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직 시를 통해서만 형상 없는 세계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시는 언어에 기반하며, 언어의 진정한 음악은 오직 살아 있는 일상 구어의 진정한 리듬으로 회귀함으로써만 나올 수 있다.
크노가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풍부하고도 다양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경화된 형식을 파괴하고자 노력하고, 표음식 철자와 치누크어의 문장 구조를 새로운 시선으로 발견해 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슬쩍보기만 해도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 주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 P361

레몽 크노는 예술가란 작품이 따라야 하는 모든 미학규칙을 충분히 잘 알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규칙들의 특수한 의미와 보편적인 의미. 그 기능과 영향까지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노의 글쓰기 방법이 즉흥적이고 익살스러운 변덕을 따라갈 뿐이라고 보았던 사람이라면 그의 이러한이론상의 ‘고전주의‘에 놀랄 수도 있겠다. - P367

크노 특유의 ‘지혜‘는 보편적인 지식에 대한 욕구와 동시에 그 한계를 자각하는 능력에 그리고 어떠한 절대적 철학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 P368

그러나 논리학도 하나의 예술이며, 여러 사물에 규칙을 부여하는 것 또한 하나의 게임이다. 20세기 초반 내내 과학자들이 구축한 하나의 이상은 과학을 지식이 아니라  방법들과 규칙들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규정할 수 없는) 개념들, 공리들, 상세한 설명들을, 다시 말해 규정들의 체계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과학은 체스나 브릿지 게임과 같은 하나의 게임이 아닌가? - P369

그(레몽 크노)는 어떠한 이론이 승리했음을 입증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가장 역설적인 명제에서조차 오직 논리와 일관성만을 알아보고 유지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 P373

그러한(암울한) 시기에는 역사로부터 벗어나는 일만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도착점처럼 보였다. "역사란 인간의 불행에 관한 과학"이기 때문이다. - P375

자크 루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적인 사유의 생산자인 크노가 가장 좋아하는 영역은 결합 체계의 분야다. 결합 체계는 서구의 수학만큼이나 매우  오래된 고대의 전통에서부터 온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100조 편의 시》에 대한 분석은 이 책을 순수 수학으로부터 문학으로서의 수학으로의 전환이라는 맥락에 위치시키게 한다. - P378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인류의 희생 제의와 불 축제의 기원을 찾아 전 세계 구석구석을 도는 일종의 기행을 그리고 있다. - P382

파베세에게서 볼 수 있는 어둡고 근원적인 운명론은 그가 운명론을 피할 수 없는 출발점으로 본다는 사실 안에서 바라볼 때만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 P383

파베세의 전형적인 특징은 역사와 민속학의 차원에서 한 인물이 화자에게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안내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P384

이 책은 20세기 현대 문학의 거장이자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문학 세계로 유명한 이탈로 칼비노(1923~1985)가 자신이 애독하던 작가 및 작품에 대해 쓴 평론 모음집이다. - P389

칼비노는 국내 독자들에게도 《반쪼가리 자작》《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이어지는 ‘우리 선조는 3부작‘과 《보이지 않는 도시들》등의 작품으로 낯설지 않은 작가이다.  - P389

호메로스, 플리니우스, 크세노폰과 같은 고대 그리스·로마 작가에서부터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디드로, 볼테르, 근대 소설의 선구자로 흔히 평가되는 ‘로빈슨크루소‘의 대니얼 디포, 19세기 영국 문학의 디킨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톨스토이, 『닥터 지바고』를 통해 현대의 서사시를 창조해 낸 파스테르나크, 이탈리아 중세 르네상스시대 문인과 현대 작가들, 20세기 현대 문학의 새로운 잠재성을 보여 준 프랑시스 퐁주, 레몽 크노,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그가 논의하고 있는 작가들의 목록은 대단히 폭넓고 다양하다. - P390

이 평론집은 무엇보다 칼비노 문학 세계의 지형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문학적 지도라 할 수 있다. - P391

