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색 인생그림책 14
리사 아이사토 지음, 김지은 옮김 / 길벗어린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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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서 어른으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삶의 궤적이 이 짧은 그림과 문장으로 다 표현되다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출렁이는 이 울컥거림은 또 뭔지. 우리 삶의 색이 결코 흑백으로 저장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아름답고 찬란하던 시간을 소환하는 마법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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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2-04-20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적에는 크리스마스가 정말로 신비로왔는데 말이죠. 이제는 연말에 회사일 마감하느라 바쁘고 정신없이 가족들 친구들 인사하고 연말세일에 필요한 물건들 어떻게 더 싸게 살 수 있나 찾고 또 찾고. 그 때의 마법같은 시간들은 더이상 느낄수가 없네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아이들이 나오는 (해리포터, 나르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영화를 틀어놓고 그때 그 시절 느낌을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써봅니다.

구단씨 2022-04-23 14:12   좋아요 0 | URL
그렇죠... 많이 아쉽고 그리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 먹어갈 수록 더 그렇게 되네요.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오늘의 젊은 작가 33
김희선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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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물결이 나에게 달려오는 것만 같다. 그건 영화 속에서 우주복을 입은 엑스트라들이 몰려다니는, 굉장히 강렬한 장면이었다. 하나의 은빛 덩어리가 되어 어딘가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외친다. “우리와 함께…… 하나가 되자…… 다 함께 똑같이…….” 이상한 주문처럼 되뇌면서 몰려오는 사람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오히려 궁금증이 커지기만 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뭉쳐서 달려오고 있는지, 이들이 읊조리는 저 말은 무슨 뜻인지.


한 노인이 광장의 회전교차로에서 사망한다. 누가 봐도 자살이다. 자기 배낭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더니, 전동 드릴을 세워 놓고 작동시킨다. 노인은 무언가를 삼키더니 주저 없이 회전하는 드릴에 이마를 갖다 댄다.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피로 광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카페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기자 김영주는 기절하고, 곧 병원에서 깨어난다. 충격적인 장면이 쓰러진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몰래 듣게 된 말로, 김영주는 노인의 사망이 단순한 자살 사건이 아니라는 걸 인지한다. 그에 후배 최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김영주는 최 기자와 함께 이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소설은 김영주가 본 노인의 죽음과 극동리에서 촬영 중인 영화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하나씩 그 퍼즐을 맞춰간다. 극동리가 화성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화성을 배경으로 한 SF 영화가 극동리에서 촬영 중이다. 붉은 토양이 가득한 마을 공터에는 영화 세트장이 설치되고, 마을 주민들은 영화의 엑스트라로 동원되어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한때 성황했던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은 쇠락해가던 중이었는데, 이 마을 출신 기업가가 마을을 살리겠다면서 산업단지와 영화 촬영장을 만들었던 거다. 그 기업가는 단번에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마을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기업가가 원하는 일을 다 해결해주려고 애쓴다. 그 중심에 마을 이장 오구식이 있다. 그리고 마을에서 이상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오구식은 앞장서서 해결한다. 시체가 발견되어도, 미친 노인네가 병원에서 난동을 부려도, 낯선 사람이 찾아와 마을을 감시해도 그의 손에서 다 해결된다. 도대체 이 마을은 무엇을 감추고 있는 것인가.


처음 노인의 죽음을 목격한 김영주가 밝히고 싶던 일들은 어느 순간 묻어지고 있었다. 노인의 죽음이 단순히 농약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극동리 마을 주민 세 사람이 실종되었다는데, 이 의문을 풀고자 했을 때는 마침 그들이 놀러 갔다면서 이장은 실종 신고를 취소한다. 이 마을에 관련된 모든 일은 누군가의 조종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광장의 사람들이 목격한 큰 사건에도 농약 중독 정도로 수습할 수 있는 정도라면,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일까. 김영주 못지않게 이 사건은 최 기자에게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자꾸만 숨어드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서 마을을 찾는다.


