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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입원했습니다 - 요절복통 비혼 여성 수술일기
다드래기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평점 :
이십 대 중반의 일이다. 배가 살살 아프기에 참다못해 가까운 내과에 갔는데, 며칠 진료받으면서 약을 먹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산부인과 진료를 권유받아 갔더니 나의 난소에 물혹이 있다고 했다. 통증의 원인은 그 혹 때문이었고,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고 지켜보자고 했다. 이 혹이라는 것이 더 커질 수도 있고, 그대로 있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혹이 더 커지고 통증이 계속된다면 수술 같은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대로 사라진다면 좋은 거고. 의사의 말을 듣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일이 아예 없었기에, 진료방식 자체가 두렵고 불편했다. 내 몸에 문제가 생겼는데, 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상황이 더 무서웠다. 그때부터 매일 지옥 같았다. 내 몸 안의 혹은 커졌을까 작아졌을까 그대로일까. 궁금하다고 바로바로 내원해서 진료받을 수도 없고, 참. 한 달쯤 지났을까. 다시 진료받고 혹이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폭풍 식사를 했다지.
지나고 나니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의 한 달은 지옥이었다. 내 몸의 변화를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저자의 요절복통 수술일기를 보고 있자니 그때 생각이 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번거롭고 불편한 시간을 보냈을까.
주인공 조기순은 만성 변비에 시달리다 대장내시경을 생각했는데, 친구가 산부인과 진료를 추천했다. 지독한 변비에 무슨 산부인과? 하지만 결과는 청천벽력이었다.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고, 난소에 있는 큰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하려면 입원해야 하는데, 조기순의 입원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콜센터 상담원 조기순에게 수술을 위한 입원은 쉽게 승인이 나지 않았고, 조기순의 부재로 동료들의 일이 많아질 것을 걱정해야 했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보증인을 세우라고 한다.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보호자가 아니라 보증인?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작년 3월, 장염으로 근처 종합병원에 입원하려고 하니 쉽게 병실은 내주었는데, 코로나 검사하고 결과 기다리고 있는데 보호자를 데려오란다. 나는 거동이 불편하지도 않고 혼자 병원 생활 할 수 있는데 뭔 보호자? 병원 규정이란다. 보호자가 와서 입원 서류에 사인해야 한다고. 그때 느꼈던 그 불편함이란! 그때도 일하는 남편 불러와 서류에 사인하게 하면서 생각했다. 제길, 보호자 없는 사람은 아파도 입원 못 하고 죽어야겠군.
어찌어찌 입원하게 되었어도 다인실이 없어서 비싼 3인실에 들어가게 된 조기순. 함께 사는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와서 보증인(!)에 서명하게 하고 병원 생활 시작한다. 하필이면 입원한 곳이 암 병동이다. 세상에나, 암에 걸린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리고 놀라는 것도 잠시, 이제 그녀는 수술대 위에 누워야 할 시간이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는데도 아프다. 방귀를 뀌지 못해서 음식도 못 먹는다. 친구는 일상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조기순의 간병을 위해 병원에 머무른다. 작고 좁은 보호자 간이침대에 몸을 뉘고 친구를 보살피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비혼 조기순에게 이런 친구라도 없었으면 현실에서 닥친 이 고난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나. 단순하게 입원해서 수술받으면 되겠지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때로는 복잡하고 곤란한 현실적인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간다. 같은 병실 환자들과 이야기하고 먹을 것을 나눠 먹고, 간호사의 보살핌에 마음을 내려놓기도 하고, 색다른 교류의 장을 만들면서 삶을 배운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고, 이런 사정을 가진 사람도 있고,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도 하는구나 싶은... 그러면서 다짐한다. 미친 듯이 달려왔던 시간을 뒤로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리며 사는 법을 그린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것은 이거였다. 아파서 죽겠는데 치료받는 것조차 내 맘대로 안 되는 상황이 짜증이 났다. 병실은 왜 없는 것이며, 다 큰 성인이 입원하는데 보증인을 세우라는 건 어느 나라 법이더냐. 혼자 병상에 누워있는 시간이 이렇게 서글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 몸인데 내가 알 수가 없다는 게 답답했다. 여성이어서 참아야 하는 병이 어디 있을까. 조기순의 친구 문조미가 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생리를 시작한 이후로 매달 생리통으로 고생해도, 그저 진통제나 먹으며 견뎌야 하는 일이라고 배웠다는 거다. 이상한 논리의 성교육으로 어린 여학생들은 사실과 전혀 다른 배움을 겪었으며, 어른이 되어도 여성의 몸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가 거의 없다는 거다. 이렇게 아파지고 나서야 비로소 잘못된 지식과 배움으로 내 몸을 돌보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을 뿐이다. 여성으로, 자궁과 난소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진료를 위해 산부인과에 드나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저자는 말한다. 여성의 몸을 감추려고 할 게 아니라, 더 드러내고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친구가 보호자가 되어 부대끼는 병원 생활이 눈물겨웠다. 비혼을 말하는 조기순에게, 아마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보호자는 필요할 테다. 그때마다 부모님이나 남편이 아닌 친구나 동료가 보호자가 되어 입원이나 수술 서류에 사인해야 하겠지. 병원에 가는 일은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한다. 아픈 것을 미리 알 수는 없으니까. 여러 번 아픔은 찾아오고, 병원에서의 일상 역시 살아가는 모습 중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 옆 병상의 할머니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할 테고, 저렇게도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저 평범한 날들이라고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서로의 고마움을 쌓아갈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가능한 삶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재밌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 일. 아프고 나니 달라지는 삶의 자세를 눈으로 확인한 듯하다. 나 역시 혼자 병원에 다니고 혼자 입원하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다. 익숙하게 그러려니 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마음도 달라진다. 혼자여서 편할 수 있지만 외롭지도 않게, 서로 의지하며 보호자가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건강은 셀프지만, 셀프로 하는 와중에서도 서로 보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또 하나 배우면서 조기순의 일상의 한 장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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