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정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종 벌어지는 일이 네흘류도프에게도 일어났다. 처음에는 이상하고 역설적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농담처럼 보이던 것들이 점차 삶의 확신으로 나타났고, 결국은 그에게 있어 가장 단순한 부동의 진리가 되었다. 그래서 인류가 고통받는 그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은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하느님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죄인이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처벌한다든지 교화할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임을 이제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마태복음18장을 읽던 주인공 네흘류도프에게 일어난 각성의 순간이다.

왜 우연히 펼친 성경에서 마태복음18장에 끌려 들어갔을까?


"그러나 나를 믿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목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6)

라는 구절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으로 인해 비참한 삶을 살아왔고 무죄함에도 죄수의 신분이 된 여인 마슬로바에게 참회하기 위해 유형지까지 따라가면서 네흘류도프는 동행하는 죄수들을 보며 고뇌한다. 저마다 유형수가 된 이유가 무지하고 가난함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특히 무죄한 자들이 유형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조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난과 무지한 농민들, 마슬로바와 같이 무죄하나 힘이 없는 자들이 그에게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을 죄짓게 하는 존재는 부패한 국가, 귀족, 자기와 같은 지주일 것이다.


탐욕과 죄가 가득한 사람들이 만든 법과 권력은 다른 작은 자들의 죄를 교화할 수 있는가? 죄를 죄로 다스릴 수 있는가? 네흘류도프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답을 찾는다.


「사회와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사람들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합법적인 죄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타락상에도 불구하고 서로 동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네흘류도프는 명확히 깨달았다.


그는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나선 목자의 심정을 유형지의 정치범들의 동정과 사랑에서 보게 되었고 사랑만이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슬로바의 결정은 어쩌면 네흘류도프를 훨씬 자유롭게 하고 그의 삶을 확장시켰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에 네흘류도프도 슬프고 당황했지만, 그녀의 결정 속에는 그를 향한 사랑과 더 큰 용서가 있었고, 그는 그의 삶을 앞에서 말한 약자들에게 헌신할 결심에 이를 수 있었다. 이것이 1만 달라트를 탕감 받은 자의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고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하는 사랑의 원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33

 

그는 결심한다. 마슬로바에게 참회하기로 하면서 시작했던 일, 토지를 파는 일부터 시작했던 정의를 실천하는 일을 위해 계속 전진하고 확장시킬 것을 결심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생명의 주인이며, 생명은 우리의 쾌락을 위해 부여된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 보내졌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의지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기쁨만을 위해 살기로 결정한다면, 주인의 의지를 이행하지 않는 포도밭 농부의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셈이 된다. 주인의 의지는 이 계율들 속에 묘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계율을 실천할 때에만 지상에 신의 왕국이 건설되고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은혜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곁들여 받게 될 것만을 구하고 있으니아마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내 필생의 사업은 바로 이것이다이제 한 가지 일이 끝나고 다른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진정한 자유와 새로운 생활 즉 부활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에게 있어 문학은 사상과 윤리를 제시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사상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182512월에 러시아 귀족층 젊은 지식인들에 의해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일어난다. 이들을 12월 혁명당원(黨員)이라 한다. 러시아어()12월인 데카브리에서 유래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군은 파리로 입성하고(1815), 러시아 젊은이들은 파리에서 서유럽의 자유주의 사상과 정치에 영향을 받게 된다. 사실,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는 프랑스 혁명 발 자유주의가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군대의 젊은 장교들에 의해 혁명을 맞이했다.

