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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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소송Der Prozess,1925(권혁준 옮김/문학동네)』은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3부작”으로 불리는 세 편의 장편 소설(『실종자(아메리카)』, 『소송』, 『성』) 중 한 작품이다. 카프카의 벗 막스 브로트는 유고를 불태워 달라고 했던 카프카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작가 사후에 모두 출간한다. 출간할 첫 책으로 브로트가 선택한 작품은 『소송』(1925)이었고 『성』과 『실종자』가 뒤를 잇는다. 역자는 카프카의 잠언에서 “우리의 책임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처해 있는 상태가 유죄의 상태”라고 인용한다. “카프카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겪는 경험은 필연적인 좌절의 경험이고, 이는 인간의 불완전한 실존에 기인하는 것”(p.345)이라고 설명한다. 독일의 저명한 작가, 평론가, 학자들이 꼽은 '20세기 10대 소설', 독일어소설 열 작품에 카프카의 “소송”이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린다. 이현우는 토마스 만의 소설 세 편과 카프카의 소설 두 편(소송, 성)이 포함된 게 눈길을 끈다며 두 작가가 20세기 독일문학의 절반인 셈이라고 덧붙힌다.(로쟈의 저공비행 인용) 『소송』이 장들의 순서 등 작가의 의도가 일부 변형된 ‘브로트 판’이 아닌 카프카 원고 그대로 편집된 ‘패슬리 판’ 번역본이라는 점은 재독을 더 기대하게 한다.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p.9) 첫 문장은 은행의 간부로 근무하고 있는 주인공 요제프 K가 갑자기 체포되는 장면이다. “엄연히 법치국가에 살고 있”(p.13)는 K가 서른번째 생일날 아침에 당한 일에 분개하자 감시인은 오히려 “당신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줄을 모르는군”(p.15)하고 비난한다. 착오의 가능성도 차단한다. “법에 쓰여 있듯이 죄에 이끌려서 감시인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오. 그것이 법이라는 거요. 거기에 무슨 착오가 있겠소?”(p.15) 감독관은 그에게 절망시키려는게 아니다, 당신은 체포되었을 뿐이고 그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또한 이 체포는 K의 일상생활을 구속하거나 방해하지 않는 체포다. 한 통의 전화는 K가 심리를 받기위해 출두해야 한다는 통보다. 특정 장소에 도착 후 심리가 열리는 방을 찾아내고, 들어가고, 맞닥뜨리는 일들은 또 다른 차원으로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책을 덮은 후에도 이미지는 잔상으로 남고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던 앙드레 브르통의 주장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억울함을 밝히고 부당함을 호소하고 싶은 K. 그는 자기만의 고유한 역사를 쌓아온 보통의 시민으로써 받아 마땅한 권리를 되찾고 자유를 누리고 싶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니 스스로를 구원키 위한 방도를 최대한 모색한다. K가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출현했다 사라지곤 한다. “그는 적어도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당장 법원 전체를 때려 부술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있지 않은가? 이 정도의 자신감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p.78)라는 기세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시도한다. K가 통과하고 맞게 되는 경험은 과도하고 비틀려있다. 그렇기에 바로잡겠다는 마음은 더 확고해진다. 하지만 치밀하고 현란한 카프카적 묘사를 따라갈 때 K의 시도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형국일 뿐이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는 소송 전체인 것이다. K의 인생행로에 갑자기 이 무슨 장애물이 닥친 것인가!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은행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중략) 은행 업무는 소송과 연관되어 있고 소송에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그리고 법원이 인정한 일종의 고문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은행에서는 그의 업무를 평가할 때 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줄까? 아무도, 그리고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p.164) 이쯤 되면 늪이 맞다. 그런데 늪은 책이 아닌 현실에도 즐비하다. 늪, 빗물웅덩이, 돌부리, 걸림돌들은.

