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의 『책의 말들』을 읽다 보면, 언급된 100개의 문장 때문에 그 문장이 담긴 100권의 책이 궁금해지는 건 당연했다. 목록 중에는 내가 읽은 책도 있지만 몇 권 되지도 않더라. 그마저도 내가 읽은 그 책에 그런 문장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긴, 시간이 지나고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보면서, 내가 밑줄 그어놓은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웃음이 날 때도 있었으니까. 왜 이 문장에 표시가 되어 있지? 분명 그때는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이었을 테고, 그 문장에 꽂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김초엽의 추천사처럼,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안다. 독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행위여서 가끔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이 실은 그 책에서 가장 무쓸모한 문장일 때도 있다는 것을.’
목록을 쭉 훑다가 받아들였다. 아, 내가 이 책을 다 찾아서 읽어볼 수는 없겠구나. 그래서 오히려 소개된 문장에 더 눈길이 갔다. 그중에 공감하고 싶은 몇 문장만 골라봤다. (몇 문장만 고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신도 알고 있을 테니 그 고통까지 말하지는 않으리.)
만약에 말이죠, 제가 이 서점에서 내 평생의 짝을 만나게 된다면, 서점의 어느 책 옆에 서 있어야 그렇게 될 확률이 가장 높아질까요? (젠 캠벨, 『그런 책은 없는데요…』)
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ㅠㅠ 영화나 드라마가 우리를 다 세뇌한 것만 같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이런 상상 좀 해본 적 있지 않아?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돌다가 눈이 마주친 누군가와 인연이 되는, 서점의 높은 책장에 꽂힌 책을 못 꺼내 뒤꿈치 들고 손을 뻗을 때 등 뒤에서 쑥 올라오는 기다란 팔 하나가 내가 찾는 책을 꺼내주는. 말하고 보니 너무 유치하긴 한데, 그래도 이런 상상 너무 설레잖아. ㅎㅎ 유치해도 어쩌겠나, 이미 이런 걸 너무 많이 봐 버린 것을. 그러니 이런 가능성을 상상하며 서점을 찾은 이에게 서점 직원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싶다. ‘그래요, 그런 책은 없어요. 상상과 현실을 혼동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혹시나 이런 장면을 현실로 옮긴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함부로 단정할 수도 없겠다. 그래도 이런 상상, 은근히 즐겁다. 괜히 한번 설레고 싶을 때 이런 이야기를 찾아 읽고 싶은 건 독자의 비슷한 감성이 아닐까.
그러니까 소설책을 두 번째 장만 찢어서 가지는 사람은 없잖아요. (장류진, 「다소 낮음」,『일의 기쁨과 슬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할 때 이 문장이 떠오를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건 단순하지 않다. 듣고 생각하고, 그 말의 의미 역시 곱씹기도 한다. 책도 그렇다. 그러니 책을 읽어낼 때, 중간부터 읽어도 괜찮은 책이 있는가 하면, 소설처럼 처음부터 읽어야 내용을 확인하게 되는 책도 있다. 그 일은 왜 시작되었는지, 과정이 어떠한지, 결말은 왜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항상 그렇게 집중하며 읽어가면 좋으련만, 우리는 너무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때로는 비디오 빨리 감기처럼 축약본이나 줄거리를 찾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온전히 내가 직접 읽은 책으로 이야기의 힘을 느끼고 싶다.
돈키호테는 실제로 책이 되었고, 따라서 자기 자신으로서의 책에 충실해야 한다. (미셸 푸코, 『말과 사물』)
누군가의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 글을 쓴 이의 많은 것을 상상하는 일이다. 문장 하나로,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이미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제의 모습과 다른 글로 말을 풀어내기도 한다. 비슷한 경험, 이 온라인상의 누군가도 많이 겪어보지 않았을까? 이 공간에 끼적이는 말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평소에는 못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문장 하나로 나를 상상하는 사람은, 실제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문장과 전혀 다른 나를 만날 수도 있다. 나 역시 평소에 하지 못하는 말을 이 공간에 풀어낼 때도 많으니까. 그러니 우리, 어떤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연습하자. 혹시라도 문장 너머로 만나게 된다면 놀라지 않게. ^^
글자와 눈앞에 있는 멋진 세밀화들이 미워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덮어 버린 책을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조르조 아감벤, 『행간』)
아무리 재밌는 책이라도 졸음을 이길 수 없듯이, 아무리 읽고 싶어도 읽히지 않아 수면제로 쓰이는 책도 있다. 보통 나는 취향에 안 맞는 책을 수면제로 이용하곤 하는데, 친절하게도 많은 책을 읽어온 저자가 우아하게 수면에 좋은 책 고르는 법을 알려줬다. ‘너무 흥미진진한 소설이나 자극적인 주제의 책 말고, 적당히 어려우면서 적당히 관심 없는 책이라면 완벽’하다고 한다. 너무 재미있으면 책 속에 빠져들 테고, 너무 어려우면 자꾸 책 펴놓고 딴짓하겠고, 취향인 책을 만나면 또 파고들게 될 테니,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수면제겠지. 안 그런가?
