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읽는 루이즈
세오 마이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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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별의 기운으로 그 사람의 운을, 미래를 점쳐주는 이가 있다. 제목 그대로 별을 읽는루이즈다.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 듯 서술되는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가끔 점집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킨 것만 같다. 혹시라도 이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본 사람, 없지? ^^ 그렇지 않은가. 고민되는 일 앞에서 선뜻 결정할 수 없을 때, 이 괴로운 마음을 누군가 정돈해줬으면 하고 바랄 때. 누가 답 좀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찾아가는 곳,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길 원하는 그곳에 루이즈가 있다.


의외로 유명한 점술가 루이즈 요시다. 쇼핑센터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손님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정말 루이즈의 점괘는 그렇게 용한가? 나도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은데, 막상 루이즈의 근무 태도를 보면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정이 없는 점술가다. 루이즈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남들과 부대끼기 싫은 그녀에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매력, 신과 접선하여 점괘를 말하는 게 아닌 사람을 보는 눈과 그녀의 화술로 영업을 한다. 흔히 우리가 사주풀이 책 한 권 사면 누구의 사주라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굳이 책을 사지 않고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처럼 사람들은 루이즈를 찾는다. 방문객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연애 문제, 직장 문제, 가족 문제. 여러 가지 이유를 안고 루이즈를 찾지만, 루이즈의 대답은 뭐랄까,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조언 정도라고 해야 할까. 이런 대답을 듣는데 복채로 3,000엔이나 낸다고? 손님들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의뢰인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공통으로 느껴지는 게 있다. 어떤 답이 아니라,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것. 그들은 루이즈가 정확한 답을 알려주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 거다. 어쩌면 그들 각자의 마음속에 이미 정해진 선택을 응원받고 싶었거나, 알고 있지만 시도하기 어려운 일을 시작할 용기를 갖고 싶었던 게 아닐까. 때로는 누구나 하는 그런 고민 정도로 루이즈를 찾아오는 게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했는데, 그 이상함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는 걸 읽는 내내 느껴진다. 3,000엔의 이용료가 돈 낭비가 아니라, 작은 한 마디에 삶이 변하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만큼 루이즈의 한마디는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리라.


루이즈는, 이런 점술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다. 간단하고 가벼운 고민을 들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의 큰 결정이 될지 모를 문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초등학생 손님은 아빠와 엄마를 선택해야 하는 게 괴로웠고, 어느 여고생의 짝사랑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풀어가야 했다. 어느 대학생의 진로를 같이 고민하면서 확인한 것은, 무슨 일 앞에서든 우리의 선택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 때로는 그 선택이 틀렸더라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다시 또 답을 찾아가야 하더라도, 그게 우리 인생이라는 듯 말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점괘를 믿고 싶은 바람도 비슷한 것 같다. 이대로 가도 괜찮다고 인정받고 싶은 것. 혹시나 다른 길이였다면 다시 되돌려 가도 괜찮다는 토닥임을 느끼고 싶었겠지.


너무 성실해서 믿음이 가는 점술가였다. 아이의 점괘에 답을 주기 위해 잠복 조사까지 하는 걸 보면, 단순히 시간만 채우고 돈을 벌겠다는 심보는 아니었다. 상대의 고민을 같이 해결해주고 싶다는 진심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런 직업 정신 때문인지 손님이 계속 찾아오는 곳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기 일 앞에서는 다른 의뢰인과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하는 그녀가 인간적으로 보이는 게 좋았다. 손님들의 걱정에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해주는 말이 그녀 자신에게 건너오는 것도 알아채는, 현명한 사람이다. 고민하는 사람들의 등을 살포시 쓸어주면서, 가볍게 토닥토닥. 이런 위로와 용기라면 언제라도 찾아가고 싶은 루이즈의 점집이다. 하고 싶은 말 누군가에게 하고 싶을 때,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뭔가 쏟아내고 싶을 때 찾아가도 좋을 곳. 루이즈의 점집이다.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그 관계는 가족에서, 친구에서,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맺어진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찾게 되는 원인도 대부분 사람 관계에서가 아닐까. 루이즈를 찾는 사람들에게서도 그 관계의 문제가 바탕에 깔려있었다. 그래서 루이즈의 점괘가 더 빛나지 않았을까 싶다. 신에게 묻지 않는, 기본적인 사주를 바탕으로 눈치껏 상황을 파악하고 답을 내주는 게 오히려 현실적인 느낌이랄까. 경험으로 해주는 이야기 같아서 오히려 더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인생 선배의 조언 같은 느낌이 강했다.


