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 한 서번트 이야기
캐슬린 루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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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엄마!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을 수 있는 이 말이 어떤 이에게는 평생 듣고 싶은 말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통이 너무도 많다. 신은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셨을까?

렉스는 엄마의 눈물겨운 육아일기다.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캐슬린은 행복한 결혼과 함께 렉스를 임신했다. 렉스의 탄생은 분명 그들 부부에게는 축복이며 행복한 순간이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렉스는 뇌 혈종을 지닌 채 태어났다. 그 뒤로 시련은 계속 된다. 렉스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며 자폐아로 진단 받는다. 그리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 심한 장애아를 가진 부부 중 70%는 이혼을 한다는 통계처럼.

렉스를 지켜줄 사람은 오직 엄마 캐슬린의 몫이었다. 이 부분이 참 마음이 아프다. 사랑을 믿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꿨을 그녀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한 가지 장애를 가져도 힘든데 복합적인 장애를 가진 렉스를 키우는 일이, 엄마의 이름을 지닌 한 여자의 몫이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감히 짐작도 못할 것 같다.

엄마는 위대하다는 말 밖에는,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하겠다.

렉스에게 천재적인 음악성이 있다는 사실도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못된 교육환경을 바꾸려는 엄마의 노력이 없었다면 렉스는 세상에서 고립되고 말았을 것이다.

장애를 지닌 아이를 키우는 일이 왜 엄마 혼자만의 투쟁이 되어야 할까?

그나마 미국은 선진국답게 장애아동을 위한 다양한 교육 시스템을 갖춘 편이다. 그런데도 자폐증에 대해서는 사회적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렉스의 학교 담임선생님과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도 자폐증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된다. 원래 자폐아는 세상과 가까워질 수 없다는 포기와 단절이라는 무서운 벽이 존재한다. 대부분 자폐증을 치유될 수 없는 병으로 여기듯이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렉스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눈물겨운 사랑과 함께 적절한 교육이 있었기에 렉스의 음악적 재능이 빛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자폐증은 세상과 단절된 병이 아니다. 세상과 소통할 길을 잃었을 뿐이다.

렉스처럼 음악적 재능 혹은 특별한 재능으로 얼마든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음을 우리가 믿기만 하면 된다. 렉스를 지켜낸 힘은 엄마의 사랑과 믿음이었다.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가장 큰 상처는 세상이 먼저 문을 닫는 일이 아닐까?

어쩌면 자폐증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의 편견과 오해가 그들을 고립시켰는지도 모른다.

렉스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세상에 닫힌 문을 열었다면 이 책은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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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 - 리버스 북 시리즈 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지은 옮김, 조상영 그림 / 인간희극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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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시작해서 씁쓸한 웃음이 나다가 마지막은 심오한 의미를 남긴 채 끝맺는다.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은 한 마디로 황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왜 작가가 엉뚱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런 이야기를 꾸몄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인간의 삶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파격적인 소설이다.

또한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줄거리로 누구나가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가뿐한 책이다. 또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글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책 반대편을 뒤집어 펼치면 영어 원문이 실려 있다.

정말이지 소설과 잘 어울리는 기막힌 구성을 갖춘 책이다.

벤자민 버튼은 70대 노인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서 나름의 인생을 살다가 아기로 세상을 마감하는 기이한 삶의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벤자민 버튼의 진정한 내면을 무시한 채 겉모습으로 그를 판단한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는 충격적인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벤자민을 아들로서 받아들였다. 그것이 벤자민에게는 첫 번째 행운일 것이다. 그 다음은 아름다운 힐데가르드 몬크리프가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이 두 번째 행운일 것이다. 그리고 버튼 부부는 아들 로스코를 낳는다. 사랑스런 아들의 탄생은 축하할 일이지만 벤자민에게 행운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진정한 행운이라 부를만한 일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만 뽑으라면 사랑하는 부모님을 만난 일이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부한 벤자민을 순수하게 자신의 아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는 부모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벤자민처럼 황당한 설정이 아니라 불치의 병을 앓는 아이를 상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아이를 포기할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랑의 힘은 부모의 자식 사랑일 것 같다.

반면 남녀 간의 사랑은 불꽃처럼 급격히 타오르지만 언젠가는 서서히 사그라진다. 아름답고 젊은 힐데가르드가 벤자민을 선택한 이유를 보면서 여자의 마음을 엿보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곧 벤자민의 변화와 함께 혼란에 빠진다.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그녀는 끝까지 남편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벤자민의 아들 로스코는 어떠한가? 아들은 도저히 아버지를 순수하게 아버지로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들을 탓하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그와 비슷하다. 자식은 결코 부모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치명적인 결함을 벤자민의 아버지 로저는 모두 수용했지만 아들은 벤자민이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잃자 그 존재마저 부정한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한계이며 불행이란 생각이 든다.

