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는 우리는 각각 자신의 재능대로, 자신의 기질대로 열심히 삶을 견뎌 내는 중이었다. 어떻게 견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놀든 일하든 배우든 실패하든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 않은가. (초보 노인입니다 195페이지)


누군가가 나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당황스럽다. 내 나이를, 내가 모른다. 금방 계산이 안 된다. 그래서 태어난 해를 말한다. 몇 년생이요. 그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높게만 보였던 엄마의 나이를 훌쩍 넘어 벌써 이 나이라고? , 많이 늙었구나. 나보다 더 나이를 드신 분이 들으면 뭐라고 한마디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어쩌나, 내 마음이 그런 것을. 나의 늙음을 더 확실하게 실감할 때는 주변의 아이들이 커갈 때다. 겨우 걸음 떼고 말을 할 줄 알면서 어린이집 다닐 때가 엊그제인데, 금방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오랜만에 만나니 훌쩍 커버린 아이가 놀랍기만 했다. 이제는 그 아이가 수능시험을 준비한다고 할 때 놀란 건 말할 것도 없고. 이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수시로 놀라다가, 그때마다 내 나이를 한 번씩 생각한다.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구나 하는.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직도, 늙지 않았는걸.


이 책을 읽다가 보니 아직은이라는 마음이 자꾸만 짙어진다. 나이 들어간다는 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60세가 넘었으니 노인이라는 영역 안에 들어가는 건 당연할 걸까? 글쎄, 당연한지는 모르겠지만, 저자 역시 처음에는 너무 이상했다고 한다. 여전히 젊은 채로 늙음을 맞닥뜨린 것이 당황스러웠겠지. 특히나 노인이 모인 주거공간에 속하게 되니 더 어색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퇴직하고, 더는 도시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자 주택을 동경하다 실행에 옮겼는데, 그마저도 완벽한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몇 달 만에 다시 주거지를 옮기며 선택한 곳이 실버아파트다. 이 아파트의 입주 조건은 딱 하나. 60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다는 것.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어차피 노인의 삶으로 진입하는 나이이니 뭐 얼마나 다를까 싶었다. 삼시 세끼 음식이 제공되고, 대형 병원으로 이어지는 전용 통로가 있다. 단지 내 사우나와 헬스장부터 바둑, 탁구, 기타 같은 취미 활동까지 가능하니, 노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시설이 있을까 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저자가 들려주는 실버아파트의 일상으로 알게 됐다.


물리적인 나이가 말하는 노인과 자기가 부딪치는 노인의 마음은 달랐다. 입주민의 평균 연령이 80대인 실버아파트는 노인을 위한 최적의 맞춤형 주거지였지만, 저자 스스로 아직 노인이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노인의 세상에 뛰어드는 게 쉽지 않았던 거다. 처음부터 이 아파트에서의 삶이 부담스러웠던 건 아니다. 저자가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은 완전히 흡수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60세가 넘었다는 나이의 숫자와 노인이라는 자각이 별개의 문제라는 걸 인식했다. 저자는 이곳에서 초보 실버의 실체를 만나고, 생각과 실체의 차이가 크기에 오는 혼란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노년의 현실을 마주한 혼란이 저자에게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곳에서 그저 나이가 표현하는 노인과 마음이 말하는 노인의 차이만 발견한 것은 아니다. 실버아파트의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우연히 만나는 이웃과 대화하고, 뒷산을 오르면 산책하면서 비슷한 듯 다른 노인의 삶을 본다. 이웃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오는 할머니, 현관문에 채소가 든 봉지를 걸어놓는 이웃, 아픈 아내를 돌보며 기타를 배우겠다는 할아버지, 예쁘게 치장하고 커피를 마시러 나오는 할머니, 고운 옷에 아름다움을 뽐내는 할머니까지. 누구 한 사람 똑같은 노인이 없었다. 노인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경고를 들은 기분이었다. 80대로 보이는 어느 노인이 60대의 저자에게 한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지금이 제일 고울 때라는, 젊은 사람이 멋 좀 내고 다니라고, 이렇게 예쁠 때는 금방 지나간다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향기는 여느 쌍과 비슷하나 한없이 조용하고 담담한 곳. 왈칵 울음을 터트릴 만큼 서러운 일도, 울화통을 건드릴 만큼 화나는 일도, 이치를 따져 가며 목청을 높일 일도, 견딜 수 없이 기쁘거나 슬픈 일도 모두 숙성되는 이곳. 늙는다는 게 이런 건가? 그러나 단순히 늙음이 답은 아니었다. 실버아파트에 살면서 만난, 기도서 여인과 비슷한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각각 다른 방식이었으니 남을 이해하고 생각하며 결구에는 사랑하는 마음마저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초보 노인입니다 114페이지)