우리는 이 책에서 수많은 권장 도서나 필독 목록을 ‘강요하며 그 당위를 설명하는 지식인의 모습보다는 한 작품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그 책을 다시 펼쳐 들 때 느끼는 즐거움을 회상하는 순수한 독자로서의 칼비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P392

그가 이렇듯 독자로서 이야기하는 ‘고전‘의 필요성은 고전이 글쓰기와 읽기에 있어서 일정한 구조이자 규칙으로 또다른 잠재적인 가능성의 보고로 자리한다는 점에 있다. - P392

새로운 글쓰기와 읽기는 이러한 ‘고전‘이라는 구조가 펼쳐 놓는 자유로부터 나온다. 고전이라는 일정한 규칙으로부터 나오는 자유는 수사적 놀이와 선행 텍스트에 대한 패러디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의 맥락에서 새로운 실험을 허용하는 것이다. ("구조는 자유다 구조는 텍스트를 생산하며 동시에 잠재적으로 대체 가능한 모든 시들을 생산해 낸다. 이것이 ‘잠재적인 문학이 지닌 다양성의 사유이다. 규칙의 제약들로부터 문학은 스스로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에게 강제적인 규범을 부과한다.") 칼비노는 문학 텍스트, 질서에서 새로운 무질서가 생산되고, 다시 그러한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창조되는 순환적 구조 안에서 바라보며, 그러한 반복 속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것으로 본다. - P392

칼비노는 하나의 작품 속에서 중심적인 진실을 고집하지 않는 반(反)본질주의적인 독해를 하면서도, 문학의 고전적인 기능, 그러니까 독자들에게 의미를 제시하고 역사와 문화를 대하는 윤리의 태도를 제시하는 일을 중요시하고 있다. 텍스트의 본질적인 중심을 거부하고 표면의 무늬를섬세하게 읽어 내며 형식과 서술 구조를 탐색하다가, 어느 순간 이미지의 연쇄를 끊고 수직적으로 의미를 통찰해 내는 힘이야말로 칼비노가 작품을 읽는 독창적인 시각이라 할 수있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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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게임 투자로 역대급 재벌 09 게임 투자로 역대급 재벌 9
인랑 / KW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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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판타지 안에 있는 또다른 현실을 보는 듯 한 느낌이다. 읽다보면 알겠지만 등장인물이나 회사들이 실존했던 것들에 기반하여 쓰였기 때문에(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유사한 명칭으로 나옴) 게임관련 비지니스 바닥이 진짜 이런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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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시는 여러 가정들과 이탈된 사유들, 멀리 떨어진 영역의 개념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힘을 통해, 혹은 서로 다른 여러 개념들을 불러일으키고 그 자신과 연결시켜 그 개념들이 상호 지시하고 상호 굴절하는(마치 수정체를 통해 보이는 것처럼) 유연한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힘으로 지속한다. - P310

몬탈레는 심연의 경계에서 동요하는 개인의 도덕성을 지지할 유일한 버팀목이 없는 디딜 어떠한 단단한 바닥도 없는, 파괴의 폭풍우가 몰고 온 소용돌이와 같은 세계를 말하고자 했다. - P318

몬탈레가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의 감정을 느끼고 교감하는 것으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의 시는 타인의 삶과 상호 의존적인 인간의 삶이 항상 현존하고  있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하나의 삶이 있기 위해 너무 많은 삶들이 필요하다."는 구절은 기회의 주목할 만한 결론이다. - P320

헤밍웨이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비관주의를, 세상에 대해 개인주의적인 초연한 태도를 극도로 폭력적인 시대를 방관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작품 속에는 그러한 것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 P323

《도박꾼, 간호사 그리고 라디오(The Gambler, the Nun and the Radio)》에서는 모든 것은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결론으로 돌아간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은 모든 이들이 앓고 있는 병에서 비롯된 환상에 불과한 피난처라는 것이다. - P328

어떠한 시인도 전적으로 그가 표현하는 사상 자체가 아니듯이, 헤밍웨이 역시 그가 처했던 당시 상황 그 자체로 환원될 수는 없다. - P332

인간의 행동과 인간 자체를 동일시하는 행동주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정당하고 정확한 방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헤밍웨이 작품의 주인공보다 더 심화된 산업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 P332

