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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댐로쉬의 세계문학 읽기
데이비드 댐로쉬 지음, 김재욱 옮김 / 앨피 / 2022년 11월
평점 :
어릴 때 책장에 꽂혀 있던 세계명작전집은 꿈과 사랑, 모험과 희망으로 동심을 이끌었다. 온세상이 책꽂이 안으로 사이좋게 모여있는 형국이었고 그 세계는 무한할 것 같았다. 성장하면서 지금까지 보았던 건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깨닫고 축약과 편역을 아닌 완역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출발점 회귀현상이 벌어졌다. 선택해야 할 항목도 늘어났다. 이 작품은 누구의 번역으로 읽어야 할지, 어느 출판사가 나을지 정보를 모으고 판단을 내린다. 동시에 늘 아쉽다. 원어로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마냥 부러워하며 ‘현재 상태 최선’과 타협한다. 지금까지 읽고 써온 내 서평의 많은 부분을 세계문학이 차지하므로 스스로를 총망라 서평러, 다나와 서평러가 아니라 편애 서평러라 칭했다. 그렇기에 댐로쉬의 『세계문학 읽기』는 반드시 읽어야 할 저작으로 대기 도서 리스트 상위에 자리 잡았다.
데이비드 댐로쉬의 『세계문학 읽기(김재욱 옮김, 앨피, 2022, 2018, 430쪽 분량)』 는 세계문학 독자를 위한 안내서이자 입문서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입문서라기에는 일반 독자에게 난도가 있지만 저자는 복잡해보이고 때로 굴곡진 길을 기꺼이 따르려는 열정 있는 자들을 불러 모은다. 하버드대학교 비교문학 학과장이자 세계문학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데이비드 댐로쉬는 전 세계 50여개국에서 세계문학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한 두 세기, 한 두 지역만의 전문가가 아닌 “무려 4000년 지구문학의 종사자임을 자처”(p.15)하며 시공을 넘나든다. 역자는 세계문학 읽기에 전력해온 댐로쉬 작업의 정화가 바로 『세계문학 읽기』라고 전한다.
역자는 서두에 “오늘날 세계 문학의 풍경”을 조망한다. 그는 세계문학이 일으킨 변화 중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텍스트 산출량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두가지 이론을 대비한다. 프랑코 모렐리의 “멀리서 읽기” 개념은 “꼼꼼히 읽기”와 대별되고 ‘대략적인 얼개 파악하는 법’, ‘불필요한 부분 넘겨 읽는 법’을 비롯한 “읽지 않기의 방법론”(p.14)과 닿는다. 이와 같은 경향에 동의하지 않는 댐로쉬는 “다양한 작품을 최대한 많이, 미련할 정도로 진득하게 읽어 나가는 경험론적 ‘꼼꼼히 읽기’야말로 작품에 대한 더 고차원적인 통찰을 추동하는 최선의 방략”(p.15)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은 공감하겠지만 과연 가능한 일인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세계문학’ 용어는 괴테가 비서인 요한 페터 에커만에게 남긴 말 중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저자는 이 책이 세계문학을 이해하고 즐기면서 읽기 위해 개발하고 다듬어야 할 일련의 기술을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밝힌다. 1장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문학 개념 자체, 문학의 범주를 살펴보고 “독서의 방식”편에서 두보의 시와 윌리엄 워즈워스의 소네트를 비교 분석한다. 소설의 사례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작품이 쓰여진 서기 1000년경의 시대상, 작품의 내용과 의미, 지금 발생하는 질문과 접근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읽고 또 읽으면 각 작가가 이룩한 작업의 특수성을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p.83)라고 쓰는 한편 “더 많은”(독서)보다 “가장 중요한” 힌트를 건넨다. “(전략)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초기의 평평한 그림이 3차원으로 펼쳐지는 발판을 해당 전통에서 확보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거울을 통과해 새로운 문학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p.84)고.
2장 <시간을 가로질러 읽기>에서는 그 매력을 “전임 작가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응답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세기를 가로지르는 상황, 인물, 주제, 이미지의 전개 과정을 추적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p.89)으로 본다.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글로 썼을까, 다양한 길이의 보관 문구와 고리 구성 등을 활용한 구술기법으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문자로 쓰인 최초의 시와 <길가메시 서사시>를 추적한다. 또한 시적 서사시가 방대한 산문소설로 대체되는 지점에서 저자는 <율리시스>의 예를 든다. “가장 많이 ‘쓰인’ 현대소설 중 하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로, 조이스는 베르길리우스조차 넌더리를 낼 만한 열의로 여러 편의 원고를 작업했다.”(p.102) 이 책을 읽으면서 필독도서 목록이 늘어가는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건 쉽지 않다.
