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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평점 :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맛!
《나의 돈키호테》는 김호연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추억의 비디오 영화들과 그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의 얼굴, 그리고 열일곱 살에 쓴 일기장을 끄집어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쭉 써왔던 일기장을 어른이 된 뒤에도 보물단지마냥 보관하면서도 막상 꺼내 볼 마음은 들지 않았어요. 명작 소설도 아니고, 뻔히 알고 있는 내 이야기를 굳이 다시 봐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근데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일기장이 떠올랐고 과감하게 펼쳤다가 혼자 민망해서 끝까지 다 읽진 못했어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그렇게나 자세히 시시콜콜 적어놨을 줄은 몰랐어요. 완전히 잊고 있던 기억들이 소환되면서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그 안에서 나름 괜찮은 '나'를 딱 '한 줄' 발견해서 '휴~ 다행이다.'로 마무리했네요.
2018년, 주인공 솔이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대전 엄마 집에 내려왔어요. 방송국에서 잘 나가던 PD였지만 대표의 꼰대질에 참지 못해 대들고 메인 피디의 말을 어기고 맘대로 편집한 게 탈이 났던 건지, 결과적으로는 나이 서른의 실업자가 되었어요. 대전은 솔이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내려와 중학교 3학년까지 고작 5년 남짓 지낸 곳인데 중학교 2학년 무렵에 동네 비디오 가게인 '돈키호테 비디오' 사장 아저씨(일명 돈 아저씨)와 친해지면서 또래 친구들과 라만차 클럽을 만들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있어요. 우연히 한빈을 만나 돈 아저씨의 근황을 물어보니, 그 가게 건물 지하에서 글을 쓰던 돈 아저씨가 3년 전 아들인 자신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갑자기 사라졌고, 현재 건물주가 지하실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했다는 거예요. 돈 아저씨가 머물던 지하실에는 비디오와 DVD, 일반도서와 만화책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고, 솔이는 이곳에서 유튜브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를 촬영하게 되는데, 콘텐츠는 영화 소개와 '돈 아저씨를 찾아라!'예요. 이 소설은 한빈과 솔이가 각자 다른 이유로, 돈 아저씨를 함께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숨겨둔 보물도 아니고 과거에 알던 아저씨를 찾으려고 애쓴다는 게 영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솔이의 마음과 동기화되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진짜 재미있어서 유튜브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의 열혈 구독자처럼 몰입했던 것 같아요. 특히 『돈키호테』 의 재발견, 아니 이제서야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솔이와 라만차 클럽의 아미고스를 통해 꿈과 희망, 자유를 새롭게 꿈꾸게 되었어요.
자, 다 같이······ 바모스¡Vamos!
"돈키호테는 무슨 장르예요?"
"돈키호테는, 온갖 장르란다. 이 세계의 모든 게 담긴 용광로 안에서 끓고 있는 이야기인 거야." (9p)
"나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 짓고 살아왔지. 하지만 『돈키호테』 를 받아쓰면 받아쓸수록, 세상에 맞설 내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는 돈키호테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어. 돈키호테라면 벌써 그 모든 불의와 부패를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겠니?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온전히 몸을 던지지 못했어. 그저 시늉만 한 거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그를 흉내 낸 산초일 뿐이더라고?"
"그럼 산초였던 나는, 나는 어떡하란 말이에요?"
"내 생각엔, 솔이 네가 돈키호테다. 나는 네가 비디오 가게에서 늘 TV 프로그램 보며 깔깔 웃던 게 기억이 나거든. 마치 브라운관으로 들어갈 것처럼 몰두했지. 그런데 나중에 네가 그런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됐다는 얘길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 저렇게 솔이는 자기 꿈을 이루며 사는구나. 그때 나는 이미 널 돈키호테라고 생각했단다." (29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