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은둔의 역사 -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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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게 좋은데 혼자여서 외로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늘 적당한 선 안에서 그 마음을 충족했으면 싶은데, 언제나 그 적당한 선은 지켜지지 않아서 괴로웠다. 그러니 은둔을 혼자인 시간이라고만 생각하면 낭만적이라고 여길 수 없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저자는 제목에 낭만은둔을 같이 올려놓고 독자를 홀린다. 우리가 즐기고 원하는 혼자인 시간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모든 은둔의 시간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혼자인 시간의 양면성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 혼자여서 만족스럽지만 외롭기도 한, 인간으로 함께 살아가는 일의 양면성 말이다.


저자는 약 400년 동안의 혼자 있기를 연구한 결과로,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왔는지 말한다. 과거에서 이어져 온 혼자 있는 시간의 역사라니, 새롭고 의아하다. 그러면서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많은 이가 겪었을 감정을, 그 근원을 파헤치듯 역사를 풀어놓는다. 뜻밖의 시작은 걷기의 도박이었다. 판돈을 걸고 정해진 시간과 거리를 걸으며 기록을 경신하는 도박이었다니 놀랍다. 이어지는 산책의 미학은 점점 혼자인 시간의 즐거움을 알게 한다. 하지만 과거의 혼자인 시간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상한 법으로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고, 혼자서 걷는 일이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보기도 했다. 계급이 있던 시절, 평범한 사람들이 혼자 걷는 일은 불온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혼자 산책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던 시절이었다니, 이 시대는 어떤 사람들이 마음대로 걸을 수 있었던 건지.


조용한 가정 여가활동은 다양하고 역사도 길었지만, 19세기에 그 양과 종류가 급증했다. 이 시기에 근대화가 반영된 실용적인 여가활동들이 생겼다. 전례 없는 가정 경제의 번영,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변화, 활기차게 반응하는 소비 경제, 무엇보다 활발한 대중매체의 활용이 요인이었다. 무료한 일상의 여백을 메우는데 그친 게 아니라 그런 활동들이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재수립했다고 볼 만했다. 빅토리아시대 중류층 가족은 조화를 이루기 위해 폭넓은 단독 활동을 했다. 개인 활동의 다양성, 개인과 집단 활동 간의 자연스러운 이동은 의견상 사교적인 부르주아 가정생활에 중요했다. 더욱이 풍성한 인쇄물과 서신 교환은 실질적인 공동체의 영역을 넓혔다. (89~90페이지)


혼자인 시간은 무엇으로 채우고 즐길 수 있었을까. 예상했겠지만, 혼자 산책하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하거나. 어떤 도구라도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고독이고 낭만적 은둔이다. 하지만 고독이 좋은 것만은 아닌 적도 있다. 감옥의 독방, 수도원의 닫힌 생활 같은 시간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처벌로 갇힌 독방도 교화의 목적을 다 이루지는 못하고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종교의 영향이 짙었던 시절, 종교는 법의 영역까지 담당하며 독방의 효과를 피력했다. 고독의 공포가 마음을 열어준다며 갱생을 기대했으나, 정신적인 문제만 일으키는 정도였다. 고립은 본인이 원하는 고독이 아니었으며, 타인에 의해 혼자됨은 고독과 같을 수 없다는 걸 확인했을 거다.


고독의 즐거움은 취미로 이어진다. 바느질이나 농작물 키우기는 노동의 시간이면서도 본인의 재미를 찾는 시간이다. 누군가 잘하는 일을 계속하고,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에서 펼쳐졌다. 열정적인 수집은 물론이고 여행하는 일상은 항해까지 하게 한다. 혼자서 누비는 항해라니, 멋지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망망대해 위에서 혼자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레서가 아니라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만 같은 이 배를 어쩌나 싶은 걱정. 저자가 소개하는 혼자 항해하는 이들은 앞서 항해한 이들을 따라 하거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항해를 한다. 그러다가 곧 읽을거리가 그 고독을 즐기는 자리를 차지한다. 많은 간행물, 출간 서적은 혼자를 즐기는 이들에게 좋은 아이템이 된다.


