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지 않아
스미노 요루 외 저자, 김현화 역자 / ㈜소미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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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풍기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우리 일상에서 수시로 하는 말 중의 하나일 테니 말이다. 가고 싶지 않아, 하고 싶지 않아 같은 마음속 부정의 말을 표현하지 못해 겪게 되는 불편한 상황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어서 그냥 가고,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해야만 하는 고단함을 겪어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조금은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이밀기도 한다. 아니,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 그래도 말이다. 누구에게나 생기는 그 마음이, 각자의 처지에서는 얼마나 간절한지 알아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가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주인의 출근을 방해(?)하는 로봇의 이야기 핑퐁 트리 스펀지는 너무 재미있었다. 혹시 주인의 마음을 남몰래 읽은 건 아닐까? 11로봇을 거느리는 시대의 가상 설정이 흥미로우면서도, 로봇이 읽어주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다. 나의 일상을, 하루를 로봇이 설정하고 로봇의 지시대로 해야 한다? 어쨌든 로봇의 말을 들은 주인공은 위기를 벗어나긴 하지만,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를 상상하는 건 재밌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컴필레이션인데, 왜 그 안에 머물러야 하는지 모르고 자유 의지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를 만들 수 있음에도, 안주하는 삶을 선택한다. 이는 우리가 사는 동안 여러 번 겪을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마음으로 결정을 하는지 묻는 것 같다. 선택의 기준은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보게 한다. , 어렵고 또 어려운 자유와 선택의 문제. 고민이 깊어진다.


이 소설집에 어울리게 첫 작품으로 등장한 포켓이 인상적이다. 주인공은 부탁을 받고 친구의 이별 현장을 목격한다. 친구와 뜻밖의 대화 기회에 당혹스러운 질문도 받는다. 아르바이트하는 주인공에게 이유를 묻는 친구, 친구에게 거짓말로 대답하는 주인공. 외국에 가려고 아르바이트한다는 말에 친구는 감탄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가고 싶은 곳이 없다. 아르바이트하는 이유도 특별히 없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사람이 이유 없이 뭔가를 할 수도 있지. 혹자는 그 목적 없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주인공의 마음을 알 것 같은 나는 뭔가. 가끔 주말이나 연휴에 남편이 묻는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없느냐고, 모처럼 시간이 생겼는데 어디라도 다녀오자고. 그 말에 선뜻 대답을 못 하곤 한다. 정말이다.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누군가는 그렇게 바라던 여행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주시기를.


아마 가장 많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가 네가 좋아하는/내가 미워하는 세상이었다. 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깊게 생각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보건교사인 주인공은 출근하기 싫어한다. ? 수시로 보건실에 찾아오는 학생이 한 작가의 열성 팬이었는데, 주인공은 그 작가를 싫어하는데도 학생의 예찬론을 들어줘야만 했다. 이 작가 이름만 들어도 주인공에게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 생각나곤 하는데, 학생은 그런 기억을 알 리 없다. 선생님도 자기와 같이 그 작가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급기야 그 작가의 사인회까지 같이 가자고 한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고 그게 긍정의 대답은 아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다른 이는 싫어할 수도 있다. 그저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걸 인정해달라. 주인공은 학생의 작가 예찬을 듣다가 질린다. 자기 업무를 위해 출근하는 게 아니라, 출근해서 학생의 이야기를 듣는 게 고달파 학교에 가기 싫은 거다. 이런 이유가 학교 출근 거부의 이유가 된다는 게 색다르다. 우리가 가기 싫고 하기 싫은 이유가 이렇게도 다양하다는 걸 새삼 알게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자녀가 없는 어느 부부의 한 장면을 다룬 종말의 아쿠아리움은 아이를 바라는 주변의 시선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싶은 아내 가오의 마음을 말한다. 누구나 각자의 삶이 있다. 아이를 바라는 것 역시 개인의 문제다. 타인이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 선을 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 자기의 세계가 무너지는 절망을 맛보고 싶지 않은 것 역시 우리 마음이다. 우연히 만난 여자와 뜻밖의 장소에서 재회하면서 친구가 된 어셥쇼는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했을 만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섯 편의 이야기가 가고 싶지 않은간절함을 가득 담았다. 이미 유명한 작품으로 그 이름을 뽐내는 작가도 있고, 이번 책으로 처음 접한 작가도 있다. 저마다 풀어내는 이야기가 특이하고 재밌다. 다 읽고 나면 다른 독자들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여섯 작품 모두 저마다의 개성으로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하나의 주제로 색이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풀어냈을까 싶은 궁금증과 걱정은 뒤로하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누구나 가고 싶지 않은 곳이, 가고 싶지 않은 때가 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면서 흔하게 겪는 일이다. 때로는 알면서도 가야 하고, 때로는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도 있는 일상이다. 그 중심에 자유, 우리 의지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아가지 못할 때 마주치는 갈등이 마음에 그대로 남는다. 이게 가장 좋다는 방법도 없다. 나름의 이유에 맞는, 내 가슴에 상처가 덜할 최선의 답을 찾을 뿐이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쌓아두기만 하다가 병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주인공들의 상처를 들으면서 별것 아니라고 받아들이며 훌훌 날려버릴 수 있는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싫으면 싫은 대로, 때로는 평범함에서 벗어난 선택도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현실을 피하고 싶은 판타지 같은 이야기, 현실과 너무 닮아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에 푹 빠져 오늘을 돌아보게 되었다. 휴일이 끝나가고 있다. ‘가고 싶지 않은내일이 곧 시작된다. 오늘 아침의 늦잠이 다시 그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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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보냉백 너무 필요해요. 딱 갖고 싶다앙~ 예쁘다.



