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두권짜리네.

신간 알림 소식 듣고 들어왔더니, 이렇게 두툼한 장강명의 책은 처음 만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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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나비꽃 에디션) - 세상의 모든 딸, 엄마, 여자를 위한 자기 회복 심리학
박우란 지음 / 유노라이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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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벤트]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려워서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가, 계속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있게 된다. 말 그대로,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알 것 같았다. 나를 봐도 그렇고 주변의 많은 모녀 관계를 봐도 그렇다. 이상하게도 엄마를 정말 사랑하는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애증 관계라고 하는가 보다. 그런데 이 애증 관계는 한 세대에 머물지 않고 대물림하듯 세상의 모든 모녀 관계로 이어진다. 정말 이상하지? 그러면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자기와 엄마가 겪은 그 감정의 묘한 관계를 자기와 딸의 관계에서는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한 여자의 마음 말이다.


저자는 이런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례와 연구를 독자에게 들려주면서 이 관계 회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 엄마와 딸, 두 존재가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어떻게 집착하고, 그 집착에서 왜 벗어나기 어려운지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 이유는 참 많겠지만, 여성 특유의 심리적 기질을 눈여겨보게 한다. 타인의 빈 곳에 나를 채움으로써 존재를 찾으려는 일. 보통 보이는 게 남편이나 아들에게 집중하며 돌보고 그들의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딸에게는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대하는 마음을 요구한다. 엄마뿐만 아니라 딸도 비슷하다. 엄마의 감정과 자기감정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정말 사람의 복잡한 심리를 보는 기분이다. 딸의 처지에서는 자기도 받고 싶은 사랑을 외면한 채 요구만 하는 엄마를 미워하기도 하지만, 마냥 미워할 수만도 없는 마음을 감당해야 한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복잡한 감정으로 변하고, 문제가 되는 상황에 이른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 딸도 엄마도, 이 관계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에 저자는 조건 없는 관계를 지우라고 말한다. 그래야 엄마와 딸의 애정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여러 사례를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겪은, 내 주변의 많은 여성이 겪은 일이 생각나기도 한다. 은근히 남자 형제를 더 아끼던 엄마의 태도, 같은 상황에서도 아버지나 남동생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던 순간 같은 거. 그때는 그래야 하는가 보다 하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나고 나서도 외로움과 불평등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 엄마도 같은 경험을 하면서 자랐을 텐데, 왜 같은 감정의 고통을 딸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작정하고 그런 건 아닐 것이기에 더 감정을 해소하기가 어렵다. 엄마가 그렇게 살면서 겪은 감정 찌꺼기가 딸을 향한다는 이야기에 이상하게 밀려오는 서러움은 뭘까 싶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치유의 길로 들어선다. 나의 고유한 시선으로 나의 삶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 자기가 어릴 적 마음속에 담았던 엄마의 시선을 떨치고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해야만 내 안의 엄마를 지울 수 있다는 거다. 나의 시선과 엄마의 시선을 분리해서, 내 안에서 엄마를 내보내야 자기도 딸도 감정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 결국, 엄마를 사랑하지만,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마음을 살피면서도 내 욕구를 채워 넣지 말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딸과 분리된 상실을 받아들이며, 그 빈자리를 나 자신으로 채우는 연습을 하라는 것. 딸과 나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일까.


