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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이언 에븐슨 지음, 이유림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2월
평점 :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이언 에븐슨 (지음) | 이유림 (옮김) | 하빌리스 (펴냄)
너무 이상하다. 분명 화자가 중심이 된 이야기이라고 읽었는데 내 중심으로 몰입이 된다. 결국에는 독자도 왠지 그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스스로가 본인이 아닌듯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 활자가 거대하게 나를 덮치는 느낌이다. 아마 이것이 또 다른 문학 장르인가? 환상과 호러가 교묘하게 왔다 갔다 실타래를 하는 기분이 든다.
브라이언 에븐슨이란 작가를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권위 있는 상도 수상했고 글쓰기 관련 강의도 대학에서 하고 있는 유능한 작가이다. 그리고 그의 글들은 군더더기가 없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활자들은 문장들을 서로 서로 끌고 들어와서 멈출 수 없게 한다. 단편들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챕터가 끝나면 고개를 들 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집으로 엮인 단편이라서인지 다양한 인물들과 상황들이 전개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작품은 어이없게 분량이 적기도 했지만 생각할 여지가은 오히려 넘쳐났다. 그중 2019년 셜리 잭슨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 [세상의 매듭을 풀기 위한 노래]라는 단편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다. 소설에서 화자인 드라고는 딸 다니를 어느 날 아침 잃어버린다. 아니,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나? 그저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할 수 있나? 혹시 드라고에게 애초에 딸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가 무슨 해코지를 해버린 것은 아닐까...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정신 상태에 괴로워하는 드라고... 그는 주변인을 시작으로 탐문함과 동시에 위험부담이 컸던 전처와의 통화까지 거쳐서 아이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지만 도무지 아이의 상태를 알 수가 없다. 그저 벽 너머로 아이가 부르던 노래가 들려온다는 것뿐... 그리고 아이는 애초에 어디로 갈 수가 없다. 그는 안전? 을 이유로 아이를 감금해왔던 것이다. 집을 빠져나갈 유일한 열쇠는 그의 목에 둘러져 있을 뿐이다. 이 상태까지 되면 애초에 드라고라는 인물의 진위마저 수상해 보인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소설 전체에 계속해서 드라고가 물음을 던진다. 나 자신이 된다는 건 뭐지? 애초에 나라는 것은 전혀 관계없는 것들의 나열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딸아이의 행방인데, 사실 그 최초 의문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지만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브라이언 에븐슨의 글은 독자를 다소 애매모호한 상황까지 빠뜨린다. 그리고 화자에게도 그다지 친절이 없는 듯하다. 비틀리고 엉성한 인물들이 나와서 스스로도 모를 이야기들을 해나간다. 그리고 그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세계는 담대하면서 기괴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무섭기도 하다. 아마 이런 점에서 그를 스티븐 킹에 대비해서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얼굴도 없이 뒤통수만 갖고 태어난 아이에서 시작해서 작품의 마지막을 위해 기상천외한 살인을 저지르고야 마는 영화감독의 이야기까지... 작가는 스스로의 상상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쓰는 듯하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 있게 펼쳐지는데 인간의 육체를 차지하고도 살아있는 몸을 쉴 새 없는 찾는 우주 괴물부터 해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자들의 공동체까지 작가는 여러 가지 소재와 장르들을 폭넓게 넘나들며 스스로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공포들은 일상 그 자체가 될 수가 있는데, [세상의 매듭을 풀기 위한 노래]라는 단편은 아이가 사라졌다는 소재만을 가지고도 섬뜩한 공포감을 그 자체로 심어주고 있다. 앞으로 더 알고 싶은 작가가 생겨서 너무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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