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모텔
백은정 지음 / 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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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모텔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모텔을 다녀본 지도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몇 달 전 옆자리의 젊은 남자 동료가 무슨 축제에 간다고 숙소 찾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보고 있는데, 숙박 앱으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많이 놀랐다. 가격도 예상과 다르게 많이 올랐지만(당연하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더냐), 예전의 모텔이 아니었다. 일부러 호텔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물론 호텔을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과 이유도 분명 있다) 깔끔하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사진만으로 그 숙소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지만, 어차피 직접 가서 미리 확인할 수 없다면 이 방법만으로 숙소를 정해야 한다. 주변의 교통정보는 물론이고 편의시설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소요시간이나 거리까지 알려주니 이건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 정말 편해졌구나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가 모텔 운영자의 속내를 들으니 마음이 이상하다. 모텔은 단순히 숙박업소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구나 싶고, 내가 일상에서 이용하는 많은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손님으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게 이렇게 당연할 수가 없다. 물론 그중에는 진상 고객도 있고, 원칙을 지키지 않는 모텔 사장도 있을 테다. 그 가운데 지킬 것은 지키면서 장사하고자 하는 모텔 사장이 여기에 있다.


서른다섯 개의 객실을 운영하며, 방마다 손님을 받는 저자는, 그 방에 남겨진 이야기를 담았다. 많은 이유로 사람들은 모텔에 드나든다. 모텔은 여행자의 숙소가 될 수도 있고, 연인의 데이트 장소로 선택받기도 한다. 불륜 관계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직장인의 출장에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공간을 애정으로 가꾸면서, 생업을 이어나간다. 처음 서툴렀던 운영 방식에서 좌충우돌, 우여곡절도 여러 가지. 이제는 7년 차 베테랑 모텔 운영자가 되었다. 우아하게 들어와서 객실을 엉망으로 만들고 도망친 고객을 잡으러 가기도 하고, 연락도 없이 갑자기 그만둔 직원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미성년자 혼숙을 확인하지 못해 당황스러운 결과를 맞닥뜨리기도 하고 말이다. 성희롱하는 손님도 있거니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취객은 모텔 로비에 소변을 보기도 하는 게 모텔에서 일하는 이가 마주하는 일상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감정노동이 심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본 기분이다. 그러면서 모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사연 같은 이야기에 잠시 빠져들기도 한다. 사랑을 나누려고 모텔에 오는 어느 불륜 남녀는 무조건 잘못인 걸까. 잘못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타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 모텔 종사자로 그냥 자기 임무만 다하면 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프런트 안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사랑에 풍경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사랑을 그리고 상상한다. 그렇게 그들을 관찰하며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를 쌓아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처음에는 버럭 화부터 났던 일도, 점차 차분하게 다른 식으로 해결 방법을 찾는 걸 보면 말이다. 모든 인간을 다 이해하면 살아갈 수는 없지만, 이해의 노력은 가능한 일이고, 그들의 사랑 역시 다 다른 모습이기에 사랑의 다양한 형태마저 받아들이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을 펼친다.