차분히 듣고 있다 보면, 4가지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결국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답에 도달한다. 사람과의 관계 역시 변하기도 하고 다시 맺어지기도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혼자 일하는 게 좋다는 루이즈에게 조수가 생기면서 다른 일상을 누리기도 하는 장면에서는 사람이 왜 사람과 관계 맺고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듯하다. 어떤 끝을 알고 있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한다. 나에게 불운이 닥친다는 예언에도 연연하지 않고 오늘의 할 일과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알겠다. 끝이라는 건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어떤 일에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일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가슴을 토닥이는 한 마디가 필요하다면, 쇼핑센터 어느 곳에 자리한 루이즈를 찾아가 보라.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데워 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잘 지내시기를. 당신은 강하고, 어느 불안과 위기 속에서도 잘 건너갈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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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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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르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랑, 아닌 걸 알면서도 가고야 마는, 내 마음을 봐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사랑이 충만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겨도 좋은 일.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는 일은 설렜다. 그러면서도 불안은 틈틈이 끼어들었다. 이 사랑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어서다. 아니면, 도덕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사랑에 뛰어든 이들의 무모함이 궁금했던 건지도 모르지. 현실에서 마주했다면 분명 지금쯤 어떤 결말을 확인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사랑 방식이 있지 않은가. 때로는 계획적으로 때로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처럼, 사랑은 어떤 식으로도 고정적이고 완전한 정의가 없는 듯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랑의 모습에서 발견하는 공통점 한 가지는, ‘사랑이라는 것. 각자가 선택한 사랑 앞에 최선을 다한다. 뤼도빅의 사랑처럼, 누구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고 그동안 가졌던 사랑의 정의도 다 바꾸고 변해버릴 만큼 그 순간의 감정을 선택하는 일. 괴롭고 힘들게만 했던 사랑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따위 무시할 만큼의 몰입이라면, 이게 사랑이겠지. 사랑은 그런 거니까. 그래야 사랑이니까. 프랑수아즈 사강이 들려준 사랑도 마찬가지. 내 마음이 끓어대는 그대로 하고 나니 과거와 다른 삶이 펼쳐졌다면, 그게 사랑이고 기적이 아닐까.


프랑스 지방 재력가 앙리 크레송의 저택 라 크레소나드가 배경이 된 이 소설은, 가면을 쓴 채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한껏 무르익었다. 배우들은 가끔 그 가면을 벗으며 숨을 쉬려는 듯, 가슴 속 말을 적나라하게 쏟아내기도 했다. 가식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여전했지만, 오히려 그들의 가면이 더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부호 앙리의 아들 뤼도빅이 자동차 사고를 겪고 2년 동안 정신 병원과 요양원에 머물다 집으로 돌아왔다.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묻고 싶지만, 이미 뤼도빅의 아내 마리로르의 표정에서 답을 들은 듯하다. 남편의 귀가가 반갑지 않다. 바보 같은 사람으로 낙인찍힌 그에게 처음부터 사랑을 찾지 않았던 그녀는 오직 저택의 존재와 앙리의 재산이 안겨주는 부유한 삶, 그녀가 원하는 사랑은 그런 거였다. 앙리의 두 번째 아내 상드라는 지적이지 못했고, 그녀의 동생이 필립이 저택에 머물고 있지만 역할 없는 기생충에 가까웠다. 뤼도빅의 아버지 앙리에게 아들은 체면을 위해서 챙겨야 하는 존재였으며, 그 아들이 아무 문제 없이 이렇게 잘살고 있다고 표명하는 자리라도 만들어야 했다. 앙리는 사람들 앞에 아들을 내보이게 위한 파티를 준비하며, 뤼도빅의 장모(마리로르의 엄마) ‘파니가 저택을 찾는다.


