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살아가는 모든 시절의 장면과 이야기를 색으로 담아내면 이렇게 될까. 이렇게 그립고 예쁜 색이 있을까? 우리가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색으로 칠하면서 살아왔을까? 개인이 살아온 모습이 다르니까 그 색도 다르겠지만 비슷할 것이다. 다들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면서 늙어가는 거라고, 그게 뭐 별거냐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암튼 그렇다. 간단한 한 마디로 풀어낼 수 없는 게 우리 살아온 시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하고 농도가 다른 색채로 표현했을까 싶다. 하고 싶은데 표현되지 않는 많은 말처럼, 색으로 그 말을 계속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게, 지나온 시간의 색이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지나온 시절의 색은 희미했다. 이 봄날에 보는 찬란함과는 거리가 먼, 느슨하고 흐릿한 무채색에 가까웠다. 지금보다 어렸고, 하고 싶은 게 많았고, 힘이 넘쳤던, 말 그대로 찬란했던 시절의 우리가 걸어온 길의 색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뭔가 해놓은 게 없어도 그냥 좋았던 때 아니었던가? 뭘 몰라서 천진난만했던 시절을 지나, 엄마한테 대들면서 눈을 부릅뜨던 청소년 시절도 겪었고,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어른이라 불리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고, 부모가 되고 자기와 똑같은 아이를 키우면서 사는 동안 점점 나를 키웠던 부모의 마음을 알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늙어간다. 노년이라 불리는 나이가 된다. 어디 나이뿐일까. 외모도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항상 부족하게 살아왔던 마음이, 나를 노년으로 이끈다. 아이가 없으니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는 못할 테다. 지금 나는 아이를 키우며 부모의 마음을 읽는 어른이 아니라,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음을 배우는 중이다.


지금 하는 일은 노인분을 자주 대하는 일이다. 휴대폰을 조작하면서 간단한 문진을 하고, 검사가 진행된다. 검사를 받으러 온 어르신들에게 휴대폰과 신분증을 꺼내 달라고 말하면 서슴없이 꺼내시는데, 이렇게 저렇게 작성해달라고 안내를 하면 표정이 변하시는 분이 대부분이다. 나는 이거 할 줄 몰라, 대신 좀 해줘. 바쁘지 않으면 한 분씩 천천히 응대해 드리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바쁘면 종이에 적어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때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침침해진 눈으로, 잘 배우지 못한 한글 때문에, 늙은 몸으로 손에 힘이 없고 떨려서 직접 작성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그때에도 나는 천천히 그분들 신분증을 보고 개인정보를 작성해준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본인이 직접 작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어르신들은 당황한다. 민망해한다. 못 배워서 슬프다며 혼잣말을 한다. 다 써주면 고맙다고 한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그분들에게는 그게 고마운 일이 된다.


젠가 내가 마주할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처럼, 그분들에게도 태어난 아기 시절이 있을 것이고, 부모의 손길로 잘 자라던 순간이 있을 테지.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과 조잘거리던 때도 있을 테고, 미래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걱정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재미도 있었을 거다. 우리 모두 비슷하게 살아왔다. 또 그렇게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에게 그분들은 내가 지금보다 더 늙은 어느 순간의 모습이겠지. 나는 휴대폰을 아는 젊은 시절을 겪었기에 나이가 든 후에도 휴대폰으로 조작하는 웬만한 건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그때가 되면 또 새로운 문명에 당황하고 불안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도 이분들처럼 민망해하면서 혼잣말을 읊조리게 될까.