마지막 두 장은 “대성당에서”와 “종말”이다. 무죄를 주장하는 K에게 신부는 “그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죄 있는 사람들이 늘 그런 식으로 말하지요.”(p.264)라며 K가 법원과 관련해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 지적한다. 이어 “법의 서문에는 그런 기만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p.267)로 시작하는 비유담이 재등장한다. 1915년 따로 출간되었고 카프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는(p.168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은행나무) 『법 앞에서』다. 하지만 여기서는 신부와 K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보여준다. 카프카는 첫 장과 마지막 장을 거의 동시에 완성한 후 중간 부분을 집필했다고 한다. 마지막 장,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고군분투했던 시간은 하나의 결말을 맺는다. -“개 같군!” 그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치욕은 살아남을 것 같았다.“(p.287)- 이 쓸쓸한 마지막은 작가 자신이기도하고 인류 대표이기도 한 K,가 의도하고 구했던 것을 내어주지 않고 구원과도 멀다. 앞에서 변호사의 방법이라는게 ”의뢰인이 세상사를 다 잊고 소송이 끝날 때까지 이런 잘못된 길로 질질 끌려다니기를 스스로 바라게 만드는 것“이고 결국 의뢰인은 더 이상 의뢰인이 아니라 ”변호사의 개“(p.242)가 된다고 했다. 마지막 은유는 ”인생의 베일“에서 월터가 죽기 직전에 했던 말 ”죽은 건 개였다.“(p.269, 인생의 베일/서미싯 몸/민음사)에 닿는다. 역시 쓸쓸했던 죽음이다.

어울리지 않게도 “학교종”이라는 오래된 동요가 떠오른다. 이 짧은 가사 실현이 그토록 어렵나? 어렵다. 학교종이 울릴면 모이고 이때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세상. 단순하고 친절하고 자명한 세계, 우리는 예측 가능한 약속된 세계를 추구하지만 책에서 이는 찾아볼 수 없다. 종이 울리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문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권유보다는 협박에 가까운 강제, 무엇보다도 우리를 기다리는 게 그곳에 있어야 할 선생님은 아니다. 법, 법원도 상급법원도 아니다. 한 사람일지 전체일지도 알 수 없다. 미지인 채로 커튼 막은 내려온다. 기요틴의 칼날처럼 속도감 있는 막이다.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나. 반복되는 일상, 살아있는 한 살아내야 하는, 업적도 공로도 표창도 없이 때론 죄의식 달래는 삶. 미약할 지언정 ‘이게 말이 돼?’ 외치며 한계없이 대치하고 투쟁할 때 확인케되는 부조리한 인간 조건을 닮았다. 이를 믿기 어려울만큼 빼어나게 펼쳐보이고 직면시킨다는 점이 카프카, 특히 “소송”의 매력이다.

헤세는 “이 특이한 작가의 첫 소설은 그가 죽고 2년이 지난 다음 작가의 의지를 거스르며 나왔다.”고 1925년 9월 ‘베를린 일간지’에 쓴다. 그는 “독자는 꿈결처럼 비현실적인 세계의 분위기 속으로 끌려들어가, 뒤엉킨 꿈의 실타래로 짜이는 구조물 속으로 함께 짜여 들어가고, 제대로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자신이 환상적인 꿈 세계의 이미지 속에서 지상과 지옥과 하늘을 보고 경험하고 있음을 막연히 예감한다.”며 마지막에 덧붙인다. “이 작가는 도이치 언어의 감추어진 대가이자 왕이다.”라고.(p.30,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헤르만 헤세/안인희/김영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에 이만한 도끼가 또 있을까. 재독을 마치며 다시 펼 날을 기다린다. 부분적으로 선택한 장면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곱씹어 읽어도 좋겠다. 날개를 단 것처럼 스쳐 읽고 다시 돌아와 사진을 찍듯 멈춰 읽거나 하나의 페이지에 하루를 고정하며 읽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숨을 참고 읽어볼지도 모르는데 먼저 어울리는 장면을 추린 후 시도하겠다. 다시 읽기 위해 일부러 떠나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매일 읽는다면 화창한 태양 아래 꽃향기 가득한 날이 지속되더라도 마음의 페이지는 모노톤으로 고정될 것이다. 흐림, 흐림, 흐림으로 일관할 내적 날씨를 견딜만하다면, 그 틈새의 빛, 찬란함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여긴다면 카프카의 “소송”읽기는 빼앗기지 않을 온전한 기쁨으로 독자 곁에 머물 것이다.

