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업무보고서와 완료보고서, 연간보고서를 제대로 쓰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오늘은 이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업무보고서를 형식적으로 쓰면 완료보고서 · 연간보고서에 핵심을 쓸 수 없다. - P170

일일보고서에 기초해서 주간보고서를 쓰고 주간보고서를 참고해서 월간보고서를 쓴다. - P170

일일보고서, 주간보고서를 대충 썼다면 월간보고서를 쓸 때, 4주 동안 일어난 일을 기억에 의존해서 써야 한다. 핵심보다 기억에 남는 내용만 쓴다. - P170

인간의 기억력은 매우 불완전하다. 지난주에 했던 회의 내용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2~3주 전에 성가시게 했던 문제도 해결하고 나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똑같은 문제가 생기면 또다시 해결방법을 찾아 헤맨다. - P170

주요 업무와 기억해야하는 일은 반드시 적는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이어리 한 페이지를 세 영역으로 구분해서 할 일, 한일, 문득 떠오른 생각 등을 적었다. 세 영역은 나만의 다이어리 양식이다. 보고서에 의미 있는 내용을 꾸준히 기록하는 비법은 양식을 만드는 것이다. - P170

나는 일일 · 주간 · 월간보고서는 항목을 정해놓고 내용만 바꿔서 넣는다. 정해놓은 항목은 웬만하면 바꾸지 않는다. 필요하면 임시로 항목을 추가한다. 기타 항목에는 분류할 수 없는 내용만 쓴다. - P171

할 일이 적어서 쓸게 없으면 일을 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적어둔다. 한 일이 많아서 기록할 게 많으면 주요 내용만 간략하게 쓴다. - P171

내가 쓴 보고서를 한 달 또는 분기별로 살펴본다. 보고서에 쓴 내용을 보면서 했던 일을 머릿속에서 복기한다. 그러면 협력업체 담당자와 만나서 나눈 사적인 이야기까지 기억이 난다. - P171

일일 업무보고서에서 주간보고서, 주간보고서에서 월간보고서로 갈수록 중요한 업무만 남는다. 이런 방식으로 보고서를 쓰면 일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비용과 인력은 얼마나 들어가는지 파악할 수 있다. - P172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날은 업무일지를 자세히 쓰고, 조금 바쁜 날은 대충 쓰거나 건너뛰면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의미 있는 내용을 빠트리는 날도 생긴다. 매일, 일주일, 한 달의 변화는 날마다 핵심만 쓴 보고서에 드러난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일을 하고 내일도 그 일을 한다. 매일 같은 일을 해도 그날의 핵심 업무가 있다. 보고서에는 핵심 업무를 기록하고 그 핵심이 축적되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 P172

나는 여러 사람이 쓴 보고서를 살펴보고 특징을 정리한 다음, 내가 쓰는 보고서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를 차용한다. 보고서의 시작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때, 이 방법은 효과가 있다. 잘 쓴 보고서 몇 가지를 참고하면 보고서를 무리 없이 쓸 수 있다. - P173

잘 쓴 보고서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문장이 명확하고 핵심이 한눈에 보인다. 둘째, 내용 전개가 자연스럽다. 억지로 자료를 꿰맞춘 티가 안 난다. 잘 쓴 보고서는 대충 훑어만 봐도 내용을 바로 이해할 수있다. - P173

핵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문장력이고 내용을 자연스럽게 전개하는 건 구성력이다. - P174

"핵심을 맨 앞에 배치하라", "결론부터 써라", "내용별로 단락을 구분하라"는 구성에 관한 지침이다. 이런 지침은 보고서 작성에서 기본 준수 사항이다. - P174

중요한 내용을 보고서 맨 앞에 쓰는 이유는 읽는 사람이 적어도 첫 단락, 첫 문장은 기억하기 때문이다. 첫 문장을 읽고 이어서 나오는 내용을 유추하고 경험치에 따라 상황을 판단한다. 이것을 초두효과라고 한다. - P174

보고서 작성자가 초두효과와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효과는 맥락 효과와 앵커 효과다. 초두효과, 맥락 효과, 앵커 효과를 활용하면 핵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 P174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정보가 계속해서 나올 때는 초두효과가 작용하고 정보가 띄엄띄엄 나올 때는 최신 효과가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초두효과가 처음 보는 정보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타나고, 이미 알고 있는 정보, 친한 사람을 만날 때는 최신 효과가 나타난다. - P175

초두효과와 최신 효과는 기억, 인지과정에 관여한다. 보고서에서 이 효과를 활용하려면, 읽는 사람이 내용을 인지하는 정도에 따라 핵심을 앞에 제시할지(초두 효과) 아니면 마지막에 제시할지(최신 효과)를 결정한다. - P175

맥락 효과는 처음에 제시한 정보가 맥락을 만들어서 나중에 제시한 정보를 긍정 또는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데 영향을 주는 개념이다. 처음에 제시한 정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다음에 나오는 정보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처음에 제시한 정보가 부정적이면 나중에 나오는 정보도 부정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 P175

심리학에서 말하는 맥락 효과는 콘텍스트context보다 서론에서 결론에 이르는 동안 논리적인 흐름으로 진행되는 ‘일관성consistency‘으로 봐야 한다. 준비한 자료를 논리에 맞게 배치해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쓴다. - P176

앵커 효과는 우리말로 ‘닻 내림 효과‘라고 한다. 배의 닻이 앵커Anchor다. 배는 정박하거나 특정 위치에 머무르기 위해서 닻을 내린다. 앵커효과는 생각의 기준점을 설정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 P176

앵커 효과는 사업의 진행률, 매출, 이익 등을 알리는 보고서에서 자주 사용한다. 예상보다 매출액이 적으면, 동종 업계 평균 매출이나 불경기 매출을 기준으로 현재 매출을 제시한다. 사업의 진행률도 마찬가지다. 목표에 못 미치는 진행률을 보고할 때, 동종 사업 가운데 진행률이 낮은 사례를 언급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업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 P176

인지심리학에서 실험으로 증명한 초두 효과, 맥락 효과, 앵커 효과를 이용해서 보고서의 메시지를 배열하면 전달력을 높일 수 있다. 세 가지 효과는 문서를 구성하는 원칙으로 활용한다. 증명된 방법론을 적용해서 메시지를 배열하는 목적은 읽는 사람이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 P177

나쁜 메시지를 숨기거나 축소하고 듣기 좋은 소식,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만 보여주려는 의도로 이런 효과를 이용하면 절대로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 이런 효과는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 P177