의문스러운 사건이 계속되고, 의문이 조금 풀릴 만하면 다른 사건이 등장하면서 앞선 사건에 의심을 더한다. 누굴까. 왜 그랬을까. 이 사람들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하나씩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을 마주할 때마다, 이게 인간의 본성인가 하는 의문은 이어진다. 탄광 산업으로 마을이 활발할 때는 살만했지만, 어느 순간 광신이 문을 닫으면서 몰락해가기 시작했다. 어디 마을의 경기뿐일까. 마을에 남은 이들은 모두 노인들뿐이었다. 젊은이들의 활기도 없고, 무엇 하나 기대하면서 마을로 모여들 이유가 없어진 그때, 기업가의 마을 투자는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이 같은 건 아니다. 기업가의 개발이 마을이 죽음의 땅이 될 거라며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이름만 그럴싸한 산업단지일 거라고, 폐기물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희귀병에 걸려 죽어갈 거라고 말했다. 그가 바로 광장에서 드릴로 머리를 뚫고 죽은 노인 이만호였다. 많은 이가 찬성한 일에 왜 그 노인 혼자 반대했던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마을에 들어온 산업단지나 기업의 공장 터, 그들이 떠나고 난 후에 땅을 파보니 온갖 산업폐기물이 묻혀 있었고, 그 때문에 물과 땅은 오염되고 사람들은 자꾸만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고. 누군가 다른 생각을 말하면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외면했다. 이만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이 그랬다. 마을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여겼겠지. 죽어가는 마을을 살리겠다고 들어온 기업의 프로젝트를 방해하며 마을을 계속 죽은 동네로 만들어놓을 거냐고 화를 내고 싶었을 테다. 마을이 이렇게 활기에 찼는데, 사람들에게 이만호는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른다. 이만호는 누가 봐도 스스로 죽은 거지만, 그 죽음의 진짜 이유를 찾는 것. 최 기자와 김영주의 미스터리한 추적은 그래서 계속됐다. 그 안에서 인간이라면 가질만한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이장 오구식은 아침에 일어나서 개운한 기분을 느낀다.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있지만,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몸은 가뿐해진다. 육체가 회춘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마을에 산업단지가 들어오고 영화 세트장이 들어서면서 활기를 띤 것처럼, 오구식의 몸도 활기에 찼다. 어디 오구식뿐일까. 마을의 노인들 대부분 이런 활기로 살아간다. 자기 농사도 지으면서 영화의 엑스트라로 뛰어다닌다. 몸은 고단하지 않았고, 매일매일 즐거웠다. 뉴스로 마을 번영에 관한 내용을 보면서 기쁨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 활기는 이상하게 틈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변하여 영혼을 나간 것처럼 보일 때, 마을 소년 경오의 눈에 사람들 머리 위로 이상한 연기가 피어오를 때 이들의 몸에 무언가 스며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로 웃고 있을 때마다 그 웃음 뒤에 감춰진 것을 찾고 싶어진다. 소설은 최 기자와 김영주가 찾아다니던 진실을 독자와 함께 파고들면서, 이 마을과 사람들의 진짜 모습에 다가가게 한다. 그렇게 마주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활기가 섬뜩해 보였다. 왜 그랬을까 계속 생각하면서 읽는데, 그 안에 깃든 인간의 욕망이 그 섬뜩함의 이유였다. 영생을 바라는 인간의 간절함이 어떤 사람을 만들고 어떤 세상을 만드는지 확인했을 때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남겨두고 싶은 것을 위해서, 나의 존재를 계속 소멸하지 않게 하려고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란 말인지. 아무 고민 없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선뜻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들의 욕망에 편승한 것만 같다. 어쩌면 아직 말하지 않은 우리 안에 이 욕망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닐까. 젊음, 영생을 바라는 인간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물으면서, 그들이 부르는 손짓과 하나 됨에 저절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결말이 이 세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위험한것이온다 #김희선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 #소설 #문학