60대의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내가 50살만 됐어도.”였다. 하고 싶은 게 많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이 나이가 되니 제약이 너무 많아서 못 하고 있다고 말이다. 혹자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분명 나이가 주는 제약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최근에 뭘 좀 배우고 있는데, 내가 이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 하는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어차피 배우려고 했으니까 시간 될 때 배우고 있는데, 이걸 다 배운 후의 일이 막막하다. 조금 더 일찍 할 걸, 내가 30대에 했어도 더 할 수 있는 게 많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도 막상 시작했으니 끝을 보긴 해야 하는데, 불안한 마음이 항상 남아 있다. 내 마음의 나이와 공식적인 나이 사이의 차이가 점점 벌어질 때마다, 이 불안의 크기는 커질 것 같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내가 늙어 가고 있다는 거다. 노인의 초입에서 낯설기만 했던 저자의 감정과 다를 바 없을 테다. 버스에서 자리 양보를 받을 수도 있고, 회복 불가능하게 머리숱이 적어지는 것도 슬프고,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의 베개 자국이 없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병원에 갈 일은 점점 많아지고. 계속 생각해보니 노인이 되어서 좋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노인이 되지 않을 것도 아니니, 에휴. 남편이 항상 하는 말처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마음을 좀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우면 두통이 왜 생기냔 말이지.


마치 노인의 세계에 들어가는 예행연습을 지켜본 기분이다. 자신이 노인인지 거듭 되물으면서, ‘늙음을 마주한 이의 푸념처럼 들리지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노인이 모여 사는 아파트의 입주민의 관찰 기록이면서, 이 세계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 준다. 평온하면서도 역동적인 노인들의 모습이 마냥 새로우면서도, 조용하고 쓸쓸하면서도 놓치지 않는 일상의 활기를 마주한다. 솔직히 이 이야기를 다 듣고도 나는 아직 적응하지 못한 노인의 모습이 있다. 갑자기 이사를 온 옆집에 불쑥 들어온다거나, 지나가는 이에게 차를 마시라고 붙잡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인사하는(치매 노인) 일들처럼, 많은 상황이 낯설고 두렵다. 동시에 궁금해진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 시간의 삶을, 느리고 불편해지는 노년의 일상을, 수시로 마주하게 될 주름진 육체의 고단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잡아야 할지 말이다. 그 나이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조금은 미리 엿보는 마음에, 저자의 표현대로 초보 노인의 세계에 입성하게 되는 과정이 그래도 조금은 덜 낯설고 적응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도 생긴다.


혹시나 하는, 저자의 실버아파트 경험을 어둡게만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가 실버아파트를 떠난 것이, 노인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직온전한 노년에 들어서진 못한 젊은 노인의 귀한 경험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장이 실버아파트에서의 적응과 기록이라면, 3장은 초보 노인 저자의 솔직한 일상이 그려진다. 저자의 일상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오랫동안 유지한 지인들과의 교류, 꾸준한 취미생활로 다져져 은퇴 후에도 계속되는 활발한 외부 활동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거였다. 보통 젊은 시절에 활발하게 움직이다가도 나이 들고 은퇴하면서 점점 그 활동이 줄고,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일도 많은데, 외부 활동을 더 늘리지는 않더라도 기존 활동을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활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나이 들고 아픈 곳이 늘어나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떠난 집에서 외로울 수도 있지만, 자신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절망하고 위로하면서, 담담하게 죽음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늙어 가는 그 시간이 싫지만은 않을 듯하다. 태어나서 살아가고, 또 나이 들어가는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일이었다. 죽음을 기뻐할 것까진 아니어도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 죽음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접근해 간다는 것과, 나름 계획까지 세워 볼 수 있다는 것. 심지어 나를 죽게 하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죽음인 것은 알지만. 하여간. (나는 초보노인입니다 163페이지)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을 노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준비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저자 역시 초보 노인으로 노인의 삶을 아직은 온전하게 적응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시행착오 같은 시간으로 노인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자의 세대가 아니어도, 누구나 언젠가 만날 그 시기의 삶을 미리 엿본 시간에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노인의 시간 한가운데 있는 엄마가 생각나고, 5060대의 시간으로 들어갈 우리 부부에게 무슨 준비가 필요할지 고민하게 된다. 한 개인의 사소한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의미가 크다. 보고 듣는 게 많았고, 주변의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가까운 가족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무엇보다 계속해서 늙어 갈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무엇이든, 덜 외롭고 덜 아프게, 일상의 존재감이 무너지지 않게,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말이다.