책 속에서>

도대체 너는 이번 소송에서 지고 싶은 거야?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기나 해? 그건 네가 간단히 지워져버린다는 뜻이야.(p.119)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지위는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에게 부당한 행동을 한다든가 그 지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원의 서열과 직급 체계는 끝이 없어서 그 세계에 정통한 사람들조차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데 법정에서의 재판 과정은 일반적으로 하급 관리들에게도 비밀이며,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사건의 향후 추이를 완전히 파악할 수가 없고, 따라서 재판 사건은 대부분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도 모른 채 그들의 시야에 나타났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런즉 개별적인 소송 단계들, 최종적인 결정, 그리고 그런 결정의 근거들을 연구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 같은 것이 하급 관리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p.146)

(중략) 변호사의 방법이라는 것은 의뢰인이 세상사를 다 잊고 소송이 끝날 때까지 이런 잘못된 길로 질질 끌려다니기를 스스로 바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의뢰인이 아니라 변호사의 개였다.(p.242)

"나는 다만 그에 관한 여러 의견을 들려줄 뿐입니다. 당신이 그런 의견들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요. 글은 불변하는 것이고, 해석들은 종종 글에 대한 절망의 표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심지어 문지기야말로 기만을 당한 자라는 의견까지 있어요.“(p.273)

누굴까? 친구일까? 좋은 사람일까? 관련된 사람일까? 도와주려는 사람일까? 한 사람일까? 아니면 전체일까? 아직 도움이 가능한 것일까? 생각해내지 못한 반대 변론이라도 있는 걸까? 틀림없이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논리라 하더라도 살려고 하는 사람을 당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아직 이르지 못한 상급 법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두 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쫙 펼쳤다.(p.287)


