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르와 장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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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이 뭔지 정말 궁금하긴 하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곤 하는데, 분명 축하할 일에 기쁜 것 맞는데, 그 축하와 함께 찾아오는 질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 상황의 질투는 비단 가족에게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친구나 동료,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감정이라 더 궁금하다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며칠 전에 이 지역에서 정말 뜨거운 경쟁률의 아파트 청약이 있었는데, 주변에 당첨된 사람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남편의 직장 동료가 당첨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짜? 잘 됐다, 식구도 많은데 작은 집에서 고생하더니, 이제 3년만 참으면 넓은 새집으로 이사하네? 근데 부럽다. ㅠㅠ 너무 좋은 일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면서 축하의 말을 남겼는데, 축하하는 내 마음도 진심인데, 부러운 건도 진심이라서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마음은 일상의 곳곳에서, 특히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되면 더 속상하다. 나의 진심이 전하면서도 부러움 역시 소화해야만 하니까.


막연한 질투, 형제나 자매 사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점점 자라나다가 결혼식이나 상대방에게 우연처럼 찾아온 행복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마는 질투, 그처럼 가라앉아 있는 질투 때문에 두 형제는 우애와 뒤섞인 무해한 반감의 불씨를 서로에게 품고 있었다. 물론 둘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서로를 탐색했다. (37페이지)


롤랑의 두 아들, 삐에르는 의사이고 장은 법을 공부한다. 곧 변호사가 되겠지. 둘 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인 것 같은데, 이 가족의 삶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 어느 날 아버지의 오래된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 친구는 가족이 없이 사망했는데, 그가 유언으로 장에게 이만 프랑의 돈을 남긴다. 왜 콕 찍어서 장일까? 가족이 없어서 롤랑에게 유산을 남길 정도면 그냥 롤랑 가족에게 남기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롤랑도 아니고, 롤랑의 두 아들도 아니고, 두 아들 중 하나인 장에게 유산을 남기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다. 하지만 롤랑은 자기 아들에게 갑자기 뚝 떨어진 돈에 흥분한 나머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죽은 친구를 잠깐 기억하는, 오래전에 만나고 못 봤는데 자기를 기억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그와의 인연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감탄 정도가 전부였다.


이때부터 각자의 생각에 바빠진 장의 가족이다. 장은 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돈을 받으면서 피어날 자기 인생을 생각한다. 롤랑은 자기 돈은 아니지만 자기 가족에게 생긴 돈에 같이 부자가 된 기분을 즐긴다. 자식이 부자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나쁠 일은 없겠지. 장의 어머니는 아들의 미래를 꿈꾸며 그 돈으로 변호사로 살아갈 장의 집 꾸미기에 푹 빠졌다. 단 한 사람 삐에르만이 이 상황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동생에게 질투도 났지만, 이 가족의 분위기가 한 번에 변한 게 더 화가 났다. 아름다운 미망인 로제미유 부인이 장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짜증이 난다. 장에게 돈이 생겼으니 더 매력적으로 보이겠지? 무엇보다 이 유산 상속의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보니 뭔가 꺼림칙하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부자연스럽고,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의문은 점점 의심으로 짙어지면서 삐에르는 이 유산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게 된다. 사실은 엄마의 정부가 장에게 유산을 물려준 것은 물론이고, 장은 그 정부의 아들이었던 거다.


그는 어머니가 이처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이고, 그러한 고통이 자신의 원한을 덜어주고 어머니의 타락으로 생긴 빚을 줄여준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 만족한 판사처럼 어머니를 응시했다. (155페이지)


