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선교합니다 - 스마트 선교, 복음을 담을 새 부대가 되다
FMnC 선교회 지음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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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고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비대면 상황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회심한 사람들을 비대면으로 양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가나안성도들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등이다. 이런 우리의 고백에 대해서 답을 얼마 전 두란노에서 출간된 <온라인으로 선교합니다>를 통해서 도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이 책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이 장은 선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해당된 내용을 설명해 주고 있다. 먼저 이 장을 맡은 저자는 이 장을 통해서 첫 번째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선교를 참여할 수 있고 서로 동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존에는 해안선 선교, 내지 선교, 미전도 종족 선교 순으로 사역의 대상을 정의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IT의 발달로 네 번째 선교 시대 즉 스마트 선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존의 IT 전문인 선교는 미전도 종족 선교라는 세 번째 선교 시대의 전통적 선교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타문화권 선교 현지에 선교사가 가서 IT를 중심으로 현지에서 IT 교육센터를 운영하거나 IT 비즈니스를 하거나 IT 교수로 일하면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사역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볼 점은 근래 새롭게 정의된 스마트 선교의 개념이다.


저자는 이제 우리가 현지에 가지 않고 본국에 있으면서도 타문화권 선교 사역을 할 수 있게 된 점을 언급한다. 물론 타문화권 현지 사역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까 타문화권 선교 사역을 하는데 있어 큰 제약이 따르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선교 현지 거주 선교사가 스마트 선교를 활용하거나 현지 거주 선교사와 본국 거주 선교사가 협력하여 스마트 선교로 동역한다면 이전보다 더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전까지 우리가 행하였던 선교는 사실 선교사들의 사역이었다. 단지 우리는 그들과 동역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는 것과 직접 그 곳에 가서 동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에게 선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주고 있다. 즉 누구든 언제나 어디서나 선교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자로 부름 받았다. 그 동안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역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둘째 온라인 선교 솔루션이다.

이 장은 SNS 사역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SNS 사역의 실제 사례들을 통해서 앞으로 다가올 선교에 대해서 우리가 SNS사역을 잘 준비해야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IT를 통해서 사역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시도들이 IT기술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감사하게도 그 시도들에 대한 결과물을 조금씩 얻고 있다. 앞으로 백신의 발달로 팬데믹이 종료될지라도 온라인 사역은 대면사역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올라인 사역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IT기술은 복음에 목마른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저자 중 한 분은 우리에게 블로그의 선교활용에 대한 노하우를 5가지로 제시해 주고 있다. 또 다른 저자는 지금까지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에서 유튜브를 활용하여 위성TVSNS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단체와 협력하여 플랫품과 콘텐츠를 개발하여 성공한 이야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이제는 복음을 찾는 이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통로들을 통해서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다양한 인터넷 매체들이 복음을 원하는 자들을 위한 징검다리로 사용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다음세대는 자신의 고민거리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부모님이나 선생님 또는 친한 친구에게 질문하기보다는 네어비나 구글, 특히 유튜브를 검색하여 해답을 찾는다. 심지어 신앙적인 부분도 인터넷에서 찾는다. 구글 통계에 따르면 단어‘God‘을 검색하는 횟수가 매일 200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진리에 목마르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지금 인터넷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p.105).


개인적으로 이 장을 읽으며 느낀 점은 이 책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점과 함께 더 놀라운 점은 과학기술에 대해서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지혜와 도구를 통하여 변함없는 복음을 변하는 문화에 맞추어 전하고자 애쓰고 수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온/오프라인 연계 솔루션이다.

이 장에서 첫 번째 나눌 이야기는 비전트립 앱이다. 이전까지 우리는 여러 가지 공연과 활동들을 준비하여 타문화권에 선교를 다녀왔다. 그때 느꼈던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이 후 앱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제는 언어의 갭을 비전트립 앱을 통해서 직접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두 번째로 제시해주는 이야기는 스트래치 코딩 스쿨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상당히 생소한 이야기였다. 세 번째 제시해 주는 이야기는 컴퓨터 센터 구축 프로그램이다. 이 책은 3개 온오프라인 연계 솔루션에 대해서 소개해 주고 있다. 우리는 과연 좋은 자료들을 토대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하게 된다. 사실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 그 자체이다. 리가 IT를 통한 여러 가지 연구하고 시도한 것은 변하는 시대에 복음이 폭발력을 담기 위한 포장지에 해당되는 것이지 복음 자체가 폭발력이 없어서 IT의 능력을 도움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가지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 또는 우리의 시스템을 더 걱정하고 고민한다. 이런 우리들의 고민에 대해서 저자는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아주 시원하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복음은 그 자체로 능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수류탄을 던지는 사람이 잘 던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류탄 자체가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듯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잘 전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자체가 가진 영향력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p.150).  