인상적이면서 마음에 와닿는 것은 이 책의 후반부였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고독은 과거와 양상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오늘날 혼자인 시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가면서 말하는데,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 삶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우리의 고독을 즐겁게 해주었던 종이로 된 읽을거리는 곧 모바일 기기로 빠져드는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이든 걸어가면서든 작은 기기에 눈을 모으고 집중하는 모습은 디지털시대의 관계가 어떤지 바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정보의 획득과 좀 더 편하게 사는 일상을 누리는 게 우리가 원하는 삶이지만, 비대면의 시대에 너무 빠르게 흡수되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낭만적 은둔의 시간이 되기까지 우리의 혼자인 시간이 그려야 할 장면을 조금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언어는 인간이 혼자인 것의 양면을 현명하게 포착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아픔을 나타내가 위해 생긴 표현이다. 또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의 영광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어휘를 만들었다. (281페이지)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고 이제 1인 가구의 증가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이도 많고, 나이 상관없이 혼밥이 익숙한 이도 많다. 혼자 살아가는 일은 소통하지 못하고 현대의 삶이 실패한 게 아니라, 때로는 이 사회를 배우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한다. 간혹 외로움이 일상을 파고들어 삶을 건강하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고독과 외로움의 균형을 맞춰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저자는 여러 작가의 책과 역사의 한 장면들을 열거하면서 고독의 기쁨을 발견하게 한다.


집단의 재미없는 산만함에서 물러나 자기 생각을 성숙시킬 장소를 찾아야 한다라는 철학자의 말을 대신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만들어낸 충전의 기회를 소개한다. 사실 제목만 보고 은둔의 즐거움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는데, 의외의 역사를 알게 된 기분에 혼자인 시간의 가치를 배운 듯하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사람 많은 공간과 시간도 필요하지만, 혼자만의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다. 저자는 혼자였던 많은 사례를 들려주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많고 혼자인 게 삶의 실패도 아니라는 걸 공감하게 했다.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일은 낭만적 은둔의 핵심을 이루며, 고독의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생각해보면 산책하는 것만큼 혼자인 즐거움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다양하지만, 고요한 자연 속에서 걷는 것만큼 여유롭고 쉬어가는 느낌이 드는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


우리는 의외로,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혼자 즐겁게 지낼 수 있고, 그 즐거움을 위한 많은 도구도 존재한다. 외로움과 고독을 잘 구분하면서, 혼자인 순간을 잘 보내는 법을 배우며 은둔을 즐기고 싶다. 저자가 말하는 낭만적 은둔의 세계로 빠져들어 혼자의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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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혼자의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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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0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2-06-13 18: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입니다. 무사히 지내고 계신가요? ^^

서니데이 2022-06-1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구단씨 2022-06-13 18: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주말의 무더위가 힘들었어요. ^^

thkang1001 2022-06-11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구단씨 2022-06-13 18: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잘 쉬셨나요? 어김없이 월요일입니다. ^^

thkang1001 2022-06-1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말씀 감사합니다. 구단씨님께서도 행복한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린이 서양철학 : 날아라 칸트 노마의 발견 6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 지음 / 해냄주니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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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배우기 주저하는 철학을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으로 접하게 하는 노마의 발견 시리즈. 일상의 궁금증을 철학자들에게 물어보려고 시간 여행을 하는 주인공에게 빠져드는 재미가 있다. 노마가 만난 철학자들과 풀어가는 철학 이론과 삶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논리를 동시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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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마음이 자라는 나무 11
타라 설리번 지음, 이보미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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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초콜릿 뒤에 어린이 청소년 노동의 민낯이 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움과 향기에 가려진 진실을 듣는다. 우리, 같은 지구에 사는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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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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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돌봄의 역할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를 간병했던 게 엄마와 나의 일이 되었던 건, 다른 가족의 강요는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그랬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함께 사는 이가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웠다. 아버지의 옆에 있던 엄마와 내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엄마와 나는 그 일을 다른 가족에게 떠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여겼다. 후에 비용적인 문제까지 발생했을 때는 가족이 함께 의논하고 해결했지만, 그 이상의 것은 함께하지 못했다. 오롯이 함께 사는 이의 몫이었다. 그게 당연한가?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게 왜 당연히 엄마와 나의 몫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도 나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몸이었다. 아내라는, 옆에 있다는 이유로 자기 돌봄도 어려운 사람이 다른 이를 돌봐야 한다는 당연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어쩌면 다른 돌봄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의 전작 이완의 자세로 여탕에 드나드는 여성의 삶과 내밀한 속내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여성이 감당해왔던 돌봄을 듣게 되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돌봄이 왜 여성의 몫이 되었는지, 혹은 돌봄을 준비하는 것조차 여성의 책임이 되었는지 묻는다. 이 소설집에 담긴 열 편의 이야기는 한 집안의 여자가 책임지는 돌봄, 오늘을 사는 엄마의 역할이 만들어낸 돌봄, 고령화 시대에 감당해야 할 노인의 돌봄을 말한다. 그 어느 것도 우리 삶을 피해갈 수 없다. 집안의 문제는 해결해야 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나이 들어가는 당연함을 비껴갈 수도 없는 게 우리 삶이다.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돌봄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첫 작품 대추에서부터 마음이 쓰려왔다. 할머니를 돌보는 외숙모는 묵묵히 돌봄을 행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집의 대추 맛을 바라던 할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외숙모의 아들이자 할머니의 손자인 영석뿐이다. 남의 집 담을 넘어서까지 구해온 대추의 의미를 할머니는 모르리라. 엄마의 힘듦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아들의 마음. 단지 그것뿐이었다. 할머니가 당연하게 여기는 며느리의 돌봄이, 손주에게는 엄마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당연했을 테다. 경자에서 경자가 시대와 다른 여성의 인생이었다고 함부로 여기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경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욕하던 경자의 삶이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거다. 경자의 삶을 욕하던 이들은 집안의 남자였는데,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건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원하던 대로 살지 않는 집안의 여자를 욕하고, 그들이 저지른 문제를 해결하라고 등 떠미는 것 역시 집안의 여자들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그 마음은 ()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흐르는데, 평생 식구들의 뒷바라지에 인생을 바친 큰엄마의 부고에 주인공은 올케언니를 원망하는 듯 말한다. 큰엄마의 희생으로 이 가족은 평안했으며, 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 큰엄마는 주인공이 겪는 시집살이를 오히려 두둔했다.


