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바깥 일기 + 밖의 삶 - 전2권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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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노는 옳다. 그녀의 글쓰기는 옳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올곧이 소설로 에세이로 사진으로 녹여내는 그녀의 방식은 놀랍도록 신선하고 고개를 끄덕여지게 한다. 자신을 통해 세상을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를 보는 듯하다. 아니 에르노의 세계는 그녀가 만든 또 하나의 우주다.

당신은 어떤 우주를 만들고 있는가? 그녀가 묻는 듯하다. 나의 우주는? 우리의 우주는? 스스로가 경험한 하루 하루가 마음과 몸에 새겨진다. 우리는 경험한대로 느낀대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결국 스스로의 모습이다. 경험한 것 이외에는 알 수없다.

에르노를 통해 나를 본다. 우주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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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6
소포클레스 지음,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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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외』​​

소포클레스 (지음) |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영웅은 과연 누구인가? 여기 누구보다 늠름하고 현명하면서 정의로운 영웅이 있다. 그는 오이디푸스이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영웅적 기질을 갖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영웅이더라도 타고난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너무도 비극적인 운명의 구덩이는 실로 영웅이 태어나기도 전에 깊고도 깊은 구멍을 미리 준비해놓았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이다. 테바이의 왕이었던 라이오스 왕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신탁을 듣는다. 그리하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라이오스와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는 사람을 시켜 갓난아기를 버린다. 다행히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되고 코린토스의 왕인 폴리보스에게로 입양된다. 후에 그는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친부모에 대한 신탁을 구하고자 델포이에 갔다 오는 길에서 라이오스를 만나서 서로 시비가 붙게 된다. 이에 아버지가 죽게 된다. 그는 코린토스로 돌아가는 대신 테바이를 택한다. 테바이에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게 되고 죽은 왕의 자리에 왕으로 추대된다. 결국 신탁은 현실이 되었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모친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곧 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 아무리 발버둥 쳐서 살아내 봤자 결국 죽음이라는 운명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신탁을 타고 태어났다. 이미 그 신탁이 불변한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인간이란 너무도 욕심이 많은 존재인가? 끊임없이 욕심내고 부정하고 더 가지려고 하고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처럼 남의 생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태어난 비극인 것이다.

안티고네는 한층 더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티고네 이야기는 시기적으로 테바이 3부작에 앞서지만 오이디푸스 사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왕권을 두고 다투게 되고 이때 에테오클레스가 폴리네이케스를 추방한다. 추방당한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가서 결혼하고 이후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에서 서로를 겨눈 창날에 둘은 목숨을 잃는다. 이어 왕위를 차지한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하지만 그의 누이 안티고네는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결심으로 포고령을 무시하고 폴리네이케스를 묻어준다. 이에 격분한 크레온은 그녀를 동굴에 가둬 죽이고자 한다. 아버지 크레온의 결정에 분노한 아들 하이몬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의 어머니이자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어리석은 왕의 결정은 모든 인간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심지어 그 자체마저도 말이다. 여기서 소포클레스는 코러스를 인용하여 노년의 현명함에 대해 강조한다. 나이 들면 우리는 잔인함 대신 관용과 현명함을 갖추어야 하는데 여기 크레온은 자신이 만든 규정과 법령에 스스로 갇혀 모두를 파멸시켜버렸다. 결국 파멸 후 후회해 봤자 아무것도 건질 것은 없다. 스스로의 한숨밖에는...

고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현재를 다시 읽어야 한다. 노년의 현명함을 잃어버린 누군가를 경계해야 한다.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나기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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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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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 정혜용 (옮김) | 열린 책들 (펴냄)​