천번째 서평/감사

[서평]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권혁준 옮김/..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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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법칙 - 세상의 작동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가장 정확한 언어
시라토리 케이 지음, 김정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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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토리 케이의 『세상의 모든 법칙(김정환 옮김, 포레스트북스)』은 과학부터 인문학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세상의 작동 원리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법칙과 정리 105개를 선보인다. 견고한 지식을 정련된 문장으로 명확히 할 수 있는 기회는 비록 전공 수준의 깊이에 이르지 못할 지언정 매력적이다. 저자는 용어를 먼저 정리한다. "법칙"은 “대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일정 조건에서 반드시 그렇게 되는 보편적인 관계성을 나타낸 것”(p.11)이고 “정리”란 “수학적으로 참이라고 증명된 명제”를 의미한다. 이때 정리는 “증명이나 설명 없이 있는 그대로 자명한 명제”인 “공리”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원리”는 상대성 원리 등 “자연계의 근본적인 성질을 나타낸 것”(p.12)을 말한다. “하나의 원리를 낭비나 모순 없이 꼭 필요한 엑기스만 추출해낸 것”(p.4)이라는 “법칙”의 다른 표현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작동법을 엿보는 유용한 도구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목차 순서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읽어나갈 것을 권한다. 책은 하나의 법칙에 주로 세 쪽을 할애하는데 케플러의 법칙처럼 때론 일곱 쪽에 걸쳐 설명하는 등 분량은 유동적이다. 각 제목 번호 밑에는 물리, 논리, 천문, 심리 등 학문 분야를 기록하고 한 줄 정리, 도식, 정의, 발견자, 수식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이후 핵심 설명이 뒤를 잇는다. ‘들어는 봤다, 이 법칙!’에 속할 것 같은, 고뇌하던 시험시간을 떠올리는 법칙들도 많다. “전기의 신, 앙페르”가 밝힌 앙페르의 법칙, “전류·전압·전기 저항의 아름다운 삼각관계”(p.80)를-아름다운가-를 말하는 옴의 법칙 등은 여전히 범접 불가능하다. 수많은 정리 중 가장 유명하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물론 등장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는 방법은 100종류 정도 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리할 때 저자는 그래프와 식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친절하게 밝힌다(p.215). 도움보다 좌절에 가까운 경우도(필자)도 있겠지만 빛의 속도로 이해할 또 다른 독자들을 다시 한 번 부러워한다.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다. “맥스웰의 악마”에서 악마는 움직임이 빠른 분자와 느린 분자를 가려낸다고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데 60년이 지나 이 악마는 부정되었다고 한다. 스토리텔링 수학을 공부할 때 인상적이었던 황금비와 1대 1.618 비율은 암기 자체로 아름답다 여겨졌다. 이런 법칙도 있었군 하는 새로운 발견은 설렌다. 공무원의 수는 계속 증가한다는 “파킨슨의 법칙”(p.232)에서 저자는 공무원의 수와 업무가 무의미하게 늘어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법칙은 일상에서 자주 변용되는데 “마감 전에 미리 마무리할 수 있는 작업이 있어도 끝내지 않고 최종일 직전까지 시간을 낭비한다.”(p.234)와 같은 경우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하인리히의 법칙”의 수식은 1:29:300이다.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29개의 작은 사고 그리고 300개의 아찔한 사고라는 전조 증상이 있다. 얼마 전 하인리히 법칙을 경험하고 자중하는 상태로 한 번 더 새겨본다. 『세상의 모든 법칙』은 지식을 정리해서 알려주는 책이라 궁금했다. 세상은 넓고 알아야 할 것은 많으며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저자의 수고로 독자는 105번의 지적 탐험에 동행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입문서를 선택하기 이전의 지식 애피타이저라고 할까, 책을 읽은 후 더 알고 싶다, 알고 말리라 하는 법칙은 앞으로 선택할 지식의 범위나 책의 목록을 구체화 해줄 것이다. 색인이 있어 후에 다시 찾아 읽기도 편리하게 배려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까, 또는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 책이 답안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연한 지식이 힌트를 보여줄지 모른다. 때론 끈질기고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발견자’들의 진리를 향한 헌신이 공식이나 법칙의 숫자들보다 울림을 주기도 한다.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아름답고 알고 싶어지는 이유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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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빛 그림 아이
숀 탠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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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탠의 『개(김경연 옮김/풀빛)』는 2020년 케이트 그린 어웨이 수상작인 “이너 시티 이야기” 중 한 작품으로 이번에 단독으로 출간되었다. 숀 탠 (Shaun Tan)은 비주얼 아티스트이면서 다양한 작품으로 여러 상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로 <잃어버린 것>, <빨간 나무>, <도착>을 비롯한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여운을 간직한다. <이너 시티 이야기> 속 스물다섯 동물 중 선택된 <개>는 표지부터 부드럽고 온건하게 닿는다. 고급 벨벳 양장본으로 소장가치를 높였다고 하는데 지금껏 맺어온 관계, 앞으로 맺을 관계에 예를 더하는 느낌이다.

표지에 보이는 사선은 아스팔트 도로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검은 개는 무엇을 향하는지 양면을 펼쳐보자 끝에 누군가가 있다. 둘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앞 뒤 면지는 동일하다. 어스름한 바탕에 사람과 개가 그림자처럼 찍혀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람도 개도 모두 다르다. 패턴의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각각은 고유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동반자일 것이다. 흰 배경에 한 번, 검은 배경으로 다시 한 번 타이틀 표지를 거치면 드디어 시작된다. 이야기이자 역사가.

“옛날 우리는 서로를 잘 몰랐다.” 작가는 그 의미를 글 텍스트로, 다음 장에는 그림 텍스트만으로 설명한다. 서로를 잘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걸 아는 상태. 본능적인 믿음이 이미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와 인간도 가까워진다. 멀리서 바라보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게 된다. 같은 방향으로. 작가는 아름다운 짧은 문장으로 두 종의 연대를 온전히 보여준다. “우리는 함께 외로움과 두려움의 뒤를 쫓았고 언젠가 일어날 모든 일을 보았다. 아름다움과 공포와 흥망성쇠 모두.” 그러나 둘 모두에게는 한정된 시간이라는 조건이 있다.

