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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평점 :
몇 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돌봄의 역할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를 간병했던 게 엄마와 나의 일이 되었던 건, 다른 가족의 강요는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그랬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함께 사는 이가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웠다. 아버지의 옆에 있던 엄마와 내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엄마와 나는 그 일을 다른 가족에게 떠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여겼다. 후에 비용적인 문제까지 발생했을 때는 가족이 함께 의논하고 해결했지만, 그 이상의 것은 함께하지 못했다. 오롯이 함께 사는 이의 몫이었다. 그게 당연한가?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게 왜 당연히 엄마와 나의 몫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도 나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몸이었다. 아내라는, 옆에 있다는 이유로 자기 돌봄도 어려운 사람이 다른 이를 돌봐야 한다는 당연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어쩌면 다른 돌봄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의 전작 『이완의 자세』로 여탕에 드나드는 여성의 삶과 내밀한 속내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여성이 감당해왔던 돌봄을 듣게 되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돌봄이 왜 여성의 몫이 되었는지, 혹은 돌봄을 준비하는 것조차 여성의 책임이 되었는지 묻는다. 이 소설집에 담긴 열 편의 이야기는 한 집안의 여자가 책임지는 돌봄, 오늘을 사는 엄마의 역할이 만들어낸 돌봄, 고령화 시대에 감당해야 할 노인의 돌봄을 말한다. 그 어느 것도 우리 삶을 피해갈 수 없다. 집안의 문제는 해결해야 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나이 들어가는 당연함을 비껴갈 수도 없는 게 우리 삶이다.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돌봄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첫 작품 「대추」에서부터 마음이 쓰려왔다. 할머니를 돌보는 외숙모는 묵묵히 돌봄을 행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집의 대추 맛을 바라던 할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외숙모의 아들이자 할머니의 손자인 영석뿐이다. 남의 집 담을 넘어서까지 구해온 대추의 의미를 할머니는 모르리라. 엄마의 힘듦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아들의 마음. 단지 그것뿐이었다. 할머니가 당연하게 여기는 며느리의 돌봄이, 손주에게는 엄마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당연했을 테다. 「경자」에서 경자가 시대와 다른 여성의 인생이었다고 함부로 여기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경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욕하던 경자의 삶이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거다. 경자의 삶을 욕하던 이들은 집안의 남자였는데,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건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원하던 대로 살지 않는 집안의 여자를 욕하고, 그들이 저지른 문제를 해결하라고 등 떠미는 것 역시 집안의 여자들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그 마음은 「안(安)」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흐르는데, 평생 식구들의 뒷바라지에 인생을 바친 큰엄마의 부고에 주인공은 올케언니를 원망하는 듯 말한다. 큰엄마의 희생으로 이 가족은 평안했으며, 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 큰엄마는 주인공이 겪는 시집살이를 오히려 두둔했다.
미야. 큰엄마 말 들어라. 나 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웃게 된다. 결혼해서 여자는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지만 다 안다.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주면 부처님이라도 알아주신다. (65페이지, 안(安))
이미 돌봄의 문제는 첫 번째 장에서 그 시작과 불평등을 확인됐다. ‘한 사람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문제였던 거다. 그때와 지금,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돌봄의 영역에서 얼마나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두 번째 장에서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돌봄의 속내를 보여 준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화려했던 여성의 삶이 돌봄의 실패로 가해자(?)처럼 살아가게 하는 「연주의 절반」. 잠깐 사이에 아이가 발코니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시모는 그 탓을 며느리의 죄로 여겼다. 만만한 게 애 엄마라면서. 이혼 후에도 연주는 아이를 잃은 슬픔과 스스로 죄인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로 위로받곤 했다. 화자인 ‘나’는 육아의 고충과 위험에서 긴장하고 살지만, 연주는 자기 삶을 찾아간다. ‘만만한 애 엄마’의 돌봄 세상을 자기 삶을 찾아가는 돌봄으로 채우는 것만 같다. 비슷하게 「조리원 천국」은 여성의 삶이 모유 수유를 잘하는 경쟁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세계를 말한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아왔는데,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다른 경쟁에 빠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돌보는 마음」은 출산 이후의 아이 돌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보모를 구하는 어려움에서부터 아이를 맡긴다는 이유로 저절로 ‘을’이 되어 고개를 숙여야 하고, 경력단절이 될까 봐 스스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마음먹기도 어려운 순간이 절망적이다. 보모의 소소한(?) 절도 행각까지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게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금액을 지급하고도 안심하거나 만족할 수 없는 육아 문제는 엄마 혼자 전전긍긍해야 하는 돌봄의 세계였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못하는 그 마음은 「내 이웃과의 거리」로 절망까지 심어준다. 쇼핑몰 핫딜을 찾아다니는 이웃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자기의 배려가 자신에게 박탈감을 심어준 것을 느낀다. 100원을 아껴서 생활하는 이가 10억짜리 집의 소유주라니, 4천 원짜리 마스크 한 장이 별거인가 싶어서 나눠줬던 게 전세살이의 이유가 되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이렇게 쏟아지는 불안과 불편의 감정은 오롯이 여성, 엄마의 몫이 된다.
