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어도 좋아
김진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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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무엇에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 도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길에 당당하게 나서기 보다는 늘 아쉬운 마음만을 간직한 채 망설이다가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누군가를 그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도 하던 일상을 접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여행이라면 얼마나 기분 좋은 변화일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이기에 더욱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마음 여행자]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 멋진 일을 하기에 모든 것이 다 좋기만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도전하고 성취한 사람만이 느끼는 여유일 것이다.

낫선 곳에서 낫선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걸어가다 만나는 모든 풍경과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까지 가슴에 담아 둘 수 있다면 지친 여행자의 발걸음일지라도 얼굴엔 늘 미소가 머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람이 되어도 좋아]의 저자는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이다.

성균관대 공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일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인생의 쉼표를 찍었다. 특별한 서른을 위해 ‘세상끝’ 남극점으로 훌쩍 떠나 주로 두 발로 걷는 여행을 하며 길 위의 풍경과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들여놓아 소통하는 여행자로 변신했다.
남극 칠레 아르헨티나 네팔 파키스탄 인도 스페인 중국 그리스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일본 등 낮선 땅을 가장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는 사람이다.

[바람이 되어도 좋아]는 저자가 발끝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1부 [남극 내 생애 가장 혹독한 휴가]
2부 [인도 인더스 히말라야 나를 닮은 인연에게]
3부 [파키스탄 K2 세상 지붕 위에서 슬픔을 내려놓다]
4부 [네팔 안나푸르나 사랑, 그 은밀한 비밀]
5부 [칠레 아르헨티나 세상 끝 나의 집]
6부 [스페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 나를 만나러 떠나다]

[바람이 되어도 좋아]는 여행에서 지친 몸으로 돌아와 편안하게 몸을 누이고도 아직 함께 오지 못한
마음을 기다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넉넉함을 보여주고 있다.
별보다 많은 길을 걸어 세상 끝에 설 수 있는 여행자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는 생동감 넘치는 글의 맛도 좋고 미소를 머물게 하는 사진까지 있어 자연스럽게 저자가 느끼는 감정에 이입될 수 있게 한다.
걷는 동안 보고, 느끼고, 담았던 풍경과 그 풍경에 하나 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이방인이 아니라 늘 함께하는 하나 됨을 느끼는 여행이면 몸은 한곳에 묶여 있지만 마음으론 늘 여행길에 나서고 싶은 많은 사람들의 오랜 소망이 아닐런지...
가지 못할 곳들을 동경하며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버는 족족 비행기를 타고
그저 짧은 휴가로 방랑벽을 잠재워야만 했던 이십대의 마지막이자 서른의 문턱에서 일상의 쉼표를 찍고 떠난 작가의 용기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여행의 끝에서 별보다 빛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저자는 걷는 도중 지치고 힘들어 하며 흘렸던 땀방울들이 모이고 모여 그 빛을 발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 빛을 다시 걸어갈 길을 밝혀 줄 희망의 불빛일 것이다.

인생에서 도전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살아가며 꼭 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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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화가들 : 주요 화가와 그룹, 걸작선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4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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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그 화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는 안타까움이 있다. 창작활동이 작가 혼자만의 고행으로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담긴 자아의식 대한 깊은 성찰과 지향하는 삶의 목표를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 그 고단한 작업과정에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까지 다 이해한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 긴 성찰의 과정과 그보다 더 긴 창작 활동을 지켜봐 온 사람으로 누군가 마음 털어 놓고 그 작업에 대한 마음을 공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순진한 마음이 든다.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벗들이 있었다. 스승이라고 해도 좋을 사람도 있어 작업과정에 대한 공유으로부터 힘을 얻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하고 때론 갈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삼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가들과 함께 했던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 가까운 우리역사인 조선시대의 도화서 화원들 사이에도 있었고 도화서와는 거리가 멀었던 화원들도 벗과 스승 그들과 마음의 소통을 하며 자신의 발전을 도모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화가들 사이에 그런 마음의 교류를 나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현실의 벽과 내부의 갈등을 비롯하여 화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걸 내놓고 함께 헤쳐 나가는 화가들보다는 혼자만의 싸움으로 여기며 그 긴 고독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혹 이런 풍조가 예술품에 대한 거리감을 형성하고 있는 중요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예술작품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하고 그런 기회를 통해 작가나 관람객이 공감하는 소통하는 기회가 늘어감에 따라 창작활동의 주체인 작가들도 보다 가까이 관람객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현실 속에 예술가들의 작품을 쉽게 접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ART BOOK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마로니에북스의 노력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은 표현주의 화가들에 대한 작품과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표현주의는 20세기 초 세계대전이라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만들어 졌다. 1차 세계대전과 히틀러의 집권으로 강압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많은 예술가들을 은둔하게 만들었고, 나치주의는 표현주의 화가들을 퇴폐적 예술가로 낙인찍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들은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창작 활동을 펼쳐나갔다. 표현주의 미술사조는 화가 개인의 자아를 굉장히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감정표출에 대한 미술이라고 한다.

