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인 더 뮤지엄 - 음악이 보이고 그림이 들리는 예술 인문 산책
진회숙 지음 / 예문아카이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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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이 없다면 변화도 없는 법이다.

그런 도전과 수용의 반복을 통해 예술의 지평이 점점 넓어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역사는 어쩌면 무수한 변동의 여사인지도 모른다.

<클래식 인 뮤지엄> 진희숙 지음 / 예문아카이브


 

 

 

제목부터 느껴졌겠지만,

이 책은 음악과 함께 미술이 있는 책이다.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저자는 '음악의 숲에서 미술을 보다'라고 표현한다.

 

참 아름 다운 예술적 표현인 것 같다.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그 과정을 상상하며 읽어가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되어주고 기대되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여행 가운데 초대 받을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다.

 

순서대로 미술이나 음악의 역ㄱ사를 알아가거나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예술을 알아가는 책과는 달리

각 장 마다 특생이 있고

그 가운데 음악과 미술의 교집합을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음악과 미술이라는 예술적 도서 라기보다는

그 가운데 신바한 만남이 있는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나 미술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책이 아니다.

그 둘은 비슷한 듯 다르기에 깊이있게 들어가기에는

두 예술의 차이가 느껴지고 함께 만난다기보다는

하나 하나 건너가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 가운데 음악과 미술이 만나는 징검다리를 이루면서도

단순히 이런 감상이나 이 그림에 어울리는 음악 등을 넘어

두 요소의 깊이 있는 내용도 담아내었다.

 

또한 각 장 마다 언급된 작품을 정리하여준다.

각 장의 뒷 부분에 'List'가 작성되어 있으니

내가 여행한 예술이 어떤 것이 었는지 다시 살펴보거나

관심있는 작품을 찾아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상적인 내용을 뽑으라면

'동양에 대한 환상을 담다'라는 부분이다.

이전에 다른 미술관련 도서에서

인상파 화가와 일본 그림의 영향에 대해

언급된 내용을 읽은 기억은 나지만,

정확히 어떤 그림에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내용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림 뿐 만 아니라 예술적 영감을 주는 측면에서

음악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였고 ,

동양의 기법을 차용한 이국적인 음악이 있었으며,

심지어 푸치니가 일본전통음악을 연구 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음악과 미술의 교집합을 마주 할 수 있었고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내용적이 측면에서도 깊이가 있고

새로운 내용을 알아가는 유익함과

즐거운 예술적 여행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클래식, 음악, 화가, 미술 등

어떠한 측면이어도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유익하고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음악과 미술을 함게 마주하는 과정을 경험학고 싶어하는 분들께

이 책을 소개드리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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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세트 - 전7권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최인자 외 옮김 / 시공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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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참 설레이는 일인 것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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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으로 시작한 리포터즈1기

부족함에도 함게 할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또한 보통 외국 작가의 책을 주로 읽었던 터라

이렇게 우리나라 작가님들의 훌롱한 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어요.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채광석 서간집/사무사책방(다산북스)

 

참고, 다시 기다리는 삶에 익숙해진 것은 우리가

반드시 이 봄에 만날 것을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채광석 시인의 옥중 서간집은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는

시대적 상황과 옥중 이라는 배경이 묻어나지만

그 감정과 고민, 기다림과 사랑을

다정하게 진솔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담아낸 에세이다.

그렇기에 한 개인의 사랑과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넘어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현대 한국의 에세이로 소개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읽으면 읽을 수록 사랑이 담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에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책을 펼치면서 속으로 읽어갈 때

나도 모르게 책 마다 읽혀지는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은 누가 읽어주거나 오디오 파일을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흐름 혹은 저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저 책을 펼치고 눈으로 읽어가며 한 글자, 한 문장, 한 면의 내용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혀가는 소리가,

내 속에서 이 글을 읽는 목소리가 다정하고 따뜻해서 놀랐다.

