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과학 교과서 07 - 인체
권오길 지음, 이유나 그림 / 길벗스쿨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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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은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기 전부터 많은 학습들이
선행되지요.
손에 잡히는 과학교과서는 초등학교 전학년이 볼 수 있는 내용이네요.
꽤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어서 과학책으로
손색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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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이야기 - 진귀한 그림, 사진과 함께 보는 상징의 재발견
잭 트레시더 지음, 김병화 옮김 / 도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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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상징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작은 백과 사전같다. 고대 문명의 유물에서부터 눈에 보이는 우주와 동물, 식물, 돌 등의 모든 것이 상징이 될 수 있다. 상징은 그 시대의 이념을 담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상징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은 영역이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사용된 상징은 우리 인류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대의 상징부터 지금까지의 상징을 살펴보는 것은 인류의 보이지 않는 역사를 말해준다. 상징에 관한 방대한 내용들을 일곱 가지의 분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형체를 얻은 정령, 영혼 마음 초자연, 동물 세계, 식물의 왕국, 우주의 혼령들, 예술과 예술 작품들, 패턴과 무늬 그리고 상징체계에 속하는 점성술, 역, 타로 카드, 수, 연금술, 카발라에 대해 알려준다.

상징체계는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오랜 세월 중요한 이념을 간직하기도 한다. 구속을 의미하는 상징으로는 지금도 반지(영원성, 결합, 완전성을 가리키는 원형 상징), 손 맞잡기, 매듭 묶기 등이 있다.

동물을 통한 상징체계는 원시 문화에서 항상 등장한다. 그것은 인간보다 동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 힘과 더 잘 접한다는 인식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토템 신앙도 이와 같다. 여기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짐승들이다. 이런 짐승이 가진 상징의 내용은 형태가 발전하면서 변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인간의 머리를 한 거대한 사자로서 지배자를 상징하지만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날개가 달렸고 여자의 머리와 가슴을 가졌는데, 칼 융은 스핑크스를 자식을 잡아먹는 어머니의 상징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선이거나 악의 존재들이다. 보면서 우리 나라의 것은 소개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무래도 개략적인 상징 이야기라서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그래서 우리 나라 상상의 동물들을 살펴봤다. 나무를 다스리는 동쪽의 수호신 청룡, 쇠를 다스리는 서쪽의 수호신 백호, 불을 다스리는 남쪽의 수호신 주작, 물을 다스리는 북쪽의 수호신 현무 등 다양하다. 풍수 지리에도 등장하는 이들이 아직도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상징의 힘은 역사의 깊이와 비례하는 것 같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상징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저자는 잭 트레시더라는 유명 미술사가라고 한다. 상징에 관한 다양한 저서들이 있다고 한다.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를 상징이라는 잣대로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상징에 담긴 메시지를 그림, 사진과 함께 설명해주고 있어 재미와 지식을 갖춘 책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미술 작품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강조하려는 특별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역사적 안목을 키우는 한 방법일 것이다.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상징은 인류의 정신적 산물이다. 상징이 현대에 이르러 많이 사라진 것은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 상상력의 고갈이 아닐까 싶다. 상징 이야기를 통해 잠자고 있던 상상력을 깨워 본다. 우리 주변에는 어떠한 상징이 숨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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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그림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함정임.박형섭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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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청명했다. 어제까지 태풍으로 어두웠던 하늘이 오늘은 더 맑고 파랗게 느껴졌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었다. 흐린 날을 지나는 동안 누구나 맑은 하늘을 그리워한다. 마치 간절히 바라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맑게 개인 하늘이 반가웠다.

이 책은 그런 반가운 느낌이었다. 저자인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정신의학자로 예술을 통한 치유법을 연구한 분이다. 그는 예술 작품인 그림 스물 다섯 편을 통해 행복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림은 우리의 인생을 비유하듯 행복의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 그리고 비상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자연의 순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그림을 통해 행복을 전해주는 행복 큐레이터라 할 수 있다.

평소에 볼 기회가 적은 명화들을 보면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책의 속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핀 편도나무가지이다. 이 그림은 동생 테오의 아들인 자신의 조카를 위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막 피어난 하얀 꽃들이 삶의 기쁨, 창조에 대한 경탄을 말하는 듯하다. 예술가들은 자연 속에서 남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아름다움, 특별함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새롭게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은 그와 같은 발견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행복은 늘 그곳에 있었다. 자연은 이미 말해주고 있다.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처럼 우리 인생은 행복과 불행이 교차한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삶의 작고 큰 어려움,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살 수 있게 하는 힘이 행복 안에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불안증과 무기력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질환들은 행복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고 볼 수 있다. 물질적인 소유처럼 행복을 소유하려 하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의 삶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우리 삶의 목적지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행복과 슬픔은 하나의 감정이다. 모든 감정은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없이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그것을 의식하고 커지도록 도와주는 것, 또 그것의 덧없이 사라지는 특성을 의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라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행복의 본질, 행복이 무엇인지를 그림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누가 우리에게 행복을 보여줄 것인가? 자연을 통해서, 예술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자 한다면 작은 들꽃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을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행복은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 행복은 지식이 아닌 행동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이었나?