넷째는 선교 공동체 통합 솔루션이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성도가 함께 모여 드리는 대면예배가 불가능한 상황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안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찬반논란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현시점에 가질 수 있는 기대는 온라인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IT기술을 통해서 땅 끝까지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 시대를 복음으로 살아가내고 정복하고 다스릴 하나님의 군사들을 기대한다(p.213). 이외에도 함께 성경읽기와 선교후원방법에 대해서 유익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 책을 덮으며 지금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이전에는 미쳐 생각하지 못하였던 방법들을 통하여 예배, 선교, 제자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다양한 시도들과 방법들을 통하여 성경적 매뉴얼들을 이루어 가야한다. 우리는 이 과정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 진리를 통하여 깨달은 사실들을 놓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지혜를 통하여 바른 신앙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라기는 이런 과정들을 통하여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흥황하길 간절히 소망한다(p.253).


마지막으로 선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극적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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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유가 있습니다 : 거룩을 키우시는 하나님의 훈련 - 사무엘상 3 김양재 목사의 큐티강해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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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눌 책은 김양재 목사의 <사무엘상3 다 이유가 있다>이다.

 

우리는 삶을 살다보면 우리가 이유할 수 없는 상황들을 직면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자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더욱 더 의지해야 된다. 오늘 우리는 저자의 책을 통해서 이 사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길 원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난의 연속적으로 일어날 때가 있다. 이 때 눈 앞이 깜깜해 진다. 저자는 시련과 고난의 삶을 살았던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안전과 부요함을 위하여 하나님께 왕을 요구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사울 왕을 세워주셨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괴롭힘과 미움받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이 기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무려 십 년간 동안 다윗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들을 넘겼다. 그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였다. 결국 다윗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함을 받게 되었다.

 

저자는 미로 같은 인생을 살았던 다윗에게 이와 같은 환경을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 본 저서를 저술하였다. 저자는 그 이유를 그 속에 거룩함을 키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라고 말하였다. 이 내용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이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이런 저런 환경을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오로지 구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구원은 못 보고, 하나님이 내 구원을 위해 묶어 준 역할들을 날마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다가 인생을 다 보냅니다. 너무 싫어서, 너무 좋아서 숨이 안 쉬어지는 메뚜기 증후군에 매여 있습니다. 만약 지금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는 사람을 품고 있다면 오늘 내려놓기를 바랍니다(p.80).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은 왜 그에게 비싼 수업료를 치러가며 훈련받게 하실까?”라고 의문점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다윗처럼 위기에 몰리지 않거나 긴급하고 갈급하지 않으면 온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사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이 우리의 인생에도 동일한 방법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다윗은 그의 이해를 넘는 과정들을 잘 감당함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불평과 불만을 내려 놓고 앞서 가신 신앙의 선배님들의 본을 따라 믿음의 후배들에게 본을 보여주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책의 제목과 같이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우리의 이해로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모든 인생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살아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 분의 인도하심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오늘도 내 삶의 이유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삶에 거센 풍랑 위에 서빙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ㅁ오늘도 그 분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그리 아니하실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 분을 찬양하며 의지하길 소망하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하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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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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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음으로 하나의 부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영향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겉으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모양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교회의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인다. 물론 하나가 되어 보겠다고 초교파 행사도 열고 공동 교리서도 발간하고 심지어 연합을 위한 기도회도 마련한다. 하지만 뿌리까지 들어가 근본 문제를 다루지 않으니 이 모든 방법이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신학이나 방식의 차이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여러 성경 구절을 놓고 끝없이 입씨름을 벌인다. 상대편이 우리의 의견 쪽으로 돌아서야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교회의 분열은 훨씬 더 깊은 문제에서 비롯했다. 서로 상충하는 욕심(4),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낳는 질투심과 이기적 야망(3),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미성숙한 믿음이 문제의 뿌리다. 신자임을 자처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적으니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을 수밖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계적이거나 아예 끊어져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사랑의 연합을 이루는 것은 그만큼 불가능하다. 사랑이 피상적이면 사소한 의견 차이 한 번으로도 서로 등을 돌리고 삿대질을 해 댈 수밖에 없다(p.34).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먼저 그 분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 주시고, 우리가 받은 사랑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매일 우리의 삶에 부어지는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레 넘쳐나게 된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삶의 자리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믿음의 동역자들을 향한 사랑이 고갈되어 있다면 스스로 내 안에 성령님께서 임재하고 계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올곧은 성도, 상황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성도, 이제 막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성도 등 크게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들 안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이기 위하여 서로 부단히 애써야 한다. 하지만 너무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안에 서로 연합하고자 애를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교회들의 연합이 불가능한 꿈으로 단정지었다. 그리곤 우리가 보이기에 가능해 보이는 목표들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즉 불신자들의 관심을 끌 다른 방법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불행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 또한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방법들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목회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의 역할은 교인들을 하나 됨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하나 됨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들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교회가 연합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성도들은 부담스럽지 않은 환경을 원한다. 설렁 그들이 그럴지라도 교회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을 추구해야 한다. 즉 그들이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저자의 주장대로 이 부분에 주의할 점이 있다. 하나 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당장 큰 규모의 성과를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좋은 의도로 그런 것이다. 그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기독교 전체가 부흥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삶이 뒷받침되지 않아 대중에게 전한 메시지가 그 힘을 상실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교회 안에 더 큰 연합이 나타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작은 데서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정돈하라(p.229).