표, 그림, 사진 등을 시각 정보라고 한다. 표를 제외한 인포그래픽, 그래프, 사진, 지도, 순서도 등을 모두 그림이라고 한다. 내용을 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시각 정보는 넣지 않아도 된다. 시각 정보를 넣는 이유는 여러 줄로 풀어서 써야 하는 정보와 장황한 내용을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 P178

많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시각 정보를 사용한다. - P179

그림, 순서도, 표 등의 시각 정보가 많으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시각 정보 사이에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면 시야가 분산된다. 이런 이유로 시각정보는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연구소나 공공기관에서 발표하는 보고서를 보면 시각 정보를 최소한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P179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표, 그림 하나로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경우에만 표, 그림을 사용한다. 보고서에 넣는 표는 주제를 강조하거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자가 정리한 것이어야 한다. 단순히 참고용으로 보여주는 통계자료 또는 관련 기관에서 인용한 표는 보고서 마지막 또는 참고자료 단락에 넣는다. - P179

표나 그림을 언급할 때, "다음 그림은", "아래 표와 같이" 등의 표현은 삼간다. 보고서를 편집하면서 시각 자료 위치가 바뀌어 표나 그림이 문장 위에 배치되거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 P182

시각 자료는 글로 설명하는 단락 마지막에 배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자리가 없으면 다음 페이지로 넘긴다. - P182

그림으로 통칭하는 시각 정보를 만들 때는 ‘단순하게 만들라‘는 원칙만 지키면 된다. 하나의 시각 정보에 여러 가지 메시지를 넣으면 복잡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시각 정보를 넣는데 시각 정보를 해석하는 데 노력이 필요하다면 제 역할을 못하는 요소가 된다. 시각 정보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기능에 충실하면 된다. - P183

그림에서는 자료의 개수를 줄이거나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다. 표에서 숫자를 보여주어 차이를 비교하는 것보다 그림을 넣어서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더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 P184

한 페이지에 여러 개의 시각 정보를 넣지 않는다. 한 페이지에 시각정보를 몇 개 이상 넣으면 안 된다는 지침은 없다. 글과 표, 그림이 한 페이지에 있으면 표나 그림, 즉 시각 정보를 먼저 본다. 시각 정보를 보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글을 읽는다. 만약 한 페이지에 두세 개의 표와 그림이 있다면 표와 그림 설명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머릿속에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와서 뒤죽박죽이 된다. 시각 정보를 설명한 글을 읽어도 이미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메시지의 전달력은 떨어진다. - P184

표와 그림을 꾸미지 않는다. 보고서의 모든 표는 선 두께를 통일하고 장식적인 표현은 배제한다. 인포그래픽과 도식은 모양, 색에 일관성을 유지한다. 표와 그림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보조 도구이므로 페이지와 조화를 이루는 데 신경 쓰고 시선을 끌기 위한 장식은 하지 않는다. 시각 자료에 그림을 삽입하는 경우가 있다. 연표를 만들 때, 시기별로 사진을 넣는다. 이때 선명하지 않은 사진은 가능하면 배제한다. 보고서에 들어가는 모든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해상도가 낮거나 흐릿한 사진은 이해를 돕기는커녕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 P184

표와 그림에는 번호를 붙이고 제목을 넣는다. 설명이 필요하면 간략하게 넣고 출처를 밝힌다. 시각정보는 제목과 설명을 포함해서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표, 그래프 등은 넣지 않는다. - P184

표를 만들 때, 지켜야 하는 원칙은 단순하다. 줄 간격, 선 두께, 테두리 모양을 통일하고 숫자가 많은 표는 소수점을 기준으로 정렬한다. 숫자로 이루어진 표는 칸을 구분하는 선과 적당히 여백을 둔다. 구분하는 기준이 세 개 이상인 경우에는 테두리와 음영을 적용해서 항목과 내용을 구분한다. - P185

보고서 작성자가 구조화, 구체화해야 하는 시각정보는 도식diagram과 그래프다. 개념과 사례를 글로만 설명하면 전달력이 떨어진다. 읽는 사람은 개념 또는 사례 설명에서 타당성과 효용성을 제시해야 정보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 구조화가 필요하다. 메시지 전달력은 구조화된 자료와 도식에서 나온다. 잘 만든 도식과 그래프는 정보를 전달하는 힘이 매우 강력하다. 표에서 정확한 자료를 보여준다면 도식과 그래프는 시각적으로 메시지를 주입해서 보고서 내용을 각인시킨다. - P185

도식은 다음 세 단계를 거쳐서 구조화한다.
첫째, 데이터보다 메시지에 집중한다.
둘째, 핵심 메시지와 대조군의 메시지를 비교한다.
셋째, 비교 유형에 적합한 도식을 선택한다. - P185

표는 정량적 데이터, 즉 숫자가 중요하다. 도식은 데이터 변화와 차이, 의미 있는 증가 · 감소와 이유가 중요하다. 금액이나 비율로 표시된 숫자를 어떤 메시지로 보여줄지 고민하고 자료를 정리한다. - P185

도식에서 메시지를 강조하려면,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실험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조건 또는 환경을 설정한 집단을 실험군이라고 하고 실험 결과가 제대로 나왔는지 판단하기 위해 조건 또는 환경을 설정하지 않은 집단을 대조군이라고 한다. - P186

도식에서 비교 대상은 실험에서 대조군과 같다. 이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비교 대상을 설정한다. 데이터를 조작 또는 과장했다는 의견이 나오지 않도록 타당성과 객관성이 입증된 비교대상을 설정한다. 보통은 평균치, 전년도 동기 대비, 유사한 프로젝트에서 얻은 결과 등과 비교해서 도식을 만든다. - P186

도식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 설득력있는 숫자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도식을 꾸미느라고 보고서에서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도식은 메시지를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다. 독특한 디자인보다 많이 이용하는 형태를 선택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처음 보는 도식은 시선을 끌 수 있어도 그 도식을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많이 이용하는 형태는 별도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고서의 도식은 요점을 강조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 P186

요약은 전체 내용을 짧은 문장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보고서의 주제와 결론을 간략하게 구성해서 보고서 앞 부분 또는 섹션이 시작하는 페이지에 넣는다.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건 쉽지 않다. 긴 보고서를 요약하려고 하면 모든 내용이 중요하게 보인다. - P189

요약에도 학습이 필요하다. 신문에서 정치면 또는 사회면 돕기사를 1면에 간략하게 소개한다. 1면의 톱기사 소개가 요약이다. 논문 앞에도 요약이 나온다. 논문에서 요약을 ‘초록abstract‘이라고 한다. 신문에서 톱기사를 소개하는 글과 논문 초록을 보고 요약하는 방법을 익히면 된다. - P189