읽으면서 재밌기도 했고, 몰랐던 세계의 한 부분을 엿본 것 같아서 놀랍기도 했다. 자영업자의 비애를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억울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일까지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은 분야였음을 알게 된다. 가끔 지나갈 때마다 봤던 이 지역 터미널 근처의 모텔들, 우연히 밤에 근처를 지나가다가 마주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무서움과 취객들이 먼저 떠오른다. 많이 소란스럽고, 고성에 싸우는 사람들도 여러 번 봤다. 나에게 모텔의 이미지는 그 정도였는데,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바라봤던 이 지역 터미널 근처의 모텔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어떤 모습으로 그곳에 드나들더라도, 그들 각자의 상황과 이야기가 있던 거라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사람이 있었다. 저자 역시 자기 일에 자부심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당당해 보였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들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며 더 나은 모텔을 만들고자 애쓰는 게 바로 베테랑 모텔 운영자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없는 그곳의 이야기를, 손님이 아니라 운영자의 고뇌를 들으면서 알아가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러브모텔 #백은정 #에세이 ##모텔이야기 #모텔진상 #모텔사장의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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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당근 매너온도 47.1. 처음 쭈뼛쭈뼛 당근에 물건을 올려놓던 때가 생각난다. 군고구마 해먹겠다고 샀던 직화구이 냄비. 아무리 에어프라이어가 맛있게 구워줘도 직접 불에 구운 그 맛이 아니라면서, 굳이 구워먹겠다고 샀던 냄비가, 일 년 후 없어졌다.(어디에 두고 찾지 못한 거였지만) 다음해 못 찾은 냄비를 뒤로 하고 또 하나 샀는데, 사고 나서 일주일 후 집안 어디선가 냄비를 찾았다. , 이제 똑같은 냄비가 두개가 되었고,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도 않는 냄비가 두개인데,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당근에 가입하기로 했다. 새 상품 가격은 오천 , 당근에 올린 가격은 삼천 . 너무 비싼가? 안 팔리면 어떻게 하지?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알림이 울린다. 그 경쾌한 소리 당근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바로 집 앞으로 나가서 팔고나니, 이거 정말 신기한 거다. 나에게 불필요한 물건을 찾는 사람이 있고, 누가 이걸 살까 싶은 노파심은 저리가라, 분명 누군가 살 사람은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당근마켓에 빠져들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가끔씩 집안 물건을 정리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버리기 아까운 건 저렴한 가격에 당근에 올린다. 그리고 그 경쾌한 울림을 기다린다. 당근!


버려질 위기에 처한 물건들 또한 한 번 더 기회를 얻고 중고 시장에 서 있다. 재고되기 위해. 거기서 마지막으로 새로워질 기회를 얻는다. 모든 미물은 새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 꼭 팔아야 하는 사정과 마침 그걸 찾던 손이 만날 수도 있다. 고맙잖나,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감각은.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어쩌다, 당근마켓 36페이지)


어쩌다 이런 책이 나왔을까. 아마도 많이 공감하지 못했다면, 중고거래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뻗어나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가볍게 읽으려고 펼쳤는데, 혼자 웃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벌써 다 읽었네. 사실, 이 책은 읽은 게 아니라,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느낌을 아는 사람끼리 만나서 수다 떠는 것 같다. 어쩌다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물건 거래 말고 무엇을 얻어가는 곳이 되었는지 말이다. 물론, 가벼운 수다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깊이 있는 이야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삶의 한 순간, 어떤 장면들이나 생각을 오래 생각하면서 읽기도 했다.


이 물건은 어떻게 전 주인 손에 들어가게 되고, 어쩌다 중고거래 목록으로 나왔을까. 저자처럼 나도 궁금했다. 누군가는 분명 필요해서 소유했을 테고, 그걸 가지고 있는 시간동안 의미가 생겼을 텐데, 다시 다른 사람의 손에 가게 되는 과정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하고. 저자가 어렸을 적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고, 이방인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읽히는 동안 한국어는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자기 안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어를 붙잡고자 시인이 되었다는 말에, 잠깐 놀라기도 했다. 인간이 소중한 것을 붙잡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나였다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한국어의 운명을 자연스럽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방인의 삶에서 그리워지는 건 아마도 과거의 시간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저자 역시 그 시간이 그리워 사진가가 되었다고 하니, 사람 살아가는 마음 참 비슷하고, 닮은 게 마냥 또 신기하다.


누군가 찾아주길 기다리는 물건의 마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느낌을 프리랜서인 자신의 일에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 찾아주어야 일이 생기고, 그에 따른 수입으로 연결되니까. 그러니 중고 시장에 올라온 물건이나, 상점의 진열에 전시된 물건이나, 누군가 찾아줘야 수입이 생기는 프리랜서나, 뭐 비슷하다는 건데. 그 비슷함에 간절함이 있다.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 당근거래의 현장이 아닐까. ^^ 비슷한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오래된 것을 붙잡고 싶어 하고, 지나간 것을 떠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들어오고 나가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에서, 온갖 사람들이 드나든다. 물건 값을 깎으려고도 하고, ‘쿨거래로 빨리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하고, 무료로 나누기도 하면서 이곳을 단순히 거래를 위한 시장과 다른 곳으로 만든다. 그런 것을 보고 작가는 말한다.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고.