우리는 하나 됨을 회복할 때까지 함께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연합을 하려면 숱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다. 하나 됨을 이루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하다. 이 선한 싸움을 원하는 분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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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독서 - 김형석 교수를 만든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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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눌 책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김형석 교수의 저서 백년의 독서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보가 넘친다. 그런데 그는 독서의 수준이 곧 국민의 수준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신문과 텔레비전 등은 살아가는데 상식을 제공할 수 있으나 내 영혼을 살찌게 하고 삶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역시 독서는 인간적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의심할 수 없다(p.8).

먼저 1장은 책을 통해서 꿈을 키우게 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굶주림, 피난 등으로 표현될 만큼 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의 인생에 비극은 일찍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 때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민족주의자들을 배출한 학교라는 이유로 폐교를 당했다. 당시 철없던 그는 자진해서 퇴학을 결정한다. 그리곤 시골집으로 가 1년 동안 매일 아침 등교 시간에 평양 시립도서관에 가서 독서로 공부를 대신하였다. 도서관에 많은 책들을 마음이 원한대로 읽었다. 주로 읽은 책은 철학과 관한 것들이었다.

 

당시 저자가 공감한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은 어떤 학문을 하든지 그 학문에 관한 개론과 역사는 알아야 하며 그것이 학문으로 가는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철학은 내용보다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p.39)

 

그는 1장을 마무리하면서 독서의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독서의 목적은 더 새로운 것을 알고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하며 자기 성장에 도움을 얻는 데 있다(p.58).

 

그런데 우리는 어린 나이에 해치는 독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서적 성장뿐만 아니라, 학문이나 예술적 가치를 상실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강과 성장에 해로운 독서에 빠져서는 안 된다.


2장과 3장은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읽었던 수많은 인물과 책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4장부터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현재 한국 국민의 독서 실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한국인들이 독서를 멀리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나무로 설명한다. 나무가 크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뿌리가 깊어야 하고 튼튼한 밑동과 줄기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학문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처럼 튼튼한 기초이다(p.229). 그는 학문적 성장에 필요한 체계적인 독서를 권장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많은 대학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탁월한 학자나 사상가를 배출해 내지 못했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지를 단적으로 보이는 예이다.

