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하여
이토 히데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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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하여』​​

이토 히데노리 (지음) | 김난주 (옮김) | 태일소담출판사 (펴냄)

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은 어김없이, 그것도 갑작스럽게 왔다.

회사에 다닐 때 상사가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아직 미혼이었던 상사는 이 강아지를 계속 데리고 있어서 자신이 외로움을 못 느껴서 장가를 못 가는 것 같다면서 한 마리를 입양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천천히 모든 강아지들을 내보낼 작정이었다. 외로움을 못 느껴서 강아지를 모두 입양 보내고 싶다는 논리가 이해가 안 갔지만 매일 바쁜 주인 때문에 집 안에 갇혀서 보낼 강아지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다른 주인을 만나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 단합대회 겸 체육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그분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몰티즈 종이었는데 털이 눈처럼 하얗고 눈이 포도알처럼 새까맸다. 이름은 두리였다. 둘째여서 두리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너무 이쁜 강아지였다. 사람 말도 제법 잘 알아듣고 친화력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착했다. 왠지 모르게 그 착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착함의 한편의 다른 말은 겁이 많다는 것이었다.

단박에 한눈에 빠진 나는 그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했다. 상사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그 날로 나에게 두리를 넘겼다. 하루아침에 나에게 반려동물이 생겨버렸다.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한눈에 빠진 것이 다였다. 하지만 웬걸 너무 좋았다.

매일 우리는 함께였다. 퇴근 후 산책도 함께, 기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갈 때도 품에 쏙 안고 다녔다. 붐비는 지하철을 탈 때도 함께였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만 우리는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두리는 기특하게 잘 벼텨주었다. 아무런 말썽도 없이 말이다. 그 흔한 하울링 한번 없이 너무도 얌전하게 퇴근하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그날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의 직장 생활과 결혼생활 후 아이를 낳는 것까지 함께 했던 나의 몰티즈.... (입양 후 아이에게 지어준 새 이름은 왠지 여기에 밝히기가 싫다.)

어느 날 산책을 갔는데 유독 걷는 것이 느려졌다. 심지어 달리기를 해도 나보다 느렸다. 그리고 잠이 많아졌고, 이가 빠졌다. (그 치아는 아직도 간직 중이다.) 그래도 난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시간 감각이었다. 그날은 어김없이 나에게 왔다.

이 책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하여]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려동물과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책을 읽고 들은 느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죽음은 언젠가 올 그것이고, 그 경험 속에 홀로 남겨진 이들은 어김없이 아픔을 경험한다. 그 아픔을 극복하는 일은 모두에게 숙제이다. 그 아픔이란 바로 펫 로스 증후군...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 극복이 가능하다. 어설프게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극복이 된다.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이별을 경험할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어코 오고야 마는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 할 일은 너무도 명확해진다. 더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 더 사랑하기...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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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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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아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소설 역시 우울감의 깊은 바닥을 보여줄까..아닐까..욘 포세의 작품 중 가장 궁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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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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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글쓰기를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부터 살펴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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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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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발견』​​

캐스린 슐츠 (지음) | 한유주 (옮김) | 반비 (펴냄)

얼마 전 학전의 대표 김민기 님이 세상을 떠났다. 난 사실 그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그의 노래들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 들은 풍월이 있어서인지 나직이 흥얼거릴 수 있는 정도이다. 물론 유명한 노래 상록수, 작은 연못, 아침 이슬, 봉우리 등은 아마도 대중적인 노래 중 한 축이었을 것이다. 특히 나는 그중 작은 연못을 좋아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그 노래가 남과 북을 상징하는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김민기 님의 예전 인터뷰를 읽고 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작은 연못에 사는 물고기 두 마리... 서로 싸우다가 한마리가 죽는다. 결국 물도 썩어가서 마지막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 연못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노래가 왜 이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냥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왜 이 단순한 가사가 나에게 이렇게 다가왔는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상실에 대한 괴로움이라고 여겨졌을 뿐이다.

여기 상실에 대한 이야기하는 에세이집이 있다. 캐스린 슐츠의 개인적인 회고담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상실과 발견]. 그는 어느 날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 된다. 거의 돌아가시기 여덟 달 전이다. 그 이후 캐스린은 생각한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과 발견한 것 사이의 간극을 말이다. 어쩌면 상실하는 순간 또 다른 발견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우리가 마주치고 경험했던 모든 것은 바로 그러했으니까 말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이를 뜻하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한자성어이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반드시 정해져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도 있다는 말이다. 불교 경전에서 나온 말이다. 아마도 이런 내용의 에세이를 동양인이 썼다면 제목은 상실과 발견이 아니라 회자정리 혹은 거자필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커다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고 소중한 것들의 상실 역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대단한 발견만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소소하고 반짝이는 것들 역시 언급한다.

캐스린의 이야기는 언젠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실을 경험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 것처럼 당연한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상실을 경험하는 과정을 독자는 온전히 지켜볼 수 있다. 캐스린의 부친인 아이잭 슐츠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할 때 그에게서는 다정함이 느껴졌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과정은 소란스럽지 않고 평온했다.

상실에서 이어지는 발견은 [그리고]라는 파트를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삶에서 작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상실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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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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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참 이상한 습성이 있다. 바로 보고 싶은 것을 미루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은 바로 사는 편인데.. 영화나 책, 음악 등등 진짜로 듣고 싶고, 읽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은 미룬다. 최근 그렇게 미루다가 보게 된 영화가 있다.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란 영화이다. 그 영화에는 바니 아저씨라는 체홉의 희극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데 거기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어둠과 고통을 그저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것...

왠지 이 책을 보고 그 영화가 생각났다. 우리는 저마다 어두움이 있다. 그리고 고통이 있다. 아마도 토니, 캐리스, 로즈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보통 고통의 실체는 뭉뚱그려지게 마련인데 소설에서 그것은 형체가 있다. 그리고 너무도 분명하게 악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그 존재를 지니아로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혼까지 갉아먹는 그녀를 세 인물은 어찌 되었든 받아들이고 견딘다. 그리고 후에도 여전히 그 존재를 기억한다.

어쩌면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그저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것. 인생이란 어찌해야된거나, 사람마다 이래야한다거나..등 등 .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그저 받아들임의 영역이다. 사는 것 역시 왜 사냐고 물어보는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그저 태어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결혼할 신부라고 생각했지만 그 결혼의 끝은 죽음이었음을 말하는 독일 동화처럼.. 인생 역시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처음부터 그 고통을 말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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