#한국문학 #한국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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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0
브램 스토커 지음, 이혜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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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보면 권선징악일지도 모른다. 드라큘라 백작을 처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부록으로 담긴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들려서 좋았다. 드라큘라의 역사나 번외 편 이야기 같은 분위기로 쉽고 편하게 들려온다.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얻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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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리보칭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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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 익숙하지 않은 흐름이었다.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네 명의 시선으로 추리가 펼쳐지는데, 이게 참 웃기다. 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의 생각을 얘기하다 보면 사건 해결에 다다를 것만 같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공감하고 공유하며, 내가 미처 다 알아채지 못한 행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을 때, 이래서 독서 모임 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네 명의 추리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한 사람이 놓친 것을 다른 사람이 찾아내어 퍼즐을 꿰어맞추는 듯한. 게다가 사건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그들이 감춘 속내가 슬슬 드러난다. 역시 인간이란, 자기 안위가 먼저가 아니겠는가.


특급호텔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의 사장 바이웨이둬가 사망한다. 총을 맞고 죽은 채로 산책로에서 발견되었다. CCTV도 다 확인했지만, 아무리 뒤져도 목격자나 용의자를 추릴 수 없다. 밀실 살인인 걸까? 드나드는 사람도 없었고, 단서도 없다. 경찰이 출동하고 검찰까지 나섰지만, 사건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푸얼타이 교수, 뤄밍싱 경관, 거레이 변호사, 인텔 선생이 한 명씩 나서서 이 사건을 추리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 사건 해결을 위해 머리 맞대고 모인 건 아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호텔에 모인 네 사람이었다. 각자의 이유로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로 향했고, 어쩌다 보니 이 사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이 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진짜 기가 막힌다는 생각과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완벽할 것 같지만 한 가지씩 모자라고, 뒤통수를 치고 있지만 동시에 당하기도 하는 이들의 활약을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호텔 사장의 사망 사건을 추리하는 것도 벅찬데, 이어지는 또 다른 살인. 푸얼타이 교수가 범인으로 지목한, 호텔 조경을 담당하던 황아투가 호텔 사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황아투가 호텔 사장을 죽인 게 아닌가? 아니면 이들의 뒤에서 누군가 한 사람씩 제거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 걸까? 푸얼타이 교수가 풀어낸 추리가 뭔가 부족하다 싶을 때 등장한 뤄밍싱 경관은 사실 또 다른 살인사건을 찾아온 거였다. 그가 현재 경찰도 아니었으니 이 사건에 뛰어들 이유는 없지만, 호텔 사장 살인사건과 뭔가 연결된 것만 같다. 그렇게 사건을 지켜보던 뤄밍싱 경관은 푸얼타이 교수의 추리를 살짝 비틀고 그만의 추리를 내놓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거레이 변호사의 추리. 뤄밍싱과 거레이의 관계는 이혼한 부부였다. 죽은 호텔 사장 아내가 거레이와 친구였고, 호텔의 파티에 초대됐던 거레이는 이 사건을 모두 지켜본 이다. 그러면서도 푸얼타이 교수나 뤄밍싱이 보지 못한 또 다른 장면을 본 근거로 그녀만의 추리를 완성해간다. 이렇게 그들의 추리는 완벽해질 수 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완벽한 추리를 하는 것 같은데, 막상 듣고 보면 마지막이 좀 모자라다. 그게 아쉽거나 미완성의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부족함이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게 아이러니. 그들 모두 자기가 본 그대로 말하고, 그 근거로 이 살인사건을 풀어가려고 애쓰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모두 다르다는 게 재밌다. 앞서 세 사람이 꺼내놓은 추리는 나름 완벽(?)했고, 조금씩 이 사건이 풀리는 건 같았다. 그런데도 모자란 하나가 뭘까 궁금하던 차에 등장한 인텔 선생. 한때 이름을 날리던 괴도 인텔 선생은 부유층을 주로 털었다. 경찰이 그를 잡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어느 날 그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게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런 인물을 거레이 변호사가 불러냈으니, 그 이름 인텔 선생은 이 호텔 살인사건에서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궁금할 테지.