막장드라마는 한국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도 있었네그려. 이 모든 상황을 알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에게 따질까? 세상에 폭로하고 장의 유산이 더러운 돈이라고 떠벌릴까? 아버지에게 먼저 말하고 어머니와 장을 내칠까? 삐에르가 이 사건의 내막을 알아가기까지 굉장히 흥분하면서 읽었다. 이거 훤히 보이는구먼, 수상하다 수상해. 그 과정에서 조금씩 비치는 삐에르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이 소설이 막장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는 걸 말한다. 상황이 만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장에게 어머니의 비밀을 터트렸지만, 삐에르가 이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점점 어머니의 목을 죄어오듯 하는 삐에르의 태도는 잔인하게 보이면서도 이해가 된다. 어머니의 불륜을 알고 난 후에 어머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새집을 구하고 꾸미기에 바쁜 장이 얼마나 미웠을까, 혼자 돈벼락 맞은 듯이 즐거워하는 아버지를 보는 마음은 또 어떻고. 잔잔하게 흐르면서 이 가족에게 떨어진 유산이 초반부의 흥분을 고조시켰다면, 소설의 중반 이후로는 삐에르가 느끼는 혼란을 중심으로 인간의 모든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묘한 심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 속에서 들끓는 것을 꺼낼 수도 없는데, 이걸 또 담아둘 수도 없다. , 나는 이럴 때가 가장 싫더라. 나쁜 결정을 했을 때보다 더 정신이 피폐해지곤 하는 이유가 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떤 선택과 결정도 쉽게 이뤄지지 않을 때 말이다. 그것도 가족을 상대로 끊임없이 이 상황에 휘둘리고 있으니 어쩌면 좋은가. 문제는 롤랑을 제외한 이 가족 모두가 괴롭다는 거다. 아들이 알아버린 어머니의 불륜을 서로가 수면 위로 올리지 못하고 받아들이고야 마는 결정 앞에서,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완벽한 해결은 아니니까. 어떤 식으로든 결론은 나기 마련이고,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그 해결의 주체가 장이 된다는 게 예상 밖의 흐름이었다. 순둥순둥해보이던 장에게도 인간의 본성이 있긴 했구나 싶다. 가진 것을 놓칠 수도 없고,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도 없으니, 뭐라도 해야 했겠지.


참 고약하지, 삶이란 건! 어쩌다가 거기에서 약간의 달콤함을 발견하면, 거기에 빠져드는 죄를 범하고 훗날 호된 댓가를 치르잖니.” (212페이지)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던 건 등장인물 모두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벼락 맞고 좋아하는 것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도, 지켜야 할 것을 먼저 계산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음을 또 한 번 확인한다.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소설이다. 여담이지만, 차라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돈벼락이 즐거운 롤랑이 되고 싶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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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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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카페에 가입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처음에는 이 동네 정보가 좀 필요해서 몇 가지 도움을 받고자 가끔 눈으로만 보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습관처럼 하루에 한 번은 카페에 접속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 동네의 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누군가는 질문을 올리고 답변을 구한다. 한동안 나는 이 카페에서 올라오는 층간소음에 관한 글을 엄청나게 찾아 읽었다. 굳이 검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하루가 멀다고 층간소음 피해 호소 게시글이 등장한다. 아이들인데 뛰지 말라고 할 수 없어서 괴롭다, 조금만 움직여도 아래층에서 올라온다, 위층은 이 새벽에 공구를 사용한다는 등. 셀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에 댓글을 남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피해에 공감하는 마음이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문제에 한 개의 댓글도 남기지 않았다. 댓글을 남기면 내가 사는 아파트가 노출될 거고, 나중에 이사해야 하는데 아파트 매매 글 올리면 우리 집이 층간소음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테고, 그럼 사람들이 아니까 아파트가 잘 팔리지도 않겠지. 아니면 헐값에 내놓아야 조금 관심 가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웃기지만, 그랬다.


층간소음 문제 하나로 나는 몇 년 후가 될지 모를 문제를 지금부터 고민했다. 고충을 털어놓는 것도, 그 문제의 공감을 얻고 싶은 바람도 묻어둔 채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아파트에 사는 누가 이런 문제를 호소한다면 새겨듣는다. , 거기는 피해야지 하면서. 하지만 그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일이다. 신축 아파트라고 층간소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건 사람의 문제고,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결론으로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게 뭐라고, 나는 내 마음을 돌보는 일보다 이 동네와 이 아파트의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이 두려워 말을 못 했을까.


어느 집단이든 이기주의가 판을 치기 마련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존재이니까. 태어나서 처음 인연 맺은 가족이라는 집단도 자기 가족 우선의 이기심이 발동하곤 한다. 내 가족, 내 새끼가 먼저이고 중요하다. 세상의 많은 것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건 인정한다.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도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보는 건 이기심을 넘어선 개인의 욕망 때문에 누군가 흘리는 눈물이었다. 배려와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알아도 나를 먼저 생각하면 그런 행동도 가능하다. 내가 덜 아프고 상처받기 위해서, 내가 조금 더 편하고 많이 가지려고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서 보는 양가감정을 우리 모두 느끼고 살아간다는 게 현실이다.