앤으로 갖고 싶은데, 그러려면 또 책을 사라는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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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01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냉백은 필요없고, 무선충전패드가 너무 예뻐서 방금 책 주문햇어요. 이건 뭐 굿즈를 주문하는건지, 책을 주문하는건지 헷갈립니다. ㅎㅎ

구단씨 2022-06-01 18: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굿즈를 샀더니 책이 사은품으로 왔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요. ㅎㅎ

Breeze 2022-06-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은 무조건 예쁨. ㅋㅋㅋ

구단씨 2022-06-09 22: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 예쁘게 잘 나왔어요. 실용성 있어 보이고요.
 
혼자 입원했습니다 - 요절복통 비혼 여성 수술일기
다드래기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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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중반의 일이다. 배가 살살 아프기에 참다못해 가까운 내과에 갔는데, 며칠 진료받으면서 약을 먹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산부인과 진료를 권유받아 갔더니 나의 난소에 물혹이 있다고 했다. 통증의 원인은 그 혹 때문이었고,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고 지켜보자고 했다. 이 혹이라는 것이 더 커질 수도 있고, 그대로 있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혹이 더 커지고 통증이 계속된다면 수술 같은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대로 사라진다면 좋은 거고. 의사의 말을 듣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일이 아예 없었기에, 진료방식 자체가 두렵고 불편했다. 내 몸에 문제가 생겼는데, 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상황이 더 무서웠다. 그때부터 매일 지옥 같았다. 내 몸 안의 혹은 커졌을까 작아졌을까 그대로일까. 궁금하다고 바로바로 내원해서 진료받을 수도 없고, . 한 달쯤 지났을까. 다시 진료받고 혹이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폭풍 식사를 했다지.


지나고 나니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의 한 달은 지옥이었다. 내 몸의 변화를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저자의 요절복통 수술일기를 보고 있자니 그때 생각이 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번거롭고 불편한 시간을 보냈을까.


주인공 조기순은 만성 변비에 시달리다 대장내시경을 생각했는데, 친구가 산부인과 진료를 추천했다. 지독한 변비에 무슨 산부인과? 하지만 결과는 청천벽력이었다.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고, 난소에 있는 큰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하려면 입원해야 하는데, 조기순의 입원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콜센터 상담원 조기순에게 수술을 위한 입원은 쉽게 승인이 나지 않았고, 조기순의 부재로 동료들의 일이 많아질 것을 걱정해야 했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보증인을 세우라고 한다.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보호자가 아니라 보증인?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작년 3, 장염으로 근처 종합병원에 입원하려고 하니 쉽게 병실은 내주었는데, 코로나 검사하고 결과 기다리고 있는데 보호자를 데려오란다. 나는 거동이 불편하지도 않고 혼자 병원 생활 할 수 있는데 뭔 보호자? 병원 규정이란다. 보호자가 와서 입원 서류에 사인해야 한다고. 그때 느꼈던 그 불편함이란! 그때도 일하는 남편 불러와 서류에 사인하게 하면서 생각했다. 제길, 보호자 없는 사람은 아파도 입원 못 하고 죽어야겠군.