한 페이지 넘기고 한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노래 한 곡이 계속 생각났다. 김광석이 부르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 한 줄 한 줄이 그대로 눈물 쏟아내게 하는지라, 웬만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노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떠올라버렸다. 젊은 시절부터 함께해온 부부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한 사람을 보내는 슬픔이 가득할 것만 같은데, 남겨진 사람이 소환하는 젊은 시절부터의 부부의 삶은 그리움이었다. 곱고 희던 손으로 넥타이를 만져주며, 아이들 학업 뒷바라지를 하던, 자녀 결혼식에서 흘리던 눈물을, 그렇게 흰머리 가득한 인생이 되어버렸음을. 그게 후회가 아니라, 그렇게 걸어온 삶을 추억하는 기분에 더 눈물이 나곤 한다. 우리 이렇게 잘 살아왔구려, 옆에 있어 주어서 고맙네, 누군가 먼저 떠나겠지만 먼저 가면 나를 기다려주시게, 곧 다시 만나세. 뭐 이런 말을 하는 거 아닐까. 누구나 가진 눈부신 시절을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한 사람의 생을 여행으로 표현한다면, 길고 긴 여행을 마친 누군가의 삶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 누가 만들어준 한 생의 동영상을 보는 기분도 든다. 지나온 세월이, 태어나고 자라온 젊은 시절이 결코 바래거나 잊힌 색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름답게만 그리지 않았다. 슬프고 아플 때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 시절에 어울리는 시기를 잘 건너왔고, 인생의 많은 감정을 배우고 표현하고 겪으면서 걸어왔으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역시 그렇게 걸어온 색으로 채워지고 칠해지고 있음을... 때로는 기억을 잃고 천진난만한 늙은 아이가 되어 있더라도, 어느 한순간도 사랑받지 않았던 때가 없으니, 언제나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태어난 우리가 자라는 모습 그대로, 소년에서 성인으로, 중년, 노년으로 가는 삶의 궤적이 짧은 그림과 몇 개의 문장으로 다 표현되는 게 놀랍다. 그 짧은 이야기에 눈물 줄줄 흘리고 있는 나는 또 뭐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출렁이는 이 울컥거림은 또 뭔지 모르겠다. 우리 삶의 색이 결코 흑백으로 저장되지 않았음을 확인해주는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어쩌면 그립고 아쉬운, 돌이킬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보고 싶은, 아름답고 찬란하던 시간을 소환하는 마법 같은 책이다. 솔직히 구매하기 전에는 책값 비싸다고 많이 망설였는데, 이제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되어버렸다. 노년에 관한 책 읽고 있다가 꼬리를 물 듯이 함께하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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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어른을위한그림책 #우리는이렇게늙어가겠지만빛바래지않았다 #눈물나게아름다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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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07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

구단씨 2022-05-13 16: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림책이었어요. ^^

이하라 2022-05-07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2-05-13 16: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시는 것도 잘 보고 있어요. ^^

thkang1001 2022-05-07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구단씨 2022-05-13 16: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후텁지근한 주말 시작이네요. 좋은 날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5-07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구단씨 2022-05-13 16:0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5월의 중간이 이렇게 넘어가고 있네요. 즐겁게 지내세요~
 



알라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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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 문명의 기둥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2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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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명은 인류의 정착생활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불행도 같이 불러왔다. 아, 이렇게 먹을 게 많고 편해진 세상이 행복이 아니라 인간 삶의 비참함까지 만들었다는 말이 믿어지는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질병이나 전염병, 불평등으로 인한 절망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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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알림 왔을 때는 뭔가 싶었는데,

김영하 작가의 오랜만의 소설 신작이라니.

많이 기대하면서 기다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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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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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있을까. 보통의 인간이라면, 아니, 내가 경험한 인간의 모습은 보통 힘든 순간에 더 절망하기 먼저 하기 마련인데. 아프기 시작하면 빨리 낫길 바라면서도 좋아질 거란 기대 먼저 하지 않게 되던데. 생각해보니 나는 너무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것을 먼저 떠올리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씁쓸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서글프다. 내 뇌를 개조하지 않는 이상 나는 여전히 나쁜 결말이나 슬픔을 먼저 떠올리는 인간으로 살아갈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이 소설 속 가족의 모습에 병아리 눈물만큼의 긍정 에너지를 찾기도 한다. 그래도 좋아질 거라고, 나아질 거라고 믿고 살아가는 거 말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싶어서 말이다.


15평 빌라에 여섯 식구가 모여 산다. 주인공 수경과 수경의 부모님, 수경의 남편, 남편의 조카 둘. 여기까지만 읽고 속이 답답했다. 15평 집의 크기를 상상하고, 그 안에 성인에 가까운 청소년 둘과 어른 넷의 삶을 그려보니 내 속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한 가족도 아닌, 사돈 관계에 가까운 이들이 모여 사는 건 어떤 걸까. 더군다나 이 가족 중에서 돈을 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돈을 벌었던 수경은 일을 그만두고 몇 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가 건넨 음료수를 마시고 잠이 든 수경은 성범죄를 당할 뻔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에서는 이 문제를 조처하지 않았고, 수경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누군가 건네는 음식이나 음료수는 절대 먹지 않았다. 수경의 남편은 수익이 없는 전업 투자자였고, 수경의 아버지는 사기당하고 딸의 집에 얹혀산다. 수경의 엄마는 딸을 돌보려 청소 일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 수경이 벌어오던 돈으로 버티던 가족이 이제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었으니. 수경 역시 더는 이 문제로 버티고만 있을 수가 없다. 돈을 벌어야 했다. 마음의 수습 따위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 마련이다.


소설가가 수경을 바라보았다. 수경도 소설가를 바라보았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힘들어.