요약의 기능을 이해하면 요약을 잘 할 수 있다. 요약을 읽으면 전체 내용을 읽지 않고도 주제와 결론을 알 수 있다. - P189

보고서를 자세히 읽기 전에 사전정보를 제공해서 배경지식을 가동하게 만드는 것이 요약의 기능이다. - P189

요약문을 읽으면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보고서를 집중해서 읽을지, 훑어볼지 판단한다. 긴 보고서를 훑어보기만 하는 경영자와 관리자에게 요약은 중요하다. - P190

요약은 보고서를 끝내는 요식 행위가 아니다. 요약을 잘하면 상사는 보고서를 자세히 읽는다. 보고서에는 아이디어, 업무 진행 과정, 문제 해결, 분석, 결과 등이 있다. 형식적으로 요약하면 중대 사안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이로 인해서 업무에서 손실을 볼 수 있다. 요약만 읽어도 내용을 파악하도록 정리하고 전체 내용을 읽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 P190

보고서를 읽게 만드는 요약은 주요 내용의 흐름, 즉 맥락에 따라 정리한 글이다. 내용 중에 정상적인 의식의 흐름에서 벗어난 부분이 나오면 이 부분을 요약에서 짚어준다. 그러면 의식의 흐름으로 들어온다. - P190

나는 보고서를 쓰면서 키워드, 핵심 문장을 따로 적어둔다. 계획대로 진행한 부분에서 전달할 내용, 문제가 발생한 공정과 해결 방법, 성과 분석과 결과, 부문별 담당자 의견을 정리한다. 여러 부서 담당자의 보고서를 취합해서 정리할 때는 각 부서 담당자에게 꼭 전달해야 하는 내용을 표시해 달라고 요청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 당연한 결과는 요약에 넣지 않는다. 보고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잘 드러나게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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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에 나왔던 포트키를 스마트폰과 연계하는 저자의 창의성이 돋보였다. 공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저자이기에 가능한 발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해리포터와 불의 잔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2005> 편을 보면 ‘포트키Portkey‘라는 것이 나온다. 포트키는 순간이동 마법이 걸린 물건인데, 이것을 잡으면 다른 공간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 P359

현대사회에서 포트키는 휴대폰이다. 우리가 휴대폰을 열고 쳐다보면 우리는 휴대폰 속 시공간으로 들어간다. 강의 시간에도, 교회에서 예배 중에도, 붐비는 지하철에서도 휴대폰을 보면 내가 원하는 세계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나만의 시공간을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다. - P359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값싼 방법의 자매품으로 선글라스, 후드 티셔츠, 이어폰, 마스크 등이있다. 모두 내 노출을 줄이고, 외부 공간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 P359

대한민국에서 공원을 제외하고 건폐율이 가장 낮은 곳이 대학 캠퍼스다. 그만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 P361

손에 물이 닿으면 긴장이 풀린다. 그렇게 물은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일상에서 전신에 물을 닿게하는 경험이 샤워다. 그래서 샤워 부스는 중요한 공간이다. - P362

같은 공간이라도 빛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그 효과를 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어두운 방 거울 앞에서 휴대폰 불빛으로 얼굴을 밑에서 위로 조명해보라. 거울 속에 완전히 딴사람이 있을 것이다. - P369

우리가 사는 곳은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조명이다. 빛이 아래에서 위로 가는 경우는 우리의 삶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우선 태양빛부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조명이다. - P369

실내 공간에서 조명을 위에서 아래로 비추다 보니, 집에서 가장 어두운 공간은 천장이 된다. 등은 천장에 달렸지만 역설적으로 등의 배경인 천장은 항상 제일 어둡다. 과거에는 등잔 밑이 어두웠다면 지금은 형광등 위가 어둡다. - P369

우리가 바라보는 낮의 빛은 하늘 전체가 밝다. 이렇듯 자연의 빛은 천장 전체가 밝은 조명이다. 그래서 하늘이 높게 느껴진다. 이러한 효과를 연출하려면 스탠드를 위로 돌려 천장에 조명을 비추면 된다. 그렇게 하면 어두운 천장이 아니라 가장 밝은 천장이 만들어진다. 이럴 때 천장은 낮의 하늘이 된다. 방이 더 좋아 보이고 달라 보일 것이다. - P369

현대의 SNS에 올라가 있는 사진들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을 그린 초상화와도 같다. 그림의 개수가 많고 때로는 동영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더 좋은 것은 초상화는 집에 초대된 사람만 보지만, SNS 사진은 전 세계인이 본다. 더 효율적이다. - P375

효율적인 면에서 본다면 요즘 SNS 하는 사람은 미술관에 걸린 초상화 속 귀족 정도 수준의 자기과시를 하고 있는 중이다. - P376

그런데 사실 이렇게 SNS에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우리는 ‘자유‘를 잃게 된다. 내 삶의 가치가 다른 사람의 클릭에 의존하는 자유의 상실 말이다. 잠깐이라도 SNS에 열중해본 사람은 안다. SNS에 시간을 쏟을수록 사실 나의 행복감의 칼자루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 P377

녹지를 본다는 것은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정신적인 쉼을 준다. - P378

먼 산을 본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사람이 없는 곳을 본다는 것이다. - P378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야에 항상 사람이 들어와 있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사람에게서 온다. 그래서 내 눈에 사람이 안 들어온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산에도 사람이 있지만 멀어서 안 보이는 것이다. - P378

베트 미들러 Bette Midler의 노래 <프롬 어 디스턴스From A Distance> 가사를 보면 전쟁 중에도 멀리서 보면 평화로워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거리는 갈등을 지우는 힘이 있다. - P379

먼 산을 볼 때 더 좋은 것은 나와 산 사이의 넓은 공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혼자 소비하는 공간은 나의 권력 양을 측정한다. 말단 사원의 책상보다 회장님 방이 더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 P379

이 도시 속에서 나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렵다. 넓은 공간을 바라볼 기회도 적다. 그런 상황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은 실내 공간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큰 공간을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런 여유는 자주 가져도 돈이 들지 않는다. - P379

어느 한순간 같은 모습이 없다. 하늘이 좋은 이유다. - P381

하늘은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공간이다. - P381

비어 있는 공간은 항상 우리에게 여유를 준다. 비어 있는 커다란 공간을 쳐다보는 것은 머리와 가슴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주는 것과 같다. - P384