내 삶의 주체가 누구인지 떠올리게 하는 말에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계속 노력하고 연습하는 것만이 나 자신의 삶을 완성하게 하는 것 같다. 딸과 엄마, 모녀 관계의 이 험난한 감정 소모를 더는 하지 않게 하는 지침에 조금은 귀 기울여도 좋겠다. 나 역시 엄마와 따로 살기로 하면서 가장 걱정하던 게 혼자 남은 엄마의 삶이었는데, 나만 마음 편하게 살면 괜찮을까 싶어서 죄책감에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음을 조금 달리 먹게 된다. 나는 분명히 엄마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서로의 적당한 거리는 서로를 더 살피고 아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모녀 관계가 애증이 아니라 서로의 다른 삶을 인정하고,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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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인간 우리 그림책 40
안수민 지음, 이지현 그림 / 국민서관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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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집안일 중의 한 가지가 분리수거인데,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이렇게 분리수거를 하면, 이 중에 얼마나 재활용이 되고 얼마나 환경을 살리는 일이 될까.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일정 부분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은 기대감으로 분리수거를 계속하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플라스틱. 많은 양의 플라스틱이 우리 집에서도 나온다. 자주 빨래하면서 많이 사용하는 세제부터, 오랜만에 과자를 하나 샀더니 그 안에 담긴 플라스틱 고정 틀, 편의점에서 사 먹은 초코우유도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다.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안다. 지금 우리 생활에서 플라스틱은 너무 깊게 자리 잡았고, 없으면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플라스틱 사용의 증가로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 편리한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흥미롭다. 어느 날 제임스 씨의 배꼽에서 꼬물꼬물 작은 것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의 배꼽에서? 그것도 남자가 낳은 무언가가? 낯설고 신기한 생명체에 사람들은 호기심이 끓었고, 그것에 플라스틱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묘한 것은 영리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먹을 것만 있으면 알아서 잘 자랐다. 제임스 씨도 이 플라스틱 인간을 예뻐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을, 이 작고 귀여운(?) 것은 점점 위험한 골리앗이 된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제임스 씨 배꼽에서 나온 작은 생명체는 플라스틱이다. 어쩌다가 인간의 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큰일이 난다. 제임스 씨의 하루를 지켜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는 아침에 생수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손에 든 채로 출근을 한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상이라 낯설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시는 생수, 매일 씻으면서 사용하는 샴푸나 목욕용품, 커피 한잔을 담은 종이컵, 걸레 대신 편해지자고 사용하는 물티슈, 매일 갈아입는 옷 같은 게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제임스 씨가 하루를 보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을 소비한다. 이게 제임스 씨의 이야기일 뿐일까?



읽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건 나만이 아닐 테다. 제임스 씨의 하루를 지켜보면서, 그 몸에서 플라스틱 인간이 나오면서 느껴지는 불안함은 현실이 된다. 작고 귀엽던 플라스틱 인간은 끊임없이 플라스틱을 먹이로 섭취하면서 점점 거대해진다. 급기야 제임스 씨보다 더 커져 버린 플라스틱 인간은 이제 인간의 보살핌이나 조종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플라스틱 인간을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임스 씨의 플라스틱 인간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도 플라스틱 인간을 낳고 있었다. 누구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에서 플라스틱 인간이 태어나는 것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제 흔하게 보이는 이 플라스틱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상상 속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된 플라스틱 인간이다. 어느새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거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압권인데, 제임스 씨의 집은 이제 더는 그의 집이 아니었다. ‘이 집의 주인은 바로 나!’라고 외치는 거대한 플라스틱 인간의 표정을 보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제목에서 이미 이 책의 내용을 보여준다. 알고 읽었는데도 막상 다 읽고 나니 충격적이긴 하다. 아는데도 습관처럼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버리고, 다시 또 사용하는 일상을 떠올려보니, 이게 마냥 그림책 속 이야기로 멈추지 않는다는 걸 다시 상기하게 된다. 플라스틱의 과한 사용은 인간의 공간을 침범하는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우리가 조금 편리하다고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어느 날 우리를 공격하게 될 거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의 공격을 받는 중인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버려지는 쓰레기 속에서 항상 걱정하는 건 쓰레기 처리 문제가 아니었던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플라스틱은 이제 인간 생활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생활 곳곳에서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이제 플라스틱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줄이고 그 대체 용기를 생활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플라스틱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다.


플라스틱 인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제임스 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살 곳을 찾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플라스틱 인간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가 머물 공간이 남아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혹시 길거리를 떠도는 노숙자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런 처지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얼마나 플라스틱을 남발했으면, 플라스틱에 내 공간을 내어주고 쫓겨난 신세가 된단 말인지. 플라스틱이 개발된 지 100여 년이 지났다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가 플라스틱과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 집과 이 지구의 주인이 누구인지, 우리가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남겨두어야 하는지 돌이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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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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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복수라도 하려는 게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생길지도, 법이 아니라 감정의 벌을 내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소중한 존재를 잃었는데, 아무리 법이 형량으로 죄인을 다스린다고 해도 마음의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겠나, 법이 해줄 수 없다면 직접 나서서 이 감정을 다스리는 수밖에.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행동한다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 분노의 감정을 억누를 방법이 없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피해자는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모든 일을 잊을 수 없다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대체 피해자가 당한 고통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계산도 되지 않는다. 사건은 끝났고 가해자는 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왜 가해자는 여전히 가해자로 살아가야 하는가.