서영동 동아1차아파트의 입주자 카페에 글이 올라온다. ‘봄날아빠는 아파트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에 울분하고, 용산보다 여기가 못한 이유가 없다고 피력한다. 그에 사람들은 동조한다. 맞다고,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제 가격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옆의 아파트가 1년 사이 1억이 오를 동안 자기 아파트만 그대로라고. 이 사람 참, 말을 잘하네 싶은데, 한편으로는 의심도 된다. 이 사람 누구지?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지만, 몇 마디만 쏟아내면 몇 동 몇 호의 누군지 아는 건 시간문제다. ‘은주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키우는 일에 집중한다. 그 동네에서 유명하고 오래되었다는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내 아이에 최선을 다하는, 다른 아이들 보다 뒤지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희진은 전세 만기 때문에 집을 알아보던 중 살던 아파트와 같은 아파트를 무리해서 매매한다. 대출이 있지만, 그것도 갚아가면 다 재산이라고, 점점 부동산에 눈을 뜬 희진은 이제 15억짜리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산다. 행복하다, 고 생각했다. 서영동에서 대형 학원을 운영하는 경화는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아들을 무기로 보습학원에서 시작해 그 동네 제법 입소문을 탄 학원의 원장이다. 좀 더 좋은 곳으로 학원을 옮겼지만, 학원 확장 때문에 어려움에 부닥쳤다. 아들과의 사이는 멀어졌다. 경화 모자를 돌봐주던 엄마는 아프기 시작했다.


인상적인 인물이 안승복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이면서, 시골에서 상경해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의 딸 보미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다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한없이 다정하고 무조건 딸을 믿어주던 아버지, 아버지가 마련한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보미에게 이제 아버지는 어떤 인물로 비칠까.


그냥 우리 건물 학원들이 좋은 거죠, .”

서영동 학교들은 입시 성적이 좋지 않다. 서영동 아이들은 그런 서영동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백은빌딩 학원은 떠나지 못했고, 서영동 인근의 아이들은 백은빌딩으로 학원을 다니면서도 굳이 서영동을 우습게 생각하고 싶어 했다. 들어오고 싶은 욕망과 나가고 싶은 욕망이 섞여 부글부글 끓는 곳. 학원장이자 학부모이면서 서영동 주민인 경화는 종종 그 입장들이 자기 안에서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 (149페이지)


얼마나 가지게 되면 욕심부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들은 각자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면서도 타인이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 대부분 타인이 가진 것들은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으로, 나에게 결핍된 것들이다. 노력한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되지도 않는다. 이 지점에서 무엇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나는 불행하지 않은 쪽을 택하곤 했다. 완벽하게 마음을 채울 수도 없고 언제나 모자란 것들이 나를 아쉽게 할 테니,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욕망이더라. 그러니 이 정도도 괜찮다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나의 그런 마음도 다 위선인 것 같다. 집 안 팔릴까 봐 층간소음도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 더 오르면 좋지 뭐 하는 마음도 있고, 지금도 이 지역에 예정인 청약 소식을 듣느라 귀는 바쁘다. 너무 비싸서 청약이나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신축으로 가고 싶은 이 마음이 조금 웃기다. 나에게 이 정도는 얼마만큼이었을까.


집마다 저마다의 계획과 사정이 있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안승복은 더 만족하기 위해 오늘도 1인 시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노인치매요양원이 내 영역 근처에서 웬 말이냐고 외치던 경화에게는 바뀐 상황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자꾸만 오르는 집값에도 넓은 집으로 갔던 희진에게 가족의 행복과 고마움은 여전할는지, 위대해 보이던 아버지의 투자 능력이 아직도 보미에게는 능력으로 보일지,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아파트 주인이 된 세훈과 유정 부부가 각자 본가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간 아영에게 편히 쉴 곳은 언제쯤 나타날까. ‘빚투영끌이란 말이 익숙해진 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건지 불행을 쫓아가는 건지. 언제부터 부동산이라는 화두가 우리 인생에 계급을 만들고 이렇게 큰 논쟁거리가 되어 있었던가. 내릴 줄 모르는 집값과 내 집 마련의 꿈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사람들의 슬픔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지? 거기에 부모의 직업이 아이의 수준을 만들고,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대우로 구별되는 삶의 차이는 알고 있으면서도 읽는 게 불편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전하는 현실적인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 그곳은 어디이며 무엇인가. 내가 사는 곳이 나를 더 살게 해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사는 이 작은 동네가 서영동이었다.


그걸 왜 원장 선생님이 고민하세요?”

그럼 모른 척해요?”

그럼요. 남 일인데.”

그런가? 내가 이러는 거 웃기는 일인가요?”

아영은 그냥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원장이 혼자 대답했다.

