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의 2000자를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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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자를 쓰는 힘, 글의 신체성에 관하여


이 책에서 말하는 ‘쓰는 힘’이란 200자 원고지 열 장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다. 저자는 매일 분량을 정해 놓고 쓰는 훈련을 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공적인 글을 쓸 것을 강조한다.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독서가 필요하고, 특별히 글쓰기를 위한 독서를 하라고 한다. 문장력을 향상시키고 말하는 능력도 길러주기 위해서는 독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좋은 문장을 쓴 사람들은 방대한 양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에 관하여 끈기 있게 깊이 생각하는 것도 문장력을 향상 시켜주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독서와 글쓰기와 말하기와 관련된 글 중 인상적인 부분이다.

나는 보통 한 시간 반 정도의 강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강연을 할 때는 마치 워드프로세서로 문자를 빠르게 타이핑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주어와 술어가 서로 호응하고 있는지, 혹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다음 이야기와 어떤 식으로 연결될 것인지 하는 글의 구성, 즉 각 절과 장의 연결이 머릿속에서 착착 정리된다.……
문장력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말도 조리 있게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고력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자신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것인지를 항상 확인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44p

글쓰기는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을 예로 들며 설명한다.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 그때마다 ‘이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하고 새삼 놀란다고 한다. 그것은 작가가 이 소설을 즉흥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그만큼 철저하게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글쓰기에는 우연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문장이 술술 떠올라서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업을 통해 글을 쓴다. 글을 통해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가 책 속에 쏟아 넣은 방대한 의미에 압도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창조한 의미와 가치이 세계인 것이다.

가치 창조의 글쓰기라는 점에서 비평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작품을 비평할 때는 그 작품과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만남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비평문을 쓰는 참된 의미이기도 하다. 독자에게 그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독자의 뇌와 작가의 뇌가 서로 감응해서 불꽃이 튀는 듯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비평이다. 48p

그는 글쓰기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의식적으로 글쓰기 훈련을 거듭하면 공적인 감각을 지닐 수 있으며, 내 글을 남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다.
‘사적인 공간이니까 아무것이나 써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한다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사적인 이메일을 쓰는 것을 글 쓰는 계기로 삼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 자세로는 기본적인 문장력을 함양할 수 없다. 글쓰기란,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내용을 올바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한 공공성을 의식하지 않으면 글쓰기는 완전히 사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히 자기만족이나 개인적인 감정의 발산에 그치기 쉽다. 그러므로 글을 쓸 대에는 사적인 모드와 공적인 모드를 자유자재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자 53p

온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다가오는 말들』 그리고 이 책은 모두 공적인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동의하는 부분이다. 대상이 있는 글쓰기는 그 대상을 설득해야 하므로 논리를 세우고 조리가 있어야 한다. 문장이 다듬어 질 수 밖에 없다. 글에 대한 책임도 갖게 되어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진다.

‘문체’는 글쓴이의 고유한 스타일이다. 이것은 연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과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몸을 보면 누구인 것을 아는 것처럼, ‘이 글은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문체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것을 ‘글의 신체성(身體性)’이라고 한다. 문체는 ‘이 글은 누가 쓴 것’인지를 알리는 도장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더욱 글에 책임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글의 신체성’이라는 말이 내게는 인상적으로 다가온 반면, 글에 대한 책임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나의 글은 여전히 비문이 많고, 뜻이 모호하고, 성찰이 부족하다.
이 책은 글을 쓰는 데 실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더불어 지속적인 글쓰기에 대한 자극을 받았다
가볍게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옆에 두고 가끔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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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책들 세계문학 122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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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등에서 생각의 흐름은 공간의 이동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낯선 장소로 여행하며 불안이라든가 아니면 과거에 대한 회상과 관련된 생각의 흐름을 읽게 된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인 주인공은 산책을 하며 작품에 관한 생각들과 그 글로 인한 두려움, 망상, 현실과 환상의 혼동을 경험한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이러한 산책이나 여행길에서 경험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언젠가 거의 1년 동안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이래로 작가에게는 자신이 과거에 썼고, 앞으로 쓸 수 있다고 느낀 문장 모두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말로 표현되지 않고 글로 쓰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언어가 그로 하여금 깊이 숨을 쉬게 했고, 그를 세계와 새롭게 맺어 주었다.
11p

그자신의 실상을 밝혀 주고 생동감 있게 해준 몇 줄의 도움으로 그날 하루도 잘 지나간 것 같았다.작가는 저녁나절을 순조롭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기분으로 자신의 책상에서 일어섰다.
13p