이쯤 되니 예상되지 않는가? 호텔 사장 바이웨이둬의 사망으로 시작된 사건이지만, 그동안 각자가 수면 아래로 묻어놓았던 사실과 감정들이 하나씩 올라오는 게 기대된다. 가려진 정체와 진실, 숨겨진 관계와 고통, 혼자 음흉하게 계획한 미래의 일들까지. 네 명의 추리가 끝났을 때는 더 깊게 감춰둔 진실이 결국, 드러나게 된다. 어쨌든 추리소설의 재미와 결말이 사건 해결을 보는 거라면 이 소설은 성공한 셈이다. 그 성공이 너무 진지하지 않아서 독자의 눈길을 끈다. 결말 역시 상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골 때리고 뭔가 모자란 듯한 인물들 때문에 그 재미가 더해졌다는 건 안 비밀. 그들이 풀어낸 추리에 하나씩 더해져서 다음 인물이 다시 풀어내고 있기에, 챕터 하나씩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보고 있는지 더 궁금하게 한다. 코믹 액션 영화 한 편 본 기분이다.


사람은 보이는 것만 보기 마련이다. 거레이 변호사가 뤄밍싱과 이혼한 과정이나, 네 명의 인물이 각자 본 것을 근거로 추리하는 것이나 비슷했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이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가끔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조금은 생각해보는 것도, 다른 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유쾌한 추리소설 한 편으로 마주한 진실 찾기가 볼만했다. 그나저나 다음번에 푸얼타이 교수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 새를 미치게 사랑하는 이 교수 매력 쩔어. ㅎㅎ



#그랜드캉티뉴쓰호텔 #리보칭 #비채 #추리소설 #미스터리 #탐정

#대만소설 #소설 #문학 ##책추천 #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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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4-07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재밌어 보이네요.
저도 기억했다 봐야겠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그 해 우리는>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비슷한 형식 같기도 하네요.
로맨틱 코미딘데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나래이션 부분에 나오는데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공감이 가더군요.^^

구단씨 2022-04-23 14:25   좋아요 0 | URL
약간 코믹(?)스럽기도 하고요.
한 사람의 추리가 끝날 때마다 반전이 등장하는데, 재밌더라고요. ^^
 
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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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아침 풍경에 드리운, 피가 낭자한 칼 한 자루가 눈에 선하다. 내 눈은 문장으로 칼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한 남자의 손에 일본도가 들려있었고, 그가 입은 셔츠는 붉고 눈은 빨갰다. 그날 그의 칼에 사망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잔인한 사건에 사람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중에 아이를 안고 있던 젊은 부부 중 남편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훗날 이날의 장면은 어떻게 기록되었을지 궁금하기만 했다.


매년 칠석이 다가올 무렵, 나팔꽃 시장이 열리는 다이토 구 이리야. 부모님이 반드시 치러야 할 행사처럼 매년 나팔꽃 시장을 찾는 게 불만이었던 소타는 우연히 유카타 차림의 다카미를 만난다. 같은 학년에 같은 이유로 나팔꽃 시장을 찾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두 아이는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끔 만난다. 이 설렘이 첫사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카미에게 빠져있던 소타는 아버지의 검열에 걸려 다카미와 이별한다. 사실 아버지에게 걸렸어도 소타는 다카미를 계속 만날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 다카미가 아버지보다 더 단칼에 소타를 잘라낸다. 이유가 뭐지?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소타는 집안의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한다.