나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도 못 하면서 생소한 책을 읽어 나간다. (세라 워터스, 『핑거스미스』)
저자와 비슷한 이유로, 이해도 안 되는 책을 꾸역꾸역 읽은 적이 있다. 읽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기도 했고, 전투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저자의 말처럼 시간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문장으로 써진 것 이상의 많은 게 책에 있다고 생각하면, 책은 책 이상의 존재가 된다. 이런 문장을 만날 때마다 왜 책을 읽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재미로 읽기도 하고, 내가 책으로 배운 것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확실히 책으로 배운 것이 일상에 도움이 될 때가 많긴 하다. 소심하고 수줍은 내가 말싸움에서 이긴 적도 있다. (이렇게 활용해서 미안하지만) 결론은, 책을 읽어서 손해 본 적은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읽겠다는 마음.
필요한 서류들을 가방에 넣다가 나도 모르게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넣는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윈스턴은 일할 때는 다리 사이에 끼워 두고 잘 때는 깔고 잤던, ‘그 책’이 든 손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지 오웰, 『1984』)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공간의 많은 이가 나와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어차피 나가서도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탁자 위에 있던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나간다. 너무 무겁지 않은, 집중해야 내용이 기억될 두툼한 소설보다는 끊어 읽어도 괜찮은, 하다못해 주간지라도 가방에 넣고 나간다. 읽다 보면 뭔가가 남겠지. 실제로 지금은 격주로 발행되는 잡지를 자주 넣고 다니는데, 의외로 집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읽는다. 항상 읽지 못하고 폐지로 버리곤 했는데 말이지.
책을 옮기거나 먼지를 털어 낼 때마다 거기에 시선을 던지고, 띠지의 글을 읽고, 우연히 어떤 페이지를 읽고, 그렇게 조금씩 대부분의 내용을 흡수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책 한 권 한 권이 깨끗해 보이는 것이, 모든 책을 자주 읽거나 자주 먼지를 터는 게 분명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방 한 칸을 나에게 양보했다. 방 두 개 중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면 자기의 공간은 없을 텐데, 괜찮다고 한다. 이사하면서 어느 정도는 버리고 갖고 있을 책만 가져왔는데도, 이 집의 책방은 다시 이사 오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책장을 청소하는지. 솔직히 말하면, 책장의 먼지를 털어낸 적이 거의 없다. 책 한 권 꺼내는데 손에 뭐가 묻어나오지 않는 이상 책장 청소를 생각한 적도 없다. 지금처럼 이사할 때나, 책을 몽땅 버리자고 정리할 때가 아니면 말이다. 이 문장을 봤을 때 그 생각이 났다. 예전에 편지를 버리려고 하나씩 꺼내 볼 때, 정작 정리는 못 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시절의 편지들을 다시 읽느라 시간을 다 써 버렸던. 책 정리도 그렇게 하면 될까? 청소하면서, 한 권씩 꺼내면서, 조금씩 다시 들춰보면서 다시 읽는 시간으로?