다른 목소리로 읽어보려해도

계속 따뜻한 햇살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정적 감정을 머금고 있는 듯한 목소리,

그렇지만 차갑거나 슬프다기보다는 배려심있는 다정한 미소로 말하는 듯환 목소리로 읽혀진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문학은 삶의 진실과 결코 떨어질 수 없지만,

문학 자체가 어떤 객관적 진리 인식을 위한 지배적 수단인 것은 아니다.문학이 포착하는 인간의 진실은 더 많은 경우 진/위 판단보다는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진솔한 경험의 확장에 있다.

 

 

책을 통해 삶에 질문하고 사유하는

철학적인 것 같으면서도 일상에 필요한 질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해 다양한 시선과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이런 의미있는 질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해볼 지 고민하는 시간은 책을 넘어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국가의 딜레마> 홍일립 지음 / 사무사책방(다산북스)

 

국가의 절대적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의 진화는 상대적 선을 추구하는 과정이며,

조직체의 정당성을 조금씩 제고하는 과정이다.

인간이 아주 더디게 때어나는 과정을 거쳐온 만큼,

국가 또한 아주 더디게 진화해갈 것이다.

'사람에 의해' 부인할 수 없고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의 불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완정성은 정치, 법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이 온전히 '불완전'이라는 말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은 않다.

또한 대안적인 방법이 나온다고 하거나

더 좋은 방안이라고 하더라도 '인치'를 배제 할 수 없을 것 이다.

결국 그또한 인간에 의해서, 사람이 생각해 낸

방법과 과정, 대안 중 하나일 테니 말이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앞의 단어에 만 초점을 두고 생각하다보니

제목 중 '딜레마'가 들어간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다시금 '딜레마'라는 단어를 생각해보게 된다.

단지 국가에 대한 논의나 옳고 그름 판단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해 알고 생각하게 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의 완벽한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에 질문을 더하게 되고 다시 의문이 정리될 쯤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하지만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답을 찾으려 하는 태도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 모두가 만족하고 정당하고 흠이 없는

그러한 정치가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러한 것을 불간으의 초점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서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필요할 것 같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 / 사무사책방 (다산북스)

 

죽음에 의해 삶에 한계가 지워진다는 그 엄정한 현실 앞에서 오히려 삶을 향해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한계성의 인식 때문에 공포나 자포자기, 아니면 허무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혹은 그 인식에서 도망가려고 들거나 그 인식을 누그러뜨릴 위안을 찾으려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죽음은 삶의 끝 어느순간에만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리나

삶의 시작부터 함께 있는 것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이해하고 있을 때쯤,

또 한 번 결국 죽음은 마지막이며 마침표와 같다는 생각이 다시 찾아 온다.

둘 중 한 가지 사고만이 답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또한 답을 찾기위한 독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은 외면하기 바빳던 주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무거운 단어라 생각되어

단어의 무게감에 그 단어와 관련된 사고를 외면하고 있던 나의 심리를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은 이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는 것이,

우선은 그것부터가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우월권을 이야기하는 부분,

죽음과 관련된 소재들, 죽음에 대해 문화와 작품들과 연결되어지는 부분,

죽음을 향한 살아있는 자의 윤리의식 등

한 번더 생각해 보지 못한 깊이와 사고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죽음'이라는 단어는 온전히 마주하고 생각해보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 쉽지 않은 일을 이렇게 책으로 마주하니

기분이 조금은 이상하지만,

그래도 책이기에 읽으며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1부. 행복 서사의 붕괴

지금 누구도 이 공주설화적 행복서사를 무시할 수 없다.민담의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 대중 문화시장에서 사실상 거의 모든 서사 상품들의 주제와 조직을 지내하는 것은 이 민담전통 속의 행복서사 공식이다

 

행복이라는 단어아래 난쟁이를 묶어두는 마법사의 이야기 다음으로 '마법사와 상징 아비'에 대해 나온다. 이렇게 이어지는 내용의 초점은 행복서사의 또 다른 형식이 바로 공주설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비단 예전의 이야기아 계급이 있어 계급 향상을 꿈꾸던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또한 공주나 행복이라는 말들 가운데 풍성한 만족감이나 욕구들이 생각 되지만 실상 그 안에는 결핍이 존재했다.​이 이야기를 읽어가면서보여지는 것과 읽혀지는 것과 그 안에 숨겨져있는 것이 다른 가면이 생각났다.