#초보노인입니다 #고독사워크숍 #늙는다는건우주의일 #나는죽을때까지재미있게살고싶다

#나이듦의신세계 #노인의삶 #노년적응기 ##책추천 #문학 #에세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08-3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치게 노인에 매몰된다면 행복한 삶을 누리기가 어려워질 듯해요. 노인도 동일한 사람임을.

구단씨 2023-09-04 12: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노력하고 있는데, 생각처럼 간단하게 마음이 정리되지가 않네요. ^^
그래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거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공간을 넘나드는 소재가 새로울 것은 없었다. 이꽃님의 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역시 무한한 기대로 새로운 느낌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에는 시간을 거스른 공간에 있는 두 주인공이, 잘못 배달된 편지로 어떤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궁금했다. 소설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결코 식상하다거나 익숙한 설정이라는 말로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떡하지?’ 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누군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게 이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보려 시도했던 호기심은 차마 말을 꺼낼 수 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로 지내온 수많은 관계의 시선까지 아우르는, 적어도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면서 읽고 싶은 바람을 남긴다.


재혼을 앞둔 아빠는 은유에게 느리게 가는 편지를 쓰자고 제안한다. 아빠와의 외출 자체가 낯설고 흥미 없는 은유에게, 난데없는 펴지 쓰기는 더 어색하고 심통이 난다. 단 한 번도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봐주려 하지 않은 아빠였는데, 그래서 더 서운하고 화만 나게 했던 아빠였는데. 아마 이렇게 은유와 보내는 시간도 그 여자(아빠의 재혼 상대)가 시켜서 억지로 만들었을 것만 같다. 은유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엄마의 부재에 관해 아빠는 설명해준 적도 없다. 은유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냉랭했던 아빠였다. 열여섯의 은유는 오직 한 가지 바람으로 중2를 견디는 중이었다. 독립하는 것. 어떻게 해서든 독립해서 집을 나가는 게 은유의 바람이다. 그 정도로 아빠와의 시간은 무의미했다. 은유가 느리게 가는 편지를 쓴 것도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빠와의 외출에서,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원하니까 동참한 것뿐이다. 1년 후 자신에게 도착할 편지의 내용 따위 지금 이 순간 진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보낸 편지가 잘못 배달되었던 거다. 2016년을 사는 은유의 편지가 1982년의 은유에게 배달되었으니, 이런 대형 사고가 또 있을까. 세기를 건너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두 사람의 환경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2016년의 은유의 말이 1982년의 은유에게 쉽게 이해될 리 없다. 그런데도 무슨 인연인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는 계속된다. 다만, 시간의 흐름이 조금 달랐다. 2016년의 은유가 사는 시간은 현재의 속도로 흐르지만, 1982년의 은유의 시간은 흐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 2016년의 은유가 보내는 1년여의 세월은, 1982년의 은유가 보내는 30여 년과 같았으니까. 두 사람의 편지가 계속될수록 희미하게 안개가 낀 것만 같았던 뭔가가 서서히 드러난다.


