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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니? ㅣ 비룡소 창작그림책 76
노혜진 지음, 노혜영 그림 / 비룡소 / 2022년 11월
평점 :
외할머니를 존경한다.
순탄한 삶이 거의 없었던 굴곡진 삶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신 분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6.25전쟁을 겪으며 자식들의 삶의 등불이 되었주셨던 분이다.
외할머의 추억을 그대로 담은 그림책을 만났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다.
고된 삶 속의 내면에 숨어져 있던 두 할머니의 강인함을 따라 추억을 더듬어 간다.
옛날 외할머니의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그림이 이야기를 더 진하게 만든다.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들을 한장 한장 꺼내보는 듯한 느낌이다.
“넌 누구니?”
그림책의 제목이 이야기의 시작으로 연결된다.
해주의 달이 물그릇에 담긴 날 태어난 할머니의 이름은 정자이다.
한약방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일터는 할머니의 놀이터며 꿈이 된다.
열아홉 되던 날 위안부 강제동원이 시작되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집을 가야했다. 결혼식날 처음 보는 남편과 낯선 환경에서도 아들을 낳았고 전쟁이 터져 남편과 다섯 살 아이의 손을 잡고 피난을 떠났다. 시집을 가 다른 환경에서의 삶은 보고싶은 아버지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 ‘할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숨겨둔 마음을 생각해 본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에 난생 처음 장사도 한다.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고 쉼 없이 부딪히며 살아야 했지만 아들이 있어 숨 쉴 수 있었던 할머니의 삶은 강인함 그 자체다. 빛바랜 사진들을 보면서 굴곡진 삶을 꿋꿋하게 이겨낸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싶다.
또 다른 할머니가 등장한다. 월순이란 이름을 가진 할머니는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다. 남편은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고 남겨진 다섯 아이들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외지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위해 부엌을 지켰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내밀며 사랑을 전한다. 다섯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태어난 손주를 만나러 가기 위해 단장도 한다.
‘그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식들이 첫 월급을 받았다고 빨간 내복을 사주었을 때처럼 모든 힘듦이 사르르 녹아 사라졌을까?’
하얀 버선과 고무신을 할머니의 발 모습과 슬리퍼를 신은 할머니의 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손녀의 탄생으로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만난 것이다. 두 할머니는 손녀를 보면서 아버지가 내게 해준것처럼 할머니들이 살았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살 수 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딸이었고, 여자였고, 아내였고, 어머니였고 그리고 할머니로 살아가는 삶에서 할머니는 우리의 시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할머니들이 심어준 삶의 나무는 우리 마음 속에서 자라고 있고, 힘든 삶에서 한 번도 도망치려고 하지 않으셨던 우리의 뿌리였다. 두 분의 할머니가 계셨기에 내가 있다.
이 책에서 “넌 누구니?”는 나의 존재는 나 혼자가 아니라 세대 간의 연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세대 간의 마음 격차를 서로 보듬을 수 있을 때 내가 누구인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자신보다 자식과 손주를 먼저 생각하셨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한번 힘든 인생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셨던 할머니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림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