벤자민 버튼이 살다간 인생은 묘하게도 외적인 특이함을 보여주지만 실제는 인간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원숙한 노인과 미약한 아기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흐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벤자민은 언제나 벤자민이었다.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삶을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올해 미국에서 브래드 피트 주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동명 영화를 개봉한다고 한다. 과연 벤자민의 모습이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하다.

짧지만 강렬함으로 기억될 만한 책이다. 영화 역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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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2 - 상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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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부를 읽은 독자라면 무척 기다렸을 것이다.

두 권의 책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흡입력 있는 소설이니까.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라는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리스베트 살란데르.

그녀는 이미 1부에서 뛰어난 두뇌로 사건 해결을 해낸 주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녀에 대해 아는 건 해커, 법적 무능력자라는 정도다. 드디어 그녀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이 2부 내용이다.

리스베트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며 거대한 권력 앞에 약자였다. 힘없는 소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세상을 향해 냉소적인 가면을 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2부의 분위기는 리스베트를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 이야기라 가벼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점점 리스베트를 알아갈수록 심상치 않은 그녀의 과거가 드러난다.

한 사람의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의 전부를 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리스베트는 겉모습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면을 지닌 것 같다. 작고 마른 체격에 소녀 같은 외모지만 눈빛만은 그녀가 결코 순진한 소녀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실 그녀는 스물여섯 살, 엄연한 성인이다. 순진하다는 건 세상에 보호를 받는 연약한 존재라는 증거다. 그녀는 이미 어릴 때부터 세상에 보호를 받기는커녕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유린당한 경우다. 세상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다행히 그녀는 천재적인 두뇌와 예민한 감각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살아 왔다.

이 점이 바로 그녀가 밀레니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이유라고 본다.

이제껏 사회에서 버림 받거나 외면당한 약자들은 희생자로서 철저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녀에게는 가장 안전한 보호막이었을 것이다.

리스베트를 보면 제목 때문인지 성냥팔이 소녀가 연상된다.

추운 겨울,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한 소녀가 팔다 남은 성냥에 불을 붙여 환상을 꿈꾸다 결국은 하늘나라에 간다는 슬픈 이야기 말이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이 소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줬더라면 소녀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비극적인 건 소녀가 성냥을 다 팔지 못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집은 소녀에게 비극의 근원지다. 세상에 태어나 사랑 받지 못한 소녀의 인생은 결말이 너무도 절망적이다. 소녀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와는 다르다. 슬프고 비극적인 상황만 같을 뿐이다. 리스베트는 순순히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이며 삶을 포기하는 연약한 소녀가 아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부당한 세상에 맞서는 용기와 베짱이 있다.

부디 그녀를 계속 지켜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밀레니엄 1부에서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가는 긴박한 재미가 있었다면, 2부에서는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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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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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에게 수식어가 붙는다면 내게는 당연히 ‘빨강머리 앤’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고 사랑스러운 앤은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우스콧 중학교에서는 친구를 놀리는 고약스런 별명으로 변질되었다.

우리의 주인공 마사는 부모님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집에서 만든 초라한 옷을 입는다. 다른 친구들과 다른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누더기 앤’이라 불리면서 온갖 수모를 당한다. 물론 옷만 다른 것이 아니다. 평범한 10대가 누릴 수 있는 콜라나 피자, 인터넷도 마사에게는 금지된 것들이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족의 비밀이 있다. 마사네 지하실에는 혐오가 살고 있다. 결국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춘 것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스콧은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다. 낯선 학교에 적응하려고 친구들을 따라 마사를 ‘누더기 앤’이라 놀렸지만 곧 그만둔다. 따돌림 당하는 마사에게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사 편을 들었다가 스콧도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그래서 마사와 스콧은 친구가 된다. 스콧의 용기를 칭찬하고 싶다. 학교 따돌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스콧처럼 현명하고 용기 있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국 어른들의 몫이기도 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유별난 부모님 때문에 마사에게는 금지된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저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다면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부모님은 일방적으로 마사의 삶을 조정한다. 모든 것이 종교적인 이유라는 것이 더 괘씸하게 느껴진다.

예전에 뉴스를 통해 이런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부모의 맹목적인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질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에게 기도만 해주고 병원 치료를 거부한다. 또는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친다고 종교적인 의미의 체벌을 가하여 중상을 입히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한다.

종교를 선택하고 믿는 것은 자유지만 그에 따른 행동은 명백히 범죄 행위라 할 수 있다. 부모는 마땅히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자녀를 권위와 폭력으로 무참히 짓밟았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채 지내던 마사는 유일한 친구 스콧 덕분에 용기를 낸다. 마사는 정말 앤처럼 씩씩하고 밝은 아이다. 그것이 마사가 가진 매력인지도 모른다. 스콧이 전학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리고 참 다행이다. 마사가 ‘누더기 앤’이 아니라 ‘당당한 앤’이라서.

