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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암실 ㅣ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마음 속에는 수많은 방들이 있어요.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방들이 대부분이지만 굳게 잠겨 있는 방들도 있어요. 삭제할 수 없는 기억들을 넣어두는 곳, 기억하지만 기억하기 싫은 것들은 그대로 덮어버리는 거예요. 이 소설은, 어쩐지 그 닫혀 있던 방문을 열어버린 느낌이 드네요.
《호수와 암실》은 박민정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주인공 '나',연화는 수영장에서 재이를 처음 만나 가까워졌고,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어요. 근데 왜 멀어지게 된 걸까, 그 원인은 로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연화가 그토록 숨기고 싶은 시절을 같이 보냈던 로사의 등장으로 모든 게 어긋나고 있어요. 연화는 갑자기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을 느꼈고 알레르기 증상처럼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전에 없던 가려움증이 일어난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기억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 더러운 기억들이 아닌가 싶어요. 연화와 재이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과거와 감추고 싶은 기억의 정체가 드러나네요. 더러운 기억의 정체는 모욕감, 이 불쾌한 감정이 어떻게 그녀들의 삶을 좀먹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는지 짐작할 수는 있어요. 중요한 건 그녀들의 미묘한 관계 안에서 다시금 그 감정이 소환된다는 거예요.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애써 덮은 채 그저 불쾌하고 찝찝한 감정으로 치부하며 견뎌내던 그녀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네요. 먼지 알레르기마냥 불현듯...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하나의 마음만은 알겠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사람마다 반응은 다르겠지만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마음을 숨기려고 하니까 거짓말을 하는 거죠. 연화는 자신의 거짓말을 정당화하려고 했지만 어찌됐든 속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녀들의 속사정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네요.
나는 언제나 살아남기 위해서 집요하게 기억했다. 끈질기게 기억하는 것만이, 그 기억만이 나를 살려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러운 기억들이 점점 피로해졌다. 시간이 흐른 후 재이가 폭로하고 고발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옛날의 나를 떠올리면서 말해주었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너에게는 기억이 있어. 오직 너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정확하게 생각해내야 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고." 로사는 뭐라고 말해주었을까. (106-107p)
"기억이 너를 살려 줄 수 있다고. ... 끝내 나를 살려준 것은 ... 진실 그 자체였다.
진실은 내게 너무 오래 그 기억에 붙들려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결코 잊을 순 없지만 그것에 사로잡혀 나를 전부 다 놓아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 내가 왜 그 짓을 했는지 기억했기에 나는 진실을 거머쥘 수 있었다." (118-11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