헤밍웨이는 열린 시선으로, 그리고 건조한 시각으로 어떠한 환상이나 신비주의 없이도 세계를 살아 나가는 법을 이해하고 있었다. 불안해하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방법을, 홀로 있는 것보다 사람들과 섞여 있는 것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방법을. 그리고 특히 그는 삶에 대한 개념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체를 개발해냈다. - P333

왕들은 문에 손을 대는 법이 없다. 그들은 익숙한 거대한 판을 부드럽게 또는 거칠게 앞으로 밀어 여는, 뒤로 돌아서 그 판을 제자리에 놓아문을 닫는 즐거움을, 문을 손으로 열고 닫는 행복을 알지 못한다. - P335

퐁주의 시는 가장 소박한 사물과 일상적인 행동을 대상으로 하며, 그러한 것들을 새롭게 보고자 노력하면서 일상적인 습관으로서의 지각 방식을 버리고 닳아빠진 언어 메커니즘을 배제한 채 묘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시 자체 혹은 이질적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예를 들어, 상징주의나 이데올로기 혹은 미학), 오직 사물 그 자체로서의 사물, 한 사물과 다른 사물 사이의 차이점, 우리와 그 모든 사물 사이의 차이점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갑자기 멍하니 굳어진 일상에서보다 그러한 사물들의 존재가 훨씬 더강렬하고 흥미로우며 ‘진실한‘ 경험으로 다가옴을 발견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프랑시스 퐁주야말로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현인이자,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주목해야 할 몇 안 되는 ‘주요한‘ 작가다. - P336

사물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예를 들자면 과일 가게 주인들이 쓰고 버린 과일 상자에 여유롭게 시선을 돕리는 것이다.  "시장으로 가는 모든 길모퉁이마다 평범한 나무 상자들이겸손한 빛을 뿜는다. 여전히 새것이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도록 쓰레기와 함께 버려져, 자신이 볼품없는 자세로 놓여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란 이 대상은 사실 주변에서 가장 빛나는 물건들 중 하나다. 그러나 이 나무상자의 최후를 앞에 두고 너무 오래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마지막 결론을 주관적인 판단으로 맺는 것은 퐁주가 전형적으로 쓰는 방식이다. 우리가 사물들 중에서도 가장 낮고 가벼운 이 대상에 우연히 연민을 느꼈다고 해서, 지나치게 그 감정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한 과도한 연민은 모든 것을 망치고, 막 얻어 낸 한 줌의 진실마저 바로 사라지게 하고 말 테니까. - P336

(독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창조하게 하는 데 시의 원문과 번역문을 양편에 싣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 P337

어떤 것을 수정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거기에 덧붙이는 것뿐이다. 이것은 마치 이미 쓴 글이나 출간한 글을 다시 가져와서 주석을 달아 가면서 수정하는 것과 같다. - P341

보르헤스는 간결함의 대가다. 그는 단 몇 페이지에 극도로 풍부한 개념과 시적인 요소들을 응축시키고자 했다. - P347

그가 에세이가 아닌 허구적인 산문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을 가로막았던 장애물을 극복하게 해 준 그 방법은, 쓰고 싶었던 책을 이미 누군가가 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보르헤스가 꾸며 낸 다른 언어, 다른 문화 속에서 나온 미지의 작가가 쓴 책, 그러고 나서 그러한 상상 속의 책을 다시 묘사하거나 요약, 비평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 P348

문학의 이상적인 출전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기 이전에 일어났던 신화적 사건 같은 것이 아니라 단어와 이미지와 의미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조직으로서의 텍스트다. 서로 응답하는 각각의 모티프들이 이루는 구성, 하나의 주제가 그 변형들을 전개해 나가는 음악적 공간인 것이다. - P350

문자화된 글의 힘은 실제적인 경험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한 경험에 하나의 시원으로서, 또한 그러한 경험을 종결시키는 것으로서 기능한다. 하나의 시원으로서 기능하는 이유는, 쓰인 글이 사건과 동일한 등가물로, 그러한 글 없이는 경험적인 사건 또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의 종결로서 기능하는 이유는, 보르헤스에게 있어 쓰인 글이란 집합적 상상력에 하나의 강한 충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록된 글들은 과거건 미래건 등장할 때마다 기억되고 인지되는 것으로 상징적이거나 개념적인 형상으로 기능한다. - P351