“당신은 대한민국에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 2년 쓸 수 있는 조식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6개월, 도합 9개월밖에 못 쉬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른 직원들 눈치가 얼마나 보이는 줄 알아? 기훈 씨 말대로 2년 쉬다 오면 기존 팀으로 복귀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까지 못마땅하면 당신이 육아휴직 해.” (151페이지, 돌보는 마음)
언니는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육아 휴직이 끝나갈 무렵 언니는 복귀를 고민했다. 당연히 다시 회사에 나가겠다고 했던 처음의 마음은 점점 어려워졌다. 보모를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고, 비용이 상당했다. 언니가 받는 급여의 거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했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를 생각했고, 이렇게 어린아이를 두고 나가야 하는 마음을 걱정했다. 결국, 언니는 복귀를 앞두고 퇴직했다. 2년쯤 후에는 둘째 아이까지 태어났기에 당분간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기는 더 어려워졌다. 너무도 당연한 흐름이었다. 형부는 일하고,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하게 언니 몫이 되어 두 아이를 돌보는 생활이었다. 외출은 물론이고 가끔 우리가 가면 같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크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언니는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아이 돌봄에서 벗어나도 된다고 여겼기에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언니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느라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일하기 시작한 거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육아의 문제는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가 되는 건 선택이었지만, 육아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경제적 능력까지 상실하게 되어 우울증까지 생긴다.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살피게 되고, 무능력한 자신을 탓하기에 이른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느냔 말이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모습은 이제 새롭지 않다. 「입원」의 분례는 치매에 걸린 남편에게 맞아가면서도 자신이 돌봐야 한다고 믿는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처럼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요양 시설에 입원시키고 오는 마음이 불편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특별재난지역」의 주인공 역시 요양 시설의 아버지를 돌보고, 미혼부 아들이 놓고 간 손녀를 돌보느라 고단하다. 딸은 아들과 차별하며 키웠다고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배우고 살아온 대로 아이를 키웠을 엄마에게 돌아온 건 원망이라니. 하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이다. 딸이 느꼈을 서러움은 엄마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테다. 독신주의였던 여자가 불쌍한 남자를 만나서 돌봐야겠다고 여긴 「태풍주의보」는, 이상하게도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나 싶으면서도, 이런 돌봄을 선택한 여자의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빠 부부처럼 잘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렇게 보이기 위해 누군가는 얼마나 많이 희생했을지 당신은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 부부가 지금은 각자의 삶을 바란다고.
“오늘이 누구 생일이가?”
대수가 물었고, 식구들은 서로 눈빛만 교환하고 대답이 없었다.
“식사나 하이소.”
분례가 대수의 컵에 물을 따라 주며 말했다.
오늘 당신은 그곳에 가게 될 거라고, 그곳이 당신의 마지막 장소가 될 거라고,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 나중에는 그곳에 가게 될 거라는 말을 아무도 대수에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구들 오랜만에 다 모이 가꼬, 오늘 기분이 윽수로 좋다.” (224페이지, 입원)
어떤 형태의 돌봄이든,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안 그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집에서 보여 준 이야기도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돌봄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처럼 ‘돌보는 마음’은 다양했다. 자기가 원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복수하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당연하게 해왔던 습관처럼... 그때마다 누군가의 희생은 필요하다. 육체의 노동으로 하든 돈으로 지급하든, 한 가정을 지탱하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도 확인했듯이, 돌보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세상의 모습 또한 다양했다. 인구 절감의 위기에 출산을 독려하면서도 경력단절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엄마가 출산했으니 육아의 담당도 엄마의 몫이 되는 흐름이 당연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이어져 왔다. 거기에 노년의 돌봄까지 아내와 엄마의 차지가 되어왔다. 여성의 의무와 책임은 왜 이렇게 거대해졌나. 특히 코로나 19 상황은 그 돌봄의 책임을 더 무겁고 크게 만들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돌봄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당황할 지경이다. 누구나 감당해야 할 돌봄의 문제가 유독 여성의 삶에 가득해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그 흐름과 이유를 알게 되는 게 서글펐다. 세월을 거슬러 시작되었던, 여성의 돌봄 노동이 여전히 이어져 왔다는 게 아프기만 하다. 그 크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여성은 가족과 아이, 가정 내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 먼저 차출되듯 선택되는 묘한 상황이 불편하면서도 애틋한 내 마음이 뭔지 궁금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돌본다는 기쁨, 이 돌봄으로 자기 인생의 변곡점이 생겼다는 원망, 같은 상황에 같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서로 완전 다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질투와 열등감, 본인 말고 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절박함까지.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기에 이 돌봄의 세계에서 버티는 사람들이다. 힘껏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의 엄마가, 내 가족이, 내가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의, 나를 돌봐줄 이들의 이야기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공감하고, 너무 몰라서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듣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무시를 견디는 엄마를 보며 살았던 내가, 엄마를 존중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무시하며 살았다. 결코, 당신의 삶에 나를 끼워 넣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나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간병에 오랜 시간과 노동을 감당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가족에 희생당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나고 보니, 나 역시 엄마를 돌보면서 그 돌봄의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당연하게 다가온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불편함을 치워버리고자, 엄마가 나를 돌봤듯이 이제는 내가 갚아야 할 일이 되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제 혼자 남은 엄마를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형제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갹출해서 저축하고, 엄마에게 생기는 문제를 같이 의논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내가 혼자 생각하는 돌봄의 순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계속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이 소설 속에서 많은 가족이, 여성이 맞닥뜨렸던 순간을 상상한다. 이미 겪기도 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다시 그 순간을 마주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여성의 삶 역시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근본적인 삶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돌봄 노동에 참여하든 돈으로 해결하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문제 앞에서 생각해야 할 게 마음이라고. 나를 보살피고,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지금 내가 찾아야 할 돌봄의 이유는 바로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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