당근거래는 단순히 내가 가진 물건을 중고로 사고파는 장을 넘어서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사실 바빠서 그렇지, 시간이 될 때 앱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있다. 버튼을 잘못 눌러서 중고거래 말고 다른 카테고리에 들어간 적이 있다. 저자의 이야기에도 있는데, 누군가는 운동하는 일상을 올려놓는다. 어디서 주운 분실물을 제보하기도 한다. 어느 마트에서 할인행사를 한다고 광고도 한다. 무엇보다 생활정보를 나누는 데서 나도 약간 의아하기는 했다. ‘, 누군가는 이런 질문이나 고민을 올릴 수도 있구나, 누군가 이 글에 자신의 의견을 남길 수도 있구나, 당근마켓, 이곳에서.’ 보통은 네이버 지역 카페에서 봤던 장면을 당근마켓에서 보니 좀 신기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이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 냄새를 마구 풍긴다. 그리고 가깝다. 내가 사는 이곳, 지방 소도시의 작은 동네 이야기였으니까. 내가 아는 그곳에서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마트에서 장을 본다. 그러면서 나도 저자처럼 고민을 떠올린다. ‘동네이웃이 어디까지일지. 바로 앞집 사는 아저씨와도 몇 번 인사한 게 전부인 이런 삶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와 우연처럼 마주치면서 안부를 물을 수도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올까 궁금하다.


맞닥뜨렸지만 갖지 못한 물건의 목록은 그렇게 하나둘 늘어간다. 놓친 것에 울지 않는 법을 구매자는 배우게 된다. 아름다운 의자는 또 올 것이다. 물론 똑같은 물건은 거의 오지 않는다, 당근마켓에서는. (어쩌다, 당근마켓 65페이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고거래 팁(?)도 배울 수 있으니 잘 살펴보길 바란다. , 이미 아는 노하우일 수도 있지만, 네 맘과 내 맘이 같으니, 서로 공감하면서 거래하면 더 훈훈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 그러니 더 매너를 지키면서 거래할 수 있는 자세? 순식간에 팔려버려 내 것이 되지 못한 물건을 보는 안타까움도 있고, 언제 팔릴까 싶어 하염없이 기다리다 몇 년이 지난 후 갑자기 팔린 물건도 있다. 빠른 정리가 목적일 수 있겠지만,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배우는 곳이었다는 거. ^^ 예를 갖춰 최선을 다해 가격 흥정도 가능하고, 더운 날 물건 사러 온 구매자에게 얼음물을 대접하는 판매자도 만날 수 있다.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익명의 공간이지만, 채팅으로 물건과 다른 것을 거래하는 마켓이지만, ‘매너온도라는 장치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 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어떤 게 이 물건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사고파는 물건 이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는 그런 곳, 당근마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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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이석용 지음 / &(앤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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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는 물론이고 사형 집행은 더더욱 진행되지 않는 나라. 사형 집행이 단순한 의미도 아니고, 외교적인 이유도 있다고는 하니 쉬운 문제는 아닐 테다.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범죄심리 전문가의 말을 떠올려보자면, 연쇄살인을 일으킨 범죄자를 만났을 때 그가 물었단다. 자기 사형이 선고되는 거냐고. 아무 잘못 없는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으면서, 정작 자기 죽음은 겁나는 거였구나 싶은 게, 어쩌면 본보기라도 이런 잔혹 범죄에 사형 선고가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집권 3년 차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쓸고 있는 와중에 사회적 이슈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얼마나 일을 못 했으면, 한번 떨어진 지지율이 오르지도 못하고 임기 끝나가는 시기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어지간히 일을 못 하는 대통령인가 보다. 대통령과 주변인들은 지지율 상승을 위해 시나리오를 짠다. 바로 오랫동안 없었던 사형 집행을 이뤄내는 것.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이보다 더 큰 이슈는 당분간 없을 것이고, 무너진 지지율 회복에도 분명 효과가 있을 거로 여긴다.


그동안 사형 선고는 있었지만, 사형 집행은 없었던 세월이 얼마나 길었던가. 뉴스를 장식하는 잔혹 범죄를 접할 때마다 사형 선고를 운운하지만, 정작 사형 선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사형 집행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거야말로 정부가 준비한 깜짝쇼가 될 테다. 정부 관계자들이 사형수 60여 명 중 사형 집행의 주인공 3명을 선발하는 작업을 한다. 인권을 외치는 이들에게 대항할 인간미 넘치는 장면도 연출하려고 계획한다. 사형 집행 전날 사형수가 원하는 음식으로 최후의 만찬을 제공하는 게 바로 그거다.