안대를 하면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다. 안대는 어느 곳이건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장치다. - P385

빛이 없으면 눈으로 볼 수 없고, 눈으로 보지 않으면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 P387

완전하게 쉬고 싶거나 상상력을 높이고 싶을 때 안대를 권한다. - P387

사람의 권력은 그 사람이 소비하는 공간의 체적에 비례한다. - P388

원래 과시는 낭비에서 나온다. - P388

필로티pilotis는 프랑스어로, 르코르뷔지에가 제창한 근대 건축 방법의 하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건축물의 1층은 기둥만 서는 공간으로 하고 2층 이상에 방을 짓는 방식‘이며 ‘건축의 기초를 받치는 말뚝을 뜻한다. - P390

일본의 젠 가든은 나무를 심지 않고 모래와 돌덩이 몇 개만 가져다 놓은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계절이 바뀌어도 피는 꽃이 없다. 젠 가든은 한마디로 비움의 정원이고 시간이 멈춘 정원이다. - P393

우리는 가끔 사무실에서 때로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빈 모니터를, 아예 빛이 없는 검정 모니터를 봐주는 것도 좋다. 우리는 태양, 형광등, 스마트폰, 모니터, 간판 불빛 등 각종 빛에 시달린다. 그런 빛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검정 모니터는 농경 사회에서의 젠 가든과도 같다. 가끔씩 모니터를 끄고 검정 모니터를 보며 쉬어보기를 권한다. - P396

거리를 걷거나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항상 신호등을 만난다. 급한 일이 있어도 빨간 신호등에 걸리면 기다려야만 한다. 이를 무시하고 건너가면 자칫 잘못하다가 초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몇 분만 기다리면 다시 파란불로 바뀌어 건너갈 수 있다. - P397

인생도 그렇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없다. - P397

항상 급하게 이 길을 꼭 지금 건너야 할 것 같은 일이 많다. 이번 시험에 꼭 붙어야 하고, 이번 공모전에 꼭 당선되어야 하고, 이번 직장에 꼭 합격을 해야 하는 식이다. 그런데 보통은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잠시 아무 일도 안 하고 기다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이 지나면 파란불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 P399

지금 당장 신호등이 빨간불이어도 1분만 기다리면 파란불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기다림이면 충분한 경우도 있다. - P399

모든 길은 다 통한다. - P401

길을 바꿔 가도 목적지는 같다. 다만 경치만 달라질 뿐이다. - P401

인생도 마찬가지다. 계획했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새로운 풍경이 되는 것이다. - P401

나의 경우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 단 한 번도 없다. - P401

열두 시 길로 가려고 하면 항상 그 길은 막히고 두 시 길이 열렸다. 때로는 아홉 시 길이 열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열리는 방향으로 걸었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의 경로에 만족한다. - P403

내가 자주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인생은 차선次善이 모여서 최선最善이 되는 것이다. - P403

원래 최선들이 모여서 최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온갖 멋진 옷과 고가의 액세서리를 다 하고 나면 완전 촌스러워질 수 있다. 모자라는 듯한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다. 그러니 내가 원했던 길이 막힌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라. 때로는 그게 빨간 신호등처럼 조금만 기다려도 파란불로 열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옆길로 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 P403

지금 열린 길이 최선이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런 길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멋진 곳으로 인도해주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 P403

나는 시청에서 압구정동을 갈 때 충무로를 거쳐 금호터널로 가지 않는다. 구불구불 돌아가지만 경치가 좋은 남산순환도로를 애용한다. 여러분이 지금 돌아가는 길이 남산순환도로일 수 있다. 그러니 일단 길이 열리는 데로 걸음을 떼길 바란다. - P403

나는 자기애가 강하다. 세상을 읽을 때에도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근거해서 바깥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을 제대로 알려면 내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P407

마찬가지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애를 갖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 P407

세상을 사랑하고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조금씩 만들어가면 된다. - P407

우사인 볼트의 독백이 나온다. "나 이전에 수많은 레전드들이 있었다. 이 시대는 나의 시대다. 그리고 나 이후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을 안다." - P408

볼트는 계속 말한다. "그래야만 한다. ‘이 정도면 됐다‘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 P408

한 번에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면 조금씩 바꾸면 된다. 한 번에 조금씩 0.1초를 단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주변의 공간도 조금씩 바꿔나가면 된다. - P408

여러분을 만든 공간, 지금 좋아하는 장소를 알게 되면 스스로를 더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P409

아주 작고 사소한 요소 몇 가지가 공간의 의미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주는 작은 부분들을 주변에서 찾아나가야 한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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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 사회에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있는 씁쓸한 현실을 지적하며 적어도 식탁에서만큼은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 간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눌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식탁은 휴대폰 프리존이 되어야 한다. 서부시대 때 술집에 총을 맡기고 들어가듯이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식탁에 앉을때 휴대폰을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 P265

가급적이면 식탁은 유리 없이 원목 나무면 더 좋다. 유리는 차가워서 팔을 기대어 앉기가 어렵다. 차가운 유리 식탁은촉감이 별로여서 오랫동안 앉아 있게 되지 않는다. 앉아 있을 때에도 차가운 유리에 기대지 못하기 때문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앉게 된다. 그러면 마주앉은 사람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다. - P267

사람의 체온과 가장 비슷한 나무 재질로 만든 식탁을 두면 체류 시간이 더 길어지고 몸을 앞으로 기대어 가족 간의 거리가 더 좁아진다. 나무 식탁은 더 많은 시간 동안 친밀하게 가족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 P267

현대사회에서 자동차는 가장 경제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나만의 방이다. 또한 창문 밖 풍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공간이다. 자동차의 선팅 유리는 프라이버시를 더 높이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선팅 유리는 커튼이다. - P270

공간이라는 것은 이동하는 속도에 따라 같은 공간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자동차를 타고 구경하느냐, 걸어서 구경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 P274

남대문교회는 주변의 고층 빌딩에 가려져 있어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공간이다. 여러분 주변에 이런 ‘등잔 밑‘ 공간을 찾아두면 좋다. 집은 작을지라도 이 도시 속에 그런 공간을 많이 아는 사람이 부자인 것이다. - P279

내 것은 내 것대로 쓰고, 숨겨진 주인 없는 공간도 내 것처럼 쓰는 것이 이 도시 속에서 부자로 사는 방법이다. - P279

예배당이나 서점 같은 조용한 공간이 좋은 이유는 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이런 조용한 공간에서는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호수의 물처럼 마음을 물결 없이 잔잔하게 만들고 흙탕물을 가라앉히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세상에서 생각을 좀 정리해볼 수 있다. - P285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아무생각도 안 하고 멍 때리는 것이다. 머리를 비운 그 시간은 머릿속을 마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디프레그멘테이션을 하듯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P285

