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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평점 :
그들이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는데, 너무나도 웃겼어.
쓸쓸한데 웃기다니 모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이 책이 나에게는 그랬다. 모두 열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참으로 이상한 우연 속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어이없이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들이었고, 소설 속의 인물들이 만나는 일상의 모습들이 웃음이 나게 하고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박장대소하는 것이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고, 씁쓸한 기억들이 떠오르게 해서 싸늘한 웃음이 나고, ‘인생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말이 나오게 체념하는 듯한 생각을 갖게 해서 웃음이 난다.
‘우연’으로 시작한 그들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어느 날, 문득’ 사소한 일 하나가 오래 전의 기억들을 꺼내게 만들어 회상의 시간을 갖게 한다. 그런데 그 회상의 시간이란 것이 그리 유쾌한 기억이 아니다. 마음속의 상처와 아픔이 되는 일들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반갑지 않다.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의 삶을 일그러뜨렸던 기억들이다. 당연히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우연한 기회에 그 기억들을 떠올리고 더듬어보면서 반성 아닌 반성을 한다.(사실은 그냥 기억만 한 것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최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 모진 말을 해서 상처를 입히고도 사과를 하지 못해 늘 마음 한 구석 미안한 기억(‘부메랑’),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을 못 지키고 친구 혼자 여행을 떠나게 해서 그 여행길에 사고가 난 일(‘5초 후에’), 원숭이 그림의 티셔츠를 입었다고 놀렸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 같은 그들의 기억들 대부분은 마치 자신이 그들의 슬픔을 만들어낸 원인 제공자인 것처럼 그려진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지 모를 일들이 갑자기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것만 같은 타인의 불행을 곱씹어보게 한다. 그때 왜 그랬는지,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말이다.(늘 그렇듯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보통은 후회라는 것은 슬픔과 아쉬움을 동반한 기억으로 함께 올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유쾌하게 혹은 썩 괜찮게 이들의 기억 속의 일들을 같이 바라보게 된다. 알게 모르게 행했던 잘못들과 실수들을 이 책 속의 인물들은 부끄러움을 담은 마음으로 말을 꺼낸다. 쑥스럽지만 천천히, 민망하지만 용기 내어, 그 자책의 시간들이 조금은 가벼워지게. 그들은 때늦은 후회와 용서와 이해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 이 책 속의 인물들은 드러내놓고 화해를 하거나 사과를 하거나 않는다. 그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더듬어가면서 생각의 시간을 보낸다. 전화를 해놓고도 결국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끊을지언정 시도는 한다(‘부메랑’). 그게 그들만의 방식일지도 모르고, 아직 완전한 이해를 가져오지 못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진실함의 빛은 보여준다. 기억을 꺼내어 잘못되었던 순간을 생각하고, 그게 자신의 잘못인 걸 인정하고, 화해의 손을 내미는 모습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으니까. 마치 그들이 모든 이해와 용서의 시간들을 그렇게 보여주려는 듯이.
‘우연’이 만들어낸 우습지만 불행해 보이는,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그 비슷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기억조차 하지 못할 무수히 많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시간들을 기억해내게 한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의 삶과 기억들과 행동들을 통해서, 미처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시간들을 보게 만든다. 나 역시 어떤 우연으로 그들과 같은 그런 시간을 갖게 될지 모르니.
자신의 삶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테니까. 뒤돌아보면,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삶이, 등 뒤에 있을 테니까.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101페이지)
언제 어디서 다가올지 모를 삶의 한 순간이 나에게 이런 시간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무의식중에 기억 깊숙하게 봉인해 놓았던 어떤 시간을 열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들 대부분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인물들처럼 후회하고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용서 받아야만 하는 시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그런 우연이 나에게 나가온다면 열어보리라. 뒤늦은 후회와 민망함과 쓸쓸한 웃음을 가져다줄지라도 내가 기억해내고 풀어야할 이야기라면 그 시간의 주인공은 ‘나’일 테니까.
첫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어했던 기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사라지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내내 입가에 미소가 돌게 했다. 인물들의 어이없는 우연에, 쓸쓸한 현재에, 작은 빛이 되어줄 그들의 과거의 기억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그런 기억의 떠올림은 어쩌면 ‘우연’이 가져다준 커다란 기회일지도 모른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일그러뜨렸다고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고민과 함께 더 괜찮아진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주었으니까 말이다.
윤성희의 단편집을 두 번째로 만났다. 처음 읽었던 것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잘 생각이 안 나고, 그 다음 만난 작품은 장편 『구경꾼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만난 작품이 그녀의 단편집 『웃는 동안』이다. 나는 단편집과 늘 싸움을 한다. 어렵게 읽어질 것만 같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함부터 갖게 되는 고민에 빠지게 하는, 어쩌면 일종의 시험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를 끝까지 읽어 주리라.’하는 다짐 같은 욕심이 생기게 하기도 하고, ‘미치겠다.’를 연발하게 하는 거슬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늘 도전의식 같은 것을 갖게 한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싶은. (웃기지도 않은 싸움이지만. 풋~) 윤성희라는 이름을 다시 보게 만들고, 읽는 재미를 주었고, 조금은 더 진실해지는 삶을 살게 하는 마음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