더 크고 넓은 집, 멋진 차와 같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머무르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행복을 원하면서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다.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통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불행에 맞서야 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현실에서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세인들의 눈에는 불행했던 삶 속에서 아름답고 찬란한 작품을 만들어낸 힘은 행복을 향한 열정에 있다. 작품을 통한 행복의 절정을 맞보기 위해 오히려 행복과 멀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의 고독과 고뇌가 더욱 행복을 절실하게 표현하도록 만든 것일 수도 있다. 행복을 주는 그림 중에 예전부터 좋아하던 그림이 있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인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별빛의 일렁임이 행복하게 춤추는 느낌이 든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나는 그림을 통해 음악처럼 뭔가 위안이 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영원, 지난 날 후광으로 상징되었던 영원과 함께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싶었다. 우리는 빛의 울림이나 떨림을 통해 색조를 찾을 수 있다.

비록 반 고흐는 자신의 삶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불행을 겪었지만 동생에게 보낸 편지처럼 자신의 작품을 통해 구원과 소통을 원했다. 자기만의 행복이 아닌 세상을 향한 행복의 나눔을 실천한 것이다.
<행복을 주는 그림>은 잊고 있던 행복의 본질과 몰랐던 예술 작품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림이 주는 행복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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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병이 낫지 않는다
테라사와 마사히코 지음, 고희선 옮김, 김미나 감수 / 시금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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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내용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환절기에 한 두 번 걸릴까 말까한 감기를 왜 요즘 우리 애들은 자주 걸릴까. 소아과에 가면 늘 아픈 아이들로 북적인다. 항상 신경쓰고 돌보는데 병이 낫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걱정인 엄마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소아과를 참 많이도 갔다. 매번 감기와 중이염이 반복되고 처방되는 약들도 똑같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진찰이 무성의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지, 전체 의사분들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진찰은 1분이고 내가 말하는 증상마다 약 처방을 해준 것이다. 속으로 , 이건 아닌데…’라는 불신이 생겼다. 그래서 그 뒤로는 웬만한 감기에는 병원에 데려 가질 않는다. 항생제 과다 사용으로 생길 수 있는 내성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일본 의사인 테라사와 마사히코는  항생제 내성의 심각성을 전파하는 실천적인 의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단적인 검사를 통해 감염된 균에 맞는 항생제를 사용하고 약 처방보다는 실제적인 감염예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솔직히 동네 소아과에서 감염 원인 세균을 찾는 검사를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약처방을 받을 때 어떤 약인지 늘 확인하는데 항생제, 해열진통제, 소염제 등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진찰받을 때 의사 선생님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냥 알아서 해주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설명을 요청한다. 환자는 많고 진료 시간은 짧다보니 어쩔 수 없다. 동네 소아과는 종합병원만큼 대기 환자가 많은 것도 아닌데도 설명에 인색하니 나만의 자구지책이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소아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다고 대답한 의사가 전체의 3분의 1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결과에는 무조건 약처방을 원하는 부모들의 책임도 있다.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달려가고 빨리 약으로 낫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아이를 원한다면 부모 먼저 알아야 한다. 무조건 병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의 병을 알고 아이의 면역력을 길러줘야 한다.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항생제를 멀리할 수 있게끔 평소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손 씻기이다. 세균에 감염되지 않는다면 항생제도 필요없고 자연히 내성균 걱정도 없을 것이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손을 자주 씻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하루에 5번 이상 손을 잘 씻기만 해도 감기와 위장병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손 씻기와 함께 가글링도 같이 하는 것이 목 안의 세균과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감기나 독감이 유행할 때만이 아니라, 항상 이러한 위생적인 습관을 실천한다면 병원이 한가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 부모들이 먼저 알아야 한다. 한 소아과 의사의 이유있는 잔소리에 귀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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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끌기
제임스 모로 지음, 김보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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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느님이 돌아가셨대. 이건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야?

제임스 모로의 장편소설은 이제껏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오던 절대자 신의 존재를 인간화한 독특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인간처럼 죽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실하게 답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본 적도 없는 존재에 대해 증명할 방법은 없으니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을 구분지을 수 없는 인류의 역사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고 있고, 비록 무신론자일지라도 극한 상황에서는 절대자를 찾게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생로병사의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존재를 갈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 바다 위에 하느님의 주검을 확인한 인간들은 하느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단연 풍자 소설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의 죽음은 인간에게 필요한 도덕, 윤리를 위협할만한 중대한 사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감시를 벗어난 인간들의 다음 행동은 무질서와 혼돈이다. 법체계가 파괴된 도시에 폭도들이 난리를 치듯이 인간의 이성과 선의는 마비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죽음이 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지 기발하고 재미난 소설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커다란 반전이다. 이 소설은 매우 철학적이며 풍자적인 무거움이 느껴진다. 같은 주제를 말하지만 다소 느낌이 다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오버랩되었다. 그들의 상상력은 우리를 거대한 우주 안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 인류를 과학과 종교의 잣대가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 설명해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신비만큼 무한한 상상력이다.

 절대자인 신, 하느님의 존재는 우주 안의 질서를 의미한다. 우리는 그 영향권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질서 있고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다. 마치 하느님의 주검을 확인한 초대형 유조선 발파라이소호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신의 감시를 받고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대로 살고 있다. 신은 우리에게 삶을 주었을 뿐, 그 삶의 주인은 우리 자신인 것이다. 인류, 인간의 삶이 발파라이소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 안에서 세상의 깊이를 담아내고 있다. 무신론자의 오만함도 유신론자들의 광적인 믿음도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다. 신은 죽었다고 여겨질 만큼 혼란과 절망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이 돌아가신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도대체 왜 하느님이 돌아가셨는지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딱딱한 철학서가 아닌 제임스 모로의 장편소설이 어느새 나에게 철학적인 해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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