소설은 이 치밀한 계획과 이 계획에 참여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이게 참 묘하다. 정부 관계자들이야 자기네 원하는 지지율 회복이 목적이라지만, 그 구성에 모인 사람들 각자는 또 자기만의 목적이 있다. 참관인으로 선발된 기자는 특종이 목적이겠고, 일반인 위원은 자기를 알리는 게 원하는 일이다. 그 외의 사람들, 정부 관계자들이야 자기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고, 정치적 목적을 이뤄내는 게 궁극적 바람이다. 그 중심에 요리사 X’가 있다. 철저하게 신분을 감춰주는 것을 조건으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를 책임진다. 가장 궁금하고 가장 뜬금없이 주인공처럼 비치는 인물로 보였던 요리사 X. 그가 만든 음식을 먹고 분위기를 바꾸고, 절대 입을 열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숨겨진 장소를 말하는 등 사형수들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지막 모습을 장식하고 떠난다.


읽다 보면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지만, 물론 처음부터 그걸 알 수는 없다. 그저 막연하게 이거 뭐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과 요리사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보고) 사형수들이 보인 반응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한 명의 사형수가 음식을 먹고 떠나갈 때마다, 요리사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별다른 요구나 설명이 없었는데도 사형수의 마음을 깊게 건드릴 수밖에 없는 음식을 제공하며 그들의 마지막에 다른 모습을 보이고 가게 하는 능력을 갖춘 이의 정체가 궁금했던 거다. , 결말을 보면 다 알게 되지만, 읽는 내내 이 궁금증으로 소설의 몰입감은 저절로 높아진다.


특이한 소설이라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는데, 등장인물 각자의 사연과 목적 있는 사형 집행 참여에 놀랍기도 했다. 소설의 끝부분에 다다라야 이 조각들이 모여 소설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사형 집행의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설 수 없는 마음이 갈팡질팡하다가, 사형수의 잔인함에 눈을 뜰 수 없을 때는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가, 이 모든 선택은 각자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의견일 수도 있겠다는 씁쓸함까지. 어느 것 하나도 완벽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못하는 마음이었던 거다. 그러면서 소설 속에서 묻는 것들을 생각한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사형수에게 인권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혹시라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사형수가 된 건 아닌지. 웃으면서 읽었는데, 추리 소설이 아닌가 싶을 만큼 반전이 있고,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맞닿은 이야기에 더 어려웠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에서까지 쓸모를 찾는 등장인물들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기심이 그대로 담긴 것 같아서 서늘했다. 사형제도의 존폐를 따지는 것 역시 각자의 이익을 계산하며 이뤄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절대 가볍지 않은 주제로 소설을 즐기게 하면서 상당히 깊은 고민을 남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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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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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니까, 요즘의 대학 생활과 비교할 바는 못 되겠지만, 학자금 대출을 모르고 졸업을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고, 공부를 너무 잘해서 장학금을 받은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좋은 조건을 이용하게 되어, 어느 정도의 학점만 유지하면 안심하고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후에 시작되는 거라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또 그다음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며 사는 것만 걱정하면 되는 거로 생각했다. 그것마저도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청춘을 보면 나도 모르게 걱정의 마음으로 보게 된다. 내가 여유로우면서 던지는 시선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막막함에 더해진 무언가가 더 삶을 힘들게만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당장 가까이 있는 큰조카만 봐도 그랬다. 자세하게 몰랐는데, 이미 학기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학생이면서 채무자 신분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거다.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채무자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고단함도 감당해야 한다. 생각하고 계획한 그대로 다 잘 된다면 다행인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취직도 어렵고, 일하면서 돈 모으기도 간단하지 않다. 중년도, 노인도 힘들지만, 청년도, 힘든 세상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도 다르지 않았다. 이 청춘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 한가득 마음으로 읽게 된다. 두 주인공 정용과 진만은 지방 사립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그들의 취업은 진행 중이다. 저렴한 월세를 구하고 둘이 함께 산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선택한 방법인데, 나는 이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의 끝이 좋은 걸 거의 못 봤기에. 함께 살기 시작한 둘은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편의점, 고속도로휴게소, 출장 뷔페, 택배 상하차 등 돈이 되는 일은 무조건 했다.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려고 팬티스타킹을 입어가면서 말이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데, 그럼 이들 앞의 세상이 조금은 살기 괜찮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들은 그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20대일 뿐이고, 언제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삶을 버티는 이들을 볼 때마다 울컥해지고, 때로는 수치심도 느낀다. 이렇게까지 악다구니 써가며, 비난의 시선을 받아내며 살아가야만 하는가 싶은 마음. 읽는 나도 이들의 하루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몰입감이 상당한 소설이다. 슬프고, 애틋하고, 한숨이 나고, 한때 나도 엄마에게 할 소리 못 할 소리 했던 것도 기억나고. 부모가 무엇을 물려주느냐에 따라 자식 인생도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따지듯 말한 적이 있다. 부가 부를 낳고, 가난이 가난을 낳고.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인생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니, 그저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정용과 진만이었다. 특히 진만은 좀 어리숙해 보이고, 마음이 여리기까지 하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무슨 오지랖인가 싶을 정도로 타인의 문제에 잘 빠져든다. 단순히 공감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진만의 현실이 너무 심각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정용은 진만과 그런 면에서 좀 다른데, 그게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의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진만을 보면서 답답했던 마음이 터져버리고 진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된다. 그 길로 사라진 진만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진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주한 진만의 소식에 놀란다.


