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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황석희 번역가님을 알게 된 건 최근이에요.
번역의 세계는 잘 모르지만 황석희 번역가님 덕분에 번역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며 흥미를 갖게 된 터라 이 책의 출간이 참으로 반가웠네요.
《오역하는 말들》은 황석희 번역가님의 에세이예요.
저자는 번역가로서 가장 무서운 단어가 '오역'이라면서, 오역은 애증의 대상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이 책에서는 전문 번역에 관한 내용뿐만이 아니라 번역가의 눈으로 본 일상 속 오역들을 다루고 있어요. 전혀 경험이 없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일수록 배울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번역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미처 몰랐네요.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사람이 하는 번역에는 비길 수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네요. 미묘한 뉘앙스, 그 말맛은 인간의 전유물이니까요. 어쩌면 오역조차도 인간의 불완전함이 빚어낸 매력적인 실수인지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번역과는 무관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일이 되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실수라는 걸 왜 모르겠어요.
"번역가의 번역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원문과 다른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다. <인사이드 르윈>에서 내 가사를 원문인 양 받아들인 기자의 리뷰처럼. 번역문을 즐기려면, 번역의 묘미를 느끼려면 번역문 자체를 원문처럼 떠받들어선 안 된다. 번역가는 하나의 곡을 오만 가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다. 그러니 아주 정확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궁금해질 땐 원문을 확인하는 것이 옳다. 번역가를 믿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번역가의 배신이 아니라 번역의 속성에 관한 문제니까. 번역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영어 문제를 채점하는 것보다 아주 복잡한 영역이다. 그 판단의 간극 사이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가 번역의 묘미이긴 하지만." (107-108p)
요즘 번역가, 통역가들을 보면서 굉장히 멋진 직업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들, 그 종류보다 더 신기한 건 누가 어떻게 이 언어들을 번역했느냐는 거예요. 최초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이는 누구였을까요. 다양한 언어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자가 정말 부러울 따름이에요. 모든 번역가들이 다 그런 건지, 저자의 개인적인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진 농담을 유난히 싫어한다는 부분에서 언어의 민감성을 감지했네요. 생각하는 바를 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 즉 말의 힘을 알기에 저자는, "반복된 농담이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177p)라고 설명해주네요. 부정적인 표현들을 단순히 농담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 자신이 한 농담이 너도 나도 즐거워야 진짜 농담인 거예요. "번역가는 선입견이 강할 때도 오역을 한다. ··· 실수가 아닌 적극적인 오역을 번번이 저지르는 사람은 번역가로서 자격이 없다. 물론 매번 너그러운 시선으로 상대를 번역할 수는 없다. 하물며 이유 없이 미운 사람도 있는데 이유가 있게 미운 사람을 너그럽게 번역하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럴 땐 차라리 건조하게 직역을 하면 된다. 적극적으로 의역하고 오역해서 본디 가진 의미를 곡해할 바에야 직역을 하는 편이 백 배 낫다." (265p) 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일상에는 본래 의미를 곡해하는 의도적인 오역들이 넘쳐나기에 그 말들에 대해 책임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어요. 말을 삼가하고, 내뱉은 말에 책임질 줄 아는 진정한 어른들의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