[표현주의 화가들] 이 책의 구성은 독일에서 시작된 다리파, 청기사운동,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표현주의, 새로운 대상성 등 시대별로 구분하며 각 분야와 관련이 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에밀 놀데,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구스타프 클림트, 실레, 그로스, 크리스티안 샤드, 에른스트 바를라흐] 등 20여 명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 300여 점을 통해 자세하게 보연준다. 다양한 예술작품에서도 보여지 듯 표현주의 사조가 미술영역 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음악, 영화, 건축분야 등 많은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낫설다. 그 낫선 예술가들을 작품과 삶을 통해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모든 창작 활동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사조가 시대의 방영이라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 또한 동시대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답과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을 제시하는 것도 예술가들이 담당해야 하는 몫이라고 한다면 억지일까? 
[표현주의 화가들]은 예술가 개인의 경험이나 삶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을 통해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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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변명
신명호 지음 / 김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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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그들도 인간이였다.
동북아 3국 즉 중국, 한국,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왕조국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 국가의 왕조 중 한국의 왕조만큼 오랜 기간을 이어온 왕조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 특징은 전 세계사를 통틀어서도 마찬가지다. 천년의 신라역사, 고려 9백여 년, 조선왕조 5백년 등 실로 막강한 왕조의 나라였다. 하지만 이 세 나라의 왕조는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가 왕조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라고도 본다.

중국의 왕조는 삼국 중 가장 절대적 권력의 왕이였다. 천자(天子)라고 해서 그 권력은 백성과 신하 위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였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반역을 키워 온 온상이기도 해 긴 역사의 왕조는 존재하지도 못햇다. 일본의 경우는 중국과는 반대로 왕권(王權)보다 신권(臣權)이 우위에 있어서 왕은 이름 뿐 이여서 신권에 의해 언제든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의 왕조들은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이 줄다리기 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명목상으로는 백성과 신하위에 엄밀하게 왕권(王權)이 존재했지만 조화로운 권력의 분배를 통해 서로의 권력을 유지 해 온 것이다. 

때론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권력 불균형이 생겨 왕권(王權)이 무너지는 반역이 성공하기도 했고 권력의 한 축이였던 신하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두 권력의 조화가 5백년에서 천년에 가까운 왕조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조화는 결국 서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면 그 속에 백성들의 안위는 그야말로 피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왕의 고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라기 보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사이의 줄다리기를 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왕이라면 어떤 마음이였을까?
이 책 [왕을 위한 변명]은 바로 그런 입장의 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왕이라는 권력의 상징으로써 그 권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왕들의 인간적인 고뇌로 살펴본 시각이라 신선함이 있다.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10명, 태종, 세종, 세조, 연산군, 중종,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고종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조선왕조 500년간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왕들이었다. 격동기의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왕들이기에 그 인간적 고뇌가 얼마나 컷을런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기록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로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태종 / 형제인가 경쟁자인가, 세종 / 불교를 향한 염원에 담긴 뜻, 세조 / 한 세상 내 마음대로 원을 풀리라, 연산군 / 극도의 공포심이 빚어낸 이중성, 중종 / 저주를 혹신한 극단의 심리, 광해군 / 무엇이 천륜마저 저버리게 했을까, 인조 / 이복형 경종의 죽음 앞에서, 영조 / 만들어진 천재성, 정조 / 외롭고 고단한 황제, 고종

태종은 태상왕 이성계와 갈등을 겪으며 끊임없이 아버지의 애정과 신뢰를 얻고자 했다. 천운을 갖고 태어났다는 세종은 왕좌에 올랐으나 형제들에게는 경쟁자였다. 세조의 불교를 향한 염원은 원인 모를 병이 원인이었고,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빙의로 무병을 앓았다. 신하들을 이용해 권력의 중심에 섰던 중종은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숨겼던 본심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냈다. 광해군은 자기 확신과 포용력 그리로 용인술이 부족한 왕이었다. 존명사대의 틈에서 실리를 찾으려 했던 인조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일생이었다. ‘천재 임금’으로 성장한 정조의 뒤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태교와 최고의 교육환경이 있었다. 고종은 을미사변 이전까지는 항상 누군가에 의지해 살았다.