벽은 단순히 소통을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안 좋은 요소를 차단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 P287

빗소리를 가장 크게 들을 수 있는 곳은 우산 속이다. 우산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자연과 우산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중다. 우산이 비닐로 만들어졌는지 나일론 천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들리는 소리도 다르다. 같은 우산이라도 시간당 강수량에 따라서 만들어내는 음이 다르다. 우산 속 소리는 우산의 재료와 시간당 강수량이 만들어내는 이중주다. - P298

폭우가 내리면 빗소리에 다른 도심의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완벽한 ASMR이다. - P298

큰 나무가 띄엄띄엄 서로의 나뭇가지가 살짝 닿을 정도로 심어진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성숙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서 중력을 거슬러 수직으로 서서 자라는 건 사람과 나무뿐이다. 서로 간섭을 안 하면서도 너무 떨어져 있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다양한 나무들을 보고있으면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성숙한 사람들을 보는 듯하다. - P301

조용한 곳은 내가 존중받는 공간이다.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 있거나 기차 안에서 시끄럽게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사람이 기분 나쁜 건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져서다. 그들은 내가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를 준다. 그런 행동은 날 무시한다고 느끼게 한다. - P304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 이 정신없는 도시 속에서 시민들이 느리고 조용하게 쉴 수 있는 쉼터다. - P306

서점은 변화가 많은 자연이 줄어들고 있는 삭막한 도시에서 책이라는 다양하고 변화하는 콘텐츠로 자연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 P306

사람이 소득이 늘어나면 처음으로 예민해지는 부분이 청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1970~1980년대에는 카세트플레이어인 워크맨이나 마이마이가 인기였다. - P307

일인당국민소득이 더 올라가면 냄새에 민감해진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남자들이 향수를 쓰기 시작했다. 그다음 단계는 촉각이다. 그래서 지금은 만질 수 있는 애완동물 시장이 커진다. 우리나라는 이제 애완동물이라는 단어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다. 21세기에는 쓰다듬는 가전제품인 스마트폰이 나왔다. - P307

서점은 21세기 디지털 정보의 시대에 종이 인쇄라는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는 동시에 촉각의 공간이다. - P307

나에게 맞는 커피숍이나 동네 빵집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그곳이 여러분의 거실이기 때문이다. - P310

창가 스툴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과 거리를 구경하는 즐거움은 ‘내려다보는 권력‘에서 비롯된다. - P314

창가 스툴 자리는 혼자 가도 편히 앉을 수 있고, 둘이 가면 가깝게 옆에 앉을 수 있는 장점은 덤이다. - P315

폐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에 의해 모든 것이 지워져버리는 인생의 덧없음도 느끼지만, 무엇보다도 빈 공간 속에서 여러 가지 상상력이 날개를 펼친다. - P322

이어령 교수는 벽돌담과 돌담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벽돌담은 똑같이 생긴 벽돌로 만들어져 어느 벽돌 하나가 빠지면 대체 가능하나, 돌담은 돌들의 모양이 각기 달라서 하나가 빠지면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P324

성곽길에 올라가면 좋은 점은 옛 시절을 느낄 수도 있고 덤으로 서울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곽이 산 능선에 위치해서다. - P325

아파트에서 태어난 세대여, 익선동에 가서 골목길과 마당을 만나보라. 그러면 당신이 놓친 공간적 경험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같은 외부 공간이라도 넓은 아파트 정원과 공원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 P329

이탈리아 베니스가 특별한 이유는 단위면적당 골목길의 갈림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니스는 여러 번 가도 항상 새롭고 길을 잃는다.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공간 구성이 복잡하면 여러 가지 장면이 만들어진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넓은 공간이라고 느낀다. - P331

익선동은 한마디로 몸은 덜 피곤한데 엔터테인먼트는 더 되는 공간이다. - P331

익선동은 내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다채로운 공간 체험이 가능한 인터액티브한 장소다. - P333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쓴 《정신착란증의 뉴욕Delirious New York, 1978>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은 뉴욕이 엘리베이터 덕분에 고밀화된 도시가 됐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뉴욕의 카오스적 고밀도 도시 공간을 예찬하는 책이다. - P335

시장은 이 도시 속에서 후각이 가장 다양하게 자극받는 공간이다. 시장을 걸으면 다양한 냄새가 권투의 잽처럼 정신없이 좌우에서 때려댄다. 시장은 ‘냄새‘의 공간이다.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다양한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경험해보고 싶다면 지금 재래식 시장으로 가보기 바란다. 그 냄새가 내 감정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 P336

무기력하더라도 배는 고파오기 마련이다.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생동감과 생명력이 넘치는 오라 Aura를 시각, 청각, 후가, 미각, 촉각으로 느낀다면 비로소 잃어버린 욕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336

빛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려면 어두운 곳에 가야 하듯이 삶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려면 죽은 자들의 공간에 가야한다. 현충원에 가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 P339

현대 도시의 문제 중 하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주변에 너무 없다는 점이다. - P339

삶에 대한 깊이를 더 느끼려면 죽음은 그림자처럼 따라와야 한다. 삶이 빛이라면 죽음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빛을 느끼게 해준다. 가끔씩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보는 것도 의미있는 삶을 위해 좋을 것이다. - P340

버려진 산업 시설은 또 하나의 유적지다. 버려진 수도시설이었던 선유도공원은 지금은 서울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 P341

자연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다. - P343

선유도 공원은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시공간의 장소다. - P345

보통 공원에서 갈대숲 같은 공간은 범죄자들이 엄폐해 있다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시에서는 꺼리는 자연 요소다. 보스턴의 백베이펜스Back Bay Fens 공원은 이런 갈대숲이 많아 치안상 문제가 되곤했다. - P346

갈대숲의 또 다른 매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는 점이다. 바람이 불면 일렁이는 갈대는 마치 가을 들녘에나 나가야 볼 수 있는 바람의 풍경을 제공한다. - P348

보통 어느 사람이 그 도시에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은 도시의 도로망을 파악하면서부터라고 한다. - P349

뉴욕의 타임스퀘어가 특별한 이유는 브로드웨이와 격자형 그리드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한 삼거리여서다. 별마당 도서관도 쇼핑몰의 복도가 모여드는 교차점에 자리한다.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공간 구조다. - P351