 

<보이지 않는 가위손>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사회에서의 시장의 기능과 우치는 중요하다.

지금 우리의 요점은 시장기제의 중요성을 부정하자는 것도,경쟁의 세계시장체제의 대두라는 현실을 부인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시장논리의 전 영역적 확대라는 문제,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장논리를 사회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고,그 확대 위에서 주요 정책의제들을 결정`실행`평가하는 행위의'반사회성'과 '반인간성'이라는 문제이다.

 

20세기의 변화는 지금은 더 뚜렷하고 더 변화의 흐름이 강하게 확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그런데, 이렇게 문화적 변동이 시작된지 별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직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렇게 빠르게 달라지는 것은

문화가 변화되고 빠르게 달라지는 사회의 흐름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는 '문화영웅'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같은 존재'가 아니라정말 'K-'가 붙으며 문화 영웅이라 불리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분화 되어 모든 사항을 다 알 수 는 없지만

읽으며 느끼는 것은 20세기에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여전히 그 문제가 존재하고 해결해야할 과제와 같으며

20세기에 변화되기 시작한 흐름은

지금은 더욱 그 흐름이 강해지고 자리 잡음을 한 모습인 것 같다.

 

 문화와 사회의 흐름에 대해 이렇게 깊이있게 생각하고 고찰하는 내용은 처음 읽었다.

'한국인'이라는 표현에 있어서도 그 의미와 요구되는 것들을 살피고

준비해야 하는 것과 도전 등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새로운 시선에 신선하면서도

넓고 깊이 있어 시선의 확장과 사고의 전환이 되어주었다.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내기에는 아직 내가 모르고 있는 부분들과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회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그 과정의 사고와 질문에 대해

읽으며 생각해보게 되는 것 만으로도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아물다가 피가 나고 또 아물고, 딱지가 앉다가 떨어지고 또 딱지가 앉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상처를 다스리면서 나는 마음에 난 상처를 생각해 보았다. 우연한 일상일 수도 있고 또 그 순간을 자극한 어떤 마음의 상처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더치고 하는 과정이 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처, 몸의 상처 한 번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상처는 받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 라는 생각도 든다.

상처라는 주제에 대해 저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상처라는 것이 의미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극복이라는 단어가 함께 존재할 때 일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에 눌리지 않기 위해 극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알아가는 만큼 책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내가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어렵게 생각했던 주제들을 알아갈 수 있어서

용기를 내는 시간이었으면서도

생각을 넓히고 깊이있는 글을 읽어가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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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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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네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을 우리는 '삶의 인문학'이라 부를 수 있다.

삶의 인문학은 삶을 살아가는 기예이자

예술로서의 인문학을 의미한다.

내가 이 책에서 '시학'이란 말로 부르고자 한 것도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이다.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출처 입력




삶은 이야기처럼 짜여지고,

이야기처럼 진행된다.

삶의 시학은 '산다는 것의 예술'에 주목한다.

'산다는 것의 예술'은 예술을 하면서 사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 행복하고 아름다운 예술적인 삶뿐만 아니라,

아니 보다 고통스럽고 추한 비예술적인 삶까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인생살이 자체-를

예술로 보는 것은 의미한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라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생물학적 전기이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살았고, 무슨 고통을 겪었으며, 무엇을 행복으로 생각했는가라는 대목-

그의 삶의 자서전은 생물학적이 결정의 차원을 벗어난다.

우리는 그 삶의 자서전을 '문학적 자서전'이라 부를 수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감동이란 인간의 가슴에 이는 파도이고, 그 파도소리이다.

가슴속에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특권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그 특권의 자진헌납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감동의 포기를 종용하고 강요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와 문명은 명백히 반인간적이다.

또 그 반인간적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처럼 '감동 죽이기'를 연습한다.

생존의 필연 앞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매일매일 살기 위해 죽고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인간의 반성적 능력이다.