근데 남 일이기만 한 일은 세상에 없더라고요. 나이 먹을수록 더 그렇고요. 그게 맞는 거고.” (238페이지)


지난번에 읽은 세대주 오영선이 부린이의 내 집 마련 입문기 정도로 읽혔다면, 조남주의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는 아파트를 둘러싼 서영동 사람들의 욕망과 이기심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집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읽으면서도 어느 동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에 섬뜩해졌다. 살아가는 일이 사는 곳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 역시 다양해진 게 사실이다. ‘보금자리라고 불렸던 집은 이제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되었고, 굳이 내 소유의 집이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가 생기기도 한다. 내 소유의 집이 있다고 모두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순간 그 상황에 내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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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손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지음 / 내로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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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이런 제안에 솔깃했을 것 같다. 무언가(누군가) 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누구라도 당장 세 가지 소원을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바쁘지 않을까? 이런 기회 언제 또 올까 싶어서, 주저하는 사이에 기회를 놓칠까 봐 애가 타겠지.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말해야지. 내가 간절히 바라는 세 가지를 얼른 입 밖으로 쏟아내야지.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졌으면 좋겠고, 죽는 날까지 아프지 않게 잘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또 뭐가 있을까. , 막상 말하라고 하니까 모르겠다. 어떤 걸 제일 먼저 말해야 하는지 마음만 급하고 생각나는 게 없어. 어떡해!!


화이트 씨 가족에게 모리스 상사가 찾아온다. 그는 인도로 파견 갔던 신임 부사관으로, 화이트 씨와는 21년 만에 만났다. 반가운 이와의 재회도 잠시, 그는 이 가족에게 원숭이의 손을 꺼내놓는다. 그것은 늙은 수도승의 주술이 걸려 있었고, 운명이 이끄는 인생을 거역한다면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였다. 세 사람이 각자 세 개의 소원을 빌 수 있다고 한다. 모리스 상사가 원숭이의 손 두 번째 주인이었고, 첫 번째 주인 역시 소원을 이뤘다. 앞선 사람의 마지막 소원은 자기를 죽여달라는 것이었다니,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던 것일까 궁금해질 무렵, 모리스 상사의 소원까지 덩달아 궁금해졌다. 무슨 소원을 빌어서 이뤘는지 모르겠지만, 모리스 상사는 자기 소원을 화이트 씨 가족에게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더 궁금해지는 이 마음은 또 뭐란 말인가.


, 인간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세 가지 소원을 빌면서 위험을 경고했던 것도 무시하고, 화이트 씨는 모리스 상사에게 원숭이의 손을 건네받는다. 소원을 빌기 위함이 아닌 그저 호기심 때문에 받아놓고 한쪽에 그냥 두었을 뿐이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이 가족에게 간절한 소원은 없었다. 그런데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원숭이의 손을 손에 넣는다. 그걸 호기심에 받아두었다니 어쩔 수 없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면 좋았을 것을. 모리스 상사가 차마 다 말하지 못한 경고를 이 가족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장난처럼 농담처럼, ‘원숭이의 손을 들고 소원을 빌었다. 200파운드만 있다면 집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외쳤다. “내 소원은 200파운드야!” 이상하다. 도깨비방망이 뚝딱하는 것처럼 눈앞에 200파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에이, 좋다 말았네. 아쉽지만 원숭이의 손은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었구먼.


거기까지였다면 다행인데, ‘원숭이의 손이야기가 처음 모리스 상사의 입에서 나왔을 때부터 다가오던 불안의 정체는 곧 모습을 드러냈다. 화이트 씨 가족의 첫 번째 소원인 200파운드. 곧 그 돈은 그 가족 앞에 나타났다. 되돌릴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 말이다. 이쯤 되니 살아가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더냐. 주술을 걸어놓은 수도승의 말처럼, 인생을 이끄는 운명을 거스르려고 하니 고난이 찾아오는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 또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 가족의 불행이 200파운드 때문이었다면, 남은 두 가지 소원으로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만 된다면야 간단하겠지만, 인생이 어디 또 그렇게만 흘러가지도 않는 거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만 완성되는 게 삶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겠지. 주술인지 우연인지, 저주인지 기적인지 모를 선물 하나에 평온했던 오늘은 달라졌다.


단순하게 본다면 단순하겠지만, 이 짧은 이야기에 많은 메시지가 담긴 듯해서 한참을 읽었다. 당신의 소원이 이뤄진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묻는다. 바라는 소원이 없는데도 호기심에 손에 쥔 것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또 한 번 묻는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왜 우리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비밀에 다가서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거다. 화목하고 적당히 잘 지내는 화이트 씨 가족에게 정말 당장 소원은 없었다는 게 진실이다. 그런데도 모리스 상사의 불안한 눈빛을 뒤로하고 기어코 달라고 징징거리는 화이트 씨. 호기심이 이긴 결과는 어땠을까.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예상했겠지만, 그들이 향했던 호기심을 결말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었다. 물론 되돌릴 수도 없었다. 중요한 것을 잃고 나서 후회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끝이 없는 그 호기심에 또 다가설 것 같은 이 불길함은 뭘까.