성장한다는 건 뭘까, 계속 고민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성장하는 순간을 바라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성장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 먼저였다. 나 자신과 타인에게 내 마음이 좀 더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는 일.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기에,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성장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성장이란 단어를 유독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 시간을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은유의 이야기가 성장에 더 가깝게 다가간 것만 같은 느낌은 오가는 편지가 계속될수록 더 선명해진다. 처음 편지의 수신인은 초등학생이었다가, 은유의 또래였다가, 은유보다 연장자가 된다. 서로 다른 나이, 살아가는 순간 겪어야 할 일이 다른 환경,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자신의 고민이 다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편지는 거리감 없이 계속된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는,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나이가 아니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나이, 사는 곳, 배경이 달라도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장애가 되는 건 없었다. 어른이 되어 점점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으면서, 상대방을 계산하는 눈도 키워야 한다고 무언의 학습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셈이다. 너무 다른 우리가 고민하고 갈등하며 아파하는 것은 너무도 똑같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137페이지)


왜 우린 행복하게만 살 수는 없는 걸까. 왜 이 지독하고 끈질긴 불행은 계속 찾아오는 거냐고. (177페이지)


물론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사랑일 것이다. 성장을 보듬어 안은 사랑. 편지 형식으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너무 다르고 너무 먼 거리의 존재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닿고야 마는 우리 마음의 이야기다.


잘못 배달된 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렵다는 말만 계속 입안에서 맴돌고 있다. 독립을 빙자한 가출을 꿈꾸던 여중생이 누군가의 진심을 알고 이해하며 사랑을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뭉클했다. 이 소설을 읽어가는 순간들의 묵직함이 내 안의 어느 곳까지 파고들었는지 모르겠다. 은유의 편지가 잘못 배달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완벽해서, 그 누구도 어떤 잡음도 끼어들 틈이 없다. 서로에게 가 닿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옆에 있지만 존재감을 모르고, 어쩌다 묻는 안부에 진심은 들어있지 않고, 이기적으로 이해만 갈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면, 마지막에 은유가 듣게 된 진심 앞에서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두 명의 은유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걸 보면서, 어느 시간에서 결국 만나고야 마는 두 사람의 표정까지 상상하게 된다. 그들의 시간이 엮어낸 순간에 우리의 감정도 빠질 수가 없다. 은유뿐만 아니라, 우리도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존재일 테니. 일상의 소소한 순간이 오고 갈 때 만들어지는 건 이해와 공감이고, 그런 시간이 겹겹이 쌓일 때 사랑은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욕탕 도감 -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린 매일매일 가고 싶은 일본의 대중목욕탕 24곳
엔야 호나미 지음, 네티즌 나인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목욕탕을 그렇게 오래 다녔어도, 목욕하고 나와서 바나나우유 하나 입에 무는, 그런 추억이 내게는 없다. 그냥 본전 뽑고 가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피부가 빨개지도록 때를 밀던 기억은 있다. ^^ 지금도 비슷하다. 목욕탕의 후끈한 분위기와 실컷 때 밀고 나오면 축 늘어지는 그 노곤함을 즐기는 정도. 그것마저도 이제는 귀찮아서 잘 안 다니게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 혼자서는 아니고 엄마랑 항상 같이 다녔는데, 문제가 생겼다. 엄마와 계속 다니던 엄마 집 근처의 오래된 목욕탕이 지난봄에 마지막 영업을 하고 폐업했다. 다른 사람이 인수하기를 기다렸지만, 적당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에는 문을 닫고 말았다지. 어쩌나. 다른 목욕탕을 뚫어야지. 곧 서늘해지는 계절이 올 텐데, 벌써 걱정이다.

 

일상에 너무 가깝게 닿아 있는 목욕탕을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쳤다. 일본의 온천 문화를 들어보긴 했어도, 실제로 그 문화에 스며들지 못한 터라 막연했다. 저자가 그림과 세세한 소개로 들려주는 목욕탕 이야기는 너무 신기했고, 너무 자세해서 마치 내가 그곳에 다녀와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친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일본 사람의 목욕탕 진심에 새삼 놀랐다. 거창하고 고급스러워서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라기보다는, 생활의 일부 같은 느낌이 좀 더 진했다.

 

이미 부제에서 말해주었듯이,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린 매일매일 가고 싶은 일본의 대중목욕탕 24의 이야기다. 저자가 추천하는 순서는, 처음 초심자 코스부터 상급자 코스, 마스터 코스, 인간미 코스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목욕탕이 처음이어서 서먹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초심자 코스,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즐거움으로 목욕탕 애호가를 만족시킬 상급자 코스, 궁극의 최고 목욕탕을 만날 마스터 코스, 목욕탕 주인의 열정까지 느껴지는 인간미 코스. 하지만 굳이 이 단계나 코스를 마음에 두지 않아도 목욕탕을 즐기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보다는 소개해주는 각 목욕탕을 얼마나 더 잘 즐길 수 있을지 저자가 전달하는 팁을 눈여겨보는 게 좋겠다.