사실 학교 따돌림이나 가정 내 폭력은 당사자인 아이가 극복하기에는 버거운 문제다. 자칫 하면 비극적인 결말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마사와 스콧의 시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나간 점이 멋지다.

무엇보다도 내가 무척 사랑하는 앤, 그 이름을 떠올릴 만한 결말을 맺어서 기쁘다. 상황은 너무도 누더기처럼 엉망이지만 역시 앤은 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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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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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유치해도 괜히 따져 묻고 싶다. 사랑한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라고 말이다. 그리고 괜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가슴 떨리는 사랑이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인 사람이 부리는 억지 같아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목만 봤을 때의 소감이다.)

처음엔 그랬다. 말랑말랑한 사랑의 감성이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나보다.

달콤한 알사탕을 녹여 먹듯, 조금씩 그 맛이 전해져 온다. 사랑이라는 맛, 그러나 사탕처럼 달지만은 않은 그 맛을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거다.

사탕과 사랑의 공통점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그 맛을 완전히 잊지는 못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사탕을 먹고 사랑을 한다.

이 책은 슬며시 내게 사랑이라는 사탕을 건네준다. 자, 이 맛이 기억나니?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시집인 줄 알았다. 차례에 적힌 제목들이 한 편의 시처럼 그윽한 느낌이다.

 

< 차 례 >

1. 겨울 끝에는 봄이 오듯이, 내 끝에는 항상 네가 있다.

2.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이다.

3. 너한테만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4. 버려진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5. 젊음은 ‘가벼운’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이다.

6. 숫자는 달콤한 사랑의 언어다.

7. 빛의 반대말은 어둠이 아니라 투명함이다.

8. 너의 눈물까지 감싸 안는 사람이고 싶다.

9. 나이가 들수록 상처를 회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10. 눈을 감으면 외로운 사람들만 모이는 작은 섬이 보인다.

11. 슬픔을 나누려는 사람보다 슬픔을 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12. 뒷모습을 허락하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

13. 사랑에 빠지면 아이도 어른이 된다.

14. 소리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이야기가 있다.

15. 두 번째 이별은 첫 이별보다 아프다.

16. 추억은 고양이처럼 깊고 오랜 흔적을 남긴다.

17. 더 사랑해서 더 외로운 사랑이 있다.

18.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이다.

19. 어느 날 추억은 담담해지고, 마음은 단단해질 것이다.

20.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

 

여기에 한 줄을 더 추가하고 싶다.

21. 차례를 읽으면서 공감할 수 없다면 이 책은 그저 시시한 연애 소설이 될 것이다.

 

주인공 조희정의 사랑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면서 사랑하는 순간은 누구나 특별해지는 법이니까.

사랑은 마법 같다. 그래서 사랑을 말하는 언어 또한 마법 같은 힘을 지니는 것 같다.

이 책을 펼쳐든 장소는 버스 안, 시간은 햇살이 유난히 쏟아지는 오후였다. 문득 내 뺨에 와 닿은 햇살이 사랑하는 사람의 따스한 손길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눈부셔서 고개를 돌렸을 그 햇살이 그 순간만큼은 피하고 싶지 않았다.



“빛이 닿으면 무엇이든 반짝인다. 운하의 탁한 물결도, 푸석한 나뭇잎도, 멋없이 뻗어 있는 현대식 건물도, 말라버린 눈물 자국까지도. 그래서 사람들에게 와서 닿을 때 빛은 그냥 빛이 아니다. 저마다 다시 시작하고픈 사랑,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의 실현, 부서진 관계의 회복이라는 이름들로 바뀌어 반짝인다.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에게 빛이 된다.......“ (78p)

 

사랑의 언어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빛이 되어 다가왔다. 아침 햇살이 잠을 깨우듯 잠들었던 감성이 깨어나고, 오후 햇살 같은 따사로움으로 추억에 잠겼다.

빛이 닿으면 반짝인다는 자연 현상조차 사랑이란 말로 바꾸면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하게 변한다. 혹여 그 사랑이 아프다는 걸 알아채도 여전히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걸.

사랑했거나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을 위하여

작가는 우리에게 사랑을 들려준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널) 사랑하지만,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날) 사랑하지만, (나는 널)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은 원래 불공평한 것 같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이 책은 에세이와 스토리텔링을 결합시킨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한다. 어쩐지, 단순한 나는 에세이와 소설 중 어떤 장르인지 잠시 고민했다. 물론 사랑을 말하는데 장르 구분이 뭐가 중요한가 싶어 그만 두길 잘했다.

이미 이 책을 읽는 동안 사랑이 주는 감미롭고도 씁쓸한 맛을 기억해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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