소설은 세월이 흘러 이십 대를 살아가는 소타를 비춘다. 그리고 한때 수영선수였던 리노의 등장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리노의 할아버지가 타살되면서 등장한 형사 하야세와 그가 맡은 노인 살인 사건은 소타와 리노, 하야세 세 사람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어떻게 하나로 연결될까 궁금했다. 꽃을 키우며 사는 게 노년의 낙이었던 리노의 할아버지 죽음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과거 소년과 소녀가 만났던 나팔꽃 시장의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서 이 살인 사건과 만나게 될까. 모든 것은 리노의 할아버지가 살짝 보여준 노란 나팔꽃 때문이었다. 우연히 꽃 피운 노란 나팔꽃이 놀라워서 리노에게만 보여준 할아버지. 이 신기한 꽃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도 좋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비밀에 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노랗게 꽃피운 나팔꽃 화분이 사라졌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이 노란 나팔꽃 때문일까? 이것 말고는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던 리노는 소타와 손을 잡고 이 사건을 추적한다. 물론 이들은 형사가 아니다. 형사 하야세는 그만의 방식으로 이 사건을 쫓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인물이 다시 등장하면서 오십여 년 전 일어났던 MM 사건과 맞물려 새로운 단서를 쏟아낸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궁금증은 나팔꽃이 노란색이 없었나 하는 거였다. 나팔꽃을 자주 보지도 못했지만, 꽃잎이 무슨 색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에도 시대에 존재했다는 이 꽃이 왜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지. 자연스럽게 퇴화하여 인간 지구에서 사라진 식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건 자연스러운 소멸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세상에서 사라진 꽃이라는 거다.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굳이 인간의 손으로 멸종시켜야 했다면 그 이유도 있을 터. 한 노인의 사망으로 확인하는 식물의 양면성이었다. 그동안 들어왔던 의학 이야기에서, 원래 독은 약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독을 적당히 쓰면 약이 되고 과하게 쓰면 그대로 독이 된다고. 오래전에 사라진 노란 나팔꽃의 존재도 비슷했다. 보기에도 아름다운 꽃, 하지만 그 씨앗은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고 약물로는 사용하면 안 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라진 꽃을, 씨앗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몽환(夢幻)의 꽃이라는 의미일세. 그 뒤를 쫓으면 자기가 멸하고 만다고, 그렇게 얘기했어.” (210페이지)


얼핏 이해가 되기도 할 것 같다. 몽환화. 말 그대로 꿈과 환상을 좇게 하는 꽃이 되겠지. 그 꽃을 쫓다 보면 자기가 멸한다는 경고를 깊게 새기지 않은 이의 잘못을 죽음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자기가 멸한다는 경고를 듣고서도 그 꽃을 쫓을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간절함을 아예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 소타와 리노를 보면서 어쩌면 인간은 자기 앞에 닥친 절망과 포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더 간절해지지 않을까 싶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대지진과 탈원전 방향을 겪으면서 더는 자신의 공부가 의미 없다고 여기는 소타와 더는 수영을 할 수 없다고 여기며 겁에 질려 있는 리노는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이다. 고민한다는 건, 현재 상황을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기에 하는 일이다. 동시에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타가 그동안 해온 공부를 그만둔다고 해서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리노 역시 오랜 세월 자신의 업이라고 여긴 수영을 다시는 못할지도 모른다는 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까. 더 나은 실력으로 현재의 모습을 발전시키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니 이 청년들이 공부든 수영이든, 미래를 생각하면서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리노 할아버지의 죽음을 중심으로 소타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이야기는 완성된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의 오랜 노력을 엿보면서, 현재까지 대대로 이어진 그들의 임무를 생각해본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애써왔을까. 그 노력의 결실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내일의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지. 무엇보다 주인공 두 사람이 고민하던 오늘의 문제가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 장래의 문제를 의외의 방향에서 접근하는 느낌도 있다. 작가가 들려주는 미스터리한 이야기에서 인간의 많은 고민이 들려와서 좋았다. 천재적으로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 아름다운 꽃을 개발하는 기쁨, 오랜 세월 달려온 인생의 변화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고민이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에 다 녹아있다. 그 결말까지 만족스러워서, 마치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작가의 많은 작품이 그랬듯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는 것 역시 놓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인간의 도리라고 말해도 좋을, 그들이 찾은 빚이라는 유산을 앞으로 어떻게 청산해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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