 

저자가 소개해준 24곳의 목욕탕 중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곳이 있다. 첫 번째는 목욕 후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닛포리 사이토유이다. 주인이 삼대째 이곳을 경영하고 있으며, 2015년 낡은 건물을 개축하면서 더 정성을 쏟았다. 냉온욕을 반복하면서 몸이 풀어지고 기분 좋을 때, 카운터로 향해 맥주를 마시는데, 이미 노곤해지고 뜨끈해진 몸 안으로 꽁꽁 언 맥주잔에 따라진 시원한 맥주가 몸 안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시원함이 이 더위에 허덕이는 나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상상만 해도 시원해 죽을 것 같다. (이 부분 읽다가 냉장고로 달려가 캔맥주 한 개 당장 꺼내왔다) ‘닛포리 사이토유목욕탕에는 여성 한정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기를.

 

두 번째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 유가 와고코로 요시노유이다. 녹음이 우거진 공원 가까이에 있다는 게 끌린다. 우리나라에서 웬만한 온천으로 검색해서 찾다 보면 도시의 외곽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던데, 나처럼 뚜벅이나 대중교통으로 찾아간다고 생각하면, 전혀 도심 속에 있지 않을 것 같은 이 목욕탕을 만나면 더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이곳에서도 시원한 생맥주를 판매한다. 생맥주를 주문하면 작은 안주도 함께 나온다고. ^^ 로비에 마사지 코너도 있다고 하니, 뜨끈한 물에 씻고 나와서 시원한 생맥주 한잔 들이켜고, 마사지 받으며 누워있으면 잠이 솔솔 올 것 같다.




 

어쩌다가 저자는 목욕탕을 탐방하며 그리게 되었을까. 저자에게도 일상의 피폐함이 찾아왔다. 건축 관련 일을 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극복하려 애쓰던 중, 목욕탕을 알게 되고 그 매력에 푹 빠져버린 거다. 목욕탕의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풀어지는 몸에 감탄하지는 않았을까. 이 즐거움에 빠진 저자가 SNS에 한 장씩 올린 목욕탕 그림은 좋은 반응을 일으켰고, 좋아서 즐기던 게 일이 되어버렸다. 200곳이 넘는 목욕탕을 찾아다니고, 줄자로 목욕탕 내부를 재어가며 실제처럼 그려낸 정성에 반했다. 위에서 내려보는 듯 그려낸 목욕탕 그림을 보고 있자니 너무 생생해서, 마치 내가 그 목욕탕에 다녀온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목욕탕 지배인으로 취직했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웃었다. 읽는 내가 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는데, 그때 경험한 회복의 방법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게 아닌가. 얼마나 즐거운 인생 이야기란 말이야.

 

리뷰에 다 담을 수 없는 다양한 목욕탕의 매력과 특징이 가득하다. 대중목욕탕 이용하는 방법부터 가격, 몸을 건강하게 하는 목욕법, 대중목욕탕 문화 같은 정보가 알차다. 저자 본인이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더 신뢰 가는 소개였다. 나중에 어느 날 일본에 가게 된다면 목욕탕 투어 일정을 짜도 좋을 것처럼, 일본 도쿄 근방의 숨은 보석 같은 목욕탕을 소개하는 안내서면서, 목욕탕에서 얻은 휴식과 안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찾은 여정이다. 미치도록 목욕탕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목욕탕에 가게 된다면 내 앞의 온탕에 퐁당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독자로서, 이 책은 반가웠고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무엇보다 저자가 그려놓은 목욕탕 도면 같은 그림에서 풍기는, 독자를 그 목욕탕 안으로 데려다 놓은 마법을 부린 시간에 감사한다. 책을 한 권 읽었는데, 더위에 지치고 피곤한 내 몸이 확 풀린 기분이다.

 

 

#목욕탕도감 #엔야호나미 #수오서재 ##책추천 #책리뷰

#목욕탕여행 #일본여행 #일본온천 #목욕탕 #사우나 #읽는동안내몸이풀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는 어제부터 북플이 안열립니다.
오늘은 알라딘 앱도 안열려요.