 

그런 우리에게 그는 도서를 선정하는데 필요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예를 들면 자연과학이나 이공 계열의 책들은 항상 새로운 학설과 이론이 개발되기 때문에 새로운 저서를 읽는 편이 좋다. 하지만 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보통 전통적인 책과 새로운 학설의 책을 반반씩 읽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과거의 학설과 사상을 알아야 현재의 이론이나 학문적 성과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에 선한 교훈 남긴 고전 읽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으면 좋을 책들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은 대부분 인류와 사회에 선한 교훈과 사상적 유산을 남긴 고전에 속하는 책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서의 깊이와 폭을 넓히기 위하여 오늘을 있게 한 과거를 먼저 읽으라고 말한다. 또한 정확한 개념이해에서 새로운 사상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하나같이 좋은 말씀이다. 독서인구가 늘어나는 사회를 향하여 나아가 위해서 가장 먼저 학교 공부의 부담으로 독서가 빈곤해지는 현실에 대해서 말한다. 시대적 흐름과 요청을 외면하거나 역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신적 뿌리가 없는 민족처럼 사고의 문제의식 없이 표피적인 과제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p.251).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어려운 문제를 지적한다. 지성의 가치와 학문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지도층 인사들이 정치·경제계를 지배하고, 사회는 온통 힘과 정신적 폭력에 편승해 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개념이나 지향점이 상식과 지성계를 짓밟아 버리는 경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p.252). 마지막으로 그는 한 가지를 더 말한다. 그 주제는 고전은 지성인의 정신적 양식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재를 정보화 사회라고 말한다. 더 빨리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자가 승리자가 되고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 한 가지 예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무의 잎사귀나 가지에만 의존하고 밑동과 뿌리를 키우지 못한다면 그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질문하다. 그가 제시해 준 답은 독서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고전을 사랑하는 지식인층과 지도층이 확대될 수 있다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근간이 될 것이다(p.255).

 

이제 그는 책을 독서하는 국민, 책을 가까이 하는 민족이라는 주제로 마무리한다. 가장 먼저 그는 앞서 말했던 내용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바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알려면 고전을 읽으라는 것이다. 법은 알지만 인간을 모르는 지도자보다는 인간을 이해하기 때문에 법적 기술이 정당하게 평가되는 법치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 뜻에서 고전적인 저작들을 찾아 읽는다는 것은 지성인과 지도자로서는 필수조건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p.260). 이어서 세 번째로 제시해 준 것이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는 건전한 독서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교육의 개혁을 외치며 종교가 제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교육을 바로잡는 방법의 하나도 건전한 독서를 수용하는 데 있으며, 종교적 신앙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길도 신앙의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기틀을 찾는데 있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독선적인 교리나 감정적인 자극을 일삼는 설교나 종교행사를 벗어나, 깊이와 내용이 있는 경전 연구와 신앙적 체계를 갖춘 넓은 의미의 학습과 독서가 필수적인 과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p.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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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지성적 회심 - 과학, 신앙, 의심의 길을 걷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홍병룡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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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저서 지성적 회심에 대해서 나누려고 한다. 처음 제가 그의 저서를 보게 된 책은 2003IVP출판사를 통해서 출간된 자존감이었다. 이 책은 십자가와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에 대한 내용이 담긴 훌륭한 저서였다. 이 후 그의 책을 사서 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의 이력과 저술들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분이다. 특히 우리가 이번 출간된 지성적 회심에 대해서 기대하는 점은 앞서 저자가 출간하였던 여러 책에서 애기되었던 그가 과학자에서 신학자가 된 배경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그의 저서는 복음을 통해서 한층 더 넓게 세상을 보게 된 자기의 신앙고백서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책의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과학을 사랑하는 불안전한 자유사상가이자 무신론자였던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 가는 여정을 다룬 책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p.8).

 

실제로 저자는 자신의 회심과정을 전기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과학을 시작으로 무신론, 마르크스주의, 플라톤 철학, C. S 루이스의 글을 접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모든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이제 그가 걸어온 삶의 과정 속에 드러나게 될 지성적 회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책의 구성을 보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2부는 그의 성장과정과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탐구와 갈등하는 과정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다. 3부는 신앙을 갖게 된 이후 갖고 있었던 고민들이 해결되는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1·2부 과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조금 힘들었다.