유사한 구도로 그림이 진행된다. 책장을 넘기며 독자는 시간여행을 한다. 제본선을 제외하고 좌우 한 컷의 그림은 빛과 어둠, 향기와 소리가 증폭되는 미지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컷마다 다르고도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쟁도 있었고 복구된 듯도 보인다. 비로소 시선을 마주했으나 환경은 이전과 다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다시 함께이기 때문일 것이다. 후기에서 숀 탠은 “이토록 웅대하고 서로를 바꾼 종족간의 우정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낙관하기 어려운 미래임에도 “유별나면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개와 인간의 유대에서 희망을 본다.

숀 탠의 『개』를 읽으면서 브라이언 헤어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개는 그들 종의 강력한 성공 무기였던 두려움과 공격성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만한 충분한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다리가 둘이건, 넷이건, 검건 하얗건,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는 그런 차이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나의 삶은 바뀌었다.”(p.299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긴 연구서를 숀 탠은 아름답게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숀 탠은 새로이 출간될 때마다 주저 없이 소장할 수 있는 작가에 속한다. 『개』는 숀 탠 스럽고 숀 탠적이다. 글과 그림에서, 문장과 행간에서, 색채와 여백에서 많은 감정과 이야기가 흐르고 넘치고 기다려준다. 『개』는 그동안 함께 했던 나의 개들을 속으로 불러보게 한다. 그들이 여전히 나의 개이며 결코 잊지 않음을 확인시킨다. 존재하는 내내 흥망성쇠 모두 기꺼이 나누어 졌던 종, 개에게 바치는 숀 탠의 헌사를 추천한다.

내가 달리면 너도 달렸다.

네가 부르면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함께 외로움과 두려움의 뒤를 쫓았고

언젠가 일어날 모든 일을 보았다.

아름다움과 공포와 흥망성쇠 모두.



(출판사 도서제공_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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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빈곤 사회 -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강남순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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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의 『질문 빈곤 사회(행성B,2021)』는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질문이 부재하는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경종을 울리며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책은 여전히 한국이 ‘질문 후진국’(p.10)임을 상기시키며 ‘나쁜 질문’의 위험성과 ‘좋은 질문’의 전제와 방법을 익히도록 독자를 이끈다. 현직 교수인 저자는 현대 철학적·종교적 담론들 뿐 아니라 “코즈모폴리턴 권리, 정의, 환대 등의 문제들”에 학문적, 실천적 관심을 두고 학생과 대중에게 지식 전달과 변화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동시에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페미니즘과 종교 3부작을 비롯해 다양한 저서와 컬럼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는데 『질문 빈곤 사회』는 최근작으로 “지금” 더 부각되고 수정해야 할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꼭 필요한 다섯 가지 “물음 묻기”를 제안한다. 대상 별로 “권력과 언론에 물음 묻기”부터 “타자의 얼굴”, “관행과 대안”, “존재와 혐오”, “희망과 생명”에까지 “물음 묻기”는 긴급하고 기본이 되는 것부터 미래 지향적인 단계까지 확대된다. 아인슈타인이 가진 호기심과 창의성에서 재능이 열정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봤을 때 “질문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정체성의 결정 중 하나”(p.61)다. 즉, “호기심이 없어 질문 자체를 구성하지 않는 이들은 자기 자신이나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 무관심한 사람“이며 그람시의 명제에 의해 그런 무관심한 이들은 ”기생하는 존재“들로써 이미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p.62)