쇼타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과하게 마셨던 그 날, 집으로 돌아간 쇼타는 여자 친구 아야키의 문자를 보고 갈등한다. 지금 만나러 오지 않으면 끝이라는 말에 만나러 가야 하는지, 술을 마셨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하던 쇼타는 직접 운전하면서 아야키를 만나러 가다가 사고가 난다. 누군가를 친 것 같은데, 분명 사람인 것 같은데, 선뜻 인정할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사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겠지. 내려서 살펴볼 법도 하건만, 무서웠던 쇼타는 그냥 지나간다.


그날의 일은 쇼타의 인생에 무엇을 남겼을까. 완전범죄는 없었다. 쇼타는 그 사건을 뉴스로 확인하면서 개나 고양이를 친 게 아니라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됐다. 410개월의 형을 살게 된 쇼타뿐만 아니라, 쇼타의 가족 모두가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쇼타가 형기를 다 마치고 나왔을 때,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직시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 결혼을 앞둔 누나는 파혼했으며, 유능한 교육학자였던 아버지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다. 가족 모두가 정상의 삶을 유지할 수 없었다. 쇼타 역시 전과자로 쉽게 취직할 수 없었다. 예전 친구를 만나도 거리를 느낄 뿐이었다. 그나마 그의 곁에서 다시 친구가 되어준 아야카만이 유일한 인간미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의 옆 옆집으로 이사 온 이상한(?) 노인이 그의 시야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가해자가 있다면 피해자도 있기 마련이다. 쇼타가 낸 사고로 80대 여인이 죽었다. 그 여인에게도 가족은 있었고, 그 가족에게도 상실의 슬픔은 있었다. 슬픔을 잊기 위해, 허무하게 죽은 아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남편은 가해자를 쫓는다.


죽은 여인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다는 설정에,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분노의 감정을 인간이 보여주려는구나 싶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법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결론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 고통을 준 이의 목숨을 끊어놓고 싶은데, 법리적인 판단은 다르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가 만족할 수 없는 판결을 마주했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마무리 짓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지. 내가 예상했던 흐름은 이런 거였다.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아 그만의 방식으로 복수하겠다는 거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가해자를 쫓던 그 마음은 나의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그렇게 빗나간 예상은 오히려 인간다운 면을 강조한 듯 보였다. 언제 어떤 상황을 만났느냐에 따라 우리는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한때는 가해자였던 이가 다른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야쿠마루 가쿠의 전작에서 보지 못한 다른 시선이었다. 작가의 작품 최초로 가해자의 눈으로 사건을 보는 이야기라고 했다. 뺑소니 사건의 가해자가 사건을 일으켰을 때부터 사건 이후의 이야기까지 가해자 쇼타의 시선으로 흐른다. 그는 분명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고, 법의 심판으로 벌을 달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가 받은 형량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게 소설 속 이야기로만 남을 수 있을까? 운전해본 적은 없지만,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누구나 가해자 쇼타의 입장이 될 수 있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내가 일으킨 사고에서 내가 쇼타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같은 상황에 닥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쇼타와 내가 다를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사고를 일으켰지만, 남은 인생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은 바람을 품으면 안 되는 걸까?


법이 접근할 수 없는 마음속 죄의식을 묻는 이 소설에 많이 공감했다. 법이 정한 형기를 마쳤다고 가해자의 책임을 다한 것인지, 마음속에 남은 죄의식이 남은 삶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마주할 수 있는 이 사건에서, 우리가 무게를 두어야 할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어질 것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까지 함께 다뤄져서 많은 생각을 남겨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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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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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성장이 도시의 흥망성쇠와 같이하는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강렬한 첫 문장,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뇌리에 강하게 박혀버렸나.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 버려진 아이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소년의 눈 앞에 펼쳐진 어른들의 삶, 도시의 흥함은 어떻게 쇠락해가는지, 그 시선에 잡혀 남겨진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소년은 궁금하다. 할머니와 엄마 삼촌이 함께하는 집에 소년의 존재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엄마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누구도 이 출생에 관해 말해주는 이가 없다. 이 비밀을 알고 싶은 소년과 살아온 세월이 곧 역사가 된 할머니 사이에 무언가 있다. 이들인 사는 곳은 한때 탄광으로 흥했던 마을 지음이다. 지금은 카지노가 들어섰다. 노동자가 많았던 시절에 할머니는 올림픽 다방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고, 카지노가 들어선 지금은 월드컵 전당포를 운영하며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의 물건을 받는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장면이 그려진다. 작은 도시에서 열심히 노동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북적거리다가. 점점 석탄의 수요가 줄면서 노동자는 설 자리를 잃고, 누군가의 자본이 흘러들어와 카지노가 열리자 마을의 그림은 달라진다. 마을은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카지노 사업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각자의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지 않았겠나. 마을이 흥해도 망해도 남겨진 자들이 있다. 그들은 살아가야만 했으니까.