이들은 왕정을 폐지하고 새로운 정치제도를 세우고, 전근대적인 농노제를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이 혁명은 실패하고 많은 당원들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이 혁명은 젊은 지배계층 지식인들에 의한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러시아의 문학계도 이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푸시킨의 경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경험과 데카브리스트들과의 교유 등은 그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골리와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은 러시아 농민의 처참한 삶과 전제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데카브리스트 혁명의 정신이 19세기 문학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로트만은 18세기 러시아 문학과 독자들의 관계양상을 책에 따라 살기라고 표현했다. “독자들에게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책에 따라 살 것이 요구되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인들은 개인성, 자유, 도덕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철학적, 이념적 사유를 문학으로 표현했다. 18세기 이후(푸시킨 이후) 러시아에서 철학자나 비평가, 정치가나 법률가, 언론인이나 역사가가 담당했을 문제가 문학의 대상이 되는 두드러지는 현상은 제정러시아의 현실을 역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러시아 중엽에 비평가 벨린스키는 러시아인을 책을 읽는민족으로 정의한 바 있다. “오직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자만이 러시아 인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 민족을 결정짓는 요인은 피도 계급도 아닌 독서의 재능인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작은 인간은 같은 계급의 프랑스인과 달리, 사회적 신분의 상승을 꿈꾸지 않는다. 그 대신 그가 꿈꾸는 것은 훌륭한 글쓰기이다. 러시아에서 작가는 언제나 일종의 비공식적 권력, 말하자면 두 번째 정부로 간주되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의 통치자들(예카테리나 2세부터 레닌에 이르기까지)역시 부단하게 스스로를 문학가로 표상하려 시도해왔다. 레닌은 문학 비평가, 스탈린은 언어학자였으며, 흐루쇼프는 현대예술 비평가였고, 브레즈네프는 직접 소설3부작을 썼던 작가였다. 요컨대, 문학이면서 동시에 언제나 문학보다 언제나 문학보다 어떤 것이어야 했던 러시아 문학은 철학적 사유의 시험대이자 사회 변혁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으며, 민족의 과거를 이해하는 방법이자 미래를 향한 예언의 기초였던 것이다.

-김수환, 책에 따라 살기-유리 로트만과 러시아 문화, 25~26p

 

삶과 예술을 가르는 경계를 고의로 뚜렷하게 긋지 않는그들의 태도를 가리켜 벌린은 윤리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가 현대문학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지나간 시대의 계몽주의적인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문학을 읽은 뒤, 삶이 뒤따르는 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독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책만 읽을 뿐 뚜렷한 삶의 궤적이 없는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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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11 20: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에 따라 살기>표지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전쟁직후 모습인가봐요? 어디선가 본것 같기도하고요. 저 상황에 책을 둘러보고 있다니...ㅠ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저의 일부는 러시아인♡ 좋은데요?!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5-11 22:52   좋아요 4 | URL
저도 표지를 보고 감동받았어요 ^^
예 미미님은 러시아인.

그레이스 2021-05-23 21:55   좋아요 1 | URL
2차대전 런던 공습때 폭격으로 무너진 서점의 모습이랍니다.
저도 어디서 봤나 계속 생각 중이었는데 찾았어요
<독서의 역사>에서^^

청아 2021-05-23 22:21   좋아요 0 | URL
와 감사합니당~^^♡

mini74 2021-05-11 21: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적 가요무대에서 나오던 카튜사의 순정? 이란 노래 들으며 카튜사가 누굴까 궁금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 문장을 쓰고 잠시 다짐 ㅎㅎ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

그레이스 2021-05-11 22:53   좋아요 5 | URL
고민의 흔적이 삶에 배어들겠죠?!

그레이스 2021-05-11 22: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제 기호학 책 얘기 나누다가...
오늘 로트만을 인용하게 되네요.^^

새파랑 2021-05-11 22: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부활> 정말 좋아요~! 이 책 읽고 나서 책임질 줄 아는 삶에 대해서 생각했었는데, 다시 까먹고 살지만 ㅜㅜ 삶이 뒤따르는 독서를 하고 싶지만 쉽지는 않은 같아요. 저도 다짐만^^