아니 에르노의 밖의 삶은 외면 일기의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의 묘사 하나하나는 내면 일기보다 더 심오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에르노는 그녀 자신의 주변 밖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덤덤한 시선으로 다룬다. 지하철역에서, 클럽 도서전에서, 길거리에서, 고속도로에서, 심지어 한 줄의 기사에서, 텔레비전 속에서 등등... 그곳들에서 들려오는 모습 혹은 소리들을 아니 에르노는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그래서인지 아니 에르노가 느낀 밖의 삶은 왠지 독자의 삶과 다르지 않게 여겨진다. 우리 모두의 눈은 안을 향하지 않는다. 밖을 향해 펼쳐진다. 두 눈이 그러하고, 두 귀가 그러하고 입, 콧구멍 역시 밖을 향해 뚫려있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오감으로 읽힌다. 덤덤하고 무심한 듯한 글쓰기가 이어지지만 그녀는 항상 마지막에 화룡점정처럼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면서도 예리하게 표현한다. 즐거움을 거저 주고 싶다거나, 생물학적인 순수한 시간에 불과하다거나, 종말처럼 기차를 기다린다거나... 그녀의 일기처럼 쓰인 글들에는 그녀의 내면의 모습이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외면에서 투쟁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사회적 모순 속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저 할 일은 펜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듯이 그런 울분 혹은 분노는 곳곳의 단락 속에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분노는 결코 분노 그 자체의 모습을 하지 않는다. 분노일 수밖에 없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과 허무가 짙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오랜 여운이 남는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쓸쓸함, 허무, 여운... 그녀의 글들은 한 장의 스냅사진과도 같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카메라의 렌즈이고 책 속에 쓰여진 글들은 인화된 결과물이다. 결국 그녀의 밖의 삶은 그녀가 열심히 찍은 삶의 결과물과도 같다.

우리 모두의 밖의 삶은 어떠한가?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저 멀리서 벌어지는 일들이 결코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이다. 지구촌에서 현재 벌어지는 상흔들... 그것들은 결국 우리 모두의 내면에 남을 것이다. 그 사실은 어쩌면 너무 끔찍하기도 하고, 삶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리라는 사실... 명백하면서도 두려운 밖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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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과 살인귀
구와가키 아유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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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알게된 레몬과 살인귀의 작가..왠지모를 흥미가 생긴다. 이제 이 작가의 신간만을 기다리게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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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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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펴냄) ​

어떤 글은 빨리 읽기가 가능하고, 어떤 글은 느긋한 읽기가 요구된다. 아니 에르노의 글들은 절대 빨리 감기로 읽을 수가 없는 책이다. 그녀의 글들은 한 폭의 유화그림과도 같다. 아니면 사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끊임없이 스스로 말하면서도 독자에게 질문하는 듯하다. 이번 아니 에르노의 책은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글쓰기의 최고봉에 위치해있는 듯하다. 그 기교면이 아니라 그 방법 면에서...

사실 소설은 왜 소설 그대로의 작법을 따라야 하는지, 왜 글쓰기가 정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아니 에르노의 실험적인 방법의 글쓰기는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찡하니 찌르는 구석이 있다. 절대 답은 없다는 것... 내가 정답을 만들어간다는 것... 그런 면에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오히려 요즘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글보다 훨씬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바깥 일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에르노의 글들은 외부를 향해있다. 스스로에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치치 않고 오히려 바깥 세계에 대한 묘사에 집중한다. 그럴수록 스스로가 보인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이름 부르기와 비슷하다. 내 이름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름을 불림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인식한다. 남이 없는 나가 과연 존재?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바깥 없는 안이 과연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는 철저히 외부를 묘사하고 그것에 대해 관찰하고 있지만 실상은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부각 시켜준다. 일기 앞 부분에 등장하는 노동자의 망가진 두 손과 후반에 등장하는 작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그 반증이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걸인에 대한 짤막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걸인? 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도 깔끔한 외양을 갖추고 있으니... 아니, 걸인은 왜 꼭 깔끔하지 않아야 하나? (이것 또한 걸인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한다. 그가 세워둔 팻말을 읽어보고 돈을 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는 없었고, 자신의 아들 중 하나가 구걸하는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이라고...

바깥에서 스스로를 찾는 것... 그녀의 글에 풍기는 없는 자들, 빈곤한 자들, 외로운 자들, 쓸쓸한 자들, 고독한 자들의 모든 모습들... 그 모습들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었다. 타인의 모습 속에 나의 모습이 숨어있다. 타인을 잘 관찰할수록 스스가 보인다면 우리 모두는 내면 일기에 못지않게 바깥 일기를 써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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