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간절함이 극에 달한 순간 뚝! 모가지를 떨구고도 못다한 마음이 땅에서 다시 꽃으로 피어난다. 푸르디 푸른 잎 사이로 수줍은듯 고개를 내밀지만 붉은 속내를 숨기지도 않는다.

어찌 동백만 꽃이기야 하겠는냐마는 동백을 빼놓고 꽃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하여 꽁꽁 언 손 호호불며 그 서늘하기 그지없는 동백나무 품으로 파고 든다.

겨울에 꽃이 핀다 하여 동백冬柏이란 이름이 붙었다. 춥디추운 겨울날 안으로만 움츠려드는 몸따라 마음도 얼어붙을 것을 염려해 동백은 붉게 피는 것이 아닐까.

서늘한 동백나무의 그늘을 서성이는 것은 그 누가 알든 모르든 동백의 그 붉음에 기대어 함께 붉어지고 싶은 까닭이다.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꽃말을 가졌다.

한해를 동백의 마음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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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겹으로 쌓여야 깊어진다. 그 쌓여서 두터워지는 사이를 건너지 못하는 게 보통이라서 누군가는 아프고 외롭다.

이쯤에서라도 멈추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갈망은 끝이 없는지라 제 발로 수렁으로 들어가면서도 스스로는 그것을 모른다.

당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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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3-15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예쁘다!
 

月下情人 월하정인

뭐지? 이 묘한 분위기는ᆢ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장면을 분명히 봤는데ᆢ? 가물거리기만 했다. 잠시 후 머리를 스치듯 떠오른 생각이ᆢ

아, 맞다 "월하정인"

月沈沈夜三更 월심심야삼겨

兩人心事兩人知 양인심사양인지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에 깃든 일은 두 사람 만이 알겠지

화사한 색감, 절묘한 장면 포착에 사람들의 은근한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기가막힌 재주를 가진 이가 조선시대 화원 혜원 신윤복이다. '혜원전신첩'에 담긴 그의 그림 모두는 은근한 미소를 동반한다.

숲에서 본 변산바람꽃 한쌍이 신윤복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월하정인'의 그 분위기를 빼다박은 듯 닮았다. 지켜보는 이에게도 스미듯 번지는 은근한 마음이다. 닮은듯 다른듯 하지만 무르익은 은근함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결국 '월하정인'을 그리던 신윤복의 그 마음 아닐런지.

다정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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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看半開 화간반개

酒飮微醉 주음미취

此中大有佳趣 차중대유가취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약간 취할 정도로 마셔야

그 가운데 아름다운 멋이 있는 것이다.

*채근담에 나오는 이야기라 했다.

숲에 들어 꽃과 눈맞춤 하는 동안 굳이 이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활짝 핀 꽃은 분명 절정미가 있어 모두가 주목하지만 이내 눈을 돌려 다른 모습을 찾는다. 활짝 핀 그 순간이 절정인양 하지만 이제는 지는 일만 남았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리라.

활짝 피어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반쯤 피어 속내가 보일듯 말듯 궁금증을 더하는 순간, 이 얼마나 유혹적인가.

봄나들이는 변산바람꽃만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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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을 헤매던 지난날을 회상하니

고비마다 하이얀 바람꽃이 피었구나"

*김덕종의 시 '변산바람꽃'의 일부다. 올 봄, 더디오는 봄을 맞으려고 늦게 깨어나는 숲에 들었다. 변산바람꽃 핀다는 소식에 그곳에도 피었겠지 싶어 찾아가 눈맞춤 했다.

변산바람꽃은 무엇보다 앞서 봄을 부르더니 서둘러 떠난다. 혹시라도 그 화려함 속에 감춘 속내가 드러나면 어떨까 싶어 급한 발걸음을 내딛다가도 잠시 멈춰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봄도 잊지 않는다.

내가 꽃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는 이유는 뭘까. 누구는 나이든 탓이라며 쉬운 핑개를 대기도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안다. 건들부는 바람결에 향기라도 맡으며 걷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뜻밖의 눈맞춤이 길어진다. 발걸음도 멈추고 허리도 굽히고 살피다 급기야는 무릎을 꿇고서 숨을 멈추며 눈맞춤을 한다.

꽃에 투영된 내 지난 시간을 만나는 찰나刹那다. 그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은 단 한번도 저장되는 일이 없다. 다시 만나고 싶은 그 찰나를 위해 걷고 또 걸어 꽃을 찾는다.

깨어나 보니 눈 앞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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