그레이스 2021-05-11 23:10   좋아요 3 | URL
하지만 우리는 삶이 뒤따르지 못하게 하는 세상보다는 깨달은 내용대로 살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에 기울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5-12 0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작품에 강조되는 ‘그리스도의 사랑‘ 은 갑작스럽게 전류처럼 다가가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불교식으로는 ‘돈오돈수‘가 될까요...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감작스럽게 모든 갈등을 뒤덮으며 사랑으로 마무리 짓는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마땅히 해야하는‘ 당위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레이스 2021-05-12 01:04   좋아요 3 | URL
예 톨스토이 작품에는 대부분 그렇죠.
전쟁과 평화도, 안나 까레니나도 사랑이 모든 것을 덮는 내용이 나오죠.
갑자기 설교조가 삽입되기도 하구요.
사랑은 톨스토이의 주된 사상이었다고 생각해요. 삶(사상)이 문학이고 문학이 삶이길 추구했던 작가여서 그런듯요.
저도 당위로 느껴져서 그 부분은 소설 같지가 않았어요. 글은 아름답지만.
그런데 그가 추구하는 사상을 실천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 현실과 사상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겨울호랑이 2021-05-12 07:27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개인적으로 톨스토이를 좋아하지만, 작품 인물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톨스토이‘의 그림자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의 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느낌이랄까요... 대체적으로 저는 작가와 작품을 구분해서 읽으려 하는 편입니다만, 그레이스님 말씀을 듣고보니, 톨스토이는 다르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덕분에, 새롭게 배워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5-12 10:53   좋아요 2 | URL
톨스토이는 톨스토이로, 고골리는 고골리로,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로 읽죠.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더 끌려요!
댓글 주셔서 덕분에 저도 이런저런 문학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앞부분만 올려봐요.
예를 들어가며 설명도 하고 여러 언어학자 ,기호학자 들도 소개하고 있어요.
저도 마저 읽어봐야겠네요.^^

기호학이란 뭘까요?
심리학이 인간 심리를 다루는 학문이고 역사학이 역사를 다루는 학문이듯, 기호학은 기호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간단히 정의하기는 쉽지만, 정작 기호학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만큼 이야기할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비단 기호학의 문제만은 아니겠지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어떤 분야든 가장 먼저 문제시되는 것은 역시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용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기호(號)‘란 무엇인지, ‘학(學)‘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합해진 ‘기호학‘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일은 분명히 쉽지 않을 겁니다. 혹 기호학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기호학 전문서적에 나오는 수많은 전문용어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다면 그것은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처음 만난 상대를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너무 쉽게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학문에서도개념을 너무 쉽게 정의하고 그 정의를 의심 없이 진실처럼 받아들이지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호‘나 ‘기호학‘이라는 용어를 이해하는 데 그저 백과사전을 찾아보거나 하루 만에 끝내는~‘ 이라는 방식으로만들어진 책을 읽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개념들은 쉽게 정의할 수 없기에 스스로 탐구하여 자신이 알게 된 만큼 이해하고 활용하면 됩니다. 이 책은 그렇게 기호학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 P17

첫째, 이 세상을 기호로 본다는 것은 이 세상을 표현된 것과 표현한것의 관계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곧 인간의 문화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자연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존재하는 것일 뿐, 거기에 문화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수만 년 동안 갈고 닦인 바위 하나가 숲 속 어디엔가 있다고 합시다.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자연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문화의 일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기호로 볼 수 있을까요? 언젠가 기호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 기호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지요. 적어도 우리가 어떤 것을 기호라고 부를 때에는 대상 자체에 표현하는 성질이 있거나, 우리가 그것을 표현하는 성질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관점과 대상의 문제를 말하면서 밝혔듯이 표현하는 성질이 있다.
는 것과 표현하는 성질로 인식된다는 것은 결코 분리된 관념이라 할 수 없습니다. - P23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라주(bricolage)라는 말로 구조의 성질을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처럼 바위가도구적인 의자도 될 수 있고, 정신적인 명상의 매개도 될 수 있다는 유연한사고를 보여줍니다. 바위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바위가 놓여 있는 상황의 맥락에서 어떻게 쓰이는가가 중요한데, 바로 거기에서 기호로서의 성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바위가 그러할진대, 인간이 앉으려고 의도적으로 만든 의자니 종교적 숭배를 위해 세운 성상 같은 것이 내포한 기호학적 성질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요. 의자는 성상이든 어떤 목적을 위해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을 창조했다면, 이야말로 각각의 독특한 표현을 갖춘 문화적 산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문화라면 이런 문화가 생성되는 과정에 적용될 수 있는 어떤 논리를 찾아낼 수 있을 터인데, 그것이 바로 기호학이 하는 일입니다.
- P25