미야. 큰엄마 말 들어라. 나 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웃게 된다. 결혼해서 여자는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지만 다 안다.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주면 부처님이라도 알아주신다. (65페이지, ())


이미 돌봄의 문제는 첫 번째 장에서 그 시작과 불평등을 확인됐다. ‘한 사람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문제였던 거다. 그때와 지금,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돌봄의 영역에서 얼마나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두 번째 장에서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돌봄의 속내를 보여 준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화려했던 여성의 삶이 돌봄의 실패로 가해자(?)처럼 살아가게 하는 연주의 절반. 잠깐 사이에 아이가 발코니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시모는 그 탓을 며느리의 죄로 여겼다. 만만한 게 애 엄마라면서. 이혼 후에도 연주는 아이를 잃은 슬픔과 스스로 죄인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로 위로받곤 했다. 화자인 는 육아의 고충과 위험에서 긴장하고 살지만, 연주는 자기 삶을 찾아간다. ‘만만한 애 엄마의 돌봄 세상을 자기 삶을 찾아가는 돌봄으로 채우는 것만 같다. 비슷하게 조리원 천국은 여성의 삶이 모유 수유를 잘하는 경쟁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세계를 말한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아왔는데,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다른 경쟁에 빠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돌보는 마음은 출산 이후의 아이 돌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보모를 구하는 어려움에서부터 아이를 맡긴다는 이유로 저절로 이 되어 고개를 숙여야 하고, 경력단절이 될까 봐 스스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마음먹기도 어려운 순간이 절망적이다. 보모의 소소한(?) 절도 행각까지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게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금액을 지급하고도 안심하거나 만족할 수 없는 육아 문제는 엄마 혼자 전전긍긍해야 하는 돌봄의 세계였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못하는 그 마음은 내 이웃과의 거리로 절망까지 심어준다. 쇼핑몰 핫딜을 찾아다니는 이웃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자기의 배려가 자신에게 박탈감을 심어준 것을 느낀다. 100원을 아껴서 생활하는 이가 10억짜리 집의 소유주라니, 4천 원짜리 마스크 한 장이 별거인가 싶어서 나눠줬던 게 전세살이의 이유가 되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이렇게 쏟아지는 불안과 불편의 감정은 오롯이 여성, 엄마의 몫이 된다.