어찌어찌 입원하게 되었어도 다인실이 없어서 비싼 3인실에 들어가게 된 조기순. 함께 사는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와서 보증인(!)에 서명하게 하고 병원 생활 시작한다. 하필이면 입원한 곳이 암 병동이다. 세상에나, 암에 걸린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리고 놀라는 것도 잠시, 이제 그녀는 수술대 위에 누워야 할 시간이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는데도 아프다. 방귀를 뀌지 못해서 음식도 못 먹는다. 친구는 일상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조기순의 간병을 위해 병원에 머무른다. 작고 좁은 보호자 간이침대에 몸을 뉘고 친구를 보살피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비혼 조기순에게 이런 친구라도 없었으면 현실에서 닥친 이 고난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나. 단순하게 입원해서 수술받으면 되겠지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때로는 복잡하고 곤란한 현실적인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간다. 같은 병실 환자들과 이야기하고 먹을 것을 나눠 먹고, 간호사의 보살핌에 마음을 내려놓기도 하고, 색다른 교류의 장을 만들면서 삶을 배운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고, 이런 사정을 가진 사람도 있고,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도 하는구나 싶은... 그러면서 다짐한다. 미친 듯이 달려왔던 시간을 뒤로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리며 사는 법을 그린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것은 이거였다. 아파서 죽겠는데 치료받는 것조차 내 맘대로 안 되는 상황이 짜증이 났다. 병실은 왜 없는 것이며, 다 큰 성인이 입원하는데 보증인을 세우라는 건 어느 나라 법이더냐. 혼자 병상에 누워있는 시간이 이렇게 서글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 몸인데 내가 알 수가 없다는 게 답답했다. 여성이어서 참아야 하는 병이 어디 있을까. 조기순의 친구 문조미가 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생리를 시작한 이후로 매달 생리통으로 고생해도, 그저 진통제나 먹으며 견뎌야 하는 일이라고 배웠다는 거다. 이상한 논리의 성교육으로 어린 여학생들은 사실과 전혀 다른 배움을 겪었으며, 어른이 되어도 여성의 몸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가 거의 없다는 거다. 이렇게 아파지고 나서야 비로소 잘못된 지식과 배움으로 내 몸을 돌보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을 뿐이다. 여성으로, 자궁과 난소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진료를 위해 산부인과에 드나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저자는 말한다. 여성의 몸을 감추려고 할 게 아니라, 더 드러내고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친구가 보호자가 되어 부대끼는 병원 생활이 눈물겨웠다. 비혼을 말하는 조기순에게, 아마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보호자는 필요할 테다. 그때마다 부모님이나 남편이 아닌 친구나 동료가 보호자가 되어 입원이나 수술 서류에 사인해야 하겠지. 병원에 가는 일은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한다. 아픈 것을 미리 알 수는 없으니까. 여러 번 아픔은 찾아오고, 병원에서의 일상 역시 살아가는 모습 중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 옆 병상의 할머니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할 테고, 저렇게도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저 평범한 날들이라고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서로의 고마움을 쌓아갈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가능한 삶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재밌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 일. 아프고 나니 달라지는 삶의 자세를 눈으로 확인한 듯하다. 나 역시 혼자 병원에 다니고 혼자 입원하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다. 익숙하게 그러려니 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마음도 달라진다. 혼자여서 편할 수 있지만 외롭지도 않게, 서로 의지하며 보호자가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건강은 셀프지만, 셀프로 하는 와중에서도 서로 보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또 하나 배우면서 조기순의 일상의 한 장을 새긴다.