둘째, 기호학은 모든 것을 기호로 치환함으로써, 그 모든 것을 서로 연관 짓게 하는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문학을 설명하는, 그림을 설명하든, 음악을 설명하든, 아니면 영화를 설명하든, 이들을 기호학적으로 설명하는 언어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면 기호학은 기호로서 이들의 공통된 성질을 탐구하기 때문입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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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먼저, 특정한 몸짓언어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살펴본다. 그 몸짓의 사회적 기능은 무엇이고, 어떤 감정을 그려내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 몸짓들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이해되는 경우도 있고, 반면에 특정한 시대, 한 지역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는 행동들도 있다. 이것들은 특정한 관습과 깊이 얽혀 있는 행동들이다. 작가는 이 행동들을 인간의 몸짓과 언어, 사회적 관습의 문화사, 예술 양식이 변화의 세 부분에서 논의한다. 선사시대에서부터 현대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 예술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로 환영의 의미를 담은 몸짓들- 팔 치켜들기, 악수, 포옹, 절과 커트시, 무릎 꿇기, 큰절-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파시스트와 나치가 채택한 인사법은 고대 로마부터 있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제롬의 그림 제목처럼 황제께 경례! 목숨을 바치려는 이들이 인사 드립니다의 의미보다는 죽음을 앞두고 황제의 관용을 바라는 몸짓이었다고 한다. 올림픽 선수들의 인사나 미국의 국기에 대한 경례는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이유로 폐지했다고 한다. 악수나 포옹과 달리 절과 커트시, 무릎꿇기, 큰절은 자신을 낮추는 인사법.



두 번째로 축복의 몸짓들-안수,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축복, 불교의 축복-은 주로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으며 손의 모양이나 위치 방향과 관련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와 알비제 비바리니의 <그리스도의 축복>에 보이는 손의 모양은 각각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손 모양이라고 한다.



 

세 번째로 지위를 나타내는 포즈-꼿꼿한 자세, 이중으로 벌린 손, 숨긴 손, 우월한 팔꿈치, 샅주머니, 튀어나온 발, 허리굽힌 몸, 절제되지 않은 행동과 도시의 비참함- 중에는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가는 것들이 많고, 또 사라진 것들도 많다. 지위를 상징하는 의복이나 예절 등의 트랜드는 잘 변화한다. 한편, 대 피터르 브뤼헐은 농촌 마을 사람들의 절제되지 않은 행동을 그리고 있다는 것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보들레르는 누구도 내 앞에서 브뤼헐의 불쾌하고 상스러운 잡동사니를 설명하려고 하지 말기를.”이라고 비판했다. 지금은 브뤼헐의 의도를 농촌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찬미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또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살롱전에 출품했다가 평단의 분노를 샀다. 시골의 비천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그려 넣었다는 것 때문이다. 당시 신화나 종교의 한 장면이 주제를 이뤘던 살롱전 출품작들을 보면 그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네 번째로는 모욕의 몸짓들- 얼굴 일그러뜨리기, 혀 내밀기, 콧등에 엄지대기, 손가락 자세, 손짓, 주먹감자, 엉덩이 까기- 이다. 미술 작품에 이런 몸짓들이 있다는 것이 생소하거나 당황스러운 감상자들도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로는 위협의 몸짓들- 치켜든 주먹, 허공 움켜쥐기, 위협하는 얼굴, 장갑으로 뺨치기, 상징적인 위협의 몸짓-이다. 거트루드 에버크롬비의 <구애>라는 그림은 남자가 여자를 향해 집게손가락을 뻗어서 위협하고 있고, 여자는 전통적인 손들어자세를 취하고 있다. 남성의 구애가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경우를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졌다.