무슨 문제일까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은하수 2023-08-19 1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돼요 ㅠㅠ 어젯밤부터요 알라딘앱으로는 되네요 왜 그럴까요???

구단씨 2023-08-19 22:04   좋아요 1 | URL
저는 이제 알라딘 앱은 되는데 북플은 여전히 안되네요.

황후화 2023-08-19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되다가 이제 되네요 ㅠㅠ

구단씨 2023-08-19 22:04   좋아요 2 | URL
저는 북플이 여전히 안되고 있어요.
앱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도 안되네요. 뭔일인지...

황후화 2023-08-19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 저도 삭제하고 다시 하긴했는데요.....
그러게요 뭔일일까요?

구단씨 2023-08-21 19:10   좋아요 2 | URL
이유를 저도 잘.... ^^
다행히 오늘 오전에 복구가 되었네요.
 
외과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1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1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말복도, 입추도 지났는데, 너무 덥다. 늘 그렇듯, 읽고 싶은 책 쌓아두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계절이다. 게다가 깜냥도 안 되면서 몇 가지 일을 한꺼번에 벌여놓으니, 멀티가 안 되는 나라는 인간은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야금야금 책을 한 권씩 사고, 참새방앗간 들르듯 도서관에 가서 책도 좀 빌려오고, 그러다 다 못 읽고 반납하는 건 습관이 되어버렸고.


이 책을 읽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해야 할 일을 쌓아두고 미적거리면서 시간만 보내던 중, 어차피 할 일도 안 하고 이렇게 시간 보내야 한다면 읽고 싶은 책이라도 읽자는 해야 할 일 현명하게 미루기(?)’를 떠올렸다. 그럼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생각하다가, 역시 더운 여름에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하면서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추리소설이 최고라는 생각은 당연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최근작보다 오래전에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목록을 뒤지고 또 뒤지다가, 그 유명한 테스 게리첸의 외과의사를 고민 없이 선택했다. 책값은 저렴한데, 절판이네.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기에 쓰레빠 끌고 어슬렁거리며 또 도서관에 입성하여 이 책을 찾았는데. 오마낫! 이 책 상태가 영 거시기하다. 그래도 일단 왔으니 빌려오긴 했지만, 며칠째 쌓아둔 책 사이에서 또 잊혀가고 반납일이 다 되어간다. 안 되겠구나 싶어서 그냥 반납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물감 님의 페이퍼에서 다시 언급된 것을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이 아니면, 나라는 인간은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에 기어코 읽고야 말았다.




여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한밤중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한 범인, 앤드루 캐프라는 피해자를 강간하고 배를 갈라 자궁을 꺼내 간다. 4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다섯 번째 희생자가 될뻔했던 캐서린 코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연쇄살인은 끝났지만,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캐서린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2년의 세월 동안 세상에 벽을 세우고, 집안에 갇혀 살다시피 한 그녀가 이제 좀 숨을 쉬려나 싶은 순간, 3년 만에 다시 앤드루 캐프라가 저질렀던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분명 앤드루 캐프라는 죽었다. 그럼 그때의 사건을 똑같이 재현하는 이 살인마는 누구인가? 이번에도 똑같다. 피해자들은 목에 깊은 상처로 피를 흘리고, 배가 갈라있으며 자궁이 사라졌다. 날카로운 수술 솜씨,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해 보이는 이 살인마는 어느 순간 외과의사라고 불린다.


뭐 단순한 살인마는 아니라는 게 피해자들의 처참한 모습으로 이미 밝혀졌다. 보스톤 경찰청의 강력반 형사 토마스 무어와 제인 리즐리 형사가 이 사건의 추적을 시작하는데,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지난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캐서린 코델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막막할 때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건은 당연지사. 게다가 그때의 사건을 재현하는 이 살인마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 역시 앤드루 캐프라는 파악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추적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 범인의 근처에 다다르게 되고 오래전 사건부터의 또 다른 진실이 펼쳐지게 된다.


