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루앙프라방 -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
최갑수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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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행 -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
이번 주말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800킬로미터를 혼자 걸어가는 동안 자신과 대면하는 책이고 또 하나는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쉼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를 주는 내용이다. 둘 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구성이나 형식의 차이가 크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관광과 여행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여행이 가지는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행(旅行)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자기 거주지를 떠나 객지(客地)에 나다니는 일, 다른 고장이나 다른 나라에 가는 일 등을 말한다. 관광이란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이고 한다.
나로선 선 뜻 구분이 쉽지가 않다. 내가 찾는 여행의 의미를 잘 표현하는 책이 바로 [목요일의 루앙 프라방]이라는 책이다.

[목요일 루앙 프라방]은 위 두 권 중 쉼과 여유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로선 여행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산책과 위로, 거기에다 낮잠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최상의 여행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시간을 흘려보낼 권리가 있는 곳! 이라는 [루앙 프라방]은 동남아시아 전통유산과 프랑스 식민시대의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으로 1995년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라오스의 제2의 도시이지만 한적한 시골마을, 시간이 정지되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곳, 여행자 모두가 천국이라 말하며 한 번 온 적이 있는 사람은 언제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라 한다.

비오는 목요일 거리 풍경, 사람의 마음이 숨겨져 있는 골목길,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는 13살의 노비스 소년, 소낙비를 피하는 동안 담배와 음악을 나눴던 낯선 여행자, 밤에만 열리는 야시장 등 저자의 열린 가슴으로 들어온 사람과 풍경엔 사람을 향한 따스함이 베어있다. 또한 저자의 마음을 가늠케 하는 섬세한 글 속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온화한 미소가 금방이라도 눈앞에 나타날 것 같다. 그 모든 것은 담고 있는 사진 한 장 한 장 또한 여행자의 로망 루앙 프라방 그 차체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 편집의 구성이 낯설고 글자 크기가 작아 저자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나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사진이 있어 느낌을 온전히 대신 전해주고 있어서 좋다.

바쁜 일상에서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얼마 전부터 낯선 단어가 등장했다. [슬로시티]라는 말이다.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몇 몇 시장들이 모여 위협받는 "달콤한 인생의 미래(la dolce vita)"를 염려하여 느리게 먹기(slow food) + 느리게 살기운동(slow movement) 슬로시티운동을 출범시켰다고 한다. 마을을 등에 지고 가는 느림의 대명사 작은 달팽이를 상징으로 하는 슬로시티 운동의 목적은 인간사회의 진정한 발전과 오래갈 미래(ancient future)를 위한 두 가지 중요 요소인 자연(nature)과 전통문화(culture)를 잘 보호하여 진짜 사람이 사는 따뜻한 사회,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루앙 프라방에서 누리는 권리가 슬로시티 이곳에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사는 도시 인근에 이 슬로시티 지정을 받아 지키며 또한 변모해 가는 곳이 있다.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애정을 가지고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가 산책과 낮잠과 위로를 누리기 위해 선택한 곳이 [루앙 푸라방]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로선 루앙 프라방은 단지 이상향에 불과하다.
보고 듣는 관광이 주를 이루는 여행에 느림과 쉼의 권리를 찾아가는 길이 굳이 그곳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이 아닐지라도 나만의 루앙 프라방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산책과 낮잠과 위로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지 않을까 싶다.

시간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는 나만의 루앙 프라방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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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 지나고 변화가 생겼다.

콩하나에 줄기 하나 뿐인 줄 알았는데

새 줄기가 나오더니

그 줄기마져 자리를

한 쪽 지지대를 감고 올라간다.

  

두개의 줄기 말고는

새로운 줄기가 나오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각 줄기가 더 커서 다시 자리를 잡으면

또 다른 줄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식물의 기본 성향이 종족을 번식하여

자손을 많이 퍼트리는게 목적이라면

더 활발한 성장활동을 

보여주리라 믿어진다.