 

1장은 불안정하고 초조한 자유사상가라는 소제목을 중심으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을 상당히 좋아하였던 것 같다. 아마 그의 탁월함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같다. 그는 어린 나이에 천체망원경을 만들어 우주를 보았다. 이때 그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계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후 그는 세상을 보다 객관적이고 확실한 것에 대해서 알길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소디의 도서관에서 C. P. 스노우의 첫 소설을 통하여 화란정원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 개념의 의미는 혼란스러운 정글에 가져다준 질서와 구조를 통해서 정돈된 정원과 같이 보이게 만드는 이론이다. 이전까지 그는 과학 이론의 장점에 대해서 모호하고 흐릿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스노우의 저서를 통해서 더 정확하게 밝혀주었다(p28~9). 이 후 그는 더욱 종교에 대해서 구식 관념으로 여길 정도로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종교는 과학에 의하여 망상으로 드러난 과거의 해로운 유물로 여겼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가지게 된 종교에 대한 견해는 책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러셀의 성향철학사와 북아일랜드 사건은 통해서 그는 종교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무신론이야말로 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자연스레 도달하는 결론이라고 여겼다.

 

이후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심취하게 되었다. 이때 마르크스주의는 종교로부터 멀어진 그의 입장을 지적으로 정당화시켜 주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책을 보면서 그는 큰 그림의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곧 인정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전체에 대한 갈급함은 지속되었다. 이런 자신의 입장을 플라톤이 사용한 동굴의 비유속의 사람들을 예로 들어 절적하게 표현하였다.

 

2장은 뜻밖의 회심이다. 그의 회심은 옥스퍼드 대학을 입학하던 때에 일어나게 된다. 어느 날 채플 때 찰스 쿨슨의 설교를 통해서 그동안 그가 그토록 목말라했던 큰 그림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찰스 쿨슨이 했던 설교의 논점은 과학과 종교적 신앙은 모두 제 각자 독특한 접근법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이해하는데 필요한 통찰들을 제공하여 준다는 것이었다. 이 무렴 그는 친구의 권면을 통해서 C. S 루이스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나는 해가 떴다는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는다. 눈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가 찾아왔던 큰 그림을 향해 먼저 걸어간 동반자를 찾았다. 이 후 그는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며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 후 영국교회로부터 안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짧은 시간동안 교회사역을 한다. 그는 과학과 신학에 대한 탐구를 병행하면 할수록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과학에 대한 철학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게 된다. 특히 앞서 말씀드린 칼 포퍼의 과학철학 접하면서 그의 과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나는 칼 포퍼에게 시선을 돌려 그의 저술을 긍정적으로 면밀하게 읽었고, 특히 그의 에세이 '반증으로서의 과학'과 그의 책 '과학적 발견의 논리'가 인상적이었다. 만일 포퍼가 옳다면, 모든 과학 지식이 잠정적이고 추측적이고 가설적이라는 거북한 실재를 받아들이는 법을 나는 배위야 했다. 우리는 우리의 과학 이론들의 결정적인 증거를 결코 제시할 수 없고, 기껏해야 이론들을(잠정적으로) 확증하거나(확정적으로) 논박할 수 있을 뿐이다(p.70).

 

마지막으로 3장은 오랜 질문과 새로운 통찰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런 그에게 칼 포퍼의 반증 가능성의 개념은 그의 사고를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그가 언급한 것과 같이 과거에 정립되었던 과학 이론들이 이 후에 등장한 새로운 등장한 이론들에 의해서 모두 폐기되었다. 결국 모든 과학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는 세상과 과학을 넘어 존재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밝혀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믿음을 선택하는 순간 그동안 그가 그동안 고백하였던 어렴풋한 느낌이 사라지고 실재를 경험하고 그 실재를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순간 그는 C. S 루이스의 책 제목대로 예기치 않은 기쁨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복음은 다름 아니라 실재를 다시 상상하라는 초대, 보다 폭넓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라는 초대,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형판을 채택하라는 초대,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실재를 뚜렷이 보여줄 망원경을 통해 보라는 초대였다(p.97).

 

그런데 그에게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된다. 과연 신앙을 가진 자로서 과학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될 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는 실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다양한 시선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인간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으로 상호보완을 해야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이 보지 못하는 부분은 과학이 밝혀주고 과학이 보지 못하는 것은 신앙이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그의 고민에 대한 결론이다.

 

이 책을 통해서 복음에 대한 큰 그림을 제공받길 원하는 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는 것이 맞는 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 아니면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분에게 추천하여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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