이 모든 일이 파티를 열기로 하면서 시작되었으니, 파티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이들의 사랑에 나는 파티의 주최 여부가 더 궁금해졌다. 파티는 무사히 열렸을까, 이들의 가식과 침묵과 염탐이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들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은 걸까 싶은 마음. 권태롭고 우울한 분위기의 저택에서 버티는 건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그뿐, 타인의 마음 따위 관심도 없고 궁금하지 않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뤼도빅은 자기 존재에 관해 수도 없이 고민했을 터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 사랑하는 아내조차 외면하는 그 자신을 탓하며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때 저택에 들리던 피아노 소리와 그에게 다정했던 단 한 사람은 뤼도빅의 삶을 바꿔놓는다. 사고로 멈춰있던 그의 운전까지 가능하게 하고야 만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롭게 보이지만, 그들은 자기 마음에 충실하다. 욕망하면 욕망하는 대로, 불안하고 초조하면 그 마음 그대로 감당하면서 오늘의 사랑에 빠져든다. 이게 사랑이 맞는지 의심하지만, 어느 순간 깊숙이 파고든 사랑을 인정하는 모습마저 아름답다.


그들은 두려움도 호기심도 부끄러움도 없는 또 다른 영역에서 서로를 발견했다. 그것은 운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보다 열 살이 많든 적든, 그 일이 스캔들이든 아니든, 그것이 지속적이든 일시적이든, 이 사건, 피아노 옆에서의 그 두 시간이 그녀의 삶, 그녀의 습관과 어울리든 그렇지 않든 간에. (194~195페이지)


가벼운 코미디 같은 장면이 군데군데 묻어나면서 소설은 리듬을 타기도 한다. 집사 마르탱이 저택의 곳곳을 보면서도 침묵하는 시선은, 그들의 비밀을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속으로 비웃는 것만 같다. 아내 상드라가 다쳤어도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사랑을 꿈꾸는 앙리의 헛물켜기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비밀을 알면서도 끝까지 지켜보기만 했던 필립의 속내가 위험해 보였지만 알 수 없어서 더 궁금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개 한 마리는 어느 순간 이 소설의 화자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의인화하고 싶은 대상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앙리가 파니를 초대한 이유에서 웃음이 나더라. 아들이 병원에 있을 때 찾아와 유일하게 눈물을 흘려준 사람이라는 이유로 파니를 선택했다니. 장모가 사위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우는 일이 특별한 일인가 싶어 잠깐 머뭇거렸는데, 이 저택의 사람들을 보면 앙리가 파니의 눈물을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아들을 무시하는 며느리보다 아들의 아픔을 알아보는 이가 먼저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어쩌면 내가 앙리를 잘못 판단한 건 아닐까? 아들을 아끼는 사람을 알아보고 초대한다는 건,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는 일이니까. 그건 뤼도빅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적 여유와 화려함을 향한 삶을 추구하는 마리로르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가는(파니는 남편이 죽은 후 생계를 위해 일하지만 여유로운 삶은 아니다) 이에게 눈길이 간다. 물론 뤼도빅이 선택한 사랑의 대상이 존경의 이유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허세와 겉치장으로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파니가 빛나 보이는 건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부터 미완의 소설이라고 들어서일까. 어느 부분에서 부족한 게 있을까 찾는 마음으로 읽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이 결말이 오히려 더 잘 어울렸다. 현실 속 상황이라도 해도 우리는 여전히 고뇌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다 언젠가는 이 사랑의 마지막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선택하겠지. 어떤 사랑도 끝은 있으니까. 결국은 지금 내가 선택한 것, 사랑이든 사랑의 끝이든,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사랑도 삶도, 어떤 날이 될지 모를 내일보다는, 지금 보고 있는 오늘의 순간이 중요하다.


#마음의심연 #프랑수아즈사강 #민음사 #소설 #해외소설 #문학

##책추천 #미완의작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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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리뷰 당선 추카추카 합니다^^

thkang1001 2021-12-1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리뷰에 당선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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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집값이 싸냐고 물으면 대개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지금요.” 혹시나 집값이 내릴까, 더 좋은 집이 매물로 나오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망설일 때는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거다. 어떤 결정을 해야 가장 만족하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안심할 수 있을지 불안해서다.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집값은 오르고, 내 몫으로 기다리는 집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어오는 집을 다 구할 수 있었다면 이런 고민도 없었겠지. 언제나 그놈의 돈이 문제다.