3장 <문화를 가로질러 읽기>에서는 외국 작품을 읽을 때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한계와 난관을 짚어보고 어떻게 헤치고 나아갈지를 숙고한다. 저자는 희곡과 단편소설의 사례를 드는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인도 시인 칼리다사의 <샤쿤탈라>가 희곡의 예로, 루쉰의 <광인일기>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가족의 유대>를 단편소설의 예로 든다. 저자는 <광인일기>의 서문을 재독하며 화자가 만나고 있는 대상의 실체를 단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전한다. 또한 더 많은 작품의 예를 들어 “그 설명이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신뢰할 수 없어 내러티브의 결을 거슬러 읽어 그것을 변별해야 한다”(p.184)고 밝힌다. 역시 독자는 열심을 내야만 한다. 4장 <번역으로 읽기>에서는 문자주의의 극한인 직역, 자유로운 번역인 모방 번역, 직역과 모방의 중도로서 의역을 살펴본다.
5장 <멋진 신세계>는 낯선 곳으로 던져진 이들, 요셉과 요제프 K(소송)부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여행>, 그리고 <신곡>, <돈키호테>, <서유기>로 독서 여행을 이끈다. 특히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각 장이 하나의 상징적인 도시를 그려 내는 보석 같은 산문시”라고 근사하게 소개한다. 6장 <제국을 쓰기>에서는 식민지, 탈식민지 작가 앞에 놓인 언어 선택 문제로 토착어로 작품을 쓸지, 제국어로 쓸지 판단하고 실행에 옮긴이들을 살핀다. 7장<세계적 글쓰기>는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빛을 보지 못한 지역에서 태어났던 카프카, 보르헤스, 베케트가 사실주의 규범을 벗어나 신비롭고 상징적인 장소를 작품 배경으로 삼은 점을 지적한다. 국제적 성향의 지역 작가가 선택한 탈지역화된 방식의 글쓰기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세계문학 독자의 로망을 자극한다. “작가가 살았던 곳에서 주의 깊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무라사키 시키부의 교토를, 비록 그 이후에 숱한 변화가 일어났더라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p.405)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학기행이 기약 없기에 관련 도서로 대리 만족하지만 아쉬움은 커질 뿐이다. 또한 무엇을 읽을지를 선택하는 방식도 제안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작가가 사랑하는 작품”(p.397)을 찾아 나서거나 의미 있는 흐름이나 문학 운동 등을 주제 삼아 읽기도 권한다. 두 가지 모두 끝이 없는 전진이고 애석하게도 인간에게는 한정된 시간만이 허락되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괴감, 읽어도 완전무결하게 읽었다고 자신할 수 없는 불안, 불안을 줄이겠다고 기록으로 남기는 자신과의 약속도 완벽은 보장할 수 없고 읽는 시간만 빼앗기는 건 아닐까 이중으로 고심을 부른다. 그래도 읽는 수밖에 없고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그러니 이 책은 얼마나 특별하겠나.
본문을 정리해주는 서론, 충실한 각주, 매 장마다 도입과 결론에서 다시 한번 내용을 간추려주는 구성은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다만 학구적이고 때론 현학적인 문체는 심리적 거리를 체감케 해 아쉬웠다. 주요 부분이나마 정리해보겠다고 의욕을 내어 보았지만 가당치 않다. 70여 권에 이르는 책들이 듀엣이나 트리오로 등장할 때 푹 빠져 읽다보면 어느 사이 다른 책들로 자리바꿈하는데 하나같이 명저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속도를 가까스로 따라갈 때 독자는 읽어내지 못한 작품의 경험하지 못한 저작 환경과 작품의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상상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세계문학을 향한 저자의 열정과 헌신은 매우 인상 깊다. 댐로쉬의 책은 잠시 행복한 순간의 무수한 연결을 경험케 한다. 그리고 나면 무더기 책 목록과 읽으리라, 하리라, 다시 보리라 등 다양한 의지 표현 종결어미를 되뇌게 될 것이다.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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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는 아마도 지금껏 쓰인 가장 “세졔적인” 텍스트일 《피네건의 경야》에서 “이상적인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상적인 독자를 상상한 적이 있다. 그 이상적인 불면증을 꿈꾸는 이상적인 독자가 되길 강요하는 광활한 작품 세계, 이보다 더 정확히 세계문학을 정의하는 말은 없을 것 같다.(p.39)
(전략)방금 논의된 가능성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 같은 동시대 세계 여러 곳에서 쓰인 다양한 모더니즘적 내러티브를 환기한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그 설명이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신뢰할 수 없어 내러티브의 결을 거슬러 읽어 그것을 변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가들 중 누구도 언급한 이야기들을 쓸 때 서로의 작품을 알지 못했겠지만, 모두 도스트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같은 원형적 모더니즘에 정초하고 있었다. 문화를 가로질러 읽으면서 우리는 분리된 동시에 연결된 루쉰과 그의 위대한 모더니스트 동료들이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재설정하는 다양한 방식을 사유해 볼 수 있다.(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