#혼자입원했습니다 #다드래기 #웹툰 #만화 #여성 #건강 #비혼

#건강품앗이 ##책추천 #아프면서럽다 #비혼여성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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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 세트 (전면개정판) - 전3권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전면개정판)
김아란 외 엮음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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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0편, 소설 10편, 수필 32편을 읽는 재미와 학습의 즐거움이 있다. 한때 나도 접했을 작품들에 기억이 새록새록. 익숙한 작품들에 친근함을 느끼면서도,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며 문제 풀고 싶은 의욕이 뿜뿜. 국어 공부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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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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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더위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가, 개운하게 씻고 한 모금 넘긴 맥주로 구원받았다. , 간사한 인간이여.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위로하다가 욕심을 부려본다. 이 기분에 딱 좋은 가독성 짙은 추리소설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군. 그렇게 손에 들게 된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를 한참 읽다가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읽었다. 탐정 사와자키가 의뢰(?)받고 간 집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시작된 이야기는,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알게 된 후 새삼스럽게 어떤 인간이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내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을 먼저 본다. 그 신념과 같은 것을 지키느라, 다른 사람 하나쯤 피해를 보고 고통받더라도 무시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갈 테니까 말이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와자키는 유괴사건이 일어난 소녀의 집으로 간다. 바이올린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녀가 유괴되었고, 유괴범은 사와자키를 지정해서 요구한 돈을 가져오라고 한다. 소녀의 집에서는 사와자키가 유괴범과 공범이라고 여기기에 이르고, 사와자키는 경찰의 의심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유괴범을 잡고 소녀도 찾기 위해서는 사와자키가 범인의 요구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움직이던 사와자키는 용의자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닌다. 그러던 중 소녀의 외삼촌에게 또 다른 의뢰를 받고 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소녀는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여전히 사와자키 주변에는 그를 돕는 듯 보이면서도 이상한 관계를 형성하는 야쿠자가 있다. 사와자키의 탐정 업무를 인정하면서도 사건 해결에 끼워주지 않으면서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하는 경찰도 있다. 이들의 협조와 견제를 이겨내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난다. 때로는 자기 방식대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든든하지만, 걱정도 된다. 왜 범인은 그를 돈의 운반에 참여하게 했을까. 혹시 범인은 그가 아는 사람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 유괴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대개 유괴의 목적은 돈인 경우일 텐데, 그 돈의 운반을 굳이 사와자키에게 지시한 이유는 뭘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잡아야만 했다. 물론 유괴된 소녀도 찾아야 하고. 피해자 가족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사와자키마저 의심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의도하지 않게 이 유괴사건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사와자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우리는 이번 사건 역시 그가 잘 해결해내리라 믿고 있지만, 유괴범의 장난 같은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어서 마치 사와자키가 끌려가는 모양새를 지켜보자니 답답하기만 했다. 조금씩 찾아가는 단서를 모으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그 자신만이 이 유괴사건을 바라보면서 차곡차곡 실마리를 쌓아가는 것이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그의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는 소녀의 죽음이 마치 자기 때문인 것처럼 여긴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그가 범인의 장난질에 놀아나느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공격당하느라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고 여긴다. 사실일까. 물론 타이밍은 중요하다. 간발의 차이로 누군가의 생사는 달라진다. 하지만 그가 사건 해결을 위해 뛰었던 건 사실이고, 누구보다 이 사건이 해결되어 소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 중의 한 명이라는 건 분명하다.


사건이 해결되면서 진상을 듣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가족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설령 지키기 위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 범죄를 감추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 비밀이 언제까지 지켜질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그 진실을 품고 사는 인생이 온전할 수 있을까. 사와자키가 동분서주하며 만난 사람들과 단서들은 결국, 이 사건을 풀어내고야 말았다. 때로는 묻어두어도 좋은 일이 있기 마련이지만,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드러내야 하는 이유도 있는 법이다. 사와자키가 밝혀낸 이 유괴사건의 진실은, 어이없고 안타깝고 애틋했다. 계획하지 않았더라도, 실수였더라도, 이 사건이 범죄라는 건 분명하다. 깊은 슬픔을 감당하면서 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작가의 능력이겠지만, 감정이 없는 듯 풀어내는 문장이 매력적이다. 그러니까 사건은 벌어졌고,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도 있기 마련이지만, 사와자키가 보는 시선과 묘사를 보면 참 건조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탐정은 이렇게 감정 없이 생각하고 말해야만 일할 수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담백하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사건을 바라보는 독자의 가슴에 감정은 존재하니, 때로는 이해하고 피해자의 슬픔에 분노하면서 읽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굉장한 속도감으로 사건에 빠져들게 하면서, 중간에 감질나게 단서를 심어놓으면서 보물찾기하듯 읽게 한다. 처음부터 들려왔던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목소리 유괴범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으니까. 그 어떤 단서도 함부로 범인을 단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반전이 흥미롭다. 충격적이면서, 처음부터 잘 짜 맞춰있던 퍼즐을 비로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세심하게 가다듬은 번역으로 13년 만에 만나는 개정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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