집을 나서던 작가는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는 도중에 작가는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후닥닥 서재로 올라가서는 거기서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방에서 땀 냄새를 맡았고 유리창에 증기가 낀 것을 보았다.
21p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들으며 글을 쓰던 작가는 목욕을 하고 옷을 입고 신발을 고쳐 신고 하는 동작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산책을 준비하며, 오랜 시간을 집안에 머문다. 머뭇거리듯 밖으로 나가기 전 긴 준비를 하고 나가다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단어를 고치고, 그제야 다른 감각이 돌아온다. 준비 시간이 긴 것은 자신이 작업하고 있던 글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외부로 향하는 감각이 돌아오게 하는.
그리고 산책길에서

걸을수록 일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서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40p

그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이 소설의 주인공의 생각을 빌어 표현한다.

<작품>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재료란 거의 중요하지 않고 구조가 무척 중요한 것, 즉 특별한 속도 조절용 바퀴 없이 정지 상태에서 움직이는 어떤 것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요소들의 자유로운 상태로 열려 있는 것, 누구나 접근 가능할 뿐 아니라 사용한다 해서 낡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40p

길게 이어진 골목- 출구라곤 도무지 보이지 않고 다만 굽은 길로 접어들 뿐인- 은 높은 집들의 지붕이 드리워져 이미 어둑어둑해진 반면, 길게 이어진 하늘은 골목의 잔상이 어린 듯 아직 밝았다. ……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길이 좁아지는 곳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담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인정(認定)이 아니라 이해불능, 심지어는 적의였다. 그는 그들이 어떤 문학 텍스트의 의미나 의도, 배경을 지정해야한 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57p

작가가 매일 다니던 산책길, 일상적인 것들이 갑자기 낯설고 오히려 적의까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단어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이제까지 써오던 문장들이 낯설고 의미를 상실한 순간들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작가는 저녁 산책길에서 무수한 얼굴들과 풍경들 그리고 환상을 통해 글쓰기를 상징한다. 의미와 상징을 읽어내지 못하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길을 잃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오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가 악몽을 꾸는 경우는 오로지 글을 쓸 때뿐이었다. 꿈속에서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밤새도록 늘 똑같은 판결이 되풀이되었다. 무의미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래서도 안 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죄가 되는 일이었다. 예술 작품, 즉 책의 월권행위는 다른 어떤 죄악을 저질렀을 때보다 더한 영겁의 벌을 받게 되는 가장 고약한 죄악이었다. 그는 하루 일과가 끝나 버린 지금 이때에, 멀쩡한 정신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러 세상에서 영원히 추방된 자가 된 듯한 감정을 체험했다.
95p

산책길에서 다시 서재로 돌아오는 그는 <작가로서의 나> 일까? <나로서의 작가>일까? 수많은 환상과 열려진 의미와 상징 속에서 독자도 무엇이 실재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작가로서 보고 있는 세상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 빠져있어 현실과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는 작가. 작품을 쓰기 위해 그가 잃어야할,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 그것을 잃고 그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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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거의 10년이 흘러 칠레에서도 한국에서도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피투성이의 카니발‘에 대한 기억은 오늘도 내일도 우리를 저 깊은 곳으로부터 위협할 것이다. 이 작품들은 유약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암흑과 공포에서 눈을 돌리려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잠시 들렀을 뿐인 이 작은 미술관에서, 예기치 않게 날카로운 자극을 받았다. 이런 미술작품을 일상적으로 제작하고 감상하고 끊임없이 악몽을 반추하면서 그리고 그것과 싸우면서 이 지역의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두 번의 세계대전, 나치즘과 유대인 대학살, 그리고 냉전에 의한 동서 분단이라는 역사를 겪은 독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역시 독일답다고 생각했다. 그와 똑같이 식민 지배, 남북 분단, 그리고 군사정권이라는 역사를 겪어온 조선 민족에게, 그 역사들과 길항할 미술은 있는 것일까? - P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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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시대를 열며 그가 지금의 도쿄 에도에 세운 도시계획의 원리와 배치, 건축 등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휴식을 취하며 사이사이 읽기 좋은 책.
재미있다.
무로마치의 헤이안 시대에서 에도 막부 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적 배경과 에도의 지정학적 의미를 잘 전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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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국인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으시죠? 혹시 제가 당신이 평생 동안 만난 최초의 한국인이 아닌지요?"
그녀는 잠시 말없이 있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눈은 인공적이리만큼밝은 청색이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아니요." 단어를 고르듯이, 그녀는 천천히 대답했다. "실은 우리 마을에도 한국에서 양자로 온 아이들이 있어요. 스웨덴 전체로 따지면 상당수가 될걸요."
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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