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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 나씽 - 북아일랜드의 살인의 추억
패트릭 라든 키프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21년 4월
평점 :
마치 한편의 소설과도 같은 논픽션이었다. 역시 인간의 역사와 삶은 소설,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인간의 역사 속에는 어떻게 배낄 수도 없고 흉내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내가 아일랜드라는 지명에서 생각나는 것은 붉은 머리, 강인한 의지, 왕자의 게임 촬영지, 감자를 즐겨먹는 사람들, 술... 등이다. 하지만 그곳에 서린 폭력의 역사와 비극은 대한민국과 흡사해서 읽는 내내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광기에 사로잡히면, 신념에 잡아먹히면 그 인간은 얼마나 무력해지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놀랄만큼 대담해지는가?
아일랜드, 특히 북아일랜드 독립의 역사와 영국정부의 대립에서 난 4.3항쟁이 생각났다. 서로 개신교와 카톨릭으로 나누어지고 또 거기에서 급진 IRA와 온건파로 나뉘고 그 속에 서린 놀랄만한 폭력과 스파이라는 이름의 배신자들...
4.3에서도 빨갱이, 반공주의자, 사회주의자로 몰리고 거기에 개신교가 반공이라는 깃발 아래 앞장서서 그들을 색출하고 죄없는 민간인을 비롯해 아이까지 죽음에 내몰린 사건.... 그것으로 인해 한 마을 주민이 둘로 나뉘어서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믿지 못하는 상황은 아일랜드의 비극과 맞닿아있다.
세이 나씽은 한 여자의 실종으로 시작된다. 진 맥콘빌이라는 여자, 홀로 10남매를 키우며 하루 하루 근근히 살아가던 여성, 진은 왜 스파이로 몰렸을까? 돌러스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IRA 요원이 누구인지 색출하는데 영국군에 협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는... 이미 죽은 자의 입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않는다.
역사란 참 아이러니하다. 그 폭력의 비극 가운데 선 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올가매어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갔다. 진 맥콘빌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죽고 추위와 배고픔에 내몰린 그들은 끔찍한 아동 수용시설에서 보내져야했고 거기서는 강간과 노동이 일상처럼 일어났다. IRA에 충성하여 젊은 시절을 투쟁과 감옥에서 보낸 돌러스와 마리안 자매 역시 감옥에서 얻은 섭식장애로 괴로워했으며 돌러스는 죽음의 순간까지 여러 중독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장 이해되지 않고, 또 가장 시류에 편승하는 자는 바로 제리 아담스다. IRA의 수뇌부에서 교묘하게 신페인당의 당수로 올라섰다. 그는 자신이 IRA에서 저지른 폭력을 부인했으며 심지어 스스로 IRA를 부인했다. 그의 명령을 따른 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데 말이다. 명령만 하면 스스로 그 일을 저지른 자가 아닌가? 손에 피를 묻힌 자가 아닌가? 단지 아래에서 알아서 했다?? 꼭 대한민국 누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 시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는 대다수가 죽었다. 그러나 제리 아담스는 살아있다. 그는 트위터에 테디베어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제 2 정체성을 찾은 듯하다. 폭력의 역사를 부정하면 없었던 일로 되는가? 그 일로 고통받은, 아직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고통은,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가 않는다. 고통은 대를 잇는다.
고통을 끝낼 수 있는 길은 거기에 가담한 자들, 모두 사죄하는 것 뿐이다. 살아있는 자들이 반성해야 죽은 자들에게 최소한 용서할 빌미라도 주는 것 아닐까? 죄지은 살아남은 자들 역시 앞으로 흙으로 돌아갈 자들이기에 말이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