비극이다. 소원을 빌 기회가 생겼는데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니. 이 소설의 결말까지 보고 나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그 소원 말하기는 어려울 거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는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웃으면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어떤 소원도 함부로 빌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아니라면, 바라던 바가 이뤄져도 기쁘지 않으리. 호기심이 일으킨 좋은 결과물도 분명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은 항상 오래 가지 못했다.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언젠가 들어온 것보다 더 크게 뺏길 것 같은 불안함. 정말 이런 기회가 온다면 도박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수밖에 없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언제나 선택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인간이고, 우리는 그 자유 의지로 모든 순간을 선택하곤 했다. 어떤 결정이든 우리 자신의 몫이라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 기회가 찾아와서 소원을 빌어도, 어떻게 치를 대가인지 몰라서 소원을 빌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기회를 얻고 기회를 놓치는 건 똑같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원숭이의 손을 들고 소원을 말하지 못할 것 같아. 너무 무서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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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제 손 이야기하시는 줄 ㅠㅠ ㅎㅎ 당선 정말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2-03-12 23: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왜 원숭이의 손이 미니님 손을 떠올리게 했을까요? ^^
이 책 재밌어요. 짧고 굵어요.

새파랑 2022-03-08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표지 사진이 좀 무섭긴 하군요 ㄷㄷㄷ

구단씨 2022-03-12 23: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제목은 약간 의문이 드는데, 표지가 오히려 이 책을 잘 설명한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2-03-08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구단씨 2022-03-12 23: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주말 잘 지내고 계신가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습니다.

이하라 2022-03-08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03-12 23: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 읽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희선 2022-03-08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공짜는 없지요 뭐든 애써서 얻어야 더 그걸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어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 끝이 거의 안 좋다고도 하잖아요 저라면 복권에 당첨되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조금씩 쓸 텐데... 저는 복권 안 사요 안 될 걸 알기에...

구단 님 축하합니다


희선

구단씨 2022-03-12 23:26   좋아요 1 | URL
저도 정말 그게 궁금했어요. 왜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이야기는 안 좋은 것만 들려올까요?
돈이 행복을 도울 것 같은데 말이죠.
저 역시도 복권 당첨되면 조용히 당첨금 수령할 겁니다. ㅎㅎㅎ 일주일에 한번씩 사요. ^^

독서괭 2022-03-09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03-12 23:2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 책 동화처럼 잘 읽히고 재밌어요. ^^

강나루 2022-03-09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려요.
오늘 투표하는 거 아시지요^^

구단씨 2022-03-12 23:2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사전 투표하고 왔어요. 결과가....

thkang1001 2022-03-0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03-12 23: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러블리땡 2022-03-10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2-03-12 23: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문득 생각나는 어떤 시간이 있다. 일부러 소환하지는 않았지만, 기어코 떠오르고야 마는 장면들 때문에 울컥해지고야 만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고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아련하게 떠오르고야 마는 기억 때문에 심장이 잠시 두근거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떤 계기로 떠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찾아온 그리움 같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은 대부분 후회를 동반한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면서 가슴을 한번 치고 싶은 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어떤 일,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책 같은 거 말이다. 그래도 좋았는데, 그리운데, 그 한가운데는 언제나 아쉬움이 있다. 나이를 먹어가는 걸 이렇게 느끼는 건가.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해서 그냥 그런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거나. 안드레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는 처음부터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인 는 열일곱 살 아들과 함께 캠퍼스에 있다. 하버드였다.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아버지의 자격으로 함께 듣는 설명회였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 진실도 있다. 아들이 후회하지 않는 대학 생활을 바라는 마음에 부모로서 건네는 조언과 염려와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그의 대학 생활 한 부분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그럴 수도 있지.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를 두고 어느 부모라도 그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너무 자연스러운 기억의 부름이 아니겠나.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보면 이십 대의 시작이었을 테고, 너무도 찬란해서 종종 그리워질 시간이다. 가장 젊고 예뻤을 때, 청춘이라 불리며 힘이 넘쳤을 때, 하고 싶은 게 많을 때. ,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그립다. 하지만 그의 대학 생활을 여유롭지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버는 돈은 모두 집세로 들어갔고, 그의 용돈은 항상 모자랐다. 그나마 받는 장학금이 도움이 되는 정도였을까.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간이었고, 그의 청춘과 다른 어려운 시절이었다.