보르헤스는 자신이 쓰는, 혹은 쓸 수 있는 모든 텍스트에서 무한한 것, 셀 수 없는 것, 시간, 영원 혹은 영원한 존재나 시간의 순환적인 성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 P352

고통보다 배고픔이 더욱 괴로웠다 - P353

문학 텍스트는 오직 단어들의 연속이라는 구성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개념이(보르헤스의 이러한 개념은 구조주의자들의 방법론과 가장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것이다. - P354

현실의 시간에서, 역사 속에서 여러 다른 선택지를 마주한 인간은, 영원히 다른 것들을 지우면서 하나만을 선택한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의 시간은 (희망과 망각의 중의적인 시간과 유사한) 예술의 다의적인 시간과는 같을 수가 없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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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6-02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오늘 잘 보내시고 이 달도 즐독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6-02 11:03   좋아요 1 | URL
예 고맙습니다 날도 이제 슬슬 더워지는데 더위 조심하시구요 서곡님도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자신과 주변 인물들과 맺는 관계는 그가 애정을 갖는 대상의 범위 안으로 (이를 넘어 ‘생명‘과의 보편적인 관계에까지) 제한된다는 것이다. - P278

《닥터 지바고》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는 프롤레타리아의 반이데올로기적인 본질과 특유의 양면적인 성격이다. 프롤레타리아는 극도로 다양한 종류의 전통적인 도덕과 사고를, 그 안에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역사의 힘과 융합해 낸다는 점에서 양면적이다. - P278

나는 감정들, 질문들, 반대되는 의견을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읽어 내고자 노력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이러한 방식(책과 싸움을 벌이듯 읽는 방식)을 통해 이 책의 근본적인 주장, 즉 초월적인 인간성으로서의 역사라는 명제를 공유하지 않아도, 같은 문제를 고민하며 하나의 작품이 인간의 삶을 직접적으로 표상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것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말이다. - P287

예술적으로 구체화된 하나의 개념은 의미가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존재하는 것이 곧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예술적으로 구체화된 개념이란 결정적인 어떤 지점, 하나의 문제, 놀라움의 근원을 가리키는 것을 뜻한다. - P287

역사(자본주의 세계에서든 사회주의 세계에서든)는 아직 충분히 역사라 할 수 없다. 현재의 역사는 인간의 이성이 의식적으로 구축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생물적인 현상들과 야성적인 자연의 연속일 뿐이지, 결코 자유의 왕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88

세계의 실재는 우리의 눈에 다양하고 가시투성이이며, 빽빽하게 겹쳐진 여러 개의 층처럼 보인다. 마치 아티초크(엉겅퀴와 비슷한 국화과 식물)처럼 말이다. 문학작품을 대함에 있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한한 아티초크의 겹을 벗겨 내듯 그것을 읽으면서, 보다 더 새로운 차원들을 발견하고, 그러한 세계를 계속해서 벗겨 낼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이다. - P290

"모든 결과에 대해 오직 하나의 이유만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것도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결과는 다수의 원인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의 원인들은 차례로 끝없이 수많은 다른 원인을 뒤에 숨기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건(예를 들어 하나의 살인 사건조차)에는 서로 다른 원천에서 나온 각각의 급류들이 모여 하나의 소용돌이처럼 흐르는데, 모두 진실을 찾는 데 있어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 P294

저자(카를로 에밀리오 가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들, 즉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간트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만의 ‘방법서설‘을 구축해 낸다. 그 ‘방법서설‘이란 한 체계속의 모든 요소들은 차례로 각각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모든 체계는 체계의 계보학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 한 요소 안의 모든 변화는 전체 체계의 변화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 P295

가다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삶이라는 들끓는 가마솥이자, 무한히 겹쳐져 있는 현실의 층들이었으며, 풀 수 없는 앎의 매듭이었다. - P295