2부 "타자의 얼굴에 물음 묻기"에서는 사람은 처해진 환경과 별도로 세 종류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매니퓰레이터, 매니저, 리더의 특징을 하나씩 살펴볼 때 저자가 보여주는 사례는 그들을 넘어 우리 주위의 누군가로 확대, 연상된다. 또한 저자는 일반화된 호칭 뒤에 숨은 폄하 의도, 한국의 나이 집착주의가 왜 위험한지를 근거를 들어 밝힌다. "정치적 행위로써의 말과 글"(p.108)에서의 지적도 논의를 부른다. "문학작품이라고 해서 차별과 혐오의 면책 특권 영역이 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어떤 종류의 글이든 이러한 비판적 수정 작업의 대상임을 시인을 보여준다."(p.110)는 지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알겠지만 범위를 한정하는데 있어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긴즈버그의 유산”을 하나씩 짚어가며 숙고하는 장면들도, 배움과 불편함의 관계 등을 정리할 때도 밑줄에 괄호, 별표와 각종 체크가 지면 가득이다. 적절한 인용과 풍성한 사례는 이 책의 장점으로 가독성을 높이고 이해를 돕는다. “진정한 배움은 학생들에게 익숙한 인식 세계를 깨고,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 세계의 문제들을 보게 함으로써 상투적이고 무비판적인 인식을 깨는 ‘불편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배움이 가능하다.”(p.188) 날선 비판에 움츠러드는 부분, 내내 강력하게 주도하는 글로써 과하다 싶은 부분도 있지만 지평을 확장하는 배움을 위한 ‘불편함’의 감수는 반대할 수 없다. 주요 이슈를 빼곡이 담아 공부하며 읽어야 할 책 같다. 책 자체가 배움의 과정을 자연스레 경험케한다. 여러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다시 펼치는 부분은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현대 세계의 “식민화”다. 이는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고독의 시간과 공간’ 가지기를 회피할 때 언제든 가능한 식민화로 “스스로 사유하고, 읽고,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고 씨름하는 과정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황과 연계된 대안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된다.”(p.132)는 권고를 다시 새기게 한다. 희망적인 논의의 결말이 책을 덮는 독자의 마음에 선물처럼 남을 책이다.

책속에서>

현대 세계에서 식민화는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고독의 시간과 공간’ 가지기를 회피한다면, 외부 세력이(그것이 사람이든, 대중 매체이든, 사회나 국가든) 나를 대신해 내 삶의 방향과 대안을 결정하게 하는 ‘식민화’의 문을 열 개 된다. 스스로 사유하고, 읽고,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고 씨름하는 과정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황과 연계된 대안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된다.(p.132)


교육과정에서 '불편함'이 생략된다면, 현실 세계가 담고 있는 무수한 차별과 배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변화 주체'로서 이행하는 진정한 평등 교육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배움은 학생들에게 익숙한 인식 세계를 깨고,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 세계의 문제들을 보게 함으로써 상투적이고 무비판적인 인식을 깨는 '불편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배움이 가능하다.(p.188)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이란 무수한 ‘작심 3일’들을 거치면서, 이 삶의 짐들을 견뎌 내면서 지금과 다른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생명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p.352)

인간의 삶은 무수한 ‘작심 3일’들이 만나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므로.(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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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서 쏜살 문고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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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1896~1943)의 『법앞에서(전영애 옮김/민음사)』는 열 네 편의 작품을 담은 단편집으로 “카프카적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한다.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카프카는 질병으로 고통받고 때이른 죽음을 맞기까지 장편과 단편, 일기 등을 합해 총 3400여 쪽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죽기 전 평생의 벗이었던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미완성 작품을 모두 없애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브로트가 이를 실행하지 않은 덕분에 현대의 독자가 카프카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책은 한 손에 쥐어지는 문고본으로 분량도 165쪽으로 가볍다. 들어가는 말, 역자해설, 편집후기 등도 없고 작품에만 최대한 페이지를 할애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막강하게 행진해온다.