느 순간 그는 아들을 앞에 두고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그의 대학 시절의 어느 날, 문학 시험을 대비해 책을 읽던 카페에서 그는 친구가 될 칼라지를 만난다. 수다스럽지만 의미 있는 말을 쏟아내는 칼라지. 그의 힘든 시절 한 장면을 장식하게 될 중요한 사람을 만난 순간이었다. 칼라지의 몇 마디에 반해버린 그는 단번에 칼리지와 친해진다. 어쩌면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칼리지와 나눌 수 있어서일까. 주변의 화려한 것 가운데서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일까.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자기 출신을 부끄러워하고 가난을 힘들어했다. 상황이 비슷한데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칼라지를, 그를 부러워했다. 매력적으로 여기며 닮고 싶었다. 두 사람에게는 프랑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으니, 대화가 얼마나 잘 통했을까.


소설에서 묘사되는 칼리지는 참 당당한 사람이었다. 환경에 주눅 들고, 항상 돈에 쫓기며 지내는 대학 생활이 그를 우울하게 했던 것과 달리 칼리지는 무서울 게 없어 보였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지식이 넘쳐 보였다. 안으로 숨어들기에 바빴던 그가 칼리지를 어떻게 봤을지 상상이 된다. 비슷한 조건인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이상해 보이기도 했겠지만, 닮고 싶기도 했을 거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하버드에서 살아가기란 어려웠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허락된 건 그저 하버드 입학뿐이었을까. 칼리지를 알고 그에게는 고향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편안했다. 학교 시험에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통과해야 할 시험보다 카페에서 칼리지와 머무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초라해 보이는 카페에서 마음만은 초라하지 않은 일이 가능했다.


이런 마음 조금은 알 것 같지 않아? 각자의 상황, 삶이 다르기에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그런 비슷한 시절을 지나왔다고, 현실에 치여 살다가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에 눈길을 뺏기기도 했다고 말하면 어떨까. 나는 눈앞의 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마음은 너무 힘들어서 좀 쉴 곳을 찾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럴 때 우리가 보고 만난 누군가는 굉장한 의지가 된다. 나와 비슷해서 바라보고 연민을 느끼면서도,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길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혐오스러운 대상. 가까워서 편안한데 그게 불편해서 멀어지고 싶은.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그곳에 기대고 싶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야 할 텐데, 그 정도의 시간을 건너왔다면 그 존재가 지금 내 옆에 있어야 맞을 것 같은데, 없다. 그 존재는 이미 사라진 그 시간과 함께 나에게 남아 있지 않다. 잘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지금을 살아가는 일에 다시 바쁘다고 핑계를 대면서. 일부러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럴 기회조차 없이 살아왔다. 우리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문득, 이런 책을 만나면, 주인공의 기억과 시간을 같이 거슬러 오르면서 찾아오는 이 감정에 잠깐 묶이곤 한다. 후회를 가득 안고서. 하아.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하버드 스퀘어 272페이지)


아마도 칼라지의 인생을 조금 엿본 다음에는 이 사회의 차별과 적대, 세상사에 무관심했던 그 자신을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거다. 거리를 떠돌고, 다른 이의 집에 얹혀살면서, 택시 운전을 하고 시를 쓰는 칼라지. 물론 칼라지에게도 험난한 사건이 많았고, 현재에도 칼라지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는 게 맞겠지. 그런데도 그와 닿을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두 사람의 우정과 끈끈함이 오래 갈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두 사람의 길을 너무 다르게 열리고 있었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세상에 맞선 칼라지와 하버드의 삶을 인정하며 꾸려나가려는 그는 더 가까워질 수 없었다. 오히려 서로를 알기 전보다 멀어졌다고 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미래를 하버드에 걸었으니까. 그의 인생이 칙칙한 카페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칼라지의 사이다 같은 말에 계속 빠져 있을 수도 없었다. 그에게 현실은 하버드 안에 있었고, 그가 올라야 할 곳을 바라보는 게 그의 삶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하버드 광장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너무도 닮았던 칼라지와 자신을 다시 보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대로 뒤돌아선 자신을 혼내고 있을까. 그도 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다른 선택이 그에게 최선이 될 수 없었음을.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도. 칼라지와 제대로 된 인사를 못 했기에, 풀지 못한 숙제로 오랜 세월 그의 가슴에 남아 있던 건 아닐까 싶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그의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누가 묻지 않았지만, 오늘의 그가 불행하지도 않았지만, 그에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건 그만이 알겠지만, 그와 너무 닮은 한 사람이 그렇게 존재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종종 꺼내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세상에 맞서고 싶은 자신을 대신했던 사람, 그러지 못하고 숨죽인 자신의 모습을 아는 유일한 사람,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그저 스치듯 한번 보고 싶은 사람.


누구나 비슷하게 겪는 어떤 마음을 마주하는 것 같다. 그립고 아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혹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의 선택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도 자꾸 생각나는 건 무슨 마음인지 정의할 수 없지만, 이렇게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고. 그냥,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머물러 있지 않은 어떤 마음, 아마도 계속 이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야겠지.