"모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역학과 가능성들의 체계, 즉 보통 운명이라 불리는 것" 말이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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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본성상 감각의 쾌락에 이끌리도록 되어 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쾌락과 고통의 계산]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외적 대상은 각 개별자의 욕망의 특수한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은 폭력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힘을 겨루며 갈등한다. 이에 따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계산 능력이 반드시 필요해지는 것이다. - P176

쾌락을 좇는 인간이 타인을 차례로 파괴하지 않는다면, 이는 오늘날 넓은 의미에서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기초를 이루는 평판 때문일 것이다. 평판은 ‘모든 인간의 결합된 힘이 각 개별자를 대신하여 작동하게 되는 근거다. 평판은 천성적으로 부여받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게끔 하는 미덕 같은 것이 아니다. 세속의 인간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평판이다. 그 평판의 대상이 자신의 관심인 한에서 말이다.  - P176

지루함은 한가지 운동의 지속에서 비롯되는 반면, 쾌락은 운동의 다양성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세 시간 이상 쾌락을 지속시키고자 한다면, 오히려 지루함만 불러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P179

행복이란 아름다움에 비례하는 객관적인 수치이지만, 여기에 사랑의 정열이라는 가중치가 반영되면 전적으로 주관적인 수치가 되기 때문이다. 《연애론》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17장의 제목이 "사랑이 아름다움을 압도하다"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 P183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사랑이라는 대상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모든 신선한 아름다움" 으로 이루어져 있다. - P183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의 변모된 모습을세밀하게 바라보는 데 집중한다. - P185

스탕달적인 소설(적어도 대중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알려진평가를 따르자면)은 명확한 플롯이 전개되는 가운데 뚜렷한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각자의 열정을 추구하는 이야기이다. 반면 사적인 기록에서 스탕달은 형체도 방향도 없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의 흐름 속에서, 자기 삶의 근본과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찾아 나간다. - P188

《뤼시앵 뢰뱅(Lucien Leuven)》의 원고 여백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냥개라도 사냥꾼의 총성이 울려야만 사냥감을 물어 올 수 있다. 사냥꾼이 총을 쏘지 않으면 사냥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소설가는 주인공의 사냥개와도 같다." - P192

스탕달이 옹호한 가치는 자신의 특수한 본질(과 한계)을, 주변 환경의 특수한 본질 및 한계와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존재론적인 긴장에 있다. 존재는 정확히 엔트로피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미립자처럼 어떠한 형태나 연결도 없는 순간과 충동으로 소멸하고 만다. - P197

스탕달은 개개인이 각자 에너지보존법칙 혹은 지속적인 에너지 재생의 과정을 따라 자신을 실현하기를 원한다. 결국어느 경우에는 엔트로피가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결국 우주에 은하수들과 함께 남는 것은 허공을 떠도는  원자들의 소용돌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수록, 이러한 자기실현은 더더욱 엄격한 하나의 명령으로 주어진다. - P198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에서 그(스탕달)는 행복을 맞닥뜨린 순간 그 감정을 묘사하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을 대신하고 만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데 항상 실패하기 마련이다." - P207

진정한 디킨스는 그가 인격화시킨 악과 그로테스크한  캐리커처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 해도,
그가 그려 낸 천사 같은 희생양과 희망적인 존재는 여전히 무시하기 힘들다. 선한 인물이 없으면 그 반대의 인물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 두 성격의 인물 모두를 서로를 연관하는 구조적인 요소들로, 이를테면 튼실한 건축물의 방벽과 들보처럼 파악해야만 한다. - P220

옛 시대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 많은 추한 것들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발전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의 태양 아래에서는 기괴하고  미성숙한 것들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 P234

호손, 멜빌의 작품에서 죄악의 존재가 기이하고 실체 없으며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에 비해, 트웨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죄악은 청교도 윤리의 단순한 다소 기초적인 판본처럼 보인다. 타락과 은총이라는 극단적인 청교도의교리가 여기에서는 마치 잊지 않고 칫솔질하기처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명확하고 합리적인 규칙으로 변한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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