쇼핑몰에서 유일하게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공간 - P351

인간은 주광성 동물이다. - P351

별마당 도서관은 공짜로 앉아서 햇빛을 볼 수 있어 특별한 공간이다. 별마당 도서관은 코엑스몰의 타임스퀘어이자 센트럴파크다. - P353

숭고한 빛은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어느 공간을 성스럽고 영적으로 만들고 싶으면 자연 채광을 위에서부터 내려오게 한다. 대표적으로는 판테온 천장의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있고,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도 그렇다. - P355

위에서부터 떨어진다고 해도 형광등 불빛은 숭고하지않다. 위에서 떨어지는 인공조명은 ‘싸구려‘일 뿐이다. 흔히 이 같은 조명을 정육점 조명이라고 한다. - P355

위에서부터 오는 자연 채광의 대표적인 장소는 숲속 나뭇가지 사이로 떨지는 빛이다. 그래서 숲은 항상 멋지다. 심지어 비좁은 골목길이 좋아 보이는 이유도 골목길 위에서 햇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P355

옆자리에 누가 앉느나는 그 공간의 성격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다. 아무리 평범한 공간도 내 옆자리에 특별한 사람이 있으면 그 공간은 특별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내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 P356

오랜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 비행기나 두 시간 정도 싫으나 좋으나 옆에 앉아 있어야 하는 극장 옆자리도 중요하다. 아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옆자리는 결혼식장 주례 앞에 서 있을 때 내 옆자리일 것이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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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생각을 통해 이런저런 것들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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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중간중간 저자의 글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랑이 결코 무게로 느껴지지 않기를,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는 게 지금까지 오래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거 같아요. 경험이 누적되서 그것이 속에서 웅성거려야 해요."

눈에 안 보일 뿐 있기는 있는 것

암처럼 고약한 게 정말 두려워하는 건, 목숨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아니라 저런 해맑은 무욕이 아닐까

흙과 자유는 아이를 싱싱하고 생기있게 한다.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해야 하는 건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

작가에게 쓸 수 없는 원고를 조르는 건 빈털터리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다. 돈은 꾸어서라도 줄 수 있지만 원고란 그런 융통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라는 돈을 못 줄 때는 모질고 독하게 굴어야 하지만, 원고는 못 써 줄 때일수록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나의 작가적 관록(?)이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식물이 자라는 걸 바라는 것처럼 가망없는 일

앞에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연히 내 집이 제일이다. 자주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내 집에 돌아올 때의 감격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집은 편안한 만큼 헌 옷처럼 시들하기가 십상인데 그 헌 옷을 새 옷으로 만드는 데는 여행이 그만이다.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거기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게 신의 부르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언덕방에 들어가자 곧 살 것 같았던 것은 적당한 무관심 때문이었다.

적당한 무관심이 숨구멍이 돼 주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손님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공경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해주는 친척집보다 불친절한 여관방을 차라리 편하게 여기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필요한 것이 알맞게 갖춰져 있고 홀로의 시간이 넉넉히 허락된 편안한 내 방이 언제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릿한 향수와 깊은 평화를 느낀다.

사람 사는 형편엔 수많은 층수가 있고

나에게 시골 맛이란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의미했다.

멀미 중 사람 멀미가 제일 고약한 것은 평소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던 인류애니 인도주의니 하는 것이 실은 얼마나 믿을 게 못 된다는 자기혐오 때문일 것이다.

어찌 이다지도 보기 좋을까. 평범한 시골이 마치 신이 정성을 다해 꾸민 정원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기도 하지만 위대한 영혼 또한 자연의 정기가 되어 자연을 빛나게 한다.

정기가 없는 자연은 그냥 경치일 뿐이었다. 경치는 아무리 좋은 경치라해도 눈으로 보는 것으로 족하지 마음속으로 스며오진 않는다.

너무 쉬운 대답은 믿을 게 못된다.

그래, 이왕 얹혀 가는 거 동행에게 부담이나 안 되게 먼지처럼 얹혀가자. 먼지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먼지처럼 자유롭게.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시도 한국인임을 잊을 수 없었음은 일종의 강박 관념이었다. 경제, 문화적인 선진국을 처음 보았을 때의 열등감이나, 하나라도 더 보고 배워야지 싶은 사명감, 흉잡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자존심 등이 다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콤플렉스였다.

남의 정치체제나 문화, 국민소득 등을 우리와 비교하지 않고 나름대로 사는 양상으로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서로 일정을 의논해서 계획을 세우는 일을 연변식으로는 "회의하여 조직한다" 라고 말했다.

우린 자고로 ‘목구멍이 포도청‘ 이란 말로 밥줄을 위해선 철조망 밑을 기는 절대적인 비굴까지도 합리화해 왔다.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달린 밥줄은 과연 중요하다. 신성하기까지 하다.

표리(表裏)가 부동한 건 결코 존경이 아니다. 또 남을 존경함으로써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진정한 존경은 아니다.

"내 더러워서....." 라는 욕지거리가 목구멍에서 가래처럼 끓는 걸 참고 떠는 아양과 존경을 구별 못하는 윗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다.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건 기독교 정신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이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란 바로, 참으로 그리고 골고루 민주적인 사고와 생활 방법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어떤 자리에서나 극단적인 편견에 치우친 말일수록 목청이 높다. 극단적인 편견이란 남의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걸 나타내는 목소리까지도 우선 배타적이다. 남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배제하려면 제 목청을 높일 수밖에 없다.

남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으면 그건 이미 극단적인 편견이 아니다. 극단적인 편견이 때로는 옳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게 혐오감을 주는 이유는 바로 그 폐쇄성 때문에 그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만이 절대로 옳다는 극단적인 편견이란, 목청이 실제로 높지 않더라도, 온당한 양식(良識)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피곤하게 만들어 결국 두 손을 들고 말게 만드는 폭력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 P129

폭력이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마음을 열고 얼마든지 남의 옳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살찌우려 들지만 편견은 남의 옳은 생각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이다. 결국 폭력이나 편견이나 똑같이 허세일 뿐 진정한 힘은 아니다. - P129

정말 두려운 건 목청 높은 편견이 아니라, 그 목청에 대세를 맡겨 버리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 P130

우린 예로부터 말 같지 않은 말이나 사람답지 않은 사람과는 대항해서 시비를 가리느니보다는 슬쩍 피하는 걸 점잖은 사람이 지킬 미덕으로 여겨 왔다. 여북해야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 P130