 

여섯 번째로 고통의 몸짓들-눈물 흘리기, 애도, 괴로움, 공포, 혐오, 상징적인 고통-이다.

일곱 번째로 자기보호의 몸짓들- 달아나기, 항복, 갑옷, 차단, 몸십자가, 팔짱, 허리에 손, 손가락 꼬기, 보호용 코르누타, 문신, 베일-이다. 고야의 <180853>은 반도전쟁 때 나폴레옹 군대에 맞선 스페인인들의 저항을 기린 작품이다.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다. 동료들은 총에 맞아 발치에 쓰러져 있고, 그의 몸짓은 절망적이지만, 감상자들은 총에서 불이 뿜지 않기를 바라는 가슴 졸이는 시선을 보내게 된다.

 

여덟 번째로 에로틱한 몸짓들- 나체, 여성의 젖가슴, 무화과 잎, 성적인 입맞춤, 속박-이다.

 

서양 미술에서 나체의 역사는 복잡하다. 대체로 나체는 다음의 두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면 미술에서 자유롭게 허용되고 받아들여졌다. 첫 번째 범주는 인체 해부 구조를 찬미하는 태도를 미술 작품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은 수천 년 동안 이술에 있었지만, 특히 고대 그리스와 관련이 깊다. 두 번째 범주는 목욕이나 샤워나 수영처럼 옷을 벗어야 하는 성적이지 않은 활동, 또는 대상자를 벌거벗기는 처벌이나 순교나 굴욕 장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보이면 불법적이거나 사회적 비난을 받았을 수준의 나체 장면도 많았다.237p

 

아홉 번째로 휴식의 포즈- 다리꼬기, 웅크리기, 기대기, 눕기, 흔들기, 하품하기, 잠자기-들이다. 헨리 퓨셀리의 <악몽>과 살바도르 달리의 <>은 휴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몸은 가시적이다. 이렇게 타인에게 보여 지는 자신에 대한 의식에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떻게 보여 질 것인가에 대한 의식을 말한다. 실재로 보이는 자신과 어떻게 보여 졌으면 좋겠다는 의식 사이에는 간극이 있게 마련이다.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의식을 자기의식이라고 하는데, 자기의식은 타인에게 실제로 보이는 모습과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로 내가 욕망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관습이나 부모님이 바람직하게 제시하는 모범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자아와 초자아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술 행위가 초상화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경우 원하는 모습과 실재의 모습 사이의 간극은 화가에 의해 메워질 수 있으나, 사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초상화에서는 고귀하고 지적인 용모로 등장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카메라 렌즈가 나를 향하고 있다고 느끼자마자 모든 것이 변한다. 나는 포즈를 취하는태도를 취하면서, 그 자리에서 나를 다른 육체로 만들고, 이미 나 자신을 [사진에 찍히기]에 앞서 하나의 이미지로 변형시켜 버린다. 이 변형은 능동적인 것이다. 나는 사진이 제멋대로 내육체를 만들어 내거나 죽여 버린다고 느낀다. ……하나의 이미지 나의 이미지- 가 태어날 것이다. 나는 불유쾌한 개인으로 세상에 태어날까 아니면 멋진 놈으로 태어날까? 어떻게 하면 고전적인 유화에서처럼 고귀하고 지적인 용모로 등장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롤랑 바르트Die helle Kammer,19~20쪽에서