전직 의사인 작가가 어련히 알아서 잘 썼겠느냐 마는, 의학적인 지식 없이도 의학적인 장면들을 흥미롭게 읽게 된다.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아마 많은 독자가 읽으면서 저절로 상상하고 범인을 추리하게 될 거다. 캐서린 코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많은 사건과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의심하는 것부터, 범인이 다음 행보로 어떤 짓을 저지를지 예측하는 긴장감까지. 나 역시 많은 사람을 의심했다. 세상에는 안 그럴 것처럼 평범하게 생겨서 또라이 짓을 하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사람의 외모가 풍기는 이미지에 갇히면 안 된다고 스스로 세뇌하면서 살고 있지만(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러면서도 선뜻 이미지가 주는 호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 정신 차려. 섬세하게, 날카롭게,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보란 말이야. 그래서 집중하고 의심했다. 캐서린 옆의 가장 친한 동료이자 그녀에게 끊임없이 호감을 보이던 피터 팰코. 그 정도면 호감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워 보이던데? 아내를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토마스 무어도 의심된다. 점잖아 보이고, 동료 여자 형사를 무시하는 다른 형사들과 다르게 그녀를 존중하는 모습조차 그대로 볼 수만은 없었다. 토마스 무어와 파트너가 된 제인 리즐리 형사 역시 매의 눈으로 봤다. 그녀는 살면서 쌓아온 성차별의 역사를 가진 인물이기에, 세상에 대한 증오나 뭐 예쁜 여자에 대한 혐오 같은 뭐 이상한 개념이 머릿속에 쌓여 혹시 이런 살인을 저지른 건 아닐까 싶은? (상상이 너무 나갔나?)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을 범인으로 의심할 때마다, 중간에 한 번씩 등장하는 범인의 독백은 이런 의심을 더욱 짙게 했다. 화자인 로 시작하는 범인의 이야기는 도대체 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더 답답하기도 했다. 너무 쉽게 의심되는 인물은 아닐 것 같은데, 상황이 흘러갈 때마다 너무 쉽게 의심되는 인물을 다시 소환하게 되고. 그러다가 소설의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이 독백의 는 누구인지 점점 범위가 좁혀온다. 특히 캐서린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며 위급한 순간에 완벽하게 해내는 수술 실력은, 범인이 수술 도구로 잔인하게 여자를 모습과 대조적이다. 같은 도구로 누구는 사람을 살리고 누구는 사람을 죽이네? 작가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장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직 의사인 작가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이면서, 그 안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모를 분위기를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과 사람을 죽이는 일이 같을 수도 있다는 묘한 대비를 뿜어낸다.


잔인한 살인 사건과 그 범인 추격하는 과정이 추리소설을 읽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면서, 성폭행당한 여성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있는지 그 감정을 섬세하게 녹여낸다. (성폭행당하고 신고하지 못하는 그 어려운 마음 같은 거, 사건 이후로 무서워서 문밖에 나가는 일을 포기하는 거 등등) 보이지 않는 인간의 잔인성 역시 줄곧 의심하게 될 것 같다. 착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면서 조용하고 얌전했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누구도 범인을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게, 어디 살인 사건에서만 알 수 있는 일일까.


 


그나저나 진짜 많은 사람이 읽긴 했나 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데, 나는 설마 이 책일 줄 몰랐다. 여기저기 테이프가 붙어 있고, 테두리는 누렇고 어둡게 때가 껴있다. 정말 오랫동안 인기 있는 인기도서였겠구나 싶었다. 사람들의 손때로 누런 종이가 부풀어 올라 있고, 쩍벌이는 기본이다. 그래, 인기 있는 책의 운명이겠지. 근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책 읽는데 왜 틈새마다 뭐가 그리 묻어 있고 숨어 있냐? 페이지 중간중간에 이물질이 떡이 되어 있고, 갑자기 틈새에서 뭐가 막 떨어진다. , 진짜. 너무 더러워서 빌려올까 말까 몇 초쯤 고민하긴 했다만, 읽고 싶은 유혹이 이기고야 말았다. ㅠㅠ


#외과의사 #테스게리첸 #랜덤하우스코리아 #소설 #추리소설 #스릴러

##책추천 #리졸리아일스시리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3-08-1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킹왕짱 재밌었다는 강한 인상은 남아있습니다 ㅋㅋㅋ
무더위에 아주 그만인 작품이지요!

구단씨 2023-08-20 22:58   좋아요 1 | URL
몰입도는 좋더라고요.
같은 도구로 대조적인 행동을 하는 캐서린과 범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