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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허진 옮김, 다산책방, 2023, 2010, 104면 분량)』는 한 소녀가 겪는 특별한 날들을 최대치의 밀도로 보여주는 짧은 소설이다. 하나의 문장과 다음 문장은 정밀하게 재단된 듯 꼭 들어맞게 맞물리고, 이야기의 경로에는 태양과 구름이 음영을 드리운다. 조짐과 전조가 가지런히 놓일 때도 있다. 좋은 예감이 지속되기도, 피하고 싶은 소식이 도착하기도 한다. 안도하며 잠을 깨기도 하지만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도 온다. 독자는 소녀의 시선을 통과하여 닿게 되는 삶의 눈부심과 아이러니가 이토록 생생했던가 감각하게 된다.
클레어 키건은 아일랜드 태생의 소설가로 첫 단편집인 『남극(Antarctica)』(1999)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다. 25년간 활동하면서 5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는 고국인 아일랜드를 넘어 세계적으로 기대를 받는 작가가 되어 호평의 한가운데에 있다. 국내에서는 <맡겨진 소녀>를 시작으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2023)>과 올해 <푸른 들판을 걷다(2024)>가 출간되었다.
소설 <맡겨진 소녀>는 영화화되어(콤 베이리드 감독) 베를린국제영화제 2관왕 등을 수상하였고, 국내에서는 <말없는 소녀>라는 제목으로 2023년에 개봉하였다. 소설과 영화의 일치율이 꽤 높고 대사도 똑같이 진행된다고 하여 영화를 보며 소설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낄 필요가 있을까 싶음에도 책은 구입하고도 차마 곧바로 펴서 읽지 못한 채 시간을 지체했다. 활자는 필시 더욱 깊이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맡겨진 소녀>라는 제목에는 이중의 무력감이 배어있다. 맡겨졌다는 피동성과 더 성장해야 할 독립 이전의 소녀라는 정체성은 위태로움과 불안을 야기한다. 독자는 소녀의 안위를 바라며 그녀의 여정에 동행한다. 소설의 구조는 단순하다. 주인공 소녀가 덥고 환한 어느 일요일 아침,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의 집으로 가서 여름 한 철을 보내고 어느 일요일 저녁,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소녀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상상하고 경계하고,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고, 경험하고 깨달아 알게 되기까지 반복되는 날들을 차곡차곡 쌓는다.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는 분리된 일상은 먹고 마시고,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쉬는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마치 두 번째 세상이기라도 하듯 다른 방식으로 채워진다. 작가는 이 다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무엇이 다르고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지, 왜 다른지를. 이 차이는 처음과 마지막만큼이나 멀고, 점점 벌어지는 간격, 넓어지는 틈은 슬프고 아릿한 맛을 지닌 채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하는 정점에 이른다. 목숨을 담보로 권리를 요구하던 아일랜드 단식 투쟁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던 시기를 배경으로, 어린이의 인권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영역에서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지, 소설은 우리 모두의 유년을 조명한다.
소녀는 네 남매 중 한 아이였고, 다섯째 아이의 출산에 임박한 부모의 결정에 따라 먼 친척 부부에게 보내어졌다. 새로운 곳으로 향할 때도, 익숙한 집으로 돌아올 때도 소녀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소녀는 본능처럼 방어기제를 장착하였고 작동시킨다. 상처받느니 애초에 선물이 주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더 안 좋은 쪽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태도는 좋아본 적이 없다는 현실 인식에 기인한다. 잠시 머물 킨셀라 부부의 집과 아이의 입장에서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긴, 어쩌면 영원에 맞먹어 보이는 시간을 보낼 자기 집의 차이는 소설 곳곳에 배치되는데 다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다. 두 집의 주인이, 그들의 성정이, 말을 거는 의도와 질문이 내포하고 있는 압력, 또는 온기가 아직 어린 소녀에게 무차별적으로 감지된다.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는 정리는 너무 편협한 요약이다. 성장하는 아이와 자라지 않는 어른,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라고 묻는 아이에게 감히 답하지 못하는 어른을 본다. 혈연이고 가족이므로 당연시하는 무례함. 무례의 권리와 폭력, 신체적으로 가해지지 않더라도 이미 전방위적으로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강압 아래서 살아남기는 개인별 미션이 된다. 살아남아서 좋은 어른이 되는 건 관심 영역에서 아직 멀다. 좋은 어른이라는 추상의 이름은 차치하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안 할 줄 아는 한 가지 미덕을 체화한 어른 되기는 가능할지에 대해 소설은 환기한다.