[왕을 위한 변명]을 통해 살펴 볼 때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한 인물 특히 왕에 대한 고찰은 많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심정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부분을 상상하고 억측하고, '인간 통찰'이라는 미명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역사의 주체는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넘어선 특별한 인간 이상의 왕은 아니였다.
절대권력 그 속에 담긴 무시무시한 비인간적 요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외교, 신하, 부모, 형제들과의 사이에서 고뇌하며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 왕들. 그런 왕들을 오히려 다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되어 따스한 미소가 머문다.
역사는 결국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이며 그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마련하는 기틀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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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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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슴속에 온 우주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넓은 마음이 때론 구름도 끼고 비도오고 바람도 불며 온갖 풍파 겪으며 조금씩 작아지는지도 모르겠다. 한줌 바람에도 흔들리며 힘들어 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순간 이나마 평안을 유지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옛 성인들의 삶에서 그 묘책을 찾아보려 하지만 늘 아쉬움 속에 더디 가는 발걸음 만 붙잡고 있을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내면을 닦는 구도의 길에 스승과 도반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나에게 내 삶을 온통 다 드러내 놓고 함께할 스승과 도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직 깜깜하기만 하다.

언젠가 도덕경을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이내 책장에 도로 둔적이 있다. 겁이 나서였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글자라도 다 온전히 읽을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두려운 생각 말이다. 아쉬움이 컷 던 탓 인지 다시 찾은 노자이야기다.

이 책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는 도덕경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쉽게 접 할 수 있도록 대담형식을 통해 해설한 책이다. 장일순 선생과 이 아무개(이현주) 목사와의 대화라 처음 접할 때의 두려움은 조금 나아진 듯 하여 다행이다.

우선 두 분은 어떤 사람인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1928년 원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에서 수학하던 중 6.25 동란으로 학업을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선생은 40여년간 원주를 떠나지 않고 지역 사회에 뿌리내린 사회 운동가로 살아오셨다. 원주대성학원을 설립하고, 밝음신용협동조합의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한살림운동을 주창하여 많은 젊은이에게 '정신적 선배' '사상적 큰 스승'으로 존경받아 왔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 천주교 원주교구의 선구적 저항, 가톨릭 농민회의 민중 운동, 김지하 시인의 투쟁, 1980년대에 한살림운동 등이 원주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모두 선생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 1960년대에 선생은 답답하고 우울한 날들을 서화로 달래기도 했다. 선생의 서화는 주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나누어 받거나 사회 단체의 기금 마련전에 출품되었으며, 이따금 작품 발표전도 했는데,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개인전을 원주, 춘천, 서울에서 개최했다. 선생은 1994년 5월 22일 6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이 아무개 목사는 1944년 충주 출생,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본명은 이현주이고 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른다. '이 아무개'는 필명이다. 19살에 동화작가 이원수의 추천으로 등단, 마흔 두 살까지 동화를 썼다. 목사이자 동화작가, 번역 문학가이기도 한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는 한편, 대학과 교회에서 강의도 맡고 있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노자라는 사람과 그 사람의 도덕경은 무엇일까?
노자는 기원전 6세기 무렵의 중국의 주나라 때 사람으로 역사가이며 또한 정치가이며 나라의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은 이해를 가진 인물이었다. 도덕경은 그 노자라는 사람이 남긴 도(道)에 관한 이야기와 덕(德)에 관한 이야기를 합하여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부른다.

도덕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도는 우주의 '궁극실재(窮極實在), 혹은 '근본원리(根本原理)요, '덕'이란 그 도가 구체적인 인간이나 사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될 때 얻어지는 '힘'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한 [오강남]님의 설명이 그나마 이해가 가는 설명이다.

두 분은 이력으로만 본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이만 보이는데 이토록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대화의 깊이를 더해주는 두 분의 관심사도 참으로 다향하다. 노자에서 시작하여 기독교, 불가이야기, 유교, 동학에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동서양을 아우른 사상적 조류에 정통하다. 초보 입장에서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장일순 선생처럼 한문에도 익숙하지도 않고 또한 이 아무개 목사처럼 성경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인간이 가지는 내면의 가르침을 얻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자기만족으로 어렵게 한 장 한 장 읽어간다.

