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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5월
평점 :
『폭탄』
오승호(고 가쓰히로) (지음) |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 (펴냄)
한번 잽싸게 휘몰아치는 그런 소설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오승호라는 작가를 안다면 이 소설 뒤에 숨어있는 이면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눈치챘겠지만... 소설은 우리에게 먼저 목적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따라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선택을 제시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받아들일 것인지, 혹여 그렇지 않을 것인지... 끊임없는 선택을 말이다. 독자는 순간 여기에서 당황한다. 악당에게 고개를 숙이면 왠지 스스로 비열하게 느껴지니 행여 동조하더라도 그 이면을 숨기고 싶다. 하지만 오승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하고도 다채롭다. 심지어 악당으로 나오는 캐릭터조차도 어느 정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자칭 폭탄 예언가인 스즈키 다고사쿠가 그토록 루이케의 입에서 듣고 싶어 했던 말... 당신도 나와 같은 부류이지 않느냐는 그 동조의 생각들... 스즈키가 자신의 입을 열게 된 것은 필경은 루이케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 같은 것 망해버리길 동조하는 인물임을 그가 알아본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아무리 살의가 넘치더라도, 증오가 넘치더라도 대다수의 선량하다고 여겨지는 시민들은 절대 마지막까지 갈 수 없는 선이 있다.
소설 속 기요미야의 말처럼 설령 속으로 이 세상 따위 망해버리라고 바라고 있다 해도, 멸망을 바라고 있다 해도 마지막 버튼은 누르지 않는다. 누르기를 포기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자신 옆에서 다쳐서 쓰려진 누군가를 보살펴주는 것이 인간이다. 설령 곧 죽을 목숨이더라도 말이다.
스즈키는 일명 무적의 사람이었다. 노숙자로서 아무런 희망 없이 의미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한 여인 아스카를 만나고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마 그 여인이 없더라면 스즈키는 그저 그렇게 노숙자로서 살아갔으리라... 살인자로 전대미문의 폭탄 테러범으로 낙인찍히지는 않았으리라... 왜 스즈키는 그런 어리석은 제안을 한 것일까...
작가 오승호는 스즈키라는 캐릭터를 요즘 사회에 흔하게 있을 법한 인간 유형이라는 말을 한다. 인터넷 등지에서 남들이 만든 양식과 언어에 편승해서 그럴듯한 논리로 민감한 사회 문제를 정의 내리고,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찾아서 믿으면서 자기 논리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서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 믿고 싶은 콘텐츠들만 접하고 절대 다른 쪽은 보지도 찾지도 않는 사람... 작가는 스즈키 다고사쿠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 시대의 빌런을 만들어 냈다.
요즘은 뉴스만 틀면 세상에 이해 못 할 일들이 넘쳐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일들은 그 이상으로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고, 심지어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생겨난 자들일까? 자기대로의 논리는 통할지 모르지만 그 논리로 남을 설득할 수는 없다.
스즈키와 아스카, 그리고 도도로키, 기요미야, 루이케, 유카리...등등의 캐릭터를 통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 불안, 살의, 고통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마지막 버튼은 누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라는 것 또한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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