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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평점 :
언제 집값이 싸냐고 물으면 대개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지금요.” 혹시나 집값이 내릴까, 더 좋은 집이 매물로 나오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망설일 때는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거다. 어떤 결정을 해야 가장 만족하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안심할 수 있을지 불안해서다.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집값은 오르고, 내 몫으로 기다리는 집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어오는 집을 다 구할 수 있었다면 이런 고민도 없었겠지. 언제나 그놈의 돈이 문제다.
주인공 오영선은 29세 여성이다. 사무보조로 일하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남들은 왜 사무보조를 하느냐고 더 조건 좋은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영선에게 사무보조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책임감이 무겁지도 않게, 단순 업무로 주어진 일만 하면 되니까 신경 쓸 게 거의 없다. 자기 일만 하면서, 타인의 시선 따위 무시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그녀는 회사의 누구와도 교류가 없다. 그녀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오면서 이런 삶의 태도는 조금씩 변한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빌라에서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다가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오영선은 이제 이 가정의 세대주가 됐다. 집주인은 곧 전세기한이 만기 되니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그녀가 자라왔던 동네, 엄마의 체취가 묻어 있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영선이 바란 것은 결코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미래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가난한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자신감은 상실되어 갔다. (143페이지)
바라는 대로 다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영선에게 닥친 현실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쯤 되면 짐작했을 것이다. 그녀가 구할 수 있는 집을 찾는 일, 집값을 맞추는 일은 어려웠다. 여동생과 함께 살 집이니 의논해야 했고, 전세금을 빼고도 한참 모자라는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 되겠지. 요즘에는 대출 없이 집을 사는 일은 드물다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대출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아파트 노래를 부르며 결국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부모님이 은행에서 빌려 쓴 돈은 이 가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이 생기면, 일상이 힘들어진다. 쉽게 사 먹었던 어묵꼬치 하나에도 주저하게 된다. 매달 갚아야 할 금액을 맞추느라 일이 힘들어도 쉬지 못했다. 그렇게 돈에 끌려다니다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이때의 고생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 할 것 같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오영선의 집 구하기 모험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돈만 여유로웠다면 이 이야기는 모험이 되지 않았을 테다. 언제나 같은 고민,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고 싶은 이상과 가진 돈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가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느냐, ‘영끌’해서 빚을 지더라도 내 집이라는 안도감을 누릴 것이냐. 그녀는 이 정도도 모르고 살아왔다. 부모님이 집 때문에, 빚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만 보면서 자라왔지 정작 서른을 바라보는 그녀의 현실에서는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계획에만 몰두했다. 엄마의 부재로 이제 그녀에게 넘어온 공은 마치 그녀를 시험하듯 부동산이라는 세계에 밀어 넣고 어떤 길로 가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읽으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럼 다음 이야기가 뻔하니 소설이 재미없겠다고? 아니다. 오히려 오영선의 부동산 입문기가 생생해서 놀랄 정도였다. 어쩜 이렇게 취재를 가까이서 했는지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린이’였다. 우연처럼 비밀을 알게 되어 안면을 튼 회사의 주 대리는 영선에게 부동산 스승이 된다. 물론 개인적인 일이니, 개입하면 안 되는 선이 있다. 주 대리는 그 선을 철저히 지키면서 영선의 현실 감각을 일깨워준다. 청약 준비부터 당첨 조건까지, 어느 지역을 돌아보고 어떤 이슈에 관심 두어야 하는지를. 주 대리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그녀 역시 스스로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인생의 모든 중심이 부동산 투자와 성공에 있다. 영선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으면서도 영선에게 현실을 조언해주고 세상을 더 정확히 보게 하는 주 대리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소설 속 인물에 머물지 않는 그녀는 마치 현실에서 알고 지내는 언니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렸을 적에는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맛있는 거 먹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멤버들이,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모임에서는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이야기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게 낯설지 않다. 그 모임에 주 대리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양가감정에 힘들어지기도 하겠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주 대리를 비난하면서도, 주 대리처럼 하지 않으면 집을 갖지 못할 거라는 현실에 그녀를 부러워하거나.
정말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대출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과 같을까? 집을 구하려면 피할 수 없는 대출에 주 대리는 저런 명언을 남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대출은 어느 정도일까? ‘그만큼’이란 역시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른 금액이겠지만, 주 대리의 말이 너무 와닿아서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돈 모아서 집 사려고 차곡차곡 모으면서 기다렸더니, 내가 모은 돈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때 그냥 무리해서라도 집을 살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의 말이 스치고 지나간다. 인생은 비례가 되지도 않고, 성실하게 모으기만 한다고 다 이루고 살 수도 없다. 금수저라도 물고 태어났다면 좋으련만, 그건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까 싶어 포기한 지 오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끔 로또도 사지만 왜 매번 내 번호는 피해가는지도 모르겠고. 없는 돈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속으로 벌벌 떨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역시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소설 속 오영선처럼 크게 바라는 것 없이 소박하게,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왔다. 엄마가 계시는 시골집을 정리하고 적당히 지낼만한 아파트를 구해야지 고민하던 게 벌써 일 년.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시골집 팔아도 소형 아파트 한 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이런 시골에서, 이 정도의 집값으로 채무자가 되어 살아가는 일이 흔한데, 매일 뉴스에서 보는 집값 얘기는 어디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
영선은 버스를 타려다가 걷는 걸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대학에 가서는 취업, 이후에는 결혼과 집 등으로 화제가 달라졌다. 마주해야 할 세계는 넓어지고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관계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감당해야 할 것과 책임져야 할 것들이 두터워진다. 하지만 영선은 그 모든 것들을 멀리하고 혼자인 것을 선택했다. 이건 도피일까. 아님 단단해지기 위한 몸부림일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이어지는 동안 영선은 화려한 불빛들이 줄 서 있는 번화가에서 벗어나 큰길에 이르렀다. (88페이지)
2021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한 편의 소설에서 봤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에 우울해지면서도, 어떤 방법을 알게 된 것도 같다. 물론 그게 정답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완전한 답이 없다면 최상의 답을 찾아가는 거 아니겠나. 어차피 선택은 자기가 하는 거지만, 이 정도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현실적인 경제 서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이야기로 남겨두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집은 각기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그 안에서 내가 가진 집의 개념과 같은 인물을 찾으면서 읽는 재미도 있다. 혹시나 다른 시선을 가진 인물이 보인다면 새로운 시선으로 지켜봐도 좋다. 꼭 내 집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영선, 자산 증식 수단으로 부동산이 최고이며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많다고 여기는 주 대리, 부동산으로 인생 파산까지 경험하고 다른 곳에서 위로를 얻으며 사는 카페 사장 휴 씨. 어느 한 사람에게만 마음 두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인물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에 읽으면서 같이 힘들어진다. 지금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 이러하다. 묻고 싶은 게, 듣고 싶은 대답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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