두 분은 스승과 제자 사이라지만 사제지간 대담에서 흔하게 보이는 스승의 일방적으로 설교형식은 없다. 구도의 길에 함께 나선 도반으로 보여 부럽기만 하다. 이 아무개 목사는 서문에서 "우리는 진지하고 따뜻하고 간곡한 '말씀'을 서로 나누었다. 그러면서 자리를 함께 한 우리 모두가 '한 몸'이라는 사실에 문득 소름이 돋기도 했다. 아울러 현실의 두터운 어둠을 찢고 동터오는 새벽 빛 줄기를 얼핏 훔쳐볼 수도 있었다"라고 했다. 이것이 진정 두 분이 노자이야기를 이끌어 온 힘이 아니였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막상 가슴에 남아 있는 건 뭘까?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없다. 정성들여 읽었건만 이 모양이니 아직 공부를 덜된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훗날 다시 읽으며 한 줄이라도 그 의미를 가슴에 세길 수 있는 기회를 줄 거라 믿기에 마지막 장까지 읽어가는 걸 목표로 삼아 이제 그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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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은 말한다 -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구본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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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슴에 꽂히는 일이 있었나?
살면서 가슴에 꽂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에 대한 설레임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여유로울까 싶다. 나에게 그런 일은 무엇이 있나? 다양하고 많은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접해 본 것 같다. 산과 들판을 헤매며 찾았던 식물공부가 그랬고 어느날 문득 내게 다가온 불교가 그랬고 전국을 돌며 역사 흔적을 찾아 다녔던 문화유적답사가 그랬다. 돌아보면 관심사는 내가 처한 조건에 따라 변해왔지만 상황이 변해도 유지되어 온 관심사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만큼 지속적이고 깊은 관심은 아니였나 보다.

필적학(筆跡學)이란 생소한 말이다. 필적학이란 사람이 쓴 글씨를 가지고 그 성격이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 필적 감정을 포함하여 필적과 성격의 관계, 필적에 의한 심리 상태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이런 학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지만 사전적인 의미보다는 심정적으로 더 가까운 느낌이 드는 것은 평소 글씨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살아간다. [필적은 말한다]에서처럼 글씨도 자신을 나타내는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일 것이다.
간찰의 옛날 형태인 죽간을 모아 복원한 전시회를 본적이 있다. 또한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미술관에는 옛 사람들의 간찰들을 모아 상설 전시를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살펴보았던 글씨에서 그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글씨와 지극히 사사로운 내용의 편지글 속에 담긴 사람들의 따스함이 베어나 흥미 있게 보았다. 저자가 보았던 것을 어렴풋이 나 역시 보았던 것 같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학식이나 정신적 수준을 갖췄는지, 성격이 어떤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알 수 있다. 학식이 높은 사람은 글씨가 완숙하고, 선 굵은 대인의 면모를 가진 사람은 글씨가 크고 속도도 빠르고 시원시원하다. 곧은 품성을 가진 사람은 글씨에 힘이 있고 최소한 정제된 균형미가 있다. 자결한 사람, 관료로 평생을 바친 사람, 의병장으로 기개를 떨쳤던 사람, 어진 선비, 교활한 친일파 등의 특징이 글씨에 유형적으로 드러나고 구체적인 성격도 밀도 있게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p.56)

이렇게 글씨를 통해 알게 되는 한 사람에 관한 정보가 얼마나 정확하게 그 사람을 대변하는지 나에겐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독특한 저자의 구본진에게는 검사라는 직업과 함께 글씨 컬렉터라는 이력이 보여주는 것 만큼 이런 관점에서 글씨를 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필적은 말한다]는 강력범죄를 주로 다룬 검사가 글씨에 매료되어 1천여 점의 친필 글씨(간찰, 서예 작품, 문서, 책, 사료 등)를 모아 분류했던 내용을 [글씨가 내게 말을 걸다, 필적은 말한다,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자결로 항거한 항일지사의 글씨, 친일파와 일본 침략자들의 글씨, 인간을 닮은 글씨, 글씨에 담긴 인생, 글씨가 바로잡아준 역사의 진실, 글씨에도 명품이 있다, 진흙 속에서 진주 찾기, 글씨 수집에서 나는 인생을 배웠다] 등 열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항일운동가 4백여 명, 친일파 1백5십여 명의 친필 유작들을 살피면서 그들 간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필적학적 입장에서 살펴 본 김구의 졸박성과 이완용의 교묘함, 여운형의 지조와 여운홍의 환절, 이승만의 절제와 박영효의 일탈, 손병희의 호방함과 최린의 공교함, 이준의 웅혼함과 조중응의 경박함 등은 개인적 흥미를 넘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게 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글씨를 통해 한 사람에 대해 뭐든 알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과장이 있을 지라도 일정정도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또한 이 책은 글씨뿐만 아니라 옛문헌의 수집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라고 했다.
백지를 한 장 준비하고 정성껏 글씨를 써 본다. 이 책을 읽으며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이 내 글씨에 내면에 흐르는 기상이 어떻게 담겨있을까 하는 생각이였다.
붓글씨를 배워 좋은 글씨를 써야지 하는 욕심은 뒤로 미루더라도 나 자신을 나타내는 그 무엇 하나에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임을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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