당신은 대한민국에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 2년 쓸 수 있는 조식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6개월, 도합 9개월밖에 못 쉬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른 직원들 눈치가 얼마나 보이는 줄 알아? 기훈 씨 말대로 2년 쉬다 오면 기존 팀으로 복귀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까지 못마땅하면 당신이 육아휴직 해.” (151페이지, 돌보는 마음)


언니는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육아 휴직이 끝나갈 무렵 언니는 복귀를 고민했다. 당연히 다시 회사에 나가겠다고 했던 처음의 마음은 점점 어려워졌다. 보모를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고, 비용이 상당했다. 언니가 받는 급여의 거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했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를 생각했고, 이렇게 어린아이를 두고 나가야 하는 마음을 걱정했다. 결국, 언니는 복귀를 앞두고 퇴직했다. 2년쯤 후에는 둘째 아이까지 태어났기에 당분간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기는 더 어려워졌다. 너무도 당연한 흐름이었다. 형부는 일하고,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하게 언니 몫이 되어 두 아이를 돌보는 생활이었다. 외출은 물론이고 가끔 우리가 가면 같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크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언니는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아이 돌봄에서 벗어나도 된다고 여겼기에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언니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느라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일하기 시작한 거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육아의 문제는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가 되는 건 선택이었지만, 육아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경제적 능력까지 상실하게 되어 우울증까지 생긴다.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살피게 되고, 무능력한 자신을 탓하기에 이른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느냔 말이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모습은 이제 새롭지 않다. 입원의 분례는 치매에 걸린 남편에게 맞아가면서도 자신이 돌봐야 한다고 믿는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처럼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요양 시설에 입원시키고 오는 마음이 불편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특별재난지역의 주인공 역시 요양 시설의 아버지를 돌보고, 미혼부 아들이 놓고 간 손녀를 돌보느라 고단하다. 딸은 아들과 차별하며 키웠다고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배우고 살아온 대로 아이를 키웠을 엄마에게 돌아온 건 원망이라니. 하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이다. 딸이 느꼈을 서러움은 엄마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테다. 독신주의였던 여자가 불쌍한 남자를 만나서 돌봐야겠다고 여긴 태풍주의보, 이상하게도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나 싶으면서도, 이런 돌봄을 선택한 여자의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빠 부부처럼 잘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렇게 보이기 위해 누군가는 얼마나 많이 희생했을지 당신은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 부부가 지금은 각자의 삶을 바란다고.


오늘이 누구 생일이가?”

대수가 물었고, 식구들은 서로 눈빛만 교환하고 대답이 없었다.

식사나 하이소.”

분례가 대수의 컵에 물을 따라 주며 말했다.

오늘 당신은 그곳에 가게 될 거라고, 그곳이 당신의 마지막 장소가 될 거라고,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 나중에는 그곳에 가게 될 거라는 말을 아무도 대수에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구들 오랜만에 다 모이 가꼬, 오늘 기분이 윽수로 좋다.” (224페이지, 입원)


