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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표지에 저자의 사진이 들어있는 책은 난 왠지 그 유명세에 기대는 것같아서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 <동의> 띠지에 있는 작가 바네사 스프링고라의 사진에는 많은 것들이 숨은 것처럼 보였다. 긴머리의 턱을 괴고 웃는 모습 뒤로 숨은 얼굴, 그리고 얼굴에 핀 주름들 너머의 고통의 시간들이랄까?
겉 표지에 구겨진 침대시트가 걸쳐진, 좁은 방에 놓인 거대한 침대가 삐꼼히 보인다. 그 표지 자체도 할 말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약간은 숨이 죽은 노란빛에 언뜻 언뜻 비치는 초록색 면지까지 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니, 중간에 너무 화가 치밀어 이 작가가 어떤 작자인지 너무 궁금하여 살짝 찾아보기도 함) 저자의 책 속 남자 주인공을 인터넷 상에서 검색해 본 것이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두 권이 있었으며 난 그래도 국내에서 덜? 유명함에 안도했다. 만일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였다면 그 배신감은 말로 할 수 없었으리라... 가브리엘 마츠네프...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V의 어린 시절을 동의라는 명분으로 통째로 뒤흔든 가해자...
얼마전 들어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말이 온 사회를 흔들었다. 덩달아 피해자 다움이란 말도 말이다. 하지만 왜 가해자에게는 그런 말이 안붙는가? 너무 가해자스럽지않은 가브리엘의 행태가 아니, 자신의 잘못을 인식조차 못하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그만을 신봉하는 열혈 팬들에 둘러쌓인 모습이 인간의 본질인가? 절망스러웠다.
동의는 소설의 외향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한 권의 거대한 고발장이자 자기 기록이다. 왜 가브리엘의 글들이 로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다른 지 저자는 그 행위의 파렴치를 예로 들었다. 그는 반성하지않고 사랑이라는(이말도 쓰기 싫지만, 어쨌든 그의 입장에서는 사랑이라고 우길테니) 이름으로 자신의 행위를 미화한다. 자신의 행위가 사춘기 시절 소녀들에게 악영향을 준 건 생각지않고 그들을 성적으로 해방했다고 믿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 더 화가 나는 건 V를 둘러싼 어른들이다. 특히 그녀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고 G를 만나게 한 원인제공자인 어머니 말이다. 사춘기 딸을 고집세고 말을 안듣는 다고 그 관계를 끝까지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지로 밀어 넣었다. G와 헤어진다고 말했을때 어머니가 한 말이 난 아직도 충격이다. "그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
왜 자신의 14살 딸을 50살의 늙은이와 만나게 하면서 아니, 관계를 인정하면서 그 관계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지... 더 섬세하게 "그가 너의 싱싱한 몸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가 너의 막 씻고 나온 엉덩이와 유방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로 말해야 정직한 거 아닐까? 왜 너의 섹스로 인해 내가 고통받아야하느냐는 어머니의 말에서는 어머니, 당신의 14살을 생각해보세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직도 동의라는 명분 하에 아버지의 부재를 겪거나, 돈의 부재를 겪는 많은 청소년기의 소년, 소녀들이 악마같은 어른의 취향으로 그루밍되어 성 노예로 길들여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가해자의 가장 흔한 말 "우리 사랑했잖아..... . " " 너도 좋았잖아...... ." "난 너를 진심으로 대했어." 너무 뻔해서 식상하게 느껴지고 구역질나는 그 멘트들...... . 똑똑해지자.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해야한다. 권력자든 비권력자든, 예술가든, 사업가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어느 누구도 아이를, 청소년을, 아이답지않게, 청소년답지않게 만들 권리는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떻게 <동의>에 대한 마음을 결정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난 조금 이 돌덩이를 가슴에 품고 좀 더 살아가야겠다. 그리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어른으로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어른인 것은 싫지만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에 대해서 말이다.
용기있는 바네사 스프링고라에게 박수를 보내고 또 이 책이 하나의 감옥이 된 영원의 죄수 가브리엘 마츠네프에게 안타까움?을 전한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