일관되게 짚어나가는 “말”의 변주가 책에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지점이다. 아이의 부모와 킨셀라 부부가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다. 소녀가 도착한 첫날, 처음으로 지적받았던 것도 바르게 대답하는 법이었다. 킨셀라 아주머니는 “‘에’가 아니야. ‘네’라고 해야지.”(p.27)라는 언급 후에 잘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들어보기 어려웠던 칭찬이 후렴구처럼 반복되는데 일상의 언어다. 착하지, 착하기도 하지, 정말 대단한 목청이었어. 격려하고 지지하는 언어는 진심에서 나오기에 자연스럽다. 널 잡는 남자는 아주 빠를 거다. 넌 다리가 기니까.(p.41) 기록이 어제보다 못할 것을 소녀는 알고 있지만 비교의 기준을 달리기했던 첫날로 옮겨 19초가 빨라졌다고, 꼭 바람 같다고 말한다. 칭찬할 기회를 빼앗기지 않는다.
이에 반해 소녀를 맡기고 가던 아버지의 인사는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너.”(p.21)였고, 대신 제대로 된 작별인사는 없었다는 생각에 아이는 의아하다. 아빠의 언어 습관에는 거짓말도 있다. 밀드러드 아주머니의 언어 또한 민망할 정도로 가차 없지만 칼과 같은 말을 던지는 이들을 우리 역시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소녀는 첫날 알아차렸다.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p.25)는 걸. 새로운 말은 서서히 스며들었다. “저기서는 네가 날 업고 왔나 보다.”(p.74)처럼 아저씨가 건네는 말은 농담조차 유머가 있고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바닷가 밤 산책을 나갔던 날, 두 사람은 멀리 두 개밖에 없던 불빛이 세 개가 되어 깜박이는 걸 함께 본다.
소설은 말이 먼저일까 삶이 먼저일까, 그렇게 살기에 그런 언어가 체화되는지, 무심하게 상처를 주는 파괴적인 언어습성이 삶을 소리 없이 부수는지 성찰하게 한다. 또한 할 일이 산더미라 여유가 없다는 게 카드 속 노란 꽃밭에 있는 고양이처럼 무서운 표정으로 대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긍정이나 부정의 언어를 넘어 침묵의 지혜를 강조하기도 한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p.73) 라는 아저씨의 말을 소녀는 체득하고 간직한다. 작가는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는 말의 문제,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를 반복하여 제시하고 소녀의 시선으로 흔들림 없이 새긴다.
작년 하반기에 참여했던 시립도서관의 글쓰기 수업에서 이 소설이 특히 인상 깊었다. 영화 감상 후에 이어진 교수님의 찬사는 꽤 직접적이었다. 정통 소설의 표준이며 현대 소설의 정점이다, 중편 소설의 최고 수준을 성취해 낸 빼어난 모범 텍스트다, 최소한 이십 년은 가꾼 문장력이며 작가의 엄밀한 자기 수련의 결과라고 평했다. 이 문장은 우리도 쓸 수 있다, 다음 문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은 어렵다는 말씀에 작가를 향한 선망과 자신을 향한 좌절이 동시에 엄습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아껴둔 끝에 편 작품에서 만나는 낱말들, 낱말이 품은 이미지, 치장하지 않고 본질만을 건져 배치하는 진행과 장면 전환, 대화의 순간들이 몰입케 할 뿐 아니라, 작은 분량 안에서도 놓치지 않는 풍경의 묘사는 인물의 심정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이중의 역할을 해낸다. 촘촘함과 여백의 균형 또한 리드미컬하다.
헤어지는 아저씨의 마지막 당부는 책을 계속 열심히 읽으라는 것이었다. 곁에서 말해줄 수 없는 대신 책에서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는 소녀가 가져가는 세 권의 책으로 미래를 비춘다. 하이디처럼, 행복한 재회는 이루어질까. <눈의 여왕> 마지막에 카이와 게르다가 돌아온 집은 변한 것이 전혀 없지만, 그대로인 집은 모험을 겪고 성장하여 귀가한 아이들에게 더는 그대로가 아니다. 게르다의 따뜻한 동심은 카이를 구할 만큼 강했고 그들 앞에는 다른 시간이 시작될 것처럼 소녀에게도 다른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킨셀라 부부에게 받은 사랑의 여운이, 특히 축복처럼 닿았던 말의 기억이 소녀를 지킬 것이다. 비록 이 순간 온 힘을 다해 이별의 아픔을 참을지라도 말이다. ‘함께한 나날’(p.83)은 ‘눈앞의 날’(p.82)부터 다가오는 모든 날을 헤쳐 나가게 할 것이다. 뜨겁고 맑고 투명한 눈물 빛 작품을 추천한다. 독자 역시 자신의 유년을 비추는 작은 태양을 마음에 띄우게 될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