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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평점 :
이럴 수가 있을까. 보통의 인간이라면, 아니, 내가 경험한 인간의 모습은 보통 힘든 순간에 더 절망하기 먼저 하기 마련인데. 아프기 시작하면 빨리 낫길 바라면서도 좋아질 거란 기대 먼저 하지 않게 되던데. 생각해보니 나는 너무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것을 먼저 떠올리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씁쓸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서글프다. 내 뇌를 개조하지 않는 이상 나는 여전히 나쁜 결말이나 슬픔을 먼저 떠올리는 인간으로 살아갈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이 소설 속 가족의 모습에 병아리 눈물만큼의 긍정 에너지를 찾기도 한다. 그래도 좋아질 거라고, 나아질 거라고 믿고 살아가는 거 말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싶어서 말이다.
15평 빌라에 여섯 식구가 모여 산다. 주인공 수경과 수경의 부모님, 수경의 남편, 남편의 조카 둘. 여기까지만 읽고 속이 답답했다. 15평 집의 크기를 상상하고, 그 안에 성인에 가까운 청소년 둘과 어른 넷의 삶을 그려보니 내 속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한 가족도 아닌, 사돈 관계에 가까운 이들이 모여 사는 건 어떤 걸까. 더군다나 이 가족 중에서 돈을 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돈을 벌었던 수경은 일을 그만두고 몇 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가 건넨 음료수를 마시고 잠이 든 수경은 성범죄를 당할 뻔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에서는 이 문제를 조처하지 않았고, 수경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누군가 건네는 음식이나 음료수는 절대 먹지 않았다. 수경의 남편은 수익이 없는 전업 투자자였고, 수경의 아버지는 사기당하고 딸의 집에 얹혀산다. 수경의 엄마는 딸을 돌보려 청소 일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 수경이 벌어오던 돈으로 버티던 가족이 이제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었으니. 수경 역시 더는 이 문제로 버티고만 있을 수가 없다. 돈을 벌어야 했다. 마음의 수습 따위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 마련이다.
소설가가 수경을 바라보았다. 수경도 소설가를 바라보았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힘들어.
너만 별 볼 일 없는 거 아니야. 나도 별 볼 일 없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래. 그러니까, 마시자. (166페이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거다. 바로 옆에서, 오랜 시간 같이 웃으면서 일한 동료가 설마 약을 탄 음료수를 건넬 줄이야. 수경이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겠다.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됐겠지. 언제 어디서, 누가 나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바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사람마저 의심하게 되는데, 어떻게 사람을 상대로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돈을 벌어야 했고, 사람을 볼 수는 없고. 수경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 처음에는 택배 일을 한다. 노동자는 아닌데 노동자처럼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고, 노동자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사업자(?) 신분이고.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선택받지 못하면 일을 받을 수 없고, 내 맘대로 쉬자니 다음 일을 장담할 수 없는 논리가 적용된 일을 그래도 해야 했다. 수경과 엄마는 이렇게 택배 일을 시작하고, 가끔은 남편이 돕기도 한다. 수경의 아버지는 걸어서 음식 배달을 하고, 남편은 앱으로 콜을 받고 대리운전을 한다.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플랫폼 노동자가 되었다. 그렇게 이 가족은 앱 도우미 ‘헬프 미 시스터’의 세계로 스며든다.
흔하게 주문하는 음식 배달 앱, 누군가는 한 잔 술에 필요한 대리운전, 지저분해지는 곳을 청소해주는 일, 물건 주문하고 기다리는 택배. 너무 일상이 된 이런 일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과정으로 소비자의 앞에 닿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물론 이 소설로 그 세상을 조금 더 들여다본 것 같지만, 여전히 다 알지는 못할 테다. 그런데도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전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삶을 보면서, 분명 새로운 노동의 현장이긴 한데 이상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건 여전하다는 걸 보게 된다. 법이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나 그 빈틈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조리가 끼어 들어온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또 권리를 위해 싸우면서 살아가면서,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쟁취한 것들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수경의 경우, 더 절실한 상황이어서 그럴까. 이 가족의 도전이 의외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의욕이 없는 아버지, 고무장갑을 가지고 다니는 엄마, 헛된 꿈을 좇는 남편, 사람이 두려운 수경. 뭐 하나 도전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모여서 하나씩,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기적 같았다.
이 가족을 보면서 이런 생각만 들었다. 좋은 일이 있을까. 더 절망으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구나.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삶이라고 여기고 싶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을 살고 있었다. 의욕도 없고, 겁은 나고,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고. 그런데도 숨이 붙어 있으니 또 살아가기는 해야겠고. 모여 있으니 더 나쁜 것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가족으로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이 가족이 밖으로 나가고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는 걸 보니 희망이 생겼다. 이렇게 부딪히다 보면 가슴 속에 쌓였던 불안함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사람에 속고 돈에 무너졌던 상처가 이렇게 치유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 말이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듯했던 수경이 가장 먼저 그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누구도 돈을 벌지 않았던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런 수경을 돕자고 나섰던 가족들의 한 뼘들이 어느 순간 이렇게 자라났다. 이쪽으로 옮기고 저쪽으로 가보면서 만난 플랫폼 노동자의 삶은 이 가족에게 또 어떤 세상을 보여주려고 할까.
이상한 가족 구성이었다. 남편의 조카들과 아내의 부모가 같이 사는 집. 쉽게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는 아니다. 그런데도 어색하지 않게, 원래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 자연스러움은 이들의 연대로 이어진다. 수경과 엄마가 ‘헬프 미 시스터’에서 보여준 여성 연대의 세상이 색다르게 보였다. 여성 의뢰인, 여성 도우미, 남성과 마주칠 일 없어서 걱정 없이 의뢰하고 받아들이는 서비스의 형태. 이런 형태의 서비스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수경의 엄마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왜, 이런 서비스가 필요한 세상에 살게 되었는지 묻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생각한다. 손을 잡는다. 연대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변화와 치유가 증명하듯이, 우리는 밖으로 나가고 나아지는 삶을 그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것처럼, 함께 일어서서 웃는 기적을 만든다. 작은 차에 다섯 식구가 타고 나들이 같은 의뢰를 수행하러 갔을 때,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아, 이 가족은 이렇게 구원받는구나 싶어서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에게도, 비슷한 시간을 걷는 누군가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읽게 된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256페이지)
우리가 모두 바라는 삶이 비슷하지 않을까. 스스로 일어서기를, 다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살아갈 수 있기를 말이다. 보통의 삶으로, 평범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갖는 것. 웃고 있으니 좋은 거라고, 그러면 된 거 아니냐고 말하던 이 집의 꼬맹이 조카가 말하던 게 정답인 것 같다. 좁은 집에서도, 슬픔이 침범해도, 반지하밖에 선택할 수 없어도, 가족 모두가 웃고 있으니 그거면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안도한다. 이 가족이 이제는 웃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힘들어도 결국 나아갈 거라는 걸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적나라하게 너무 잘 반영해서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다. 슬프게도, 이렇게 변해가는 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 변화에 발 담그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세상에서 또 허우적대면서 적응해야겠지. 하지만 그 허우적거림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다. 같은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만들어갈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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