 수도 있다. 이 틀어짐을 마지막 날들을 목전에 둔 때에야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보상받거나 하소연할 수 없는 게 동일한 인간 조건일테다. 린샹푸는 자신들은 알 수 없을 한 순간 마침내 아내 곁에 머문다. 마지막 페이지에 완독일과 시간을 쓰며 한 문장을 적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가!”라고. 지금 덧붙이고 싶은 문장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라는 한 시인의 글이다. 독자는 가련하고 연약하기에 더 강하고 아름답다는 ‘그럼에도’의 역설, 역설의 미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린샹푸는 천융량을 떠올렸다. 천융량이 여기 있었다면 틀림없이 일어나서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을 터였다. 그러자 린샹푸는 천융량이 여기 있었으면 그를 보내는 대신 자신이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린샹푸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던 눈동자들이 슬그머니 돌아가는 걸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p.322)

아창과 샤오메이는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창의 눈에는 당혹감만 가득하고 샤오메이의 눈에는 눈물밖에 없었다. 당황한 눈은 맞은편의 눈물을 보지 못했고 눈물 속 눈은 맞은편의 당혹감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우물과 강물처럼 처지가 달랐다. 한 사람은 우물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에 대해 생각했다.(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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