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무덤의 남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그 흔적으로 무덤이란 것을 만들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찾는 무덤에서 또 다른 사랑이 피어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지. ^^ 비명횡사한 남편의 무덤을 매일 찾는 지적이고 고상한 여자 데시레와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의 무덤을 찾는 농장을 운영하고 자신이 키우는 젖소와 농작물에만 관심 갖는 남자 벤니의 만남이다. 서로가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 각자의 생각-왜 있잖아, 그럴 때 동상이몽이라고 하잖아-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참 달콤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 현실적이라 웃음만큼이나 눈물이 난다. 흑.
소똥 냄새 풍기면서 사는 남자와 고상함과 우아함을 걸치고 사는 여자의 사랑이 참 괴리감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그리고 애달파 하고 절절하다. 그런데 그 달콤함 만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고 작정이나 한 듯이 두 사람의 모습을 정말 섬뜩하리만큼 생생한 현실을 보는 듯 했다. 두 사람의 맞지 않는 성격, 서로가 다르게 가지고 있던 이상향, 각자가 가지는 공간의 최소한의 독립마저도 포기해야만 가능한 사랑으로 보였다. 집안에서 살림하고 자신의 농장 일을 돕고 자신의 아이들의 엄마가 될 여자와의 결혼(!)만을 바라는 남자의 사랑, 자신이 이루어가고 있던 꿈과 재능도 없는 집안일 보다는 할 줄 아는 것을 우선으로 중요시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결혼보다는 지금의 연애를 더 꿈꾸는 여자의 사랑.
어떤 상황을 앞에 두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를 모를 때, 이 책을 만난 느낌이 딱 그거였다. 우스갯소리처럼 늘 들어왔던 말, 각각 금성과 화성에서 온 이성을 놓고 하는 말들이 이 책에서도 등장한다. 너무나도, 지독하게, 현실적으로다가. 남자와 여자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외모에서부터 성격, 사고방식,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가 같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서로가 맞추어가면서 이루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증명하듯 보여주기도 한다. 꼭 결혼이 아니어도 사랑을 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들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그렇게 되기까지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사랑이 대단한 것도 알겠다. 그런데 말이지. 점점 나이를 먹어갈 수록, 이런 이야기를 읽을수록-나는 이 책의 이야기가 마냥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만큼 현실의 남녀를 그대로 보여주는 책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맹신을 버리고,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생각만 쌓여간다.
철없던 시절 누군가와 헤어진 이유가, 어느 배우의 이름을 틀리게 기억했던 애인을 지적했다는 게 이유라고 말한다면 다 웃겠지? 그런데, 그랬다. 애인과 그 애인의 친구와 같이 있던 자리, 어느 배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 배우의 이름은 이거라고 말했는데 애인은 그게 아니라고 자신이 기억하는 이름으로 우기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나는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내가 좋아하는 배우였단 말이야.) 이름이었기에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었다. 결과는 내가 말한 배우의 이름이 맞았고 그이는 친구 앞에서 자신을 자존심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했다. 이런 밴댕이 소갈딱지, 나를 능가하는 뒤끝 작렬이었다. 별 수 있어? 나도 쿨하게 (십팔색 크레파스를 들먹이면서) 뒤돌아섰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아, 세상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음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전히 지금도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고, 특히나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일들 앞에서는 그 이해할 수 없는 범위가 너무나도 넓다. 여자인 나도 그런 것을, 남자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겠지?
데시레와 벤니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차례로 들려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연애소설이라고 했다. 읽는 동안 분명히 느꼈다. 이 책은 연애소설이라고. 분명 연애소설이 맞긴 한데 이렇게 기대감과 상상을 마구 깨버리는 연애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냐고. 뭔가 달콤한 향기도 막 풍겨주고,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외치면서도 부러움에 떨게 만들어야 하는 게 연애소설의 임무 아니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슨 심리학 강의를 소설로 듣는 기분이었는데, 그게 나쁘거나 언짢은 게 아니라 매 장을 넘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해서 목이 아플 지경이었지.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하는 이유, 어떤 일을 앞에 두고 싸우는 이유, 그리고 해결하는 방식이 기가 막히게 들려온다. 언제쯤 남자와 여자는 금성이고 화성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행성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졌느냐 아니냐는 묻지 마라. 홀딱 깬다. 게다가 이 이야기의 후속편이 있다는 거~ 재밌을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