주인공 오영선은 29세 여성이다. 사무보조로 일하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남들은 왜 사무보조를 하느냐고 더 조건 좋은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영선에게 사무보조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책임감이 무겁지도 않게, 단순 업무로 주어진 일만 하면 되니까 신경 쓸 게 거의 없다. 자기 일만 하면서, 타인의 시선 따위 무시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그녀는 회사의 누구와도 교류가 없다. 그녀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오면서 이런 삶의 태도는 조금씩 변한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빌라에서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다가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오영선은 이제 이 가정의 세대주가 됐다. 집주인은 곧 전세기한이 만기 되니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그녀가 자라왔던 동네, 엄마의 체취가 묻어 있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영선이 바란 것은 결코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미래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가난한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자신감은 상실되어 갔다. (143페이지)


바라는 대로 다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영선에게 닥친 현실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쯤 되면 짐작했을 것이다. 그녀가 구할 수 있는 집을 찾는 일, 집값을 맞추는 일은 어려웠다. 여동생과 함께 살 집이니 의논해야 했고, 전세금을 빼고도 한참 모자라는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 되겠지. 요즘에는 대출 없이 집을 사는 일은 드물다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대출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아파트 노래를 부르며 결국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부모님이 은행에서 빌려 쓴 돈은 이 가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이 생기면, 일상이 힘들어진다. 쉽게 사 먹었던 어묵꼬치 하나에도 주저하게 된다. 매달 갚아야 할 금액을 맞추느라 일이 힘들어도 쉬지 못했다. 그렇게 돈에 끌려다니다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이때의 고생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 할 것 같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오영선의 집 구하기 모험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돈만 여유로웠다면 이 이야기는 모험이 되지 않았을 테다. 언제나 같은 고민,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고 싶은 이상과 가진 돈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가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느냐, ‘영끌해서 빚을 지더라도 내 집이라는 안도감을 누릴 것이냐. 그녀는 이 정도도 모르고 살아왔다. 부모님이 집 때문에, 빚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만 보면서 자라왔지 정작 서른을 바라보는 그녀의 현실에서는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계획에만 몰두했다. 엄마의 부재로 이제 그녀에게 넘어온 공은 마치 그녀를 시험하듯 부동산이라는 세계에 밀어 넣고 어떤 길로 가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읽으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럼 다음 이야기가 뻔하니 소설이 재미없겠다고? 아니다. 오히려 오영선의 부동산 입문기가 생생해서 놀랄 정도였다. 어쩜 이렇게 취재를 가까이서 했는지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린이였다. 우연처럼 비밀을 알게 되어 안면을 튼 회사의 주 대리는 영선에게 부동산 스승이 된다. 물론 개인적인 일이니, 개입하면 안 되는 선이 있다. 주 대리는 그 선을 철저히 지키면서 영선의 현실 감각을 일깨워준다. 청약 준비부터 당첨 조건까지, 어느 지역을 돌아보고 어떤 이슈에 관심 두어야 하는지를. 주 대리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그녀 역시 스스로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인생의 모든 중심이 부동산 투자와 성공에 있다. 영선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으면서도 영선에게 현실을 조언해주고 세상을 더 정확히 보게 하는 주 대리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소설 속 인물에 머물지 않는 그녀는 마치 현실에서 알고 지내는 언니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렸을 적에는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맛있는 거 먹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멤버들이,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모임에서는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이야기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게 낯설지 않다. 그 모임에 주 대리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양가감정에 힘들어지기도 하겠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주 대리를 비난하면서도, 주 대리처럼 하지 않으면 집을 갖지 못할 거라는 현실에 그녀를 부러워하거나.


