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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평점 :
[조선왕조실록]은 총 2,077책으로 이루어진 기록물이다. 한 책의 두께가 1.7cm인데, 이것을 차례로 쫙 쌓아 올리면 무려 아파트 12층 높이가 되는 양이다. 전부 다 읽으려면 하루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란 긴 시간이 흐른다. [조선왕조실록]은 만드는 과정에서 굉장히 정확성이 요구된다. 그만큼 사료적 가치가 높다. 1997년에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생존했을 때 만들어지지 않고, 승하하고 난 뒤에 편찬이 시작된다. 조선시대 때 역사기록을 담당하는 관청을 춘추관이라고 부른다.
임금이 승하하면 춘추관에서는 실록 편찬을 위한 임시 관청인 '실록청'을 만들고, 이곳에서 사초, [승정원일기], [시정기], 상소문, 개인 문집 등과 같은 여러 자료를 모았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 취급한 문서와 왕명의 전달 등을 정리해서 기록한 것이다.
사초는 사관이 임금이 말할 때, 기침하고 화낼 때, 심지어 화내고 눈물 흘리는 것까지 옆에서 속기한 걸 다시 정리한 기록이다. 또 [시정기]는 정부 각 기관에서 보고한 문서 등을 정리한 것이다. 이외에도 일반 선비부터 재상까지 왕에게 간언했던 상소문도 포함된다.
그런 다음 실록청에서는 역대 선왕들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모아 함께 의논한다. 그렇게 뺄 것은 빼고, 더 넣을 건 넣어서 종합 편집해 만든 것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라고 보면 된다.
이처럼 엄격히 만들어졌지만, 때때로 그 공정성을 위협받기도 한다. 보통 왕조국가의 특징이 아버지, 아들, 손자 순으로 왕위를 이어가니, 혹여 '우리 아버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업적을 폄하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과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들은 실록청에 실록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임금이 선왕의 기록을 본다는 건 실록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의미랑 같다. 따라서 사관들은 절대로 왕이 선왕의 실록을 볼 수 없게 했다.
즉, [조선왕조실록]은 임금조차 볼 수 없었던, 말 그대로 국가기밀문서였던 것이다. 실제로 몇몇 왕들은 기를 쓰고 이를 보고자 했지만, 사관과 신하들이 목숨 걸고 막았다고 한다.
어떤 것은 실록이고, 어떤 것은 일기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 차이는 무엇일까? 조선왕조에서 쫓겨난 임금에 대해서는 '실록' 대신, '일기'라고 이름을 붙인다. 일기의 주인공은 쫓겨난 왕이기 때문에 왕자로 강등되어 훗날 '군'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쫓겨난 왕은 몇 명일까? 일반적으로 두 명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총 세 명이다.
일단, 연산군이 있고, 다음으로 광해군이 있다. 마지막으로 잘들 모르시는데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아주 어린 꼬마, 단종이 있다. 단종은 폐위되면서 노산군이라고 불렸다. 이렇게 노산군, 연산군, 그리고 광해군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쫓겨난 왕의 경우는 '실록'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일기'를 붙인다. [노산군일기],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산군의 경우는 진짜 억울하다. 그래서 조선후기, 숙종 때 '단종'으로 추존되면서 [단종실록]으로 이름이 바뀐다.
[조선왕조실록]은 편년체로 전해지고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편년체는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는 역사기술을 말한다. 편년체로 쓰인 역사서들은 [조선왕조실록], [고려사절요], [동국통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