어떤 형태의 돌봄이든,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안 그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집에서 보여 준 이야기도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돌봄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처럼 돌보는 마음은 다양했다. 자기가 원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복수하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당연하게 해왔던 습관처럼... 그때마다 누군가의 희생은 필요하다. 육체의 노동으로 하든 돈으로 지급하든, 한 가정을 지탱하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도 확인했듯이, 돌보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세상의 모습 또한 다양했다. 인구 절감의 위기에 출산을 독려하면서도 경력단절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엄마가 출산했으니 육아의 담당도 엄마의 몫이 되는 흐름이 당연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이어져 왔다. 거기에 노년의 돌봄까지 아내와 엄마의 차지가 되어왔다. 여성의 의무와 책임은 왜 이렇게 거대해졌나. 특히 코로나 19 상황은 그 돌봄의 책임을 더 무겁고 크게 만들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돌봄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당황할 지경이다. 누구나 감당해야 할 돌봄의 문제가 유독 여성의 삶에 가득해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그 흐름과 이유를 알게 되는 게 서글펐다. 세월을 거슬러 시작되었던, 여성의 돌봄 노동이 여전히 이어져 왔다는 게 아프기만 하다. 그 크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여성은 가족과 아이, 가정 내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 먼저 차출되듯 선택되는 묘한 상황이 불편하면서도 애틋한 내 마음이 뭔지 궁금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돌본다는 기쁨, 이 돌봄으로 자기 인생의 변곡점이 생겼다는 원망, 같은 상황에 같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서로 완전 다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질투와 열등감, 본인 말고 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절박함까지.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기에 이 돌봄의 세계에서 버티는 사람들이다. 힘껏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의 엄마가, 내 가족이, 내가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의, 나를 돌봐줄 이들의 이야기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공감하고, 너무 몰라서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듣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무시를 견디는 엄마를 보며 살았던 내가, 엄마를 존중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무시하며 살았다. 결코, 당신의 삶에 나를 끼워 넣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나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간병에 오랜 시간과 노동을 감당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가족에 희생당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나고 보니, 나 역시 엄마를 돌보면서 그 돌봄의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당연하게 다가온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불편함을 치워버리고자, 엄마가 나를 돌봤듯이 이제는 내가 갚아야 할 일이 되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제 혼자 남은 엄마를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형제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갹출해서 저축하고, 엄마에게 생기는 문제를 같이 의논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내가 혼자 생각하는 돌봄의 순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계속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이 소설 속에서 많은 가족이, 여성이 맞닥뜨렸던 순간을 상상한다. 이미 겪기도 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다시 그 순간을 마주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여성의 삶 역시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근본적인 삶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돌봄 노동에 참여하든 돈으로 해결하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문제 앞에서 생각해야 할 게 마음이라고. 나를 보살피고,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지금 내가 찾아야 할 돌봄의 이유는 바로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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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들키지 않은 경험이 당신에게 있는가? 예를 들면, 어렸을 적에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탕 하나 훔쳤는데 들키지 않았다던가, 시험에 커닝했는데 아무도 못 봤다던가, 뭐 그런 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살인은 다르다. 이런 중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다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저질렀는데 여전히 그 범인을 알 수 없다면 우리는 무서워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살인이 범죄소설을 따라 한 모방범죄라면 그 공포는 더 크지 않을까? 즐기려고 읽는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살인을 만들어줄 선생이 된다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피터 스완슨의 작품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연쇄 살인이 등장한다. 처음부터 연쇄 살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나씩, 그 범죄를 추적하다 보니 이건 한 사람의 소행일 거로 여긴다. 그 중심에 범죄소설이 있다. 범인은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범죄소설의 내용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서점에서 일하는 주인공 맬컴이 과거의 어느 날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글 하나가 마음에 걸린다. 그는 추리소설 마니아이면서 추리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을 운영한다. 그가 과거에 그 서점에서 일할 때 책 좀 팔아보겠다고 정리해서 올렸던 리스트가 이 살인사건의 중심에 있던 거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다. 때로는 살인이 아니라 자연사로 보이게 하는 능력도 있다. 누군가를 죽이고, 혹은 의심받는 상황이 닥쳐도 결국은 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완벽한 살인 아닌가? 그러다 보니 이 소설들을 따라 하는 사람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소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의 범인 말이다.


범인은 왜 이 소설들을 따라 했을까? 블로그에 이 목록을 올려놨다는 이유 하나로 맬컴은 은근히 용의자가 된다. 처음에는 나도 맬컴이 범인이 아닐까 계속 의심했는데, 의심할만하면 의심이 풀리고, 의심이 풀릴만하면 의심이 되는 마음이 반복되더라. 진짜로 범인은 누굴까. 급기야 맬컴이 용의자로 지목되자 나 역시도 그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짙어졌다. 그의 인격이 두 개여서 사람 좋은 서점 주인과 연쇄 살인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 그런데 그 의심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가 범인인지 목격자인지, 아니면 그거 블로그에 글 하나 올려놓고 억울하게 의심받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모방범죄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현실에서도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는 종종 있었고, 그들은 마치 환상 속을 거니는 것처럼 범죄 사실을 말하곤 했다. 따라 하면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실패할 리 없을 것처럼 말이다. 그게 사실인지 알 수 없다. 지금도 미제 사건은 많겠지만, 누군가는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사건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소설의 범인이 간과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지점인 듯하다. 잡히지 않을 거라는 확신, 이 살인이 계속되어도 좋다는 즐거움을 한꺼번에 이루려는 듯 자신만만하다. 한 번의 살인은 두려움과 설렘을 주었지만, 점차 그의 인생에 활력소가 되었을 테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계속되면 그 두려움도 사라진다. 즐기는 수준에 이르지는 않을까? 누군가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만족감을 느낄지도 모르지. 이 소설의 범인도 그럴까? 사건들에 다가갈수록 사건 자체보다는 범인의 심리에 집중하게 된다. 왜 이런 살인을 계속 저지르고 있는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쩌면 다음 피해자는 맬컴 자신이 될지도 모르니까.