정말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대출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과 같을까? 집을 구하려면 피할 수 없는 대출에 주 대리는 저런 명언을 남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대출은 어느 정도일까? ‘그만큼이란 역시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른 금액이겠지만, 주 대리의 말이 너무 와닿아서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돈 모아서 집 사려고 차곡차곡 모으면서 기다렸더니, 내가 모은 돈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때 그냥 무리해서라도 집을 살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의 말이 스치고 지나간다. 인생은 비례가 되지도 않고, 성실하게 모으기만 한다고 다 이루고 살 수도 없다. 금수저라도 물고 태어났다면 좋으련만, 그건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까 싶어 포기한 지 오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끔 로또도 사지만 왜 매번 내 번호는 피해가는지도 모르겠고. 없는 돈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속으로 벌벌 떨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역시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소설 속 오영선처럼 크게 바라는 것 없이 소박하게,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왔다. 엄마가 계시는 시골집을 정리하고 적당히 지낼만한 아파트를 구해야지 고민하던 게 벌써 일 년.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시골집 팔아도 소형 아파트 한 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이런 시골에서, 이 정도의 집값으로 채무자가 되어 살아가는 일이 흔한데, 매일 뉴스에서 보는 집값 얘기는 어디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


영선은 버스를 타려다가 걷는 걸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대학에 가서는 취업, 이후에는 결혼과 집 등으로 화제가 달라졌다. 마주해야 할 세계는 넓어지고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관계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감당해야 할 것과 책임져야 할 것들이 두터워진다. 하지만 영선은 그 모든 것들을 멀리하고 혼자인 것을 선택했다. 이건 도피일까. 아님 단단해지기 위한 몸부림일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이어지는 동안 영선은 화려한 불빛들이 줄 서 있는 번화가에서 벗어나 큰길에 이르렀다. (88페이지)


2021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한 편의 소설에서 봤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에 우울해지면서도, 어떤 방법을 알게 된 것도 같다. 물론 그게 정답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완전한 답이 없다면 최상의 답을 찾아가는 거 아니겠나. 어차피 선택은 자기가 하는 거지만, 이 정도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현실적인 경제 서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이야기로 남겨두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집은 각기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그 안에서 내가 가진 집의 개념과 같은 인물을 찾으면서 읽는 재미도 있다. 혹시나 다른 시선을 가진 인물이 보인다면 새로운 시선으로 지켜봐도 좋다. 꼭 내 집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영선, 자산 증식 수단으로 부동산이 최고이며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많다고 여기는 주 대리, 부동산으로 인생 파산까지 경험하고 다른 곳에서 위로를 얻으며 사는 카페 사장 휴 씨. 어느 한 사람에게만 마음 두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인물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에 읽으면서 같이 힘들어진다. 지금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 이러하다. 묻고 싶은 게, 듣고 싶은 대답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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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7 0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02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 문명의 기둥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2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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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사피엔스 읽다가 포기했다. 나 같은 독자 많을 것 같은데? (아니면... 음..) 그래픽 히스토리로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기뻐했는데, 1년에 한권씩이라니. 이거 너무 감질나잖아. 연재를 안 보는 이유가 다음 회 올라오는 거 기다리기 싫어서인데. 출간 간격 좀 좁혀주시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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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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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겠지. 내 자식이 예쁘고 귀하다. 마냥 품에 안고 키울 수 없으니, 내 아이가 집 밖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한다. 그저 아이를 잘 돌보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을 바라던 시절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부모는 내 아이가 또래와 잘 어울리는 것이 큰 바람이 됐다. 학교에서 별일은 없는지, 아이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 내 아이가 왕따나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한다. 공부를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걱정이, 바로 학교 폭력이나 왕따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 되었다.