안드레 애치먼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그가 가진 배경이 많이 담겼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같은 배경을 가진 이가 소설을 이끌어가면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소설에 잘 녹아 있다. 이방인과 방랑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던 시절의 그, 그런데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렀던 그의 경험이 이야기의 바탕이 된다니 소설이 더 생생하게 들린다. 물론 소설에 담긴 모든 것이 그의 인생은 아닐 것이다.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면서 독자에게 그 경계를 서성이게 한다. 아마 전작도 그랬을 테고, 다음 작품도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무렴 어떠하랴.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의 시간을 듣는 일은 행복하다. 독자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능력이 타고났다.


 









#하버드스퀘어 #안드레애치먼 #하버드 #비채 #소설 ##책추천

#회상 #그리움 #아쉬움 #선택 #이방인 #이민자의삶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입니다.

안드레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를 읽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말씀 남겨주세요.

제가 두 권을 가지고 있어서 한 권을 나눔하려고 합니다. 

좋은 책 같이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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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1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드레 에치먼 작품은 아직 안읽어봤는데 리뷰를 보니 완전 좋을거 같아요~ 감정을 흔든다니 ㅋ 이번달에 꼭 한권은 읽어봐야 겠습니다 ^^

2022-02-16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2-16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오늘까지 기다려 보시고 안 계시면 저에게
보내주시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아니 새파랑님 보내달라는 뜻인가요?
표현이 어떤 의민지 잘 모르겠네요.
구단씨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ㅎㅎ

2022-02-16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2-1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오늘 책 받았습니다.
나눔해 주셔서 넘 고맙습니다.
구단님 메모 글도 예쁘구요.ㅎ
즐겁게 읽도록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mini74 2022-03-08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넘 재미있게 읽은 책 ㅎㅎ 구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3-08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립니다~! 좋은 책, 좋은 리뷰였어요^^

그레이스 2022-03-08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2-03-08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하라 2022-03-08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희선 2022-03-08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 님 축하합니다 안드레 애치먼이 쓴 이 소설에는 자기 경험이 더 많이 들어간 듯하네요 사람한테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자꾸 떠오르는 때가 있기도 하겠습니다


희선

독서괭 2022-03-0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2관왕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2-03-09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2관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 제4의 벽 에디션 세트 - 전8권
싱숑 지음 / 비채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소설 같은 이야기를 언제 떠올리는가? 오늘의 현실이 팍팍할 때, 어떤 달콤함을 상상하고 싶을 때,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뭐 이런 거 아닐까? 하나의 이야기는 우리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잠시 고통을 잊고자 할 때 몰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나 목적은 각자 다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며, 우리 앞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


처음으로 소설을 읽은 순간을 기억한다. 손가락 끝에 닿는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 드넓은 백색의 대지에 꽃핀 까만 활자. 내 손으로 접어 넘기던 페이지의 감촉.

활자를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활자의 행간에 있단다.

책을 좋아한 어머니는 가끔 그런 말을 했는데, 적어도 어린 내게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활자와 활자가 만든 빈틈. 그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나만의 작은 설원(雪原). 그 공간은 누군가가 들어가 몸을 누이기에는 터무니없이 좁다랗지만, 숨기 좋아하는 어린 나에게는 꼭 맞는 장소였다. (8105페이지)


주인공 김독자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놓을 수 없던 연재 한편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기다리는 것을 잘 못 해서, 다음 회의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 연재를 못 보는 나 같은 독자도 있지만, ‘김독자처럼 한 회 한 회 마음을 다해 빠져들면서 기다리는 독자도 있다. 그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의 연재를 기다리는 것은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기다릴 희망이 되는 일이다. 그가 몰이하면서 읽는 그 소설은 그의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한 처방전과 같다. 거의 십 년 동안 그는 멸살법을 읽으며 견뎌왔다. 처음 그 소설을 읽는 독자는 많았으나, 연재가 계속되고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김독자는 그 소설의 유일한 독자로 남았다. 이럴 수 있을까?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이런 상황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버티는 작가나 그 글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독자나, 이 상황은 말 그대로 일대일, 유일한 작품에 유일한 독자 아닌가. 작가는 마지막 연재를 끝내고 김독자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김독자가 작가의 선물을 받은 그 순간, 그의 현실 속 세계가 변한다. 멸살법 속 이야기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SF영화 속 한 장면처럼, 도깨비의 등장과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션이 주어지는 상황이 몰아친다. 지하철 속 사람들은 그가 소설 속에서 본 인물들과 맞춰지고, 이제 어떤 상황이 이어질지 그는 금방 눈치챈다. 하지만 그가 내용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이 상황이 쉽게 풀어지지도 않는다. 어쨌든 소설 속 상황과 거의 일치하면서 흐른다고 해도 그가 그 순간을 해결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의 현실과 다른 세계, 하지만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게 비슷한 이 세계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마치 실감 나는 게임이라도 하듯이, 그들은 주어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얻는다. 이 코인은 후에 그들이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얻는 데 사용된다. 매번 시나리오를 수행하고 완성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성좌들에게 코인도 받는다. 그들의 능력을 활용할 배후도 선택하고, 때로는 그들의 능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각자의 스킬을 장착함으로써 위기를 탈피할 무기로 쓴다.