  

동시에 양쪽 지지대를 감아 올라가는 모양이

그럴 듯 하게 보이는 것이

제법 성장한 표시가 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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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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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살아가다 보면 낯설음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 느낌에 대한 매력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살아온 일상에서 벗어나 떠나는 사람 각자 가슴에 담긴 사연으로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들 모두 어쩜 내면의 자신과 독대를 하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그 여행길이 혼자라면 더 자신을 돌아 볼 기회가 많을 것이다.
특히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겐 혼자 사색하는 시간과 공간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삶의 전환기가 다를 것이다. 이제 사회로의 발길을 내 딛는 희망으로 가득 찬 청년, 살아온 날에 대해 정리가 필요한 사람,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등등 모두가 자신의 처한 조건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마음의 안정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은 17년째 직업 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자신이 살아온 날에 대한 회고와 남동생을 잃은 슬픔에 견디기 힘들어하는 자신과의 내면적 대화를 시도하는 혼자 걷는 여행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카미노라 불리는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여 노란화살표를 따라 산티아고까지 순례자들이 걷던 800킬로미터의 길을 34일간 걸으면서 만난 자신과의 이야기면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순을 앞두고도 산 것 같지가 않다면서 모든 걸 청산하고 카미노에 온 신디, 스스로를 좋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던 서른 살의 시영, 혼자가 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는 마흔다섯 살의 마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싶다던 서른세 살의 애런, 자기 안에서 믿음을 발견하고 싶어 했던 예순다섯 살의 조지] 본문 256p





혼자 걷는 여행길은 언제나 혼자가 아니다.
카미노를 걸어가며 저자는 늘 자신과 대면한다. 그리고 그 대면에 솔직하다. 낯선 길을 걸어가며 느끼는 감정이든 동생에 대한 마음이든 솔직함을 드러내며 자신과의 독대에 용감하다. 그렇기에 혼자 걷는 길에 만나는 또 다른 자신들과의 교류 역시 진솔함이 묻어난다.
그렇기에 저자는 20~30킬로미터 씩 걷는 길의 힘든 여정에서 느끼는 워커스 하이, 만나는 모든 사람, 아름다운 풍경, 낯선 언어로 통하는 충분한 느낌의 보너스도 알게 된다. 그러기에 혼자인 여행길에 늘 누군가와 함께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역시 혼자이면서 함께하는 여행길 그것과 똑 같다.

낯선 사람들의 친절로 살아간다는 여행길에서 즉각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여행길에 만난 어떤 사람이 이야기 했듯이 여행이 끝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느 날 문득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혼자 걷는 길고 긴 여행길에서 자신의 내면을 대면하고 깨달은 무엇인가는 살아갈 날에 대한 든든한 밑 걸음이길 바래본다.

34일 800킬로미터라는 길을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길이다. 다만,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는 길이기에 쉬운 길일수도 있다. 나의 남은 인생의 길에도 길을 안내하는 노란 화살표가 있기를 소망해 본다.

산티에고로 가는 여정은 오늘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여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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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수 선생님 
  
  
 
문화학교 모집 공고문을 보고 무작정 찾아가
대금을 배울 수 있냐는 어설픈 물음에
수줍은 미소로 반겨주셨던 선생님이다. 

쭈삣거리며 찾아갔던 빛고을국악전수관에서
뜻밖의 미소를 발견한 순간이다.
아마도...알지 못하는 대금에 대해
순수하게 발결음을 옮길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배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선생님의 그 수줍은 미소가
큰 역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빛고을국악전수관 장용수 학예연구사
그가 내 대금 선생님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예술가’이지만, ‘교육자’로서의 역할에서
더 많은 기쁨을 얻는다고 하신다.
선생님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또 너와 나를 연결하는 지점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보살핌으로‘전통’이 이어져 나가고 꽃피우기를 갈망하신다.
 
대금공부의 길에 들어선지
이제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맨 첫걸음을 내딛게 해 주신 분이라
늘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 진다.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는 분이고
애쓰지 않아도 선한 모습이 사람 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신다.
초보자들을 가르치는 어려움이 어찌 한두가지일까 마는
나이, 성별, 잘하고 못하고 구분없이 어느누구 하나 마다하지 않고
늘 겸손하고 최선을 다해 대해주시는 모습에서
이미 대금에서 뿐만 아니라 삶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한 소식 하신 분들의 모습이 저러지 않을까 싶다.
 
장용수 선생님의 자세한 이력은 잘 모른다.
단지 원장현류를 하시고
조창훈 선생님에게 배우셨다는 것 말고는 없다.



장용수 선생님의 스승님이라는 조창훈 선생님이다.
미소가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모르나
대금이 내 손에 들려있는 날 까지는
늘 장용수 선생민의 미소와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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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의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광주와 비교적 가까운 남원,
그리고 서울만큼 마음의 거리가 먼...진도,
이 두 곳에 있지만
공연시간엔 가보지도 못했다.

국악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음악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참 좋다.

올 여름 목표가 대금 산조 [중중머리]를
다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이룰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광주에 있는 공연이나마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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