사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까지 끊은 일은 너무 자주 들려오는 뉴스다. 피해자는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그 고통을 끝내고야 말았을까 싶고, 가해자는 왜 자기 잘못도 반성하지 못하고 폭력을 반복하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그 가운데 피해자의 부모가 있다. 내 아이가 왜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기도 전에 눈앞에서 아이가 사라진 고통을 감당하는 부모. 당사자가 아니어서 명확한 진실을 알지 못한 채로 아이를 보내줘야만 했다. 아이가 떠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이상한 퍼즐 조각들. 평소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알아가는 과정 역시 고통스러웠다. 시게아키의 아버지 역시 아들과 아내를 잃고서 진실에 근접하게 된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가족을 모두 잃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것 말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도키타는 아버지의 반대를 비웃으며 공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불량배의 타깃이 된 후로 괴롭힘을 당한다. 계속된 갈취와 폭력에 시달리던 도키타는 이제 포기했다. 차라리 죽이라며, 험한 발길질에도 웃을 수 있었다. 그날도 공원에서 류지 일당에게 맞고 있던 도키타 앞에 피에로가 나타나 도와준다. 류지 일당은 일단 후퇴하고 도키타는 살았지만, 이 평온이 오래가지 않을 것은 안다. 피에로는 도키타에게 제안한다. 류지 일당을 벌해주고 싶은 시나리오와 계획을 짜라고, 자기가 그 애를 죽여주겠다고.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것도 잠시, 도키타는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고 완전범죄로 만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가능할까? 마음으로는 당연하게 나쁜 놈들을 벌해주고 싶지만, 더는 괴롭히지 못하게 속 시원히 죽여주고 싶지만, 그게 완전범죄로 가능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어차피 살인한다는 건 살인 이후의 책임에 대해서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일 텐데, 도키타는 살인자가 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 것 역시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매일 맞고 갈취를 당하느니 자기가 죽는 게 쉽겠다고 생각했을 거다. 피에로의 제안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건, 어차피 나쁜 놈들을 죽이는 거고, 그 살인에 죄책감은 필요 없다는 당위성이 생기기도 해서다. 역사적인 그날, 학교 폭력으로 자살이 계속된 매년 116일을 저주의 날로 만들기 위한 디데이를 설정한다. 더는 류지 일당이 이 폭력을 이어가지 않도록 이 살인을 기어코 완성하리라. 도키타 역시 그들에게 계속 당하고 있지 않으려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정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실행해야 했다. 피에로의 도움으로 이 계획은 반드시 완성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반복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폭력의 중심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가 있다. 아이들의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동시에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폭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돈을 뺏고 의기양양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 같은 방식이 반복되면서 가해자는 더 쉽게 돈을 갈취하고, 폭력의 강도는 심해진다. 피해자는 처음에 반격하지만, 점점 힘을 잃는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며 포기하고, 그저 맞고 있는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 기적처럼 그 고통을 같이 해결해주겠다는 이가 나타난다면 손을 잡지 않겠는가? 피해자가 눈앞에 있어도 다른 이들은 모두 방관자가 되어 힘 앞에 무릎 꿇고 마는 상황에서, 믿을 사람이 나타났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아무도 학교 폭력에 대해 바로 보지 않았다.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두려움에 빠져 피해자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게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건 아닐까. 마치 주변의 두려운 시선을 즐기는 듯, 가해자의 폭력은 날로 심해지고 뻔뻔해졌으니 말이다.


작가는 단순히 학교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만 비추지 않았다. 피해자의 시선으로 서술하면서 독자에게 그 피해의 정도와 절망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닿게 하면서도, 가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묻는다. 가해자들에게 쌓인 가정 폭력의 시간이 아이들을 어떻게 성장하게 했는지 확인시킨다. 피해자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의 두려움과 외면을 담는다. 폭력 앞에서 다양한 위치에 서 있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묻는다. 지금 이 피해자를 계속 외면할 것인가? 당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성공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피해자의 고통은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폭력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대물림하듯 이어지는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법이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흘러갈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억울함, 부모를 존경할 수 없는 슬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괴롭힘의 원동력이 되었구나. 그 사소한 시작에서 중대한 학교 폭력으로 발전한 것이다. (181페이지)


력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미성년자이고,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라는 것은 절망적이다. 갱생을 목적으로 반성하고 다시 살아갈 기회를 준다는 의미겠지만, 그 갱생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건 누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단 말인가.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고통의 감정을 피에로 페니가 나서주었지만, 그 역시 완전한 정의는 아니리라. 그런데도 우리는 읽으면서 페니의 등장에 안도하게 된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감히 시도하기까지 어려울 그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줄어들지도 모르니까. 가해자가 감당해야 할 죄의 무게와 피해자가 이루려는 복수의 가치를 동시에 보여준다. 무조건 악인이고 무조건 선인이 아닌 게 인간이기에, 이 폭력의 기저에 놓인 한 개인의 성장을 보면서 누구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린다.


나를 심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학교 폭력으로 아이를 잃은 유족뿐입니다. (261페이지)


언제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폭력의 중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소설이다. 너무 잘 읽히기에 더 무거워진 이 소설이, 학교 폭력을 걱정하고 학교 폭력의 중심에 있는 모든 이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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