-김남시보여진다는 것, 68p


최초의 대중화된 사진기술인 다게레오타이프(Dagereotype)는 오랜 노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부동자세로 있어야만 했다. 초상화의 모델 보다는 시간이 덜 걸렸겠지만 여기에도 연출된 포즈가 필요했고, 표정은 그림보다 근엄하며 생기 없어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 미국의 지난번 선거에 널리 배포된 보도사진이 한 장 있다. 그것은 측면에서 보여지고, 눈은 하늘을 향해 있고, 두 손은 모아져 있는, 케네디 대통령의 상반신 사진이다. 여기에서 젊음, 경건함, 순수함이라는 코노테이션의 시니피에들의 독해를 준비하는 것은 포즈 자체이다. 왜냐하면, 모든 의미작용 요소들(하늘을 향한 시선, 모아진 두 손)로 구성된 스테레오타입화 된 태도의 저장고가 존재하기 때문만으로 사진은 명백히 의미있는 것이다. 초상화적 코노테이션의 <역사적 문법>은 따라서 그 재료들을 회화, 연극, 사고의 연합, 일상적 은유 등, 즉 정확하게는 <문화> 속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 이미지와 글쓰기롤랑 바르트 73p

 

미술이나 사진에서 보여 지는 포즈는 사회적 규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미술작품의 순간포착 그림이나 초상화에 나타나는 포즈는 오늘날 sns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는 활동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현재 상황을 사진으로 포착해서 올리고, 또는 해시태그를 들고 사진을 찍어 올리며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셀피, 순간포착 사진들은 사회의 관습과 통념을 깨뜨리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여 지기를 원하는가?

나이가 들면서 사진 속의 나의 모습은 언제부터인지 맘에 들지 않았었다. 피사체를 보는 미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영상을 만들어 보면서 놀랍게도 전혀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버릇들이 보이고, 입모양이나 눈동자의 움직임, 손짓, 말투, 음성 등이 내가 원했던 이미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상적으로 생각한 나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외부로부터 온 관습과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조금은 나를 억압하는 이미지들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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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10 23: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떠올랐는데 혹시 그레이스님 ‘기호‘에 관해서 추천하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영화 다빈치코드에서 주인공이 기호학자로 나와 이런저런 기호 설명해서 재밌길래 찾아봤는데 움베르토 에코 말고는 못찾았어요.

scott 2021-05-10 23:20   좋아요 6 | URL
미미님 ‘미디어 기호학‘책 입문서로 추천 합니다
미디어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문학, 미학, 심리학, 예술이론, 신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쉬운 언어로 설명하고 있고 사진과 그림, 해석이 굉장히 상세하고 풍부 합니다.
이책 읽고 나면 에코의 책은 소설 처럼 읽혀짐 ^ㅅ^

청아 2021-05-10 23:24   좋아요 4 | URL
이런 행운이!!!! 감사해요~♡^^♡

그레이스 2021-05-10 23:27   좋아요 5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에코의 기호 개념과 역사는 저도 읽다가 말아서...!^^
언어의7번째 기능이란 소설 보면 형사가 수사를 위해 바르트의 책이랑 푸코의 강의를 듣다가 짜증내는 장면이 나와서 저도 웃었었요 ㅋ

scott 2021-05-10 23:32   좋아요 3 | URL
아~ 푸코 ㅎㅎㅎ


그레이스 2021-05-10 2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도 기호학자이기도 해요

그레이스 2021-05-10 23: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문학, 기호학을 말하다 라는 책이 있어요
쉽게 썼어요
비슈겐슈타인은 어렵고...
사실 이미지와 글쓰기에서도 기호학을 얘기하고 있구요

청아 2021-05-10 23:25   좋아요 3 | URL
바보같이 혼자 찾아보다 포기했었네요ㅋㅋ두 분다 감솨~♡♡ 든든합니다!

scott 2021-05-10 23: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책 까지 섭렵 하시는 그레이스님은
미학(인문학 분야의 최고봉)을 해석하고 다루는 솜씨에 놀랍니다.
코로나 시대에 이미지, 언어, 사람들의 몸짓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죠.