우리가 플라톤처럼 철학자를 참사람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지만,

반성은 인간의 삶을 인간다운 삶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송한의 철학적 능력이다.

이 능력을 포기하지 않는 자, 그가 사람이다.

참사람은 멀리 있지 않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지금 이 글, '만인의 시학'은

문학이 '문학하는' 사람들과 문학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라는 관점에서 씌어지고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문학은 삶의 진실과 결코 떨어질 수 없지만,

문학 자체가 어떤 객관적 진리 인식을 위한 지배적 수단인 것은 아니다.

문학이 포착하는 인간의 진실은 더 많은 경우 진/위 판단보다는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진솔한 경험의 확장에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반전, 아이러니, 역설을 아는 사람은 관용의 인간일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 아일랜드 시인 세이머스 히니는 시를 "인간 상황의 복잡성에 대한 찬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히니가 말한 그 '인간 상황의 복잡성'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 문맥을 위해 인간 상황의 '역설적 반전의 가능성'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시는, 그리고 소설은 인간 실존의 반어적 상황에 대한 찬사이고 관용일 수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엿보기가 성립하는 것은 엿봄의 주체가 자기 혼자서만 대상을 보고 있다는 민음 위에서이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엿보는 순간 그 엿보기의 대상 자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로지 주체와 대상의 분리법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의 눈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소유하려는 대상은 그 소유욕망을 발동 순간에 욕망의 주체를 역으로 응시한다. 엿보기의 대상을 소유의 대상으로 만드는 순간 그는 대상이 반사하는 욕망의 시선에 나포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엿보기의 주체는 소유욕망의 질서 속에서 주체의 지위를 잃고 거대한 소유욕망의 포로로 전략한다. 그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는 그가 소유한다고 생각한 대상 그 자체가 되고, 자신의 엿보기 시선에 의해 역으로 엿보기의 대상이 된다.

엿보기의 주체는 자시 시선이 자신의 것이라 환상 속에서 그 유혹에 걸려들지만,

그 유혹의 시선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봄으로써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패션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사람들을 '한 가지 모양'에 몰두하게 하는 집단순응주의와

'새 것'의 패티시즘을, 작은 차이에 목숨을 걸게 하는 사소성의 나르시시즘을,

그리고 이 나르시시즘을 무한히 착취하는 분별없는 소비문화를 조장한다.

"이게 요즘 유행입니다"라고 옷가게 주인은 말한다.

"이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당신은 앞으로 최소한 두 달 동안 촌놈을 면할 수 없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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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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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늘이 무엇 하나 덮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마치 땅이 무엇 하나 실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마주하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문장이 섬세하고 어렵지 않은 에세이 였다.

고향에 대한 생각이나

자연에 대한 표현이 섬세하였다.

특히 안양천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고향은 없다. 고향은 다만 내 추억 속에만 있다.

지금 그곳에 있는 고향은 아버지의 헐벗은 무덤을 안고

늙은 어머니의 초점 잃은 퀭한 눈을 안고

오늘도 창백하게 낡아가고 있을 뿐이다.

푸른 숲 그늘을 노래하던 매미는 잠시 자신이 허물을 벗던 나무둥치,

그 메마른 허물 곁에 앉아 본다.

한때는 그의 세계였던 허물,

여름과 녹음을 향한 꿈, 끝없는 비상의 꿈이 배태되던 허물은

이제 하얗게 바랜 흔적만으로 매달려 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봄부터 지금까지 나는 지칠 줄도 모르고 안양천과 놀고 있다.

나는 문명의 개숫물이 흘러 내려가는 이 거친 저지대에서 잠시 숨을 쉰다.

이런 휴식도 어쩌면 내 존재에 있어서는 불성실과 도피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만한 휴식도 없이 어떻게 이 곤고한 세월을 살아간단 말인가.