“법(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p.7)로 시작하는 표제작 <법 앞에서>는 카프카 자신이 일기에서 “전설”이라 불렀다 한다. 카프카 전기를 쓴 클라우스 바겐바하에 의하면 카프카 스스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지만 확고한 정설로 인정받을 만한 해석이 없을 만큼 수수께끼로 남아있다.(p.168,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은행나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우리 모두이기도 한 “시골 사람 하나”와 삶의 목표이자 유일한 가치, 의미일 수 있는 “법”, 그 사이 통과해야만 하는 단계, 또는 과정인 “문지기”의 단순한 구도로 인생 전체를 조망한다. 시골사람은 카프카, 문지기는 아버지라고 단선적으로 읽히지는 않았다. “법”의 수많은 다른 이름, 꿈이나 목표, 의미에 닿는 진정한 길은 있을까,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의 방향을 틀어본다면 다음 단편 <죄와 고통, 희망 그리고 진정한 길에 대한 성찰>중 첫 번째 잠언이 이를 정리해준다. “진정한 길은 드높이 팽팽하게 쳐진 줄이 아니라 땅바닥 위로 바싹 쳐진 줄처럼 나 있다. 진정 디디고 간다기보다는, 오히려 걸려 넘어지게끔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p.11) 이 통찰과 비유에 놀라울 따름이다. <굴>에 이르면 또 다른 세계다. 법에 닿기 위해 애쓴 압축 여정에 비해 설명과 묘사를 채워 넣음으로 굴과 나, 굴을 파고 예측하고 아끼고 사유하고 갈등하고 손을 놓는 일련의 과정, 어느덧 백발이 지름길로 오는 인생 행로를 그려낸다.

<황제의 전갈>은 불가능이란 무엇인가를 시전한다. 절대 절망과 깊은 무력감, 그럼에도 이어질 반복을 떠올린다. 이 짧은 단편은 다음 이야기 <만리장성을 축조할 때>의 부속 장면으로 삽입되는데 영리한 전개다. 작가는 무한히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가장 작은 씨앗의 미세함이라든지 언뜻 스치는 바람결을 놓치지 않는다. <만리장성을 축조할 때>가 가장 마음을 끄는 작품이었다. “압도적 거대함 앞에 몰아세워지다, 그 사실조차 잊은 채 전락하는 인간”이 이 작품에 대한 한줄 정리 중 한 예다. 본 적도 없고 결코 보지 못할 북방인들을 대비해 축조하는 장성이라니. 이를 위해 감수하는 희생 또한 끝 간데를 모르고 요청받고 지불하는 희생이다. 만리장성 축조는 작가의 미완성 장편 <성>을 떠올린다. 그 외에도 미지의 것에 사로잡혀 무모하게 작동하는 인간의 초상은 또 다른 작품들을 소환한다. 가장 먼저 알바로 무티스의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문학동네)>, 이어서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문학동네)>이다. 카프카가 거듭 변주하는 인물들은 환상적인 배경을 무대로 터무니없이 성실하다. <굶는 광대>는 또 어떤가. 단편 하나 하나 마다 “놀라워라”를 연발하며 읽는 이유는 극도의 환상이 환상에 머물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발견 때문이다. 불통인 채로 이해에 이르지 못하고 맞는 결말들이 가슴을 서늘케 하지만 “지금, 여기, 여전히”는 모든 작품에 들어맞는다. 우아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비극적 인간 조건을 말할 때 감정이 실릴 공간은 없다.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은 기록할 뿐이다. 그럼으로 여전히 웅변한다.

책 속에서>

그러나 내 쪽에서는 모든 것이 도리어 그 당시보다 덜 준비되어 있으니, 커다란 굴은 여기 무방비 상태로 덩그러니 서 있다. 나는 이제 꼬마 수습공이 아니라 노장 건축사이지만 아직 남아 있는 힘을 결단의 시기가 오면 정작 쓰지 못할 터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늙었더라도, 지금보다 한결 더 늙는다면, 정말이지 좋겠다. 이끼 아래의 나의 휴식처로부터 더 이상 몸을 전혀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늙었으면. 그러나 실제로 나는 이 곳을 견디지 못해 몸을 일으키고, 이곳에서 포만한 평화와 새로운 근심으로 나를 가득 채우기라도 한 듯이 다시 질주해 내려간다, 집 안으로(p.84, 굴)

그가 사는 건 자신의 개인적 삶 때문이 아니고, 그가 생각하는 건 자기의 개인적 사고 때문이 아니다. 그는 한 가족의 강박에 의해 자기가 살고, 또 생각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자체로 생명력과 사고력이 지나치리만큼 풍부하기는 하지만, 그가 모르는 어떤 법칙에 따라 일종의 형식적 필연성을 지니는 가족 말이다. 이 알지 못하는 가족과 이 알지 못하는 법칙들 때문에 그는 풀려날 수가 없다.(p.160, 그-192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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