나도 놀랐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하기도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니겠지 하는 기대로 진만의 소식을 나도 정용만큼이나 기다렸다. 현실이 팍팍하지만, 몇 년을 함께 산 친구에게 아픈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털어내고 돌아올 거로 믿었다. 매번 두루뭉술, 속 좋은 사람처럼 행동했던 진만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잠깐 바람 쐬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진만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네. 여전히 진만에게 현실은 고단했고, 무엇이든 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는 돈을 벌어야 했고, 그러려면 뭐든지 해야 했다는 거. 그것 말고는 남은 게 없었다.


이들의 슬픔마저도 웃으면서 읽게 하는 재주를 가진 작가이지만, 그래도 마냥 웃음만을 선사하지 않았다. 작가가 그려낸 웃음 속에 진득하게 가라앉아 있던 현실의 무게감이 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 게 아닐까 싶었다. 혼자 키득거리면서 이 소설을 읽었지만, 아무리 해도 벅찬 현실이 지워지지 않았다. 때로는 간신히 버틸 수밖에 없는 날들,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그려지는 문장 속에서도 드러나는 건, 정용과 진만이 함께 했을 때 튀어나오는 웃음이었다. 무슨 만담을 주고받듯, 각박한 일상에서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을 수도 있구나 싶은 안도. 그러네, 둘이 함께였을 때 더 잘 살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믿음 같은 거였나 보다. 혼자서는 한없이 어렵고 엄두도 내지 못할 날들이, 둘이어서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었던 듯하다. 크게 바라는 것 없었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날들에 필요한 가장 중요했던 거 하나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날들이었다고 말이다.