지음은 어떤 곳일까. 출생 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그림자 소년은 전당포에서 지내면서 이 가족의 일원이 된다. 불안증에 시달리는 엄마와 랜드가 무너진다라고 외치고 다니는 삼촌까지, 할머니와 함께 네 식구가 살아가고 있지만, 소년은 항상 궁금했다. 자기 출생에 대해서.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출생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말고 네 안을 먼저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박수 할아버지. 묘한 이들의 관계는 소년이 꾸는 꿈의 내용과 연결된다. 마을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면서 독자인 나는 복선 같은 긴장감에 휘말린다. 정말로 도로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차올랐으니까. 이렇게 차오르는 물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했다. 정말 탄광촌이었다가 망하고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흥해진 마을이 이제 다시 망하는 길로 들어서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곳, 그 사람들의 비밀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소년은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된다. 설마 했던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누군가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탐욕에 취한다. 누군가는 그 탐욕에 빠져들어 인생을 모른 척한다. 되돌아보면 늦는다. 그때 그 순간에 깊게 빠져들지 말았어야 했다. 카지노 베이비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탐욕 속으로 빠져든 부모가 남겨 놓은 것이었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어느 카지노 근처의 모습을 설명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람이 북적거리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화려함에 이끌리는 곳이지만, 그곳 주변의 많은 것이 상대적으로 흑백의 장면을 그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년의 할머니가 전당포를 운영하면서 겪은 많은 일이 그러하다. 전당포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 표정은 이미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는 것만 같다.


누가 이 불안하고 무모한 인생들에 경고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소년에게 출생의 비밀을 확인하는 걸 말리고 싶었던 걸까. 카지노가 있던 건물이 무너지고 소년이 꿈에서 보았던 장면은 현실이 된다. 이 위험한 순간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기도 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소년은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과 지음의 역사, 소년을 구하고 떠난 할머니의 유산으로 이제 소년의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


이상하다. 소년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와 지금은 벌써 몇십 년이 다른 시대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째 이렇게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걸까. 여전히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의 투자에 빠져 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긴장하며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가 이런 모습도 가진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유흥을 놓치지 않고 위태롭게 높이 올라가려고 애쓰는 게 불안하다. 누구라도 쉽게 놓치지 않으려고 할 테다. 인간의 탐욕은 자연스러운 거로 보이기도 한다. 불안하지만 던져 보고, 많이 가지려고 계속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재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 실감 나게 그려낸 소설이다. 그것도 아이의 시선으로 보고 있자니 웃음까지 난다. 이 아이가 그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자라나게 될까.


사실 나는 카지노가 무너졌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소년이 출생의 비밀을 찾는다고 몰래 카지노에 입성했을 때, 도로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차올랐던 장면이 바로 생각났다. 어쩌면, 어쩌면? 소년이 이미 알고 있지만 확인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카지노의 몰락 이후 살아갈 사람들의 삶을 비추고 싶었던 건지. 거대한 무너짐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할머니가 물려주신 용기가 소년을 살아가게 할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이 책을 읽을 누군가도 알 거다. 이 소설은 소년의 시선으로 이 가족과 지음이라는 마을을 그리고 있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포스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단단하고 굳건하게, 전당포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사람들이 맡긴 물건을 감정하고 값을 매기며, 꼼꼼하게 장부를 채우는 할머니의 삶이 곧 역사였다. 할머니는 그 세월의 힘을 소년에게 조금씩 물려주며 길을 열어주었다. 소년이 이 세상을, 다 무너져내린 마을에 남아서도 살아갈 용기 말이다.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서 버려진 카지노 베이비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존재로 성장해갈 시간의 바탕이 된 존재였다.


이제 소년은, 소년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거라는 걸 안다. 그건 우리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발과 탐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내가 속한 세계가 흥하든 망하든, 자기만의 방식과 용기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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