청아 2021-05-10 23:26   좋아요 3 | URL
두 분다 멋지심요!😍

mini74 2021-05-10 23: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질문에 저도 묻어갑니다 ㅎㅎ 인문학 기호학을 말하다. 그리고 미디어 기호학. 헉 근데 미디어 기호학은 두 권이에요. 어느 작가분 말씀하시는건가요 ㅎㅎ

청아 2021-05-10 23:30   좋아요 4 | URL
그러네요! 저 쪼아래쪽에 대니얼 챈들러가 있어요!

scott 2021-05-10 23:31   좋아요 4 | URL
‘대니얼 챈들러 ‘ 현재 절판이네요
여기 책에 나온 용어들 (최대한 쉽게 풀어씀)만 알아도
롤랑 바르트의 저서들은 에코옹과 나란히 읽게 됩니다 ^ㅅ^

scott 2021-05-10 23:33   좋아요 4 | URL
대학 학부생들 기호학 수업에서 이책 거의 사전 처럼 읽혀지고 있어요.
사진과 풍부한 도판 해석이 이책의 포인트임!!

청아 2021-05-10 23:34   좋아요 4 | URL
딱 봐도 재밌어보이는데 절판ㅠㅇㅠ

그레이스 2021-05-10 23:35   좋아요 4 | URL
중고, 도서관, 출간알림 다 해서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1-05-11 00:01   좋아요 3 | URL
미미님 mini74님 ‘인문학, 기호학을 말하다‘ 독보적에 올려놓았어요.
 

축복
축복의 메세지를 전하는 손의 모습도 변화되어왔다. <살바토르 문디>의 손가락의 모습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축복의 자세이다.
알비세 비바리니의 <그리스도의 축복> 동방정교회가 채택한 축복의 표시이다. IC XC, 예수 그리스도를 표시하는 모노그램이다.
지위
턱을 들어올리고 꼿꼿하 자세, 숨긴 손, 손가락 모양, 발의 모양 등은 지위를 상징한다. 나폴레옹의 숨긴 손의 모습은 여러가지 예측이 많았으나 그것은 로마시대 연설하는 모습과 관련이 있다. 손을 감춤으로서 용감, 평정을 전달했다.
모욕
얼굴 일그러뜨리기, 혀내밀기, 손가락의 모습등
아인슈탄인의 지루함을 표시한 즉흥적인 혀내미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유명하다.

휴식
잠은 휴식이 되기도 하지만, 두려운 악몽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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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에 담겨있는 포즈를 통해 본 문화사로 볼 수 있다.
포즈에 담겨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발전되고 바뀌었는지를 알려준다.
첫번째 장은 환영의 의미를 담은 몸짓.

팔치켜들기는 멀리서 하는 공통적인 환영인사.
미국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도, 그리고 운동경기를 마친 선수들의 경례도 이런 포즈였다. 나치식 경례를 연상케 한다고 쓸수 없게 되었다.

악수는 오래된 미술작품을 보면 고대문명의 특별한 행사 때 격식을 갖춘 인사로 쓰인것을 알수 있다.
와이즈먼 연구소의 일상적인 악수의 부수적효과에 대한 연구결과가 흥미롭다.
악수를 한 뒤 당사자가 손을 얼굴에 가까이 가져갈때마다, 코는 상대방의 정보를 담은 냄새를 맡게 된다는 것.

포옹은 성화에서 많이 보이는 포즈.

절과 커트시, 무릎꿇기, 엎드리기는 아랫사람이 몸을 낮추는 행동.
그리고 드가의 그림에 많이 나타나는 것처럼 커트시는 무대에서의 인사.
부그로의 <커트시>는 너무 예뻐서 책에 갈피를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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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09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 재밌을듯요.

얄라알라 2021-05-09 0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데즈먼드 모리스가 21세기에도 활발히 활동중인가요? <축구 종족>이후 업데이트를 안했는데 덕분에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2021-05-09 08:14   좋아요 2 | URL
미술관련책이 더 있어요
고양이와 관련된 미술, <고양이는 예술이다>도 봤는데 재밌고 그림이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