너만 별 볼 일 없는 거 아니야. 나도 별 볼 일 없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래. 그러니까, 마시자. (166페이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거다. 바로 옆에서, 오랜 시간 같이 웃으면서 일한 동료가 설마 약을 탄 음료수를 건넬 줄이야. 수경이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겠다.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됐겠지. 언제 어디서, 누가 나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바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사람마저 의심하게 되는데, 어떻게 사람을 상대로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돈을 벌어야 했고, 사람을 볼 수는 없고. 수경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 처음에는 택배 일을 한다. 노동자는 아닌데 노동자처럼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고, 노동자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사업자(?) 신분이고.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선택받지 못하면 일을 받을 수 없고, 내 맘대로 쉬자니 다음 일을 장담할 수 없는 논리가 적용된 일을 그래도 해야 했다. 수경과 엄마는 이렇게 택배 일을 시작하고, 가끔은 남편이 돕기도 한다. 수경의 아버지는 걸어서 음식 배달을 하고, 남편은 앱으로 콜을 받고 대리운전을 한다.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플랫폼 노동자가 되었다. 그렇게 이 가족은 앱 도우미 헬프 미 시스터의 세계로 스며든다.


흔하게 주문하는 음식 배달 앱, 누군가는 한 잔 술에 필요한 대리운전, 지저분해지는 곳을 청소해주는 일, 물건 주문하고 기다리는 택배. 너무 일상이 된 이런 일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과정으로 소비자의 앞에 닿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물론 이 소설로 그 세상을 조금 더 들여다본 것 같지만, 여전히 다 알지는 못할 테다. 그런데도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전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삶을 보면서, 분명 새로운 노동의 현장이긴 한데 이상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건 여전하다는 걸 보게 된다. 법이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나 그 빈틈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조리가 끼어 들어온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또 권리를 위해 싸우면서 살아가면서,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쟁취한 것들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수경의 경우, 더 절실한 상황이어서 그럴까. 이 가족의 도전이 의외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의욕이 없는 아버지, 고무장갑을 가지고 다니는 엄마, 헛된 꿈을 좇는 남편, 사람이 두려운 수경. 뭐 하나 도전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모여서 하나씩,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기적 같았다.


이 가족을 보면서 이런 생각만 들었다. 좋은 일이 있을까. 더 절망으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구나.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삶이라고 여기고 싶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을 살고 있었다. 의욕도 없고, 겁은 나고,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고. 그런데도 숨이 붙어 있으니 또 살아가기는 해야겠고. 모여 있으니 더 나쁜 것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가족으로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이 가족이 밖으로 나가고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는 걸 보니 희망이 생겼다. 이렇게 부딪히다 보면 가슴 속에 쌓였던 불안함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사람에 속고 돈에 무너졌던 상처가 이렇게 치유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 말이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듯했던 수경이 가장 먼저 그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누구도 돈을 벌지 않았던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런 수경을 돕자고 나섰던 가족들의 한 뼘들이 어느 순간 이렇게 자라났다. 이쪽으로 옮기고 저쪽으로 가보면서 만난 플랫폼 노동자의 삶은 이 가족에게 또 어떤 세상을 보여주려고 할까.


이상한 가족 구성이었다. 남편의 조카들과 아내의 부모가 같이 사는 집. 쉽게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는 아니다. 그런데도 어색하지 않게, 원래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 자연스러움은 이들의 연대로 이어진다. 수경과 엄마가 헬프 미 시스터에서 보여준 여성 연대의 세상이 색다르게 보였다. 여성 의뢰인, 여성 도우미, 남성과 마주칠 일 없어서 걱정 없이 의뢰하고 받아들이는 서비스의 형태. 이런 형태의 서비스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수경의 엄마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왜, 이런 서비스가 필요한 세상에 살게 되었는지 묻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생각한다. 손을 잡는다. 연대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변화와 치유가 증명하듯이, 우리는 밖으로 나가고 나아지는 삶을 그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것처럼, 함께 일어서서 웃는 기적을 만든다. 작은 차에 다섯 식구가 타고 나들이 같은 의뢰를 수행하러 갔을 때,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 이 가족은 이렇게 구원받는구나 싶어서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에게도, 비슷한 시간을 걷는 누군가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읽게 된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256페이지)


우리가 모두 바라는 삶이 비슷하지 않을까. 스스로 일어서기를, 다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살아갈 수 있기를 말이다. 보통의 삶으로, 평범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갖는 것. 웃고 있으니 좋은 거라고, 그러면 된 거 아니냐고 말하던 이 집의 꼬맹이 조카가 말하던 게 정답인 것 같다. 좁은 집에서도, 슬픔이 침범해도, 반지하밖에 선택할 수 없어도, 가족 모두가 웃고 있으니 그거면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안도한다. 이 가족이 이제는 웃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힘들어도 결국 나아갈 거라는 걸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적나라하게 너무 잘 반영해서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다. 슬프게도, 이렇게 변해가는 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 변화에 발 담그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세상에서 또 허우적대면서 적응해야겠지. 하지만 그 허우적거림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다. 같은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만들어갈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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