그러나 나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 중에서 이 속담만은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똥을 피하는 건 더러워서일 뿐 무서워서가 아니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변명은 될지 몰라도 여럿이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 대해선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너도나도 똥을 피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똥통이 되어 버릴 것이 아닌가. 똥은 피할 게 아니라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게 수다. - P130

인간답게 사는 길도 나만 인간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인간답지 못하다. 이웃이 까닭 없이 인간다움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나만은 오래오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어리석음이다. - P130

법 대신 편법을, 원칙 대신 변칙으로 사는 걸 은연중 권장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된 사회다. 마찬가지로 특혜나 특사가 자주 있어야 하는 사회도 인간다움이 그만큼 자주 짓밟힌 사회라는 혐의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인권만은 특혜로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 P136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일매일 크리스마스만 같았으면 좋겠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8월 한가위만 하여라"라는 우리의 옛 속담은 8월 한가위의 풍요를 말해 주기보다는 8월 한가위를 뺀 허구한 날의 허리띠를 졸라맨 궁핍을 말해주듯이 그 노인의 말은 크리스마스의 기쁨보다는 크리스마스를 뺀 날들의 고독을 더 실감 나게 말해 주고 있었다. - P153

어머니가 내 집에 오셔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계신 걸 보는 것은 슬프다. 어머니가 보고 계신 건 창밖의 풍경일까? 당신의 지난날 일일까? - P154

창밖의 풍경도 지난날도 하염없이 흐르고 차디찬 죽음의 예감이 우울하게 서린 어머니의 노안(老眼)은 크나큰 비애다. - P154

나의 어머니가 보기 좋을 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행복해 보일 적의 어머니가 제일 보기 좋다. - P154

어머니가 참으로 행복해 보일 적은 입지도 않으실 비단옷을 해 갔을 적도 아니고, 용돈을 드렸을 적도 아니고, 고기를 사갔을 적도 아니다. 그런 효도는 평상시의 무관심에 대한 일시적인 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어머니는 잘 알고 계신다. 양로원 노인들이 크리스마스가 1년에 한 번밖에 안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듯이. - P154

그래서 그런 일시적이고도 물량적인 효도를 받으실 때의 어머니는 차라리 더 쓸쓸하다. 어머니가 정말 행복해 보일 적은 무릎으로 엉겨드는 증손자를 어루만지실 때다. 그 어린놈은 그 노인의 얼굴이 늙어서 보기 싫다는 것도 그 노인의 위치가 무력하다는 것도 아직 모른다. 따고 말랑하고 정이 흐르는 손길이 본능적으로 좋아 따르고 있을 뿐이다. - P154

내 어머니뿐 아니라 어떤 노인도 어린 손자와 함께 있을 때 슬프지 않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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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라는 용어를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본문 내용에 나온 얘기들을 통해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언어의 온도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만만치 않은 힘을 발휘합니다. 정열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의 컨셉은 듣는 이에게 남다른 울림을 줍니다. 듣는 사람은 그 말이 진짜인지,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와 같은 내용보다도 말하는 사람의 열정을 먼저 알아보기 마련이니까요. - P62

만약 열정을 담아 이야기할 수 없다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 P62

컨셉은 선전 문구가 아니다 - P63

‘실체를 근사하게 전달하는 말‘인가 ‘실체를 만드는 말‘인가. 이것이 선전 문구와 컨셉의 큰 차이입니다. - P64

때로는 컨셉으로 태어난 말이 그대로 선전 문구가 되기도 합니다. - P65

컨셉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비즈니스에서 아이디어란 ‘장사를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대로 ‘고객이 돈을 지불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지요. - P65

아이디어를 고객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 컨셉입니다. - P66

컨셉은 테마가 아니다

테마에는 ‘통일감을 주는 주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 P66

테마가 마주해야 할 ‘과제‘를 가리킨다면, 컨셉은 ‘고유한 답‘을 가리킵니다. - P67

비즈니스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존재하는 의미‘여야한다. - P68

컨셉 만들기란 ‘새로운 의미의 창조‘다 - P68

‘존재하는 의미‘가 정해지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여러 요소가 결정된다. - P68

좋은 컨셉을 이끌어내려면 조리 있는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기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던 대전제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 개인이 만든 시장

주어진 기존의 문제보다 더 가치 있는 문제로 바꿔치기 하는 것.

인간의 창의성이 발전하는 과정은 ‘질문‘과 ‘답‘을 변수로 삼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P75

<창의성의 5단계>
Level 0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낸다.
→ 시키는 대로 말을 보살핀다.

Level 1 주어진 일을 궁리하여 더욱 훌륭하게 해낸다.
→ 말의 상태에 따라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Level 2 주어진 질문에 대해 여러 답을 떠올린다.
→어떻게 하면 말을 빨리 달리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듣고 답을 생각한다.

Level 3 전제 조건을 의심하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다.
→등에 앉는 것보다 편안하게 말을 타는 방법은?

Level 4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만든다.
→수레바퀴를 달아 마차를 만든다.

Level 5 사회나 업계의 전제를 뒤집는 큰 질문을 제시하고 답을 만든다.
→역과 역으로 이어진 교통 시스템을 제안한다. - P76

LEVEL O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낸다

다른 사람이 시킨 일을 그대로 할 때는 창의성이 크게 요구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매뉴얼에 적힌 절차대로 말을 돌보는 일은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요. 로봇으로 대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영역입니다. - P76

LEVEL 1 주어진 일을 궁리하여 더욱 훌륭하게 해낸다

말을 돌보는 데 익숙해지면, 누구나 더 좋은 방법이 없나 궁리하기 마련입니다. 매뉴얼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말의 몸 상태에 맞춰 먹이의 양이나 시간을 바꾸어보기도 하고, 말과 소통하는 방법을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지혜를 이용해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주어진 규칙 안에서 떠올리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창의성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 P76

LEVEL 2 주어진 질문에 대해 여러 답을 떠올린다

나날이 말을 보살피면서 말이라는 동물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때로는 주인에게 매뉴얼에 없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말을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 말이지요. 그럴 때 근육을 형성하는 영양소를 고려해 식사법을 제안하거나, 소통의 관점에서 말과 호흡 맞추는 방법을 제안하는 등 자기 나름대로 답을 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 P77

LEVEL 3 전제 조건을 의심하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다

말을 더 빨리 달리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던 어느 날, 당신은 문득 의문이 듭니다. "더 편안하게 말을 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질문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궁금증을 가진 당신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가슴 떨림을 느낍니다. 바로 이 의문과 마주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자, 자신만의 답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 들떴을 겁니다. 이처럼 레벨3부터는 자기 자신이 질문의 주체가 됩니다. - P77