이제 초가을이다. 안양천의 뿌연 흙빛은 어느덧 다시 녹색의 풀빛들로 바뀌었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풀더미 아래에는 아직도 큰물의 상처가 뿌옇게 혹은 시커멓게 남아 있다. 그래도 안양천은 지난달보다 훨씬 더 차분해졌고 파란 하늘 아래에는 군데군데 코스모슥가 피어 그림처럼 고운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제 그 코스모스도 쓰러져 눕고 풀들도 누렇게 시들어 본격적인 가을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겨울이 오면 이 헐벗은 안양천에도 눈이 올 것이다.

나는 눈 덮인 안양천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때 자전거 바퀴 자국이 난, 하얀 길을 입김을 뿜으며 걸어가 보고 싶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하천은 생각보다 폭이 넓었고 시원하게 조성된 하천 부지에는

갈대와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뚝방 아래 농구코트를 가로질러 곧바로 물 가까이 접근하니

탁한 오수의 냄새가 풍겼다.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 냄새는 조그마한 소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추억의 냄새이기도 했다. 잠자리채를 들고 종일 철다리 아래 개천가를 쏘다닐 때 시커먼 도랑에서 나던 그 잊혀졌던 냄새를 나는 모처럼 다시 맡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 검은 물 위로 야생 오리들이 줄을 지어 이 기슭에서 저 기슭으로 미끄러지듯 헤엄치고 있었다. 봄이라서 그런지 하천부지는 온통 연녹색이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상처'에 대한 내용이다.

이렇게 사고하는 저자의 시선이 철학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생각의 전환 가운데 상처를 극복해 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처를 상처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극복이라는 의미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정초에 컵퓨터를 고치겠다고 연장을 다루다가 무심결에 손을 다쳤다.

작업에 너무 취해 있었던 탓인지 손이 좀 쓰리다는 것만 느꼈는데 나중에 보니 컴퓨터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놓았으나 움직임이 많은 부분이라 제대로 붙어 있지를 않았다. 아물다가 피가 나고 또 아물고, 딱지가 앉다가 떨어지고 또 딱지가 앉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상처를 다스리면서 나는 마음에 난 상처를 생각해 보았다.

우연한 일상일 수도 있고 또 그 순간을 자극한 어떤 마음의 상처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더치고 하는 과정이 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67

컴퓨터를 고치다 다친 손의 상터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생각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였다면 아마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이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무너질듯 자책을 했을 것 같다.

요증 더 힘들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너무 쉽게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나보다 그런 내면의 상처를 인식하고 이겨내는 힘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러한 과정에서도 저렇게 또 다른 시선의 생각을 할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막연하게 인간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늘해왔다고 하다.

하지만 나는 할 수 만 있다면 그러한 상처 하나 받고 싶지 않다,

어쩌면 요즘 너무 지쳤기 때문일까.

내가 나를 돌보기도 지치는 날들이 많아서

그냥 편히 쉬고 싶고, 더 이상 상처로 아파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몸도 마음도 어디하나 상처 받지 않고 평안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상처를 바라보는 저자의 표현은 인상적이었고, 공감이 되었다.

아무런 상처 없이 고이자란 사람의 시선은 사물의 표면에만 머물기 쉬다.

인간사의 다양하고 미묘한 내정은 제가끔의 상처를 통해,

더 정확히 말한다면 상처를 다스리면서 형성된 경험세계를 통해 비로소 인지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심한 상처는 때로 그것을 치유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자체를 압살해버리기도 한다. 실제 세상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터를 안고 그 고통에 짓눌려 한평생을 불행히 살다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할수 만 있다면 상처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상처는 우리가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상처 그 자체는 대부분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불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처를 극복하면 우리는 그 우연성과 개별성을 넘어 필연성과 보편성을 갖춘,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지닙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68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처, 몸의 상처 한 번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상처는 받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 라는 생각도 든다.

상처라는 주제에 대해 저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상처라는 것이 의미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극복이라는 단어가 함께 존재할 때 일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에 눌리지 않기 위해 극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산북스의 사무사책방 시리즈를 읽으며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좋은 책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이들었다.

주로 읽었던 책이 외국작가들 책이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이야기가 다긴 책을 더 자주 찾아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혹시나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먼저 생각할 수 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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