흥미롭다. 등장인물 모두 다양한 캐릭터였다. 어린아이부터 아이 엄마, 학생, 군인, 조폭까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어쩌겠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해서든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면서 그 결말에 다다라야 했다. 그 가운데서 김독자의 활약은 빛난다. 그는 이미 이 소설을 읽었던 사람이고, 이 소설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였으니,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응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스킬, 그 스킬은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무기가 되고, 김독자의 스킬은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txt)였다. 이미 읽은 소설을 금방 떠올릴 수 있었고, 등장인물들이 가진 무기, 생각 등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김독자는 이 세계의 시나리오는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인물이 된다. 많은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누군가를 따르면서 목숨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김독자를 따른다. 그의 스킬은 매번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데 필요했으며, 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그런데 뭔가, 그가 아는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 소설 속에서와 뭔가 다른, 스킬의 속도와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 이제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나리오는 클리어될 것인가. 누가 살아남아 이 소설을 완성할 것인가.


무수한 활자들이었다.

활자는 모여서 단어가 되었고, 단어는 모여서 문장이 되었다. 문장은 모여 문단이, 다시 문단은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는 곧 사람이 되었다. (8254페이지)


읽는 내내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자꾸 그려진다. 처음 그들이 갇히듯 사건이 시작되었던 지하철, 여러 다른 지하철역에서 완성해가는 싸움의 결말들, 소설과 다르게 흘러가는 장면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매번 위기를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긴장감은 고조된다. 목숨을 건 일이니 그들이 살아남아 이 시나리오를 끝낼 수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코인을 날려주는 성좌들은 또 어떤가. 그리스 로마 신화, 건국 신화 등 국적 가리지 않은 많은 신화 속 인물이 성좌로 나오며 신비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물론 이 성좌들의 능력 또한 대단하다. 각자가 살아남는데 굉장한 힘이 되어주니까. 거기에 각자가 가진 스킬을 활용하면 살아남는 건 노력의 결과로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중에서 능력을 더 보이는 김독자의 활약이 대단한 것도 당연하다. 이 소설의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십 년의 세월 동안 이 소설연재의 유일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게, 주인공 김독자가 이 세계를 구할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다. Part 1 보는 것도 이렇게 흥미진진한데,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떻게 펼쳐질까. (Part 2 빨리 내주세요) 김독자가 마주한 인생의 장르가 바뀐 순간은 이제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 궁금하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조심스러운데,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고 완성하는 데 집중하면서 읽다가 8편에서 만난 김독자와 엄마의 이야기는, 그동안 살아온 그의 시간과 그가 연재되는 소설에 빠져들면서 읽게 되었는지 공감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현실 회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고단한 현실을 이기고 건너갈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많은 것에 빠져들고, 꼭 생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몰입하고 싶은 게 있다. 그 순간 위로가 된다면, 이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 고통을 마주할지라도 말이다.


매력적인 인물들, 역사와 신화를 가미한 요소들, 이야기에 빠진 세계, 시공간을 초월한 이 소설에 빠져들 이유가 충분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며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 소설이 소설로만 남지 않을 매력이기도 하다. 김독자가 이 소설의 결말까지 어떻게 이끌어갈지, 어쩌면 그가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소설을 연재하든 출간하든, 작가가 있다면 독자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작가가 없다면 독자를 이야기를 만날 수 없고, 독자가 없다면 작가의 이야기는 읽히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소설의 역할을 더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왜 소설(이야기)을 읽는지, 그 소설 속에서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 안의 인간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남기게 될지. 당신은 소설에서,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찾고 있는지...


이번 ‘PART 1(8)’은 전체 이야기 중 약 1/3에 해당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이번에 출간된 건 페이퍼백 에디션이고, 올해 여름 페이퍼백 에디션 PART 2-3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거기에 하드커버 에디션 PART 1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어마무시한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오랫동안 이 소설 출간을 기다려온 독자에게 기쁨이 되겠습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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