작가가 아무리 소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고 해도, 현실의 막막함과 불평등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태어난 순간 이미 결정된 것만 같은 불평등의 시작이 참 우울하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부러운 것도 많고, 노력하면 바뀔 것 같은 기대도 하지만, 사실 뭐 그렇게 큰 기대가 되지도 않는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게 삶의 진리 같다는 생각이 진해서.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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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방 안에는? 타인의 취향 2
이주미 지음 / 씨드북(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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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큼이나 주제가 너무 귀여워서 호기심이 생기는 그림책이다. 누군가의 가방 안에 담긴 것들로, 그 사람의 하루를, 그 사람의 관심을 알 수 있다는 게 재밌다. 언젠가 지인의 가방 안에서 쏟아지는 물건들로 놀란 적이 있다. 반짇고리, 손톱깎이, 수건 등 평소 사람들의 가방 안에서 보기 어려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어쩌자고 가방 무겁게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혹시 밖에 있을 때 필요할까 봐서 가지고 다닌다나. 갑자기 바지나 셔츠 단추가 떨어졌다거나, 깜빡하고 손톱 정리를 못 해서 지저분해 보일까 봐. ,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실과 바늘, 손톱깎이까지 가지고 다니는 사람 흔하게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순간적으로 놀라기는 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방 안을 채우고, 자기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다니기 마련이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필요하고 관심 있으면 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 가방 안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넣을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주인공 소년에게 새 가방이 생겼다. 자기 가방 안에 무엇을 넣을까 고민하던 차에, 다른 사람들은 가방에 무엇을 넣고 다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동생의 가방 안에는 유치원 원아 수첩, 애착 인형, 물통 같은 유치원에 가져가야 할 게 담겨 있다. 엄마의 가방 안에는 사원증, 태블릿, 텀블러, 화장품 파우치 등 회사에서의 하루가 그대로 보였다. 담임 선생님의 가방 안은 하트 사랑이 넘쳤다. 열쇠고리, 안경, 다이어리 등 모든 게 하트 모양이다. 태권도 사범님의 가방 안에는 태권도복, 파스, 달콤한 간식이 있다. 열심히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간식까지 넣어서 다니시나? 겉모습만 보면 호랑이처럼 무섭게 생겼는데, 의외의 면이 있다.


누군가의 가방 안을 들여다보면서 알게 되는 건,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것 정도? 털털해 보이는 사람의 가방 안에 의외로 필요한 소지품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담겨 있다거나, 화난 표정으로 다니시는 할아버지 가방 안에 길고양이 간식이 들어 있다거나 하는. 누군가의 다른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관심이나 직업, 성격이나 생활의 단면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많은 사람의 다양한 면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사람마다 가지는 하루의 모습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안에서 나만의 하루와 취향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다양한 용도의 가방이 등장한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 어르신의 허리에 찬 힙색, 털실로 짠 가방, 손수레형 장바구니 등 그 크기나 용도가 다양하다. 이 가방들은 저마다 자기 용도에 맞게 쓰이고 있고, 그렇게 사용하는 이의 하루를, 삶을 엿볼 수 있다. 나에게도 있고, 필요할 때 적절하게 사용하는 가방들이라 새삼스럽지 않다. 집안의 구석에 박혀 있는 여행용 가방, 어깨가 무겁다며 메고 다니던 크로스백, 얼마 전까지 뭘 배운다며 등에 메고 다녔던 백팩, 몇 개의 손가방, 뚜벅이라 장을 볼 때나 쓰레기 버릴 때 꺼내곤 하는 접이식 폴딩 카트 등. 짐 늘어나는 거 싫다며 최소한의 것만으로 생활하자고 다짐했는데, 말하면서 보니 내 가방의 종류도 다양하긴 하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못한다. 작고 귀여운, 딱 카드지갑이나 휴대폰 정도만 들어갈 것 같은 가방이 얼마나 많은가. 예쁜 원피스 입고 앙증맞은 그런 가방 하나 딱 챙겨 들면 귀염 폭발이겠지만(미안, 내 덩치나 외모는 귀염 폭발 절대 안 되니까 이런 상상이라도. ㅠㅠ), 그렇게 들고 나가면 불안해서 잠시도 밖에 있기가 어렵다. 언제나 내 가방 안에는, 지갑, 휴대폰, 화장지(밖에서 급한 일 생길까 봐), 화장품 파우치(화장 안 해도 들고 나감), 간단한 필기도구(뭘 쓸 일이 없는데도 챙김), 작은 생수 한 병(진짜 나이 들었나 봐, 자꾸 목이 말라), 그리고 제대로 읽지도 못할 책 한 권. 대충 챙긴 것만 이 정도다. 여기에 그때의 외출 목적에 따라 챙길 게 더 늘어나기도 하니, 내 가방 크기가 어때야 할지 상상이 되려나? 이러다가 정말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채우는 사람들의 가방 속 물건들과 다양한 가방의 역할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가방 안에는 꼬마 탐정의 추리 도구가 가득하다. 아마도 이 아이는 주변의 많은 것에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이 꼬마 탐정 덕분에 나도 타인의 가방 속 일상과 호기심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이미 내 가방 안에 가득한 것들 말고도, 또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 채우고 싶은지 상상하는 고민까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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