LEVEL 4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만든다

말의 힘을 빌려 편안하게 이동할 방법을 찾던 당신은 어느 날 이웃 마을 사람이 손수레로 농작물을 운반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때 번뜩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말에게 수레를 끌게 하면 되겠다!" 그렇게 마침내 최초의 ‘마차‘가 탄생했습니다.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질문‘이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답‘을 이끌어내 컨셉이 탄생한 겁니다. - P78

LEVEL 5 사회나 업계의 전제를 뒤집는 큰 질문을 제시하고 답을 만든다

마차를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고 마차를 중계하는 역을 만들어지역 구석구석을 순회하는 ‘교통 시스템‘을 구상하는 레벨입니다. 획기적인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구조까지 바꿉니다. 그러려면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을 움직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의 생활과 관련된 사회 시스템을 새로이 꾸리는 일은 실무자에게 가장 큰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P78

과거에는 창의성을 레벨2의 범위 안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질문에 대해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해 내는 사람을 창의적이라고 칭찬했지요. 세간의 아이디어 관련 도서들에는 대부분 질문을 의심하지 않고 다양한 단면에서 답을 양산하는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 P78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컨셉 만들기와 창의적 발상이란 레벨3이후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상식적인 질문에 의문을 제기하는데서부터 컨셉 설계가 시작된다는 뜻이지요. - P79

조리 있는 질문은 축구 경기의 절묘한 패스와 같습니다. - P80

패스를 잘하는 선수는 먼저 상대 팀 선수를 자기 곁으로 끌어당깁니다. 그사이 같은 편 선수를 수비가 허술한 쪽으로 달리게 한 다음 그쪽으로 공을 패스합니다. 그러면 이 팀은 공과 함께 2가지를 손에 넣게됩니다. 어떤 동작이든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과 골을 노릴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 말이지요. - P80

좋은 질문도 완전히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받는 사람에게 자유로운 공간과 결정적인 기회가 생기도록 질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 P80

조리 있는 질문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곱셈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자유도 X 임팩트 - P81

자유도自由度란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뜻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런 방법이 있고, 저런 방법도 있지, 하고 계속해서 생각이 떠오른다면 ‘자유도‘가 높은 질문이라는 뜻입니다. - P81

반대로 앞뒤가 맞지 않는 질문은 선택지를 극단적으로 좁혀버립니다. 동료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해봐도 아이디어가 확장되지 않지요. 아무런 상상도 떠오르지 않거나 동료들과 논의하는 동안 침묵이 흐른다면 자유도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봅시다. - P81

‘임팩트‘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넓은 임팩트와 깊은 임팩트입니다. 넓은 임팩트란 많은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 P81

컴퓨터가 생기기 훨씬 전인 1808년. 이탈리아인 펠레그리노 투리 Pellegrino Turri는 "앞을 볼 수 없는 연인이 쉽게 편지를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맞닥뜨렸습니다. 투리의 도전은 넓은 임팩트를 목표로 하지 않았지만, 그 질문에 답하면 연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넓지는 않지만 ‘깊은‘ 임팩트를 불러올 물음이었지요. 그렇게 타자기의 원형 중 하나가 탄생했고, 시각 장애인이 글을 쓸 때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 P82

어리석은 질문: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

자유도가 낮은 데다 답을 해도 임팩트가 작은 질문. 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분명 시간 낭비이지요. 지금 당장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 P82

처음엔 의미 있었던 질문도 시간이 지나고 주위 환경이 바뀌면서 어리석은 질문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 P83

질문에 답했을 때 목표대로 임팩트를 얻을 수 있는가. 그 질문이 논의를 활발하게 만들고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가. 이러한 2가지 관점을 통해 질문의 질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정기적으로 검증하면 좋습니다. - P83

퀴즈: 재미있지만 의미는 없다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큰 임팩트는 기대할 수 없는 질문. - P83

쉽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재미있으니까, 즉 자유도만 고려해 질문을 던지면 주객이 전도되어 버립니다. 그저 비즈니스 퀴즈 대회가 될 뿐이지요. - P84

나쁜 질문: 일본의 승리 공식이었던 ‘근성‘ 싸움

전통적 기업들이 전설처럼 이야기해 온 역사적 성공 사례는 우측 상단의 ‘나쁜 질문‘에 유독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만은 반드시 돌파해야 한다‘는 꽉 막힌 질문과 맞닥뜨리면 대부분은 실패하지만, 어떤 기업은 현장의 기술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해 내기도 하지요. 이런 기적과 같은 성공 사례가 일본의 국민적 자부심을 형성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P84

시련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자세는 물론 훌륭합니다. 끝까지 매달린 끝에 기술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이미 모든 분야의 기술이 성숙했으며, 일본의 특기라 자부하는 제작 방면에서도 신흥국에 추월당하는 상황입니다. 지금껏 의미 있는 난제라고 믿었던 것들은 대부분 세계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쓸데없이 사사로운 부분에만 집중하는 나쁜 질문이 되고 있지요. 앞으로는 나쁜 질문을 상대하는 것 이외에 다른 승리 공식을 하나 더 손에 넣어야 합니다. - P85

바로 질문의 방향 자체를 크게 바꾸는 방식입니다. 완벽에 가까운 품질의 자동차를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완성품을 이용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생각하는 것. 고장나지 않는 튼튼한 컴퓨터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음악과 동영상의 ‘사용 환경‘을 고민하는 것. 꽉 막힌 상황이 아니라 자유 속에서 질문을 마주하는 것 또한 훌륭한 ‘도전‘이니까요. - P85

좋은 질문: 지금 이 시대에 의미 있는 물음을

좋은 질문 앞에서는 자연히 다양한 대답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모든 답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요. 창의적인 질문은 답을 하려고 몰두하는 이들을 독려합니다. 이렇게 ‘좋은 질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은 컨셉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질문이 근성으로 승부하는 ‘나쁜 질문‘이나 즐겁기만한 ‘퀴즈‘라면, 과감히 질문을 ‘바꾸는‘ 방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 P86

좀 더 자유도가 높은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 좋은 방법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질문으로 바꿔치기하는 작전도 가능

엘리베이터 속도를 ‘물리적‘으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속도를 ‘심리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자유도와 임팩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입니다.

재구성, 질문을 바꾸면 발상이 달라진다

질문을 바꿈으로써 관점을 바꾸고 시야를 넓혀 생각을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이끄는 것을 ‘재구성 reframing‘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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