피터 스완슨의 전작들을 봐도 그렇지만, 이 소설 역시 가독성은 좋다. 계속 읽어본 작품들의 분위기가 비슷해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반면 어느 정도 기본 독자는 확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새끼를 치는 책이라 그런지 더 궁금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설에서 언급된 다른 소설들을 찾아보게 된다. 살인의 방법이 된, 추리소설의 고전처럼 남아있는, 따라 해보니 정말 완벽한 살인이 될 것만 같은 소설들. ^^ 제목도 익숙하고, 어디선가 한권 이상은 분명 읽어봤을 목록이 되시겠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덫, A.A. 밀른의 붉은 저택의 비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살의, 제임스 M. 케인의 이중 배상, D. 맥도널드의 익사자,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등은 물론이고 이 외의 작품들도 단서로 등장한다.


이 중에 몇 권 읽으셨는지? ^^ 목록을 보고 고개가 푹 숙여졌다. , 추리소설 좋아하는데, 이렇게 유명한 책들인데? 이 중에 읽은 게 딱 한 권, 그마저도 내용이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이거 꼭 확인하고 싶은데, 이 소설들 속에서 정말 맬컴이 소개했던, 범인이 원했던 완벽한 살인이 가능한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데 지금은 알 수 없네. ㅠㅠ 의지가 불끈 솟는다. 기어코 다 읽어내서 확인하고야 말리라.


소설의 내용대로 살인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일까 궁금했다. 범인은 소설의 내용대로 절대 잡히지 않은 완벽한 살인이 될 건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게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현실에 적용해도 똑같은 결말을 마주할 수 있을지. 읽는 나도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도 있을지,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을 수 있을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은 읽으면서 상상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지만, 간혹 이 소설의 범인처럼 그가 그 상상을 현실로 이뤄낼 수 있다고 믿으면 대책이 없다. 정상에서 벗어난 그 사고를 멈출 수 있는 건 범인을 검거하는 것뿐이다. 그에게는 나름 이 살인의 당위성도 있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골라서 죽이는 것이니 그다지 죄책감도 없다. 쓰레기 취급받을 정도로 나쁜 사람을 죽이곤 했다. 물론 처음에만 그랬다. 살인이 계속될수록, 점점 맬컴의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로써 분명해졌다. 범인은 맬컴을 겨냥한 거다. 그에게 보라고 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기분이다. 한쪽에서 당기면 끌려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반대편에서 확 끌어당기면서 메롱하는 느낌. 그러면서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와 감춰진 진실들이 이 소설을 더 복잡하고 촘촘한 짜임으로 만든다. 뒤늦게 들려오는 진실들은 이 살인사건들과 얼마나 연관이 되어 있을지, 완벽해 보이는 범죄소설이 현실에서 어떻게 이용될 수도 있는지 묻는 것만 같다. 눈에 보이니 따라 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누군가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도구가 된다. 들을수록 완벽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이어지고, 누군가는 정말 죽어 마땅한 존재로 남아있다는 게 놀랍다. 분명 살인은 범죄인데, 그 범죄의 피해자들이 죽었다고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 우리가 느끼는 법 감정이 여기에서도 통하는 것만 같다. 범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범죄의 피해자가 악인이라면 우리는 피해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걸까? 때로는 이 아이러니한 관계가 단순해지기도 한다는 걸 알겠다. 악인은 누군가 처벌할 수도 있고, 그 처벌을 은밀하게 감춰주고 싶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의 독자는 나와 비슷한 고민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죽어 마땅한 이들을 죽여도 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그래도 살인은 범죄이니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싶은 정의를 외치는...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꼭 하나로 결정되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이 소설의 묘미는 고전으로 불리는 추리소설을 복기하는 것이면서, 살인사건이 계속되면서 드러날 진실에 시선이 머무는 게 아닐까. 작품을 재현하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뿐만 아니라, 살인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작품을 비틀고 응용하면서 살인을 더 교묘하게 변형시킨다. 그러면서도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노력으로 작품을 헌정한다. 소개된 작품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확인하면서 감탄하고, 함부로 범인을 단정할 수 없는 미스터리에 빠지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 이제 이 소설의 살인 도구(?)로 이용된 작품을 확인할 시간이다.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그 범죄의 바다에 빠져 즐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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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12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픽쳐 읽을때 그런 느낌?이었어요
영원히 잡히지 않기를...^^

구단씨 2022-05-13 16:08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맞아요. 잡히는 것보다 어떤 사람들을 죽이는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mini74 2022-06-10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덱스터 생각도 나네요 ~ 구단님 축하드립니다 *^^*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1 | URL
아, 덱스터. 읽다가 말았는데 다시 펼쳐봐야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6-10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더위가 너무 일찍 찾아온 듯해서 힘들어요. 괜찮으신가요? ^^

새파랑 2022-06-10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6-10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2-06-13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 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