테크 기업들이 인류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흡수해 버리려고 해도, 종이책 읽기는 그들이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몇 남지 않은 영역이다. (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
우리,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한 손에 들고 쉽게 페이지를 넘기는 전자책은 너무 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종이책을 계속 사는,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 문장을 보면서 정말 세상의 발전이 종이책 영역으로는 파고들지 않았으면 싶기도 하다. 우리 집 작은 책방에서 책이 넘쳐 흘러도, 정리하지 못해 쏟아져 내려도,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어도 종이책이 내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듯. 그래도 한 번씩은 정리해야지. 책을 적당히 들이고 내보내면서, 그때마다 살짝 책장의 먼지를 닦아주기도 하면서 그들(?)이 종이책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지켜야지.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책을 한 권 들고 가서 오래오래 베이글을 먹는 건 윤나만의 즐거움이었다. (정세랑, 『피프티 피플』)
정세랑 소설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내가 바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느긋한 아침에 집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며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기분. 상상만 해도 즐거운데, 현실은 주말 아침에 다른 일정이 없으면 꼭 늦잠을 자고 말리라 다짐하면서 전날 밤 잠든다. 일어나면 아침이 아니라 점심에 가까운 시간, 그날의 첫 끼니는 점심때를 훌쩍 지날 때도 많다. 그래서 나에게 이 문장은 상상만으로 멈추기 일쑤다. 잠이냐 로망이냐. 선택은 늘 어렵다.
탑승 수속을 할 때 무게 제한에 걸려 이민 가방을 풀고 밑바닥에 있는 책을 몇 권 꺼내야 했어.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어딘가로 움직일 때마다 늘 가방에 책이 있다. 며칠씩 이동할 때도 책을 몇 권 추린다. 그냥, 습관처럼 그렇게 책을 골라놓을 뿐이다. 몇 권은 챙겨 넣고, 몇 권은 넣었다가 뺐다가.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빼고 가방이 무거워지니 빼고. 다시 생각해보니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넣고 좀 무거워도 책이니까 넣어야 한다고 우기면서. 책은 정말, 가까이하고 싶은데 가끔은 이렇게 가까이하기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가 생긴다니까. 여행 가방에 챙겨 넣을 게 너무 많은데, 그 공간을 책에 나눠준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불청객이 올 때를 대비해서 책을 세워 들어요.” (뮤리얼 스파크,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나를 건드리지 마.’ 무언의 경고를 하고 싶을 때 이어폰을 끼고는 했다. 음악을 듣지 않아도 그냥 귀에 꽂아두면 선뜻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말 걸지 말라는 의미는 전달된 것 같아서, 그거면 됐다고 여겼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만 않는다면 이 평화는 계속되겠지. 그와 비슷한 이유로 책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느낀다. 책을 펼쳐놓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면 약간 고민하는 마음이 생긴다. 집중하고 있는 상대를 방해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이 문장을 보고 감탄했다. 이런 방법이 있었네! 언제 올지 모를 불청객을 대비해서 책을 세워 들으라니. 음, 그럼 일단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표시를 강하게 하는 것, 그것만이 불청객을 해치우는 방법이 되겠군. 너무 좋은 방법이야.
내가 읽고 대화를 경청하는 책 속의 인물들과 나 자신이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 이상하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그게 어떤 소설이 되었든,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것이 모두 허튼소리라는 것을 숙지해야만 하며, 그러면서도 읽는 동안에는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 (어슐러 르 귄, 『어둠의 왼손』)
책을, 소설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어서 속상했다. 뭔가 이유는 있는데 그게 또 전부는 아닌 것 같고, 허구의 세계에서 뭘 하느냐고 핀잔이라도 듣는다면 그게 또 기분이 나쁘고. 이 묘하고 어정쩡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어슐러 르 귄의 문장을 보니 알 것 같다. 소설을 허구이지만, 그 허구의 세계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에 빠져들고 즐기면서 현실로 돌아오면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듣는 게 좋았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는 게 좋았다. 그거면 된 거지, 뭐.
그러나 고독한 이는 모름지기 책을 벗 삼아야 한다. (라르스 스벤젠, 『외로움의 철학』)
책이 우리 인생을 구원해줄 거로 믿지 않는다.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렇게 책을 놓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덜 외로우려고 그러는 건 아닐까? 책은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취미이자, 혼자서도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책을 친구 삼아 대화하고 소통하며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인간이기에 외롭지 않기는 어렵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책이라는 친구로 덜 외롭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 역시 그러하기를.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누구나 할 말이 많을 듯하다. 그래서 독서 토론도 하는 건가 싶지만, 선천적으로 게으른 인간인 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없다. 내가 나를 안다. 꾸준히 성실하게 독서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책을 읽고, 약속한 시각에 각자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 일이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기에 진즉에 포기했다. 대신,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나 혼자 재밌게 읽어야지 하는 다짐은 변함이 없다. 어쩌겠어,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을. 이렇게라도 만나는 책의 많은 이야기가 그저 반가운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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